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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상
5.4 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
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 治於人者食人 治人者食於人 天下之通義也.
노심자치인 노력자치어인 치어인자식인, 치인자식어인 천하지통의야.
마음으로 수고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힘으로 수고하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다스림을 받는 자는 남을 먹게 하여 주며
남을 다스리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얻어 먹는 것이
천하에 공통된 도리이다.
신농神農의 설을 실천하는 허행許行이라는 사람이 초楚나라로에서 등滕나라로 가서 궁궐 문에 이르러 문공文公에게 아뢰었다.
"먼 곳의 사람이 군주께서 어진 정치를 실천한다는 말을 듣고 살 집을 받아 살면서 이 나라 백성이 되고자 합니다."
문공文公은 그 사람에게 거처할 곳을 주었다.
그를 따르는 무리 수십 명 모두 갈옷을 입고 집신을 삼고 자리를 짜서 그것으로 먹고 살았다.
有爲神農之言者許行, 自楚之滕, 踵門而告文公曰
"遠方之人聞君行仁政, 願受一廛而爲氓."
文公與之處, 其徒數十人, 皆衣褐, 捆屨·織席以爲食.
당시 진량陳良의 제자인 진상陳相이 그 아우 신辛과 함께 농기구를 지고 송宋나라에서 등滕나라로 가서 말했다.
"군주께서 성인聖人의 정사를 실천한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군주는 곧 성인이니, 성인의 백성이 되고자 합니다."
陳良之徒陳相與其弟辛, 負耒耜而自宋之滕,
曰 "聞君行聖人之政, 是亦聖人也, 願爲聖人氓."
진상이 허행許行을 만나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자신이 배운 다 버리고 그에게서 배웠다.
진상이 맹자를 뵙고 허행의 설에 대해 설명하고서 말했다.
"등나라 군주는 진실로 어진 군주입니다. 비록 그렇긴 하나 도道를 듣지 못했습니다. 현자는 백성과 함께 농사지으며 먹고 살며, 아침저녁 밥을 손수 지어먹고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런데 지금 등나라에는 곡식 창고와 재물 창고가 있으니, 곧 이것은 백성을 괴롭혀서 자신을 기르는 것입니다. 어떻게 현명한 군주라고 하겠습니까?"
陳相見許行而大悅, 盡棄其學而學焉.
陳相見孟子, 道許行之言曰
"滕君, 則誠賢君也. 雖然, 未聞道也. 賢者與民幷耕而食, 饔飱而治. 今也滕有倉廩府庫, 則是厲民而以自養也, 惡得賢?"
맹자가 물었다.
"허행許行이라는 사람은 손수 농사를 지어서 밥을 해 먹는가?"
孟子曰 "許子必種粟而後食乎?"
진상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曰 "然."
맹자가 물었다.
"허행은 반드시 손수 베를 짜서 옷을 해 입는가?"
"許子必織布而後衣乎?“
진상은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희 선생님께서는 갈옷을 입습니다."
曰 "否. 許子衣褐."
맹자가 물었다.
"허행은 머리에 관冠을 쓰는가?"
"許子冠乎?"
진상이 대답했다.
"관冠을 씁니다."
曰 "冠."
맹자가 물었다.
"어떤 관冠을 쓰는가?"
曰 "奚冠?"
진상이 대답했다.
"흰 비단으로 만든 관을 씁니다."
曰 "冠素."
맹자가 물었다.
"손수 그것을 짜는가?"
曰 "自織之與?"
진상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곡식을 주고 바꿉니다."
曰 "否. 以粟易之."
맹자가 물었다.
"허행은 어째서 손수 짜지 않는가?"
曰 "許子奚爲不自織?"
진상이 대답했다.
"농사 짓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曰 "害於耕."
맹자가 물었다.
"허행은 솥과 시루에 불때어 밥 지으며 쇠쟁기로 밭을 가는가?"
曰 "許子以釜甑爨, 以鐵耕乎?"
진상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曰 "然."
맹자가 물었다.
"손수 그것들을 만드는가?"
"自爲之與?"
진상이 대답했다.
"아닙니다. 곡식을 주고 바꿉니다."
曰 "否. 以粟易之."
맹자가 말했다.
"곡식을 주고 솥과 시루 그리고 농기구와 바꾸는 것이 도장과 대장장이가 자신이 만든 기계와 그릇을 주고 곡식과 바꾸는 것 역시 어떻게 농부에게 손해를 입히는 것이겠는가? 또 하행은 어째서 손수 도기와 칠기를 만들어 모든 것을 자기 집에서 가져다 쓰지 않고 번거롭게 여러 장인들과 교역을 하는가? 어째서 허행은 그처럼 번거러운 것을 꺼리지 않는가?"
"以粟易械器者, 不爲厲陶冶. 陶冶亦以其械器易粟者, 豈爲厲農夫哉? 且許子何不爲陶冶. 舍皆取諸其宮中而用之? 何爲紛紛然與百工交易? 何許子之不憚煩?"
진상이 대답했다.
"백공들이 하는 일은 원래 농사를 지으면서 동시에 할 수가 없습니다."
曰 "百工之事, 固不可耕且爲也."
맹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천하를 디스리는 일은 유독 농사를 지으면서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인가? 대인이 할 일이 있고 소인이 할 일이 있다. 또 한 사람의 몸에는 백공이 만드는 것들이 다 필요한데, 만일 반드시 모든 것을 손수 만들어서 사용해야 한다면 그것은 천하의 사람들을 이끌어서 지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마음을 수고롭게[勞心] 하고 어떤 사람은 몸의 힘을 수고롭게[勞力] 한다.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몸의 힘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 자는 남을 먹여 살리고, 남을 다스리는 자는 남에 의해 먹고 사는 것이 천하의 보편적인 원리이다."[*註1]
"然則治天下獨可耕且爲與? 有大人之事, 有小人之事. 且一人之身, 而百工之所爲備. 如必自爲而後用之, 是率天下而路也. 故曰: 或勞心, 或勞力; 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 治於人者食人, 治人者食於人: 天下之通義也."
"요임금 시대에는 천하가 평안하지 못했다. 큰 물이 엇대로 흘러 천하에 범람하고 초목이 무성하고 금수가 번식하며 오곡이 여물지 못하고, 금수가 사람을 위협하고 짐승과 새들의 발자국이 나라 한 가운데에 어지럽게 나 있었다. 요임금 한 사람만이 이것을 근심하여 순을 발탁하여 다스리게 하였다. 순이 익益에게 불을 관장하게 해 익이 산과 늪에 불을 질러 태워 버리자 금수들이 도망가 숨었다. 또 우임금은 범람하는 황하에 아홉 개의 물길을 내고 황하의 지류인 제수濟水와 탑수漯水의 바닥을 쳐서 바다로 흘러들게 하고, 여수汝水와 한수漢水의 물길을 터고, 회수淮水와 사수泗水를 배수하여 양자강으로 흐르게 하였다. 그런 연후에 나라의 가운데[中國]가 농사를 지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우임금은 8년 동안 집 밖에 머물렀고 세 번이나 자기 집 문 문앞을 지나면서도 들어가지 못했으니, 비록 손수 농사를 지으려고 해도 할 수 있었겠는가?"
"當堯之時, 天下猶未平, 洪水橫流, 氾濫於天下. 草木暢茂, 禽獸繁殖, 五穀不登, 禽獸偪人.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 堯獨憂之, 擧舜而敷治焉. 舜使益掌火, 益烈山澤而焚之, 禽獸逃匿. 禹疏九河, 瀹濟漯, 而注諸海; 決汝漢, 排淮泗, 而注之江, 然後中國可得而食也. 當是時也, 禹八年於外, 三過其門而不入, 雖欲耕, 得乎?"
"후직后稷이 백성들에게 농사 짓는 법을 가르치고 오곡을 기르게 하자, 오곡이 익었고 백성들은 그것을 배불리 먹고 자신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백성들이란 배불리 먹고 따스하게 입으며 편안하게 지내기만 하고 가르침이 없다면 금수에 가까워진다. 사람에는 도리가 있어,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 편안히 거주하면서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와 가까워진다.[*註2] 성인이 이를 근심하여 설契을 교육을 관장하는 사도로 삼아 인륜을 가르치게 했으니, 부모 자식사이에는 친애함이 있고, 군신 간에는 의리가 있고, 부부 사이에는 분별이 있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고 친구사이에는 믿음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방훈[放勳 요임금의 호]께서 '백성들을 격려하고 따라오게 하며, 바로잡아 주고 곧게 펴 주며, 도와주고 거들어 주어서 스스로 선한 본성을 깨닫게 하고, 또 그들에게 은덕을 베풀어 주어라'고 했다. 성인이 백성을 근심하는 것이 이러한데 어느 겨를에 농사를 짓겠는가?"
"后稷敎民稼穡. 樹藝五穀, 五穀熟而民人育. 人之有道也, 飽食·煖衣·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 聖人有憂之, 使契爲司徒, 敎以人倫: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放勳曰: '勞之來之, 匡之直之, 輔之翼之, 使自得之, 又從而振德之. ' 聖人之憂民如此, 而暇耕乎?"
"요임금은 순과 같은 사람을 얻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근심으로 삼았고, 순임금은 우와 고요皐陶 같은 현안을 얻지 못함을 자신의 근심으로 삼았다. 백무의 땅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자신의 근심으로 삼는 것은 농사꾼이다."
"堯以不得舜爲己憂, 舜以不得禹·皐陶爲己憂. 夫以百畝之不易爲己憂者, 農夫也."
"재물을 남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일러 은혜롭다[惠]고 하고, 선을 남에게 가르쳐 주는 것을 일러 충직하다[忠]고 하며, 천하의 사람들을 위해 재능있는 사람을 얻는 것을 어질다[仁]고 한다. 그러므로 천하를 남에게 주는 것은 쉽지만, 천하의 사람들을 위하여 인재를 얻는 것은 어렵다"
"分人以財謂之惠, 敎人以善謂之忠, 爲天下得人者謂之仁. 是故以天下與人易, 爲天下得人難."
"공자께서 '위대하도다. 요의 임금다운 덕이여. 오직 하늘만이 위대하거늘 요임금은 그것을 본 받으셨도다. 그 분의 덕은 넓디넓어서 백성들이 무어라 이름붙일 수 없다. 임금답도다. 순이여. 그 분의 덕은 높디높아서 천하를 가졌지만 사사로이 자신의 것으로 누리지 않았다'고 했다. 요임금과 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어찌 마음을 씀이 없었겠는가마는, 농사짓는 데 마음을 쓰지는 않았다."
"孔子曰: '大哉堯之爲君! 惟天爲大, 惟堯則之, 蕩蕩乎民無能名焉! 君哉舜也! 巍巍乎有天下而不與焉!' 堯舜之治天下, 豈無所用其心哉? 亦不用於耕耳."
"나는 중국의 문화로써 오랑캐의 것을 변화시켰다는 말은 들었어도 중국이 오랑캐에 의해 변화되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진량은 남방 초나라 출신이지만 주공과 공자의 도를 좋아하여 북쪽으로 중국에 와서 공부하였다. 북방의 학자들 중 아직 그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었으니, 그는 걸출한 선비이다. 그대 형제는 그를 수십년 동안 섬겼는데, 스승이 죽자 마침내는 배반하고 말았구나."
"吾聞用夏變夷者, 未聞變於夷者也. 陳良, 楚産也. 悅周公·仲尼之道, 北學於中國. 北方之學者, 未能或之先也. 彼所謂豪傑之士也. 子之兄弟事之數十年, 師死而遂倍之."
"옛날에 공자가 돌아가시자, 3년이 지난 후 문인들이 모두 짐을 정리해서 장차 고향으로 돌아가려 할 적에 들어가서 자공子貢에게 절을 하고 서로 마주보며 곡하다 모두가 목이 쉰 후에 돌아갔다. 자공은 다시 돌아와 스승의 묘가 있는 곳에다 여막을 짓고서 홀로 3년을 지낸 후에 돌아갔다. 후일에 자하子夏, 자장子張, 자유子游가 유약有若이 공자를 닮았다면서 공자를 섬기던 예로서 그를 섬기자며 증자에게 강청했다. 그러자 증자曾子는 '불가하다. 선생님의 덕은 양자강과 한수의 강물로 씻은 듯하고 가을볕에 쪼인 듯해서 더할 나위 없이 희디희게 깨끗하다'고 했다."
"昔者孔子沒, 三年之外, 門人治任將歸, 入揖於子貢, 相嚮而哭, 皆失聲, 然後歸. 子貢反, 築室於場, 獨居三年, 然後歸. 他日, 子夏·子張·子游以有若似聖人, 欲以所事孔子事之, 彊曾子. 曾子曰: '不可. 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尙已.'."
"이제 남쪽 오랑캐로서 왜가리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자가 선왕의 도를 비난하는데
그대는 도리어 스승을 배반하고 그것을 배우니, 그대의 태도는 증자의 그것과 다르다."
"今也 南蠻鴃舌之人, 非先王之道, 子倍子之師而學之, 亦異於曾子矣."
"나는 새가 어두운 골짜기에서 나와서 높은 나무로 옮겨 간다는 말은 들었어도,
높은 나무에서 내려와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간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吾聞出於幽谷遷于喬木者, 末聞下喬木而入於幽谷者"
"「노송魯頌」에서 '서쪽 오랑캐와 북쪽 오랑캐를 치고 남쪽의 초나라와 서나라를 응징했다고 했다. 주공조차도 오랑캐를 응징했는데 그대는 지금 그것을 배우고 있으니, 나쁘게 변하려는 것이다."
"頌曰: '戎狄是膺, 荊舒是懲.' 周公方且膺之, 子是之學, 亦爲不善變矣"
진상이 말했다.
"허행의 도를 따른다면 시장의 물건 값이 두 가지가 있지 않게 되고, 나라 안에 거짓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비록 어린아이를 시장에 보내더라도 누구도 그를 속이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마포와 비단은 길이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고, 삼실과 명주실은 무게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으며, 오곡은 분량이 같으면 값이 서로 같고, 신발은 크기가 같으면 값이 서로 같을 것입니다."
"從許子之道, 則市賈不貳, 國中無僞. 雖使五尺之童適市, 莫之或欺. 布帛長短同, 則賈相若; 麻縷絲絮輕重同, 則賈相若; 五穀多寡同, 則賈相若; 屨大小同, 則賈相若"
맹자가 말했다.
"대개 사물들이 서로 똑같지 않은 것은 사물들의 실정이다. 그러므로 그 가치가 어떤 경우에는 서로 두 배나 다섯 배의 차이가 나며, 어떤 경우에는 서로 열 배나 백 배의 차이가 나며, 어떤 경우에는 서로 천배나 만 배의 차이가 난다. 그런데 그대는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여 값을 같게 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천하를 혼란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아무렇게나 만든 신발과 정교하게 만든 신발의 크기가 같다고 해서 값이 같다면, 사람들이 무엇 하러 정교한 신발을 만들겠는가? 허행의 도를 따른다는 것은 곧 서로를 이끌어서 거짓을 일삼는 것이니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수 있겠는가?"
曰: "夫物之不齊, 物之情也; 或相倍사, 或相什伯, 或相千萬. 子比而同之, 是亂天下也. 巨구小구同賈, 人豈爲之哉? 從許子之道, 相率而爲僞者也, 惡能治國家?"
■관련 글 하나 : [최인호의 儒林-百花齊放 浩然之氣에서-서울신문]
맹자가 살던 그 무렵에는 이른바 농가(農家)라는 학파도 세력을 떨치고 있었는데, 그 이름이 가리키듯 일반 농민들 사이에서 크게 번창하였던 서민사상이었다. 농가는 맹자와 동시대인물인 허행(許行)이 창설한 학파였다. 그에게는 수백명의 추종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거친 베로 짠 옷을 입고 멍석을 만들고 돗자리를 짜는 일로 생업을 삼았다.
농가의 주장은 이런 것이었다.
모든 백성들은 직접 농사를 짓고 옷을 짜 입어야 한다. 사회의 모든 갈등은 남보다 더 소유하려고 착취하고 빼앗는 데서 생겨난 것이니, 군주 역시 일반 백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영국의 통치에 대항하기 위해서 스스로 물레를 돌려 옷을 만들어 입고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20세기의 성자, 간디의 논리를 연상시키는 사상이었다. 기존의 왕권과 제후들의 통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농민들은 농가의 사상에 현혹되었다.
그러나 맹자의 입장은 달랐다. 즉 정신의 노동(勞心)과 육체노동(勞力)은 엄연히 분리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맹자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을 다스리고, 몸을 수고롭게 하는 자는 남에게 다스림을 받는다(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노심자치인 노력자치어인).” 얼핏 보면 농가의 주장은 만민평등의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실현불가능의 공염불이라고 맹자는 보고 있었던 것이다.
맹자의 주장은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궤변을 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맡은 직능의 전문화가 보다 효율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분업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혁신경제논리였던 것이다.
■관련 글 둘 : [이성무의 선비 이야기] 과거제도와 한국의 발전-한국일보
과거제도는 중앙집권적인 문치주의 국가에서 황제나 왕의 관리를 뽑는 관리등용시험이었다. 시험종류는 문과 무과 잡과의 세 가지가 있었고, 시험과목은 유교경전과 역사, 문학과 전공과목(실기)이었다. 물론 관리가 되는 데는 과거 이외에 문음(門蔭), 취재(取才), 천거(薦擧) 등이 있었다.
문음은 고급관료의 아들을 7품 이하의 관리로 등용하는 제도였고, 취재는 공무원 채용시험이었으며, 천거는 숨어있는 은일(隱逸)이나 우수한 성균관 유생을 발탁(拔擢)하는 인사제도였다. 그러나 고위관료가 되려면 과거에 합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과거의 능력주의, 시험주의는 유교의 교육열과 무관하지 않다. 공자는 사람에게 현불초(賢不肖)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똑똑한 사람은 국가의 지도자가 되고 못난 사람은 지도자를 먹여 살려야 한다고 했다. 노심자(勞心者)와 노력자(勞力者)의 구별이다. 그러면 똑똑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가? 시험을 통해 구별하자는 것이었다.
과거제도의 특징은 혈통으로 기득권을 보장받는 음서(蔭敍)와는 달리 능력으로 관리가 되는 여부를 결정하는데 있었다. 이 시험에 한 번 합격하면 아무것도 아닌 백신(白身)이 갑자기 입신양명(立身揚名)하게 된다. 그러니 누군들 과거시험을 준비하는데 전념하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문운이 일어나고 능력주의, 경쟁주의가 한국인의 DNA가 된 것이다.■
첫댓글 *註1 : 勞心者治人 勞力者治於人...
맹자는 정치사회 구성론의 핵심 주장을 밝혔다. 許行은 군주가 백성과 함께 밭을 갈고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에 대해 맹자는 勞心者와 勞力者는 비유를 들었다. 다만 노심자와 노력자의 구별은 신분이나 직업에 귀천의 차별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또 사람마다 자신의 생필품을 모두 만들어 쓸 수가 없기에 교역을 해야 하듯 대인과 소인은 상호보완 관계에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생산을 담당하는 계층과 정치를 담당하는 계층이 각기 맡은 일을 행하면서 서로 조화하여야 국가사회가 제대로 기능하게 된다고 보았다.[심경호 교수의 한자 이야기-동아일보]
*註2 : 人之有道也 飽食煖衣 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
명심보감 존심편存心編에도 위와 같은 내용이 있다.
夙興夜寐 所思忠孝者 人不知 天必知之 숙흥야매 소사충효자 인부지 천필지지
飽食煖衣 怡然自衛者 身雖安 其如子孫何 포식완의 이연자위자 신수안 기여자손하.
‘아침 일찍 일어나 밤에 잠자리에 들며 충효를 생각하는 사람은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늘은 반드시 알아줄 것이다.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어 만족스럽게 자기만 위하는 사람은
몸은 비록 편하겠지만 그 자손들은 어찌하겠는가’
[심경호 교수의 한자 이야기-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