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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윈난성 차산지의 차나무. |
별이 쏟아진다. 비박(bivouac)용 미니텐트에 홀로 누워 바라보는 하늘은 더 이상 그려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별이 가득하다. 부랑족(布朗族)이 집에서 담근 알코올도수 70도에 육박하는 위미주(玉米酒)를 그들과 밤새 마셨는데도 잠은 오지 않는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니 인공의 불빛 한 점 없는 칠흑이다. 어둠 속에서도 사람을 압도하는, 원시림이 뿜어내는 거대한 자연의 기가 느껴진다. 한여름 밤이지만 소름이 돋는다. 이곳은 중국 윈난(雲南)의 차산(茶山).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보이차(普茶)를 접한 것이 한두 해가 아니다. 보이차업을 하는 것도 아니다. 새삼 무슨 마력에 이끌려 윈난의 차산을 헤집고 다니고 있는지 나도 내가 궁금하다. 나는 ‘차의 세계’라는 강호에 포진한 수많은 고수들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초보다.
차와 차산, 그리고 차산 사람을 보고 싶어 윈난 탐방을 작심하고 돌아온 게 1년 만이다. 이곳에 온 지도 한 달이 넘었다.
차를 즐기는 나는 업무차 중국에 가는 길에 짬을 내어 차산지를 일부러 찾아갔다. 하지만 이번처럼 한 달이라는 시간을 할애하여 차산을 주 목적으로 작정한 것은 처음이다.
관광코스처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규모 인공차밭이 아닌 고차수와 야생 차나무가 숨 쉬는 깊은 차산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때문에 험로를 대비한 사륜구동 차량 확보가 필요했다. 또 차산에 밝은 사람이 동행해야만 한다. 여러 사람과 일정을 맞춘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버스가 다니는 차산도 많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기에는 끊기기 일쑤이며 이곳은 탐방 목적과 부합하지 않기에 기동력을 갖추는 게 필수였다.
생업이 있는 분들이고 현지의 날씨도 고려해야 하다 보니 봄에 출발하려던 여정이 여름에도 별 진전이 없었다. 해를 넘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디데이만 정하고 모든 것은 현지에서 추진하자’고 결심했다. 1년 남짓 세운 계획을 버리고 무작정 출발하였다.
3년 전 처음 방문하였을 때처럼 오늘도 밤을 하얗게 새우기도 전에 산골의 수탉은 때 이른 아침을 재촉한다. 새벽안개에 젖은 부랑산의 아침은 환상이었다. 상큼한 바람이 안겨주는 신선한 공기는 불면에 시달린 머리를 어느새 맑게 만들어버린다. 300년 이상 된 고차수(古茶樹)와 함께 살아가는 야생란의 자태는 시간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한다.
- ▲ 만신롱라오차이의 300년 넘은 고차수의 야생란.
부랑산은 신6대 차산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차산. 최근 몇 년 사이에 보이차의 원료가 되는 생엽(生葉) 가격이 가파르게 수직상승하고 있는 뜨거운 지역이다. 고차수(古茶樹)로 만든 생차(生茶) 중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라오반장(老班章)을 비롯하여 신반장(新班章), 라오만어(老曼峨) 등 유명 차산을 품고 있는 부랑산에서도 길이 험하기로 유명한 라오반장보다 훨씬 더 거친 험로를 거쳐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 만신롱라오차이(曼興龍老寨)다. 험한 길 덕에 아직도 건강한 차산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인 차상과 대형 차창(茶廠·전통수공제조 차공장)이 아직은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길이 험하다는 건 단순히 오가기가 힘들다는 뜻이 아니다. 어린 잎을 따고 적절한 시간 이내에 위조(萎凋)와 살청(殺靑), 그리고 유념(捻)과 쇄청건조(灑菁乾燥)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만신롱 차농의 제다(製茶)기술은 믿고 맡기기에는 편차가 너무 심하여 균일한 제품을 만들 수 없다. 소량의 고차수를 위하여 1차 가공시설인 초제소를 지어 전문 기술자를 상주시킬 경우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 경제성이 없다. 만신롱의 차농들은 고차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수차와 대수차원을 760묘(1묘는 약 660㎡)나 소유하고 있어 이들을 고차수와 함께 사라고 요구한다. 중국인 전문가들도 이곳 고차수를 탐하지만 차산에 쉽게 손을 못 대고 있다.
만신롱라오차이를 여러 차례 방문한 나는 지난 3월 평소에 잘 아는 고수차 생산만을 전문으로 하는 차창의 중국인 사장을 만났다. 그와 숙식을 함께하며 짧은 중국어(만신롱이라는 단어와 엄지손가락)로 집요하게 설득하여 차창의 직원을 만신롱으로 파견하여 차농 구애 작전에 돌입하게 만들었다. 결과는 참패였다. 차농들의 요구가 너무 높아 경제성도 없었을 뿐더러 나름 고수차가 전문인 차창 사장의 체면과 자존심이 상했던 것이다.
사흘간의 냉각기를 가진 후 나는 차창 사장에게 말했다. “진짜 자존심이 다치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것이다. 돈이 필요하면 우선 주겠다. 올해 못하면 내년에도 할 수 없으니 진정 고수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뜻을 세웠을 때 같이 하자!” 그는 현실적인 논리와 어려움을 장시간 차근차근 설명했다. 나의 짧은 중국어 실력이 오히려 고마운 하루였다. 그가 한참을 진지하게 나를 설득하고 나면 나의 대답은 변함없이 한 마디였다. “그래도 하자.” 말로 안 되자 그는 평소처럼 술을 권하였다. 대낮부터 마오타이를 한 병씩 비우던 우리 사이였지만 그 순간은 단 한 잔도 마시지 않고 굳은 표정을 고수하였다. 다음 날 그는 차창 직원과 만신롱을 잘 아는 부랑족 현지인을 섭외하여 차산으로 보냈다. 결과는 고차수만을 구매하는 데 어렵게 성공하였다. 그가 당한 것인지 내가 당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축배를 들었다.
며칠 전 지인을 통해 내가 고집한 만신롱의 차가 선주문 형식으로 모두 팔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인으로서 윈난의 고차수 차산을 하나 개발해냈다는 뿌듯함에 좋았다. 나로서는 자그마한 쾌거다.

1956년 부산 태생. 유현목·이두용 감독 밑에서 영화를 배운 뒤 1984년 영화감독으로 데뷔.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조예가 깊음. |
첫댓글 참조 : 만신롱(曼興龍)은 포장도로변에 있는 신짜이(新寨)와 현재는 도로 공사 중이지만 비가 오면 며칠 동안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이 되어버리는 라오짜이(老寨)가 있습니다. 만신롱이란 한자도 다르게 쓰기도 하는데, 이는 소수민족의 발음과 근접한 한자를 음차하여 쓰기 때문입니다.
고수차(업계에서 통용되는 용어 : '고수차'란 단어를 중국법으론 상품에 사용을 금하고 있다 // 고차수와 야생차나무 보호 차원)의 원료가 되는 나무는 라오짜이에 분포되어있습니다. 현재는 2곳의 차창에서 초제소를 운영하며 소수차와 대수차를 모두 구매하고 있습니다. 라오짜이에서도 산채를 중심으로 위쪽에 있는 다원에서 채취한 찻잎이 우월합니다.
돈이 전부로만 아는 졸부들 세상에서
구름에 달 가듯이 ...최고의 행복지수를 누리는 서영수 감독님이 계시군요.
진짜 싸나이, 멋진 사나이입니다.
간접경험인 글읽기에도 감동이 물결 치는데
직접경험을 하신 당사자는 하늘 아래, 땅 위에
그 어떤 부러움도 없을 듯한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에 퐈이팅!!!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편안한 일요일 되세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