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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18권[2]
[앙산 화상] 仰山
위산潙山의 법을 이었고, 회화懷化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는 혜적慧寂이요, 속성은 엽葉씨이며, 소주韶州의 회화현懷化縣 사람이다. 15세에 출가하려 했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아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가, 17세에 다시 출가하려 했으나 부모가 여전히 허락하지 않았다.
그날 밤, 두 가닥의 흰 광채가 조계曹溪로부터 뻗어 나와 곧장 그 집을 꿰뚫으니, 그의 부모는 그것이 아들이 출가할 징조임을 알고 감동하여 허락했다. 이때 선사는 왼손의 무명지無名指와 새끼손가락을 끊어 부모 앞에 놓고 그간 길러 주신 은혜에 감사하였다.
처음에는 남화사南華寺 통通 선사 밑에서 머리를 깎고, 18세에 사미가 되어 행각行脚을 떠났다. 먼저 종宗 선사에게 참문을 했고, 다음에는 탐원耽源에게 참문하여 그의 곁에 있기 몇 해 동안에경계와 지혜의 밝고 어두움이 한 모습인 도리를 배웠다. 그는 한 번 들으면 다시 묻지 않았다. 후에 모든 것을 버리고 대위大潙로 갔다.
대위에 이르러 위산에게 참문하니, 위산潙山이 말했다.
“이 사미는 주인이 있는 사미인가, 주인이 없는 사미인가?”
선사가 대답했다.
“주인이 있는 사미입니다.”
“주인이 어디에 있는가?”
선사가 서쪽 구석에 섰다가 다시 동쪽 구석에 가서 서니, 위산이 선사의 됨됨이가 특이함을 알고, 대화를 시작하여 이끌어 주었다.
선사가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위산이 대답했다.
“생각 없는 묘를 생각함으로써 돌이키는 신령한 광채가 끝이 없다. 생각을 다하여 근원에 돌아가면 성품과 모습이 항상 머무르고 진리와 현실이 둘이 아니며 참 부처가 여여如如하니라.”
선사가 이 말에 활짝 깨닫고는 감사의 절을 하였다. 이어서 위산에 머무르기를 14~15년 동안, 오로지 위산과 자리를 마주하면서 현현하고 비밀한 진리를 드날렸으니,
이는 마치 사리불의 날카로운 말재주가 부처님의 교화를 더욱 빛낸 것과 같다 하리라.
35세에 대중을 거느리고 출세出世하니, 앞뒤 고을의 절사節史ㆍ찰사察史ㆍ자사刺史 들이 앞을 다투어 귀화하였는데, 그 중 열한 사람이 선사를 스승으로 섬겼다. 선사가 세 곳에서 법륜法輪을 굴리니, 왕이 칙명으로 증허證虛 대사라는 호와 자색 가사를 하사하였다.
선사가 날마다 상당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들, 모두가 각자 광채를 돌이키고 자신을 되찾되,
나의 말만 기억하지 말라. 나는 끝없는 예부터 밝음을 등지고 어둠을 향하여 허망을 좇는 뿌리가 깊어서 결국 뽑기 어렵게 된 그대들을 가엾이 여기노라.
그러므로 임시방편을 베풀어서 여러분의 티끌같이 많은 겁 동안에 쌓인 나쁜 지식을 뽑아 버리려 하나니, 마치 단풍잎으로 우는 아기의 울음을 달래는 것과 같으니라.
이는 또 어떤 사람이 1백 가지 재물과 황금 보화를 한 자리에 뒤섞어 놓고 찾아온 사람의 정도에 맞추어 파는 것과도 같다 하리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석두石頭는 진금포(眞金鋪:순금 가게)이지만 내가 있는 곳은 잡화포(雜貨鋪:잡화 가게)이니, 찾아온 이가 잡화를 구하면 나는 잡화를 주고, 찾아온 이가 진금을 찾으면 나는 진금을 준다’ 하노라.”
이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잡화포는 묻지 않겠습니다. 어떤 것이 화상의 진금포입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화살촉을 물고 입을 열려는 이는 나귀 해에 이르러도 알지 못하느니라.”
그 스님이 대답을 못했다.
선사가 또 말했다.
“찾으면 있고, 교역을 하려면 없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선종禪宗의 진리를 이야기하면 내 주변에 한 사람도 동무가 되어 주는 이가 없다.
그런데 어찌 5백 대중, 7백 대중이라 말하는가?
그러나 내가 이것저것 지껄이면 제각기 앞을 다투어 나서며 알았다고 들고 나오는데, 이는 마치 빈주먹을 쥐고 아기들을 속이는 것 같아서 전혀 실속이 없다.
내가 이제 분명히 그대들에게 이르나니 성현 쪽의 일에 마음을 두어 머무르려고 하지 말고, 오직 자신 앞의 진리를 향해 여실히 닦으라.
3명明과 6통通을 바라지 말지니, 이는 성현의 끝 부분에 속하는 일이다.
지금에라도 마음을 알고, 다만 근본을 얻되 끝을 걱정하지 않으면 언젠가 저절로 구족하리라.
만일 그 근본을 얻지 못하면 설사 온 마음으로 배웠다 해도 끝내 얻지 못하리라.
그대들은 보지 못했는가?
위산 화상께서 말씀하시기를,
‘범부와 성인의 망정이 다하여 본체가 드러나면참 마음이 항상 머무르고 이치와 현실이 둘이 아니게 되리니, 이것이 곧 여여한 부처이니라.’ 하셨느니라. 잘 가라.”
어떤 스님이 물었다.
“법신도 설법을 할 줄 압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나는 말할 수 없다 하는데, 다른 사람은 말할 수 있다 하느니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선사가 베개를 밀어내었다.
나중에 어떤 스님이 위산에서 이 일을 이야기하니, 위산이 말했다.
“적자(寂子:앙산)가 칼날 위의 일을 활용했구나.”
어떤 사람이 설봉雪峰에게 이야기하니, 설봉이 말했다.
“위산 화상이 등 뒤에서만 그렇게 말하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일을 들어 물었다.
“관리가 되었을 때에는 어떠합니까?”
복선福先은 손으로 때리는 시늉으로 대답을 대신 했고, 보은報恩은 다음과 같이 대신 말했다.
“누가 감히 나서겠는가?”
선사가 스님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곁의 스님이 말했다.
“말을 하면 문수文殊요, 침묵하면 유마維摩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말하지도 않고 침묵하지도 않을 때에는 그대가 아니겠는가?”
그 스님이 양구良久하니,
선사가 다그쳐 물었다.
“어째서 신통을 나타내지 않는가?”
스님이 말했다.
“신통을 나타나기는 어렵지 않으나 화상께서 교敎의 범주에 말려들까 걱정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의 근본을 살펴보건대, 교 바깥의 안목을 갖추지 못했느니라.”
선사가 어떤 벼슬아치에게 물었다.
“직위가 무엇인가?”
“아추衙推입니다.”
선사가 주장자를 들어 보이면서 말했다.
“이것도 밀어낼[推] 수 있겠는가?”
벼슬아치가 대답이 없으니, 선사가 대신 말했다.
“그것이라면 다음으로 미룹시다.”
흥화興化가 대신 말했다.
“화상께서는 일이 있습니다.”
선사가 상좌에게 말했다.
“선善도 생각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말라 하였으니, 바야흐로 이러할 때는 어찌하겠는가?”
상좌가 대답했다.
“바로 그러한 때가 제가 생명을 던질 곳입니다.”
“어째서 나에게 묻지 않는가?”
“그러할 때에는 화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나를 부축하되 일어서지 못하게 하는구나.”
선사가 누더기를 씻는데,
탐원耽源이 물었다.
“바야흐로 그러할 때에는 어떠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분명히 둘 모두 무위無爲이니라.”
또 말했다.
“바야흐로 그러할 때에 나는 그를 생각하지 않느니라.”
또 말했다.
“바야흐로 그러할 때에 어디에서 그를 보았는가?”
선사는 경잠景岑 상좌가 뜰에서 볕을 쬐는 것을 보고, 그 곁을 지나면서 말했다.
“사람마다 모두 그런 일이 있는데, 다만 말을 하지 못할 뿐입니다.”
경잠이 말했다.
“마치 그대에게 말해 달라고 한 것같이 되었구나.”
선사가 물었다.
“어떻게 말하리까?”
이에 경잠이 선사의 멱살을 잡아 쓰러뜨리고 한 번 짓밟으니, 선사가 쓰러졌다 일어나면서 말했다.
“사숙師叔의 동작이 마치 호랑이 같으십니다.”
선사가 동평東平에서 경을 보는데, 어떤 스님이 모시고 서 있었다.
선사가 경을 덮고, 고개를 돌려 그 스님에게 물었다.
“알겠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저는 경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이 다음에 그대도 차차 알게 될 것이니라.”
선사가 위조韋曹 상공相公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자,
상공이 물었다.
“절에 몇 사람이나 살고 있습니까?”
“5백 명입니다.”
“경 읽는 일에 힘을 쓰십니까?”
“조계종의 종지는 경 읽는 일에 애를 쓰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에 선사가 말했다.
“거두지 않고, 조섭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공이 위산에게 가서 게송을 청하니,
위산이 대답했다.
“마주 보며 주어도 여전히 둔한鈍漢을 면치 못하는데,하물며 종이와 먹으로이겠는가?”
그가 또 선사에게 와서 게송을 청하니, 선사가 종이에다 원상圓相을 하나 그리고,
원상 안에다 “아무개는 삼가 답하노라” 쓰고,
그 왼쪽 가에는 “생각해서 알면 둘째 무리에 떨어진다”고 쓰고,
그 오른쪽 가에는 “생각하지 않고 알면 셋째 무리에 떨어진다”고 써서 봉하여 상공에게 주었다.
상공이 물었다.
“둥근 달같이 당겨진 활이 화살촉을 씹는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화살촉을 씹고 입을 열면 나귀 해에도 알지 못하는데, 남전은 몸을 비스듬히 돌려 억지로 일어서려 하는구나.”
그리고 이 일을 들어서 물었다.
“화살촉을 씹고 입을 열려 하면 나귀 해에도 알지 못한다.
국사께서 ‘손익損益이야 상관없다’ 하셨는데,
그렇다면 손익이 상관없는 구절은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하여 정수淨修 선사가 답했다.
“앙산의 화살촉 씹는 화두話頭는 말로 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선사가 지적하는 것은 오직 후생後生들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니, 말의 손해는 이쪽의 경계이다.”
석문이 이 일을 들어서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알았을까, 몰랐을까?”
그 스님이 대답을 못하자, 석문이 대신 말했다.
“알지 못했다.”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찌해야 알 수 있습니까?”
쌍봉雙峰이 위산을 떠나 앙산에 이르니,
선사가 물었다.
“사형께서 요즘은 어떠하신가요?”
쌍봉이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하나의 법法도 생각에 걸어둘 것이 없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그대의 소견은 아직 마음의 경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쌍봉이 다시 물었다.
“나의 소견은 마음의 경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치고, 화상의 소견은 어떠하십니까?”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한 법도 생각에 걸어둘 것 없는 줄 아는 것이야 어찌 없을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위산에게 이야기하니, 위산이 말했다.
“적자寂子의 이 말이 천하 사람들을 홀리게 할 것이니라.”
순덕順德이 이 일을 송했다.
쌍봉의 현자가 스스로 거칠어서
앙산을 굴복시키지 못하였도다.
그대를 이끌어 결박을 풀게 하니
종도宗徒들의 여러 말을 무찔러 멈추었다.
한 소경이 여러 소경을 이끈다니
옛일이 오늘에 있음을 아는가?
선사가 언젠가 마침 눈을 감고 앉았을 때, 어떤 스님이 가만히 걸어와 선사의 곁에서 모시고 섰다. 선사가 문을 열고 땅 위에다 원상圓相을 그리고는 원상 안에다 물 수水 자를 써서 고개 돌려 그 스님에게 보이는데,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뜻입니까?”
선사가 손으로 원상을 그리고, 원상 안에다 불佛 자를 써서 대답했다.
어떤 행자行者가 법사를 따라서 불전佛殿에 들어가서는 부처님을 향해 침을 뱉었다. 그러자 법사가 꾸짖었다.
“행자가 버릇이 없구나. 어째서 부처님께 침을 뱉는가?”
행자가 말했다.
“저에게 부처님 없는 곳을 가르쳐 주십시오. 거기다가 침을 뱉겠습니다.”
위산이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어진 이가 도리어 어질지 않고, 어질지 않은 이가 도리어 어질구나.”
선사가 법사를 대신하여 말했다.
“법사는 다만 행자에게 침을 뱉고 행자가 무어라 하거든 ‘나에게 행자가 없는 곳을 보여 주면 침을 뱉겠노라.’ 했어야 했다.”
어떤 벼슬아치가 위산에게 물건을 보내어 종鍾을 사는 데 쓰라고 하였는데, 위산이 선사에게 말했다.
“속인이 복을 사랑해서이니라.”
선사가 말했다.
“화상께서는 무엇으로 그들에게 보답하렵니까?”
위산이 주장자를 들어 승상의 귀를 두세 번 두드리고는 말했다.
“이것으로 그들에게 보답하려는데 되겠는가?”
선사가 말했다.
“이런 것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위산이 말했다.
“그대는 무엇이 불만인가?”
선사가 말했다.
“저로서는 불만이 없습니다만 그것은 대중을 위한 것입니다.”
위산이 말했다.
“그대는 대중의 것임을 알고 있는데, 다시 나에게서 무슨 보답을 찾는가?”
선사가 말했다.
“저는 화상께서 대중의 것을 가지고 인사치레에 쓰는 것을 의심하였습니다.”
이에 위산이 말했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달마가 인도에서 오실 때에도 이것을 가지고 인사를 차리셨느니라.
그대들 모두가 그 신표의 물건을 받은 무리들이니라.”
선사가 시중하여 말했다.
“그러할 때는 그만두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어찌하는가?”
어떤 사람이 이 일을 위산에게 이야기하니, 위산이 말했다.
“적자寂子가 사람들을 위함이 너무 조급하구나.”
위산이 선사와 함께 산 구경을 하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질을 보면 곧 마음을 본다.”
선사가 물었다.
“지금 듣건대 ‘물질을 보면 마음을 본다’ 하셨습니다. 나무들은 물질이니, 어느 것이 화상께서 물질에서 보신 마음입니까?”
위산이 대답했다.
“그대가 이미 마음을 보았다면 어찌 물질을 본다 하는가?
물질을 본 것이 곧 그대의 마음이니라.”
선사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먼저 마음을 본 뒤에 물질을 보라 하셔야 하는데, 어찌하여 물질을 본 뒤에 마음을 본다 하십니까?”
위산이 말했다.
“내 지금 나무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대는 들었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화상께서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신다면 그저 나무와 이야기를 하실 일이지 저에게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를 물어서 무엇 하시렵니까?”
“나는 지금 그대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들었는가?”
“화상께서 저와 이야기를 나누신다면 그저 저와 이야기를 나누실 일이지,
또 저에게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는 물어서 무엇 하시렵니까?
만일 저에게 들었는지 여부를 물으시려거든 먼저 나무에게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물으셔야 할 것입니다.”
선사가 위산에 있을 적에 어느 눈 오는 날, 다음과 같이 물었다.
“저 물질을 제하고 다시 다른 물질이 있겠습니까?”
위산이 대답했다.
“있느니라.”
“어떤 것이 물질입니까?”
위산이 눈을 가리키니, 선사가 말했다.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위산이 말했다.
“옳거니, 이치가 옳으면 나아갈 뿐이다. 이 물질을 제하고 다시 물질이 있겠는가?”
“있습니다.”
“어떠한 물질인가?”
선사가 얼른 눈을 가리켰다.
동산이 선사에게 사람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옳고, 어떻게 하면 옳지 않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옳으면 모두가 옳고, 옳지 않으면 모두가 다 옳지 않느니라.”
이에 동산이 스스로 말했다.
“옳으면 모두가 다 옳지 않은 것이고, 옳지 않으면 모두가 다 옳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선사가 다음과 같이 송했다.
법신은 작위作爲가 없으나 화신은 작위가 있나니,
박가범薄伽梵은 현현하게 모든 병에 응하신다.
꽥꽥 소리를 듣는 것은 짐승의 울부짖음을 듣는 것과 같고
물안개 속에서 고기를 찾는 것은 어리석은 늙은 학과 같다.
선사가 사미沙彌였을 때, 종宗 화상의 회상에서 산 적이 있었는데, 한번은 아이들 방에서 경을 읽고 있었다.
“누가 여기서 경을 읽고 있는고?”
선사가 대답했다.
“제가 혼자서 경을 읽고 있을 뿐,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이에 종 화상이 꾸짖으면서 말했다.
“무슨 경을 읽는 소리가 마치 노래 부르는 것 같으냐?
그렇게도 경을 읽을 줄 모르느냐?”
선사가 물었다.
“저는 그렇지만 화상께서는 경을 읽을 줄 아십니까?”
“나는 경을 읽을 줄 아느니라.”
“화상께서는 어떻게 읽으십니까?”
이에 종 화상이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시작하니, 선사가 말했다.
“그만두십시오.”
어떤 이가 물었다.
“오늘 위산을 위해 재齋를 마련했는데, 위산께서 오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오면 가는 일이 있고, 가면 오는 일이 있느니라.”
위산이 선사를 불러 선사가 대답하니, 위산이 말했다.
“속히 일러라, 속히 일러라. 그대는 음陰에 떨어지지 말라.”
선사가 대답했다.
“저는 아직 믿음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믿음이 서지 않았느냐?”
“만약 저의 믿음이 섰다면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그대는 알기 때문에 믿음이 서지 않는 것인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이 서지 않는 것인가?”
“믿음이 서지 않았으므로 안다, 모른다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정성성문定性聲聞이로구나.”
이에 선사가 말했다.
“저는 부처도 보지 못합니다.”
선사가 어떤 물건을 들고서 위산에게 물었다.
“이럴 때는 어떠합니까?”
위산이 대답했다.
“분별은 색진色塵에 속한다. 내가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화상께서는 몸이 있되 작용이 없습니다.”
“그대라면 어찌할 것인가?”
“저는 아직 믿음이 서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믿음이 서지 않았느냐?”
“만약 제가 믿음이 섰다면 다시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위산이 다시 물었다.
“있어서 서지 않는 것인가, 없어서 서지 않는 것인가?”
선사가 대답했다.
“서지 않았으므로 있다 없다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정성성문이구나.”
“저는 이 경에 이르러 부처도 보이지 않습니다.”
위산이 말했다.
“그대는 훗날 나의 가르침을 펴면서 활개를 칠 것이다. 나는 그대에게 미치지 못하니라.”
선사가 사미일 적에 탐원耽源의 회상에서 창례唱禮를 맡고 있었는데,
탐원이 물었다.
“무엇을 하는가?”
“창례를 맡고 있습니다.”
“예문禮文에 무엇이라 했는가?”
“모든 것을 공경하라 하였습니다.”
“갑자기 깨끗하지 못한 것을 만나면 어떻게 하는가?”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1. 위중승韋中承이 물었다.
“5조께서는 어찌하여 의발衣鉢을 혜능慧能에게 전하시고, 신수神秀에게 전하지 않으셨습니까?
또 전하신 뒤에, 혜명慧明은 어찌하여 대유령大庾嶺까지 6조를 따라가서 의발을 빼앗으려 했으며,
또 무슨 뜻으로 의발을 얻지 못한 채 돌아왔습니까?
제가 성안에서 여러 스님들께 이 일을 물었는데, 모두 제각기 하는 말이 달랐습니다. 저는 항상 이 일을 의심하여 왔습니다. 바라옵건대 스님께서 한 말씀하셔서 풀어 주소서.”
선사가 대답했다.
“이는 종문宗門 안의 일이다. 내가 전에 스승께 들은 바에 의하면 그때 5조의 회상에는 7백 명의 대중이 있었다.
5조께서 열반하시려 할 때 대중 가운데 법을 전할 사람과 의발을 전할 사람을 찾으셨다.
대중 가운데 신수神秀라는 상좌가 있어, 게송을 지어 5조께 바쳤는데,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몸은 보리수菩提樹요
마음은 맑은 거울 틀이라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
방앗간에서 일을 하던 노盧 행자行者가 나중에 이 게송을 전해 듣고 게송 하나를 지어 5조께 바치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아니요
맑은 거울 역시 틀이 아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먼지가 끼랴?
5조께서 이 게송을 보고 아무 말도 없으시다가 한밤중에서야 동자童子를 시켜 방앗간에 가서 행자를 불러오라 하셨다. 행자가 시자를 따라 5조에게로 오니, 5조께서는 시자를 내보낸 뒤 노 행자의 이름을 혜능이라 고쳐 주셨다.
그런 후 의발을 6조에게 전하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신수는 문 밖에 있지만 혜능은 문 안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법복을 입었다.
이로부터 20년 동안은 스스로 살피어서 나의 교법을 펴지 말라. 반드시 난리가 일어나리라.
이를 지난 뒤에는 미혹한 사람들을 잘 인도하라.’
혜능이,
‘어디로 가야 그러한 난리를 피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5조께서 말씀하시기를,
‘회懷를 만나면 숨고, 회會를 만나면 도망하라. 다른 성, 다른 이름이면 평안하리라.’ 하셨다.
행자가 부촉과 의발을 전해 받자, 5조께서는 어서 떠나라 하셨다. 이에 혜능은 영남嶺南을 향해 길을 떠났다.
닷새 뒤에 5조께서 대중을 모아놓고 말씀하시기를,
‘여기에는 불법이 없다’ 하셨으니, 이 말씀은 6조의 일을 드러내는 뜻이다.
대중이 ‘의발은 누구에게 전하셨습니까?’ 하고 묻자,
5조께서 ‘능能한 이가 얻었느니라.’ 하셨다.
대중은 공론 끝에 방앗간의 행자를 찾아보고, 또 동자의 발설로 인하여 노 행자가 의발을 가지고 영남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중이 일제히 그쪽을 향해 뒤쫓았는데,
대중 가운데 속가에서 관직을 버리고 들어온 스님이 있었다. 그는 본래 3품品의 장군으로서 성은 진陳씨이며, 자는 혜명慧明이었다. 밤길을 달려 다른 이보다 앞서서 대유령大庾嶺에까지 이르렀다. 행자는 그가 뒤따라오는 줄 알고 의발을 버리고 숲 속에 들어가 돌 위에 앉았다.
혜명이 고개 마루턱에서 의발을 보고 그 앞으로 가서 손을 뻗어 들려 했으나 의발이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바로 자기의 힘이 부족함을 알게 되었다.
곧 산으로 들어가서 높은 봉우리 밑, 숲 속에서 행자가 돌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행자는 멀리서 오는 혜명을 보자 의발을 빼앗으러 온 줄을 미리 알고 말하기를,
‘우리 조사께서 나에게 의발을 주시기에 내가 가지고 오기는 했으나 고개마루턱에 두었다. 가지려거든 가져가라.’ 하니,
혜명이 대답하기를,
‘의발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오직 법을 위해서 왔습니다.
행자께서 5조의 곁을 떠나실 때 5조께서 어떠한 비밀의 뜻과 비밀의 말씀이 있으셨는지요?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하였다.
행자는 간절한 태도를 보자 말해 주려고 우선 그를 돌 위에 앉혀 조용히 생각하게 하였다.
그런 뒤 입을 열어 말하기를,
‘선善도 생각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말라. 바야흐로 이와 같이 생각을 하지 않을 때 나에게 그대의 본래 면목을 돌려다오’ 하였다.
혜명이 묻기를,
‘위에서 말씀하신 비밀의 뜻이 그것뿐입니까, 아니면 다른 뜻도 있습니까?’ 하니,
행자가 대답하기를,
‘내가 이제 분명히 그대에게 말해 주어서 도리어 비밀이 아닌 것이 되었다. 만일 그대가 스스로 자기의 면목을 얻으면 비밀한 뜻은 곧 그대 쪽에 있을 것이다’ 하였다.
혜명이 다시 묻기를,
‘행자께서 황매(黃梅:5조) 화상께 가지셨던 뜻은 또 무엇입니까?’ 하니,
행자가 대답하기를,
‘화상께서 내가 수秀 상좌의 게송에 화답한 것을 보시고, 이내 내가 문 안에 들어갔음을 아시고, 혜능이라 이름을 지어 인가하셨다. 그리고 수는 문 밖에 있는데, 능은 문 안에 들어와서 자리를 얻고 옷을 입었다.
이 뒤로 스스로가 잘 살펴라. 이 의발은 예로부터 전해 온 것이니, 꼭 알맞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내가 이제 그대에게 전하니, 애써서 지키되 20년 동안은 절대 나의 가르침을 펴지 말라. 반드시 환난이 일어날 것이다. 그 뒤에는 미혹한 무리들을 잘 교화하라.’ 하셨느니라.
그때 내가 묻되,
‘어디로 가야 이런 환난을 피하겠습니까?’ 하니,
5조께서 대답하시되,
‘회懷를 만나면 숨고, 회會를 만나면 도망하라. 회懷는 곧 회주懷州요, 회會는 곧 사회현四會縣이다. 다른 성, 다른 이름으로 살면 편안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자 혜명이 말하기를,
‘황매에서 머리는 깎았으나 선종의 면목은 전혀 알지 못했는데, 이제 들어갈 자리를 지시해 주심을 받고 마치 사람이 물을 마시면 차가운지 따뜻한지 스스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행자는 저의 스승이오니, 지금 곧 이름을 고쳐서 도명道明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행자가 말하기를,
‘그대가 그렇다면 나도 그러하리라. 그대와 더불어 함께 황매를 섬긴 점에서 다르지 않으니, 잘 보존하여 간직하라.’ 하였다.
도명이 말하기를,
‘화상께서는 빨리 남쪽을 향해 떠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쫓아오고 있습니다. 제가 그들의 길을 돌리게 할 때까지 잠시 기다리십시오. 저는 화상을 하직하고 북쪽으로 가겠습니다’ 하였다.
도명이 고갯마루에서 6조와 헤어져 북을 향해 가는 도중에 호주虎州에서 노 행자를 찾는 50명의 승려를 만났다.
도명이 그들에게
‘내가 대유령과 회화진懷化津에서 각각 5, 6일씩 묵으면서 여러 길목을 두루 수소문해 보았으나 아무도 그러한 행색을 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하더라.’ 하고 말하니,
그들은 모두 북쪽으로 돌아서서 노 행자를 찾으면서,
‘그 사람이 돌을 지고 방아를 찧다가 허리를 다쳐서 길을 걷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로다’ 하였느니라.
사람들이 흩어진 뒤에 도명은 혼자서 여산廬山의 포수대布水臺에 들어가 3년을 지난 뒤에 몽산蒙山으로 돌아가 수행에 힘썼다.
나중에 출세하여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모두 영남에 가서 6조께 예배하게 하였는데, 지금도 몽산에는 영탑靈塔이 남아 있느니라.”
2. 완릉菀陵의 스님,
도존道存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사태沙汰 뒤에 호남湖南에 가셔서 위산潙山 화상을 뵈었을 때, 위산께서 어떤 미묘한 말씀이 있으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법난法難 뒤에 위산으로 갔더니, 어느 날 위산께서 물으시기를,
‘그대가 앙산仰山에서 주지住持할 때나 설법할 때에 다른 사람들을 속여 홀리지나 않았는가?’ 하시기에,
내가 답하기를,
‘자기의 안목眼目을 따를 뿐입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그대는 어떻게 제방의 뭇 스님들이 배운 곳이 있는지 또는 배운 곳이 없는지, 이론을 따지는 스님인지 선학禪學의 종취宗趣를 배우는 스님인지를 가려낼 수 있었는지 나에게 말해 보라.’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가려낼 수 있었습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또 물으시기를,
‘제방의 학인들이 와서 조계曹溪의 참뜻을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저는 그에게 묻되 대덕大德은 어디서 왔는고?’ 하겠습니다.
학인이 대답하되
‘요즘 제방 노숙의 회상에서 왔습니다’ 하면,
저는 즉시에 한 경계를 들어서
‘제방의 노숙들도 이렇게 말하던가,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하고 묻겠습니다.
또는 한 경계를 들어 보이고는 말하되
‘이것은 그만두고 제방 노숙들의 뜻은 어떠하시던가?’ 하겠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법칙은 경계와 지혜입니다.
위산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매우 좋은 말이다. 이 또한 예부터 전하는 종문의 아조(牙爪:손톱과 어금니)로구나’ 하셨느니라.
위산께서 또 물으시기를,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묻되 일체 중생은 다만 끝없는 업식業識만이 있어 의거할 근본이 없다고 한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갑자기 그 학인을 불러 그가 대꾸하거든 제가
≺무슨 물건인고?≻ 하고 물어서 그가
≺모른다≻ 하면,
저는 그에게
≺너 역시 의거할 근본이 없구나. 단지 업식만이 망망할 뿐이로다≻ 하겠습니다’ 했더니,
위산께서 칭찬하시기를,
‘이것은 사자의 젖 한 방울과 당나귀의 젖 여섯 섬이 동시에 쏟아져 나와 흩어지는 경지로구나’ 하셨다.
위산께서 또 물으시기를,
‘앙산의 곁에도 선을 배우는 승려가 있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한두 사람이 있기는 하나 그저 얼굴 앞이거나 등 뒤일 뿐입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어찌하여 얼굴 앞이거나 등 뒤라 하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남의 앞에서는 가르침을 받아들이나 다른 사람을 대하면 마치 등 뒤와 같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비추어 밝히는 곳을 기준해 보면 업성業性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또 물으시기를,
‘내 주변에도 선법을 배우는 스님이 있는가?’ 하시어,
내가 대답하기를,
‘위산에서 나온 지가 오래되어 있다 해도 알 수 없습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그대가 가지고 있는 안목이 위산에게도 있던가?’ 하시어,
내가 대답하기를,
‘있다 해도 여러 동학同學ㆍ형제兄弟 들과 자세한 토론을 한 적이 없으므로 그들의 안목의 깊고 얕음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대안大安은 어떠한가?’ 하시어,
‘그를 모릅니다’ 하였고,
‘전심全諗은 어떠한가?’ 하시어,
‘그도 모르겠습니다’ 하였으며,
‘지화志和는 어떠한가?’ 하시어,
‘그도 모르겠습니다’ 하였고,
‘지우志遇는 어떠한가?’ 하시어,
‘그도 모르겠습니다’ 하였으며,
‘법단法端은 어떠한가?’ 하시어,
‘그도 모르겠습니다’ 하였더니,
위산께서 꾸짖으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물은 것을 그대는 모두 모른다 하니, 무슨 뜻인가?’ 하셨느니라.
이때 내가 화상께 여쭙기를,
‘그들의 견해見解를 알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들의 행해行解를 알고자 하시는 것입니까?’ 하니,
위산께서 물으시기를,
‘그대는 무엇을 그들의 견해라 하는가?’ 하셨느니라.
내가 대답하기를,
‘그들이 견해를 얻었음을 알고자 하십니까? 위에 열거한 다섯 사람이 뒷날 화상의 가르침을 받고 남의 스승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 말해 주되, 마치 한 병에 물을 쏟아 붓는 것 같아서 한 방울도 잃지 않을 것이니, 남의 스승이 된 이가 이러하고도 남음이 있으면 이를 견해라 합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무엇을 행해行解라 하는가?’ 하시니,
내가 대답하기를,
‘천안통天眼通과 타심통他心通을 갖추지 못하여서 비출 곳을 알지 못하니, 행해는 스스로 청탁淸濁을 따지므로 업용業用과 성품이 의밀意密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제가 강서江西에 있을 적에는 전혀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때 화상께서 저를 보고 선법禪法을 배우는 사람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니,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그렇다면 내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는 선禪을 모른다고 해도 되는가?’ 하셨느니라.
이에 내가 대답하기를,
‘제가 어떤개구리나 지렁이이기에 어찌 선을 이해한다 하십니까?’ 하니,
위산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광명을 누가 감히 막겠는가?’ 하셨다.
내가 다시 위산께 묻기를,
‘서천西天의 제27조인 반야다라般若多羅께서 선종禪宗의 향후 3천 년의 일을 미리 예언하셨는데, 그때마다 조금도 예언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화상께서도 얻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하니,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이는 행통行通 쪽의 일이다. 나는 지금 얻은 바가 없다. 나는 이통理通이라, 이통은 스스로 종宗이라 여긴다. 그러므로 아직 6통通을 갖추지 못했다’ 하셨느니라.
내가 또 묻기를,
‘6조께서 입적하실 적에 권속들에게 분부하시되, 무게가 두 근쯤 되는 무쇠 자물쇠를 내 목 뒤에다 붙여서 장사를 지내라 하시니, 권속들이 무쇠를 목 뒤에다 붙이라 하시는 뜻이 무엇입니까?’ 하였습니다.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종이와 먹과 벼루를 가져오라. 내가 예언을 써 주리라 하시고는, ≺5, 6년 무렵에 머리 위에서 부모를 봉양하고 입 안에는 밥을 먹인다. 만滿의 환난을 만나면 양楊과 유柳가 벼슬아치가 된다≻ 하셨습니다’ 하셨다.
이에 위산께서 나에게 물으시기를,
‘그대는 조사의 예언을 알겠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알기는 합니다만 그 일은 지나간 일입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그 일이 지나간 일이기는 하나 그대는 말해 보라.’ 하시기에,
내가 말하기를,
‘5, 6년이라 함은 30년 뒤라는 뜻이요,
머리 위에서 부모를 봉양한다 함은 한 효자孝子를 만난다는 뜻이요,
입 안에는 밥을 먹인다 함은 자주자주 재를 지낸다는 뜻이요,
만滿의 환난을 만난다 함은 여주汝州의 장정만張淨滿이, 신라의 스님, 김대비金大悲에게 팔려 6조의 머리와 의발을 훔치게 된다는 뜻이요,
양楊과 유柳가 벼슬아치가 된다는 것에서, 양은 소주韶州의 자사요, 유는 곡강현령曲江縣令으로서, 이 사실을 깨닫고 석각대石角臺에서 붙잡는다는 뜻입니다.
화상께서는 지금 이러한 견해가 있으십니까?’ 하고 물었느니라.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이는 행통이니, 나도 아직 얻지 못했다. 이는 6신통 중 하나에 속한다’ 하시기에,
내가 말하기를,
‘화상께서 남들의 견해를 예언하시는 것이야 괜찮다 하겠지만, 사람들의 행해行解를 예언하시는 것은 인정에 속하니, 불법이 아닙니다’ 하였느니라.
이에 위산께서 기뻐하면서 말씀하시기를,
‘백장百丈 선사께서 10여 인에게 불법을 안다, 선禪을 안다 하고 수기하시어 그 뒤로 천 몇 백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으나 스스로가 그 숫자에 집착하셨겠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그렇게 될까 걱정입니다. 그리되면 성현의 뜻이 헤아리기 어려워 때로는 거슬리기도 하고, 때로는 순종하게도 되니, 제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물으시기를,
‘그대는 뒷날 사람들의 공부를 수기할 것인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만일 수기를 한다면 견해만을 수기하고 행해는 수기하지 않겠습니다. 견해는 구밀口密에 속하고, 행해는 의밀意密에 속합니다. 조계 6조와 비슷한 경지가 아니므로 감히 남을 수기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위산께서 물으시기를,
‘그대는 어찌하여 수기하지 않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이는 연등燃登부처님 이전의 일이온데, 그 일은 중생들의 행해에 속하는 일이라 기댈 곳이 없습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연등부처님의 뒤라면 그대가 수기하겠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연등부처님 뒤에는 또 그러한 사람이 있을 것이니, 제가 수기할 바가 아닙니다’ 하였느니라.
내가 다시 묻기를,
‘화상께서는 부구식(浮漚識:인식작용)이 요즘 평안하신지요?’ 하니,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일 없이 5, 6년을 보냈느니라.’ 하시기에,
내가 말하기를,
‘그러시다면 화상께서는 전생에 이미 삼매의 정수리를 몽땅 뛰어넘으신 것입니다’ 하니,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아니다’ 하셨느니라.
내가 다시 묻기를,
‘성품 바탕의 부구(浮漚:뜬 거품)도 평안하신데 연등부처님 이전에 어째서 그렇지 않았습니까?’ 하니,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비록 이치는 그러하나 나는 아직 보임保任하지 못했느니라.’ 하셨다.
내가 다시 묻기를,
‘어디가 화상께서 보임하지 못하신 곳입니까?’ 하니,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그대는 입으로만 해탈하지 말라.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안安 선사와 수秀 선사가 측천則天의 시험에 들어 물에 내려서고야 비로소 어른임을 알게 되었느니라.
이 경지에 이르러서는 무쇠 부처라도 땀이 흐를 것이니라. 그대는 모름지기 맹렬히 수행하되 종일토록 구밀口密로만 하지 말지니라.’ 하셨느니라.
위산께서 또 물으시기를,
‘그대는 3생生 중에서 지금 어느 생에 있는가? 사실대로 나에게 말해 보라.’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생각이 일어나면 모습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저는 벌써 담박淡泊해졌습니다만, 지금 바야흐로 번뇌의 흐름 속에 처해 있습니다’ 하였느니라.
위산께서 다시 물으시기를,
‘그렇다면 지혜의 눈이 여전히 흐린 것이다. 법안法眼의 힘을 얻은 사람이 되지 못하였는데, 내 어찌 뜬 거품[浮漚] 속의 일을 알겠는가?’ 하시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태화太和 3년에 화상 분부를 받들고 진리를 궁구하여 실상의 성품과 실제의 묘리를 몽땅 밝히어 한순간에 자기 성품의 맑고 흐림을 가려냈고, 이론과 행의 갈피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 뒤로는 스승께서 가르치신 종지를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행과 이치의 역용力用은 끝내 말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지금 화상께서도 이러한 경지를 얻으셨습니까?
얻지 못했다면 해인삼매海印三昧로 맞추어 보시면 앞에 배운 이와 뒤에 배운 이에게 다른 길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였느니라.
이에 위산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의 안목이 이와 같으니, 인연 따라 아무 곳에서나 수행해도 있는 곳 그대로가 출가한 것과 똑같게 되느니라.’ 하셨느니라.
이에 내가 다시 묻기를,
‘제가 처음 화상께 절하고 하직할 때, 화상께서 지시해 주신 말씀이 있지 않았습니까?’ 하니,
위산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있었느니라.’ 하셨느니라.
내가 말하기를,
‘그것이 비록 기리機理이기는 하나 그 일에 부합되지 않음이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니,
위산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역시 진秦나라 때의 탁락찬鐸落鑽이로다’ 하셨다.
내가 말하기를,
‘이러한 행리行李는 스스로 속이려 해도 속일 수 없습니다’ 하니,
위산께서 대답하시기를,
‘그대의 마음도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 하셨느니라.”
도존道存이 다시 물었다.
“위산을 하직할 때에는 어떤 말씀이 있으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내가 화상을 하직할 때, 분부하시기를,
‘5, 6년 동안 내가 있단 말을 듣거든 돌아오고, 내가 있지 않단 말을 듣거든 스스로가 살아갈 길을 선택해서 힘쓰라. 잘 가거라.’ 하셨느니라.”
도존이 다시 물었다.
“화상께서 지금 조사의 교법敎法을 전해 받으시고도 후학後學들에게 수기를 주지 않으시면 그들은 어찌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내 분명히 그대에게 이르나니, 지금 나는 남의 견해를 시험할지언정 남의 행해는 시험하지 않는다. 그의 행해行解는 의밀意密에 속하는 것이니, 바야흐로 경계를 접할 때, 무거운 곳으로만 흘러 업의 밭에 싹이 돋으니, 다른 사람이 어찌 알아서 그들에게 수기하리오.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대이大耳 삼장이 서천에서 와서 숙종肅宗을 만났는데,
숙종이 묻기를,
‘삼장은 무슨 법을 아시오?’ 하니,
삼장이 대답하기를,
‘타심통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였느니라.
숙종은 마침내 중사中使에게 명하여 충忠 국사에게로 삼장을 보내어 삼장이 진실로 타심통을 아는지 여부를 시험하게 했다. 국사가 경계를 지나는 마음으로 삼장을 시험했더니, 삼장이 과연 생각이 간 곳이 경계에 반연한 곳임을 알아차렸다.
나중에 국사가 삼매에 들어 경계를 지나지 않는 마음을 삼장더러 찾으라 하니, 삼장이 찾지 못하였다.
이에 그를 꾸짖기를,
‘이 들여우의 혼신아, 성스러움이 어디에 있는가?’ 하였느니라.
이렇게 자수용삼매自受用三昧에 들면 현현한 경지를 누가 알 수 있으랴? 그러므로 행해는 알기 어렵다 하노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증득하는 것은 견지見知가 아니요, 증득하지 않는 것도 견지가 아니라.’ 했노라.”
도존이 다시 물었다.
“어찌하여야 행해와 상응하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들은 선종의 제3현玄을 알아야 한다.
첫 마음이 귀중하니, 이는 문 안에 드는 제1현이요, 다음의 두 가지 현은 자리를 얻고 옷을 입는 것이니, 그대들 스스로 살피고, 또한 종각種覺과 종지種智가 있음도 알아야 한다.
종각이라 함은, 세 몸이 한결같은 것이다. 이무쟁理無諍이라고도 하고, 비로자나부처님의 담적湛寂이라고도 하느니라.
종지라 함은, 몸의 성품이 뚜렷이 밝은 뒤에 다시 몸 앞에 비추어 작용하되 물들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는 것이다.
또는 비로자나부처님의 무의지(無依智:의지함이 없는 지혜)라고 하며, 또는 하나의 체體의 세 몸[一體三身]이라고도 하니, 곧 다툼 없는 행을 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몸의 성품이 뚜렷이 밝아서 번뇌가 다하고 뜻이 열리면 몸 앞에 업業이 없고 동정動靜에 머무르지 않으며, 생에서 나오고 사로 들어갈 적에 중생을 제접하여 이롭게 하나니,
이는 또 바른 행이라고도 하고, 머묾이 없는 수레라고도 한다.
그리되면 차츰 숙명통宿命通과 타심통他心通을 저절로 갖추게 된다.
3명明과 8해解는 성현들에게 있어서 끝부분에 속하는 일이니, 그대는 마음을 써서 머무르려 하지 말라.
나는 분명히 그대에게 이르나니, 성품의 바다로 들어가서 수행을 할지언정 3명과 6통을 바라지는 말라.
무슨 까닭인가?
흐림이 있고 맑음이 있으면 이 두 가지 모두가 망정妄情이기 때문이니라.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위산께서 말씀하시기를,
‘범부다, 성인이다 하는 망정이 다하면 본체가 드러나고 참된 성품이 항상 머물러서 현실과 작용이 둘이 아니게 된다. 이것이 곧 여여한 부처이니라.’ 하셨느니라.”
3. 완릉菀陵의 스님,
도존道存이 물었다.
“제방의 여러분이 모두 말하기를 달마께서 네 권의 『능가경楞伽經』을 가지고 오셨다는데, 사실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거짓말이다.”
“어째서 거짓이라 하십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달마께서 양조梁朝에 오셨을 때 그 경을 가지고 오셨다면 어느 왕조 때 번역하셨으며, 그 전기는 어디에 실렸는가?
그 『능가경』은 앞뒤로 두 차례 번역이 되었다.
첫째는 송조 때 구나발마求那跋摩 삼장이 남해南海 시흥군始興郡에서 번역했는데, 범어의 질다質多를 삭삭생념數數生念이라 번역했고, 또 건율乾栗을 무심無心이라 번역했다. 이것이 첫째 것이니, 위의 목록에 나와 있다.
둘째는 강릉江陵의 신흥사新興寺에서 절두截頭 삼장이 번역했는데, 호어胡語 질다質多를 삭삭생념數數生念이라 번역했고, 호어 건율乾栗을 무심無心이라 번역했다. 이것이 둘째 것으로 뜻은 같으나 호어와 한어漢語에 차이가 있다.
만일 달마께서경을 가지고 오셨다면 뜻을 구체적으로 번역하셨을 것이다.
또 그것이 어느 해에 번역되고, 어느 지방에 퍼졌었는가?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6조께서 조계에 계실 적에 설법하시기를,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 이름도 없고, 머리도 꼬리도 없고, 나와 남도 없고안도 없고 밖도 없다는 말이다.
모난 것도 없고 둥근 것도 없고 크고 작음도 없으며, 이것은 부처가 아니요, 이는 물건도 아니다’ 하시고는,
다시 대중에게 묻기를,
‘이것이 어떤 물건인가?’ 하였다. 대중이 아무 말이 없었다.
이때 신회神會란 어린 스님이 나서서 대답하기를,
‘신회는 이 물건을 알고 있습니다’ 하니,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주둥이만 나불거리는 사미야, 안다 하면 또 무슨 물건이라 말할 것인가?’ 하셨느니라.
신회가 다시 말하기를,
‘이는 부처님들의 본원本源이며, 또 신회의 불성佛性입니다’ 하니,
6조께서 주장자를 찾아 사미를 때리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에게 이름도 자字도 없다 했거늘, 어찌하여 본원本源 불성佛性이라는 이름을 붙이는가?’ 하셨느니라.
그때 신회는 본원 불성이라는 이름을 붙이고도 몽둥이를 맞았다. 지금 달마께서 경을 가지고 오셨다 하니, 이는 멍청한 달마가 조종祖宗에 누를 끼친 것으로서 무쇠방망이를 맞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법이 이 땅에 들어온 지 3백여 년 동안에 앞뒤의 임금들이 경론을 번역한 것이 적지 않음을 어찌하겠는가?
달마께서 특별히 이 땅에 오신 것은 그대들 모두가 3승乘과 5성性의 교리를 탐내고 집착하여 이론의 바다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달마 화상께서 그대들 모두의 미혹한 망정을 구제해 주셨던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이 땅에 왔을 때, 양조의 보지寶志 선사禪師만이 그를 알아보았는데,
양무제가 묻기를,
‘그는 누구인가?’ 하니,
보지 선사가 대답하기를,
‘이는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려는 대사이시며, 관음성인이십니다’ 하셨을 뿐,
『능가경』을 전하러 오신 성인이라고는 하지 않았느니라.”
도존이 다시 물었다.
“달마의 『오행론』에서 말하기를,
‘교법에 의지하여 종지宗旨를 깨달으라.’ 하였는데, 어떤 교법을 의지해야 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른바 ‘교법에 의지하여 종지를 깨닫는다’ 함은, 다만 입ㆍ말ㆍ이빨ㆍ목구멍ㆍ입술만을 의지하거나, 혹은 광명 놓는 것을 보고 이치를 아는 것을 말한다. 종지를 깨닫는다 함은,
곧 양무제에게 대답하기를,
‘성품을 보는 것을 공功이라 하고, 묘한 작용을 덕德이라 하나니, 공이 이루어지고 덕이 일어나는 것은 한 생각 사이에 있습니다.
이러한 공덕과 맑은 지혜의 묘한 작용은 세상에서 구할 바가 아닙니다’ 한 것을 이른 것이다.
또 조계의 6조께서 천사天使에게 하신 대답, 즉
‘선도 악도 모두 생각하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의 본체에 들어가서 담연하고 상적常寂하여 묘한 작용이 항하의 모래 같으리라.’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천사가 듣고 감탄하여 말하기를,
‘묘함이 극진합니다. 이것으로써 불성은 선과 악을 생각하지 않고 묘한 작용이 자재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제가 성인(聖人:천자)을 뵙는 날에는 이 묘한 진리를 전하겠습니다’ 하였다.
황제께서도 이 말을 전해 듣고 단박에 깨닫고 감탄하여 말씀하시기를,
‘짐이 서울에서 일찍이 이런 말씀을 들은 적이 없도다’ 하셨다.
이 말씀이 실로 분명한 증거이니 삼가 수행자들에게 정례하노라.”
도존이 다시 물었다.
“달마께서 『능가경』을 가지고 오지 않으셨다면 마조의 어록과 제방 노숙들의 설법에 자주『능가경』의 말을 인용한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예로부터 전하는 말에, 달마 화상께서 설법하실 때 이 땅의 중생들이 현현한 진리를 믿지 않을까 걱정하여 여러 차례 『능가경』의 말을 인용하였으니, 그 경에는 비슷한 곳이 있어서 종통宗通과 설통說通으로써 어리석은 이들을 깨우쳐 주었기 때문이다.
종통을 수행하는 이와 청혜聽惠 바라문들이 부처님께 와서 서른여섯 가지 대구對句를 물으니, 세존께서 모두 드러내어 세상 이론에 집어 넣으셨다. 그것이 『능가경』이다.
비슷한 곳이 있다 함은, 인연에 따라 얻은 각覺과 본주법本住法은 마치 금과 은 따위의 성질과 같아서 여래께서 세상에 나타나시거나 나타나지 않으심에 관계없이 본성이 항상 머무른다는 것이니,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계시건 안 계시건 성품과 형상은 항상 머무른다고 하는 것이니라.
이는 한가로운 이야기로써 인용한 것이지 달마가 이것으로 조종의 분명한 뜻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달마께서 서천西天에 계실 때, 반야다라에게 묻기를,
‘제가 지금 법을 얻었는데 어디에 가서 교화를 펴리까?’ 하니,
반야다라般若多羅가 대답하기를,
‘그대가 지금 법을 얻었으나 빨리 떠나지 말고 내가 입멸한 지 61년 뒤에 진단震旦으로 가야 겨우 1구를 얻겠지만 지금 떠난다면 1백 일 뒤에 쇠멸하리라.’ 하였을 뿐,
『능가경』을 가지고 가라는 분부를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노라.
내가 이제 그대에게 말하나니, 만일 선도를 배우려거든 모름지기 자세히 살펴라. 만일 그 원유原由를 알지 못하거든 절대로 허망하게 종문 안의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비록 착한 인연이기는 하나 반드시 나쁜 결과를 부르리라.”
4. 유주幽州의 스님,
사익思𨜶이 물었다.
“필경 선종의 궁극적인 돈오입리頓悟入理의 문의 분명한 뜻이 무엇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이 뜻은 심히 어렵도다. 그들이 만일 조종祖宗 후예의 상상上上 근성根性, 즉 서천의 여러 조사와 이 땅의 여러 조사가 예부터 서로 전해 주고 전해 받은 하나의 현묘한 기틀과 하나의 경계 지혜 같은 것을 갖춘 이를 만난다면 바로 긍정하여 현현한 제 이치를 얻어 미혹한 경지를 떠나 다시는 문자 교법을 따르지 않게 되느니라.
그러므로 전하는 말에
‘부처님들의 이론은 글과 글자에 관계되지 않는다’ 하였나니,
이러한 근기의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우니라.
그대에게 이르나니, 선법을 배우는 스님은 드물다. 어디에서인들 불법을 얻지 못하겠는가마는 다만 의지가 없기 때문이니라.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어떤 선덕이 말하기를,
‘만일 선에 안정하여 조용히 생각하지 않으면 이 경지에 이르러서 모든 것이 바쁘기만 하다’ 하였느니라.”
사익이 다시 물었다.
“이 한 가지 준칙 외에 달리 들어갈 곳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있느니라.”
“어떤 것입니까?”
선사가 도리어 물었다.
“그대는 어느 곳 사람인가?”
“유연幽燕 사람입니다.”
“그대는 그 고장을 생각할 때가 있는가?”
“생각합니다.”
선사가 말했다.
“그곳은 경계이고 생각하는 것은 그대의 마음이니, 그 생각하는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보라.
그곳이랄 것이 있는가?”
“그 경지에 이르면 그곳뿐 아니라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다.
“그대의 견해에 아직도 마음과 경계가 남아 있다. 믿음의 지위[信位]로는 맞다 하겠지만, 사람의 지위로는 맞지 않다.”
사익이 다시 물었다.
“그것을 제외하고 다른 뜻이 또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따로 있다거나 따로 없다고 한다면 불안하니라.”
사익이 다시 물었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어찌하여야 옳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그대의 견해에 의하면 그런대로 하나의 현현함을 얻어 자리를 얻고 옷을 입을 수 있으니, 뒷날 스스로 잘 지키라.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6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는 마음을 말미암아 깨닫는다’ 하셨고,
또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깨달으라.’ 하셨으며,
또 말씀하시기를,
‘선과 악 모두를 생각하지 않으면 자연히 마음의 본체가 담연湛然하고, 늘 고요한 경지에 들어가서 묘한 작용이 항하의 모래와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만일 실로 이렇다면 스스로가 잘 보임해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보호하고 염려하신다 하셨나니, 만일 유루有漏하여 의근意根을 잊지 못하면 기억하는 생각을 눈앞의 뜻에 두어 5음陰의 몸에 끄달릴 것이니, 그때는 스스로 어찌 할 수가 없게 되리라.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코끼리가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아서 전혀 선을 보지도 못하고, 또 사자의 새끼도 되지 못한다’고 하셨느니라.”
5. 해동의 스님,
정육亭育이 물었다.
“선결(禪決:선문 어구)의 명칭과 분류에 대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으니, 그것은 앙산집운봉仰山集雲峯ㆍ가섭미가迦葉彌伽ㆍ사나舍那 ㆍ자나遮那ㆍ삼마발지三摩鉢底ㆍ사지師地ㆍ정려靜慮ㆍ사문沙門ㆍ혜적 등입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앙산집운봉仰山集雲峯이라 함은, 노사나盧舍那의 근본 몸과 현재의 업근業根에 의한 분단신(分段身:형체 있는 몸)으로 받은 바깥의 의보依報니라. 또는 승보僧寶가 머무는 곳이라고도 하느니라.
가섭미가迦葉彌伽라 함은 총總이라는 뜻이니, 가섭은 선종의 초조初祖로 부처님께 비밀한 삼매를 전해 받은 분이다. 그러므로 미가라 하느니라.
사나舍那라 함은, 비밀히 삼매를 이어받는다는 뜻이니라.”
정육이 다시 물었다.
“선결禪決에서 말하기를,
‘나의 본래 면목을 돌려 달라.’ 하였는데, 그것이 삼매가 아닙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만일 그것이 그대의 본래 면목이라면 다시 나에게 돌 위에다 꽃을 재배하라고 할 것이고, 또한 한밤중의 나무 그림자 같다고 하리라.”
정육이 다시 물었다.
“한밤중의 나무는 분명히 있다 하겠지만 그 나무 그림자는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있고 없는 것은 차치하고, 그대는 지금 나무가 보이는가?”
“자나遮那라 함은 몸의 성품이 여여如如함이요,
삼마발지三摩鉢底라 함은 계戒ㆍ정定ㆍ혜慧이며, 또는 보리의 묘한 꽃이다.
또는 화장장엄華藏莊嚴이라고도 하는데, 곧 안의 의보依報가 바깥 결과를 받는 것이니, 중생의 몸으로써 부처를 이루는 일이니라.
사지師地라 함은, 자기의 종지에 통하는 것이니, 자기의 종지에 통한 이는 곧 33조사이다. 정려靜慮라 함은, 곧 네 가지 무수無受의 삼매니라.”
정육이 다시 물었다.
“이 삼매에는 들고 남이 있습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병病이 있으면 출입이 있지만 병이 없으면 약까지도 버려야 하느니라. 초심자는 들고 남을 배워야 하지만 근기가 익으면 맑고 맑아서 머무를 곳 없느니라.”
정육이 다시 물었다.
“그 들고 나는 뜻이 어떠합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들어가는 사람이 만일 무수(無受:무념)가 되면, 곧 법안삼매法眼三昧가 일어나 바깥으로부터의 받아들임을 여의고 성품에 들어간다.
만일 무수가 되면 곧 불안삼매佛眼三昧가 일어나안으로부터 받아들임을 여의고 한 체體로 들어간다.
만일 무수가 되면 지안삼매智眼三昧가 일어나 중간의 받아들임을 여의고 또한 집착하지도 않게 된다 말한다.
취하거나 받아들임이 없으면 자연히 위에서 설명한 삼매에 들어가 일체가 모두 공해진다.
이는 혜안으로부터 일어나서 무無에 드는 것이요, 무無의 삼매는 도안道眼에서 일어난 것이니, 현통玄通하여 걸림이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허공이 아무런 눈도 없고 눈병으로 인한 헛것도 없는 상태인 것과 같다.
위와 같은 삼매가 필경에는 청정하여 의지할 곳이 없는 것을 찬탄하였으니, 곧 정명삼매淨明三昧라고 한다.
여러 학인들께 고하나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게으름을 피우거나 헛된 생각으로 공연히 앉아서 무념無念ㆍ무생無生을 생각하거나 무사無思ㆍ무심無心을 생각하지 말라.
눈앞의 불생불멸不生不滅이나 두 변[二邊]과 중도中道 따위 이론의 바다를 이야기한다면 이는 다른 이의 그림자이니, 자기 앞에 있는 이론의 바다를 던져 버려라.
검은 산 하나를 굳이 껴안고 있다면 이는 어리석음의 세계이며, 또한 선禪이라고 할 수 없다.
사문이라 함은, 본성을 통달하고 반연을 쉬어서 위의 여러 삼매를 부지런히 닦아 온갖 삼매에 통달하는 것이니, 그래서 사문이라 하고, 또한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떠받들고 공경하여 도덕원비道德圓備라고 한다.
이 경지에 이르면 뒷날 남의 공양을 받기에 부끄러움이 없겠지만, 만일 그렇게 수행하지 않고 남의 공양을 받으면 일생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니, 대단히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혜적慧寂이라 함은, 주지住持 삼보三寶 중에 안에서 밖으로 의보依報를 부르는 도리를 처음 안 것과 다름이 없나니, 이 모두는 거짓이요, 빈 이름이다.”
이 밖의 법요와 행장은 『앙산록仰山錄』에 기록되어 있다.
칙명으로 시호를 지통智通 대사라 하고, 탑호를 묘광妙光이라 하였다. 동평東平에서 입적한 뒤 앙산仰山으로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