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와 밤나무
김 수 자
우리 마을에는 유실수가 많다. 거의 집집마다 한두 종류의 과일나무가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집은 밤나무가 많고 '팔현'이네 집은 감나무가 많다. 오늘 아침 텔레비전에서는 밤 소식을 전했다. 밤이 가을의 전령사로 등장한 것이다. 쩍쩍 벌어진 밤송이 속의 알밤들이 유감없이 수확의 계절을 알리고 있다.
우리 집에 지천으로 굴러다니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밤이 텔레비전에 등장하다니 우리는 신기해서 일손을 놓고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전국에서도 밤의 주산단지로 손꾭히는 이웃 고장이 소개되고 있었다. 예년보다 밤 작황이 좋아서 수입도 늘어났고 수확시기가 20여일 앞당겨졌음을 알린다. 아나운서는 수확의 계절에 어울리는 알밤소식을 전하는게 신바람이 났는지 연신 싱글벙글한다.
"뻘(벌)소리께나 하고 있네."
시어머니의 일성에 우리는 화면에서 빠져 나와 제 자리로 돌아간다. 조금 전 아나운서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시어머니의 가시 돋친 음성이 대조를 이루며 여운을 남긴다.
그러고 보니 시어머니의 일거일동은 밤송이 가시를 닮은 데가 있다. 시어머니는 보리밥을 싫어한다. 내가 밥을 푸다가 실수로 보리쌀을 몇 알 섞이는 날엔,
"호랑이 별명이 붙은 너희 할머니한테도 쌀밥공대를 받았는데 며느리인 네가 시방 나한테 보리밥을 주냐?"
하며 벼락이 난다.
시어머니의 쌀밥 타령은 역사가 길다. 내가 들은 횟수만 해도 수십 번은 넘는다. 며느리인 나한테서 약간의 푸대접 기미라도 보이면 어김없이 들고 나오는 단골 메뉴다. 쌀밥타령의 역사적인 배경은 '여순사건'이다.
"너거 아부지가 공무원 아니더냐. 공무원은 소개명령에 따라 모두 피신했지. 우리 식구들도 제비골에 숨어서 험하게 살았더란다. 먹을 것이 얼마나 귀한 시절이었는지, 쌀밥 보리밥 간에 밥 구경이 힘들었제. 둘째를 가져서 입덧이 심했더란다. 워낙 내가 보리밥을 싫어하지 않더냐. 입덧 중에는 죽어도 맡기 싫었던 게 보리밥 냄새라 수저를 들지 못했지 뭐냐."
그 난리통에 어디서 구했는지 할머니는 끼니때마다 쌀 한 주먹을 놓아 아들 손자 제치고 며느리 밥그릇에 담아주셨다는 얘기다.
일생 밤나무를 가꾸면 정말 밤송이를 닮을지도 모른다. 앞집 할머니는 집안에 키우는 개도 주인을 닮는다고 했다. 우리집 개가 낙엽 날리는 바스락 소리에도 동네가 떠나가거라 짖어대면 싸납쟁이('사납다'의 전라도 사투리) 주인을 닮아서 그렇다고 했다. 싸납쟁이 주인이라면 밤송이가시 같은 시어머니를 가리키는지 며느리인 나를 가리키는지 애매하다.
나는 그것보다도 더 앞서 해결해야 할 궁금증이 있다. '벌소리'의 말뜻이다. 시어머니는 벌소리를 두 가지 경우에 사용한다. 별로 밉지 않은 책망을 하는 때가 그 하나며 다른 하나는 '돼먹지 않은 소리' 또는 '같잖은 소리'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후자의 경우 뭘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경멸의 뜻도 담겨 있다. 처음 몇 번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해 사전을 찾기도 했다. 전라도 고유의 사투리인지 사전에는 없다. 지금은 사전을 찾지 않아도 말뜻을 턱 알아챈다. 비결은 20여년 시집살이에서 키운 눈치와 요즘 농촌의 전후좌우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의 뻘소리는 후자에 속한다.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 아침 아나운서가 전해 준 밤 소식은 그야말로 '돼먹지 않은 소리'다. 거의 반평생 밤나무를 가꿔온 시어머니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 시어머니는 밤 박사다. 밥 박사가 진단한 올해의 밤 작황은 예년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의 밤농사가 실패한 원인으로는 지독했던 장마와 벌레의 극성, 수입농산물, 인력난 등이라고 한다.
수십년 빠짐없이 기록해온 밤 박사의 영농일지가 증거품이다. 시어머니는 나처럼 별로 정확성이 없는 기억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의 일생을 통한 대소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철저함이 있다. 받침이 틀린 구식철자법에다 당신만이 알아 볼 수 있는 독특한 기록방법이다. 멸치젓 담근 날짜며 김장한 날짜, 밤밭에 항공 방제한 날짜, 횟수, 대금, 밤을 처음으로 수확한 날자, 분량, 가격까지 시어머니의 일기장 속에는 별별 것들이 다 기록돼 있다. 이 일기장 때문에 나는 어떤 신빙성을 강조하는 통계기관의 발표보다도 시어머니의 주장을 믿는다.
집 뒤의 경사진 산비탈이 밤 밭이다. 경사가 심해서 밤 밭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무거운 밤 자루를 끌고 오르내릴 때나 거름을 낼 때나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부를 사려해도 사람이 없고 밤 값을 넘어서는 품삯이라 도리가 없다. 그냥 없는 셈치고 포기하라고 권해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같이 알밤을 주우러 나선다. 5전을 보고 10리를 간다는 장사치들이 무색하게 알밤 한 톨을 보고 위험한 곳도 마다 않는다. 벌레 먹은 놈은 골라내고 때깔 곱고 잘 여문 것들은 자루 자루 묶어서 아들네 딸네 집으로 보낸다.
"몸도 성치 않은 엄니, 그런 것은 뭣 하러 보냅니까."
"오냐, 에미 생전에나 실컷 먹어라."
시어머니의 말씀은 거짓이 아니다. 나는 내 형제들은 물론 내 아들 딸한테도 그 고생해서 보낼 자신이 없다.
밤나무는 20년 전에 시아버지께서 8백주를 심었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베어지고 잘려나가 지금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숫자가 남아있다. 밤나무를 심었던 시아버지께서는 10년째 병석에 계신다. 당신이 손수 심었던 밤이 꽃이 피는지, 수확을 하는지, 계절이 오고가는 것도 모른 채 방안에만 누워 계신다. 밤 밭의 관리는 고스란히 시어머니의 몫이다. 시어머니께서는 밤나무 아래 풀을 베는 일, 밤을 줍는 일 등을 하다가 힘들 때나 벌에 쏘이거나 풀독이 올라 며칠씩 병원출입을 할 때는 푸념을 하곤 한다.
"너그 아부지가 내 고생 시킬라고 밤을 심었는갑다. 나 좋아하는 감을 심을 일이지. 팔현이 엄마가 부럽다…"
젊었을 적에는 인물 값 하느라 속께나 썩히더니 늙어서까지 밤밭을 물려주어 편할 날이 없다고 불평이다. 시어머니는 감을 무척 좋아하신다. 늦가을에는 홍시를 사러 주변의 5일장을 찾아가기도 한다. 서울에 사는 둘째 아들이 성능 좋은 외제냉장고에 냉동시킨 홍시를 한여름에 가져올 정도다.
시어머니께서 쌀밥보다 더 좋아하는 감은 팔현이네 집에 지천으로 있다. 내가 팔현이 팔현이 하지만 팔현이는 지금 오십대 중반의 가장이다. 팔 형제 중의 막내라 동네사람들은 이름은 불러댄다. 서울에서 택시 기사하면서 가끔씩 어머니를 불러 올려 서울구경을 원 없이 시켜드리는 효자다. 팔현이 집은 아들만 여덟이다. 딸을 낳으려다 여덟 아들까지 갔느냐고 물을라치면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모르는 소리 말아라. 제 먹을 것 제가 타고나는 뱁이여. 생기는 대로 낳는거라."
팔현이 어머니는 여자치고는 기골이 장대하다. 큼지막한 엉덩이에 가슴을 쑥 내밀고 팔을 힘차게 내젓고 걸어가는 모습은 여장부답다. 아무리 제 먹을 것 타고난다 하지만 여덟 아들 키우기가 쉬운 일인가? 시원스런 말투며 넉넉한 몸집이 과육 풍부한 단감을 닮았다. 단감처럼 육덕 좋은 팔현이 어머니의 낙천적인 성격 탓인지 여덟 아들 모두가 초등학교 마친 실력으로 남부럽잖게 산다. 한 아들은 중동의 기술 근로자로, 부산에서 공장 책임자, 한 아들은 미국이민…. 이래서 팔현이 어머니는 미국으로 서울로 부산으로 비행기에 택시에 외로움을 모르고 산다. 여덟 아들이 서로 모시겠다는 호의도 뿌리치고 초가삼간 지키며 혼자 살고 있다.
그저께는 팔현 어머니께서 골목길을 다니며 '영감아, 영감아…'하며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노년이 무척 쓸쓸하신 모양이지요?"
"모르는 소리 마라. 감 팔아서 목돈 쥐니까 그돈 같 쓸 영감 생각이 나서 그러지."
팔현 어머니의 몸집에 어울리지 않는 눈물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감나무는 밤나무보다 관리가 수월하다. 가시 돋친 밤송이를 벗겨내야하는 수고도 없다. 따서 시장에 끌고 나갈 필요도 없이 나무에 달린 채로 장사가 와서 선금을 맡긴다. 가을에 감 값을 두둑이 챙길 때마다 팔현 어머니는 영감 생각으로 눈물짓는다. 이 좋은 세상 버리고 떠난 영감이 야속해서 아들 호강 혼자 받는 것이 송구스러워서, 홀로 남은 할멈 용돈 궁하지 않게 감나무 심어준 것이 고마워서 울고 또 운다. 가을이 되면 두 여인의 희비가 엇갈리는 삶이 도드라진다. 나도 덩달아 웃다가 울다가 한다.
첫댓글 며느리가 벌 소릴 한다. 옛날 새마을 운동할 때 들 논은 쌀 농사 지어야 하니 농가 부업을 장려한다고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밤나무를 나라에서 심도록 장려 했고, 그 밤을 거둬들여서 남아도는 도시 가정주부들에게 밤까기 일을 시켜서, 그 잘 다듬어진 밤을 통조림으로 만들어서 일본으로 수출해서 먹고 살았다는 것을 모릅니다. 영천에 영성상사라고 밤 전문 수출회사인데 그 회사가 당시 외화를 많이 벌어 들였어요. 이때 우리나라 수출품은 홀치기, 가발, 예쁘게 잘 까진 밤 같은 아주 초보적인 물품들 뿐이었지요. 감은 산비탈 가뭄이 심하게 타는 밭에는 아예 농사가 안되지요.
그리고 육종개량 된 단감 나무가 나온 지는 얼마 안되고, 이제는 단감도 따는 인건비조차도 안 나오지요. 정말 품질 좋은 단감이 있는데, 배처럼 즙이 많고 아삭한 씨 없는 단감인데(제가 품종 이름을 모름), 이건 지금도 미리 선 주문해야 먹을 수 있어요. 아마 나무에 달린 체로 상인들이 선금을 맡긴다는 단감이 그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농사 짓는 농산물 성질을 주인이 닮아간다고 틀을 설정한 것 부터가 작위적 입니다. 속이는 글을 이라는 뜻입니다. 밤 한 되에 쌀 한 되 값 받으면
신명이 나서 너도 나도 싱글벙글 온 산에 다 밤나무를 심었지요. 노력한 만큼 돈이 안 나오면 사람들 마음이 까칠해 집니다.그래서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까지 있습니다. 시어머니의 삶은 진짜 그 시절에 억척으로 근면 성실했던 우리 부모 시대의 삶이 맞습니다. 지금도 우리 집에는 구순이 넘은 장모님 덕분에 온갖 양념, 산나물, 채소가 사시사철 떨어지지 않습니다. 나도 어깨 너머로 배운 농사기술로 고추 오이 상추 생산하여 아이들 집으로 보냅니다. 그건 돈이 아니고 생명의 끈이기 때문입니다.
성실하게 삶을 살아낸 사람은 칠락팔락 놀러만 다니는 것을 두고 행복이라 여기지 않습니다.(살면서 여행도 다니고 해야 하지만 그 빈도를 두고 행복의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뜻) . 근면 성실의 가치관을 지닌 분들의 삶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지 때문에 "벌소리(생각이 깊지 않은 들을 가치도 없는 헛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독자인 저에게는, 이제는 썩은 밤처럼 늙고 병들었지만, 시어머니의 삶이 잘 여문 알밤 같은 소리로 들리고, 이 글의 작가인 며느리 소리는 진짜 벌소리로 들립니다. (작가님! 자기 마음을 속이는 글 쓰시면 안되요!)
회장님! 아이구 4시에 답글을 올리셨네요.
작품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보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진다고 봅니다.
문학:사상이나 감정을 상상의 힘을 빌려 언어로 표현한 예술
저는 이 작품을 며느리인 작가의 마음(감정)을 밤나무(시어머니)와 감나무(팔현엄마)라는 상상의 형상을 빌려 나타냈다고 생각합니다. 한 집에 살면서 까칠한 시어머니에 대한 성격으로 평소 속상한 일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우회로 돌려 말했다고 봅니다. 이 글을 보면서 당장 드는 생각이 '참 마음 고생을 많이 했겠구나'라는 생각에 짠했습니다.
여기서 성찰이라든가 무슨 큰 뜻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순수한 인간(작가)의 감정을 이야기했다고 봅니다. 시어머니가 팔현이 엄마같이 성격 좋은 분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이 글이 잘 썼다는 건 아닙니다. 일단은 형상화를 시도했다는 것, 잘 못 쓰면 졸작이 되겠지요.
@수선화(김귀선) 누군가에게 수필 문학을 잘못 배워서 이렇게 쓴 게 아닌가 합니다. 이 표현이 사실 이라면 훌륭하신 시어머니를 알아 보지 못한 며느리라고 보여 집니다. 특히 외제 냉장고에 얼린 홍시 싣고 오는 것을 효도로 알면 아주 미달입니다. ("조홍시가" 라는 시조가 절창이 되는 이유는 "품어가서 반길 이 없다"는 그 문장 한 구절 때문입니다.)
작가가 되어서 작품을 발표할 때는 발표 되는 순간, 이미 그 글은 대중적이고 공적인 글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공공에 유익이 있어야(대승적 가치를 얻어야) 문학적인 가치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자기 하소연은 일기나 수다로 풀어야 합니다. 문학을 하는 작가는 이점을 필히 명심해야 합니다. 제가 날카롭게 비판하는 이유는 이런 류의 작품을 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면 우리 수필은 아주 문학 취급을 못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적에는 인물 값 하느라 속께나 썩히더니 늙어서 까지 밤밭을 물려주어 편할 날이 없다고 불평이다. " 이건 푸념이지 진짜 불평이 아닙니다. 젊어서 부지런히 일한 노인네 둘이 함께 늙어가다 보면 어느 한쪽이 먼저 병들어서 자리에 눞는 날이 오지요. 내 몸도 천근만근인데 배우자 몸까지 챙겨야 하니 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외제 냉장고에 얼린 감을 승용차에 한 차 싣고 내려오는 둘째 아들이 그 마음을 이해 하지 못하고 있어요. 형제가 몇인지는 모르지만 당번 정해서 일주일에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은 부모 곁에 머물다 가는 놈이 진짜 효자입니다. 요양사가 오더라도 그래야해요. 밤 팔아서 공부 시켜 외제차 몰고 다닐 정도로 출세 시켜 놓으니 늙은 부모 마음을 모른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작가님들!
작위적인 글쓰기 그만하시고 자기 마음을 울리는 글을 쓰세요. 이 답글은 이 글을 쓴 작가에게 드리는 글이 아니고 수필작가라 칭하는 모든 분들께 드리고자 쓴 답글 입니다. (북은 자기 가슴을 울려서 세상을 울린다/정임표 말이니 인용할 때는 반드시 주석을 다실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