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문방구
옛날 같았으면 편지를 기다리다
돌아서는 저녁이었을 겁니다
털신을 물로 닦아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던 굴비를 굽네요
형광등이 깜빡입니다
눈이 시려져 눈물이 납니다
발가락도 무뎌져서 뒤뚱거리구요
옛날 같았으면 편지가 몇 번이나 왔을 텐데
진달래꽃잎이 들어있거나
단풍잎이 들어 있거나
당신이 바라보던 노을이 들어있거나
당신이 즐겨 쓰던 연필의 사각거리는 소리
당신을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매만지는 저녁이었을 겁니다
편지를 읽고 또 읽고 설레었거나
음악 같은 언어들을 골라
솔 같은 바람에, 시 같은 구름에
라 같은 꽃을 연주하는 저녁이었을 겁니다
내일은 아무래도 문방구에 가야겠어요
시금치를 무치다 생각했어요
굴비가 다 구워질 즈음이었는데
숟가락을 밥상 위에 올려놓았죠
불꽃놀이를 바라보던 당신의 등 같은
편지지를 고르고 해바라기 같은 연필을 사야겠어요
밥상에 앉아 새 연필을 깎고
당신 잘 지내고 있나요?
하얀 달을 접어 날려 보내겠어요
당신 집 앞에 빨간 우체통을 열어두어요
창가에 불을 켜두세요
굴비의 살점을 발라 당신에게 먹여주듯
이야기를 들려줄께요.
첫댓글 예. 빨간우체통ㆍ창가의 불 켜두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