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의 '브레인 스토리' ⑤] 눈은 과연 '마음의 창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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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입력 2012.11.05. 23:32
업데이트 2013.03.05. 11:49
로마시대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얼굴은 마음의 그림이며, 눈은 그 그림의 해설자"라고 주장했다. 그 후 눈은 '마음의 창문(oculus animi index)'이라 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눈동자 동작을 통한 초기 치매 진단 가능성, 사람 성격이 동공을 둘러싸고 있는 홍채의 미세 패턴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결과가 꾸준히 보도되곤 한다. 하지만 뇌과학자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눈은 마음의 창문이라기보다 공학적 실패작에 가깝다.
우선 전체적인 구조가 잘못되어 있다. 빛은 각막과 동공을 통해 망막에 닿는데, 빛을 감지하는 '광수용 세포'들은 놀랍게도 빛이 들어오는 방향이 아닌 망막 후반부에 있다. 그 사이엔 수많은 세포층과 망막 내부 혈관이 있어 바깥세상에서 들어오는 영상들엔 어쩔 수 없이 수많은 그림자가 생긴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엔 그런 그림자들이 없다. 왜 그런 걸까? 구체적으로 우리의 뇌가 어떤 방법을 통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뇌가 눈을 통해 들어오는 영상들의 시간적 차이를 분석한다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외부 세상의 물체는 대부분 움직임으로 시간적 변화가 있겠지만 눈 내부 혈관 그림자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뇌는 단순히 "변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원래 영상에 있던 수많은 그림자를 깔끔히 제거할 수 있다.
뇌가 해석하기 전 망막에 닿은 원래 영상엔 수많은 그림자들과 맹점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외부 세상에도 바위나 나무같이 움직이지 않는 물체가 있다.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우리 눈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단속적 안구 운동'이라는 미세 안구 운동을 통해 눈은 계속 움직이고, 덕분에 망막에 닿는 외부 세상 물체의 영상은 망막 내부에서 생기는 그림자와는 달리 수시로 변한다. 뇌에 변화는 바로 존재성을 의미하므로 우리는 그런 외부 세상의 물체를 인식할 수 있다.
설계가 잘못된 망막이 감지한 시각적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데 또 다른 공학적 문제가 생긴다. 광수용 세포가 망막 후반부에 있다 보니 그 세포에서 나오는 시신경은 어딘가 망막 한 부분을 파고 지나가야만 한다. 이렇게 파인 부분에선 당연히 빛을 감지할 수 없다. 바로 맹점(盲點)이다. 우리는 맹점이라는 시야의 상당히 커다란 부분에선 아무것도 볼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엔 그런 블랙홀이 없다. 이것 역시 뇌의 역할 덕분이다. 뇌는 망막에 보이는 블랙홀이 사실 외부 세상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마치 컴퓨터 자판에서 'ctrl-c'와 'ctrl-v'를 누르듯 맹점 주변 배경을 복사해 블랙홀 안을 채운다. 눈은 마음의 창문도, 마음의 해설자도 아니다. 눈은 세상의 해석자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눈과 뇌가 해석한 세상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