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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五十七回 娶夏姬巫臣逃晉 圍下宮程嬰匿孤
제57회: 하희를 취한 무신이 진나라로 달아나고, 하궁을 둘러싸 정영(程嬰)이 조씨 고아를 숨기다.
話說,晉兵追齊侯,行四百五十里,至一地,名袁婁,安營下寨,打點攻城。齊頃公心慌,集諸臣問計。國佐進曰:「臣請以紀侯之甗及玉磬,行賂於晉,而請與晉平﹔魯衛二國,則以侵地還之。」頃公曰:「如卿所言,寡人之情已盡矣。再若不從,惟有戰耳!」國佐領命,捧著紀甗玉磬二物,逕造晉軍。先見韓厥,致齊侯之意。韓厥曰:「魯衛以齊之侵削無已,故寡君憐而拯之﹔寡君則何仇於齊乎?」國佐答曰:「佐願言於寡君,返魯衛之侵地如何?」韓厥曰:「有中軍主帥在,厥不敢專。」
한편, 진(晉)나라 군사들이 제경공을 쫓아 450리를 행군하여 한 곳에 이르렀는데, 그곳 이름이 원루(袁婁)였다. 진나라 군사가 영채를 세우고 성을 공격하려고 했다. 제경공은 마음이 황망하여 여러 신하를 모아 계책을 물었다. 국좌가 앞으로 나와 말하기를, “신이 기(紀)나라 군주의 보물인 시루와 옥으로 만든 경쇠를 진나라에 뇌물로 주고 강화를 체결한 후에,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우리가 빼앗은 땅을 돌려주기를 청합니다.” 하니, 제경공이 말하기를, “경이 말한 바와 같이하면 나로서는 성의를 다한 것이오. 만약 진나라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오직 전쟁이 있을 뿐이오!” 했다. 국좌가 제경공의 명을 받들고 기나라 시루와 옥으로 만든 경쇠를 가지고 진나라 진영에 도착하여, 먼저 한궐을 만나 제경공의 뜻을 전달했다. 한궐이 말하기를, “노나라와 위나라가 제나라의 침략으로 땅이 자꾸 깎이자 우리 군주께서 이를 불쌍히 여겨 그들을 구해주려고 했지, 우리 군주가 제나라에 무슨 원한이 있겠소?” 했다. 국좌가 대답하기를, “제가 우리 주군께 말씀을 드려서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니, 한궐이 말하기를. “중군 원수께서 계시니 제가 감히 맘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했다.
韓厥引國佐來見郤克,克盛怒以待之,國佐辭氣俱恭。郤克曰:「汝國亡在旦夕,尚以巧言緩我耶?倘真心請平,只依我兩件事。」國佐曰:「敢問何事?」郤克曰:「一來,要蕭君同叔之女為質於晉﹔二來,必使齊封內壟畝盡改為東西行。萬一齊異日背盟,殺汝質,伐汝國,車馬從西至東,可直達也。」國佐勃然發怒曰:「元帥差矣!蕭君之女非他,乃寡君之母,以齊晉匹敵言之,猶晉君之母也。那有國母為質人國的道理?至於壟畝縱橫,皆順其地勢之自然,若惟晉改易,與失國何異?元帥以此相難,想不允和議了。」
한궐이 국좌를 안내하여 극극을 만나니, 극극이 성을 내어 대했으나 국좌의 말씨와 얼굴빛은 모두 공손했다. 극극이 말하기를, “너희 나라는 아침저녁이면 곧 망할 것인데, 교묘한 말로 나를 누그러뜨리려 하느냐? 만일에 진심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가 제시하는 두 가지 조건을 따라야만 할 것이다.” 하니, 국좌가 말하기를, “감히 묻겠습니다. 무슨 조건이지요?” 했다. 극극이 말하기를, “첫째 소(蕭)나라 군주 동숙(同叔)의 딸을 진(晉)나라에 인질로 보내고, 둘째 제나라 땅의 모든 밭고랑을 동서로 고쳐야 한다. 만일 앞으로 제나라가 맹약을 배반하면 인질을 죽이고 군사를 일으켜 토벌할 때 수레와 말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진격하게 되어 제나라 도성에 곧바로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니, 국좌가 벌컥 성을 내어 말하기를, “원수의 말은 틀렸습니다. 소(蕭)나라 군주의 딸은 바로 우리 주군의 모후입니다. 제나라는 진나라에 필적하는 나라이니 말하자면 우리 주군의 모후는 진나라 군주의 모후와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국모를 다른 나라의 인질로 보낼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밭고랑은 가로세로로 모두 자연의 지세에 따르게 되어 있는데 오직 진나라를 위해서 밭고랑을 고친다면 나라가 망한 것하고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원수께서 이렇게 수락하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니, 화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했다.
郤克曰:「便不允汝和,汝奈我何?」國佐曰:「元帥勿欺齊太甚也!齊雖褊小,其賦千乘﹔諸臣私賦,不下數百。今偶一挫衂,未及大虧。元帥必不允從,請收合殘兵,與元帥決戰於城下!一戰不勝,尚可再戰,再戰不勝,尚可三戰,若三戰俱敗,舉齊國皆晉所有,何必質母東畝為哉?佐從此辭矣!」委甗磬於地,朝上一揖,昂然出營去了。季孫行父與孫良夫在幕後聞其言,出謂郤克曰:「齊恨我深矣,必將致死於我。兵無常勝,不如從之。」郤克曰:「齊使已去,奈何?」行父曰:「可追而還也。」
극극이 말하기를, “내가 화의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면 너희 제나라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니, 국좌가 말하기를, “원수께서는 제나라를 너무 얕보지 마시오. 제나라가 비록 작은 나라이나 군비가 전차 천 대를 지탱하고, 여러 신하의 사병도 전차 몇 백 대는 됩니다. 지금 우리가 한번 꺾였지만 크게 패하지는 않았소. 원수께서 제나라와 화의를 맺을 뜻이 없다면 우리는 남은 병사를 모아 원수와 성 아래에서 결전을 하겠소. 한번 싸워서 못 이기면 두 번 싸우고 두 번 싸워 못 이기면 세 번 싸울 것이며 만약 세 번 패한다면 제나라 영토는 모두 진나라의 소유가 되는데, 하필이면 국모를 인질로 보내고 밭고랑을 동쪽으로 낼 필요가 있겠소? 국좌는 이만 물러갈까 하오!” 했다. 국좌는 시루와 옥경을 땅에 버리고 읍을 한번 하더니 당당하게 진나라 진영 밖으로 나가 돌아갔다. 계손행보와 손량부가 장막 뒤에서 그 말을 듣고 나와 극극에게 말하기를, “제나라가 우리를 깊이 원망하면 반드시 우리에게 죽을 각오로 덤벼들 것입니다. 군사의 일이란 항상 이길 수 없습니다. 제나라의 화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게 좋습니다.” 하니, 극극이 말하기를, “제나라의 사신이 이미 가 버렸으니 어찌하지요?” 했다. 계손행보가 말하기를, “쫓아가면 돌아올 것입니다,” 했다.
乃使良馬駕車,追及十里之外,強拉國佐,復轉至晉營。郤克使與季孫行父孫良夫相見,乃曰:「克恐不勝其事,以獲罪於寡君,故不敢輕諾。今魯衛大夫合辭以請,克不能違也,克聽子矣。」國佐曰:「元帥已俯從敝邑之請,願同盟為信。齊認朝晉,且反魯衛之侵地。晉認退師,秋毫無犯。各立誓書。」郤克命取牲血共歃,訂盟而別。釋放逄丑父復歸於齊。齊頃公進逄丑父為上卿。晉、魯、衛、曹之師,皆歸本國。宋儒論此盟,謂郤克恃勝而驕,出令不恭,致觸國佐之怒,雖取成而還,殊不足以服齊人之心也。
즉시 좋은 말이 끄는 전차를 달려 10리 밖을 쫓아가 강제로 국좌를 붙들어 진나라 진영으로 돌아왔다. 극극이 계손행보, 손량부와 같이 국좌를 만나서 말하기를, “제가 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우리 군주에게 죄를 짓게 될까 두려워하여 감히 가볍게 화의를 허락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노나라와 위나라 대부께서 한뜻으로 화의를 주장하여 제가 그 뜻을 어길 수 없어서 제나라의 화의 신청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하니, 국좌가 말하기를, “원수께서 이미 우리의 화의 요청을 받아들였으니, 원컨대 동맹을 맺어 신의를 보여야 합니다. 제나라가 진나라에 조공을 들이고, 또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면 진나라는 군사를 물려서 추호도 제나라 영토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노나라와 위나라 대부들도 글로 써서 맹세해야 합니다.” 했다. 극극이 희생의 피를 가져오게 하여 함께 입술에 바르고 맹약한 후에 헤어졌다. 방추보도 석방하여 제나라로 돌려보냈다. 제경공은 방추보를 상경으로 삼았다. 진나라, 노나라, 위나라, 조나라의 군대는 모두 본국으로 돌아갔다. 송나라 때 선비들이 이 맹약을 논하여 이르기를, 극극이 승리를 믿고 교만하여 불공스러운 태도로 명령을 내려 국좌의 분노를 샀다. 비록 두 나라 사이에 화의가 성립되어 돌아갔지만 제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승복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晉師歸獻齊捷,景公嘉戰鞍之功,郤克等皆益地。復作新上中下三軍:以韓厥為新軍元帥,趙括佐之﹔鞏朔為新上軍元帥,韓穿佐之﹔荀騅為新下軍元帥,趙旃佐之,爵皆為卿。自是晉有六軍,復興伯業。司寇屠岸賈見趙氏復盛,忌之益深。日夜搜趙氏之短,譖於景公。又厚結欒郤二家,以為己援。此事且擱過一邊,表白在後。齊頃公恥其兵敗,弔死問喪,恤民修政,志欲報仇。晉君臣恐齊侵伐,復失伯業,乃託言齊國恭順可嘉,使各國仍還其所侵之地。自此諸侯以晉無信義,漸漸離心。此是後話。
진(晉)나라 군사가 돌아와 제나라에 승리했음을 아뢰자 진경공(晉景公)이 안(鞍)에서의 승전을 가상히 여겨 극극 등에게 땅을 넓혀 주었다. 다시 상중하 삼군을 새로 만들어, 한궐을 신군(新軍)의 중군 원수로 삼고, 조괄(趙括)이 보좌하게 했다. 공삭(鞏朔)을 신 상군 원수로 삼고 한천(韓穿)이 보좌하게 했으며, 순추(荀騅)를 신 하군 원수로 삼고, 조전(趙旃)이 보좌하게 하여, 작위는 모두 경(卿)으로 했다. 이로부터 진(晉)나라는 육군(六軍)을 두게 되어 다시 패업을 일으켰다. 사구(司寇) 도안고(屠岸賈)가 조씨 집안이 다시 번성하는 것을 보고, 시기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그는 밤낮으로 조씨의 잘못한 점을 찾아내어 경공에게 참소하였다. 또한 그는 난씨(欒氏)와 극씨(郤氏) 두 집안과 친밀히 지내어 원군으로 삼았다. 이 일은 한편으로 밀어버리고 뒤에서 이야기하기로 하자. 제경공(齊頃公)은 안(鞍) 땅의 싸움에서 패패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죽은 자를 조문하고 백성들을 구제하며 정치를 개혁하여 진나라에 원수를 갚으려고 했다. 진(晉)나라 군주와 신하들은 제나라가 쳐들어와 패업을 다시 무너뜨릴까 두려워하여, 제나라가 공손하게 자기들을 섬기고 있다고 하면서, 각국으로 하여금 제나라로부터 찾은 땅을 다시 돌려주라고 했다. 이 일로 해서 제후들은 진(晉)나라가 신의가 없다고 생각하여 점점 다른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것은 뒷날의 이야기다.
且說,陳夏姬嫁連尹襄老,未及一年,襄老從軍於邲,夏姬遂與其子黑要烝淫。及襄老戰死,黑要戀夏姬之色,不往求屍,國人頗有議論。夏姬以為恥,欲借迎屍之名,謀歸鄭國。申公屈巫遂賂其左右,使傳語於夏姬曰:「申公相慕甚切,若夫人朝歸鄭國,申公晚即來聘矣。」又使人謂鄭襄公曰:「姬欲歸宗國,盍往迎之?」鄭襄公果然遣使來迎夏姬。楚莊王問於諸大夫曰:「鄭人迎夏姬何意?」屈巫獨對曰:「姬欲收葬襄老之屍,鄭人任其事,以為可得,故使姬往迎之耳。」莊王曰:「屍在晉,鄭安從得之?」
한편, 진(陳)나라 하희(夏姬)가 연윤(連尹) 양로(襄老)에게 시집을 간 지 1년이 되지 않아 양로가 필(邲)의 싸움에 출전하자, 하희는 마침내 양로의 아들 흑요(黑要)와 정을 통했다. 양로가 전사하자 흑요는 하희의 미색에 빠져 그 부친의 시신을 찾으러 가지도 않았다. 백성들이 자못 그 일을 두고 의논이 분분하자, 하희가 부끄럽게 여겨 양로의 시신을 찾는다는 핑계를 대고 정나라로 돌아가려고 했다. 신공(申公) 굴무(屈巫)가 그녀의 시녀를 매수하여 하희에게 말을 전하게 하기를, “신공의 사모하는 마음이 너무 절실하여 만약 부인이 정나라로 돌아가게 되면 신공도 곧 뒤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라고 했다. 또 사람을 시켜 정양공(鄭襄公)에게 말하기를, “군주의 동생 하희가 친정으로 돌아가고자 하니, 데려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했다. 정양공이 과연 사신을 초나라에 보내 하희를 데려가려고 했다. 초장왕이 여러 대부에게 묻기를, “정나라 사람이 하희를 데려가겠다고 하는 것은 무슨 뜻이오?” 하니, 굴무가 홀로 대답하기를, “하희가 양로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려고 정나라 사람이 그 일을 맡았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하희를 데려가라고 해야겠지요.” 초장왕이 말하기를, “양로의 시신은 진(晉)나라에 있는데 정나라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했다.
屈巫對曰:「荀罃者,荀首之愛子也。罃為楚囚,首念其子甚切。今首新佐中軍,而與鄭大夫皇戌素相交厚,其必借鄭皇戌居間,使講解於楚,而以王子及襄老之屍,交易荀罃。鄭君以邲之戰,懼晉行討,亦將借此以獻媚於晉,此真情無疑矣。」話猶未畢,夏姬入朝辭楚王,奏聞歸鄭之故。言下淚珠如雨,曰:「若不得屍,妾誓不反楚!」楚莊王憐而許之。夏姬方行,屈巫遂致書於鄭襄公,求聘夏姬為內子。襄公不知莊王及公子嬰齊欲娶前因,以屈巫方重用於楚,欲結為姻親,乃受其聘幣,楚人無知之者。
굴무가 대답하기를, “진나라 장수 순앵(荀罃)은 순수(荀首)가 애지중지하는 아들입니다. 순앵이 초나라의 포로가 되자 순수의 아들 생각은 매우 절실합니다. 지금 순수가 진나라 중군 보좌가 되었는데 정나라 대부 황술(皇戌)과는 원래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는 틀림없이 정나라의 황술에게 중간에서 초나라와 교섭하여 왕자(공자 곡신)와 양로의 시신을 순앵과 교환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을 것입니다. 정나라 군주는 필(邲)의 싸움 이후 진나라가 토벌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 역시 이 기회를 이용하여 진나라에 아첨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진실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했다. 말이 아직 끝나기도 전에 하희가 조정에 들어와 초장왕에게 작별 인사를 드리며 정나라로 돌아가려는 까닭을 말하고, 주옥같은 눈물을 비처럼 흘리며 말하기를, “만약 제가 지아비의 시신을 찾지 못하면 결코 초나라에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했다. 초장왕이 가엽게 여겨 정나라로 돌아가겠다는 청을 허락했다. 하희가 바야흐로 정나라로 떠나려고 하는데, 굴무가 정양공에게 편지를 써서, 하희를 자기의 부인으로 삼겠다고 했다. 정양공은 옛날에 초장왕과 공자 영제도 하희를 취하려 했던 사실을 알지 못하고, 굴무가 초나라에서 중용되고 있으므로 인척을 맺어 두려고 하여 굴무가 보낸 예물을 받아들였다. 초나라 사람 중에는 이 일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屈巫復使人至晉,通信於荀首,教他將二屍易荀罃於楚,以實其言。荀首致書皇戌,求為居間說合。莊王欲得其子公子穀臣之屍,乃歸荀罃於晉,晉亦以二屍畀楚。楚人信屈巫之言為實,不疑其有他故也。及晉師伐齊,齊頃公請救於楚,值楚新喪,未即發兵。後聞齊師大敗,國佐已及晉盟,楚共王曰:「齊之從晉,為楚失救之故,非齊志也。寡人當為齊伐衛魯,以雪鞍恥。誰能為寡人達此意於齊侯者?」申公屈巫應聲曰:「微臣願往!」共王曰:「卿此去經由鄭國,就便約鄭師以冬十月之望,在衛境取齊,即以此期告於齊侯可也。」
굴무가 다시 사람을 시켜 진나라에 가서 순수에게 편지를 전하여, 공자 곡신과 양로 두 사람의 시신을 초나라에 포로로 잡혀 있는 순앵과 교환하라고 했다. 순수가 황술에게 편지를 보내, 중간에서 성사되도록 도움을 청했다. 초장왕은 아들 공자 곡신의 시신을 찾아오고 싶어서 곧 순앵을 진나라로 돌려보냈다. 진나라도 역시 두 사람의 시신을 초나라에 보냈다. 초나라 사람들은 굴무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아무도 그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 후 진나라 군사가 제나라를 치자 제경공이 초나라에 구원병을 청했다. 그러나 초나라는 초장왕의 상을 당하여 구원병을 보낼 수가 없었다. 뒤에 제나라 군사가 안(鞍)의 싸움에서 크게 패하여 국좌(國佐)가 이미 진나라와 이미 맹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초공왕(楚共王)이 말하기를, “제나라가 진나라를 따르는 것은 우리가 제나라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제나라의 본뜻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과인이 마땅히 제나라를 위해 위나라와 노나라를 쳐서 안(鞍)에서 진 치욕을 갚도록 해야겠소. 누가 능히 과인의 이 뜻을 제나라 군주에게 전달하겠소?” 하니, 신공 굴무가 초공왕의 말을 받아서 말하기를, “소신이 가기를 원합니다.” 했다. 초공왕이 말하기를, “경은 이번 길에 정나라에 들러 정나라 군사들을 겨울 시월 보름에 위나라 경계에서 합류하도록 약속하고, 곧 이 기한을 제나라 군주에게 알려 주시오.” 했다.
屈巫領命歸家,託言往新邑收賦,先將家屬及財帛,裝載十餘車,陸續出城。自己乘軺車在後,星馳往鄭,致楚王師期之命。遂與夏姬在館舍成親,二人之樂可知矣!有詩為證:「佳人原是老妖精,到處偷情舊有名, 採戰一雙今作配,這迴鏖戰定輸贏。」夏姬枕畔謂屈巫曰:「此事曾稟知楚王否?」屈巫將莊王及公子嬰齊欲娶之事,訴說一遍:「下官為了夫人,費下許多心機,今日得諧魚水,生平願足!下官不敢回楚,明日與夫人別尋安身之處,偕老百年,豈不穩便?」夏姬曰:「原來如此。夫君既不回楚,那使齊之命,如何消繳?」
굴무가 초공왕의 명령을 받고 집에 돌아와서, 신읍(申邑)에 세금을 거두려고 간다고 말하고, 먼저 가속들과 재물을 십여 대의 수레에 실어서 계속하여 성 밖으로 내어 보냈다. 자기는 작은 수레를 타고 그 뒤를 따랐다. 밤낮으로 달려서 정나라에 도착하여 정나라 군주에게 군사를 출동시켜 시월 보름에 위나라 경계에서 초군과 합류하라는 초왕의 명령을 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굴무와 하희는 관사에서 성례를 치렀다. 두 사람의 즐거움을 알 만하였다. 시가 있어 증명하기를, “아름다운 여인은 원래 늙은 요정이었다. 이르는 곳마다 사통하여 그 이름이 이미 높았고, 방중술에 달통한 한 쌍이 드디어 짝을 이루었으니, 마침내 온 힘을 다해 기필코 승부가 나겠구나!” 했다. 하희가 베갯머리에서 굴무에게 말하기를, “이 일을 초왕에게 아뢰었습니까?” 하니, 굴무는 옛날 초장왕과 공자 영제가 하희를 취하려고 한 일을 상세히 이야기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부인을 얻기 위해서 많은 정신을 써오다가 오늘 다행히 고기가 물을 얻어 평생 원하는 바를 얻었소! 내가 감히 초나라로 돌아갈 수는 없소. 내일 부인과 같이 편안히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백년해로하는 것이 좋지 않겠소?” 했다. 하희가 말하기를, “원래 계획이 그러하여 당신이 초나라로 돌아가지 않으시면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초왕의 명을 수행하는 일은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했다.
屈巫曰:「我不往齊國去了。方今與楚抗衡,莫如晉國,我與汝適晉可也。」次早,修下表章一通,付與從人,寄復楚王,遂與夏姬同奔晉國。晉景公方以兵敗於楚為恥,聞屈巫之來,喜曰:「此天以此人賜我也!」即日拜為大夫,賜邢地為之采邑。屈巫乃去屈姓以巫為氏,名臣,至今人稱為申公巫臣。巫臣自此安居於晉。楚共王接得巫臣來表,拆而讀之,略云:「蒙鄭君以夏姬室臣,臣不肖,遂不能辭。恐君王見罪,暫寓晉國。使齊之事,望君王別遣良臣。死罪!死罪!」
굴무가 말하기를, “나는 제나라에 가지 않겠소! 지금 초나라와 서로 버틸 수 있는 나라는 진(晉)나라 만한 나라가 없소. 나는 부인과 진나라로 가겠소.” 했다. 다음 날 아침, 굴무는 표문 한 통을 써서 시종에게 주어 초공왕에게 가서 바치게 하고, 마침내 하희를 데리고 당진으로 달아났다. 진경공(晉景公)은 필(邲)에서 패한 일을 치욕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굴무가 망명해 왔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하늘이 이 사람을 나에게 보내준 것이다.” 하고, 그날로 굴무를 대부에 임명하고 형(邢) 땅을 하사하여 식읍으로 삼게 했다. 굴무는 굴(屈)성을 버리고 무씨(巫氏)로 바꾸고 이름은 신(臣)이라고 했다. 지금껏 사람들은 신공(申公)을 무신(巫臣)이라고 했다. 무신은 이때부터 진(晉)나라에서 편안히 살았다. 초공왕이 무신이 보낸 표문을 받아 열어 읽어보니 대략 이르기를, “정나라 군주가 하희를 저의 내실로 삼게 해준 은혜를 베풀어 불초 신은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주군께서 저의 죄를 물을까 두려워서 잠시 진(晉)나라에 가 살겠습니다.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일은 주군께서 따로 훌륭한 신하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했다.
共王見表大怒,召公子嬰齊公子側使觀之。公子側對曰:「楚晉世仇,今巫臣適晉,是反叛也,不可不討。」公子嬰齊復曰:「黑要烝母,是亦有罪,宜并討之。」共王從其言,乃使公子嬰齊領兵抄沒巫臣之族,使公子側領兵擒黑要而斬之。兩族家財,盡為二將分得享用。巫臣聞其家族被誅,乃遺書於二將,略云:「爾以貪讒事君,多殺不辜,余必使爾等疲於道路以死!」嬰齊等祕其書,不使聞於楚王。巫臣為晉畫策,請通好於吳國,因以車戰之法,教導吳人。留其子狐庸仕於吳為行人,使通晉吳之信,往來不絕。自此吳勢日強,兵力日盛,盡奪取楚東方之屬國。
초공왕은 표문을 보고 크게 노하여 공자 영제와 공자 측을 불러 굴무의 표문을 보여주었다. 공자 측이 말하기를, “초나라와 진(晉)나라는 대대로 원수지간입니다. 지금 무신이 진나라로 간 것은 반역입니다. 토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니, 공자 영제가 다시 말하기를, “흑요(黑要)가 계모와 사통한 것 역시 죄가 되니, 마땅히 함께 죄를 물어야 합니다.” 했다. 초공왕이 그 말을 따라서 공자 영제를 시켜 군사를 이끌고 무신의 족속들을 몰살시키고, 공자 측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흑요를 잡아서 참하도록 했다. 무신과 흑요 두 족속들의 재산과 노비들은 공자 영제와 공자 측이 나눠 가졌다. 무신은 그 가족이 주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편지를 써서 두 장군에게 보냈다. 그 편지에 이르기를, “그대들은 탐욕과 아첨으로 군주를 섬겨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였다. 내가 반드시 그대들을 도로에서 지쳐 죽게 만들 것이다!” 했다. 공자 영제 등은 그 편지를 비밀에 부치고 초공왕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무신은 진(晉)나라를 획책하여 오나라와 통호하라고 청하여 전차전의 방법을 오나라 사람에게 가르쳐 주게 했다. 그 아들 호용(狐庸)을 보내 행인(行人;외교 담당)으로 벼슬하게 하고 진나라와 오나라의 통신을 맡아서 사신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이로부터 오나라의 국세와 병력은 날로 강성해지고 초나라의 동방 속국을 모두 빼앗았다.
壽夢遂僭爵為王。楚邊境被其侵伐,無寧歲矣。後巫臣死,狐庸復屈姓,遂留仕吳,吳用為相國,任以國政。冬十月,楚王拜公子嬰齊為大將,同鄭師伐衛,殘破其郊。因移師侵魯,屯於楊橋之地。仲孫蔑請賂之。乃括國中良匠及織女針女各百人,獻於楚軍,請盟而退。晉亦遣使邀魯侯同伐鄭國,魯成公復從之。周定王二十年,鄭襄公堅薨,世子費嗣位,是為悼公。因與許國爭田界,許君訴於楚,楚共王為許君理直,使人責鄭。鄭悼公怒,乃棄楚從晉。是年,郤克以箭傷失於調養,左臂遂損,乃告老﹔旋卒。欒書代為中軍元帥。明年,楚公子嬰齊帥師伐鄭,欒書救之。
수몽(壽夢)이 마침내 왕이라고 참칭했다. 초나라는 변경을 침범당하여 편안한 해가 없었다. 뒤에 무신이 죽고 호용이 원래의 굴씨 성을 회복했다. 그는 마침내 오나라에 머물러 벼슬하였다. 오나라는 그를 상국으로 임명하여 국정을 맡겼다. 겨울 시월에 초공왕이 공자 영제를 대장으로 삼아 정나라 군사와 함께 위나라를 침공하여 성 밖까지 무찌르고, 그 연합군이 계속해서 노나라를 침범하여 양교(楊橋)에 진을 쳤다. 노나라의 대부 중손멸(仲孫蔑)은 뇌물을 바치자고 주장하여 나라 안에서 양장(良匠), 직녀(織女), 침녀(針女) 각 100명을 선발하여 초군에게 바치고 화의를 청하자 초군이 물러갔다. 진(晉)나라 또한 사신을 노나라에 보내 함께 정나라를 치자고 하니 노성공이 그에 따랐다. 주정왕(周定王) 20년(기원전 585년)에 정양공(鄭襄公) 견(堅)이 죽고 세자 비(費)가 자리를 이었다. 이가 정도공(鄭悼公)이다. 정나라가 허나라와 국경 문제로 다투어 허나라 군주가 초나라에 호소하니, 초공왕이 허나라 군주의 호소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사신을 보내 정나라를 책망했다. 정도공이 노하여 초나라를 버리고 진(晉)나라를 따랐다. 그해에 진(晉)나라 극극(郤克)이 안(鞍)의 싸움에서 화살에 맞아 난 상처가 치료에 실패하여 왼쪽 팔을 결국 잘라냈다. 이에 늙었다고 물러났다가 얼마 후 죽었다. 난서(欒書)가 대신하여 중군 원수가 되었다. 다음 해에 초나라의 공자 영제가 군사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치자 진나라는 난서를 보내 정나라를 구원했다.
時晉景公以齊鄭俱服,頗有矜慢之心,寵用屠岸賈,游獵飲酒,復如靈公之日。趙同趙括與其兄趙嬰齊不睦,誣以淫亂之事,逐之奔齊,景公不能禁止。時梁山無故自崩,壅塞河流,三日不通。景公使太史卜之。屠岸賈行賂於太史,使以「刑罰不中」為言。景公曰:「寡人未常過用刑罰,何為不中?」屠岸賈奏曰:「所謂刑罰不中者,失入失出,皆不中也。趙盾弒靈公於桃園,載在史冊,此不赦之罪,成公不加誅戮,且以國政任之。延及於今,逆臣子孫,布滿朝中,何以懲戒後人乎?且臣聞趙朔、原、屏等,自恃宗族眾盛,將謀叛逆。樓嬰欲行諫沮,被逐出奔。欒郤二家,畏趙氏之勢,隱忍不言。梁山之崩,天意欲主公聲靈公之冤,正趙氏之罪耳。」
그때 진경공(晉景公)은 제나라와 정나라가 모두 자기에게 복종하자 자못 자만심이 생겼다. 그는 도안고를 총애하여 중용하고 사냥하며 술을 마셨다. 다시 진영공(晉靈公)의 때와 같아졌다. 조동(趙同)과 조괄(趙括)은 그 형 조영제(趙嬰齊)와 화목하지 않았다. 조영제를 음란한 일로 모함하여 제나라로 쫓아냈는데, 진경공은 이를 금지할 수 없었다. 그때 양산(梁山)이 까닭 없이 저절로 무너져서 하수의 물길을 막아 3일 동안이나 물이 흐르지 못했다. 진경공이 태사를 시켜 점을 치게 하였다. 도안고가 태사에게 뇌물을 주어 ‘형벌이 공정하지 못하다’라는 말을 하게 했다. 진경공이 말하기를, “내가 아직 형벌을 과용한 적이 없는데 어찌 공정하지 못하다고 하는가?” 하니, 도안고가 아뢰기를, “형벌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말은 형벌을 내리지 않은 것도 모두 공정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옛날 조돈이 선군 진영공을 도원에서 시해한 일은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어서 이것은 용서받지 못할 죄이지만, 진성공이 주살하지 않고 오히려 국정을 맡겼습니다. 지금까지 이어서 역신의 자손들은 조정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어찌 그들의 죄를 물어 뒷사람을 징계하지 않으십니까? 또한 신이 들으니, 조삭(趙朔), 조원(趙原), 조병(趙屛) 등이 종족이 많고 번성함을 믿고 장차 반역을 모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누영(조영제)이 간하여 막으려고 했다가 쫓겨나 제나라로 달아났습니다. 또한 난(蘭)씨와 극(郤)씨 두 집안도 조씨의 세력을 두려워하여 참고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산이 무너진 것은 주공으로 하여금 조씨들에게 죄를 물어 영공의 원한을 풀어 주라는 하늘의 뜻입니다.”라고 했다.
景公自戰邲時,已惡同括專橫,遂惑其言。問於韓厥,厥對曰:「桃園之事,與趙盾何與?況趙氏自成季以來,世有大勳於晉。主公奈何聽細人之言,而疑功臣之後乎?」景公意未釋然。復問於欒書郤錡。二人先受岸賈之囑,含糊其詞,不肯替趙氏分辨。景公遂信岸賈之言,以為實然。乃書趙盾之罪於版,付岸賈曰:「汝好處分,勿驚國人!」韓厥知岸賈之謀,夜往下宮,報知趙朔,使預先逃遁。朔曰:「吾父抗先君之誅,遂受惡名。今岸賈奉有君命,必欲見殺,朔何敢避?但吾妻見有身孕,已在臨月,倘生女不必說了,天幸生男,尚可延趙氏之祀。此一點骨血,望將軍委曲保全,朔雖死猶生矣。」
진경공은 진나라와 초나라가 필에서 싸울 때 조동과 조괄이 제멋대로 행동한 사실을 불쾌하게 생각하여 마침내 도안고의 말을 따르려고 했다. 진경공이 한궐에게 물으니 한궐이 대답하기를, “도원의 일은 조돈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물며 조씨는 성계(成季 ; 조쇠)이래 대대로 진나라에 큰 공훈이 있습니다. 주공은 어찌하여 소인의 말을 듣고 공신의 후손을 의심하십니까?” 했다. 진경공은 심중이 석연치 않아서 다시 난서와 극기(郤錡)에게 물었다. 두 사람은 먼저 도안고의 부탁을 받고 말을 얼버무리며 조씨들을 위해 기꺼이 변명하지 않았다. 진경공은 마침내 도안고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곧 조돈의 죄를 목판에 적어 도안고에 주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처분을 잘 내려서 백성이 놀라지 않게 하라!” 했다. 한궐이 도안고의 음모를 알고 밤에 하궁(下宮)으로 가서 조삭(趙朔)에게 알리고 미리 달아나서 숨으라고 했다. 조삭이 말하기를, “저의 부친은 선군 진영공의 주살을 막으려다가 흉악한 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 도안고가 군주의 명을 받들어 나를 반드시 죽이려고 하는데 내가 어디로 피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내 처가 임신 중이라 산달이 가깝습니다. 만약 딸을 낳으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천행으로 아들을 낳으면 조씨의 제사를 잇게 될 것입니다. 이 일점혈육을 장군께서 맡아서 보전해 주시면 제가 비록 죽어도 오히려 산 것과 같겠습니다.” 했다.
韓厥泣曰:「厥受知於宣孟,以有今日,恩同父子。今日自愧力薄,不能斷賊之頭!所命之事,敢不力任?但賊臣蓄憤已久,一時發難,玉石俱焚,厥有力亦無用處。及今未發,何不將公主潛送公宮,脫此大難?後日公子長大,庶有報仇之日也。」朔曰:「謹受教!」二人灑淚而別。趙朔私與莊姬約:「生女當名曰文,若生男當名曰武,文人無用,武可報仇。」獨與門客程嬰言之。莊姬從後門上溫車,程嬰護送,逕入宮中,投其母成夫人去了。夫妻分別之苦,自不必說。 比及天明,岸賈自率甲士,圍了下宮。
한궐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나는 선맹(宣孟 ; 趙盾)에게 인정을 받아 오늘 장군의 자리에 있게 되었으니, 은혜가 부자간과 같습니다. 오늘 힘이 부족하여 간사한 도적의 목을 처단할 수 없음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부탁하신 일은 어찌 감히 힘써 맡지 않겠습니까? 다만 간사한 도적이 원한을 쌓은 지 이미 오래되어 일단 난을 일으키면 옥석을 함께 탈 것이니 내가 힘이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지금 난이 일어나기 전에, 어찌하여 공주를 궁궐로 몰래 보내어 이번의 대란을 벗어나게 하지 않으십니까? 후일 그 아이가 성장하게 되면 언젠가는 그 원수를 갚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했다. 조삭이 말하기를,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하고, 두 사람이 눈물을 뿌리며 헤어졌다. 조삭이 몰래 장희(莊姬)에게 약속하기를, “딸을 낳으면 이름을 문(文)이라 하고, 만약 아들을 낳거든 이름을 무(武)라고 지으시오. 문은 쓸모가 없고 무라면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오.” 했다. 홀로 문객 정영(程嬰)에게 이 일을 말했다. 장희는 후문에서 온거(溫車 ; 누워서 타는 수례)를 타고 정영의 호송을 받아 궁중에 들어가서 그 모친 성부인에게 몸을 의탁했다. 부부가 이별할 때의 괴로움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도안고가 무장 군사를 친히 인솔하고 하궁(下宮)을 포위했다.
將景公所書罪版,懸於大門,聲言:「奉命討逆。」遂將趙朔、趙同、趙括、趙旃各家老幼男女,盡行誅戮。旃子趙勝,時在邯鄲,獨免﹔後聞變,出奔於宋。當時殺得屍橫堂戶,血浸庭階。簡點人數,單單不見莊姬。岸賈曰:「公主不打緊,但聞懷妊將產,萬一生男,留下逆種,必生後患。」有人報說:「夜半有溫車入宮。」岸賈曰:「此必莊姬也。」即時來奏晉侯,言:「逆臣一門,俱已誅絕,只有公主走入宮中。伏乞主裁!」景公曰:「吾姑乃母夫人所愛,不可問也。」岸賈又奏曰:「公主懷妊將產,萬一生男,留下逆種,異日長大,必然報仇,復有桃園之事,主公不可不慮!」
도안고는 진경공이 조돈의 죄를 쓴 목판을 대문에다 걸고 소리치기를, “주군의 명을 받들어 역적을 토벌하러 왔다.” 하고, 마침내 조삭(趙朔), 조동(趙同), 조괄(趙括), 조전(趙旃) 등과 그 가속들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남김없이 죽였다. 조전의 아들 조승(趙勝)은 그때 한단에 있다가 홀로 참변을 면했다. 뒤에 참변을 듣고 송나라로 달아났다. 당시 살해된 시체가 집 안을 가득 메워 피가 뜰과 계단을 적셨다. 도안고가 살해한 사람 수를 헤아리고, 오직 장희가 보이지 않자, 말하기를, “공주의 시체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임신 중이라 들었는데, 장차 해산하여 사내아이를 낳는다면 역신의 종자를 남겨 놓게 되어 반드시 훗날의 화근이 될 것이다.” 했다. 어떤 사람이 보고하기를, “지난밤에 온거가 입궁했다고 합니다.” 하니, 도안고가 말하기를, “그것은 반드시 장희일 것이다.” 하고, 즉시 진경공에게 아뢰기를, “역신의 가문은 모두 주살되었습니다. 단지 장희공주가 궁중으로 몸을 피했을 뿐입니다. 주공께서 처리하시기 바랍니다.” 했다. 진경공이 말하기를, “내 고모는 모친께서 총애하시기 때문에 그 죄를 물을 수 없소!” 하니, 도안고가 말하기를, “공주가 임신 중이라 장차 해산하여 만일 사내아이를 낳는다면 역신의 종자가 살아남아 앞으로 장성하면 반드시 원수를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또다시 도원의 변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공께서는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했다.
景公曰:「生男則除之。」岸賈乃日夜使人探伺莊姬生產消息。數日後,莊姬果然生下一男。成夫人吩咐宮中,假說生女。屠岸賈不信,欲使家中乳媼入宮驗之。莊姬情慌,與其母成夫人商議,推說所生女已死。此時景公耽於淫樂,國事全託於岸賈,恣其所為。岸賈亦疑所生非女,且未死,乃親率女僕,遍索宮中。莊姬乃將孤兒置於褲中,對天祝告曰:「天若滅絕趙宗,兒當啼﹔若趙氏還有一脈之延,兒則無聲。」及女僕牽出莊姬,搜其宮,一無所見,褲中絕不聞啼號之聲。岸賈當時雖然出宮去了,心中到底狐疑。或言:「孤兒已寄出宮門去了。」 岸賈遂懸賞於門:「有人首告孤兒真信,與之千金﹔知情不言,與窩藏反賊一例,全家處斬。」又吩咐宮門上出入盤詰。
진경공이 말하기를, “사내아이를 낳으면 제거하시오.” 하니, 도안고가 밤낮으로 사람을 시켜 장희의 해산 소식을 탐문하게 했다. 며칠 후 장희가 과연 한 사내아이를 낳았다. 성부인(成夫人)이 궁중에 분부하여 여아를 낳았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도안고가 믿지 않고 자기 집안의 유모를 궁궐로 들여보내 알아보게 했다. 장희가 당황하여 그 모친 성부인과 상의하여 낳은 여아가 이미 죽었다고 말하게 했다. 그때 진경공은 음탕한 풍악에 빠져 나라 일은 모두 도안고에게 맡겨 제 맘대로 처리했다. 도안고는 또한 태어난 아이가 여아가 아니고 또한 죽지도 않았다고 의심하여, 직접 여종을 데리고 궁중을 두루 수색했다. 장희는 갓난아이를 속바지 속에 감추고 하늘에 빌기를, “하늘이 만약 조씨 종족을 끓으려고 한다면 아이를 울게 하시고, 만약 조씨에게 다시 맥을 잇게 하려거든 울지 않게 해 주십시오!” 했다. 도안고의 여종들이 들어와서 장희를 끌어내고 궁 안을 뒤졌으나 갓난아이는 발견되지 않았다. 장희의 속바지 속에서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도안고는 그때 비록 궁궐 밖으로 물러갔지만, 마음속으로는 깊이 의심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갓난애는 이미 궁 밖으로 내보냈을 것이다.” 했다. 도안고는 마침내 궁궐의 대문에 상금을 걸고 이르기를, “조씨의 갓난아이를 신고하는 사람에게 천금을 주겠다. 알고도 말하지 않는 자와 숨기는 자는 반역 죄인과 같이 취급하여 전 가족을 처단할 것이다.” 하고, 또한 궁궐 문지기에게 출입하는 사람을 철저히 검색하라고 분부했다.
卻說,趙盾有兩個心腹門客,一個是公孫杵臼,一個是程嬰。先前聞屠岸賈圍了下宮,公孫杵臼約程嬰同赴其難。嬰曰:「彼假託君命,佈詞討賊,我等與之俱死,何益於趙氏?」杵臼曰:「明知無益。但恩主有難,不敢逃死耳!」嬰曰:「姬氏有孕,若男也,吾與爾共奉之﹔不幸生女,死猶未晚。」及聞莊姬生女,杵臼泣曰:「天果絕趙乎!」程嬰曰:「未可信也,吾當察之。」乃厚賂宮人,使通信於莊姬。莊姬知程嬰忠義,密書一「武」字遞出。程嬰私喜曰:「公主果生男矣!」
한편, 조돈이 살아 있을 때 두 사람의 심복 문객이 있었다. 한 사람은 공손저구(公孫杵臼)이고, 한 사람은 정영(程嬰)이었다. 전에 도안고가 하궁(下宮)을 포위했다는 소식을 먼저 들은 공손저구는 정영과 함께 조씨의 조난에 동참하자고 했다. 정영이 말하기를, “도안고가 군주의 명령을 빙자하여 역적을 토벌한다고 퍼뜨리는데, 우리가 그들과 같이 죽으면 조씨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하니, 공손저구가 말하기를, “조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알지만, 다만 은혜를 입은 주인이 어려움에 빠졌는데 감히 죽음에서 도망갈 수는 없다!” 했다. 정영이 말하기를, “장희가 임신 중인데 만일 아들을 낳으면 나와 네가 같이 모셔야 하고, 불행히 딸을 낳으면 그때 죽어도 늦지 않다.” 했다. 얼마 후 장희가 여아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자, 공손저구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하늘이 조씨의 명맥을 끊었구나!” 하니, 정영이 말하기를, “믿을 수 없으니 내가 마땅히 살펴봐야겠네.” 하고, 궁인에게 뇌물을 후하게 주고 장희에게 연락을 취했다. 장희가 정영의 충의를 알고 밀서에 ‘무(武)’라는 한 글자를 써서 정영에게 보냈다. 정영이 가만히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공주께서 과연 아들을 낳으셨구나!” 했다.
及岸賈搜索宮中不得,程嬰謂杵臼曰:「趙氏孤在宮中,索之不得,此天幸也!但可瞞過一時耳。後日事洩,屠賊又將搜索。必須用計,偷出宮門,藏於遠地,方保無虞。」杵臼沉吟了半日,問嬰曰:「立孤與死難,二者孰難?」嬰曰:「死易耳,立孤難也。」杵臼曰:「子任其難,我任其易,何如?」嬰曰:「計將安出?」杵臼曰:「誠得他人嬰兒詐稱趙孤,吾抱往首陽山中,汝當出首,說孤兒藏處。屠賊得偽孤,則真孤可免矣。」程嬰曰:「嬰兒易得也。必須竊得真孤出宮,方可保全。」
그때 도안고가 궁중을 수색했으나 아이를 찾지 못했다. 정영이 공손저구에게 말하기를, “조씨의 갓난아이가 궁중 안에 있으나 도안고가 찾지 못했다니 이는 천행이네. 다만 속이는 일은 일시적일 뿐이네. 후일에 사실이 드러나면 도안고가 다시 궁중을 수색할 것이니, 반드시 계략을 써서 궁중에서 몰래 빼내어 먼 곳에 피신시켜야 걱정 없이 보전할 수 있네.” 하니, 공손저구가 반나절을 깊이 생각한 후에 정영에게 묻기를, “고아를 길러 원수를 갚게 하는 것과 지금 죽는 일 중, 어느 쪽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하니, 정영이 말하기를, “지금 죽는 것은 쉽고, 고아를 키우는 일은 어렵네.” 했다. 공손저구가 말하기를, “자네는 어려운 일을 맡고 나는 쉬운 일을 맡겠네. 어떤가?” 하니, 정영이 말하기를, “무슨 좋은 계책이라도 있는가?” 했다. 공손저구가 말하기를, “다른 사람의 갓난아이를 구하여 조씨고아라고 속여서 내가 그 아이를 안고 수양산(首陽山) 속으로 들어가 숨어 있으면, 자네는 도안고에게 가서 나와 갓난아이가 숨어 있는 곳을 말하게! 도안고 도적놈이 가짜 아이를 얻으면, 진짜 아이는 화를 면할 것이네.” 했다. 정영이 말하기를, “갓난아이는 쉽게 구할 수 있네. 반드시 진짜 조씨고아를 궁궐 밖으로 빼내어야 비로소 만전을 기할 수 있네.” 했다.
杵臼曰:「諸將中惟韓厥受趙氏恩最深,可以竊孤之事託之。」程嬰曰:「吾新生一兒,與孤兒誕期相近,可以代之。然子既有藏孤之罪,必當并誅,子先我而死,我心何忍?」因泣下不止。杵臼怒曰:「此大事,亦美事,何以泣為?」嬰乃收淚而去。夜半,抱其子付於杵臼之手。即往見韓厥,先以「武」字示之,然後言及杵臼之謀。韓厥曰:「姬氏方有疾,命我求醫。汝若哄得屠賊親往首陽山,吾自有出孤之計。」程嬰乃揚言於眾曰:「屠司寇欲得趙孤乎,曷為索之宮中?」屠氏門客聞之,問曰:「汝知趙氏孤所在乎?」嬰曰:「果與我千金,當告汝。」
공손저구가 말하기를, “여러 장군 중에서 오직 한궐이 조씨의 은혜를 가장 많이 입었다고 할 수 있네. 궁중에서 갓난아이를 빼내 오는 일을 부탁할 수 있을 것이네.” 하니, 정영이 말하기를, “나에게 갓 낳은 아이가 하나 있는데 조씨고아와 태어난 날이 비슷하네. 그 애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네. 그러나 그대는 조씨고아를 감춘 죄로 반드시 아이와 함께 죽임을 당할 것이네! 자네가 나보다 먼저 죽으면 내 마음이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하고, 울기를 그치지 않았다, 공손저구가 화를 내며 말하기를, “이것은 큰일이고, 또한 아름다운 일이거늘 어찌하여 눈물을 흘리는가?” 하니, 정영이 눈물을 거두고 돌아갔다. 밤중에 그의 아들을 안고 와서 공손저구의 손에 넘겼다. 즉시 가서 한궐을 만나 먼저 ‘무(武)’자라고 쓴 밀서를 보여주고 그런 뒤에 공손저구의 계책을 말했다. 한궐이 말하기를, “장희가 방금 병이 나서 나에게 의원을 구해 달라고 했소. 그대가 만약 도안고 도적놈을 떠들썩하게 속여서 수양산으로 데려가면, 나는 그사이에 조씨고아를 궁궐에서 빼내어 오겠소.” 했다. 정영이 이에 여러 사람 앞에서 큰 목소리로 말하기를, “도안고 사구(司寇)께서 조씨고아를 찾고 있는데 어찌하여 궁중만을 수색하는가?” 하니, 도안고의 문객이 그 말을 듣고 묻기를, “그대는 조씨고아가 있는 곳을 아시오?” 했다. 정영이 말하기를, “나에게 천금을 주면 당신에게 알려 주겠소.” 했다.
門客引見岸賈,岸賈叩其姓氏。對曰:「程氏名嬰,與公孫杵臼同事趙氏。公主生下孤兒,即遣婦人抱出宮門,託吾兩人藏匿。嬰恐日後事露,有人出首,彼獲千金之賞,我受全家之戮,是以告之。」岸賈曰:「孤在何處?」嬰曰:「請屏左右,乃敢言。」岸賈即命左右退避。嬰告曰:「在首陽山深處,急往可得,不久當奔秦國矣。然須大夫自往。他人多與趙氏有舊,勿輕托也。」岸賈曰:「汝但隨吾往,實則重賞,虛則死罪。」嬰曰:「吾亦自山中來此,腹餒甚,幸賜一飯。」岸賈與之酒食。嬰食畢,又催岸賈速行。
문객이 정영을 도안고에게 인도하니, 도안고가 그 성씨를 물었다. 정영이 대답하기를, “성은 정(程)이고, 이름은 영(嬰)입니다. 공손저구와 함께 조씨를 섬겼습니다. 공주가 고아를 낳아서 즉시 부인을 보내 아이를 안아 궁문 밖으로 내보내서 우리 두 사람에게 주어 감추도록 했습니다. 제가 후에 이 일이 탄로 나서 다른 사람이 고발하면 그가 천금을 가질 것이고 나는 전 가족이 죽임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이렇게 고합니다.” 했다. 도안고가 말하기를, “고아는 어디에 있는가?” 하니, 정영이 말하기를, “좌우를 물리쳐 주시면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했다. 도안고가 즉시 좌우의 사람들을 물러가게 명했다. 정영이 고하기를, “수양산 깊은 곳에 있습니다. 급히 가면 잡을 수 있습니다. 머지않아 진(秦)나라로 달아날 것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대부께서 스스로 가셔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조씨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함부로 맡길 수 없습니다.” 하니, 도안고가 말하기를, “그대는 다만 나를 따라오기만 하면 되네. 사실이면 무거운 상을 줄 것이고, 거짓이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네.” 했다. 정영이 말하기를, “제가 산중에서 오느라고 배가 매우 고픕니다. 식사 한 끼를 내려 주십시오.” 하니, 도안고가 그에게 술과 음식을 주었다. 정영이 식사를 끝내고 나서 도안고를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岸賈自率家甲三千,使程嬰前導,徑往首陽山。紆回數里,路極幽僻,見臨溪有草莊數間,柴門雙掩。嬰指曰:「此即杵臼孤兒處也。」嬰先叩門,杵臼出迎,見甲士甚眾,為倉皇走匿之狀。嬰喝曰:「汝勿走,司寇已知孤兒在此,親自來取,速速獻出可也。」言未畢,甲士縛杵臼來見岸賈。岸賈問:「孤兒何在?」杵臼賴曰:「無有。」岸賈命搜其家,見壁室有鎖甚固。甲士去鎖,入其室,室頗暗。仿佛竹床之上,聞有小兒驚啼之聲。抱之以出,錦繃繡褓,儼如貴家兒。杵臼一見,即欲奪之,被縛不得前。
도안고가 직접 가병 3천 명을 인솔하여 정영을 앞세우고 지름길로 수양산에 들어갔다. 몇 리를 구부러지고 돌며 길이 아주 그윽하고 외진 곳 개울 옆에 몇 칸 초가가 있는데 사립문이 닫혀 있었다. 정영이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저 집이 공손저구와 고아가 사는 곳입니다.” 하고, 정영이 먼저 문을 두드리자 공손저구가 나와 맞았다. 무사가 많은 것을 보고, 놀라서 급히 달아나려고 했다. 정영이 외치기를, “너는 달아나지 말라. 사구께서 이미 조씨고아가 여기 있는 것을 알고 친히 오셨다. 빨리 데려와서 바치도록 해라.” 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사들이 공손저구를 결박하여 도안고 앞으로 끌고 왔다. 도안고가 묻기를, “고아는 어디 있는가?” 하니, 공손저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하기를, “없다!” 했다. 도안고가 집안을 수색하라고 명령하여, 무사들이 벽실에 자물쇠를 채운 것을 보았다. 무사가 자물쇠를 부수고 벽실 안으로 들어가니, 벽실 안은 매우 어두웠다. 대나무 침상 위에 무엇인가가 있고, 갓난애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갓난아이를 안아서 밖으로 나오니, 수놓은 비단 포대기에 싸여서 귀한 집 아이가 분명했다. 공손저구가 보고 어린아이를 뺏으려고 했으나 결박을 당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乃大罵曰:「小人哉,程嬰也!昔下宮之難,我約汝同死,汝說:『公主有孕,若死,誰作保孤之人!』今公主將孤兒付我二人,匿於此山,汝與我同謀做事﹔卻又貪了千金之賞,私行出首。我死不足惜,何以報趙宣孟之恩乎?」千小人,萬小人,罵一個不住。程嬰羞慙滿面,謂岸賈曰:「何不殺之?」岸賈喝令:「將公孫杵臼斬首!」自取孤兒擲之於地,一聲啼哭,化為肉餅,哀哉!髯翁有詩云:「一線宮中趙氏危,寧將血胤代孤兒。屠奸縱有彌天網,誰料公孫已售欺?」
이에 큰소리로 꾸짖기를, “이 소인배 정영아! 옛날 하궁에서 조씨가 변란을 당할 때 나와 네가 함께 죽기로 약속하고, 네가 말하기를, ‘공주가 잉태했으니 우리가 만일 죽으면 누가 고아를 돌보겠느냐?’ 라고 하더니, 지금 공주가 우리 두 사람에게 아이를 맡겨 이 산중에 숨은 것은 너와 내가 같이 상의하여 행한 일인데, 천금의 상이 탐이 나서, 몰래 가서 고발했느냐? 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지만 무엇으로 조선맹(조돈)의 은혜를 갚을 것이냐?” 하고, 천번 만번 소인배라고 욕하여 마지않았다. 정영이 얼굴 가득히 부끄러운 기색을 띠고 도안고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저놈을 죽이지 않으십니까?” 하니, 도안고가 소리쳐 명령하기를, “공손저구를 끌어다 참수하라!” 하고, 고아를 땅바닥에 던지니 갓난아이가 울음을 터트렸고, 무사들이 저민 고기를 만들었다. 슬프구나! 염옹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조씨의 일점혈육이 궁중 안에서 위험에 처하자, 차라리 자기의 혈육으로 조씨고아를 대신했다. 간신 도안고가 비록 천지에 경계망을 폈으나, 누가 알았으랴? 공손저구가 이미 속임수를 썼음을,”이라고 했다.
屠岸賈起身往首陽山擒捉孤兒,城中那一處不傳遍,也有替屠家歡喜的,也有替趙家嘆息的,那宮門盤詰,就怠慢了。韓厥卻教心腹門客,假作草澤醫人,入宮看病,將程嬰所傳「武」字,粘於藥囊之上。莊姬看見,已會其意。診脈已畢,講幾句胎前產後的套語。莊姬見左右宮人,俱是心腹,即以孤兒裹置藥囊之中。那孩子啼哭起來,莊姬手撫藥囊祝曰:「趙武,趙武!我一門百口冤仇,在你一點血泡身上,出宮之時,切莫啼哭!」吩咐已畢,孤兒啼聲頓止,走出宮門,亦無人盤問。韓厥得了孤兒,如獲至寶,藏於深室,使乳婦育之,雖家人亦無知其事者。
도안고가 직접 수양산에 가서 조씨고아를 잡아 죽인 일은 성중 백성들 간에 두루 퍼졌다. 도안고의 집안사람들은 기뻐하였고, 조씨 일파는 한탄했다. 궁문 출입의 검사도 해이해졌다. 한궐이 심복 문객을 시켜 민간 의원으로 꾸며 장희를 진찰하러 간다고 궁궐로 들어가서, 정영이 전한 ‘무(武)’자를 약주머니에 붙여, 장희가 보고 그 뜻을 알게 했다. 한궐의 심복이 진맥을 끝내고 산후에 몸조리하는 처방을 몇 마디 알려 주자, 장희는 좌우를 살펴보아 모두 심복인 것을 확인하고, 즉시 갓난아이를 싸서 약주머니에 넣었다. 아이가 울기 시작하자 장희가 약주머니를 쓰다듬으며 빌기를, “조무야! 조무야! 우리 조씨 가문의 원수를 갚는 것이 일점 혈육인 너에게 달려 있다. 궁 밖에 나갈 때 절대 울면 안 된다!” 하고 당부를 마치니, 고아는 울음을 뚝 그쳤다. 의원이 궁문을 나갈 때 아무도 검문하지 않았다. 한궐이 조씨고아를 구하여 마치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깊은 밀실에 감추고 유모를 시켜 돌보게 했으나 집안 식구들은 아무도 그 일을 몰랐다.
屠岸賈回府,將千金賞賜程嬰。程嬰辭不願賞。岸賈曰:「汝原為邀賞出首,如何又辭?」程嬰曰:「小人為趙氏門客已久,今殺孤兒以自脫,已屬非義,況敢利多金乎?倘念小人微勞,願以此金收葬趙氏一門之屍,亦表小人門下之情於萬一也。」岸賈大喜曰:「子真信義之士也!趙氏遺屍,聽汝收取不禁。即以此金為汝營葬之資。」程嬰乃拜而受之。盡收各家骸骨,棺木盛殮,分別葬於趙盾墓側。事畢,復往謝岸賈。岸賈欲留用之,嬰流涕言曰:「小人一時貪生怕死,作此不義之事,無面目復見晉人,從此將餬口遠方矣。」程嬰辭了岸賈,往見韓厥。厥將乳婦及孤兒交付程嬰。
도안고가 자기의 부중에 돌아와서 정영에게 천금의 상을 주려고 했다. 정영이 사양하며 상 받기를 원치 않았다. 도안고가 말하기를, “그대는 원래 상을 바라고 신고를 했는데, 어찌하여 사양하는가?” 하니, 정영이 말하기를, “소인은 조씨의 문객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고아를 죽이고 내 목숨을 건진 행위는 의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물며 감히 많은 상금을 바라겠습니까? 만일 소인의 조그만 공로를 생각해 주신다면, 원컨대 그 상금으로 조씨 가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게 해주신다면, 또한 소인이 조씨 문하에 있었던 정을 만분의 일이나마 갚을 수 있겠습니다.” 했다. 도안고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그대는 진실로 신의가 있는 선비로다. 조씨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지내 주는 일을 금하지 않겠다. 이 상금으로 장례를 치르는 데 써라.” 했다. 정영이 인사를 올리고 상금을 받았다. 정영은 조씨 집안의 해골을 수습하여 염하여 관에 넣고 조돈의 묘 옆에 분별하여 매장했다. 일을 끝내자, 다시 도안고에게 가서 감사하니, 도안고가 정영을 머물러 두고쓰고자 했으나 정영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소인은 한때 삶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이런 불의한 일을 했습니다. 무슨 면목으로 진나라 사람들을 보겠습니까? 이제 저는 먼 곳에 가서 입에 풀칠이나 하며 살겠습니다.” 했다. 정영이 도안고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한궐을 찾아갔다. 한궐이 유모와 고아를 정영에게 주었다.
嬰撫為己子,攜之潛入盂山藏匿。後人因名其山日藏山,以藏孤得名也。後三年,晉景公游於新田,見其土沃水甘,因遷其國,謂之新絳。以故都為故絳。百官朝賀,景公設宴於內宮,款待群臣。日色過晡,左右將治燭。忽然怪風一陣,卷入堂中,寒氣逼人,在座者無不驚顫。須臾,風過,景公獨見一蓬頭大鬼,身長丈餘,披髮及地,自戶外而入,攘臂大罵曰:「天乎!我子孫何罪,而汝殺之?我已訴聞於上帝,來取汝命!」言畢,將銅錘來打景公。景公大叫:「群臣救我!」拔佩劍欲斬其鬼,誤劈自己之指。群臣不知為何,慌忙搶劍。景公口吐鮮血,悶倒在地,不省人事。
정영은 조무를 자기 아들로 삼아 품에 안고 우산(盂山)에 들어가 숨었다. 뒷날의 사람들이 그 산 이름을 장산(藏山)으로 불렀다. 조씨고아가 숨었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 3년 후에, 진경공이 신전(新田)에서 사냥하다가 그 땅이 기름지고 물맛이 단 것을 보고, 도읍(都邑)을 옮기고 신강(新絳)이라고 불렀다. 옛날의 도읍은 고강(故絳)이라고 했다. 벼슬아치들이 축하하니, 진경공은 내궁에 잔치를 열어 여러 신하를 대접했다. 해가 저물자 좌우에게 촛불을 밝히라고 했다.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어나더니 집 안을 휩쓸어 사람들이 찬 기운을 느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놀라 떨었다. 잠시 후 그 바람이 지나가자, 진경공이 혼자 보았는데, 머리를 산발한 큰 귀신이 키는 한 길이 넘고 긴 머리카락을 땅에 끌며 문밖에서 안으로 들어와 팔을 걷어올리고 욕하기를, “하늘이여! 우리 자손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네가 모두 죽였느냐? 내가 이미 상제에게 호소하여 너의 목숨을 취하러 왔다.” 했다. 귀신이 말을 마치고 구리 망치를 들어 진경공을 쳤다. 진경공이 크게 외치기를, “여러 신하는 나를 구하라!” 하고, 칼을 뽑아 귀신을 베려고 했으나 잘못하여 자기 손가락을 잘랐다. 여러 신하가 왜 그러는지 모르고 황망히 칼을 빼앗았다. 진경공이 입에서 선혈을 토하더니 땅바닥에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었다.
未知性命如何,且看下回分解。
생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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