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小學校)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1941년 11. 5일자 작품
-프랜시스 쟘(Francis Jammes, 1868~1938) : 프랑스 시인
-릴케(Reiner Maria Rilke, 1875~1926) : 독일 시인
이 시는 별을 헤면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일본에 유학을 가려고 창씨개명을 해 본명을 잃었지만 반드시 조국을 위해 자랑스런 일을 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자신의 의지를 쓴 표현하였다.
화자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이 ‘다 헤일 듯’한 언덕 위에서 별을 바라보고 있다. ‘가슴 속/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밤이 짧기 때문이고 별을 헤일 날이 남은 까닭이고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이다. 별을 보면서 ‘별 하나에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러면서 ‘소학교(小學校)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그러나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다. ‘별이 아슬히 멀’리 있듯이. 그리고 어머니는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신다. 내 곁에 없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윤동주라는 부모가 준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린다. 민족을 구할 학문을 배우려면 일본으로 유학을 가야하는데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갈 수 없어서 부끄렵게 본명을 버렸다. ‘그러나’ 이런 시련이 지나고 광복이 와서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화자가 버렸던 ‘내 이름자’가 다시 회복되고 일시적인 방편으로 이름을 버린 일이 오히려 자랑이 될 것이다고 생각한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는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이 가을의 별이 보이는 맑은 밤임을 알려준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를 말뜻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화자는 자신의 본명을 버린 지금의 행위가 반드시 훗날 ‘자랑’이 될 것임을 확신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하는 것 ‘다 헤일 듯합니다.’에서 ‘듯하다’가 추측을 나타내는 말이기에 때문에 아직 확신에 이르지 못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이 말을 말뜻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에서는 화자가 아직 할 일이 많고 ‘청춘’이기에 별만 헤아리고 있을 수만은 없음을 말하고 있다. ‘별을’ ‘헤는 것은’ 화자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을 말한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는 별을 헤아리면서 별과 자신의 과거의 일을 대비시키고 있음을 나타낸다. 여기에 제시된 항목은 다음 연의 내용과 일대일 대응 된다.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는 화자가 자신의 과거 일을 아름답게 생각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소학교(小學校)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은 ‘별 하나에 추억과’ 대응 되고 ‘별 하나에 사랑과’는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대응되고, ‘별 하나에 쓸쓸함과’는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대응되고, ‘별 하나에 동경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에 대응되고 ‘별 하나에 시와’는 ‘프란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에 대응된다. 여기서 화자의 ‘동경’을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에 대응된다고 보는 것은 이들이 동물로 ‘비둘기’는 평화, ‘강아지와 토끼’는 귀여움, ‘노새’는 힘 셈과 인내, ‘노루’는 자유로움 등을 나타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화자가 가지고 싶어하는 성격과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대응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화자가 이 두 연을 그냥 나열한 것이 아니라 어떤 연관성을 생각하면서 나열했을 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계십니다.’는 화자가 이들과 떨어진 곳에 있으며 외로운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네들은’은 화자의 고향에 있는 사람들이며 화자의 이름인 ‘윤동주’를 부르던 사람들이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는 화자가 자신의 ‘본명’을 버리는 것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던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는 일본 유학을 위해서는 자신의 본래 이름을 쓸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는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에서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화자의 감정을 나타내는 상관물이다. 화자는 ‘별’을 헤며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서 ‘밤을 새’우고 있다. 그러면서 본명을 버리고 창씨개명한 ‘부끄러운 이름을’ 사용해야하는 현실을 ‘슬퍼하’고 마음 속으로 울고 있다. 이를 ‘벌레’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에서 ‘겨울’은 일제 강점에 의해 자기 이름도 사용할 수 없는 일을 말한다. ‘나의 별’은 화자가 이루고자 하는 이상, 목표를 말한다. ‘봄’은 광복이 되어 일제 강점이 끝나는 것과 화자의 이상, 목표를 이루는 때를 말한다.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에서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는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린 곳을 말한다.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는 오늘을 화자의 본명을 버렸지만 미래의 어느 날, 화자가 이루려던 목표가 이루어졌을 때는 오늘의 ‘부끄러운’ 행위가 반드시 조국을 위해 일시적인 굴욕을 참아내는 행위가 되어 ‘자랑’이 될 것이다는 화자의 기대와 믿음을 나타낸 것이다.
이 시를 해석함에 있어서 내재적인 접근을 하지 않고 외재적인 접근(윤동주가 창씨개명을 한 사실)을 한 것은 윤동주의 시는 화자와 시인이 일치하고 외재적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시가 지닌 의미를 정확하게 알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70115월후0444 흐림 전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