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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조직 | 직제 | |
| 1910년 10월 1일 제정
▶ 총독관방 - 비서과, 무관실 ▶ 장관관방 - 서무계, 회계계(會計係) ▶ 내무부 - 지방계, 권업계, 학무계 ▷서무과 ▷지방국 - 지방과, 토목과, 위생과 ▷ 학무국 - 학무과, 편집과 ▶ 재무부 - 세무계, 이재계 ▶ 총무부 - 외사국, 인사국, 회계국, 문서과 ▶ 도지부 ▷ 서무과 ▷ 세관공사과 ▷ 사세국 - 세무과, 관세과 ▷ 사계국 - 예산결산과, 재무과 ▶ 농상공부 ▷ 서무과 ▷ 식산국 - 농무과, 산림과, 수산과 ▷ 상공국 - 광무과 (鑛務課), 상공과 ▶ 사법부 - 서무과, 민사과, 형사과
1919년 8월 20일 개정 계(係)를 과(課)로 개정했다. 지사관방(장관관방을 개정) 제1부 제2부 제3부 - 경무과, 고등경찰과, 보안과, 위생과 |
종합
▶ 총독관방(総督官房) ▶ 총무부(総務部) ▷ 인사국(人事局) ▷ 외사국(外事局) ▷ 회계국(会計局) - 경리과, 영선과 ▷문서과(1910년 개정) ▷내무부(内務部) ▷서무과(1910년 개정) ▷지방국(地方局) - 지방과, 토목과, 위생과(1910년 개정) ▷학무국(学務局) - 학무과, 편집과(1910년 개정) ▶ 도지부(1910년 개정) ▷서무과 ▷세관공사과 ▷사세국 - 세무과, 관세과(1910년 개정) ▷사계국 - 예산결산과, 재무과(1910년 개정) ▶ 탁지부(度支部) ▷사세국(司税局), ▷ 사계국(司計局) ▶ 농상공부(農商工部) ▷서무과(1910년 개정) ▷식산국(殖産局) - 농무과, 산림과, 수산과(1910년 개정) ▷상공국(商工局) - 광무과(鑛務課), 상공과(1910년 개정) ▶사법부(司法部) - 서무과,민사과, 형사과(1910년 개정) ▶ 중추원 - 서무과, 조사과, 편찬과 ▶ 취조국(1910년 10월 설치, 1912년 폐지, 참사관실 대치) |
▼ 총독 ▼ 정무총감 ▼ 장관 : 각 부의 장 ▼ 국장 : 각 국의 장 ▼ 참사관 : 2명 ▼ 비서관 : 2명 ▼ 서기관 : 19명 ▼ 사무관 : 19명 ▼ 기사 : 30명 ▼ 통역관 : 6명 ▼ 기수 : 337명 ▼ 통역생 ▼ 총독부 무관 : 육해군 소장 또는 좌관(영관급) ▼ 부속부관 : 육해군 좌관 |
3·1 운동의 불씨가 남아있던 1922년 순사직 경쟁률은 약 2.1대 1 수준에 불과했으나 문화정치가 본격화한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그 경쟁률이 10대 1을 웃돌았다. 1926년에는 856명 모집에 9천193명이 지원, 약 10.7대 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1932년에는 854명 모집에 1만6천193명이 지원해 19대 1로 경쟁률이 수직 상승했다.[4] 순사 등에 대한 19.6대 1로 정점을 찍은 1935년 이후 순사에 대한 선호는 1936년 14.1대 1, 1937년 10.9대 1로 내리막길을 걸었으나 1920년대 중반부터 태평양 전쟁 이전까지 경쟁률이 10∼20대 1에 이를 정도로 순사직이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4] 이를 두고 연세대학교의 장신은 "순사는 조선인 사회에서의 좋지 못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법률로 보장된 권한 탓에 해마다 높은 지원율을 보였다"고 지적하면서 "관리의 최말단인 까닭에 지원자의 학력 수준은 보통학교 졸업자가 80% 정도를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 통감부(統監府)는 일본 제국이 을사조약을 체결한 뒤 대한제국 한성부에 설치했던 관청이다.
한국통감부 또는 조선통감부라고도 한다.
■ 조선총독부 정무총감(朝鮮總督府政務總監)은 조선총독부의 직위로 조선 총독의 아래에서 군사
통수권을 제외한 행정, 사법을 통괄하던 직책이다. 전신은 한국통감부의 부통감이다.
◈타이완 총독부(台湾总督府) 1895년 5월 10일 ~ 1945년 10월 25일
(중국어: 臺灣總督府/台湾总督府, 일본어: 台湾総督府 (たいわんそうとくふ)) 또는 대만 총독부
청일 전쟁의 결과로 청나라로부터 할양된 타이완을 통치하기 위하여 설치된 일본 제국의 식민 통치 기관이다. 중앙 기관 소재지는 타이베이 시(臺北市)이며, 1895년 5월 10일에 설치되어 1945년 10월 25일에 폐지되었다. 타이완 총독부의 청사는 현재 중화민국 총통부로 사용되고 있다.
타이완 총독부는 1895년(메이지 28년)에 시모노세키 조약 체결로부터 1945년(쇼와 20년)의 일본의 항복까지 타이완을 통치한 기관이다. 타이완 총독은 타이완의 행정·사법·입법·군사에 대한 모든 권한을 행사하였다. 이후에 군 지휘권이 타이완 군사령관에게 이관되어 문관 출신의 총독 취임이 가능해졌다. 타이완 총독은 내각총리대신의 지휘 감독을 받았으며, 이후에는 내무대신이나 탁무대신 등의 지휘 감독을 받게 되었다. 궁중 석차에서도 조선 총독은 제6위인데 비하여 타이완 총독은 친임관으로서 제11위로 육해군대장이나 추밀고문관보다도 지위가 낮았다.
초대 총독은 가바야마 스케노리이며 처음에는 육해군 장관급 출신의 무관이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제4대 총독 고다마 겐타로 아래에서 1898년에 민정장관으로 취임한 고토 신페이는 토지 개혁, 전기 수도 공급 시설·교통 시설·정보 시설의 정비, 아편 중독 환자의 박멸, 학교 교육의 보급, 제당업 등 산업의 육성 등을 통하여 타이완의 근대화를 추진하였고, 한편으로는 식민 통치에 대한 반역 행위자를 단속하면서 식민 통치 체제를 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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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총독부 청사 (현재 중화민국 총통부로 사용)
◇중화민국 총통부(中華民國 總統府, 중국어: 中華民國總統府/中华民国总统府)는 중화민국 (대만) 타이베이 시에 위치해 있는 총통의 관저이다.
| 조선총독부의 휘장 | 타이완 총독부의 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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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총독의 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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