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9월 17일 드디어 대규모 공수부대 낙하가 시작됩니다. 마켓 가든 작전은
무려 20,000명이 넘는 병력을 낙하산과 글라이더로 목표 지점에 투입하게 됩니다.)
Day 1
1944년 9월 17일 일요일 드디어 작전 개시일이 밝았습니다.
시작은 순조로왔습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때는 야간에 실시된 공수부대 낙하 작전은 독일군의 강력한 대공포 사격으로 엄청난 숫자의 수송기와 글라이더들이 공수부대원들을 고스란히 태운 채로 불덩어리가 되어 지상으로 추락했는가 하면, 대공 포화와 독일군 방어 부대의 기관총 사격을 무사히 피하여 지상에 착지한 공수부대원들조차 목표지점에서 20km나 떨어진 지점에 뿔뿔히 흩어져서 집결하는데 고생을 하였던 것과는 달리 당시 작전에 투입되었던 제62 공수사단의 보고서를 참고하면 병력 전체의 89%, 글라이더의 경우 84%가 강하 목표 지점에서 1km 이내에 낙하하거나, 착륙하였다는 기록이 습니다. 물론 노르망디와 마찬가지로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낙하산들고 글라이더들을 향한 독일군의 대공 사격이 있긴 있었지만 노르망디처럼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고 실제 피해도 경미했습니다.
그들의 행운은 거기까지였습니다.
(다시 한번 지도와 친숙해질 때입니다. 동쪽은 독일, 서쪽은 네덜란드,
네덜란드 쪽에 3개의 도시 아른헴, 네이메헨, 에인토호벤 이곳에서
연합군 공수부대들이 투입되어 목표한 교량 및 도시 점령을
위한 역사적인 작전이 시작됩니다.)
남쪽 에인트호벤 근처에 낙하한 미육군 제101 사단(맥스웰 테일러 소장 지휘)은 목표한 라인강을 건너는 5개의 교량들 중에서 4개는 점령에 성공하지만 에인트호벤 북쪽에 위치한 손(Son)이라고 불리는 마을에 있는 교량은 독일군이 미리 폭파시켜서 확보에 실패하였습니다. (애초 계획이 교량 확보에 실패하면 후에 보병부대와 함께 진입한 공병부대가 가교를 설치하여 도강하기로 되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지역을 방어하는 독일군 제59 보병 사단의 공격은 격퇴하였고 일부 병력을 나누어 남쪽으로 이동시키는데까지 성공하게 됩니다.
(마켓 가든 작전에 101 공수 사단과 82 공수사단이 사용한 글라이더)
북쪽은 미육군 제82 공수사단은 네이메흔 남서쪽에 낙하하여 두개의 교량을 점령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그지역에 그뢰스비크라 불리는 언덕을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반격을 위해 강을 건너 올 독일 전차들과 포병 부대들이 이 언덕 위에서 낮은 지대에 미군들을 향해 포 사격을 하면 변변하게 대전차 화기도 갖추지 못한 공수부대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곳을 방어하던 독일군 기존 병력에 아른헴에서 달려온 정찰부대가 추가되어 의외로 강력한 방어를 맞닥뜨리게 되었고 결국 그들을 격퇴하고 고지를 점령하는데까지 의외로 긴 시간이 걸리게 되었는데 그리고 나서 네미메흔에 교량을 점령하려다 보니 뒤이어 추가로 투입된 독일군측 제 9 정찰부대 병력의 공격을 받고 결국 네이메흔에 있는 교량 점령에 실패하게 된 것입니다.
(마켓 가든 작전 당시 네이메흔 교량의 모습)
다른 교량들의 경우 강폭이 비교적 좁고, 수심이 얕아서 교량을 점령 못하는 경우 위에서 말했듯이 가교를 설치할 수 있었지만 네이메흔의 경우는 강폭이 넓고, 수심이 깊은 탓에 교량 점령을 실패하면 대책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애초 계획했던 교량 점령을 실패하고 가교 설치 대책도 소용없는 경우 그곳을 통해서 도하하려고 진격해오고 있는 대규모 보병 사단들은 강을 건널 방법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네이메흔 교량 점령 실패는 마켓 가든 작전의 실패를 의미하는 셈입니다.
영국군 제1 공수사단의 경우 다른 부대들과 마찬가지로 큰 저항 없이 아른헴 북서쪽에 낙하에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앞에 글에서 말했듯이 1일 수송기 비행을 1회로 한정하는 바람에 원래 투입 병력의 절반만 첫날 목표지점에 투입되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실제 강하 지점이 목표 지점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에 떨어졌고 (다른 부대들에 비해서 큰 불운이었습니다.) 결국 후속 병력의 낙하를 위한 강하 지점 수비를 위한 병력과 교량 점령을 위한 병력이 나뉘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가뜩이나 부족한 병력을 또 쪼개야 하다보니 그만큰 전력의 약화를 감수해야 했던 것입니다.
(실제 마켓 가든 작전 개시일인 1944년 9월 17일 영국 제1 공수사단 소속 병사들의 전투 장면)
여기서 할리우드 액션 영화 스타일의 공격이 전개되는데 바로 교량 점령을 위한 선발대가 글라이더로 수송된 지프 차량에 올라타고 교량을 향해서 질주해가는 용감 무쌍한 "진격"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교량에 도착한 선발대는 이미 굳건하게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기다리고 있는 독일군 병력들을 만나게 된데다가 후속 병력들이 착륙한 글라이더 속에서 지프차를 꺼내는데 애를 먹는 바람에 공격이 늦어져서 고작 1개대대 규모의 선발대를 가지고 교량 점령을 위한 공격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때 네이메흔 쪽에 낙하한 82 사단을 방어하기 위해서 그곳을 지나가는 독일 지원병력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제1 공수사단의 부족한 숫자로 그들을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그들을 지나쳐버린 독일군 추가병력은 미 82 공수사단이 네이메흔 교량 점령을 실패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됩니다.
(영국 제1공수사단을 지휘했던 로이 울쿼하트 소장. 마켓 가든
작전 중에 많은 불운한 지휘관들 중에서도 특히 더 불운했던
장군이었습니다. 마켓 가든 작전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별을
두개나 단 장군이 부하들과 함께 글라이더나 낙하산으로 적진에
뛰어드는 용맹함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 "머나 먼 다리"에서는 숀 코네리가 연기한 바로
그 장군이 울쿼하트 소장입니다.)
한편 제1공수사단 소속 2개 대대는 아른헴 교량 점령을 위해 진군하는 도중에 독일군의 공격을 받고 존 프로스트 소령이 지휘하는 제2대대는 우회하여 아른헴 교량에 도착하지만 제1대대는 독일군과 교전을 하느라 결국 그자리에 발이 묶여버렸습니다. 막상 아른헴 교량에 도착한 존 프로스트 소령의 대대도 두차례나 공격을 했지만 교량을 방어하는 독일군을 퇴각시키는데 실패합니다.
(아른헴 교량 점령 임무를 맡았던 영국 공수부대 존 프로스트 소령(좌측), 영화 속에서
안소니 홈킨스가 연기하였습니다.)
무전기로 인한 통신 두절 사태
이런 어지러운 상황에서 미군과 영국군이 사용하는 무전기의 성능으로 인해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즉 연합군 공수부대에게 지급된 22식 무전기는 5마일 반경의 통신거리를 가졌는데 실제 부대들끼리는 8마일 이상 떨어져있다보니 서로간에 교신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마켓 가든 작전 전에 반복되는 강하 작전 계획과 취소로 인해서 무전기의 배터리가 충분히 충전되어있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전쟁터 한복판에서 무전기 배터리가 끝나버린 부대도 있었습니다. 여기다가 한술 더 떠서 미군은 장거리 고주파를 사용하는 무전기였고, 영국군은 단거리 저주파를 사용하는 무전기였던 탓에 함께 전쟁터에 투입된 같은 연합군이면서도 미군과 영국군이 통신이 두절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나마 작동되는 무전기들조차 독일군의 박격포 공격을 받으면서 부서져버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앞에 글에서 설명했듯이 "마켓 작전"이 공수부대 작전이었다면 "가든 작전"은 공수부대가 점령한 지역을 제30군단 보병 병력들이 영국 정예 기갑사단과 함께 물 밀듯이 쳐들어가서 첫날에는 제101 공수사단이 점령하기로 되어있는 에인트호벤을 접수하고, 둘째날에는 82 공수사단의 네이메흔 교량을 건너 그 이후 이틀 동안에 제1공수사단의 아른헴 지역까지 전진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위에서 보았듯이 공수부대의 "마켓 작전"부터 이곳 저곳에서 "구멍"이 나기 시작한데다가 작전 개시일 아침 일찍 떠나야 했던 제30군단은 오후 2시 30분이 되어서야 출발하는 또 하나의 중대한 차질이 발생합니다. 게다가 출발하고 나서도 엄청난 교통 체증으로 더디게 이동할 수 밖에 없었는데 차량들이나 전차들이 고장을 일으키는 경우 좁은 도로에서 꼼짝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고작 오후 5시까지만 이동하여 아인트호벤 남쪽 15km 지점에 도착하고는 이동 병력이 모두 정지하게 되는데 이유는 당시 야간에는 전차와 차량 이동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던 탓에 앞서 도착한 공수부대들은 밤낮을 가리지않고 독일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는 상황임에도 후속 지상군 병력과 기갑부대는 첫날 고작 3시간도 안되는 이동 후에 그자리에 멈춰서는 바보같은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한편 독일군은.....
독일군은 첫날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초기에는 방어군 사령관 발터 모델 원수를 납치하기 위한 연합군 공수부대의 기습 작전이라고 오해했습니다. 하지만 명석한 두뇌의 제 2 무장 친위대 기갑군단의 비티리히는 공수부대의 목표가 교량 점령이라 판단하고 교량을 방어하기 위한 추가 지원 병력을 신소하게 보내었고 그날 밤이 될 때까지 모델 원수와 독일 지휙관들은 연합군의 목표가 무엇인지 충분히 파악하게 됩니다.
다음회로 이어집니다.
첫댓글 오늘은 단숨에 읽어버렸네요.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재미있는 소설 읽듯이 읽어버렸습니다. ^^'
허걱! 속독법 하시나요? 방금 올렸는데?
연합군은 우왕좌왕. 독일군은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 흠... 뻔한 결과였겠지만, 윗사람들은 밀어붙였겠죠? 흠. 이 영화 봐야겠는데요.
사전 지식 없이 영화만 보는 것보다 전체 상황을 예습(?)하고 영화를 보면 더 재밌을겁니다.
요즘같이 정밀타격 어쩌고 하면서 미사일 몇방 슝하고 날아가버리면 전쟁스토리가 없죠... 하지만 저런 전사들은 참 아기자기 하게 느껴지고 더 스릴이 있습니다.
벌써 글 번호가 어마어마하네요... 대서사시를 방불케 합니다. 이 게시판만 읽어도 이차대전사 공부는 끝이죠. 그간에 형님의 노고들이 느껴지는 게시판이라서
항상 들어올때마다 자랑스럽습니다. 까페의 좋은 재산입니다.
캄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