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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달린다 / 중국연변 조룡기
연변문학 윤동주 문학상 (단편소설 )
막 가는 봄
두평정도의 주방바닥에 비누가루를 뿌려서 비로 빡빡 문지른 다음 호스로 물을 뿌려 말끔히 청소를 끝낸 준성이는 길옆에 세워진 전동차로 발길을 돌리면서 휴대폰을 누른다. <<워이- 니호우? >> 인사말전에 먼저 들려온 소리는 <<짜라짜라 짠짠짠 짜라짜라 짠짠짠…>>이다. 술집이였다. <<아직도 거기야?>> <<엉? 잘 안들려… 빨리 오라. 여기 지금 한창이니까.>> 강민이가 저쪽에서 잘 들리지 않는지 귀청이 따갑게 소리질렀다. <<그래, 알았다. 인차 갈게.>> 준성이는 량미간을 찌프리며 휴대폰을 호주머니에 다시 넣고 전동차의 발동을 걸었다. 사실 강민이가 불렀다면 어떤 리유를 대서라도 가지 않으려 했지만 강민이와 이번 함께 투어를 진행하는 한국려행사의 인솔자 송실장님의 초청에 마다할수가 없었던것이다. 개밸같이 구불구불한 <<솔로몬>> 룸싸롱의 복도를 두번 돌아서 강민이가 있는 룸으로 안내되였다. 송실장이 넘 반갑다 하며 악수를 청했고 강민이는 쏘파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포장마차… 크핫하… 사장님 오셨네요. 어서 오세요.>> 하면서 쏘파를 탁탁 두드리였다. <<그래, 장사는 잘돼?>> 송실장이 준성이를 눌러앉히며 물었다 <<네. 덕분에 그럭저럭 괜찮아요.>> <<사장님이여서 그런지 오늘 보니 다르다. 준성이… 포장마차 사장님.>> 강민이가 은근슬쩍 야유가 담긴 어투로 끼여든다. <<가이드 일하고 비하면 어때? 많이 힘들거고… 그래도 그건 사업이야. 여하튼 선택 잘했다. 열심히 하고..>> 송실장이 컵에 맥주를 따르며 말했다. <<야, 준성아, 넌 걔 궁금하지도 않냐?>> 강민이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계속 준성이의 속을 긁는다. <<너 또 뭔 말 하려고… 걔 얘기라면 집어치워.>> 준성이는 강민이를 흘기며 입을 막아버리려 했다. <<춘매 걔 요즘 상해 여행사서 인기 짱이다. 미녀 가이드가 돼서. 쓰잘데기 없이 포장마차 한다고 납두더니 여친 날려버리고. 이제라도 늦지 않으니… 아니, 이젠 안되겠다. 다른 남친구 사귄다는 소문도 있고…>> 강민이는 그대로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으려 했다. <<됐어, 강민씨!>> 송실장이 얼굴이 일그러지는 준성이를 보면서 강민이에게 어성을 높혔다. 이때 웨이터가 들어왔다. <<손님방에서 가이드 찾고있습니다.>> <<뭔 일이냐?>> 강민이는 들었던 맥주컵을 도로 놓으며 짜증을 부렸다 <<몰라요. 그냥 가이드 불러오라 해요.>> <<에이, 또 뭔 지랄…>> 송실장의 얼굴을 슬슬 보며 강민이는 말꼬리를 자르며 밖으로 나갔다. 송실장과 준성이 맥주 몇잔을 비우는 사이 강민이가 다시 들어서며 성난 황소마냥 씩씩 거렸다. <<송실장님. 다르게 생각 말아요. 한국사람 꼭 욕하자고 하는 소리 아니니까요.>> 강민이의 목소리에서는 금방 기름이 흐른다. <<한국사람들 중국에 한달 있으면 박사가 되고 6개월 있으면 석사가 되고 1년 있으면 학사가 된다는 말 있잖아요. 그 말 틀린데 없어요. 중국 관광 다섯번이면 어쩌구 열번이면 어쩐다구. >> 강민이는 혼자서 낄낄린다. 잠간이였지만 송실장의 얼굴에서 소태씹은 표정이 흘러가는것을 준성이는 놓지지 않았다. 허나 이미 취기가 오른 강민이는 자기 말만 쏟아붇고있었다. <<한국인이라는 월등감, 이젠 진저리나요. 그냥 중국사람이면 더럽고 어수선하며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생각밖에 가지지 않고, 물론 그런것이 전혀 없는건 아니잖아요. 근데 그런 감정 꼭 보여줘야 시원해요? …>> 송실장의 침묵에 자신의 실수를 느꼈는지 강민이는 말끝을 흐리우면서 맥주잔을 기울였다.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는 맥주의 알콜 농도가 조금만 높았어도 가슴에 불이라도 집힐듯한 강민이였다. 그러는 강민이를 바라는 송실장의 얼굴은 구겨져갔다. <<그래… 그래, 니 말이 맞다. 중국에서 우리 나라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항상 느끼는것이 바로 거의 병적인 자부심이야. 중국이 분명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정치적, 경제적인 파워를 지니고있는데 말이다. 미국인이나 일본인조차 중국인을 무시하지 못하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만 유달리 중국을 업신여기는것 같애.>> 송실장은 잠간 말을 끊고 담배를 찾아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라이터 불빛에 벌겋게 비쳐지는 코마루가 씰룩거리고있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제적인 우월감에 가소롭게도 교만한 생각을 지니고있는것 같다. 관광객들 뿐만아니라 중국서 사업하시는 많은 분들도 피차일반인것 같애. 피차 마찬가지겠지만 이곳은 필경 중국땅이기에 중국쪽의 시각으로 이해하는것이 외국인으로 살아가기에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서로 왕따 시키는 분위기인데 결국 손해보는 쪽은 외국인일수밖에 없지 않을가? 근데 뭔 일이라도 생긴거야?>> 담배연기를 후욱 탄식처럼 뿜어대며 송실장이 준성이에게 눈길을 주었다. 준성이는 얼떠름해지면서 송실장의 실눈만 멍청히 볼뿐이고 강민이는 머리뚜껑이라도 열리게 눈을 커다랗게 뜨고 송실장의 묻는 말에 대답을 잃어버렸다. <<맥주나 한잔씩 하자.>> 송실장이 피씩 웃으며 잔을 들었다. 잔을 다 비우고나서 이제 금방 기고만장하던 강민이는 유순한 양이 되여간다. <<그 있잖아요. 그 분… 차사고말이예요.>> 송실장쪽으로 바투 들어앉는다. <<글쎄 룸에 들어가니 양주가 가짜라고 우기는거 있잖아요. 이제 금방 두잔씩이나 돌았을가말가 하는데 머리가 아파난다면서 가짜라는거 있지요. 그러면서 장가계, 북경, 성도에 갔을 때 얘기를 꺼내면서 짝퉁 천국 중국이라며 매니저 불러 오라는거예요. 물론 거기 까지는 넘어갈수 있는데 말이예요.>> 강민이의 격해지는 감정도 빨라지는 말의 속도와 함께 질주를 했다. 욕설이라도 주체할길 없이 쏟아져 나올가봐 맥주를 입에 갔다대고 꿀럭꿀럭 쏟아붓고는 입을 쓱 문질렀다. <<매니저 오니까 오늘 하루 저녁, 일반인들 한달 월급 챙기게 생겼는데 서비스가 이게 뭔가 하면서 호통쳐대는거 있잖아요. 그 속셈 누가 모를가봐. 술값 깎아달라는거지 뭐예요. >> <<그래서?>> 송실장이 야릇한 흥분을 느낀다. <<그리곤 쭉쭉빵빵 다섯을 줄 세워놓고 대-한-민-국! 월드컵 응원단 만드는거 있잖아요. 어이구 저런… 술집에도 아니, 모든곳에는 룰이 따로 있는 법이잖아요. 입침을 튁튁 튕기면서 한다는 소리, SARS보다 더 치명적인거 있죠. 풋하하… 자 우리도 다 같이 대-한-민-국!>> 강민이도 월드컵 응원단이 되여서 재밋다고 박수를 쳐댔다. 송실장도 준성이도 어이가 없어져 반은 히스테리적인 강민을 바랐다. <<근데… 대-한-민-국! 그분… 차 사고라도 났댔어? 차 사고 뭔데?>> 준성이가 궁금해졌다. <<응… 그 사람 생긴게 좀 특이해. 얼굴이… 차 사고 현장 같은데가 있어.>> 강민이는 고개를 뒤로 한껏 젖히며 피곤한 기색을 일부러 짓는다. 이어서 맥주가 몇순배씩 돌았고 강민이는 강민이대로 자기가 받은 스트레스를 송실장에게 하소연하기에 이르렀다. 려행업과 멀어진지 고작 6개월 정도밖에 안되였는데 준성이는 벌써 끼여들 흥이 없어졌다. 홀로 맥주를 마시며 오후에 포장마차로 면접왔던 소희를 떠올렸다. 다른 한국류학생들과 달리 반짝하는데가 있는 소희가 다시 전화를 줄가 잠간 생각이 스쳐갔다. 송실장과 강민이와 술집에서 헤여져서 집에 들어선 준성이는 컴퓨터부터 먼저 켜놓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눈을 꾹 감고 고개를 들어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를 받으며 한참 그대로 서있었다. 하루동안의 피곤끼가 꿀럭꿀럭 하수도로 빠져가는 물과 함께 가셔져갔다. 별로 건장하게 튀여져 나오지도 않은 가슴근육을 손으로 비비다가 껄끄러운 느낌에 손을 들여다 보았다. 5년동안 마이크와 기발대만 들고 다니던 손은 이미 꺼칠해져 볼품없이 되여있었다. 두 손을 마주 부비고나서 주먹을 힘껏 쥐면서 화이팅 하고 팔굽을 굽혀보았다. 준성이에게 남아있는것은 아직도 젊음이였고 열정이였다. 머리우에서 쏴아 쏴아 뿜겨져 나오는 물줄기와 같이. 샤워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서는데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전화였다. <<어때? 장사 할만 해?>> <<그럼요.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엄마 한국서 더 고생 시켜드리고싶지 않습니다.>> <<내 걱정은 말고… 돈도 돈이지만 밥 제대로 챙겨먹는거야? 첨에도 말했다싶이 대학까지 나와갔고 포장마차 하는 니가 맘에 걸려서 당장이라도 중국 들어가고 싶었는데… 하긴, 젊었을때 고생 은전을 주고도 바꿀수도 없다잖니? 어떻게 잘해봐. 힘들면 내가 들어가서 도와줘도 되고.>> <<아직은… 이제 큰거 할때 주방장으로 모실게요.>> <<그래, 그런 날 오겠지. 그나저나 이젠 나이도 적지 않은데 사귀는 여자라도 있는거니? >> <<아직은… 몇신데 아직도 주무시지 않아요?>> <<낼 휴식이다. 모레부터 다른 식당으로 나갈려고. 식당 주인이 얼마나 까탈스러운지 그 등쌀에 배겨내지 못하겠다. 혹시 너두 사장이네 하면서 직원들 못살게 구는거 아니야?>> <<크큿큿… 별 말씀…>> <<그래, 넘 무리하지 말고. 일찍 자아.>> 엄마와 간단히 전화를 마치고나서 컴퓨터 앞에 앉을가 하다가 도로 침대에 벌렁 드러누웠다. 오늘은 엄마도 강민이도 녀자친구의 말로 준성이의 비위를 긁었다. 강민이의 말대로 자존심을 생명처럼 여기는 춘매가 다른 남자를 만나고있는지도 몰랐다. 열려진 창문으로 후끈후끈한 바람이 들어오면서 봄이 막 가는 소리를 보내고있었다.
청춘이 휘날릴 춤자락은 긴 치마 너무 어울린다고 긴 치마 너무 길다고 아, 긴 다리 너무 싱싱하다네요 긴 다리 너무 길게 덥지 말라네요 짧은 치마 입고 여름의 한 거리에 치마바람 날리며 청춘이 휘날릴 춤자락은 지금 섭시 40도 찔찔 끓이네요 도시 치마바람도 너무 더워 헐떡이는 도시 더위를 먹은 가로수가 재채기를 날리네요. _조광명 <<긴치마>>
차창으로 서호의 몽환적인 야경이 펼쳐지는 아늑한 차집에 준성이와 소희가 앉아있었다. 준성이는 대홍포(大红袍), 소희는 룡정차(龙井茶) 각자의 취향에 따라 차잔을 앞에 두고 함께 물끄럼히 차창을 바라고있었다. 막 11시가 되여가는 시간, 서호가에는 밤이면 더욱 기승부리는 인간들의 욕망이 흐른다. 호수가로는 아직도 투어비의 본전이라도 뽑아내야 된다고 악을 쓰고 다니는 관광객들의 분주한 걸음이 찍혀져 가고 차집 바로 밑의 무성한 플라타너스로 뒤덮인 도로는 택시들로 분주하다. 낮에는 뜨악한 교통체증에 달팽이걸음을 하던 택시들이며 자가용들은 밤이 되자 백미터 경주에서 1등의 라스트선을 가슴에 안아보려고 하는듯 속도가 주는 쾌감, 운전의 짜릿함이라도 즐기려는듯 쌩쌩 잘도 질주해 간다. 속도, 요즘은 누구나 다 좋아하는 스릴있는 속도, 도시라는 커다란 숲에는 속도가 최고란다. 그래서들 다 택시처럼 잘도 질주한다. 량옆의 풍경에도 곁눈질 할 겨를도 없이. 자신의 자잘한 방심, 아니면 뒤에서 앞에서 누군가의 운전착오로 그렇게 든든하게 쇠로 만든 차체들도 형편없이 망가질수 있는데 말이다. <<간만에 차집에 앉으니 저의 시계가 멈춰버린것 같습니다.>> 준성이가 소희쪽으로 머리를 돌린다. <<저두요.>> 소희가 차잔을 들며 조용히 받았다. <<시간이 빨리도 흐릅니다. 저기 달리는 택시들처럼.>> <<그래요. 미락한식 알바를 시작한지도 벌써 삼개월 다 되여가네요.>> 한잎 두잎의 록차잎이 침잔해가는 유리컵을 오른쪽 귀밑으로 갖다대며 소희는 살풋이 웃었다. 참 귀여운 포즈다. 솔직히 여름방학에 한국으로 들어가지 않고 중국어 실력을 더 높이려는 욕심에 미락포장마차의 아르바이트를 견지해서 쭉 지금까지 찌물크는 항주의 도심 거리에서 지금까지 버텨온것도 꿈만 같았다. 개학이 며칠 남지 않았다. <<공부 할줄만 알았는데 음식에도 조예 깊었네요. 생각나시지요? 금방 해놓으면 물렁물렁 퍼지는 첨 가게의 떡볶이. 그것도 소희가 방법을 댄거. 시간이 지나도 떡볶이 쉽게 퍼지지 않고 쫄깃쫄깃한 맛을 내는 요령, 떡볶이를 먼저 기름에다 슬슬 볶아낸 다음 다시 팔팔 끓는 간을 맞춘 탕에다 삶는 방법말입니다. >> <<듣고보니 그렇기도 하네요. 호홋호… 엄마한테 물어본걸요.>> <<글구 해물파전 이름 고친것도요.>> <<그건 저의 아이디어구요.. 파 마늘 냄새나는걸 먹기 싫어하는 항주사람들에게 해물파전이라고 하면 거부감이 생기지요. 그냥 해물전 하면 어감자체부터 다르잖아요. 그런데 사장님 고집 아직 하나 꺾지 못한게 더 있어요.>> <<떡볶이 맛?>>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준성이는 소희의 말을 들을념을 하지 않고 물음표를 찍는다. <<그래요. 다들 중국이니까 한국음식도 중국음식과 접목 시켜야 된다고 하지만 자기의것을 지켜야 돼요. 매울수록 좋고… 특히 거리음식들은 자극적인 맛이 있어야 해요.. 물론 뜨내기 손님들 다수인 포장마차라 하지만 단골을 아예 무시하는 장사는 오래 가지 못해요.>> 소희는 이미 흥분상태다. <<단골무시는 아닙니다. 어떤 문화도 그 지역의 독특한 환경내에서 변형되여야 합니다. 한국에서 젤 잘 먹는 중국음식 짜장면만 보십시오. 그나저나 우리 포장마차 와서 고생이 많습니다.>> 준성이가 화제를 바꾸었다. <<하긴…억울할때가 많았죠.. 생각나세요? 제가 막 울번했던거…>> <<그런적도…>> <<하루에 가짜돈 100원짜리 석장을 받았다고 길길이 뛸때는 언제였던가요? 하여간…이익을 위해서는 칼날에 묻은 피도 핥는다는 결연한 의지속에는 차가움을 넘어 냉기가 서려 있었어요.>> 소희가 입을 비쭉했다. <<그 정도?…>> <<그럼요.그렇게 당하고나서 알바 그만 둘가도 했댔어요..>> <<그렇게 심각했습니까? 죄송합니다. 솔직히 저도 선입견 갖고있었던것도 사실입니다. >> 준성이답게 심각해져간다. <<어머머, 무서워라. 그런 사람이였어요.? 근데 당근을 썰다가 칼이 빗나가서 저의 손가락을 떡볶이로 만들어버렸을때, 내 손가락의 피를 지혈해줄 때는 그런 마음 없었나 보죠. 뭐랄가요? 부(富)를 향한 차갑고도 뜨거운 집념? >> 소희가 샐쭉 웃어보였다. <<함 봐요. 그 손.>> 준성이가 손을 불쑥 내밀었고 소희도 왼손을 쑥 내밀며 고통스런 표정을 일부러 지었다. <<어쭈, 당신네들 여기서 뭔 짓들 하는거예요?>> 준성이가 금방 소희의 손목을 잡았을때 뒤에서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성이와 소희는 깜짝 놀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포장마차로 한번 찾아왔던 소희의 친구 영민이가 눈을 부릅뜨고 뻗치고 서있었다. <<영민아, 올만이다… 너 이 시간에… 여기 어쩐 일로…>> 소희는 영민이의 갑작스런 출현에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떠듬거렸다. <<너야 말로 이 시간에 뭐 하는 짓이야? 집에 갔다와서 함 만나자고 하면 맨날 시간 없다고 빼던게 고작 여기서 교포 남자하고 노닥거리는 일이였어? 알바 빙자로 이 남자와 함께 하려고 방학에 한국에도 안간거 아니야?>> 영민이는 무작정 소희의 옆 빈자리의 의자를 뒤로 놓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영민아…>> 소희는 어쩔바를 몰라 준성이와 영민이를 엇갈았다. <<첫 대면은 아니지만 정식 인사드립니다. 박준성입니다.>> 준성이가 자리에 일어나며 악수를 청했다. 영민이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못내 달갑지 않은듯 일어나 준성이의 손을 잡았다. <<김영민입니다. 박소희의 남자친굽니다.>> 또박또박 그루를 박았다. <<뭐?>> 소희는 할말을 잃어버리고 영민이를 향해서 들었던 주먹을 그대로 내려놓으며 자리에 탈싹 주저앉았다. <<차 한잔 시켜드릴가요?>> 준성이는 영민이에게 공손히 청들었다. <<필요없어요. 친구랑 저쪽 방에 있어요. 재간 한번 좋네요. 남들은 우리 나라로 시집이다 장가다 하면서 가짜로도 갈려고 눈에 불켜고 아등바등인데 당신은 여기서 처어억…>> <<김영민 그만 못할래?>> 소희가 바락 고함지르며 영민이의 말을 잘랐다. <<뭔가 오해하고 계시는것 같은데 그런 사이 아닙니다. 그동안 고맙고 해서 차 한잔 산것 뿐입니다.>> 준성이는 상황파악을 시키는게 급선무라 생각되였다. <<오해? 오해라… 그렇다 쳐요. 한국에서 교포들 영악하단 말 많이 들었어요. 중국내에서도 마찬가지네요. 고작 부모님들 한국에서 뼈빠지게 번 돈으로 사업한다고 사장을 들먹이고 다니는 당신과 같은 교포 친구들 한둘이예요? 없는것들 허세부릴줄만 알고. 하루 빨리 꿈 깨세요.>> 영민이는 다시 발딱 일어나며 준성이에게 호통을 쳐대고는 룸쪽으로 쌩 찬바람을 일구면서 사라져갔다.
가는 여름을 위한 노래는 필요 없어요
그 여름의 키스 위로 떨어졌던 비방울 그 비방울이 말라서 불꽃으로 피였네요 불을 쬐라네요, 이 더운 여름 불더위 피할 두손 쫙 펼쳐 불을 쬐라네요, 이 더운 여름 더워 헐떡이는 빌딩숲 한 가운데 고개 쳐들어 하늘을 보라네요. 하늘은 불비의 둥지 둥지가 축 처져 헐떡이고있네요 고개 쳐들면 얼굴에 쏟아지는 불비 그 불비를 가릴 손이 각질처럼 마르네요. 이제 모든 키스는 증발해 버렸어요 섭시 37도까지는 그래도 견딜만 했어요 그러나 섭시 40도는 정말 너무 살인적이에요 37층 빌딩이 40층 빌딩 앞에 흔들려요 40층 빌딩이 사우나 박스처럼 섭시 60도로 찔찔 끓어요 사랑을 묻지 말라는 도심 속 가로수에 아 아 마지막 사랑편지 한장 푸른 추억으로 걸어놓고 이제 더위 먹은 빌딩 숲에 혀 빼물고 누워야겠네요 이 여름을 위한 노래는 필요 없어요. _조광명 <<섭시 40도 도시>>
두마리의 룡이 승천하고있다. 갑옷을 입은듯 비늘로 덮여있는 몸뚱이는 바다 수면에서 금방 치솟아올라 물기를 머금은채 소용돌이와 태풍을 몰고올듯 하고 그대로 날아올라가면 도시에 있는 집들의 지붕이 날아가고 길바닥에 홍수가 날 정도로 강한 폭풍우가 칠것 같다. 아래쪽으로 드리워져있는 수염, 타는듯한 눈동자우에 불룩 튀여나온 이마, 조그맣고 투박하게 생긴 귀, 짝 벌린 입속에 있는 혀는 기다랗고 이빨은 날카롭다. 그리고 목에는 하나의 작은 태양같은 여의주가 걸려있다. 룡의 모든 힘이 거기에라도 있는듯 하다. 그 우에 <<룡행천하(龙行天下)>> 가게 간판이 행서체로 큼직하게 붙어있다. 그 좌우로 기윽자로 쭉 들어서 있는 포장마차들의 간판들이 졸병들마냥 다닥닥 붙어있다. 준성이는 멀리서 그 간판들사이에 끼여있는 <<미락한식 퓨전포장마차>>를 멀거니 바라보고있었다. 하루종일 땀에 범벅이 된 티에서는 꼬약꼬약 고약한 냄새가 피여올랐다. 항주의 여름은 길기도 하고 끈질기도 하다. 9월초인데도 찜통 날씨는 한여름이 왔다가 울고가라한다. 마지막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을 호랑이(秋老虎)가 며칠째 계속 되고있었다. 준성이의 포장마차 매출액은 높아가는 온도와 달구어지는 공기와는 정반대로 내리막길을 걷고있었다. 이제 슬슬 저녁 마무리를 해야 될것 같아 매대쪽으로 걸어갔다. 불쑥 뒤쪽에서 영민이가 준성이를 앞질러서 매대쪽으로 향해걸어갔다. <<야, 넌 어디 어떻게 머리가 잘못된거 아니야. 이 찜통 날씨에 여기서 뭐 하는 짓이야?>> 다짜고짜로 영민이가 매대안의 소희를 끌었다. <<니하고 무슨 상관이야? 귀찮게 전화 해대더니만 급수 높혀 찾아까지 와? 차집에서 그렇게 망신시켰으면 됐지 여기까지 찾아온 니 심보 한번 까라.>> 영민이의 팔을 확 밀치고는 소희는 바락바락 소리질렀다. 그리고는 김밥용 플라스틱 통을 매대 밑의 랭장고에 넣으며 빨리 가라고 영민이에게 손사래질을 했다. <<억이 막혀. 넌 자존심도 없냐. 당당한 대한민국의 류학생이 이거 뭐다냐? 중국인 아니 그것도 교포의 알바… 생각 있는거야 없는거야. 몇번이고 말해야 돼. 내 말은 귀구멍으로 듣고 코구멍으로 내보내냐? >> 영민이가 완전 포효하는 사자가 된다. 옆의 포장마차 주인들과 준성이네 복무원 쑈장과 쑈한도 그들의 실랑이를 두고 수근수근대며 보고있었고 파라솔 아래 뜸하게 앉아서 음식을 먹고있던 손님들도 먹다말고 영민이와 소희를 보고있었다. 그들은 티비에서만 보았던 한국드라마를 현장에서 보게 되여 퍼그나 재밌어 하는 눈치다. <<하실 말씀 있으면 퇴근후에 하시지요..>> 뒤에서 소희와 영민이를 지켜보던 준성이가 나섰다. <<우리 직원들한테 함부로 하시지 마십시오. 그리고 꼭 요긴한 일 있으면 30분만 기다려주십시오. 인차 아웃이 될거니까요.>. <<크큿큿… 우리 직원, 모르는 사람 들었으면 어디 큰 사업이나 하시는 분, 요즘 쩍 하면 ceo라고 나발부는 사람들 많더니만 틀린데 없네요. >> 영민이 비실비실 웃으며 준성이를 시깔었다. <<그런 말씀 삼가해주시고요. 그리고 영업 중에 우리 직원한테 무리하는건 실례라고 생각됩니다.>> 준성이는 상투밑까지 올라오는 화를 가까스로 참으며 말의 속도와 악센트를 애써 조절하였다. <<여기 쭉 둘러봐요. 음식들마다… 전부다 쓰레기 음식들, 미개한 중국사람들이나 이런거 처먹지. 돼지같은 놈들이나.>> <<그만하지 못해. 김영민!>> 소희가 바락 고함질렀다. <<넌 뭔데… 중국사람들 두둔하고 그래. 확실한거잖아. 애들 먹는 우유 갖고도 장난치는 못된 놈들, 멜라민 하면 몸이 쪼그라든다. 여기라고 다를줄 알어?죽은 돼지고기, 죽은 쥐고기… 아편이랑 화약약품도 주저않고 음식물들에다 막 쏟아붓는 양심없는 인간들. 포장마차 사장님, 당신네 여기도 별로 좋을줄 아세요. 우리 신성한 대한민국의 음식을 이 꼴로 해서 파는거 보니 얼굴 발바닥에 깔기라도 했어요? 저 봐요. 푹 퍼진 떡볶이 돼지들이나 먹을것이지. 우리 대한민국의 이미지 한번 생각해 보셨어요? 저엉 돈 욕심난다면 우리 나라 가서 식당 복무원 하던지 노가다 현장 뛰던지… 여기서 궁상 떠는것 보다 좋지 않을가요? >> 영민이의 독설이 계속 되였다. 준성이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눈에도 불길이 일었다. <<김영민. 닥치지 못해. 가자 빨리.>> 소희는 수습이 되지 않아 앞치마를 벗으며 매대밖으로 나가서 영민이의 등을 밀었다. 소희에게 밀려가면서도 영민이는 목을 비탈아가면서 <<내 이제 가만 두나 봐라>> 하며 악을 썼다. 티각태각하면서 멀어져가는 소희와 영민이를 바라면서 준성이는 옆에 있는 휴지통을 냅다 걷어찼다. <<빨리 정리하고 퇴근하자.>>
이 가을엔 무엇을 파나요
쇼윈도 유리창을 입김 불어 열심히 닦는 소녀 그 소녀의 청순함을 믿어줘야 하나요 무엇을 파나요 무엇이 잘 팔리나요 봄 소망 여름 욕망 다 팔고 이 가을엔 무엇을 파나요 봄 소망 세일해서 팔았는데도 많이 남았네요 여름 욕망 덤핑해서 팔았는데도 아직 남았네요 사실 분은 어서 사가세요 내가 사장인 이 매장 나 내놓고는 다 팝니다 이 도시에 있는 건 다 팝니다 이 도시의 욕망을 세일해서 팝니다 이 도시의 꿈을 덤핑해서 팝니다
_조광명 <<가을 소녀>>
<<룡행천하>>가 비상에 걸렸다. 멜라민 공포가 바로 시작되여서 며칠 안되여 시 위생국, 성 위생국에서의 수차 검사가 내려오면서 이미 마라탕과 홍콩스낵이 영업중지가 되였고 준성이의 미락한식도 김밥과 해물전도 판매 중지가 되여버렸다. 음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공포도 급증하여 발길을 미식광장으로 돌리기를 꺼려했다. 포장마차들마다 직원들도 하나 둘씩 밖에 서있지를 않았다. 위생국의 검사가 내려오면서 아직 건강증이 없는 직원들 채용이 불법이 되여버린거다. 장사도 안되겠다 포장가게주인들은 감원이라도 한것처럼 어떤 대책을 취해보려고도 하지 않고 무가내다. 복무원 쑈장은 푹 퍼져가는 떡볶이만을 건성으로 저어대고 쑈한은 전 굽는 가마만 할일없이 긁고있다. 준성이는 파라솔 아래에 우두커니 앉아 맞은편 옷가게들을 멍청히 바라고있었다. 일여덟살 되여보이는 소녀가 쇼윈도에 세워져있는 모델들을 유심히 들여다보고있었다. 여름에는 초록색 끄나시랑 입고 하얀 굽높은 하이힐이랑 신고 한껏 어깨를 비튼 과장된 몸짓을 하고있던 모델들은 벌써 밤색 난방의 가을차림을 하고있었다. 한달씩 먼저 계절을 타는 옷가게들에서 눈길을 떼고 일어서던 준성이는 어정쩡 옆에 서있는 소희를 보고 얼떠름해졌다. <<오셨어요? 오늘 나오시지 말라고 메시지 넣어드렸는데…>> 준성이는 김 빠진 소리를 하다말고 위안의 말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는 소희를 보며 히쭉 웃어보였다. <<뒤숭숭한 판에 누가 신고를 했답니다. 여기 음식 먹고 배탈이 났다면서…>> <<신고?>> 소희가 머리를 갸웃뚱하였다. <<떡볶이 주세요__>> 뒤에서 간만에 명랑한 목소리 주문이 들어왔다. 준성이와 소희는 그 목소리 주인을 찾아서 가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준성이의 얼굴은 흠칫 놀라는 기색이 흘렀다. 그 녀자는 준성이와 소희를 엇갈아 보면서 입을 비쭉거렸다. 그리고 떡볶이 그릇을 받아서 파라솔 아래 준성이와 소희가 있는 쪽으로 왔다. <<그동안 무사하지 못했네. 고작 이렇게 살려고 그 고집 부린거야? >> 그 녀자가 의자에 앉으며 준성이더러 앉으라며 턱짓을 했다. 준성이는 미동이다.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기다렸다는듯 멜라민 파동이 왔을 뿐이고, 자금줄로 갖고 있던 주식도 반토막이 났을 뿐이고, 달려라 포장마차 멈춰섰을 뿐이고… 거봐. 내가 뭐랬어. 누구는 하늘에서 돈 떨어지는 줄 모르고있은것도 아닌데. 코구멍만한 포장마차도 큰 사업이라도 하는것처럼 떠벌이더니…>> 그 녀자는 다리를 꼬아가면서 손으로 부채바람을 만들며 계속 시깔렀다. <<여보세요. 춘매씨, 당신의 걱정 눈물나게 고맙네유. 내가 이대로 꼬꾸라질것 같어유? 천만에 말씀. 썰물이 깨끗이 밀려갈때에야 누가 나체수영을 했는지 알수 있다는 요즘 유행어 아직도 모르고있었니?>> 준성이는 딱 뻗치고 선 그 자세로 한점의 흐트러짐 없이 아무런 감정도 싣지 않고 한구절 한구절 엮어나갔다. <<유행어 한번 좋아하시네유. 몸짱이면 나체라도 괜찮겠지만, 하지만 넌 아니잖어…>> 춘매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사장님, 저 먼저 가볼게요.>> 소희는 자기가 있을 장소가 아니라는것을 알고 준성이에게 허리를 굽석하고 돌아서려 했다. <<박준성, 재간 한번 좋다. 저 애 바로 알바 한다는 한국류학생… 포장마차 한번 날린만도 하겠다. 넘 높아 감히 쳐다볼수도 없는 한국아가씨 하나 챙겼으니 본전 넘어 한거지.>> 춘매의 비양거림이 소희의 발목을 묶었다. 소희가 발끈 하고 돌아서며 춘매의 시선에 도전을 건다. <<춘매야, 너 계속 이럴래. 너하고 할말이 따로 없으니까 어서 가아.>> 춘매는 막 잡아끌려고 하는 준성이를 홱 뿌리치며 계속 했다. <<찔리나 보네. 하아긴… 요즘 한국도 경기가 안좋으니 그럴법도 한데… 그래도 그렇지. 어쩜 포장마차도… 사장님이라고 들러붙는 여자도 다 같이 이상한 존재 아니야? 요즘은 다 웃겨. >> 춘매는 소희를 올리 훑고 내리 훑어내린다. 하지만 춘매는 소희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 알겠어요. 누구신지. 진짜 우리 한국 사람 불쌍하네요. 당신과 같은 사람한테 끌려다니면서 관광하는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 말이예요. 쉽게 말해서 민간의 외교관이라는 가이드 직업, 당신과 같은 사람이 할수 있어요? 더 이상 말하다가는 내 입이 더러워질가 걱정되네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소희는 나이키 모자를 홱 벗어서 식지에 끼고는 머리우로 뱅글뱅글 돌리면서 미식광장을 빠져나갔다. 아무런 방어대책도 없었던 마당에 갑작스런 진공앞에 금방 기고만장하던 춘매는 발딱 자리에서 일어나 두 주먹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보들보들 떨었다.
겨울, 나무들은 성장을 멈춥니다
겨울, 나무들은 성장을 멈춥니다 땅 속에 내린 뿌리에 봄이면 으싸하고 기지개 켤 힘을 모으고있는지는 모르지만 겨울이면 나무들은 성장을 멈춥니다.
그러나 인간의 둥지는 겨울에도 우쑥우쑥 키가 큽니다. 콘크리트로 우줄우줄 키가 큽니다 인간의 둥지 짓기에는 계절이 따로 없습니다 겨울에도 잠자지 않는 인간의 욕망만큼이니 그렇게 쭉쭉 위로 뻗어 올라갑니다.
위로 뻗어 위로 뻗어 마침내 하늘에 둥지끼리 손을 뻗어 인간 욕망의 거대한 그물을 하늘에도 만들겠죠 그 그늘 아래 도시는 해빛 잃고 그 그늘 아래 도시의 생명들은 서서히 시들겠죠 _조광명 <<키크는 도시>> 점심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소희가 미식광장을 빠져나갔다. 준성이는 멀거니 소희의 뒤모습을 바랐다. 에네지 덩어리처럼 씩씩했고 당돌하면서도 강렬하고 거침없던 소희가 온몸에 힘이 쏙 빠져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멀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준성이는 어떤 불안을 느끼고있었다. 예전보다 더 열심히 아르바이트로 나왔고 어쩌면 이악스럽게 아르바이트에 매달리고있는것같아 어딘가 짠하도록 알싸해왔다. 나이키 모자를 벗어서 식지에 끼고 힘없이 몇번 돌리다가 소희는 그대로 구겨서 쥐고는 하늘을 우러렀다. 준성이도 따라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고층 빌딩들이 아츠러니 하늘을 찌르고 서있었다. 서로가 키돋음의 경주라도 하는듯 어떤 빌딩들의 옥상쪽으로는 뾰족한 칼날같은 디자인으로 기세좋게 번뜩이였다. 잠간 어지럼증이 오는것 같았다. 멜라민 파동에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식당들마다 곤욕을 치르게 되였지만 미식광장은 오히려 각광을 받고있었다. 분위기 있는 고급식당을 포기하고 간단하게 포장마차에서 한끼를 에떼우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준성이의 포장마차는 멜라민 파동때 잠깐 멈칫했다가 다시 장사가 일사천리로 나가고있었다. 준성이는 지금 가게 확장에 부풀어있었다. 미식광장 기윽자로 꺽어드는 매대인 옆의 3평되는 부채형 가게가 나가게 되는데 그것까지 맡아서 포장마차의 메뉴를 추가하여 운영할 계획이다. 옆집 가게주인과 계약체결은 이미 결정된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어떤 음식을 추가할가고 궁리중에 있었다. 붕어빵과 호두과자는 이미 상품으로 락착이 되여있는데 음료수를 뭘 선택해야 될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 라면 2년쯤 하면 큰 가게를 운영할 자금을 마련할수 있을것 같았다. 준성이에게는 큰 꿈이 따로 있었다. 맥도날드와 같은 퓨전스낵음식업체의 꿈을 무르익히고있었다, 대개 한국 음식점은 거의 모두 전통음식을 위주로 고급식당의 길로 몰려가고있지만 지금은 빠른 절주속에서 값이 싸고 맛있는 퓨전스낵이 소비자들을 잡을수 있다는 자기의 판단을 현실화 시킬것이라고 준성이는 믿고있었다. 그러자면 자금도 필요했고 경험도 필요했다. 소희의 사라지는 뒤모습을 바라면서 준성이는 뻐근해나는 량 어깨를 두손으로 힘껏 올려 당겼다. 이때 휴대폰이 울려왔다. 찍혀들어 온것은 낯선 번호였다. <<워이, 니호우?>> <<…>> <<여보세요?>> 분명히 접속이 되였는데 대방에서 잠자코 말이 없다. <<말씀하세요.>> <<응… 나야…>> 춘매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귀전으로 들려왔다. 완전 체념상태의 갈린 목소리다. <<응. 그래, 올만이다. 근데 어디 아프냐? 목소리가 왜 이래?>> 준성이는 어떤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아니, 괜찮아. 요즘 목감기 좀 해서 그래. 장사는 잘되고있어?>> <<그럭저럭 해나가아.>> <<낼 나 상해를 떠나. 인사라도 할려고.>> <<어디로 갈려고?>> <<아직 확실한거 없고 자리 잡으면 그때… 다시 연락줄게. 잘 있어. 그리고 미안해.>> 춘매는 준성이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미세하게 떨고있는 춘매의 목소리 여운으로 준성이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손에 쥐였던 휴대폰으로 다시 춘매의 번호를 눌러서 자초지종을 물으려고 하였지만 춘매를 너무 잘 알고있는 준성이여서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뒤통수라도 한대 얻어맞은듯 멍하니 서있었다. <<로반, 조미료 다 떨어져 갑니다. 김이랑 단무지도요.>> 쑈장이 옆에서 넋을 놓고 서있는 준성이에게 말을 걸었다. <<응… 그래. 알았다. 금방 슈퍼에 갔다올게.>> 준성이는 쑈장과 쑈한에게 일을 맡기고는 인차 한국슈퍼로 향했다. 소희는 5분도 걸르지 않고 정확히 오후 다섯시에 포장마차로 나왔다. 점심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갈때 보다 힘이 있어보였지만 그런 내색을 애써 감추고 활달한 모습을 보이려고 버둥대는걸 금방 알아볼수 있었다. 준성이는 그러는 소희에게 또다시 캐여물을수도 없었다. 해가 떨어지면서 날씨도 제법 차가웠다. 쑈장은 비좁은 공간에 쪼크리고 앉아서 떡볶이를 뜯고 쑈한은 해물전을 굽고있다. 김 한장을 펴고 거기에 기장쌀을 섞어서 만든 밥을 주걱으로 밀고있는 소희의 어깨는 그 어느때보다 왜소해보였다. 저녁 장사가 바야흐로 시작되고있었다. <<어서오세요.>> 준성이는 가게쪽으로 막 뛰다싶이 오고있는 영민이에게 인사를 했다. 영민이는 준성이의 인사를 아예 무시해버리고 옆에서 머리를 숙이고 김밥을 말고있는 소희의 앞에 가 선다. 그리고 한동안 대합조개같이 입을 꾹 다물고 소희를 뚫어져라 본다. 영민이의 고집스럽게 안쪽으로 몰려있던 눈섭이 느슨히 풀려져간다. <<소희야, 내 말 좀 들어. 나 알고있는 형님… 문삼로(文三路)에 헤어살롱 하고있는데 거기서 알바해. 조건도 좋고 일당도 톡톡히 주겠다더라. 니 상황 말씀드렸는데 봉급도 많이 쳐주겠다고 당장 데리고 오라더라. 빨리 가자.>> 영민이는 애원조로 나왔다. <<할 말이 있으면 일 다 끝난 다음 보자. 나 지금 바쁘니까.>> 소희는 고개를 숙인채 다 말고난 김밥을 그릇에 담고는 또 김 한장을 도마에 펴면서 퉁명스러웠다. <<고집 부리지 말고 내 말 좀 들어.>> 영민이는 어린애가 되여간다. <<일단 먼저 가. 일 끝나고 전화 할거니까.>> 소희는 매장밖으로 씽 나가서 영민이의 등을 밀었다. 겨울 저녁답게 소희의 말소리도 차갑다. 영민이도 더 억지를 부리지 않고 그대로 물러갔다.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서는 소희는 준성이의 얼굴도 쳐다보지 못했다. 멀어져가는 영민이를 지켜보고있던 준성이는 다급히 매장을 뛰쳐나갔다. <<잠깐만요. 영민씨.>> 헐레벌떡 영민이의 뒤를 쫓아가며 준성이가 웨쳤다. 영민이는 소리나는 쪽으로 잠깐 얼굴을 돌리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소희씨 한테 뭔… 일이라도 있는겁니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준성이가 물었다. <<관심 많으시네요. 네. 그래요. 소희 생각한다면 알바 그만 두게 하세요. 소희 아빠도 실업을 당했어요. 돈줄이 끊겼다구요. 소희 유학공부 견지할것 같지 못해요. 남은 일년을 버텨볼려고 싸구려 세집으로 들어갔고 돈도 필요해요. 아까 말한대로 제가 알고있는 형님 헤어살롱 복무원으로 써주겠대요. 그러니 소희 설복시켜요. 소희 그만 놔줘요. 부탁입니다.>> 타협에 가까운 영민이 말을 듣고있는 준성이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영민이가 왔다간 다음부터 소희는 준성이와 눈길을 마주치는것도 두려워하는 눈치였고 나중에는 먼저 갈게요 하고 짤막하게 인사만 달랑 남기고 허둥지둥 도망치다싶이 퇴근시간 전에 가버렸다. 포장마차 장사가 한산해질 무렵, 9시에 준성이는 춘매의 행방이 궁금해져서 강민이에게 전화를 넣었는데 강민이의 김빠진 소리가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지는듯 주절주절 들려왔다. <<야, 말도 마라. 지금 죽지 못해 살고있다. 맨날 한국사람 어쩌구 저쩌구 해도 한국이 어려우니 우리 굶어죽게 생겼다. 사천 대지진에다 북경 올림픽에 여행업이 설상가상, 올림픽 끝나고 한몫 챙기려 들었는데 난데없는 경제위기에 환율폭락에 바닥을 친다. 환율 땜에 우리 여행사 투어비도 못 받아들이는것 같애.>> <<그 정도로 심각해?>> <<말도 마라. 여행사에 깔려있는 내 돈 10만원 다 되여간다. 가물에 콩나듯 팀 나가봐야 손님들 지갑도 붕어자물쇠 채워버렸는지 낮이고 밤이고 꾹 닫겨있지. 가이드 넘 오래 했나보다. 별꼴 다 보는거 보니까. 언제는 IMF가 터져서 난리고 또 언제는 사스땜에 난리고 이번의 금융사태는 쉽게 끝날것 같지 않구나.>>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무.>> <<그래… 시간이 문제지. 지금 당장 바쁘게 생겼는데… 춘매 걔 디게 힘들거다. 저번에 만나서 집을 팔아야 되는데 팔리지 않는다고 안달이더라.>> <<그래서?>> 휴대폰을 잡은 준성이의 오른손으로 힘이 들어간다. <<남자 친구하고 돈 합쳐서 120만 짜리 아빠트 하나 했는데 지금 와서 실업당하고보니 먹고사는것보다 이자 갚는 일 골치거리지 뭐야. 내사 그래도 넉달전 아빠트 한채 팔아버려서 다행이지… 늦게 부동산에 뛰여든 친구들 똥쭐 갈기에 생겼다. 세를 주려고 해도 나가지 않고 아예 팔아버리려고 해도 침체상태라 방법없고. 다같이 불경기에 어디 취직이라도 쉽게 할수도 없는거고… 방노(房奴) 가 뭔지 이제야 실감하게 된다. 그나저나 니 장사 잘되냐? 이 난리 법석판에?>> <<그런대로 괜찮아.>> 준성이는 건성이다. <<그래도 니 선택이 맞았네. 이꼴 저꼴 보지 않고 속 편하게 보내고있는 니가…>> 강민이와 통화를 끝낸 준성이 허탈에 빠졌다. 춘매의 전화번호를 찾아 다시 눌렀지만 이미 꺼져있는 상태였다. 이제 와서 춘매와 다시 련락이 된다해도 부질없는 일이였다. 춘매가 어떤 선택을 했던지 잘 풀리기를 바랄뿐이였다. 멍청히 휴대폰을 바라보면서 준성이는 또 소희를 떠올려야 했다. 소희는 준성이가 알고있는 한국류학생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부모님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여기저기 떼구름처럼 몰려다니며 무슨 동호회다 무슨 친목회다 하면서 사흘이 멀다하게 식당출입 술집출입을 하는 대부분 류학생들과 다른데가 있는 소희를 돕고싶었다. 가게를 끝내면서 준성이는 소희에게 전화를 넣었다. <<소희씨. 몸 괜찮아요?>> <<네.>> <<그럼 만납시다. 지금. 저번에 갔던 차집에서요. 긴히 드릴 말씀 있습니다.>> <<오늘은 피곤해요. 낼 가게 가서 봐요. 바로 자야겠어요. 미안해요.>> <<그럼… 그래요. 내일 꼭 나오셔야 됩니다.>> <<네. 고마워요.>>
멀지 않은 봄
포장마차: 오늘 매상2560원. ㅋㅋㅋ 녹차: 헉… 포장마차: 소희씨 그 부채형 가게 매상까지 하면 3680원. 추카추카. 녹차: 어머, 붕어빵이랑 호두과자랑 커피랑 그리 많이? 포장마차: 그럼요. 녹차: 쎄쎄! 그럼 전 한달에 적어도 만원 챙길수 있다는 말씀? 포장마차: 넵. 녹차: 첨에 고민 많이많이… 3년간 별도로 비상용으로 적금해뒀던 3만원 톡 털어 투자할려니 무서웠구요. 포장마차: 마찬가지. 녹차: 혼자라면 꿈이라도? 옆에서 도와주시니까 그 정도로요. 먼저 선불해주신 임대료 5만원 꼭 갚을게요. 포장마차: 거야 당연 갚아야죠. ㅋㅋㅋ 녹차: 쎄쎄!!! 포장마차: ㅎㅎㅎ 술이라도 한잔 사는겁니다. 녹차: 오케이! 포장마차: 달려라! 포장마차~ 녹차: 화이팅! 포장마차~
소희가 선물한 유리알로 만든 작은 돼지모양의 휴대폰 고리를 만지막거리며 메신저 내리려는데 준성이의 컴퓨터 모니터로 메일 도착 신호가 딩동 하는 소리와 함께 떠올랐다.
낼 한국으로 갑니다. 이번 방학에 한국 갔다가 다시 유학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전 비겁해요. 소희 처럼 버텨나갈 용기도 자신도 없습니다. 솔직히 소희도 이번에 들어 갔다가 다시 못 나올 것 같아 그냥 버티고 있지 않을가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소희 좋은 친구 만나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있으니 말입니다. 전 넘 옹졸한 놈이구 비열한 놈입니다. 그때 그 멜라민 파동때 포장마차 영업 정지 당했던 것도 제가 신고 했던 겁니다. 부질 없는 짓이였지만, 당신 한테도 소희 한테도 미안했습니다. 잘해보세요. 화이팅. 포장마차 달려라~~~ 영민이 올림.
2009년 <<연변문학>> 7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