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필을 어떻게 쓰고 있나 수필의 날에 청탁원고

[박지연]

나는 수필을 어떻게 쓰고 있나

박 지 연

  여러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기도 한다. 나는 그동안 주변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를 그리 많이 쓰질 못했다. 그러나 한국은행 재직 시 몸에 배인 본능적 감각으로 어려운 나라 경제를 볼 때마다 눈 감을 수 없어 깊이 파고 들었다.

방송국과 신문사 기자 생활의 특성상 체질화된 나는 사건을 놓치지 않으려고 몸으로 취재하고 철저한 메모를 통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후미진 곳에 시선과 관심을 가졌다. 밤을 하얗게 지새며 열정을 쏟은 《1달러의 빌견》 작품집은 IMF 시절의 시련과 글로벌경제위기를 다룬 경제 에세이집이다.

  신문에 연재한 ’화폐 이야기‘ 시리스를 담고 유럽 남미 등 경제 위기 극복의 이야기와 세계신용의 상징 스위스은행의 명암, 전후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눈물 나는 이야기, 포퓰리즘에 빠진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디 아바타 에바 폐론을 상기하고 스토리텔링의 명수, 영국 작가 조앤 롤링의 ’헤리포터‘시리스로 10억 달러의 부러운 작가의 이야기도 썼다. 생텍쥐폐리의 50프랑, 홍례문을 건립하며 가난한 민초들의 눈물도 봤다. 반 고흐의 나라 네덜란드의 화폐 글덴에 얼킨 이야기도 담았다. 유럽은 세계 제1.2차대전을 통해 서로 적대시하다 다 망하고 폐허 속에서 경제를 살려야 하는 당면한 문제가 많았다. 이제 싸우지 말자고 1990년부터 유럽연합(유로)이 탄생하며 경제 지도가 달라졌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조폐공사의 기술력으로 외국의 화폐를 발행해 외화를 버는 것도 알렸다.

  “우리가 역사를 바꿀 수는 없지만 가장 수치스러운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라고 게르하르트 수뢰더 서독 총리는 나치 독일의 만행을 기회 있을 때마다 사죄하며 1952년부터 지금까지 700억 달러(약 79조 원)를 피해 입은 유대인에게 보상하고 10억 달러를 더 보상했다. 그러나 패전국 일본은 75년이 넘었는데도 망언만 쏟아내고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의 대법원판결을 핑계 삼아 아베 총리는 2019년 7월 경제보복을 가했다. 교과서에 왜곡된 역사를 거짓 가르치는 일본은 선진국대열에서 경제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이미 낙오되었다.

  우리는 바른 역사를 후손에게 끊임없이 가르쳐야 바른 정체성이 우뚝 선다. 그 일을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라도 써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세계인의 조건》이란 시사 에세이를 출간했다. 이 안에는 기업이 장래가 유망한 인재를 기르는 메세나 이야기, 우리처럼 식민지로 압박당한 유럽 변방의 아이랜드의 엑서더스, 미 최고의 도시 드트로이트의 몰락의 의미, 러시아의 문호 도스톱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통해 본 ’저당물‘의 시각차를 다뤘다. 이전 시대 청나라 장군 원세개가 끌고 온 무뢰한들이 우리에게 돈놀이로 착취, 일본인들의 자본이 우리에게 어린 딸들을 인신 저당물로 삼은 호각시, 왜각시의 비극을 분노하며 썼다. 샌프랜시스코 조약의 오류로 지금까지 제 땅이라 우기는 일본, 독도를 바로 알려야 한다. 드디어 2011년 무역 1조 달러 달성해 환호했다. 2008년 리먼 사태로 글로벌 위기가 아직 남아 유럽의 남 오랜지 국가들이 재정적자에 시달리는데 우린 대단했다. 외교의 결기와 디렘마 등 정치경제 사회에서 작가의 눈으로 놓칠 수 없고 묻히기 쉬운 것을 찾아 시사 에세이에 모두 담았다..

  지금은 잊었을까. 국가의 부도 위기를 맞은 23년 전 외화가 바닥이나 급하게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손을 벌려 우리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던 1997년 11월 21일을 우리는 경제국치일이라 하여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OECD에 가입하고 축배를 든 지 1년이 안 되어 치욕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외환위기는 외화의 유동성 부족과 정부의 환율관리의 실패에서 비롯되고 대기업의 과다하고 무분별한 차입의 팽창으로 인한 방만한 경영에도 원인이 있었다.

  기업이 줄도산으로 한 달에 3000개 이상 무너졌다. 대출한 돈이 돌아오지 않아 은행도 같이 무너지고 예금주는 천금 같은 돈을 잃고 발을 동동 굴렀다. 1997년의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다. 공장의 굴뚝이 연기를 뿜지 못하고 서울역에는 매운 찬바람에 회사에서 밀려난 노동자들이 초라한 보따리를 들고 고향의 혈육을 찾아가는 고개 숙인 행렬이 길었다. 거리에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얼굴에는 희망이 보이질 않고 절망의 눈망울은 빛을 잃어 어두웠다. 나라 안이 비상사태가 되어 가진 자도 자랑할 일이 아니고 모두 검소한 패턴으로 달라졌다. 겨울에 입으려던 고가의 밍크코트는 꺼내지도 못하고 간혹 눈치 없고 철없는 여인이 어쩌다 입고 나오면 불총 맞기 일쑤였다. 주부들은 고가의 반지도 손가락에서 빼어놓았다. 아이들의 과외비를 줄이고 뭐든 중단하고 긴축가계를 꾸렸다. 젊은이들은 결혼까지 미뤘다.

  그때 천정부지로 치솟는 미국 달러는 달러당 900원 하던 게 1962원으로 두 배를 넘자 유학비를 견디다 못한 아이들을 모두 귀국시켜 미국 대학들은 등록금을 대출해 주겠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나라가 살아야 국민도 있다는 절박한 애국심은 금 모으기로 장농에 감춘 금비녀, 손가락에 낀 반지, 어르신 옷 단추, 돌반지까지 보탰다. 정부도 외자유치를 성공적으로 해내 빠른 시일 안에 굴레를 벗었다.

  외환위기가 준 아픔은 가혹했지만 기존 시스템과 구조는 다 무너지고 우리가 익숙치 않은 ‘글로벌 스탠다드’가 자리를 잡았다. 그간 믿어 왔던 신화는 무참히 깨졌다. 30대 기업도 반 이상 공중분해 되고 지명도 높은 은행들이 외국자본에 헐값으로 넘어가 빈껍데기만 남았다. 그러나 아픈 만큼 성장해 경제기반이 단단해졌다.

  지금 보유 외환도 4.097억 달러로 세계 9위다. 세계가 하루 권이 된 IT 시대에 나는 시각을 넓혀 우리가 배우고 전해야 할 소재를 찾아 후손에게 바로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