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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나무. 닥나무 잎은 한줄기라도 그 형태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닥나무 재배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은 『고려사』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는 사찰과 유가에서 서적 출판(대장경, 『삼국사기』 등)이 성행했기 때문에 대량으로 종이가 소요되었다. 『고려사』에는 인종 23년(1145)에서 명종 16년(1186)에 종이 생산에 필요한 닥나무를 전국에 재배할 것을 명했다고 적혀 있다.
조선 시대에도 제지업을 매우 중요시하여 많은 지방에 닥나무 밭을 만들게 하고 닥나무 재배를 시켰다. 또 중국에 제지공을 파견하여 제지술을 배워오도록 하여 국내 제지술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하였다. 조선 시대 후기에 와서는 종이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나라에서는 사찰에서도 종이를 만들어서 바치도록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또 요구되는 규격과 질을 보장할 수 없었으므로 태종15년(1415)에 서울에 제지 공장이라고 볼 수 있는 조지소(造紙所)를 설치한다. 『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이 조지소에 대해 적혀있다.
‘조지소는 창의문 밖에 있다. 표전지, 자문지 및 여러 가지 종이를 만드는 일을 맡는다. 사지(司紙)1명, 종6품 별제(別提) 4명을 두었다. 설립 당시의 기록을 보면 지소에는 2명의 제조(提調)가 행정적인 책임과 기술적인 책임을 맡아보도록 배치되었고 사지, 즉 제지 기술책임자 1명과 별제라는 담당 관리 4명, 85명의 지장(紙匠), 즉 제지 기술공과 95명의 잡역부가 배치된 200명 가까운 인원을 가진 큰 공장이었다. 또 지방에는 모두 698명의 지장이 각 도에 소속되어 있었으니까 이것 또한 큰 인력이었다.’
15세기 초에 종이를 만드는 일에 거의 1천 명이 종사했다는 사실은 조선이 동시대에는 세계적인 종이 생산국이라는 것을 뜻한다. 조선은 제지 기술공들이 법적으로 우대받도록 규정하고 그들에게 생활을 보장해주는 특권도 부여했다.
국보 제196호 신라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755년경)의 종이를 조사한 오오가와란 일본 학자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종이는 매우 희고 광택이 있으며 표면은 평활하고 강한 광택이 있다. 티라든가 풀어지지 않은 섬유 덩어리도 적은 아름다운 종이이다. 얇은 종이임에도 불구하고 먹이 번지지 않는다. 비추어보면 전체적으로 조화 있으며 만지면 파닥파닥하며 치밀하고 밀도가 높은 종이로 보여진다. 종이의 색이 매우 하얀 것을 보면 하얀 종이를 만들기 위해 꽤 노력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종이의 밀도는 0.64g/cm3으로 보통 닥나무 종이 2배 정도의 밀도를 보이며 표면에 먹이 스며드는 것을 관찰하면 종이 표면에 먹의 침투를 막기 위한 무엇인가를 바르고, 다듬이질, 문지름 등의 가공을 했다고 생각된다. 이 종이는 원료의 닥 껍질에서 최종 가공까지 일관되게 정성 들여 만든 것으로 보이며 제지 기술의 뛰어남을 볼 때 고대 한국에서 만든 종이로 보인다.'
한지 제조의 정확한 유래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록이 없지만 상술한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에는 한지 제작 과정을 말미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절에서 쓸 종이를 마련하기 위해 닥나무를 재배할 때는 그 나무 뿌리에 향수를 뿌리며 정결하게 가꾸고, 그것이 여물면 껍질을 벗겨 삶아 찧어 종이를 만든다.'
바로 닥나무의 껍질로 한지를 만들었음을 알려주는 단서이다. 배도식은 『한국 민속의 현장』에 다음과 같은 설화를 수록하였다.
'신라시대에 경남 의령군 봉수면 서암리 뒷산 국사봉에 대동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설씨 성을 가진 주지승이 살고 있었다. 이 절 주변에는 닥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 하루는 이 주지승이 닥나무를 꺾어 지팡이 삼아 가지고 다니다가 절 앞의 반석에 앉아 지팡이를 두들겼다. 그리고 다음날 와보았더니, 닥나무의 껍질이 반석에 말라붙어 얇은 막처럼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를 본 주지승은 일부러 닥나무의 껍질을 벗겨서 돌로 짓이겨 반석에 늘어놓고 다음날 다시 와보았다. 그가 예상한 대로 이 껍질 역시 엉겨 붙어서 말라 있었다. 여기서 착상한 주지승은 이를 발전시켜 한지를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한지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닥나무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자랄 수 있다. 닥나무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관목으로 학명은 브루소네티아 카찌노키이다. 크기는 3미터 정도이며 밭 가장자리, 길가, 둑 등 다른 나무를 심기 어려운 곳에서도 잘 자라서 비탈에 흙의 무너짐을 막기 위하여 심기도 했다.
낙엽성 관목인 닥나무는 여러 해 동안 매년 줄기를 잘라내도 계속해 새 줄기를 만들 수 있는 나무이다. 어미 나무의 뿌리에서 많이 생겨나는 맹아를 포기나누기나 삽목으로 번식시킬 수 있으며, 추위에 비교적 강하지만 햇볕이 잘 들고 부식질이 많은 곳에서 잘 자란다. 특히 직물의 원료로 한 번 소요되고 난 후 버려야 하는 일년생 풀인 마보다는 재료 공급 면에서도 뛰어나다. 한지의 원료로는 보통 3년이 지난 줄기를 사용하는데, 옮겨 심은 후 5~7년 지난 줄기에서 가장 많은 섬유를 얻을 수 있다.
〈천년의 비밀〉
한지가 천 년을 견뎌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실> 정동찬 실장의 「전통 과학 기술 조사 연구」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닥나무를 잿물에 넣어 삶아낸 섬유나 그 섬유소(C5H10O5)의 굵기가 균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산 한지의 경우 중국 닥을 사용하여 만든 한지나 중국 수입 화선지, 일본 화지에 비하여 섬유의 폭이 매우 작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한지의 경우 다른 나라의 종이와는 달리 섬유의 조직 방향이 서로 90도로 교차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전통 한지는 매우 질긴 성질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종이에 방향성이 존재하는 경우 종이가 잘 찢어지는 방향은 섬유의 방향과 같으므로 종이의 강도는 방향성이 없을 때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둘째는 독특한 불순물 제거 방법이다. 제지 과정에 불순물의 제거는 질 좋은 종이의 생산에 필수적인 과정이다. 제지 원료에 들어있는 전분, 단백질, 지방, 탄닌 같은 불순물을 충분히 제거하지 않으면 세월이 흐름에 따라 종이가 변색되거나 품질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한지는 화학 펄프에서 사용하는 산성 화학 약품을 쓰지 않기 때문에 중성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알칼리성에 비교적 강한 섬유의 특성을 충분히 살려 알칼리성 용재인 나뭇재나 석회를 불순물 제거제로 사용했다. 그래서 한지는 산성을 띤 펄프지처럼 화학 반응을 쉽게 하지 않는 중성지의 성질을 갖고 있다. 신문지나 오래된 교과서가 누렇게 변색되는 이유는 사용된 펄프지에 약간의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불순물 중에는 화학식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C18H24O115과 C40H45O18로 추정되는 고분자물질 리그닌(lignin)이란 성분이 있는데 셀룰로우스가 화학적으로 안정한 반면 리그닌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대기 중 산소나 수분, 자외선과 쉽게 반응해 퀴논(quinone)과 같은 물질로 변하면서 색도 노랗게 바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불순물을 가진 종이를 산성지(ph4-5.5)라고 부르는데 변색을 막으려면 책이 자외선이나 수분에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지의 지질을 향상시킨 셋째 요인은 식물성 풀에서 찾을 수 있다. 한지는 섬유질을 균등하게 분산시키기 위해서 황촉규(닥풀)이라는 독특한 식물성 풀을 사용했다. 황촉규는 아욱과에 속하는 1년생 초본식물로 뿌리에 점액이 많아 종이를 만들 때 지통에 섬유가 빨리 가라앉지 않고, 물 속에 고루 퍼지게 하여 종이를 뜰 때 섬유의 접착이 잘 되도록 한다. 그래서 닥풀은 종이의 가도를 증가시키며 얇은 종이를 만드는데 유리하고 순간적인 산화가 빨라 겹친 젖은 종이가 떨어지기 쉽게 하므로 낱장으로 종이를 말리는 데도 안성맞춤이었다.
한지는 닥풀의 뿌리에서 추출된 점액을 사용함으로써 섬유의 배열이 양호해졌고, 강도가 증가했으며 광택도 좋아졌다. 또 닥풀의 사용은 종이를 얇게 뜰 수도 있게 하였고 습지의 분지를 용이하게 해주었다.
세종 15년에 편찬된 『향약집성방』 85권에, 종이 뜰 때 점제로 사용하는 닥풀에 관한 언급이 나오고 있어, 1433년 이전에 이미 닥풀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대개 펄프만을 사용해 만든 종이는 흡수성이 좋아 필기나 인쇄 시 잉크가 번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종이를 만들 때 펄프에 내수성이 있는 콜로이드 물질을 혼합해 섬유의 표면이나 섬유 사이의 틈을 메우게 되는데(사이징) 닥풀이 이러한 작용을 한다.
넷째는 표백 방법이다. 순백색의 우량 종이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잡색을 띤 비섬유 물질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을 표백이라고 하며 전통 한지는 천연 표백제를 사용했다. 냇물 표백법이 그 대표적인 방법으로 옛날부터 한지를 생산하는 곳에는 맑은 물이 항상 필요했다. 천연 표백법은 섬유를 손상시키지 않고 섬유 특유의 광택을 유지하면서 그 강도를 충분히 발휘시킬 수 있게 만들어준다.
주로 표백 단계에서 제거되는 성분은 냉수, 온수, 알코올-벤젠 및 당류와 분자량이 적은 탄수화물 등이다. 이중에서 당류 성분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당류가 많으면 종이가 햇빛에 노출되었을 때 변색되기 쉽고 완성된 종이의 강도가 약하며 벌레가 생기기 쉬워 종이의 수명이 짧아지기 때문에 가능한 한 당의 함량을 낮추는 것이 좋다. 전통 한지의 수명이 오래 가는 이유는 2차에 걸친 표백으로 닥나무에 존재하는 당류가 거의 빠져 나오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한지의 질을 더 높여주는 조상들의 비법은 또 있다. 한지 제조의 마무리 공정인 도침(搗砧)이 그것이다. 도침은 종이 표면이 치밀해지고 평활도를 향상시키며 광택을 내기 위해 풀칠한 종이를 여러 장씩 겹쳐놓고 디딜방아 모양의 도침기로 골고루 내리치는 공정을 말한다. 이는 무명옷에 쌀풀을 먹여 다듬이질하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이 도침 기술은 우리 조상들이 세계 최초로 고안한 종이의 표면 가공 기술이다.
이와 같은 여러 공정을 거쳐 한지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종이로 빛을 발한다. 한지의 강한 특성은 한지를 몇 겹으로 바른 갑옷의 예에서도 볼 수 있다. 옻칠을 입힌 몇 겹의 한지로 만든 갑옷은 화살도 뚫지 못한다고 한다.
한지가 이렇게 강한 이유 역시 닥나무 껍질의 인피 섬유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화학 펄프로 사용하는 전나무, 소나무, 솔송나무 같은 침엽수의 섬유 길이(3밀리미터)나 너도밤나무, 자작나무, 유카리 같은 활엽수의 섬유 길이(1밀리미터)보다 훨씬 긴 섬유 길이(10밀리미터 내외)를 닥나무의 인피 섬유는 갖고 있다.
구한말 러시아 대장성의 조사 보고서인 『한국지』에는 조선 종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종이는 섬유를 빼어 만들므로 지질이 서양 종이처럼 유약하지 않고 어찌나 질긴지 노끈을 만들어 쓸 수도 있다. 종이에 결이 있어 그 결을 찾아 찢기 전에는 베처럼 베어지지를 않는다.' 숙종 9년에 '근래 한량들이 종이 신 신는 것을 멋으로 알아 이를 만들어 파는 자가 많아지자 사대부 집에서 서책(書冊) 도둑질이 심하니 이를 단속해야 한다'는 상소까지 있다. 조선 종이로 노끈을 꼬아 만드는 종이 신뿐만 아니라 종이 등잔, 물을 담는 종이 물통, 종이 대야, 종이 요강까지 있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종이로 만들 수 없는 세간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단열 효과의 백미 창호지〉
창호지문(사진 오뚜기).
한지의 우수성은 창문용으로 사용되는 창호지의 열적 성능에서도 잘 나타난다. 필자는 한옥에서 사용되는 창호지와 현대 기술의 산물인 창유리와의 열적 성능을 비교하기 위하여 <표 1>과 같이 시료를 제작하였다.
이것은 현재 주택에서 주로 사용되는 방법을 채택한 것으로 시료 1은 2중 창문, 시료 2는 외측이 유리창이고 내측은 창호지 문을 설치한 경우이다. 시료 3은 외측은 2중 유리창문(페어 그라스)에 창호지 문을 내측에 설치한 경우이고 시료 4는 외측은 단 창에다 내측은 2중 창호지 문을 설치한 것이다.
이들의 상관 관계를 비교하기 위한 단위로서는 K값(열 관류량, Kcal/m2.hr.°C)을 사용하였다. 측정값을 비교 분석하면 유리창만을 사용한 2중 창(시료 1)의 K값이 5.31이었으나 같은 조건 하에 유리창 한 장과 한지(창호지)를 복합해서 2중 창으로 만든 시료 2의 경우 K값은 4.87로 9%의 열적 상승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유리창으로 된 2중 창에 창호지 문을 내부에 설치한 시료 3의 K값은 2.86으로 시료 1번보다 1.8배의 열적 효과가 있었으며 유리 단 창에 창호지만으로 된 2중 창을 더한 4번 시료의 경우 K값은 2.61로 1번 시료보다 무려 2배 이상의 열적 효과를 얻었다. 이 실험 결과는 에너지 파동 이래 많은 건물에서 사용되고 있는 값비싼 2중 창문(페어 그라스)보다 단순하게 한지(창호지)를 사용한 2중 창호지 문의 열적 효과가 높다는 것을 뜻한다.
창호지는 한지가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분야 중 하나이다. 창호지의 가장 큰 장점은 현대 문명 기술이 만들어낸 어떤 종류의 창문 재료보다 실용성이 높다는 점이다. 창호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구멍이 있어 방문에 발라두면 환기는 물론, 방안의 온도와 습도까지 자연적으로 조절된다. 온돌에 장판을 발라서 생활했던 우리의 주생활은 방안에 습기가 많은 것이 문제점이었으나 이 습기를 창호지를 통하여 자연적으로 배출되도록 유도하여 쾌적한 생활 공간이 되도록 했다.
<표1> 실험시료의 구성.
창호지는 바람과 빛을 통과시키고 습도를 조절하는 3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습기가 많으면 그것을 빨아들여 공기를 건조하게 하고, 공기가 건조하면 습기를 내뿜어 알맞은 습도를 유지하게 하는 신축성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창호지를 흔히 '살아 있는 종이'라고 하기도 한다. 창호지가 자연 현상에 이처럼 순응하는 성질은 모두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신라시대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한지 기술이 탁월했다는 것은 문화재청이 2000년에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영인본과 해제본을 전통 한지 기법으로 만들었으나 결과는 신라 종이의 정교함을 따를 수 없었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한지를 직접 만들었던 기술자도 제품이 마음에 안 들어 물에 여러 번 풀며 도침도 7번이나 했음에도 보푸라기가 유난히 많이 일어났다고 실토했다. 닥풀이나 닥나무 등 당시의 재료가 현재와 다른 면도 있겠지만 신라시대의 종이를 만들지 못한 것은 또 다른 면에서 선조들의 기술이 탁월했음을 보여준다.
외국에서는 우리 한지를 최고의 종이로 인정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들은 오히려 질이 좋지 않은 종이라 천시하고 한지에 비하여 질이 떨어지는 외국의 펄프 종이가 좋다고 여기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일본의 화지는 우리 전통 한지에 비하여 거칠고 강도도 떨어진다는 사실과 외국의 값싼 닥나무를 수입하여 아무리 전통 한지 흉내를 내려고 해도 실패한다는 사실에서도 전통 한지의 우수성을 알 수 있다.
특히 시중에 나와 있는 창호지 품질은 그 생산 제조 과정에 따라 현저히 차이가 나는데, 일반적으로 수초지와 기계지로 나뉜다. 수초지는 전통 한지 제작법에 의해 만드는 것임에 반해 기계지는 목재 펄프를 사용하여 만들므로 가격이 싸며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목재 펄프를 많이 사용하면 창호지의 경우를 보더라도 색상이 희고 빳빳하며 엉킨 섬유가 없이 외관이 균일하여 고급품으로 착각되나 전통 한지 제작법으로 만든 창호지보다 강도가 낮고 내구력이 떨어진다. 외관만 보고서 질을 평가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한지의 특징이기도 하다.
참고적으로 과거에 많이 사용된 두루마리 종이의 이음부분 비밀은 2003년 경북 문경시 영순면 영순 초등학교의 6학년 장건일(12살)과 임병호(12살)군에 의해 밝혀졌다. 고려대장경(일명 팔만대장경)을 인쇄한 닥나무 종이 연결부위가 900년 동안 떨어지지 않고 있어 과학자들도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그 비밀은 발효 콩풀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것이다. 발효 콩풀은 청국장을 만드는 것처럼 삶은 콩을 발효시켜 으깨 만든 풀이다. 종이를 이은 부분에 사용한 발효 콩풀은 색깔 냄새 촉감이 좋지 않고 물에 약하지만 온도변화에 매우 강하고 개미가 싫어하며 특히 발효 콩풀 속의 고초균은 항생물질을 만들어 곰팡이를 방지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들은 2003년 제49회 <전국과학전람회>에서 화학분야 학생부 최우수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