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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시청에서 시청 공무원과 교토관광협회 및 보란티아 단체의 회원들과 만나 먼저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문화관광해설사가 관에서 주도하는 단체라면, 교토의 보란티아는 자원봉사자들이 모인 단체다.
누구에게 검증을 받는 일도 없이 하고 싶으면 하는 진정한 봉사자들이다. 이들 단체는 시청에 등록만 하고 자원봉사를
자유롭게 하며, 시청의 감독을 받지 않는다. 당연히 봉사료도 자유다. 시청에 등록만 했다 뿐이지 시청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우리는 일정한 전형을 거쳐야 하며, 해당 지자체의 감독을 받고, 보수도 받으며, 대신 일체의 팁 등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그들은 우리 문화관광해설사를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그들 봉사단체는 전국적 현상인 것 같았다.
그들과의 만남 자체가
보람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금각사
금각사(金閣寺)는 교토를 대표하는 명소 중 하나로 손꼽히는 황금빛 찬란한 사찰이다.
금각사(킨카쿠지)는 1336년부터 1392년까지 60년간 지속된 남북조시대를 마감하고 다시 일본을 통일한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1397년 건립한 산장을 그의 유언에 따라 선종사찰로 개축한 것이다. 정식 명칭은 요시미쓰의
법명에서 따온 로쿠온지지만, 황금빛으로 빛나는 킨카쿠의 명성으로 인해 킨카쿠지로 불리고 있다.
금각사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스님들의 요사체 아니면 수행처 같은 큰 건물이 있었으나, 본래 쇼군이 거처하는 곳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금각사에 들어가는 요금표가 한글로도 표기되어 있다. 어른(연령 16~)¥400이다. 아이(연령7-15)¥300이라고 쓰여있다.
대인의 기준이 고교생이상, 16세부터란 얘기인데, 일본은 만으로 치니까 우리 나이로는 1~2살 보태야 한다.
노인에 대한 혜택은 없는 듯 했다.
입장권이 꼭 우리의 부적같이 생겼다. 좋은 아이디어란 생각을 하면서 부적의 효험이 있을까 봐 간직했다.
많은 인파가 밖이나 안이나 마찬가지다. 마땅히 사진 한 장 찍을 자리가 없었다. 호수 건너편에 금각사가 보인다.
크지 않은 호수에 섬들이 떠있고, 미풍에 물결 잔잔한데, 아름다운 장원(莊園)에 금빛 찬란한 금각사는 호수에 비춰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금각사 호수 같은 연못, 거울같이 맑다 하여 교코지(鏡湖池)라 부르는데, 금각사를 품고 있는 산과 나무들도
오염되지 않은 맑음 호수에 잠겨 그들이 말하는 극락세계 같이 아름답다.
킨카쿠지의 규모는 지금보다 훨씬 컸지만 ‘오닌’의 난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기타야마(北山)문화를 대표했던
킨카쿠(金閣) 역시 1955년에 재건한 것이라 한다.
금각사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아쉬움은 있었지만, 해설해주는 가이드의 해설로 그 안에 무엇이 있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금각사는 각 층마다 건축양식의 시대가 다르다고 한다.
1층은 후지와라(藤原)기, 2층은 가마쿠라(鎌倉)기, 3층은 중국 당나라 양식으로 각 시대의 양식을 독창적으로
절충하였다 한다. 1층은 침전과 거실로 쓰이고, 2층은 관세음보살을 모셔 두었으며, 3층은 임제종 쇼쿠지파,
즉시(卽時)성불의 선종 불전이라 한다. 각 층마다 전혀 다른 신들이 모셔져있다는 일본불교를 배운다.
금각사로 가기 전 큰 건물 옆에 육단지송[陸丹之松(리쿠슈노마쓰)이란 600년 된 소나무가 있는데, 이 소나무는
분재를 이식한 것으로 배 모양을 닮았고, 뱃머리가 서쪽 금각사를 향하고 있어 서방정토의 극락세계를 향하여
항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들을 한단다. 소나무를 분재하여 배의 모형을 만든 섬세함. 600여년의 세월 사람의
취향대로 절제된 삶을 살아온 소나무에서 자연과 인간에 얽힌 역사를 읽는다.
산골 돌덩이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긴가센(銀河泉)이라 하여 약수처럼 흐르는데, 이 물로 아사카가 요시미쓰가
차를 다려 마셨다 한다.
아스카가 요시미쓰 쇼군(足利義滿 將軍)이 세운 별장이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로쿠온지(鹿苑寺)라는 선종사찰로 바뀌었다.
애초 이 정원은 아스카가 요시미쓰 쇼군의 정원이 아니었다. 쇼군의 가신 소유였다. 그런데 그는 가신에게 “자네의 정원이
참 아름답고 좋구만”이라고 한 마디 던졌다. 이 한 마디에 가신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쇼군께 이 정원을 바치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즉시 바친다.
이게 장군과 가신과의 절대복종 관계의 일본문화다.
가신은 주군이 욕심내거나 필요하다 말하면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 얼른 바쳐야 한다.
설령 “자네 부인 참 예쁜데...”하면 우물쭈물 하지 말고 부인을 장군에게 바쳐야 하는 것이다.
만일 눈치를 못 채고 우물쭈물 하다가는 당장 멸문지화를 당하고 마는 것이다.
아스카가 요시미쓰 쇼군도 이렇게 그의 가신에게서 정원을 기부 받아 금각사란 사찰을 만든 것이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금각사를 짓고, 금각사 앞에 ‘은각사’를 지었다 하나 아버지에 대응한
건축이 어떤 어미가 있을까
금각사 관광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산기슭 바위 속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곳이 있는데, 그 옆에는 손 씻는 물로 썼다는
간카스이가 있다. 사찰 뒤편에 작은 연못 앞에 부처님께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비는 곳도 있다. 가이드는 우리 동전 던져봤자
일본 신은 우리 동전을 모를 거라며 던지지 말라고 하였다. 나는 애초부터 던질 마음이 없었다.
앉아서 소원을 비는 바위가 있다. 젊은 사람들은 앉아보기도 하는 것이었으나 가이드는 “나이 들어 뭘 바라겠습니까.”라며
그냥 가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금각사 불당은 어디인가? 출구를 다 나와서 석불동명왕(石不東明王)이 모셔져 있는 불당이 보인다. 그들의 조상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기념품 파는 거리를 빠져나왔다.
고태사에서 다도체험
체험하는 곳의 고태사(高台寺: 고다이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내인 네네(기타노 만돌코로)가 도요토미의 사후 명복을
빌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후원으로 지은 절이다.
우리에게는 풍신수길(豊臣秀吉)이라고 더 잘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켜 우리의 강토를
쑥밭으로 만들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간 우리 민족의 철천지원수다. 우리의 원수가 일본에서는 영웅인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돈을 주고 다도체험을 한다? 그러나 여행사에서 정한 여행코스 중 1부이니 어찌 하겠는가.
풍신수길을 모신 이곳은 말이 절이지 사당이나 신사 같았다. 절 안의 묘지 같은 것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다도체험을 실현하는 기모노를 입은 일본여인이 개인을 향한 인사가 어쩌면 그녀의 오만함 같은 게 느껴지는 기계적
형식인 것 같기도 하였다.
여인은 우리 개개인에게 모찌(그들은 오꼬시라 했다) 같은 것을 놓으며 인사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다도(茶道)란 본래 서민들의 문화가 아니다 보니, 격식도 까다롭고 번거롭다는 것을 생각하며 무게를 잡으려 했으나,
다도체험을 실현하는 일본여인의 지친 모습에서 친절이 기계적임을 느끼며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루녹차를 ‘차센’이라는 대나무로 만든 솔 같은 것으로 빠르게 저어 거품을 내서 마신다.
커피에 맛들인 나는 별 맛이 없었고, 차를 마시는 경건한 마음도 선운사 만세루에서 정좌하고 마시는 것보다
훨씬 못한 것 같았다.
고태사는 사찰이라기보다 불교와 융합된 신전이나 묘역의 성격이 더 강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우리에게 일본 다도의 시범을 보인 여인과 기념사진 한 장 찍었다.
‘산의 맑음이 먼 옛날과 같다(山淨如太古’)라는 족자를 보며 이곳이 태고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뜻으로 해석하면서 체험 장을 나왔다. 체험 장 밖에는 아름다운 정원이고 정원 안에는 사리탑과 같은 묘지들이
여러 기 있었다. 밖의 마루에서 기모노를 입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사진을 찍도록 포즈도 취해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신 신사는 사진 촬영을 허용하지 않았다. 나도 굳이 찍고 싶지 않았다.
다만 우리의 원수가 일본에서는 역사적 인물이며 영웅이며 그들의 호도께란 사실을 착잡한 마음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청수사로 가기 위해 내려오는 길에 대나무 숲이 있었다. 일행들의 자유로운 포즈를 카메라에 담는다.
벌써 낯익은 얼굴들이며 친밀감이 쌓여졌나 보다.
대나무 숲에서 멀리 나무 사이로 거대한 불상(佛像)이 보인다.
대나무 숲을 나와 주차장에서 바라본 불상은 영산관음(靈山觀音)이었다.
청수사(기요미즈데라)
세계문화유산 청수사로 가는 길 양편에는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상가 틈틈이 작은 규모의 절인지 신사인지 구별이 가지 않는 건물들이 있었다.
수많은 인파 뒤에 웅장한 청수사의 건물이 보인다. 그러나 보이는 건물은 그 일부에 불과하단다.
세계문화유산 앞에서 일단 기념사진부터 찍어본다.
절벽위에 지은 아름다운 청수사, 천 년이 넘었다 한다.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는 절 같다. 청수사에서 바라보는 교토 시내의 전경은 사진과는 달리 참으로 아름답다.
청수사에도 어김없이 신전 같은 것이 많은데 계단 올라가는 옆에 지장보살이 아기 마냥 목에 앞치마 아니면 턱받이
같은 것을 두르고 입상(立像)으로 있었다. 이는 흔히 일본의 마을길 한쪽에 모셔져있는 여러 명의 작은 지장보살을
볼 수 있는데, 일본 불교의 표현이기도 하다.
일본의 지장보살은 사진과 같이 동자상 같은 모습으로 절 앞이나 큰 불상 옆에 여러 명이 서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한국의 불교인들이 믿고 생각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의 의미는 지옥중생을 구제하려고 발원하신 분으로 알고 있다.
사진에서 지장보살로 보이는 분은 청수사의 창시자 엔첸스님이다.
그러나 일본의 길모퉁이에 모셔진 지장보살은 일본인들의 현실생활 속으로 가까이 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장보살의 모습은 화찬(和讚)에 나타난 수자(水子)이야기에 잘 나타나 있다.
화찬이란 일본어로 쓰여 진 불교찬가 즉 경문의 게(偈)라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이 세상의 일이 아닌 사후 산 아래 추운 강가의 모래밭의 이야기이다. 불쌍한 영혼들, 두 살, 세 살, 네 살.....
열 살도 되지 못한 영아(嬰兒)들이 추운 강가의 모래밭에 모여서 ‘아버지 그립다, 어머니 그립다, 그립다’면서 울고 있는
소리의 슬픔이 뼈를 깎는 것 같다. 그 영아들은 모래밭의 돌을 주어서 회양의 탑을 쌓는다. (중략) 밤이 되면 지옥의
신들이 나타나 하루 종일 쌓아올린 탑을 무너뜨려버린다. (중략) 지장보살이 나타나서 ‘너히들은 단명해서 죽은 것이다.
이승과 저승은 아주 다른 세계여서 너희 부모를 만날 수 없다.
그러니 나를 이 명부세계의 부모로 생각하여라.’ 하면서 아직 걷지도 못하는 영아들에게 지팡이를 사용토록 하고
인욕자비의 포근함으로 감싸주면, 수자들은 지장보살의 포근함에 감사하며 따른다.”
지장보살은 어린이의 교육을 위한 보살로서, 또는 어린이의 평안을 지켜주는 지장보살로서 널리 신앙되어 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일본의 지장신앙은 서민신앙으로서의 노천불(路天佛)의 모습으로 일본의 거의 어디서나
불상을 대할 수 있다.
따라서 화찬, 곧 일본불교의 지장신앙은 수자신앙(水子信仰)의 의미를 부각시켜 주는 근원이 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수자라는 단어는 치자(稚子)라고도 쓰였으나, 출산 전후의 아기, 혹은 태아라고 할 수 있다.
수(水) 즉 ‘미즈’라는 말은 일본의 나라(奈良)시대 이후의 고어(古語)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최근의 일반적 해설은 사생아(私生兒), 유산아(流産兒)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누구든지 죽은 후 50년이 지나면 그 혼령은 가미사마(神樣)가 되어 후손 일족의 씨신(氏神)이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후 50년이 지나면 제사를 모시지 않게 되어있다.
따라서 제사도 매년 모시는 것이 아니고 3년, 7년, 13년, 17년, 23년, 27년...등의 해에만 제사를 모시는데, 죽은 지
50년이 지나면 현실의 가족들과의 관계를 벗어나 氏神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자령(水子靈)의 원한을 달래주지 않으면 집안의 온갖 흉한 일이 생긴다고 믿는 다.
한번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기 위해서 7번의 환생(還生)을 거쳐 겨우 인간의 몸을 받으려는 도중 태중에서 수자가
되어버린다면 얼마나 원통할 일인가! 묘도 없이 죽었기 때문에 이승과 저승 사이에 흐르고 있는 삼도천을 건너지
못하고 떠도는 수자령(水子靈)은 이승의 부모형제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크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자령은 가정의 온갖 흉사와 관계되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다양하다고 믿는 일본인들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수자령의 안착을 위해서 공양을 올려 왔는데, 그것을 일반적으로 수자지장(水子地藏)이라 부른다.
그래서 수자지장의 상이 사찰은 물론이고 묘지에도 세워져 있고, 각 가정의 불단 등에도 작은 수자지장을
모시고 공양을 드리게 되었다.
우리들 눈에 잘 뜨이는 빨간 턱받이를 하고 있는 지장상은 어린이를 보호하는 본존의 지장이다.
대승대집지장십륜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에 의하면 지장보살은 관음보살과 같이 수많은 응화신(應化身)을
가졌다고 수록되어 있다. 지장보살본원경(地裝菩薩本願經)에서는 지장보살은 석존 멸 후 미륵의 출세까지의
56억7천만년 동안 육도중생을 구제한다고 해서 ‘6지장’이라도 했는데, 결국 현세적으로 연결되어 일본에서
행인을 보호하는 도조신(道祖神)과 6지장의 습합이 행인과 마을을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하여 마을마을,
거리거리에 지장을 모시게 된 것이다.
지장보살이 현세 이익을 목적으로 일본에서 신앙화 된 모습이 곧 안산지장(安産地藏), 자육지장(子育地藏),
수자지장(水子地藏)이다.
일본에서 대체로 진종, 일련종 이외의 각 사찰에서 꼭 접할 수 있는 수자지장의 모습은 거의 입상(立像)이고,
오른손에 지팡이를 왼손에는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장보살의 모습은 비구 형을 하고 있음이
많지만, 밀교의 ‘태장계만다라’에서는 보살형을 하기도 한다. ‘십륜경’에서 동남동녀(童男童女)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는 지장 변화신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수자지장의 모습은 거의가 삭발한 비구형을 하고 있다.
수자관음(水子觀音)
일련종(日蓮宗)을 비롯해서 ‘관음경’을 소외경전으로 하고 있는 종파에서는 수자지장과 동일한 의미로서
수자관음의 안치를 주장하고 있다 한다.
지장보살과 관음보살에게는 공통된 점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인도의 고대신화 속에서 나오는 여인이었음이고,
둘째는 응화신(應化身)이라는 점이다.
관음경에서는 관세음보살이 중생의 음성을 관해서 해탈을 얻도록 하는 관음보살의 능력을 기술하고 있다.
관세음보살께 공양드리고 아들을 원하면 복덕과 지혜를 갖춘 남자아이를 낳게 해주고, 딸을 원하면 단정하고
예쁜 딸을 주신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관음보살을 향하여 아이를 얻으려고 하고, 안산(安産)을 기원하게 된 것이다.
아기를 점지 받고 안산하기 위해서는 ‘법화경’과 ‘관음경’ 사경을 하고, 일본 각지에 모셔진 관음 영장(靈場:관음의
위력이 있는 곳)을 순례해서 공양을 올린다. 그 가운데 아이를 낳기를 기원하는 유명한 곳 중의 하나가 우리가 현재
답사하고 있는 청수사의 청수관음(淸水觀音)이다. 또한 어린이 교육과 관계된 관음을 내세우고 있는데, 그 근거는
관음보살의 33화신 중 동남신 동녀신을 어린이를 수호하는 본존적 성격의 관음, 그 중에 널리 알려진 관음은
자안관음(子安觀音), 자수관음(子守觀音), 자육관음(子育觀音)이다.
수자관음의 모습도 수자지장처럼 입상이고, 오른손에 갓난아이를 안고 그 발밑에는 아이들이 있는
모습을 하고 있음이 보통이다.
자모관음(慈母觀音)으로 부르기도 하고, 성관음(聖觀音)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저 계단을 올라가면 좋은 인연을 만난다는 청수사의 온갖 신들이 다 모여 있는 곳에 다다른다. 돈을 놓고 신들에게
축원도 하고 운수도 점쳐보고, 알고 보면 이러한 일들은 다 돈벌이의 수단이란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청수사는 778년 세워졌으나 총 9번의 화재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가 도쿠가와 이예야스의 손자가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다(1632).
입구의 인왕문과 그 뒤 29.7m의 삼층탑은 화려한 단청이 입혀져 있었다.
지금의 절을 지을 때 절벽 안에 139개의 기둥을 박고 그 위에 지은 것이다. 본당은 기둥위에 세워져 있다.
오타와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상징하여 세 갈래로 떨어지는 물을 마시면 지혜, 사랑, 장수 등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 빌어야지 욕심내면 한 가지도 얻지 못한다고 한다. 나도 일행도 한 줄기
물도 받아 마시지 않았다. 일본 사람 소원도 다 못 들어 주면서 한국사람 소원까지 들어줄까? 하는 의심에서도
그렇고, 나이 탓도 있었으리라.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은 불완전하다. 직접 경험한 것도 때로는 오류일 수 있는데, 귀 기울어 듣지 않고,
다 보지도 못하고 함부로 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책을 통해 교양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체험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고, 체험된 것만이 나의 것이란 마음으로 일본까지 와서 체험하고 있는 오늘의 나를 뒤돌아보며
청수사를 내려왔다.
*다음에는 신라의 것과 비슷한 일본 국보 1호인 미륵반가사유상으로 유명한 광륭사,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별궁 이조성,
자원봉사자들에게 돈 주고 걸어보는 오사카 시내 등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