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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4.(일요일) 03:30
우여곡절 끝에 운탄고도 5길~9길까지의 라이딩, 드디어 출발!
지난해 9월, 비 덕분에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고, 이번에도 2박3일의 일정이 또다시 비에 발목을 잡혀 하루 연기.
결국 1박2일로 타협하고 새벽에 강원도 사북으로 출발했다.
하늘의 시험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 더 험난한 과정? 바로 사북까지 가는 운전!
라이딩의 진짜 난관은 페달을 밟는 것이 아니라 5시간 차를 운전하는 것부터 시작됐다.
무사히 사북에 도착하고, 사북시장의 식당에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했다.
타고온 차는 라이딩 종착지인 삼척으로 차량 탁송 서비스도 순조롭게 끝냈다.
드디어, 본격적인 라이딩. 운탄고도 5길의 시작점인 꽃꺼끼재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사북읍에서 꽃꺼끼재로 올라가다 야생화 대신 발견한 곰취,고비,마가목과 하이원리조트가 조성한 하늘길 트레킹 안내판.
하이원리조트는 폐광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강원랜드란 이름으로 국내 최초 내국인 출입 카지노로 설립되었다. 이후 카지노 중심 사업으로 형성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하이원(High 1)리조트’를 최상위 브랜드로 하고 그 아래에 호텔, 하이원CC와 스키장, 테마파크, 밸리와 마운틴 콘도미니엄, 워터파크를 운영 중이다.
왕복 2차로의 포장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자갈과 흙으로 이루어진 비포장길이 나타난다. 풍경도 덩달아 달라진다. 한때 석탄을 실어 나르던 흔적이 남은 듯, 주변의 흙과 자갈은 짙은 검은빛을 띠고 있다.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면 길가에 작은 기념비 하나를 만산홍엽님이 발견했다. “이곳은 운락국민학교가 소재하던 곳으로서 1967.3.1 설립되어 22회 544명의 학생이 졸업하였고, 폐광으로 인한 이주 현상으로 1991.2.28 폐교되어 본 건물을 철거하게 되었습니다.” 정선교육청이 1994년 세운 비석이다.
50여 분을 힘들게 올라온 운탄고도 5길의 시작점, 꽃꺼끼재(화절령).
발밑에 흐드러진 산괴불주머니, 피나물 등의 야생화들이 길손을 반기는 듯하다.
안내 표지판에는 ‘화절령은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과 정선군 사북읍의 경계를 이루는 백운산 자락에 위치한 고개이다. 예부터 이 고갯길은 봄철이면 참꽃(진달래)과 철쭉이 온 산에 만발하여 이 길을 가는 나그네와 나무꾼들이 한 아름 꺾어 갔다하여 꽃꺽이재, 화절치라고 불렸다
지난 시절 이 길이 새카매지도록 석탄을 실어 나르던 때는 초등학교 까지 있던 마을이었다. 운탄길 주변 탄광들이 문을 닫으며 이곳에 있던 마을도 사라지고 길 위의 트럭도 사라졌지만, 화절령,꽃꺽이재라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예쁜 길이 남아 새로이 트레킹 코스로 각광 받고 있다.’고 적혀 있다.
운탄고도 5길: 광부와 광부 가족들의 애틋한 사랑의 길
운탄고도 5길 곳곳에는 석탄산업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석탄이 섞인 듯한 검은 흙과 돌, 폐광에서 스며 나오는 듯한 붉은빛의 지하수, 토양오염 방지를 위한 갱내수 정화시설, 옛 갱도 등.
이곳은 해발 고도가 높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라이딩을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페달을 밟다 보면, 광부들의 삶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길은 넓은 임도로 이어졌지만,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 구간이 번갈아 나타나 체력을 적절히 안배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숲길은 때로는 울창한 낙엽송 숲으로 이어져 깊은 산 속의 상쾌함을 만끽할 수 있었고, 발아래로 펼쳐지는 이름다운 풍경은 힘든 라이딩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이곳 도롱이연못은 1970년대 탄광 갱도 아래 지반침하로 생겨난 작은 생태연못입니다.
과거 이 일대 화절령 마을에는 광부 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위험한 갱도로 출근하던 남편을 위해, 아내들은 연못에 사는 도롱뇽에게 무사귀환을 기원하곤 했습니다.
“연못의 도롱뇽이 모습을 드러내면, 오늘도 무사히.”
그 믿음은 간절했고, 도롱뇽은 희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광부의 아내들은 도롱뇽의 안부를 확인하며 마음을 놓았고, 이 연못은 그렇게 ‘도롱이연못’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도롱뇽은 지금도 이곳에 서식하고 있으며, 연못은 노루,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의 쉼터가 되고 있습니다.
봄이면 도롱뇽이 알을 낳고, 사계절 내내 야생화가 피어
걷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연못에 있는 도롱뇽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앉았다 일어섰다 가만있지를 못했을 광부 아내들의 애틋한 사랑에 가슴이 짠하다.
샘터 샘물이 약수터 물인 양 바가지로 마셨는데, 뒤돌아서 보니 음용 금지!
도롱이 연못 건너편에 아롱이 연못도 있다.
”1177갱은 민영탄광으로는 최대생산량을 기록했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개발한 최초의 갱도로 고한 사북지역 탄광개발의 시발점이 된 의미 있는 갱도이다. 이 갱이 개발되면서 화절령 주변에 약10여개의 군소탄광이 생겨났으며 채탄된 석탄은 트럭으로 인근 함백역까지 운송되었다. 이때 만들어진 길이 지금의 운탄고도이다. 2015년 12월 강원랜드에서근 이 길을 걷는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하며 산림청의 협조를 얻어 “역사의 뒤인길”로 사라져 버린 이 갱의 일부를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운탄고도 쉼터에 도착했습니다.
쉼터 정자는 길 아래의 ‘페광 갱내수 정화시설’ 옆에 있습니다.
정암풍력단지가 눈앞에 펼쳐지면, 만항재가 가까웠다는 신호다. 능선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은 마치 하늘을 가르는 거인처럼, 웅장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꽃꺽이재에서 만항재로 이어지는 길은 유난히 평온했다.
험한 오르막도, 울퉁불퉁한 바윗길도 없이, 고운 비단처럼 부드럽고 너그러웠다.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있다.
해발 1,330m로, 지리산 정령치(1,172m)나 강원도 운두령(1,089m)보다 높다.
이 고개는 워낙 높고 길게 이어져 정상을 오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예부터 지역 주민들은 이곳을 ‘늦은목이’라 불렀는데 이후 한자로 정리되며 '늦을 만(晩)' 자를 써서 '만항재(晩項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고려말 조선 초기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광덕산 서쪽 기슭 두문동에 은거해 살던 주민 일부가 정선으로 옮겨와 살면서 고향에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이 지역의 가장 높은 곳인 만항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해서 처음에는 '망향'이라 불렀다가, 후에 '만항'으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만항재는 봄부터 가을까지 다양한 야생화가 피어나며 해마다 8월 중에 야생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이른 아침에는 안개가 밀려들어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며, 눈이 많이 내린 겨울에 차를 타고 올라와 창문을 열면 순백의 백두대간 풍경이 펼쳐져 황홀감을 준다.
사이클팀, MTB팀 또는 솔로라이더들.
연휴를 맞아 찾은 만항재는 예상대로 북적였습니다. 주차장은 이미 만차,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셔터 소리.
그래도 탁 트인 고개 위 바람은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스쳐갑니다.
쉼터에 들러 따끈한 만둣국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랬습니다. 고생 끝에 맛보는 한 끼는 무엇을 먹어도, 언제나 옳죠.
운탄고도 6길은 "장쾌한 풍경과 소박함이 공존하는 길"
언제 어디서든 폭발과 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탄광. 그 막장 깊은 곳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석탄을 캐던 광부들에게, 일과를 마치고 마주한 이 자연의 장쾌한 풍경은 고된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하고, 다시 살아갈 힘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을 것입니다.
만항재에서 함백산 임도 초입까지는 얼레지가 군락을 이루며 피어 있어, 카메라를 든 탐방객들이 진지하게 야생화 모델과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마치 작은 패션쇼라도 열린 듯, 얼레지는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은 셔터를 연신 눌러댑니다.
이왕 온 김에, 6길에서 꼭 가야 한다는 함백산(1,572.9m) 정상도 노려봤죠. 하지만…! 우리의 눈앞에 떡하니 걸린 '자전거 출입금지' 안내판. 한껏 부풀었던 기대감이 ‘뻥!’ 하고 터졌습니다. 아, 우리의 두 바퀴 꿈은 그렇게 산산조각…
씁쓸함을 씻어내듯, 우리는 그냥 태백선수천, 오투전망대 그리고 지지리골 입구까지 시원하게 내리달렸습니다. 페달도 안 밟고 쌩쌩 내려가며 외쳤죠. “그래, 올라가긴 글렀어도 내려가는 길은 기가 막히다!”
옛날에 사냥꾼들은 멧돼지를 잡아선 구들장처럼 넓적한 돌 위에 철퍼덕 올려 구워 먹었죠. 물고기 잡아 매운탕 끓이면 ‘천렵’이라 하듯, 멧돼지 구워 먹는 이 행위엔 ‘지지리’라고 불렀답니다.
이 골짜기에서 지지리를 하도 자주 해먹다 보니, 동네 이름까지 ‘지지리골’이 되어버렸다는 게 주민들의 공식 입장. 하지만 또 다른 썰도 있습니다. 이 산골에 살던 화전민들이 ‘지지리도’ 가난해서 지지리골이 됐다는 이야기.
지지리골엔 요즘 인기 만점인 자작나무숲이 있는데요, 이 숲은 그냥 생긴 게 아닙니다. 여긴 한때 함태 광산이라 불린 폐탄광이 있었던 자리. 탄광으로 훼손된 자연을 되살리고, 사람을 불러들이려는 의도였다.
자작나무는 생각보다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대부분 60~70년, 환경이 까다로우면 40년 남짓. 그래서일까요, 자작나무숲은 유난히 더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걸 아는 듯, 그 짧은 생을 온몸으로 반짝이며 살아갑니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귀한지를 조용히 말해주는 듯합니다.
‘운탄고도 1330길’ 중에서도 태백을 지나는 6길의 하이라이트 구간!
“어라, 여긴 왜 이렇게 예쁘지?” 하다가 “이 길 만든 사람 누구야, 밥 사야겠네”란 말이 절로 나오는 곳입니다.
상장동 벽화마을은 한때 함태탄광의 사택촌이었습니다.
석탄 산업이 활황이던 시절, 수많은 광부와 가족들이 모여 살며 생의 희로애락을 나누던 곳이죠.
그러나 석탄산업이 몰락하면서 마을은 점차 낙후되고, 사람들의 발길도 끊겼습니다.
그런 마을이 다시 숨을 틔우게 된 건, 주민들의 손길 덕분이었습니다. 인력 봉사와 재능 기부가 하나둘 모여, 이곳은 과거의 기억을 품은 '이야기 마을'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벽마다 그려진 그림에는 어둠 속에서 석탄을 캐던 광부들의 고단한 삶, 가족의 따스한 손길, 그리고 탄광촌의 일상과 전설이 정겹고도 세심하게 담겨 있습니다.
벽화를 따라 걷다 보면,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만나는 삶의 흔적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곳은 단지 아름다운 벽화마을이 아니라, 힘겨웠던 시절을 견디며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마음을 고스란히 품은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
태백시평생학습관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건물 뒤편으로 난 연화산 서쪽 둘레길을 따라 6길의 종착지인 순직산업전사위령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거리로는 5km 남짓한 길이지만, 쉽게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벽부터 이어진 일정에 피로가 쌓인 탓인지, 발걸음은 무겁고 길은 지루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당시엔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굳이 연화산을 돌아가게 만든 이유가 뭘까?’
그 답은 훗날 알게 됐습니다. 태백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동백산역을 지나 도계역으로 향하는 철도는 고도차가 무려 387m나 됩니다. 이 급경사를 부드럽게 넘기 위해 기차는 연화산(1,171m) 속을 나선형으로 한 바퀴 휘감아 통과하는 터널을 지나갑니다.
우리는 지치고 천천히 연화산을 걸었지만, 기차는 그 산속을 한 바퀴 돌아 부드럽게 내려가는 중이었던 셈이죠. 그렇게 알고 나니, 힘들게 돌았던 그 길도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산업전사위령탑에 도착했습니다. 4,000명이 넘는 위패가 봉안된 이곳은, 석탄 산업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걸고 일했던 이들을 기리는 추모공원입니다. 어둠과 위험이 가득했던 땅속에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이들을 ‘산업전사’라 부른 이유가 절로 느껴집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이니, 그들의 숨결이 바람을 타고 가슴 깊이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위령탑에서 묵직한 마음을 안고 내려와, 황지연못에 들렀습니다. 태백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이 작은 연못은 낙동강 1,300리 물길의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그 조용한 수면 아래에서 하루 5,000톤 가까운 맑은 물이 솟아오른다고 하니, 그저 고요한 풍경이라 넘길 수는 없는 곳이죠.
연못 주위로는 산책로와 정자가 조성돼 있어, 찬찬히 걸으며 숨을 고르기에도 좋습니다. 물빛은 깊고 맑으며, 사방의 바위 틈 사이로 작은 물줄기들이 흘러들고 흘러나오는 모습은 마치 살아 있는 심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래전부터 이곳 물은 마르지 않고 쉼 없이 흐르며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주었다고 하니, 물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잠시 그렇게 물결을 바라보다가, 숙소로 향해 짐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태백의 별미인 물닭갈비로 하루를 마무리했죠. 얼큰한 국물에 보글보글 끓여 먹는 닭갈비 한입에, 하루의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듯했습니다. 그 옆에 소주 한 잔, 더 말해 뭐할까요. 조용한 밤, 태백의 온기 속에서 하루를 내려놓았습니다.
운탄고도 7길: 영서와 영동이 고갯마루에서 만나는 길
2일차는 운탄고도 7길의 순직산업전사위령탑에서 출발하여 대조봉전망대, 용정마을, 느티고개, 통리역, 미인폭포, 하이원추추파크, 나한정역, 도계역으로 이어진다.
태백은 내륙지방인 영서, 도계는 동해 쪽인 영동에 속해 있으며, 이 길은 바로 그 경계의 산줄기, 낙동정맥을 따라 걷는 여정입니다. 물줄기와 바람결이 나뉘는 분수령, 동시에 지역의 삶과 문화가 교차했던 공간이기도 하죠.
순직산업전사위령탑 – 석탄 산업의 역사와 희생을 기리는 깊은 의미의 장소
대조봉 전망대: 태백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고요한 전망지점
용정마을, 느티고개: 탄광촌의 정취와 시골 마을의 평온함이 어우러진 지점
통리역: 국내 최초의 나선형 철도 터널이 있는 역사적 기차역
미인폭포: 청량한 계곡 소리에 마음까지 씻기는 듯한 휴식처
하이원추추파크, 나한정역: 옛 광산철길을 활용한 관광지로 과거의 산업 흔적과 가족형 관광이 공존
도계역 – 삼척 도계 지역의 대표 기차역으로 운탄고도 7길의 여정을 마무리
이 길의 매력은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느끼며 ‘기억 위를 걷는 시간 여행’에 있다는 데 있습니다. 폐광 이후 버려진 길을 자연이 서서히 되살려냈고, 그 속을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다시 이야기를 채워 넣고 있습니다.
경치는 때론 장쾌하고, 때론 정겹습니다. 높은 능선에서는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지고, 숲길에서는 자작나무와 낙엽송이 고요한 위로를 건넵니다. 산업의 그림자와 생태 회복이 교차하는 이 길은, 지금도 여전히 변화하는 강원도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 태백역을 지나 다시 순직산업전사위령탑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가 새겨진 이 탑은, 단순한 기념물이 아닌 한 시대의 희생을 기억하는 상징이었다.
1973년, 1차 오일 파동으로 석탄은 다시 국가의 주요 에너지원이 되었고, 석유를 대체하라는 지시에 따라 광부들은 무리한 생산 목표에 내몰렸다. 그해에만 307명, 누적으로 1700명이 넘는 이들이 열악한 갱도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정희 대통령은 이들을 산업전사로 추서하고, 위령탑 건립을 지시했다. 강원도가 주관해 건립했다.
잠시 묵념을 올리며 떠오른 통계 하나. 2023년, 자전거 이용인구는 천만 명이 넘고, 사망자는 198명이었다.
오늘 하루가 왠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탄광의 기억을 따라 가는 운탄고도는 그저 풍경을 보기 위한 산책로가 아니라, 지나온 시간에 잠시 귀 기울이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대조봉 전망대를 향해 멜바로 오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숲길은 조용했고, 생각보다 경사진 길에서 계단은 반갑지 않다. 숨이 차오르고 다리는 점점 무거워졌지만, 우거지고 묵직한 숲이 만들어주는 그늘에선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개를 들면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은 굵은 나무가 주는 울창함이 멜바의 고통을 격려해주는 것 같다. 메고, 끌고, 타고를 반복하며 대조봉 전망대에 서는 순간, 발아래로 태백 시내가 조용히 펼쳐졌습니다. 거친 숨을 돌리며 바라보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위로였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 올라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백시의 동쪽에 높은 봉우리가 솟아있어 자세히 살펴보면 큰 새가 날개를 펼치고 비행하는 형상을 하고 있어 대조봉이라 부르며 태백의 미래를 짊어지고 태평양으로 웅비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길조라는 설과 외력으로부터 태백을 지키며 동해의 기운을 실어 오는 가교 역할을 하는 수호조라는 두 가지 설이 있음.”
지지리골의 자작나무가 빽빽하고 선명한 흰색으로 숲을 지배했다면, 이곳의 자작나무는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는 듯하다.
바람과 눈, 혹은 다른 영향을 받았는지 나무가 휘어져 있었고, 그 모습이 안쓰럽고 짠하게 느껴졌다.
대조봉 땅속에는 많은 석탄이 매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큰 산 답게 전망대가 연이어 두 곳이다.
힐링! 아트 숲길이었습니다.
새로 단장하는 넓은 임도를 따라 신바람 나게 내려갔습니다. 양대 강 발원지 탐방길도 만났습니다.
용정마을, 작은 시골길을 지나며 사람 사는 냄새가 어렴풋이 배어납니다. 마을마다 시간의 속도가 다른 듯, 조용하고도 따뜻합니다. 길가에 핀 야생화며 고요히 지나가는 바람마저도 어느새 친구처럼 느껴졌습니다.
유령산과 우보산 사이에 있는 느티고개에 도착했다. 길 좌측에 영당이 낙동정맥 등산로는 우측으로 이어진다.
유령산 영당 옆의 유래에 대한 내용을 옮겨본다.
“이곳 느릅령은 신라때 임금이 태백산 천제를 올리기 위해 소를몰고 넘던 고개이며 조선시대는 태백산을 향해 망제를 올리던 곳으로 우보산이라고도 했다 먼 옛날 차도와 철도가 나기 전 이 고갯길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교통요충지로 험하고 높기에 맹호의 피해가 심하여 고개 밑에서 십여명씩 모여서 넘곤 했다 그후 주민들이 산당을 짓고 영로의 무사안행과 주민의 평안과 풍년 농사를 기원하게 된 것이 천년이 넘는다.
중간에는 관청에서 보조 봉제를 하다가 임진왜란등 난세에는 중단하므로 산당이 무너지는 등 피해가 극심하던 때 황지에 살고있는 효자가 소달장에 부친 제사 장보러 갔다가 그날 따라 늦어서 막군에 합류하지 못하고 혼자넘다가 호랑이인 산령에게 홀려서 죽게 될 위경에 이르자 아버님 제기봉행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하니 산령왈 효행이 지극하니 나의 청을 들어주면 살려주겠노라 하여, 청 왈 황소를 잡아 여기에 제사를 올려주면 무사하리라 하기에 약속하고 귀가하여 부친 제사 후 황우를 제물로 음 사월십육일에 제사를 올리게 된 후부터는 태백과 삼척주민들이 산당을 복원하고 매년 이날 황우를 제물로 무사태평과 소망을 기원 봉제사 하게 된 것도 우금 수백년이다. 단기 사천삼백삼십년 음사월십육일 유령제 봉사회 근수.”
산길은 다시 나무계단을 밟으며 능선으로 올라간다.
느티고개에서 시작된 여정은 꽤 가파른 길이었다. 거대한 바위 옆으로 나 있는 긴 데크계단을 오르면 900능선의 전망대에 이른다. 탁 트인 조망을 짧게 즐긴 후, 낙동정맥 종주자들의 표지기가 존재감을 목격하고 , 우보산 정상 이정표를 지나면서 잠깐씩이나마 안장에 올라타 본다.
갈마봉, 느릅령을 지나 내려서면 통리역이다.
이제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 통리역. 연화산을 휘감아 도는 나선형 솔안터널이 개통되면서 그 역할을 마치고 폐역이 된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단순히 멈춰버린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오로라파크'라는 이름으로 문화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갱차, 눈꽃전망대, 세계 5대 고원역사를 소개하는 콘텐츠 공간과 레일바이크도 있으며 이 모든것을 체험하는데 비용은 무료라네요. 잠시 쉬어가는 것도 사치라 여겨지는 긴 여정. 오로라파크의 다양한 문화체험은 흥미로웠지만, 갈 길이 먼 라이더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대신, 아침이슬형님이 정성껏 챙겨온 쑥떡이 오늘의 든든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여행길에서 마주하는 작은 순간들이 때로는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배낭 속에서 꺼낸 소박한 음식 한 조각이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고, 다시 페달을 밟을 힘을 선사하는 순간이었다.
통리5일장은 매월 5,15,25일 열린다. 산골 마을에 개설된 시장이지만, 동해와 삼척의 싱싱한 해산물이 올라와 통리5일장은 지금도 어물전이 유명하다고 한다.
통리재에서 미인폭포로 향했는데 공사중이라 접근 할 수 없었다. 여래사 가는 중도에서 다시 올라와 삼척으로 넘어갔다. 사진은 인터넷 대한민국구석구석에서 다운로드했다. 통리협곡, 미인폭포 아쉬운 장소이다.
하이원 추추파크는 철도와 기차 체험을 내세워 차별화한 곳으로, 삼척 지역에서 가장 큰 관광시설이다.
“국내 유일의 산악철도와 영동선을 활용한 기차테마파크로 지그재그 철도를 달리는 스위치백트레인, 국내 최고 속도의 짜릿한 레일바이크, 이색 미니트레인 외 네이처빌 15동, 큐브빌 7동, 트레인패밀리 1동, 트레인빌 6동, 글램핑 30동의 숙박시설로 이루어진 하이원추추파크는 남녀노소 누구나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철도 체험형 기차 테마 리조트로 고객 여러분께서는 추억과 낭만을 느끼며 즐거운 기차여행을 체험하실 수 있습니다.”(홈페이지 소개 내용)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서는 기차와 철로가 있어야 한다. 1937년 도계-묵호항 간 42km 구간에 철도를 개설한다. 영동의 지하광물을 동해안으로 보내기 위한 수탈의 철길이었다. 문제는 태백 통리역(680m)과 삼척 도계역(245m) 간의 약 400m가 넘는 해발 고도 차이를 극복해야 했다. 통리역-심포리역 1.1km 구간은 경사가 심해 기차가 자력으로 운행할 수 없기 때문에 강삭철도 방식으로 고도차를 극복했다. 강삭철도는 로프에 기차를 연결하고 언덕 위에 설치된 권양기에서 기차를 끌어당기는 시설이다. 인클라인 철도(Incline Railway) 또는 일본인들은 ‘마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1963년까지 약 20년간 운행됐다고 한다. 저 밑의 심포리역에서 기관차, 객차, 화차를 전부 분리해서 고지 위로 끌어올려 다시 기관차, 객차, 화차를 연결했다. 기차 승객들은 모두 내려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갔다. 인클라인 시설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인클라인 철도를 업그레이드한 것이 스위치백 방식이라고 합니다. 경사가 급한 구간의 철로를 지그재그로 만들어 열차가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오르는 방식이다.
그러다가 2012년 솔안터널이 완공됨으로써 인클라인, 스위치백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도계유리나라와 나무나라를 지나, 철도터널 앞에서 오른쪽으로 나한정역까지 산길이다.
나한정역에서 도계역까지는 철길를 따라 이동한다.
운탄고도 8길: 간이역을 만나러 가는 길
8길의 가장 큰 특징은 폐쇄된 간이역들을 지난다는 점입니다. 도계역을 지나 고사리역, 하고사리역, 마차리역 등의 작은 역들을 차례로 만났습니다. 지금은 기차가 멈추지 않는 간이역이지만, 과거 석탄 산업의 흥망성쇠를 함께 했던 역들의 모습은 왠지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고사리역에는 오랜 수령의 느티나무 한 그루가 역사를 지키듯 서 있어 인상적이었습니다. 8길은 다른 코스에 비해 해발 고도가 비교적 낮아 , 비교적 편안하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8길은 도계역에서 시작해 신기역까지 철길을 따라 지금은 폐쇄된 간이역인 고사리역, 하고사리역, 마치리 역, 신기역을 지나간다. 옛날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폐역들은 어떤 사람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선물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기적소리 같은 인생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8길은 차도 또는 보호난간 사이 좁은 공간을 따라가야 하는 구간도 꽤 있다. 차가 달리는 도로에서는 안전에 주의해서 이동해야 한다.
운탄고도 9길: 오십천을 건너 바다에 이르는 길
신기역에서 운탄고도 9길이 시작되었습니다. 9길은 지금까지 지나왔던 산악 코스와는 달리, 오십천의 구불구불한 물길을 따라 동해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길입니다. 다리를 건너 강을 가로지르며 아름다운 산과 들의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길은 완만하게 이어져 편안하게 페달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라이딩을 넘어선 운탄고도의 매력
운탄고도는 단순한 산악자전거 코스를 넘어, 과거 탄광 산업의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광부와 그들의 가족들이 걸었던 이 길을 따라 라이딩하며, 그들의 희생과 사랑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운탄고도 주변에는 하이원 리조트, 만항재 야생화 쉼터, 타임캡슐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어 함께 방문하기 좋습니다.
결론: 역사와 자연을 가로지르는 잊지 못할 여정
2일 동안 운탄고도 5길에서 9길까지 산악자전거로 여행하며, 아름다운 자연과 폐광의 역사를 동시에 경험하는 특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힘든 오르막길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기도 했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멋진 풍경과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며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운탄고도는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라이더뿐만 아니라, 역사와 자연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여행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운탄고도에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라이딩 보다 힘든 차량이동 시간 및 운전이 복병이긴 했지만 이틀간의 여정으로
운탄고도1330 5~9길을 완주하여 전 코스를 무탈하게
마무리했습니다
멋진 풍광과 끝없이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능선들이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해주었죠
라이딩의 마무리는 후기♡
수고하셨습니다^^
후기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추억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랫만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