‘당신들의 천국’, ‘서편제’의 소설가 이청준(68)씨가 31일 새벽 4시쯤 별세했다.
이씨는 지난해 7월 폐암선고를 받고 항암치료를 해 오다 최근 병세가 악화돼 삼성서울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전남 장흥 출신인 이씨는 1965년 단편 ‘퇴원’이 ‘사상계’신인문학상에 당선돼 등단했다. 1967년에는 ‘병신과 머저리’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1969년에는 ‘매잡이’로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씨는 이후 ‘당신들의 천국’, ‘이어도’ ‘'남도 사람’ ‘벌레 이야기’ ’자유의 문’ ’축제’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한국문단의 거목으로 평가받아왔다.
또한 그의 소설은 동향인 임권택 감독이 ‘서편제’ ‘천년학’, 고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로 영화화하기도 했고, 전도연에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밀양’의 원작도 이씨가 1985년 발표한 중편 ‘벌레 이야기’였다.
이씨는 지난해 폐암투병과정에서도 새 작품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열림원)를 출간하고, 단편 ‘이상한 선물’을 계간 ’문학의 문학’ 가을호(창간호)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일보 창작문학상과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21세기문학상, 인촌상, 호암 예술상 등 다수의 문학상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남경자 씨와 외동딸 은지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14호실. ☎02-3410-6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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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보다 몸과 싸우기가 더 힘들어”
- 투병중 소설집 낸 이청준씨
“일용할 하루의 건강을 허락받았구나… 아침마다 감사 |
소설집을 묶는 것보다 마냥 눕고만 싶어하는 몸과 싸우기가 더 힘들더군요.”
새 작품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열림원)를 출간한 소설가
이청준(68)은 지난 가을, 이 소설집을 묶기 위해 문학과 씨름하기보다 먼저 자신의 몸과 맞서 싸워야 했다. 그는 지금 암(癌)과 일대일 대결을 벌이고 있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이상한 선물’을 쓰던 지난 7월 그 ‘반갑지 않은 손님’은 찾아왔다. 폐에서 시작됐고, 전이의 조짐도 있었다. 작가는 “절망적인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비록 절망이라 할지라도 삶에 뭔가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작가의 권능을 되찾아 주는 힘찬 목소리로 다시 비상(飛翔)할 수 있다. 몸은 힘들어하는데 마음의 목소리는 “빨리 소설책을 내라”고 재촉했다. 병마와 싸우며 완성한 소설집은 제작 과정도 남달랐다. 작가는 중앙대 미대 김선두 교수에게 전화해 “내 소설에 그림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글로 쓴 내용뿐 아니라 책이라는 외양까지도 ‘작품’이 되는 소설책을 내고 싶다”는 작가의 말에 김 교수는 “단순한 삽화가 아니라 글과 어울리는 작품을 그리겠다”고 다짐했다.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이윤옥씨는 교정도 봐 주겠다고 나섰다. 한 번 주사 맞고 한 주 쉬고, 또 한 번 주사 맞고 두 주를 쉬는 방식으로 항암제를 맞는 것을 네 번 반복하고 나온 것이 이번 소설집이다.
- ▲ 신작 소설집을 낸 작가 이청준씨가 자택에서 컴퓨터 모니터로 책 표지 이미지를 살펴보고 있다. /용인=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소설에 그려진 세계도 투병하며 작품을 낸 작가의 내면과 닮았다.
이청준은 장편 ‘당신들의 천국’, 단편 ‘벌레 이야기’처럼 인간 존재의 의미를 지성적으로 파고드는 소설을 발표해 왔다. 그러나 이번 소설집에서 그는 ‘의지’나 ‘정신’ 같은 이성의 세계를 넘어, 신화와 설화에 나타나는 인간 영혼의 목소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는 작가인 ‘나’가 멕시코 여행 중 들은 한인 이민자와 문주란 꽃에 얽힌 사연 이야기다.
멕시코에서 만난 한인 이민자의 후손은 그곳에 자라는 문주란 꽃이 할아버지 고향인 제주도에서 자라는 문주란과 같다고 믿는다. 문주란 꽃씨가 태평양 바다를 가로질러 왔다는 막연한 믿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민자 할아버지의 마음을 위로해 준다.
작가의 용인 집에는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물건이 두 개 있다. 김선두 교수가 작가의 소설 ‘눈길’을 모티브 삼아 만들어 선물한 일정 메모판에는 문단의 지인들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작가는 “나를 걱정해 주고 안부를 물어 온 분들에게 소설집을 보내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동인문학상을 심사하는 동료 심사위원들부터 최근 발표한 장편을 보내온 소설가 조경란에 이르기까지 100명이 넘는 이름이 적혀 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일용할 하루의 건강을 허락 받았구나 하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했다.
그는 “욕실의 애프터셰이브 로션이 있는데 하나 더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여진다”며 웃었다. 어떤 국면에서도 그의 곰삭은 농담은 그의 힘이 돼왔다. 소설집을 펼쳐 보이며 한 마디 덧붙였다. “소설을 한 권만 더 써서 다시 만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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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 마음을 훔치는 큰 도둑, 이청준
- 이청준의 인생/ 이청준 지음/ 한향란 사진/ 열림원
아름다운 흉터/ 이청준 지음/ 정정엽 그림/ 열림원
- 김광일기자 ki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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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청준의 인생(맨위) / 아름다운 흉터(아래)
이청준의 고향에서는 밤길에 마주 오는 길손끼리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마디 해준다고 한다. “소리치면 들릴 만한 거리에 다른 사람이 가고 있소.”한치 앞이 두려운 칠흑 같은 밤을 홀로 걷는 나그네에게는 몇 십, 몇 백 걸음 앞에 동행자가 있다는 믿음만큼 든든한 게 없다.
진짜로 앞서 걷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40여년 동안 “유명한 만큼 대중적 인기는 없었던” 이청준 문학은 깜깜한 현실 속을 걷고 있는 깨어있는 독자들에게는 그러한 든든함의 역할을 해왔다.
올해로 등단 40년을 채우는 소설가 이청준이 불혹에 이른 문학 인생을 음미하며 두 권의 산문집을 냈다. 매혹적인 그림과 사진이 곁들여진 이번 책들은 어쩌면 앞으로 쓰게 될 기다란 자서전의 앞토막과 꽁지 부분일 것이다. 유년시절과 고향 이야기가 엮인 ‘아름다운…’이 앞토막이라면, 삶의 여정에서 중요 대목을 짚고 세상 풍물의 표정을 들여다본 ‘이청준…’은 꽁지쯤이다.
예수가 비유로만 말씀하신 시인이었다면 이청준은 자서전마저 일화로만 쓰는 천생 이야기꾼이다. 가까이에서 본 이청준은 능청스럽고 까다로운 신사다. 상체를 약간씩 흔들거나 슬쩍 안경테를 만지면서 자분자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아는 분은 아시고 모르는 분은 모르시겠지만, 이청준의 글맛은 ‘자분자분’에 들어 있다. 그래도 결국 이청준의 독자들은 가엾다. 그가 글로 마음을 훔치는 큰도둑이기에 독자는 당하면서도 당하는 줄도 모른다. 은은한 글향기에 취하면 도리가 없다.
이청준은 이번 책을 내면서 세상을 용서한다. 그와 오래 사귄 사람들은 그것이 이청준이 세상을 휘어잡는 방책이라는 것을 안다. 책 제목처럼 자신의 인생을 축조한 수십가지 작은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세상을 밀쳐내듯 품고, 노려보면서 감싸 안는다.
가령 대표 장편 ‘당신들의 천국’을 쓰고 평생 ‘소록도 신사’가 된 이청준은 소록도를 격리라고 생각해온 사람들을 용서한다. 그곳에는 스러져 간 사람의 얼굴을 담은 듯 참으로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 있기 때문이다.
그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아 평생을 소록도에서 봉사해온 한 여성이 이청준에게 따진다. “선생님이 제 젊음을 빼앗아 갔으니 어떻게 책임지실래요?” 작가에게는 이만저만 큰 부담이 아니었을 것이다. 글 쓰는 이의 두려움이기도 했을 것이다.
약사 출신인 그녀를 몇 번 만나면서 마음의 짐을 덜어보려는 노력도 했으나 영 개운한 것은 아니었다. 그렁저렁 30년이 흐른 어느해 늦가을 문득 소록도를 찾으니 그녀는 에티오피아 난민촌으로 귀환의 기약도 없이 의료봉사를 떠나고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남겼음직한 한마디가 심금을 흔든다. “이 섬만 해도 제 삶이 꽃 피기에는 너무 호사스러운 땅인 것 같아서요.”
독자는 이청준의 소설보다 오히려 이청준의 체험 이야기를 들을 때 그의 진한 글냄새를 맡는다. 본인도 어깨에 힘을 빼고 쓰는 글이어서 편안하고, 독자도 방바닥을 뒹굴며 읽을 수 있다. 다만 눈알이 뻑뻑해지는 감동이 밀려오더라도 그의 책임은 아니다. 소설가가 쓴 실화(實話)일 뿐이니까, 라고만 해둔다.
게다가 이청준은 음란하기까지 하다. 이 무슨 책임 못질 해괴한 소리냐 하겠지만, “문학과 예술은 대개 성과 성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고, 좋은 작품이란 성욕망의 순화와 해방의 과정에서 얻게 된 산물”이라는 게 본인의 설명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읽다 보니 이청준의 글에는 깊은 곳에서 얕은 곳으로 거슬러 오르며 성욕망을 간지럽히는 천연덕스러움이 있다. 엊그제 소개했지만 프랑스의 젊은 소설가 아멜리 노통이 쓴 ‘살인자의 건강법’에서도 주인공으로 나오는 대문호 프레텍스타 타슈(83)가 이렇게 말한다. “작가는 음란해야 하오.”
이청준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깨진 유물 한 점을 소개하면서 “깨어진 것이 완형(完形)”이라는 이야기를 꺼내는데 그 또한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도굴꾼조차 버리고 간 토기는 사실은 신라 시대에 죽은 사람의 무덤에 함께 넣어준 부장물의 하나로 원래부터 깨서 넣어두었다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의 물건을 구별짓는 방법이었다. 깨어진 것이 그릇 원래의 모습이라는 얘기다. 이청준의 글은, 개인의 삶도 인류의 역사도 상처와, 상처의 내력으로 이루어져 간다는, 따지고 보면 상처가 완형일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 ▲ 산문집'이청준의 인생'중'더 많은 풍속(風俗)의 장소를 위하여'라는 글에 실려 있는 사진이다. 저자는"하나의 장소가 그 이름을 얻어 생겨나기까지는 반드시 그곳에 그만한 삶의 집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작가 한향란
작고 범박한 이야기 한토막을 꺼내면서 두툼한 철학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건네는 솜씨가 이청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청준에게 여간해선 들키지 않는 비밀이 있다. 그것은 일화도 아닌 것을 마치 일화처럼 들려준다는 사실이다. 어색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는 ‘일화스럽게(episodically)’ 말한다. 큰도둑은 그런 글사기(?)로 독자를 사로잡는 것인지 언젠가 한번 물어볼 참이다. 타고난 이야기꾼(born to be a teller)이 못 되는 보통사람은 꿈도 꾸지 못할 솜씨다.
둘째 비밀은 얘기의 굽이를 넘어갈 적마다 독자의 관심을 혹독하게 잡아채는 기술이다. 마치 “앞으로 나올 얘기에 비하면 지금까지 당신들이 들은 얘기는 얘기 축에도 못 끼지요”라는 식이다. 지금까지도 재미 있었던 독자는 이 대목에서 얘기꾼의 무릎에 더 바싹 다가앉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예컨대 ‘노인의 침묵’ 같은 글을 보시길).
또 하나, 이청준의 에피소드는 하루 동안에 일어나거나 몇 시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짧으면 몇 년, 길면 수삼십년을 훌쩍 건너 뛰는 호흡을 보여준다. 앞서 ‘소록도의 꽃’ 이야기도 그렇고, ‘세상에서 제일 비싼 소철분 이야기’도 십여년을 진행한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주례 선생님 댁으로 인사를 갔던 가난한 이청준 부부는 값싸고 못생긴 소철분을 하나 샀다. 이걸 받아든 주례 선생님이 소철을 잘 키워주겠다고 다짐 말씀을 주셨으나 새내기 부부는 말치레쯤으로 여기고 까마득히 잊는다.
그리고 십여년이 흐른 어느 해 첫 아이를 안고 세배를 갔다가 선생님의 거실에 늠름하게 자라고 있는 소철을 발견하고는 그 앞에 서서 얼어붙어 버린다. 선생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긴 자신들의 젊은 어리석음이 못내 부끄러웠을 것이고, 벼락같이 엄습한 감사의 마음이 파동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에피소드란 고대 그리스에서 합창대의 노래와 노래 사이에 들어가는 대화를 뜻했다. 이청준의 에피소드도 읽고 나면 그 앞뒤로 거대한 인생의 합창이 들린다. 진짜다. 확인해보시길 권한다.
01. 천년학 | 대금 | 4:43 |
- ChonNyunHak (Millenium Crane) Title
첫댓글 갈래머리 여고시절..월간 '신동아'에 연재 되었던 <당신들의 천국>을 읽으며 이청준님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는데..박경리 선생님에 이은 이청준님의 타계 소식을 접하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_()_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