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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줘잉이라는 작가는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먼 훗날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 중에는 사랑에 송두리째 걸어보기, 은사님 찾아뵙기, 고향 찾아가기, 두려움에 도전해 보기, 추억이 담긴 물건 간직하기, 동물친구 사귀기, 일기와 자서전 쓰기. 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등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댄펜웰 작가는 죽기 전에 해야 할 88가지라고 해서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을 적어 놓았습니다. 결국 그 주제는 결국 나를 사랑하기입니다.
내가 행복하고 내가 즐겁고 내가 원하는 것을 누리고 내가 기뻐하고 내가 중심인 것입니다. 내가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먼 훗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한 일들을 계획하고 그 일들을 찾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께 하듯 하라는 저자 채의숭장로는 화양감리교회에서 36세에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전 세계 오지에 100개의 교회를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아마도 지금 그 꿈이 이루어 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의 가족들 모두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1000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라고 부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일에 모든 자녀들이 아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되어서 계속해서 이 일을 하기로 하였다고 합니다. 부부가 함께 선교의 길을 걷기로 한 것입니다.
한 때 릭웨렌 목사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이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목적을 정하면 그 목적에 맞는 방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직장을 어느 쪽으로 정할 것인지 결정이 되면 그것에 맞는 책을 보게 되고 그것에 맞는 것을 준비하게 되어있습니다.
여행을 할 때 돈에 맞추어서 계획을 세울 것인지 날짜를 따라서 할 것인지, 칠순잔치인지 아니면 신혼여행인지 수학여행인지 그러한 목적이 세워지면 그것에 따라 여행지가 결정이 나는 것입니다. 가끔은 여행지를 먼저 결정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목적에 따라 여행지를 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서부터 배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선하고 좋은 일들은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한번은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앉으시며 말씀을 전할 때 그곳에 큰 무리가 찾아왔습니다.
마15: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15: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그들은 예수님이 기도하며 능력을 보여서 기적을 보게 할 때 예수님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배우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한번은 여리고를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곳에 맹인이 한사람 구걸하고 있었는데 그가 예수님이 지나간다고 하는 것을 듣고 소리치며 예수님을 자신에게로 오시도록 유도를 한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하자 그는 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며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눈을 뜨고 나서 한 일이 있습니다.
눅18: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의 영광은 하나님입니다. 모든 선한 일에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역사하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기도하며 그렇게 도움을 주셨지만 그 능력은 예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역시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셨고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가르치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너희의 삶의 자리에서 행동하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당연히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웠고 그들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는데 말입니다. 사실 가만히 당시의 하나님을 믿는 다는 중심에 있는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그리고 종교인들이라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팔아서 자신들의 이익을 얻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교회 인문주의에서 배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가 자칫 사람을 파렴치하고 몰상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종교는 사람을 매우 헌신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무조건적인 충성으로 도덕 판단을 어지럽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에의 무조건적인 충성 뒤에는 많은 경우에 자기 이익에 대한 관심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무조건적인 충성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은 결국 자신의 겉모습을 보면 종교적 신념 같지만 이득을 얻고자 하는 관심을 위장해 놓은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자 하시는 것은 진정성 있는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참된 영광을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그곳에 모인 그들에게 진심어린 마음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된 삶을 목적으로 살아가길 원한다면 삶의 현장에서 빛처럼 소금처럼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것은 나에게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나의 행동을 보고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의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보면 그 가운데 많은 선생님들과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학생들을 위해서 죽음을 택했습니다. 죽을 확률이 살 확률보다 훨씬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으로 뛰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특히 고 박지영 씨는 세월호에서 선내 방송을 담당하던 승무원이었습니다.
선실 3층까지 물이 차오르자 동료 직원과 승객 구조에 나섰고. 배가 기울어져 책임자들도 배를 빠져나간 상황에서 학생에게 마지막 구명조끼를 양보했습니다.
그녀는 구명조끼도 양보하고 걱정하는 학생들에게는 "선원은 맨 마지막이다" "너희를 다 구하고 나도 따라 가겠다"며 바다로 먼저 뛰어내리게 했습니다.
그녀의 지시를 따른 승객들은 모두 구조됐습니다. 그러나 박씨는 자신의 말대로 맨 마지막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고 박지영씨를 칭찬합니다. 그녀를 기억하고 그녀를 위해서 무엇인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는가 하고 함께 힘을 쏟는 것을 봅니다.
사람들 중에는 그녀를 작은 예수였다고 이렇게 기록하고 함께 공유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선장들과 선원들은 자신들이 구조를 받지 못하고 혹시 마지막에 선원이기 때문에 배에서 나간다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옷도 선원 옷을 벗고 일반인으로 위장해서 가장 먼저 구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저런 자들과 한 하늘아래 살수 없다는 뜻입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같은 사건에서 보여준 행동은 영광을 받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고 박지영씨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높은 도덕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양심은 그녀로 하여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결정짓게 해 주었습니다.
미국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무신론자들이 기독교인들 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는 무신론자들은 반성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대체로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자신의 대한 반성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빛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한행동입니다.
빛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 등불을 촛불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더 쉬울 듯합니다.
자기를 태워야만 자기를 희생해야만 어두움을 몰아내고 그곳에 빛을 허락합니다. 시간이 오래 일수록 자신의 존재는 점점 더 타들어가 없어지고 맙니다.
자기를 위하기보다 다른 일을 돕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경쟁시대입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멈추면 지는 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고 그렇게 해서는 처지는 것 같은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아이가 이천에서 여고를 다녔습니다. 기숙사생활을 했습니다. 한번은 시험을 보는 쯤에 흥분해서 집에 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같은 반 아이들이 필기한 노트를 보여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서로 경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보여주는데 몇몇 친구들은 절대로 자신들이 노트한 것을 보여주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 학교가 미션스쿨입니다. 매주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를 하고 대부분 아이들이 교회를 다닙니다.
또 친구들이라 서로 웃고 함께 운동하고 소풍을 가고 서로 웃으면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데 시험을 볼 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모양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나를 위해서 공부하고 나를 위해서 준비하고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세상에 던져진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뒤떨어지고 세상에서 낙오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어떻게 노트를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나의 삶의 방향으로 잡아야 합니다. 오히려 뒤처지고 늦어지는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조금 늦어도 함께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목적이 분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과 함께 소금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소금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한행동입니다.
소금은 자기는 없어지고 맛을 냅니다. 된장국을 끌이고 김치 국을 끓이고 생선국을 끓였는데 맛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소금을 더 넣습니다. 김치를 할 때 소금이 들어가서 자신이 죽으면서 배추도 함께 죽게 합니다. 그래서 맛을 냅니다.
저는 시온성교회에 목회를 하면서 소금에 대해서 더 한 가지 배웠습니다. 그것은 눈이 와서 도로가 미끄러울 때 소금을 뿌리면 얼어있는 곳을 녹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얼어붙어 있는 공동체를 녹이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녹이지 않으면 엄청난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그곳으로 차들이 다니지 못하고 사람들이 잘못하면 큰일을 당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소금은 철저하게 그곳을 녹여버립니다.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행동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이 아름답고 존귀함을 받는 것은 그 분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목적을 세우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삶의 목적을 세우는 자는 복된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슈바이처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여 산을 바다로 옮긴 사람입니다.
권즈바하라는 곳에서 목사님의 가정에 태어난 그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지냈습니다.
한번은 동네 친구들과 싸움을 해서 친구 하나를 때려눕혔는데 그 친구가 “나도 너처럼 고기를 먹고 자라면 싸움에 이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짧은 말 한마디가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그때부터 그는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또 어느 날 말을 타고 가던 길에 그 말이 느릿느릿 걸어가기에 채찍을 내리쳤는데 그래도 빨리 갈 생각을 하지 않기에 자세히 살펴보니 이미 너무 늙어서 아무리 때려도 뛸 수가 없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안 슈바이처는 생명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목사요,신학자,철학자,의사,파이프오르간연주자였던 그는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인기,존경,부유한 생활)을 뒤로하고 하나님께서 좋다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 아프리카 밀림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90평생을 바쳤습니다.
그가 아프리카로 가고자 할 때 세 가지 희생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먼저 오르간 연주입니다. 즉 예술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 교수 활동을 중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하나는 부유한 생활을 희생해야 했습니다.
예상대로 그는 아프리카에서 오랫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 결단은 자기가 아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더 좋은 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파리 바하음악연구소가 열대지방에서도 잘 견딜 수 있는 파이프 오르간을 만들어 기증했습니다. 유럽 여러 대학에서 그에게 특별강의를 부탁했습니다. 중지했던 교단에고 계속 설 수 있었습니다. 생활면에서 강의 ,연주 그리고 원고료까지 합하면 오히려 유럽에서의 생활보다 더욱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고 그는 그의 저서 “나의 생활과 사상”에서 감격스러운 어조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의 결단은 상상하지 못한 하나님의 기이한 준비하신 축복을 만나게 됩니다. 그 순수한 결단에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 동행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적어도 신앙인이 아닌 이들의 양심보다 더 큰 선한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는 제자들이 마땅히 보여야 할 삶의 태도입니다.
비록22살의 나이이지만 의사자로 살다가 간 고 박지영 씨의 삶을 보며 비겁하지 않길 다짐해 봅니다. 다른 모습이라도 그 만큼의 삶을 살 수 있는 각오가 결심이 있길 생각해 봅니다.
내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힘써야 합니다. 내가 사는 것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나의 진정한 목적이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