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은 어디로 갔을까 외 1편
김일태
거북선이 사라져 앞뒤 구분 없어진 중원 로터리
백색으로 치장하여 키 높인 우체국 앞에 앉아
흑색 지붕으로 몸 낮춘
건너편 흑백다방을 바라보며
잃어버렸거나 잊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한다
절반은 참말 절반은 거짓말같이
길몽과 흉몽을 오갔던 숱한 밤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 무리 보듯
경계를 풀 수 없어
작은 낌새에도 오줌 마렵고
아카시아 숲 어룽거리던 때 몇 날이며
용의주도하게 치장한 얼룩무늬 때문에 오히려
숨을 곳 없는 중원을
달음박질로 도망 다닌 적 얼마이던가
우기의 강 겨우 건넌 세렝게티 늙은 얼룩말처럼
힘겹게 한 시대를 건너와 한숨 내려놓는
흑백의 시간
다시 한세상 건너기 위해
또 수많은 절망의 징검다리 짚어야 할 텐데
팔방의 소문들이 흘러들어 고이던
백 년 중원은 지금
우송되지 못하고 되돌아온 우편물처럼
잊히거나 남은 것들이 뒤섞여
얼룩얼룩하다
이순耳順의 시간을 지나며
휴대전화 울림이 조금씩 높아진다
손나팔 귀에 덧대는 일도 자연스러워졌다
남의 소리가 또박또박 들리지 않으니
나의 뜻도 상대에게 잘 전해지지 않을까 봐
목소리도 알게 모르게 커진다
소리보다 눈으로 읽어야 할 일 잦다 보니
눈치도 늘어난다
눈과 귀 밖에서 소곤거리는 것들은
흉보는 거 아닐까 촉을 세운다
듣지도 보지도 눈치채지 못했어도
모른다고 변명할 수 없는 시간
바깥이 흐릿해져 가는 것은
안이 밝아오는 징조라고 항변해 본다
아직은 그래도와 이제는 도저히 사이에서
그래도에 억지로 기대고 싶어지는
이순耳順의 시간
1998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 ‘부처고기’ 등 9권 발간. 경남문학상, 김달진창원문학상, 시와시학젊은시인상, 하동문학상, 경상남도문화상, 산해원불교문화상, 경남예술인상 수상. 현)이원수문학관 관장, 경남문인협회 고문, 통영국제음악재단 부이사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