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원과 거제, 통영, 고성, 사천, 남해 등 경남 바다를 찾으면 점점이 떠 있는 하얀 부표가 푸른 바다색과 대비되며 더욱 뚜렷하게 다가온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이어지는 경남 연안 바다를 장식하는 굴양식장이다.
겨울철이면 이들 굴양식장은 '바다의 보물'을 건져 올리는 곳으로 변한다.
최춘환 편집장
-
서양선 남자·동양선 여자의 식품 '굴을 먹어라, 보다 오래 사랑하리라(Eat oysters, love longer).'
옛 문헌이나 내려오는 이야기를 보면 서양인들은 굴을 정력제로 여길 만큼 집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플레이보이 대표 인물로 회자되는 카사노바는 <내 생애의 역사>라는 자서전에서 여인을 유혹하는 날 저녁 굴 요리를 먹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렇듯 서양에서 굴이 남성의 식품이라면 동양에서는 여성의 식품이다. '배 타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검어도 굴 따는 어부의 딸은 얼굴이 하얗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굴을 먹으면 피부가 고와진다고 했다. <동의보감>에도 '굴은 몸을 건강하게 하고, 살결을 곱게 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니 바다에서 나는 음식 중에서 제일 좋다'고 했다.
굴이 우수한 식품이라는 것은 영양학적으로도 입증된다.
굴에는 철과 요오드, 구리, 아연, 망간 등의 각종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하다. 굴에 함유된 영양성분들은 피부조직 재생과 면역력 강화에 좋을 뿐만 아니라 남성호르몬 분비를 촉진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굴은 특히 단백질 함량이 10%정도인 데다 우유와 같이 영양분을 균형 있게 함유하고 있어 '바다의 우유'라고도 불린다.
바닷가 굴 요리 전문식당도 성업 우리나라의 굴 요리는 다양하다. 초장에 찍어먹는 굴회와 굴무침, 굴생채 등 생굴 요리를 비롯해 굴구이, 굴튀김, 굴전, 굴찜에다 굴국밥과 굴밥, 그리고 젓갈로 담은 어리굴젓까지. 김장김치와 함께 먹는 돼지고기 보쌈도 맛있지만, 김장김치에 굴 한 점 올려놓고 먹는 굴보쌈도 별미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바닷가 굴 요리 전문식당들도 성업을 이룬다. 겨울바다를 온몸으로 느끼며 미식여행을 즐기기에 거제와 통영, 고성, 사천, 남해 등 경남도내 바다를 낀 어느 곳이든 좋다. 대도시와 가까운 창원시 진해구 안골동과 마산합포구 구산면 반동리 바닷가도 겨울바다를 즐기며 싱싱한 굴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굴 구이는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가 대목입니다. 하루 3000여명이 다녀간 기록도 있습니다. 손님들의 비율이 지역사람과 외지인 3대 7 정도이니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측면도 크지요."
거제시 거제면에서 굴양식장과 굴 구이 전문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백흥기(65)씨는 IMF 때 활로를 모색하다 당시 서해안과 전남 지역에서만 유행하던 굴 구이 전문점을 도내에서 처음 열었다. 18년여 지난 지금은 거제에만 굴 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40여개나 될 정도로 일반화됐다고 한다.
굴 요리는 다른 양념이나 특별한 레시피가 없어 어느 식당이나 맛의 차이가 별로 없다. 가격도 비슷하다. 굴 구이 전문식당에서는 구이 외에도 초장에 생굴을 찍어먹는 굴회와 굴회무침을 비롯해 굴전과 굴튀김, 굴탕수육 등 다양한 요리도 맛볼 수 있다. 요즘은 굴죽과 굴라면까지 메뉴를 다양화하는 추세다.
다양한 굴 요리를 맛보고 싶다면 세트메뉴를 권한다. 식당에 따라 세트메뉴의 종류와 구성이 약간씩 다르지만 대체로 굴구이와 굴무침, 굴탕수육, 굴튀김에다 별미인 굴죽이나 굴라면 등으로 구성된다. 가격은 4인 기준 7만원, 3인 기준 5만6000원, 2인 기준 4만원이라 2~3명이 가도 큰 부담 없이 세트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 생굴이 모여드는 굴수협 위판장
굴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생산한다. 김장철인 11월부터 12월까지는 수요가 많아 가격이 좋다. 그래서 이맘때면 경남 남해안 곳곳에서는 굴을 따내고, 까고, 출하하느라 분주하다.
통영에 있는 굴수하식수협 위판장에는 매일 오후 2시와 6시 진행되는 경매 시간에 맞춰 남해안 곳곳에서 생산된 굴이 속속 모여든다.
"굴의 특성상 신선도 유지를 위해 하루 2회 경매를 진행합니다. 경매를 위해 들어오는 굴은 굴수협 연구소에서 신선도 검사를 거쳐 위판장으로 갑니다."
위판장에서 만난 엄철규 굴수협 지도경제상무는 생물인만큼 신선도를 유난히 강조한다.
굴수협 위판장에서는 요즘 10㎏들이 한 상자의 위판 가격이 10만원을 호가한다. 제철인 데다 수요가 많아 가격대가 좋은 편이다. 수협 중매인들이 사들인 생굴은 마트나 재래시장 등을 통해 유통된다. 택배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바로 보내기도 한다. 11월과 12월을 지나면 1월부터 생산되는 굴은 주로 가공품 등 수출용으로 많이 나간다.
경남도내 굴양식장은 통영(300건·1295㏊), 거제(203건·947㏊), 고성(202건·940㏊), 남해(32건·207㏊), 창원(34건·122㏊), 사천(2건·11㏊) 순으로 분포돼 있다. 거제와 통영, 고성으로 이어지는 바다에 하얀 부표가 유난히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이 1973년부터 수출용패류생산해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는 해역이기도 하다.
소득․일자리 창출 수산업의 효자 전국 굴 생산량 중 80% 정도를 차지하는 경남은 지난해 3만8550t의 굴을 생산해 283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굴산업 종사자 수를 봐도 굴이 경남 수산업의 효자 품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굴수협에 따르면 굴산업 종사자는 2만2000여명에 달한다. 어업인 2000여명과 가공업 2000여명, 유통업 종사자 4000여명이다.
겨울철이면 굴 까기에만 하루 1만4000여명의 여성인력을 필요로 한다. 요즘 경남 해안 곳곳의 굴박신장(굴 까는 작업장)에서는 적게는 5~6명에서 많게는 50여명이 굴 까기에 여념 없다. 깐 굴의 양에 따라 지급되는 인건비도 만만찮다. 1인당 많게는 20만원, 적게는 10만원 정도 받는다. 하지만 하루 종일 서서 하는 일이라 인력 구하기가 쉽지 않다.
통영에서 거제대교를 지나 견내량 북쪽 해안에 자리한 명등수산을 찾았다. 여성 40여명이 양식장에서 금방 따온 굴이 수북이 쌓인 긴 테이블을 마주하고 손을 분주하게 움직인다. 중년 여성과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가끔 보이는 젊은 여성은 결혼 이주여성이다. 양식장 바지선에서 굴을 채취하는 남성 인부들도 외국인근로자들이다.
"3D 업종이다 보니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겨울철이면 사람 구하고, 실어 나르는 게 일입니다."
엄준 명등수산 대표는 "매출을 많이 올려도 인건비로 나가는 비용이 많아 다른 패류 양식에 비해 수익은 적은 편"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한여름 동안 굴을 품었다가 내어놓는 겨울철 경남 바다는 어업인 소득과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하니 '바다의 보물'이라고 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