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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5691 ♧ 이름: 김영배 ♧ 2009/5/3(일) 20:00 (MSIE6.0,WindowsNT5.1,SV1) 211.216.37.159 1024x768 ♧ 조회: 497 | |
"軍 入隊 얘기"(3) "카스테라 와 사이다" 지금 군대는 40 여년 전보다 훨씬 먹을게 많고,어쨋던 "배고프다"라고 하는 병사는 없다. 일과후에는 마음대로 px도 이용할수 있고 샤워도 할수있다. 그러나 지금의 애들이 한결같이 말하는것은 "초코파이"가 먹고싶고 그리고 "전철을 타고싶다" 그런 얘기를 한다.우리가 군 생활을 할때와 비교해 너무좋아졌다.그렇지만 지금의 현역들이 예전에 군생활을 한적이 없으니 군대가 좋아졌다는 것은 알리가 없고 그애들은 그들대로 애로 사항이 많다. 그러나 확실한것은 배가고프지 않다는 사실이다.그러니 얼마나 좋은가.!거기다가 군복무 기간도 짧아지고..무시하는건 아니지만 지금의 군대는 군대도 아닌거다. 우리가 탄 군용열차는 청량리역으로 간다고 들었다. 그러면 창동 보충대로 가는거다. 열두시반에 먹은 칼치국이 문제가 됐다.뭐든지 없어서 못먹었던 애들이 전부 설사를 시작 한거다. 날씨도 더운데 어제 점심식사후,바로 상한 칼치국을 먹어서 그렇다. 열차는 밤새도록 느릿느릿 달리는 데 우리는 밤새도록 화장실앞에 줄나라비를서서 설사를 했고 잠도 별로 못잤다. 먼동이 틀 무렵 청량리역에 도착했다.다른 열차 노선 때문인지 그곳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열차안 에서 세시간을 기다려야하고 그리고 난뒤에 창동 보충대에가서 아침 식사를 하니까 기다리라는 車內 방송이 있었다. 驛 건너편에 순구네 집인데,거기가면 아침밥을 오랜만에, 그러니까 두달반만에 민간인 집에서 실컷 밥을 먹으련만,열차내에서 모두들 꼼짝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다시말해서 보충대에 도착하면 아침을 먹고 어제처럼 금방 점심 식사를 하게될거다.군대서는 불가피하게 시간이 맞지 않아도 일찍먹든 늦게먹든 끼니는 걸르지 않는다. 밤새 항문이 아플정도로 설사를 했던 애들이 다-젊으니까 설사는 그치고 그리고 이제는 몹시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열차가 도착하자 장삿꾼 몇명이 올라왔다. 손에도들고 어깨에도 짊어졌다.장삿꾼들은 그때 군용열차가 도착한다는것을 잘 안다. 그런데 애들이 훈련소에서 돈을 다-써버려서 대부분 돈이 없다.그것은 나와 마주앉은 여섯명도 마찬가지다.그런데 이런 애들이 있다. 훈련소에서 밤에잘때 바지를 벗으면 잠시후에, 물낚시가서 어분 비벼놓은 그와 비숫한 기분나쁜 냄새가 난다. 알고보니 입대전에 어디가서 군용빤스 두개를구해(그때는 다-흰색이다.)그사이에 돈을 넣고 바늘로 꿰메서는 필요할때마다 꺼내서 쓰는 애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돈을 뺏기지 않으려는 방법이란다. 흰 빤쓰가 새까맣다. 지저분한 녀석들, 그러니까 그때까지 한번도 빨아입지 않았으니 냄새가 난다.그런 애들은 혼자서만 뭘 사먹는다.내가 알기론 서울 애들은 그런일이 없다.이제 훈련 다-마치고 보충대로 가는데 그애들보고 사달라고 할수도 없고,뺏을수도 없고, 여기저기서 먹을걸 사고 먹는소리 맛있는냄새,오랫만에 민간인 먹을거리이니, 시각,미각,청각적으로 견디기 힘든다. 세시간 기다리고 열차가 보충대에 도착하면,앞으로 네시간만 참으면 된다,고..그러고 있는데, 우리또래로 보이는 장삿꾼 아이가 물건을 팔면서 자꾸만 나를 본다.누가"어이 여기 카스테라!"하고 부르면 그곳에가서 팔고는 또와서 내얼굴을 보고 명찰을 볼려고 한다. 나중엔 아예 다른칸으로 가지도 않고 내옆에서 알짱 거린다. 처음엔 몰랐는데 자꾸만 반복 되니까,통로쪽에 앉아있던박선호가, "너!저애 아는애냐?" 그러다간 장사는 나중이고 내앞쪽에 서서 자꾸만 나를 본다.눈도 여러번 마주쳤다.이제는 기분이 나쁘다.(저시키 뭐하는놈야.!) 다시 내앞에 왔을때,내가 뭐라고 할려고 일어서는데,그때,그애가 천만뜻밖에," "저...혹시 재민이 삼촌 아니세요?" 그러는게 아닌가! 그래서, 찾았다. 이젠 아주머님께 면목이 섰다" 어쩌고 하면서,'이거 잡수세요"하면서, 장사 하려고 갖고있던 먹을걸 여섯이 마주보고 앉아있는 우리앞에 몽땅 내려놓곤 후다닦 가버렸다. 뭐 어쩌고 할새도 없었다.동기들이, "야! 이게 어떻게 된거냐?" 하여튼 삶은계란에 카스테라 사이다를 배고픈김에 실컷 먹었다.다른 애들도, 시간이 되자.열차는 떠나고 한시간 반은 지나서 창동 보충대에 도착을 했다. 보충대엔 우리와 같은 많은 애들이 한꺼번에 도착을했고 거기서 한참동안 인원점검후에 내무반에 들어갔다.그때,세번이나 반복되는 방송이 들렸다. "지금 도착한 병사중에 김영배 병사가 있으면 지금 즉시 면회소로 가기를 바란다" 계셨다. 누님을 만나니 눈물겹도록 반가웠다.사연이 이렇게 됐다. 올해 80세 되시는 내 큰 누님은 당시,연천에 사셨는데,만물상같은 가게를 하셨었다.거기서 막내인 재민이가 서울에 있는 어떤중학교에 다니면서 부터(큰 아들은 중학교 다니면서부터 서울 나의집에 와 있었고)서울로 이사오실때까지 연천에서 십여년을 사셨다. 그러니까 군인에 대해선 잘 아신다.이북에서 피난온 형제가 불쌍해서 그애들을 도와 주셨는데 동생이 나와 동갑이다 그애들이 누님댁에서 물건을 받아 경원선을 타고 서울로 다니며 열차내 장사를 했다는데, 누님이 그형제에게 부탁을 하셨단다. "내동생이 후반기 교육을 받는다고 서울집에 편지가 왔다는데,청량리 아니면 용산역으로 갈것으로 보이니 너희들이 하나는 용산역으로 하나는 청량리 역에서 잘 살펴봐라,만약에 찾으면 갖고간 먹을거 다주고 오너라,내가 물건값 이익금이랑 다 줄테니" 내가 군입대전에 누님댁에 갔었던적이 있었는데 그형제들이 나를 봤었다고"문제없이 확실히 찾겠다" 장담을 했는데 그형제들은 어떻하던 나를찾아 지금까지 누님댁에 신세진것을 갚으려고 이칸저칸 다니며 내이름을 대고 "그런사람 아느냐"묻고 다녔는데,누군가가 "다음칸에 있을거"라고 알려줘서 나를 찾았단 사연이다. 그애는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연천에 전화를 해서"재민이 삼촌 찾았다고,아주머님이 시킨데로 했다고" 기뻐하며 말하는것을 듣고,누님은 즉시 큰 통닭 몇마리쯤 삶고 떡이랑..하여틑 많이도 갖고 오셨다. 택시를 대절해 갖고.....하여튼 누님덕에 참 잘먹었다 용돈도 받고.. 나중에 제대후, 그 형제를 찾아 감사할려고 누님댁에 갔더니 두형제가 고향과 부모님 그리워하며 병이들어 둘다 죽었다니 애석했다.다음날 아침 식사후에 크지도않은 보충대 연병장에 집합했다. 각 사단에서 우리를 데릴러오는 기간병을 기다리는데,그때 끌려가는곳이 우리가 제대할때까지 근무하게될 사단이다.내가 알기론,다섯개 내지는,여섯개 사단에서 트럭을 갖고와 병사들을 싣고 가는데,따로 열을지고 서있는 우리..그러니까 170명 가량 남겨두고 다-떠나갔다. 같이 훈련 받았던 동기들과 헤여질때엔 정말 눈물이 났다.(나중에 제대할때 수색 30사단에서 전부 만났는데,참 반가웠었다.) 남아있는 내동기중에 서울 애들은 다섯명정도,.. 오후 네시가되자 다른 인솔부대 기간병들은 전부 작업모를쓰고 비무장으로 왔는데 몇대의 트럭을 갖고 우리를 인솔하러온 기간병들은 칼빈을 어깨에 메고 위장망을 두른채 나타났다.좀 삼상치 않은 기분이 들었다.우리는 긴장했다 "대관절 어디로 가는데 저런 복장이냐?" 그러나 아는애는 없다.이름을 호명하는데로 트럭에 탔다.그때 비로소 눈에 들어온 기간병들의 어깨에달린 마크, 말(馬)이다.그러니까 우리는 실무부대인,백마부대로 배속이 된거다. 트럭은 지체없이 달리기 시작했다.의정부로해서 동두천으로,그리곤 전곡을지나 연천으로 간다.연천역 있는데가 차탄리이고 바로 길가에 누님 가게가 있다.나는 반가웠다 그러나,트럭은 먼지를 날리며 계속 간다."도대체 어디로 가는거야?" 그러나 모두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드디어 사방이 어두워 졌는데도 트럭은 계속 간다.그리곤 완전무장한 철벽같은 검문소에 도착을 하곤 헌병 여럿이 인원 점검을 하는 데 철저하다. 거기가 옥계리 초소다. 거기를 지나서부터는 깊은 산중인데 인가도없고 좁은 비포장도로 양쪽에는 트럭 헤트라이트에 간간히 보이는 지뢰지대 표시..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곳에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고 트럭은 계속 간다 청처없이...이제는 깜깜한 밤이다. 도착한곳은 사방이 산이고 불켜진곳은 없는데,군인들이 많이 나와있다.그곳이 9사단 28연대 신병교육대 2중대이다. 중대사전에서 중대장 박도경 대위가 보고를 받고는 막사로 들어갔다.따블백을 침상에 내려놓고 5분쯤 됐나..다시 중대 사전으로 집합하라는 전달을 받고 집합했다.언덕 아래로 내려가니 개천가 옆에 움막같은곳이 취사장이다.그러니까 식당이다. 거기서 저녘은 먹고 다시 중대 사전에 집합을하니 우리가 대열을 짖고있는 앞에 기간병들이 늘어서 있는데 20여명 된다.전등도 없이 가끔 후러쉬 불빛만 보이고... 바로앞에 앉아있는 몇명의 기간병들은 머리가 좀 길다. 그들이 우리들을 보고, 65년 8월초인데, (그들은 내가 알기로 1116인가 7 정도로 기억되는데 확실치는 않고)어쨋던 그사람들은 제대 특명을 받은 사람들이다.부러웠다.우리는 이제부터 군생활 시작인데 그들은 제대특명자들이다.) 조석영: 선배님 글을 읽으면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어 가슴이 찡합니다. 집이 의정부라서 경원선을 타고 학교를 다녔는데...성북역에서 전방으로 가는 군용열차를 가끔씩 본 적 있습니다. 훈련소를 마치고 전방으로 가는 신병이 차창밖의 부모님을 만나면서 우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책으로 내도 좋을만한 글솜씨와 추억을 갖고 계십니다. -[05/03-20:15]- 윤 광대: 김 영배 전우님:글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저는 외국생활하느라 군번을 잊어 버렸다가,새자동차를 구입했는데 차번호가 1147123이라 기억에 있어 생각해 보니 끝번 앞에 7자가 빠져 있는 군번임을 알았습니다.제가 65년5월 25일 입대했습니다.저와 비슷한 시기인것 같습니다.반갑습니다. -[05/03-22:04]- 김영배: 윤광대 전우님,ㅋㅋㅋ수용연대에서 며칠 계셨군요.맞습니다 비슷합니다 제가 조금-아주 조금 빠릅니다. 한- 15일쯤 빠른가 봅니다.저는 지금 대관령에서 삽니다.집은 사당동이구요.어쩌다 이곳에 혼자와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아주 반갑습니다. 군번얘기도 할말이 많습니다.앞으로 여기서 자주만나뵙길 원합니다. 나이도 동갑 같구요.저는 44년생 입니다. -[05/03-22:58]- 백동기: 김 전우님,저하고 같은곳에서 군대생활을 하셨네.베트남전 참전전에 군남삼거리를 거쳐 옥계리 검문소를 지나 GP에서 근무를 했었고 베트남 가기위해 신검을 받을때는 신망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초성리 근처 병원에서 받은것 같은 기억입니다. -[05/04-00:43]- 강신정 : 김영배 전우님,계속되는 입대기 흥미 진진하게 잘 보고 있습니다. 저하고 같은 점을 또 하나 발견 했네요. 귀 빠진 해 하고 창동 보충대를 거친 것이 말입니다. 저는 군입대를 늦게 해서 68년에 월남에서 귀국 후 그곳을 거쳤지요. 어쨌거나 어쩌면 그렇게 대단한 기억력을 갖고 계신지 감탄할 따름입니다. 입대시의 전우들, 당시의 중대장 등등의 이름을 어떻게 기억을 다 할 수 있습니까?. 또 하나, 젊은날의 "싸나이" 김전우님의 모습을 상상 해 봅니다. -[05/04-04:15]- 이상수: 김선배님 에 "군 입대 이야기"를 읽으면 마치 제가 그자리에 있는 느낌입니다. 아주 잘 읽고 있습니다. -[05/04-05:10]- 윤 광대: 김 영배 전우님:아마 베트남에도 같은배로 간것 같습니다.백마와 십자성부대가 같이 66년 9월7일 부산항을 출발해서 남지나해의 거친파도에 일주일간 모르는 베트콩 보다 더 시달렸지만 도착한 9월14일 나트랑 해변에서는 다들 의기충천해 있었습니다.저도 44년생입니다.좋은곳에 계십니다.사방 천오백리에 산이없는 벌판에 살다보니 산이 그립습니다. -[05/04-05:32]- 류지현: 저는 66년 6월 대한민국 초대 세계참피언 김기수선수가 벤베누티를 꺾는 장면을 수용연대에서 보며 입대 했습니다만 비참하던 훈련소생활 전반기,후반기훈련을 받고 논산쪽으로 보고 오줌도 안 눈다고 했는데 몇 백배 더 심한 고통과 교육이 있는줄도 모르고 느림보 군용열차를 타고 가던 생각이 뇌리에서 주마등처럼 지나 갑니다. 김선배님 잘 읽고 있습니다. -[05/04-08:17]- 김병장: 흥미 진진한 글 잘읽었습니다.다음편을 기대합니다...건필하시고 건강하십시요 -[05/04-12:01]- 박용환: 살아가는 이야기란에 군생활 스토리가 흥미진진합니다.ㅎ...줄거리도 흥미잇고요 또박또박 글쓰심이 재미있습니다...계속 연결될것을 기다립니다...^^ -[05/04-12:13]- 차경선<: 재미있게 잘 읽고있습니다. 예전 내 생각도 납니다. 논산에서 배출대 거쳐 구로동 206보충대까지 왔는데, 특전사령부랍디다. 우리동기 80여명은 특전사령부가 공수부대라커니, 아니라커니 했습지요. 인솔선임하사관이 공수부대 의 베레모 대신일반작업모자에 공수 윙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왔어요. 그래도 우리 멍충이들은 몰랐었습니다. 군용트럭에 우릴 태우고 소사에 위치한 특전사령부로 끌고 가는데 그때까지 우리이등병들한테 나긋나긋 잘 대해주던 인솔하사관이 사령부 전방 300미터 에서 호랑이로 변해선 하차시키더니 따불백을 머리에 추켜세우고 고갯마루를 오리걸음으로 가게 하는데 정문 초병의 모습을 보곤 우리들은 까무러칠듯 겁먹고 말았지요. 얼룩무늬에 베레모^^ 공수부대~~ 이젠 죽었구나 했었지요. 그리곤 일,이주후부터 유격, 공수, 특수전, 위생병으로 군의학교등 8개월의 피눈물나는 훈련끝에 파월되었습니다. 옛날생각이 납니다. -[05/04-14:33]- 기갑 1: 70년 12월 9 일 초저녁 금마 왕궁면에 있는 박격포 후반기 교육마친날저녁 어머님과누님,그리고 여친이 면회를 왔는데.. 하사관학교 소위로 근무하던 친구와 같이..면회 금지라 후문 위병소 앞에서서 어머님 우시는 모습을 보며 말한마디 못하고 103 보충대로 간 기억이 새롭습니다..건강하시죠? 두룹은 한번에 다 꺾지 마시고 양쪽으로 몇가지만 꺾어시면 다시 양쪽으로 올라옵니다.한번에 다꺾어시면 내년에야 수확합니다..두룹 많이 잡수셔요..잘 읽엇습니다. -[05/04-15:04]- 정병장: 김 선배님...흥미 진지하게 읽었습니다.당시에 읽기를 쓰셨나 보군요.단편 소설 책으로 출판 하셔도 손색 없겠습니다. 건강 하십시요. -[05/04-20:50]- 김영배: 강신정 전우님 안녕 하신지요,지금 계신곳에 날씨는 어떤지..어떤 전우님과 만나신적이 있는지 그런것도좀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윤광대 전우님은 어느나라에 계십니까?사방 천오백리가 벌판이라니 큰 나란가 본데 벌판이면, 몽골?아니면 아르헨티나? 아니 아르헨은 사방이 그렇게 천오백리씩이나 벌판은 아닐텐데.하여튼 다른 나라에서 고생이 많으십니다,그곳 소식을 자주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사진도 올려 주시고요,두분전우님들 타국에서 그저-건강 하십시요. -[05/06-0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