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나무 껍질
소나무 둥치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더덕더덕 붙은 껍질이 마치 이골 저골 높고 깊은 산골을 보는 듯 하다. 사람사는 것도
이와 비슷하여 어떤 이는 표면에 있어 빛과 바람을 한껏 받으며 사는가 하면, 어떤 이는 골 깊은 산골에 숨은 채 그늘과 그윽함을 즐기며 산다.
소나무는 겉껍질과 속껍질 모두다 염재로 쓸 수 있다. 겉껍질은 한꺼번에 많은 양을 가마솥에 넣어 온종일 끓인 다음 그 물을 밭아 쓰면
되고, 속껍질은 베어낸 즉시 벗겨서 삶아 쓴다.
□ 재 료 : 소나무속껍질 5kg, 황산철 수용액(물 2리터에 0.5g을 녹인
것) 20ℓ
□ 방 법 :
① 마르지 않은 소나무 속껍질은 물을 잘박하게 붓고 1시간 동안 삶아 염료를 우려낸다. 마른 것일
경우에는 미리 따뜻한 물에 하룻밤 동안 불렸다가 두번 우려낸 물을 합탕한다.
② 젖은 천을 넣어서 30분간 고루 뒤적인 다음
건져낸다.
③ 물기가 가신 천을 황산철 수용액에 20분간 매염처리한다.
④ 매염이 끝난 직물을 건져내어 꼭 짠 다음 다시 염액에
1시간 동안 골고루 뒤적여 가며 침염한다.
⑤ 염료추출액의 농도를 진하게 하거나 염색횟수를 늘리면 진한 색을 얻을 수 있다.
⑥
직물에 따라 색상이 다소 차이가 있으나 동에서는 맑은 연두색이, 철장(염화철, 황산철도 비슷함)에서는 회색에 가까운 검은 색이 든다.
⑦
매염처리를 하지 않으면 연한 밤색이 드는데 속껍질의 경우 비교적 견뢰도가 괜찮은 편이다.
전통적으로 나무의 수피를 염재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 그것은 나무의 수지성분이 일종의 고착제 역할을 하여 특별한 매염재 없이도 염색이 잘되기 때문이다.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일제
말엽에 군복이나 초망(고기잡는 그물) 염색에 소나무껍질을 이용하곤 했다고 한다.
2. 대나무잎
대나무는
사시사철 푸르기 때문에 어느 때나 이용할 수 있지만 특히 푸른 잎들이 적은 겨울철에 이용하면 아주 요긴하다. 왕대, 솜대, 시누대 무엇이나 다
좋으나 솜대 중에서도 잎이 촘촘한 빗자루 대를 쓰면 좋다. 잎을 구하기가 마땅치 않으면 한약 건재상에서 대나무의 껍질을 긁어낸 죽여를 구해 써도
된다. 대나무 잎이나 죽여를 삶으면 물 위에 연한 기름이 뜬다. 이것은 염색했을 때 얼룩 원인이 되기도 하므로 걷어내고 사용하는 것이 좋다.
□ 재 료 : 대나무잎 10kg, 삭산동 수용액(물 3ℓ에 0.5g을 녹인 것) 20ℓ
□ 방 법 :
① 대나무
잎을 솔에 가득 채운 뒤 물을 잘박하게 붓고 1시간동안 삶아 염료를 우려낸다. 40분정도 지난 뒤에 한번 뒤집어 준다.
② 우려낸 염료를
5등분하여 다섯차례 염색의 원액으로 사용한다.
③ 젖은 천을 넣어서 30분간 고루 뒤적인 다음 건져내어 삭산동 수용액에 20분간
매염처리한다.
④ 매염이 끝난 직물을 건져내어 꼭 짠 다음 다시 염액에 30분간 고루 뒤적여가며 침염과 매염을 네번 더 반복한다.
⑤
염료 추출액의 농도를 진하게 하거나 염색 횟수를 더 늘리면 짙은 색을 얻을 수가 있다.
⑥ 명주에는 누른빛이 도는 연두색이, 면에서는 연한
노란색이 든다.
일부에서는 시금치, 부추, 쑥 등을 염재로 녹색염색을 하고 있으나 엽록소를 이용한 염색은 모두가 다 시간이 지나면
갈색으로 변한다. 햇빛을 받거나 세탁을 하면 단번에 변하지만 꼭꼭 싸매어 두어도 오래가지 못한다.
녹엽을 이용한 녹색염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3. 진달래나무 숯
숯 염색은 승가에서 많이 했던 방법이다. 숯은 보통 불이 막 사윌 즈음 물을
뿌리거나 재를 덮어서 만든다. 염색할 숯을 만들려면 물을 뿌리기보다 숯불 상태일 때 항아리에 담아 공기가 통하지 않게 뚜껑을 꼭 덮어서 한나절
지난 뒤에 꺼내는 것이 좋다. 적은 양이면 분마기에 갈고, 많은 양이면 절구에 넣어 곱게 빻는다. 고운 체로 쳐서 덩어리가 없도록 가루를 만들어
사용한다.
□ 재 료 : 진달래나무 숯 1kg, 물 10ℓ
□ 방 법
① 숯가루를 광목으로 만든 베주머니에 넣고
뜨거운 물에 1시간 정도 담가 두었다가 미지근해지면 치대어서 숯물을 빼낸다.
② 오래 치댈수록 곱고 진한 색이 나온다. 염료를 3등분하여
3회 염색의 원액으로 쓴다.
③ 따뜻한 물에 담갔다가 탈수한 천을 염액에 넣은 다음 30분간 골고루 주물러 치댄다.
④ 염색이 끝난
직물을 건져내어 짜지 말고 그대로 햇볕에 말린다.
⑤ ③, ④의 방법을 두번 더 반복한다.
⑥ 무명과 면에는 회색이 들고 명주에는
검은색이 든다.
진달래뿐만이 아니라 철쭉, 영산홍의 뿌리도 괜찮다. 이들의 뿌리는 다른 나무에 비해 결정이 고운 편이어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이 된다. 채록을 다녀보면 참숯을 쓴 집도 있는데 얼룩이 심해서 고운 베는 못하고 무명베 바지, 승복 등에만 했다고 한다.
숯으로
염색할 때 직물을 비틀어 짜면, 짜낸 자국이 그대로 얼룩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가급적이면 염액의 양을 많이 준비하여 넉넉한 물에 오래
치대어서 염색하는 것이 얼룩을 줄이는 방법이다. 숯 염색 역시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데, 숯이나 황토는 염료라기 보다는 안료(顔料)에 가깝다.
4. 먹물
먹물이라 하면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조지훈 님의 시 '승무'에서 '번뇌는
별빛'인 곱디고운 비구니의 한없이 겸허한 맑음과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같은 촌부들이 말하는 '먹물 많이 먹은 사람들'의 꾀 많은 허세가
그것이다. 먹물염색은 불가에서 소유와 집착을 버린다는 정신적 가치가 더 중요시되는 색으로 아낌을 받지만 더러움을 잘 타지않는다는 실용적인 면까지
있어서 매력적인 염재이다.
□ 재 료 : 잘 갈아진 먹물 1ℓ, 빙초산 용액 10ℓ(여름철 냉국의 새콤한 맛 정도)
□ 방
법 :
① 고운 먹을 갈아서 진한 염액을 만든 다음 미지근한 물에 색 농도를 조정하여 희석해둔다.
② 염색할 천을 3시간 정도 고루
뒤적여가며 담가둔다.
③ 건져서 짜지 말고 햇볕에 바싹 말린다.
④ 말린 천을 빙초산용액에 담근 뒤 20분 정도 골고루 뒤적여 가며
끓여 준다. 이렇게 하면 얼룩이 많이 생기지 않는다.
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군 다음 말린다.
⑥ 직물보다 사방 10cm이상
큰 갱지를 펴서 말린 천을 감아싼 다음, 크고 깊은 찜통에 물기가 닿지 않도록 한시간 정도 열처리를 한다. 이렇게 후처리를 하면 색감이 더
좋아진다.
먹은 노송을 태워 만든 송연묵, 씨앗에서 얻은 기름을 태워 만든 유연묵, 광물유의 그을음으로 만든 양연묵이 있다.
재래의 먹은 송연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요즘은 카본블랙으로 만든 양연묵이 거의 대부분이다. 품질이 좋지 않은 먹이나 먹물로 제조된 것을 쓰면
먹물특유의 광택이 없고 색감이 선명치 못하다.
5. 후박나무 껍질
"교교한 달밤에 스무살 청년처럼 당당한
후박나무를 본 적이 있나요? 후박꽃 맑고 높은 향기에 취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 아름다운 정경을 그려낼 줄 아는 이가 몇이나 될까.
국어사전에서 후박(厚朴)은 인정이 두텁고 거짓이 없음이라고 되어 있다. '얼굴보고 이름짓는다'라는 말이 있듯 상록교목인 후박은 촘촘히 붙은
도톰한 잎새와 그 푸르름이 가히 일품이다. 식물염재의 발색표본을 200종 정도하고 나자 이젠 굳이 발색 실험을 하지 않고도 가려낼 눈이 조금
열린 것 같다. 후박은 처음 보는 순간 내게 그 느낌을 강하게 준 것이라서 각별한 마음이 드는 염재이다.
□ 재 료 : 후박나무
껍질 1kg, 철장 용액 10ℓ
□ 방 법 :
① 후박나무 껍질은 미지근한 물에 하룻밤 담가두었다가 건더기 높이의 배가 되도록
물을 붓고 30분이상 푹 끓인다.
② 초탕을 우려낸 다음, 재탕 역시 같은 방법으로 우려낸다. 초탕과 재탕을 합한 다음 2등분하고 2회
염색의 원액으로 쓴다.
③ 천을 30분정도 고루 뒤적여가며 담가둔다.
④ 건져서 꼭 짠 다음 철장용액에 20분간 매염처리를 한다.
⑤ 매염처리한 직물을 꼭 짠 다음 30분 침염, 20분 매염을 반복해 준다. 견뢰도가 좋은 색을 내려면 5회이상 반복하는 게 좋다.
⑥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군 다음 말린다.
⑦ 동, 명반, 빙초산 등으로 매염처리를 하면 다양한 색을 얻을 수 있다.
후박은 목련과의 일본후박과 녹나무과의 후박이 있다. 염료로 이용하는 후박껍질은 한약건재상에서도 구할 수 있는데, 반드시 국산을
쓰도록 한다. 중국산은 염액의 농도 및 색감이 많이 떨어진다. 후박나무의 겉껍질, 잎가루는 풀기가 있어 예로부터 선향(線香)의 접합제로
쓰여지기도 했다.
6. 관중
제주의 오름을 오르내리다가 삼나무 숲에서 길을 잃어 방목장 소 우리로 쳐놓은
철조망 밑을 긴 적이 있다. 엎드린 자세에서 숲 바닥을 보니 아기 손가락 굵기의 고사리 군단이 쑥쑥 솟아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그 힘찬
생기에 놀라 발을 떼놓지 못하고 섰는데, 여남은 발짝 앞에 거대한 배드민턴공 모양을 한 대왕 고사리가 턱 버티고 있었다. 병아리를 거느린
암탉인양 사뭇 당당한 위세가 보여 고사리엔 손도 안대고 숲을 빠져 나왔다.
식물도감을 찾아보니 건재로 된 것만 보아 온 호랑고비, 즉
관중이었다. 말린 뿌리줄기를 한약건재상에서는 관중, 면마(綿馬)로 부른다. 모양이 재미있어서 사람이나 식물이나 유별난 게 그 값을 한다는 말이
절로 생긴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 재 료 : 관중 1kg, 명반 용액 10ℓ(2리터에 명반 5g을 넣은 농도)
□ 방
법 :
① 관중은 잘게 잘라 미지근한 물에 하룻밤 담가 두었다가 건더기 높이의 배가 되도록 불을 붓고 30분 이상 푹 끓인다.
②
초탕을 우려낸 다음, 재탕 역시 같은 방법으로 우려낸다. 초탕과 재탕을 합한 다음 3등분하고 3회 염색의 원액으로 쓴다.
③ 정련한 천을
30분 정도 고루 뒤적여가며 담갔다가 건져서 꼭 짠 다음 명반용액에 20분간 매염처리를 한다.
④ 매염처리한 직물을 꼭 짠 다음 30분
침염, 20분 매염을 반복해 준다. 3회 정도 반복하면 색감이 좋다.
⑤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헹군 다음 말린다.
⑥ 철장, 동,
잿물, 빙초산 등으로 매염처리를 하면 다양한 색을 얻을 수 있다.
관중은 정유와 수지, 탄닌성분이 함유되어 있어서 염색 견뢰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깊이 있는 색감이 발색된다. 최근의 연구논문을 보면 뛰어난 항균성도 있어서 양질의 염재로 꼽힐만하다. 전통적으로
민간에서는 이 뿌리줄기를 기생충 구제약으로 써왔다.
7. 향나무 껍질
창 밖의 향나무가 봄빛이다. 늘푸른
나무라도 계절에 따라 색이 다르다. 보이는 빛깔을 잘 관찰하면 계절이나 사람의 심상이 눈에 보인다. 봄이면 노름한 색이 먼저 오르다가 점차
연두빛을 띤 녹색이 된다. 여름엔 청색이 바치는 녹색, 가을은 누른 끼가 다분하고 겨울에는 검은 빛이 많은 녹색이다. 향나무는 이른봄이나
늦가을에 전정을 할 때 나무의 껍질을 벗겨서 염색을 하면 된다.
□ 재 료 : 향나무 껍질 2kg
□ 방 법
①
굵은 가지와 잔가지의 껍질을 벗겨 건더기 높이의 배가 되도록 물을 붓고 한시간 이상 푹 삶는다.
② 초탕을 우려낸 다음, 재탕 역시 같은
방법으로 우려낸다. 초탕과 재탕을 합한다.
③ 정련한 천을 3시간 정도 고루 뒤적여가며 담갔다가 건져서 짜지않고 말린다. 다 마르면 맑은
물에 헹구어 낸다.
④ 견이나 양모는 특별히 매염처리를 하지 않아도 좋다. 생명주일 경우에는 향나무 속껍질 색이다. 매염처리를 하면 직물에
따라 색상이 다르나 면일 경우 철매염에서 겨울 향나무잎의 색이 나고 동매염에서는 붉은 밤색이 된다.
⑤ 진한 색을 내고 싶을 경우 염재를
많이 준비하여 진한 염액에 횟수를 반복하는 법이 가장 좋다.
향나무 수피에는 탄닌질과 수지-정유성분이 있어서 매염처리를 하지
않아도 견뢰도가 좋으며 염색을 한 직물은 특유의 향이 있다. 향나무는 측백나무과에 속하는데 같은과의 편백, 화백, 눈향, 뚝향, 섬향, 노간주,
연필향 등이 거의 비슷비슷한 색을 낸다.
8. 회양목 잎
봄빛이 마당에 깔리자마자 봄을 노래하는 게
회양목이다. 워낙 단단하여 도장목이라는 별호가 붙은 이놈은 겨울내내 잘 굽힌 빵껍질 색깔을 하고 앉아 웬만한 엄풍에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는다.
2월 마지막 꽃샘바람이 불어대는 날부터 하루 이틀 헤아릴 새도 없이 그 색은 쌀쌀한 꽃샘바람에 풍화되는 건지, 태동하는 땅기운에
밀려난 건지 어느새 포르스름한 녹색으로 바뀌어 버린다. 겨울색이 숨었네 하자마자 녹색에서 또다른 연두색으로 갈아 입는다.
□ 재
료 : 회양목 잎 5kg, 철장액 10ℓ
□ 방 법 :
① 잎이 붙어 있는 잔가지 채로 물을 잘박하게 붓고 2시간 삶아 염료를
우려낸다.
② 우려낸 염료를 3등분하여 3차례 염색의 원액으로 쓴다.
③ 젖은 천을 넣어서 1시간 고루 뒤적인 다음 건져내어 철장액에
30분간 매염처리한다.
④ 매염이 끝난 직물을 건져내어 꼭 짠 다음 다시 염액에 30분간 고루 뒤 적여가며 침염과 매염을 두번 더
반복한다.
⑤ 염료추출액의 농도를 진하게 하거나 염색 횟수를 늘리면 짙은 색을 얻을 수 있다. 생명주에 염색을 하면 의외로 색이
곱다.
⑥ 직물에 따라 색상이 다소 차이가 있으나 철장에서는 겨울 소나무 잎색이 든다. 여러 매염제를 준비하여 고루 발색시켜보면 색상이
다양한 편이다.
회양목은 염료 효율은 썩 좋지 않다. 그래도 멀리 있는 형제보다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처럼 구하기 어려운 좋은
염재보다 전정할 때 버려지는 흔한 것이므로 손쉬운 맛에 그 가치가 있다.
매염재는 염료처럼 매염 때마다 새것을 써줘야 한다. 한번 쓴
매염제를 그대로 쓰면 효과가 거의 없다. 염료의 양과 매염재의 양은 어느 직물이든 간에 직물을 담갔을 때 헤엄을 치듯 넉넉해야 한다. 잘박한
물에 담그게 되면 대개가 다 얼룩투성이가 되어버린다.
9. 은행나무 껍질
무엇에 미쳐서 정신없이 일 하다보면
얻는 게 너무나 많다. 그 중에서도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라는 사실은 내게 참으로 많은 것을 알게 했다. 이 분명한 명제를 항시 잊지 않고
산다면 분명 깨달음의 빛을 볼 수 있으리라. 그것을 잊어버리고 맺은 인연이나 일은 늘 한계가 있다.
100종이 넘는 염재를 만지고 나자
보기만 해도 대략 안다는 자만이 차 있을 때였다. 아는 님이 "뜰의 은행나무를 베었으니 껍질을 벗기랴?"고 물었다. 은행나무 껍질은 약간 폭신한
맛이 있어 겨울나무에 기대어도 냉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 그 온화한 성질에 무엇이 있으랴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두라고 했다. 님은
미안해서 그러나보다 여기시곤 두자루를 벗겨 왔다. 송구스런 맘이 들어 일을 시작했다. 결과는 아래의 발색 표와 같다.
익은 열매의 색,
구운 열매의 속살 색, 단풍잎의 색, 상처아문 줄기의 색, 보이는 껍질의 희끄무레한 색매 속에 이어 저런 속마음이 숨어 있었을까! 예술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보지 못하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천연염색은 예술이다.
□ 재 료 : 은행나무 껍질
5kg, 삭산동 수용액 10ℓ(물 2ℓ에 0.5g을 녹인 것)
□ 방 법 :
① 은행나무 껍질을 속에 가득 채운 뒤 물을 잘박하게
붓고 2시간 동안 삶아 염료를 우려낸다(1시간 정도 지난 뒤에 한번 뒤집어 준다).
② 우려낸 염료를 5등분하여 2-5차 염색의 원액으로
쓴다.
③ 준비된 직물은 삭산동 수용액에 20분간 선매염 처리를 한다.
④ 매염이 끝난 직물을 건져내어 꼭 짠 다음 염액에
30분간 고루 뒤적여 가며 침염과 매염을 네번 더 반복한다.
⑤ 염료 추출액의 농도를 진하게 하거나 염색 횟수를 더 늘리면 짙은 색을
얻을 수가 있다.
⑥ 면이나 명주에는 밝은 밤색이 든다.
나무 수피로 염색을 할 때는 봄에 하는 게 좋다. 물이 오를 때라
껍질이 쉽게 잘 벗겨지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집집이, 거리거리에 전정을 하고 나온 나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은행은 이파리도 재미있다. 생명주에
들이면 가무스름한 회색빛이 난다.
10. 구름버섯
경산에 사는 이규택씨는 젊다. 젊은 열정만큼 마음도 바빠서
묻는 전화가 잦다. 밤색이 안돼요. 진달래 색은 무엇으로 내나요? 그의 질문을 듣노라면 답답하다가도 예전의 내 모습이 보여서 화를 낼 수도
없다. 무슨 색을 정해놓고 그 색을 내자하고 맘 먹은 날은 맨날 허사다. 공들인 자식이라고 엇길로 나가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우린
그러한 경우를 많이 보고 산다. 무엇이나 그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않고 수단으로, 즉 즐기기 위함이 아닌 공들임은 욕심이다. 미리 정해놓고 일을
마름질하는 것은 가장 비자연적이며 인위적인 처사이다. 질서와 이치에 완벽히 들어맞는 게 자연이고, 그 이치를 완전히 알려면 자연의 일부가 되어서
순응하거나, 신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럴 마음도 없이 염색을 하는 이는 노름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금은 안다.
□ 재 료 : 구름버섯 600g, 삭산동 수용액 10ℓ(물 2ℓ에 0.5g을 녹인 것)
□ 방 법 :
① 구름버섯은
검불과 흙을 떨어내어 씻어둔다.
② 하룻밤 불려 놨다가 물을 잘박하게 붓고 2시간동안 삶아 염료를 우려낸다. 1시간 정도 지난 뒤에 한번
뒤집어 준다.
③ 준비된 직물은 삭산동 수용액에 20분간 선매염 처리를 한다.
④ 매염이 끝난 직물을 건져내어 꼭 짠 다음 염액에
30분간 고루 뒤적여가며 침염과 매염을 두번 더 반복하면 맑은 옥색이 된다.
⑤ 염료 추출액의 농도를 진하게 하거나 염색 횟수를 더 늘리면
짙은 색을 얻을 수가 있다.
⑥ 선매염, 후매염은 절차상의 차이일 뿐 색상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염료자체의 색이 진하지 않은 것은
선매염을 하면 염료효율이 조금 더 좋고 얼룩이 덜하다.
구름버섯이라 불리는 운지버섯은 비싼 한약재를 쓰는 것보다 베어 둔 사과나무
등걸에 피는 것을 구해서 쓰면 좋다. 쪽 외에는 청색을 내는 염재가 흔하지 않으므로 옥색을 내고 싶을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
11. 꼭두서니(천근)
자생식물 염재로 옛 기록에 있는 것은 홍화와 꼭두서니뿐이다. 팔십이 넘은 노인 분들을
만나 염색에 관한 채록을 하다보면 분홍빛을 띤 빨간색을 꼭두서니 색이라고 한다. 말만 들어도 반가워서 그것으로 직접염색을 해보았는가를 다잡아
물으면 한결같이 해본 적인 없다고 해서 늘 안타까웠다.
꼭두서니는 덩굴만 무성할 뿐 뿌리는 얼마 되지 않아 군락을 찾지 않으면 양이 적어
해볼 수가 없다. 한번 맘 먹으면 그것이 풀려야 다른 일이 손에 잡히는 성미여서 말 그대로 자나깨나 꼭두서니를 염하고 다니던 어느날, 출장을
가다가 아무 생각없이 차를 세웠다. 왜 세웠나 싶어 차 문을 열고 발을 내딛는 순간 발 아래 도로의 경사진 둔덕에 꼭두서니가 지천으로
엉겨있었다. 그때의 희열이란 - 맘먹은 것은 반드시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된 일이었다.
진달래빛 고운 색을 만날 생각을
가진 이는 늦여름에 캐서 해 볼 일이고, 아쉬운 대로 건재약방에서 구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 재 료 : 천근
1kg, 명반 수용액 10ℓ(물 2ℓ에 1g을 녹인 것), 걸쭉한 쌀풀 1대접
□ 방 법 :
① 천근은 먼지를 털어내고 쌀풀에
한나절 담가둔다. 풀에 누르스름한 색이 배어 나오면 풀 찌꺼기가 없도록 깨끗이 씻어낸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황색소를 제거하고자
함이다.
② 건더기의 3배 분량의 물을 붓고 찜통 뚜껑을 열어둔 채로 끓이다가 끓기 시작하면 뭉근한 불에 세시간 정도 우려낸다. 이때
가끔씩 저어준다.
③ 우려낸 염료를 3등분하여 3차 염색의 원액으로 쓴다.
④ 물들일 직물은 명반 수용액에 20분간 선매염 처리를
한 다음 씻어서 준비해둔다.
⑤ 꼭 짠 천은 염액에 30분간 고루 뒤적여가며 침염과 매염을 두 번 더 반복하면 누른 빛이 나는 주황색이
된다.
⑥ 바로 캔 천근을 쓸 때는 나무공이로 찧어서 명반과 함께 가볍게 달여들이면 된다.
한번 삶아낸 것은 버리지 말고
말렸다가 분마기로 갈아서 다시 한번 더 쓰도록 한다. 건재의 질에 따라 색감이 많이 차이나고 매염제나 직물에 따라서도 색이 조금씩 다르다.
12. 뽀리뱅이
겨우내 들에 나갈 일이 없던 도회인들도 봄빛에 이끌려 들나들이가 잦은 철이다. 벚꽃,
진달래꽃만을 즐기기보다 잡초로 불리는 봄 풀을 손수 뜯어와서 염색을 하면 색의 맛이 색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하는 쓸 데
없는 놀이를 '저지레한다'고 한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않던 일이니 궁금하다는 호기심에다가, 미리 결과를 예측하고 하는 계산된 행동이
아니므로 그 순간에 몰두한다. 저지레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혼을 놓을 만큼 재미가 있어서 골똘할 수밖에 없다. 사물을 궁구하는 마음이 이치를
밝히는 지름길이다. 천연염색은 할 때마다 달라서 스스로 궁구하는 맘이 없으면 재미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먼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잡히지
않는다. 염재가 못되는 식물이 별로 없으므로 이것 저것 많은 풀을 만져보면 저지레를 한 만큼 키가 자라고, 신명이 나는 '쟁이'가 될 수
있다.
뽀리뱅이는 양지바른 논둑이나 밭둑에 납작 엎드려 보리와 동무가 되어 자라는 두해살이 식물로 보리뱅이라고도 불려진다. 잔디와 함께
자라 파란 봄 풀과는 사뭇 다른 불그레한 이파리와 비로드같은 가는 털이 나있어 가까이 가야만 보인다. 꽃만 따로 떼어놓으면 씀바귀와 닮았지만
꽃대가 가느다란 대나무와 같고 속이 비어있어 분별이 쉽다. 아주 흔한 잡초여서 마음만 먹으면 금세 한 자루를 캘 수 있다.
□ 재
료 : 뽀리뱅이 3kg, 삭산동 용액(물 2ℓ에 삭산동 2g을 녹인 용액)
□ 방 법 :
① 뽀리뱅이는 씻어서 물을 잘박하게 붓고
두시간정도 삶아 염료를 우려낸다.
② 우려낸 염료를 3등분하여 3차 염색의 원액으로 쓴다.
③ 젖은 천을 넣어서 1시간 고루 뒤적인
다음 건져내어 삭산동 수용액에 20분간 매염처리한다.
④ 매염이 끝난 직물을 건져내어 꼭 짠 다음 다시 염액에 30분간 고루 뒤 적여 가며
침염과 매염을 두번 더 반복한다.
⑤ 염료 추출액의 농도를 진하게 하거나 염액 횟수를 늘리면 짙은 색을 얻을 수 있다.
⑥ 직물에
따라 색상이 다소 차이가 있으나 동매염제로는 움트는 새싹 빛깔이난다. 여러 매염제를 준비하여 고루 발색시켜 보면 색상이 다양한 편이다.
삭산동은 화공약품상에 가면 구할 수 있다. 화학매염제는 독성이 있으므로 사용할 때 조금씩 쓰도록 하고 매염 후 남은 물은 바로
하수구로 보내기보다 정원에 쏟아버려 비료로 재활용하는 방법도 권할 만하다.
첫댓글 와 _ 나무 껍질
다 귀한 약재 군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