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칼럼] (29) 학자라기보다는 사목자인 프란치스코 교황 / 윌리엄 그림 신부
최근 미국의 주간지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한 디트로이트대교구 신학교 교수들의 비판을 다룬 기사가 실렸다.이들은 교황이 “교회 내 성소수자 문제, 사형제, 이혼한 뒤 재혼한 신자들의 영성체 문제 등의 쟁점에 지나치게 느슨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또 “혼란을 야기하고, 교리 강화에 미온적이며, 신자들 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린다”는 이유로 사퇴까지 요구한 이들도 있었다.신자들 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리는 것이 징계 이유가 된다면, (베드로는 아니더라도) 비오 12세 교황 이후 모든 교황은 교황청 산탄젤로 성 지하 감방에 갇혔을 것이다.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회의 교리를 약화시키거나 저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전형적 비판이다. 그들은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교황에 관한 소송을 시작해야 한다고 여길지도 모른다.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판에서 주목해야 할 곳이 바로 신앙교리성이다. 신앙교리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비밀스러운 고발, 정당한 법 절차와 투명성의 결여, 오류가 있다고 간주되는 이들에 대한 고압적 태도였고, 특히 이전 두 전임 교황의 시대에는 더욱 그랬다.프란치스코 교황이 교리를 수호하고 강화해야 할 역할을 저버리고 있다는 불평들을 제대로 알고 평가하기 위해 우리는 신앙교리성에서 어떤 준거를 찾을 수 있을까?교황의 비판자들은 주로 교리와 교회법에 치중하며, 교황이 이런 것들을 무시하거나 거스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야 할 곳은 신앙교리성의 규범이나 견해, 절차나 조치가 아니라 그 이름이다. 교황을 비판하는 이들이 초점을 잘못 맞추고 있다는 것은 신앙교리성(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의 이름 자체에서 드러난다.이 부서의 명칭에서 중심어는 ‘신앙’(Faith)이다. ‘신앙의 교리’이지 ‘교리의 신앙’이 아닌 것이다. 교리는 신앙에서 비롯되었고, 신앙에 의지하며, 신앙을 위해 존재한다.그렇다면 신앙이란 무엇인가? 일련의 명제들에 대한 동의인가? 하느님이나 교회나 교회 관리들의 명령에 대한 순종인가?그렇지 않다. 신앙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에 이끌려 하느님 아버지와 맺는 사랑의 관계이다. 신앙의 모범은 성령에 이끌리시어 그 사랑에 충실하게 살아가셨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범이시라면, 우리는 그분께서 당신이 속해 계셨던 유다인 공동체의 신앙에서 생겨난 교리들, 곧 율법에 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굳이 율법에 대한 바오로의 비판까지 가지 않아도 예수님의 직무에서 알 수 있는 바,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지 않으셨으나 당신이나 제자들이 아버지와 맺는 관계의 요구들 아래 종속되도록 율법을 상대화하셨다. 말하자면, 율법을 신앙 아래 두신 것이다.그분은 더 나아가 율법의 근본 계명인 안식일 준수 규정마저 뒤엎으셨다. 그것은 가톨릭교회로 치자면, 성찬례에서 성사 교류에 관한 규정들에 손을 대는 것과 맞먹는 일이었다. (성사 교류에 관한 규정은 안식일 규정과 달리 성경에 근거를 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교회의 교리들은 우리가 하느님과, 또 하느님의 백성과 맺는 관계를 바르게 가르치고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교리는 언제나 하느님과의 관계보다 뒷자리에 놓이며, 그 관계를 보호하고 성장시킬 때에만 가치가 있다.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돌아가 보자. 교황은 그 잘난 관습들과 규정들을 다루기보다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과 더욱 성숙한 관계를 맺도록 돕는 일을 기꺼이 우선순위에 놓는다. 두 전임 교황과는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학자라기보다는 사목자라는 사실도 이러한 태도의 한 이유가 된다. 그의 직무에서는 문헌이나 개념들보다 늘 사람이 먼저였다.교황은 교회란 불완전한 사람들이 계명을 완전하게 준수하지 못하는 그 상태 그대로 우선 치유 받을 수 있는 야전 병원이라고 말한다. 계명 준수는 결코 완벽해질 수 없을 뿐더러, 전제조건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 아니라 차츰 회복되면서 채워가는 것이다.건강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병원이란, 사실 어불성설이 아닌가.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불편하게 만드셨다. 블로그들이 십자가들을 대체해 버린 오늘날, 프란치스코 교황도 그렇게 하고 있다.
윌리엄 그림 신부 (메리놀 외방전교회)rn※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