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평 29억5천, 26평 10억5천!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의 부동산 시세예요. 선망의 아파트죠! 학군, 교통, 편의 시설, 단지 규모 등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는 곳. 단지 내에 인공 연못과 숲 속 같은 빼어난 조경까지!
그런데 저자는 이 아파트를 '못된 건축'이라고 불러요.
좀 통쾌하신가요?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비웃으시나요?
이 책은 2014년 5월 출간된 이경훈 건축가의 저서예요. 현재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예요.
신탄진 고속도로 휴게소, 헤이리 랜드마크하우스 등의 건축 작업을 하신 분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이 얼마나 오를까?’ 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면
‘도시’와 ‘건축물’이라는 인문학 휴게소에서 잠깐 숨을 돌리면 어떨까 싶어 선택했습니다.
저자는 '도시'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자문하게 해요. 소통하며 함께 사는 공간이 도시라면
이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아파트는 주변의 접근을 완전히 봉쇄시켜 버린 못된 건축물인거죠.
자기 건 나누지 않고 모두의 것은 나눠 쓰니 못됐죠!
".....그들은 도시의 혜택은 모두 챙긴다. 지하철, 버스 전용 차선, 공원을 이용하면서
그들이 도시에 기여하는 바는 없다. 도시에 대해서는 폐쇄적인 울타리와 어둠만을 내놓을 뿐이다...."
서울의 아파트 단지들은 19세기 영국의 에버니저 하워드의 전원도시(Garden City)나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를 닮았다고 해요. '빛나는 도시'는 주거, 업무, 위락, 교통의
네 개 구역을 만들고 이를 광활한 고속도로로 연결하는 것인데 현대 도시의 조닝 (Zoning) 개념에 반영되어
전해지고 있다고 해요.
'전원 도시'의 개념에서 중요한 점은 도시의 모든 부분을 공원처럼 조성하기 위해
잔디와 나무로 대부분의 땅을 덮고 건물은 최소한으로 닿게 하고 필요한 용적은 위로 높이 올려서 해결하는 거래요.
이 두 도시의 개념은 전쟁 직후에 도시 재건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중요한 도시 설계의 지침이 되었대요.
그러나 결과는 피폐한 도시 환경만을 남겼다고 해요. 낮에는 빛나던 도시가 밤이면 그 빛을 잃고 걷는 사람도 없다는 거죠. ( 미국의 LA 와 디트로이트 같은 도시는 전원도시의 예이고, 프루이트아이고 아파트 단지는 빛나는 도시의 예라고 해요. 범죄가 늘어나 10년도 되지 않아 철거되었대요.)
그러다 1980년대부터는 뉴어바니즘 (New Urbanism)이 등장했어요. 전통 도시의 자생력을 회복하자는 거죠.
도시의 주인은 사람이며 그 사람들이 걷기에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좋은 도시 환경이란 숲과 나무가 있는 곳이 아니라 거리나 광장 같은 전통적 도시 공간이라는 거죠. 뉴어바니즘에서 복합 용도를 강조하는 이유예요.
하나의 구역에 하나의 용도만 배치하다 보니 교통정체현상에, 밤이면 도심 공동화에, 어둠에 묻힌 주거지역은
범죄율도 높아졌죠.
저자가 말하는 '도시'의 의미를 한번 들어보세요.
".. '밤길을 걸어보라.'
이렇듯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소외되기를 자청하는 아파트 단지가 도시적으로 올바를 리 없다.
도시는 소통과 교류의 공간이다..."
또한 4베이 탑상형(겔러그형이 더 맞다고 해요. 판상형을 더 길고 가늘게 해서 구부려 놓은 형태.)의 아파트들은 오브제처럼 땅에 꽂혀 제 이익만 챙기고 아파트의 공원은 볕이 들지 않아 아무도 이용하지 않으며,
이런 흉측한 아파트 단지는 발코니의 확장에 그 책임이 있다고 하네요.
(저자는 발코니 확장은 도시를 생각하지 않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강한 어조로 말해요.)
저자는 '도시적 건축'을 해법으로 내놓았어요. 전원도시가 저밀고층이라면 고밀저층의 건축이 도시적 건축이에요.
프랑스 파리를 떠올리면 돼요. 파리 시는 중심부 전체가 용적률 300퍼센트이지만 건축물들이 5층 이하로 지어졌어요. 건폐율 60퍼센트. 땅과 가까운 건축이 도시라는 장소와 사람을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고, 가로와 밀접한 건축이 도시를 만들면 그제야 사람들은 도시에 사는 특권을 누리며 걸어서 출근하고 걸어서 장을 보고 이웃과 만나 교류하는 거예요. 문화와 문명의 온갖 혜택은 사람과 도시 가까이 있어요. 그대신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어요. 북향의 집이 생기기도 하고 해가 둘지 않는 어두운 방도 생겨요. 나무가 울창한 정원은 포기해야 해요. 이 정도의 불편함은 도시에 사는 입장권, 도시의 시민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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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공감하고, 누군가는 부정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
숫자로만 주변을 평가하는 습관이 생겼다면 우리가 잊고 있던 것도 한번 돌아보는 거죠! (요즘 제가 그렇거든요.)
다음 건축물들도 왜 못된 건축인지 '도시' 라는 접근에서 설명하고 있어요.
사라진 <서울역>의 기억, 거리를 집어삼키는 진공청소기 <대형쇼핑몰>,
예술을 품지 못한 <예술의 전당> 등을 못된 건축이라고 했어요.
궁금하신 분은 직접 읽어 보세요. 주의사항은 제 친구는 재미없다고 읽는 걸 포기했다는 거예요.^^
첫댓글 궁극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 같아서 공감이 가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
내용이 흥미롭네요
소통하는 공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공공의 사회의식이 필요할때입니다.
모두들 꼭한번씩 읽으면 좋을거같아요. 저는 새로 지어진 서울역이 왠지 불편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 그 이유를 알게됐어요... ^^
건축물을 바라보는 다른관점이 신선하고 재미있는것 같습니다~ 이 책 읽어보고 싶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댓글을 달아주시니 참 기쁘네요. 다른 분들 책 소개에도 꼭 댓글 올려야겠어요^^
재미있는 글 감사 드립니다. 팍팍한 도시의 풍경이 왜 그러한지를 생각하게 해 주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