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
창조의 일을 완성하고 즐기는 하나님: 예배하며, 가정을 세우고 일하며 하나님을 즐거워 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
금, 2016-1-1, 2015-1-1
맥락과 의미
어제 읽은 창세기 1장은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에게 복음입니다. 복된 소식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받습니다. 우리는 2016년 올 한 해를 이런 태도로 살아갑시다. 창세기 1장은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세계는 우연이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신 “좋고 좋은” (창 1:31). 곳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도 우연에 인생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보호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 각자에게 특수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지금은 사자가 토끼를 잡아먹습니다. 자연재해, 사람이 만든 사고가 있는 세상입니다. 아담의 타락 때문에 이런 비참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아름다운 완성이었습니다. 어려울 때 마다 완성을 바라 봅시다.
창세기 1장에서 시작된 사람과 온 세상의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2:3에서 끝납니다. 1장에서 6일 동안 전체 창조를 이야기 했습니다. 2:4부터는 사람의 창조와 그를 위한 동산의 창조에 대해 다시 이야기 해 줍니다 (recapitulate). 오늘 말씀의 주요부분은 칼빈 목사님의 주석을 거의 요약한 것입니다. 그 분의 가르침은 이 시대에도 적절합니다.
1. 창조의 완성으로서의 쉬심 (1-3절)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일을 완성했습니다. 다 끝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초기 단계의 완성입니다. 시간이 시작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이 세상을 더 좋은 상태로 완성을 향해 나가도록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은 일하심을 완성하고 쉬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의 마지막은 완성하시고 쉬는 것이었습니다. 창조의 완성은 쉼이었습니다. 완성된 것을 보고 즐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완성하신 것을 보고 즐기는 것이 안식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하나님이 완성한 것을 보고 즐김으로 초대하십니다. 이 쉼은 나중에 안식일로 연결됩니다.
주일을 주신 이유도 쉬면서 즐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안식일에 절대 일하지 말라는 계명을 구악 성도에게 주셨습니다. 신약성도인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용서 받아서 주일과 주중에, 항상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엄격한 율법은 없어 졌습니다. 우리는 주일에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 교회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립니다. 이 예배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우리도 주일에 다른 생업을 위한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유익합니다. 주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묵상하며 쉬는 축복이 있기 바랍니다.
2. 하늘 정원 에덴의 창조: 사람의 창조와
일과 예배의 시작 (4-18절)
2:4 “ 천지를 창조한 대략이 이러하니라. 대략 (롤레톳)은 “아기를 낳는다 (얄라드)”의 명사형입니다. “하늘과 땅, 그것을 을 창조함에, 그 낳은 것은 이러하니라.” 하늘과 땅이라는 공간에서 진전되는 인간 중심의 역사에 대해 말해 줍니다. 1장에서 6일 동안 전체 창조를 이야기 했습니다. 2장 이곳에서는 사람의 짐승의 창조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줍니다 (recapitulate).
에덴 동산에 경작할 사람도 없고 하나님이 아직 동산에 비를 내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늘에서 내가 내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 때문에 일합니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도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아름다운 동산을 만드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진흙을 빚어서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자, 진흙 인형은 생령, 살아있는 영이 되었습니다. 생령 (네페셔)은 하나님이 생명을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살기에 아주 이상적인 공간인 에덴 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8절). 나무를 “심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동산에 나무를 심고 정원으로 가꾸었기 때문입니다. 동산 (간-히브리러, 파라다이스- 헬라어)은 고대 페르샤 등에서 왕궁의 정원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사람을 위해 왕의 궁전 처럼 너무너무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너무 아름답습니다. ‘에덴’은 행복이라는 뜻입니다. 아름다운 행동의 동산입니다. 사자를 애완동물로 즐기는 곳이었습니다. 하늘과 땅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계시록 21:1은 새로운 도시가 하늘로부터 내려옴을 보여 줍니다. 하늘의 정원, 에덴 동산에서 인류는 삶을 출발했습니다. 하늘과 땅이 분리되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늘정원이지만, 물질적 실체가 있었습니다. 하늘에 붕붕 떠다니는 그런 낙원이 아닙니다. 땅에 발을 딛고 살았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이 주신 풍요를 누리고 감사하며 앞으로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가 것을 기대해야 했습니다.
그 안에는 풍성한 열매를 주어 즐기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이 탐욕과 죽음으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동산의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생명나무는 물질적인 나무 열매 안에 사람의 생명을 주는 어떤 특별한 요소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친교하는
영적인 생명, 참 생명입니다. 그 물질적 열매가 영적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명나무”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누리는 것에 대한 상징적 나무였습니다. 환유법적 생명입니다. 칼빈이 잘 말했듯이 생명 나무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참 생명을 나타내는 “표”입니다. 성찬의 빵과 포도주와 같습니다. 사람이 이 나무 열매를 입으로 즐김과 동시에, 그 영혼은 이 열매를 주신 하나님을 즐거워 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생명나루의 열매를 먹으면서,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참 생명을 받아서 살고 있다는 것을 즐기도록 했습니다. 타락 이후에,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죄용서 받아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 때 아담은 죄와 관계없이 그리스도 안의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이 생명나무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참된 생명을 즐거워 합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그 안에 특별한 독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선악의 계명”을 표시하는 상징이요 환유였습니다. 선악을 알지 못하게 하도록 하는 나무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에게 선을 알려 주는 나무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것” 선악의 기준을 말합니다. 선악의 기준을 사람 자신이 정하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는 것을 말합니다(사실 그때는 악이 없었기 때문에, 절대적인 선을 하나님이 정해 준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이 정하신 선악의 기준에 순종하며 사는 것에 참 지혜가 있음을 가르치기 위한 나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참 행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이 나무를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 주신 생명을 누리도록 한 장소로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도록” 아담을 거기 두셨습니다( 2:15). 그 땅에서 부지런히 일하여 부를 창출하고, 또 다른 사람과 나누고 후손들에게도 재산을 불려 주는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청지기로 살게 하셨습니다.
다스리고 지킨다는 것은 나중에 제사장이 성전 안에서 예배를 위한 활동을 하는 것에 쓰입니다 (민 3:7). 아담은 은 제 7일째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으로 살도록 계획되었습니다. 먼저 에덴에서 쉬면서 예배하고, 이제 6일 동안에는 땅에서 일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셨습니다. 예배하고 생산하고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인류는 에덴에서 시작하여 온 세상에 거주지를 확장하며 땅을 가득 채우도록 계획되었습니다. 교회의 예배와 일상의 일함을 하나님이 정해 주셨습니다.
3. 에덴에서 일과 가정의 시작 (18-25절)
아담은 하나님이 그에게 데려 오신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 주며 동물을 다스리는 일을 시작합니다. 하나니의 왕적 다스림에 참여하여 노동합니다.
그런데 교회와 노동은 가정을 단위로 이루어 집니다. 아내를 두셔서 사랑하며 함께 일하도록 해 주십니다. 사람은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2:24). 버린다는 뜻입니다. 부모를 버리듯이 떠나는 이유는, 독립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남자가 아내와 “연합한다”는 것은 찰싹 달라 붙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24절).. 하나님을 “친근히” 섬기는 것에도 쓰이는 말입니다 (신 10:20, 11:22-“부종”). 하나님을 예배하며 완전히 우리 자신을 드리듯이, 부부도 서로가 찰싹 붙어서 서로에게 서로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
사람과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의 관계를 부부 사랑을 통해 나타내셨습니다. 사람이 부부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을 알아 가도록 하셨습니다. 딤전 5:8은 부모를 돌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 보다 더 악한 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효도하기 위해서는 일단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들의 혼인생활의 갈등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부부는 부모를 떠나서 하나가 되고, 그 다음에는 다시 두 사람이 힘을 합쳐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이혼과 부부관계에서 하나님을 잘 섬깁시다.
믿고 복종할 일
이 말씀을 묵상하며 오늘 한 해를 위한 새 지침을 받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벗어나 새 존재 만들었습니다. 6일 동안 힘껏 일합시다. 가정을 세웁시다. 모든 날 동안 하나님 안에 안식하고 경배합시다. 일주일 하루는 쉬면서 온전히 예배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배우고, 감사 찬양합시다. 가정을 중심으로 예배하고 일하면서 즐거운 삶이 이어지기 바랍니다.
죄의 결과, 우리의 예배도, 가정도, 일에서도 고통과 혼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써, 이 혼란 가운데서도 “주안에서 기뻐하는” 기쁨이 넘치기 바랍니다. 환난과 고통 가운데서도 그리스도 때문에,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달콤함이, 가정에는 부부사랑과 자녀 사랑의 달콤함이, 일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왕처럼 다스리는 즐거움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