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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 그는 누구인가? (요 1:6–8)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요 1:6–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매우 독특하고도 중요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단순히 광야에서 외치던 한 설교자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은 길지 않았지만, 그에게 맡겨진 사명은 매우 크고도 분명했으며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약과 신약을 잇는 전환점에 서 있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가운데 드러내는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로 선택받아 사용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은 누구입니까?
요한복음 1장 6절부터 8절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성경은 세례 요한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이 한 구절은 세례 요한이 누구인지를 가장 정확하고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는 스스로 앞에 나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뜻과 계획으로 사역을 시작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이름을 알리기 위해 광야에 나온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직접 보내신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직업으로 움직인 사람이 아니라, 사명으로 움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생계나 명예를 위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위해 드려진 삶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자기 계획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욕심과 목표를 따라 살아가고,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따라 살아갑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히 후자였습니다.
그의 삶의 출발점은 자기 야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자기를 높이려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는 사명이 그의 삶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신앙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누가 나를 보내셨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진짜 사명은 내가 고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참된 사역은 내가 만들고 꾸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시고 이끄시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출신 또한 매우 특별합니다.
그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누가복음 1장 5절을 보면 그의 아버지 사가랴는 제사장이었고,
어머니 엘리사벳도 아론의 자손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혈통으로 보면 그는 성전 제사를 이어갈 수 있는 계통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종교 제도권 안에서 안정되고 익숙한 길을 걸어갈 수도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가 제도권 성전 중심의 삶을 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누가복음 1장 80절은 그가 광야에서 자랐다고 말하고,
마태복음 3장 4절은 그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며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화려함과 안락함의 길이 아니라, 광야의 길을 걸었습니다.
사람의 시선과 칭찬을 구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준비되는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제사장 집안 출신이었지만, 실제 삶은 광야의 선지자였습니다.
혈통은 제사장이었지만 삶은 선지자였고, 제도보다 사명을 따라 산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위대함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틀 안에 머무르지 않았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편한 길보다 부르심의 길을 선택했고, 안정된 길보다 사명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네 계획으로 살고 있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살고 있느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붙들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둘째, 세례 요한은 빛이 아니라 빛을 증언하는 자였습니다.
7절과 8절은 이 사실을 반복해서 매우 분명하게 강조합니다.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여기서 말하는 빛은 분명히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자기 정체성을 아주 분명하게 선을 그어 말합니다.
나는 빛이 아니다.
나는 주인공이 아니다.
나는 메시아가 아니다.
나는 다만 빛을 증언하는 자일 뿐이다.
이 고백은 세례 요한이 얼마나 분명한 영적 자기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은 아주 조금만 영향력이 생겨도 자기가 중심이 되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이 칭찬하고 따르기 시작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자기가 빛인 것처럼 착각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달랐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릴 때에도 결코 그 자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았고, 동시에 자신이 누구가 아닌지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나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고, 자기 이름을 높이려 하지 않았으며, 오직 예수님만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그는 훗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이야말로 세례 요한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 줍니다.
그는 단순히 겸손한 척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예수님이 중심이 되어야 함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라져도 괜찮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 목적이 예수님을 드러내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참된 증인의 모습입니다.
자기가 빛나는 것보다 참빛이 드러나는 것을 더 기뻐하는 사람,
자기가 높아지는 것보다 예수님이 높아지시는 것을 더 기뻐하는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진짜 사역자는 자신을 중심에 두지 않습니다.
사역자는 주인공이 아니라 증인입니다.
빛이 아니라 빛을 가리키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자기에게 묶어 두는 사람이 아니라, 그 시선을 예수님께 돌리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바로 여기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빛이 아닙니다.
우리는 빛을 반사하고 빛을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구원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구원자를 가리키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우리의 사역과 봉사,
우리의 신앙의 모든 중심은 내가 아니라 언제나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삶을 통해 사람들이 나를 더 크게 보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방향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분명히 보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세례 요한처럼 바르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세례 요한은 사람을 믿음으로 이끄는 연결자였습니다.
7절 후반은 세례 요한의 사명을 아주 분명하고도 깊이 있게 보여 줍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 자신을 믿게 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통하여, 세례 요한의 증언과 사역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사람을 자기에게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예수님께 연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붙잡아 두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통로로 삼아 그 시선을 주님께 옮겨 놓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세례 요한의 사명이었고, 동시에 그의 위대함이었습니다.
이 점은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외칩니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닙니다. 단순한 설명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방향을 바꾸는 말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자기에게서 돌려, 오직 예수님께 향하게 하는 결정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나를 보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답이다”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보라”라고 외치며,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이것이 진짜 사역입니다.
진짜 사역은 사람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보내는 것입니다.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을 교회에 오래 붙잡아 두는 것만이 사역의 성공이 아닙니다.
사람을 특정 인물에게 충성하게 만드는 것도 진짜 사역이 아닙니다.
진짜 사역은 그 사람이 결국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께 속한 사람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에게 모여든 사람들을 기꺼이 예수님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서 사람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는 것을 기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기 사명의 성취였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직업 혹은 사명을 한 단어로 말하면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메시아를 준비하는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외치며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고,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메시아를 맞을 준비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언함으로써,
자신이 준비해 온 모든 사역의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면서 동시에 신약의 첫 증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옛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 시대를 열어 주는 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명은 짧았지만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구속사 속에서 매우 결정적이고도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을 향하여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 개인의 위대함만을 칭찬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맡은 사명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지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그는 많은 일을 한 사람이라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정확히 알고 끝까지 감당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그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았고, 오직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를 따르게 하지 않았고, 사람들을 주님께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자기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았고, 오직 메시아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단순히 과거의 한 종교 인물이 아닙니다.
그는 오늘 우리에게도 “연결자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살아 있는 본보기입니다.
우리 또한 사람을 나에게 묶어 두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 연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를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영향력을 넓히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 영혼이라도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세례 요한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 요한은 과거의 한 인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오늘 우리에게 신앙의 모델을 보여 줍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보내심 받은 사람처럼 살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빛이 아니라 빛을 증언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나에게 끌어오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께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도 연결자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지배하거나 붙잡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정리하면 세례 요한은 누구입니까?
그는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빛이 아니라 빛을 증언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메시아의 길을 준비한 마지막 선지자이며, 사람을 예수님께 연결하는 증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고백도 이러해야 합니다.
나는 중심이 아니다.
나는 빛이 아니다.
나는 구원자가 아니다.
나는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았다.
나는 예수님을 드러내며, 사람을 주님께 연결하는 증인이다.
이 믿음과 정체성이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세례 요한의 삶과 사명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세례 요한처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내 뜻과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사는 인생 되게 하시고,
삶의 모든 자리에서 사명을 붙들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빛이 아니라 빛을 증언하는 자임을 잊지 않게 하시고,
우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게 하시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또한 우리를 사용하셔서
사람을 붙잡는 자가 아니라
사람을 예수님께 연결하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해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 나아오게 하옵소서.
주님,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는 고백이
우리의 진심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삶 전체가 예수님을 높이는 증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