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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웹진 노블 이달의 장원작 / 천서봉 겨울삽화2 -병상일기 병실의 창문은 벙어리였다 검은색 코킹제로 봉합된 혀 언제부터 저 입 굳게 다물었는지 여문 시간의 가장자리로 곰팡이 꽃 더듬거리며 피었다 지면 여기 얼마나 많은 가슴들이 스스로의 말문에 족쇄를 달며 돌아갔겠는가 외로운 것, 소리없는 것 몸밖으로 밀고 나간 영혼들이 올올의 심지처럼 서서 눈 먹먹하도록 진눈깨비 뿌렸다 무슨 검사를 하러간다던 옆 침대의 환자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쓸쓸한 쟁반 위의 한끼가 그를 기다리고 나는 기다릴 것도 없는 저녁의 과일들을 다시 한 번 씻어놓는다 막막한 내 숨통의 길을 찾아 천정에 매달린 환풍구가 웅웅웅 겨울을 앓고 있는 동안 내 오랜 병상을 붙들어 오던 불구의 사랑도, 필경엔 거울이나 되어 서성이는 저녁의 창문같은 것임을 알겠다 [감상] 좋은 시를 읽으면,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맛난 것을 음미하듯 천천히 되읽게 합니다. 시의 가장 큰 매력은 직관력입니다. 새롭게 명명하는 풍경들에서 그런 매력들이 묻어나는데 "병실의 창문은 벙어리였다"의 도입부가 그러한 예입니다. 이 시가 탁월한 이유는 병실의 체험이 고즈넉이 느껴진다는 점이지요. 그래서 삶과 죽음을 목도하는 병실은 그 자체가 시적인 공간인 셈이기도 합니다. "쓸쓸한 쟁반 위의 한끼가 그를 기다리고"가 아슴아슴 실존實存의 의미를 되새김질하게 합니다. "필경엔 거울이나 되어 서성이는/ 저녁의 창문같은 것임을 알겠다"의 표현도 좋은 발견입니다. 병실 안에서 보면 밖이 어두워 유리창은 거울처럼 형광등 불빛을 받아낼 것이고, 그것이 병실의 창문이 아니라 그 저녁의 창문이라는 알레고리가 되어 안과 밖이 뒤바뀐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
첫댓글 잔잔한 분위기가 시의 매력을 일깨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