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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회화.전각이론 스크랩 한나라 예서체, 장천비 -한자의 발생과 형성(27)
청운 추천 0 조회 432 14.11.19 20:2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예의 근간이 되는 한자의 시원을 찾아보려는 시도로 갑골문금문에 이어 소전체의 전형으로는 진시황의 순례기록의 하나인 역산각석을 살펴 보았습니다.

 

한나라로 넘어오면서 예서체의 찬란한 꽃이 석비에서 피어나기 시작했고, 을영비, 예기비, 조전비, 장천비로 이어지는 이 비석글씨들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금석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통해서 재조명을 받으면서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서예술로 발전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장천비 탁본>

 

 

 

 

우리나라 서예역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서예가로 꼽히는 추사 김정희 선생 역시 예서체로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추사선생이 초의선사에게 밀린 차값으로 써 주었다고 하는 <명선>이라는 작품도 예서체로 쓰여진 추사선생의 대표작이라 할 명작입니다.

한나라 예서체로 장천비를 언급하면서 추사선생을 떠올리는 것은 추사선생 만큼 좋은 예서작품을 남긴 사람도 더물다 싶어서 이고, 아울러 추사선생 만년의 글씨 <판전>이 생각나서 입니다.

왕년의 아름답기 그지없는 여러 작품들이 화려하게 조명되는 가운데서도 <판전>이라는 어눅한 글씨가 전혀 기죽지 아니하고 추사체의 대미를 꽉 틀어잡고 익살스럽게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저명한 평론가는 이 글씨에다 어린 아이가 낙서로 쓴 글씨 같기도 하다는 <교졸의 미학>이라는 걸맞는 찬사를 붙여 주었습니다.

 

 

 

 

 

한나라 예서체 역시 을영비와 예기비의 당당하고 굳건한 토대 위에서 조전비의 유려함이 더해져서 절정의 예술미를 자랑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대미를 마치 취권에서나 봄직한 탈속한 도인이 소박하고 꾸밈없는 글씨로 몽땅연필로 써 놓은 듯 <교졸의 미>가 물씬물씬 배어나오는 <장천비>가 장식하고 있습니다.

장천비의 정식 명칭은 <한고곡성장 탕음령장군표송 漢故穀城長蕩陰令張君表頌>인데 줄여서 <장천표송>, 또는 <장천비>로 부르고 있습니다.

동한 말기인 영제 중평 3년(서기186년)에 만들어진 비석인데, 비의 크기는 높이 317센티, 폭 107센티의 비면에 15행으로 각 행마다 42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장천비 서체>

 

 

 

서예사적으로 이 비는 조전비와 더불어 한말을 대표하는 명비로 꼽히고 있는데, 서체는 방필을 위주로 한 투박하고도 꾸밈없는 강건한 것이며, 파세를 가하지 않은 횡획 등 대량의 전서체의 결구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형이 방정하고 용필에 능각이 분명하여 예서에서 해서로 바뀌는 듯한 독특한 풍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기비, 조전비의 예서체 전성기를 넘어서서 모든 영화를 다 누린 뒤에 더 이상 무엇이 부족하냐는 듯 교졸의 미가 물씬 풍겨나오는 소박하면서도 웅건한 서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탁본글씨>

 

 

 

 

 

 

 

 

 

 

 

 

 

 

 

 

 

<장천비 내용>

 

 

 

<장천비 해석>

 

군의 휘는 천, 자는 공방이며, 진류 기오 사람이다.

군의 선조는 주나라에서 나왔으니 주나라 선왕이 중흥할 때에 장중이란 사람은 효도와 우애를 일삼았으니, <시경.소나>를 열람해 보면 그 조상을 환히 알 수 있다.

고조께서 임금이 되어 일어나실 때에 장량이란 사람은 계책에 능하여서 군막 안에 있으면서 천리 밖의 승부를 결판내어 유 땅의 제후로 봉해졌다.

문제와 경제시대에 장석지란 사람은 충성으로써 임금을 보필하는 계책을 많이 올렸다.

황제께서 상림원에서 노닐 때에 금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시니 원령이 대답하지 못하였다. 다시 색부에게 물어보니 색부가 사실대로 대답 하였다. 이에 색부를 승진시켜 원령으로 삼고, 원령을 강등시켜 색부로 삼으니 장석지가 건의하여 불가함을 말하면서 원령은 공경의 재능이 있고, 색부는 말만 잘하는 작은 관리이며 사직을 맡을 중신은 아니라고 하니, 주상께서 이 말을 따르셨다.

효무제 시절에 장건이란 사람은 널리 풍속을 통하고 국토를 개척하였으니, 남으로 여덟 만족을 포괄하고 서쪽으로 여섯 융을 예속시켰으며, 북으로 다섯 적족을 진동시키고, 동으로 아홉 이족을 근신하게 하였다. 황폐하고 먼 지방이 이미 복종하여 각기 특산으로 공물을 바쳤다.

장시들이 한나라를 보좌하였음은 대대로 그 덕이 기록되어 있다.

이예 군에 이르러서는 그 단서를 계속 이어서 왕업의 큰 실마리를 잇고, 지방 장관들이 잇다라 나와서 높은 명성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효도하고 공손하며, 나라에는 충성하고 충직하였다.

경씨의 역을 익혀서 권모와 지략에 총명하고 서려 깊어 정치에 능하였다. 젊어서 군리가 되어 은연 중 직위를 단련했으며, 언제나 중요한 자리에 있었으니 여러번 종사가 되었어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서 뒷소문이 없었다. 등용되어 낭중이 되었고 곡성장에 제수되었다.

양잠하는 달이 되어 일이 바쁠 때는 사방의 문을 닫아 걸지 않았으며, 섣달과 정월의 제사철이면 죄수들을 집으로 돌려 보내니 그들이 돌아와서 하례하였다. 팔월 달 호구조사를 할 때에는 향민들을 번거럽게 하지 않았고, 가난한 동네로 다니며 늙은이를 구휼하였다. 길에는 떨어진 물건을 줍는 사람이 없고, 밭 갈고 씨 뿌리는 농부들은 들에서 야영을 하였다.

황건적이 처음 일어나 성시를 불 태우며 탕진할 때에도 이 고을 만은 홀로 온전하였다.

자천이 다스리는 땅이 너무 작다고 공자가 탄식하신 것과는 그 도가 구별되는 것이다.

서경의 <오교>에서 군은 그 너그러움을 숭상했고, 시경의 <개제>처럼 군은 그 은혜로움을 높였다.

동리의 자산이 윤색한 문장 가운데서 군은 인을 드리웠고, 소공이 섬서를 나누어 다스릴 때처럼 군은 아가위나무 아래서의 정사가 훌륭하였다. 동안우는 부드러운 가죽을 차고 다니며 급한 성질을 죽였고, 서문표는 팽팽한 활시위를 차고 다니며 느긋한 성질을 긴장시켰는데, 군이 평소에 체득한 것은 그 둘의 장점을 합친 것이었다.

교화한 지 팔년에 탕음령으로 옮겼는데 관리와 백성들이 목을 길게 뽑고 따르며 전송하는 무리가 구름 같으니 주공이 동쪽을 정벌하시매 서쪽 사람들이 빨리 오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것 같았다.

해사가 노송을 지어 노나라를 찬양하고, 정고부가 상송을 지어 은나라를 찬양하였으니, 선대의 현철이 아름다운 업적을 남겼는데 그 공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후세 사람들이 칭술할 것이 없지 않겠는가.

이에 돌을 잘라서 표식을 세우고 명문을 새겨서 만세에 전한다.

 

삼대의 일은 비록 멀지만 기록이 있어서 오히려 가까우니

<시경>에서 이른바 나라는 오래 되어도 천명은 새롭다는 것이네.

아! 아름다운 우리 군은 도탑고도 순수하셨네.

눈처럼 결백한 성품에 효우하는 어짐이라.

행적을 기록하여 근본을 구하나니, 난초가 피어나면 향기가 있는 법.

어릴 때부터 징조가 있더니, 관리가 되어서는 공적을 이루었네.

날카로운 물건은 드러나지 않나니, 고기가 연못에 잠겨있는 것과 같다네.

나라의 훌륭한 기둥이요, 백성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도다.

자그마한 감당나무 아래에 온화하고 겸손한 사람이로다.

하늘의 도리는 어긋나지 않으니 오직 착한 사람을 친애하는 법

많은 복 이미 받았으니 남산과 같이 영원히 누리리라.

복록이 무궁하사 자자손손 누리소서.

중평 삼년 태세는 병진년인데 이월달 우뢰 울리는 철

기일은 상순에 양기는 흩어져 올라오는데

옛 주군 그리워서 옛 서리 위맹등 모두의 이구동성으로

석공인 손흥에게 일을 맡겨 

돌을 잘라 표를 세워서 후손에게 보이노라.

억세 만년에 하늘의 복 함께 누리시라.

 

 

장천비를 끝으로 한나라에서 찬란하게 꽃피운 예서체의 변화를 살펴보았습니다.

 

서예술의 근원이 되는 한자의 발생과 그 예술적 발전과정을 탐색해 보려는 저의 시도는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계속됩니다.

 

한자(漢字)의 발생(發生)과 형성전(形成展) 기획

 

1. 원시의 골짜기 甲骨文의 세계

  1-1. 은 무정왕 갑골문

  1-2. 은 부호왕비 갑골문

  1-3. 갑골문 작품

 

2. 그림에서 태동하기 시작하는 殷 金文 

  2-1. 양마천시부정

  2-2. 기차정부계

  2-3. 거부신거어거집어

  2-4. 자복자요자룡

  2-5. 소신존 금문

  2-6. 소자 금문

  2-7. 중자 금문

  2-8. 신정 금문

 

 

 

3. 청동기에 새겨진, 철밥통 만큼 둔탁한 周金文

  3-1. 무왕 대풍돈

  3-2. 성왕 대보돈

  3-3. 백자부돈

  3-4. 세유 금문

  3-5. 주공돈

  3-6. 사송돈

  3-7. 대돈

  3-8. 국차첨

  3-9. 대우정

  3-10. 모공정

 

 

4. 大篆에서 小篆으로 가는 길목에 돌로 북을 만들어 石鼓文을 새기다.

   석고문

 

5. 어지러운 세상 만큼이나 다양한 춘추전국시대 문자들

  古文 金剛經

 

6, 소전으로 문자 통일

  秦 驛山刻石 탁본

 

8. 隸書의 꽃을 피우는 한나라 석비들

  8-1. 석문송 탁본

  8-2. 을영비 탁본

  8-3. 예기비  탁본

  8-4. 조전비 탁본

  8-5. 장천비 탁본

 

9. 위대한 書聖 王羲之의 출현과 行書, 草書 

  9-1. 행서- 난정서 탁본

  9-2. 초서- 17첩 탁본

  9-3. 초결가 탁본

 

10. 唐 諧書의 확립 

  10-1. 구성궁 예천명 탁본

  10-2. 안탑성교서 탁본

  10-3. 안근례비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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