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18(화) ◈ 눅 4: 31-44 한적한 곳에서 주님의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4:31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4:32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4:33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4: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4: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4: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4: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4:38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4: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4: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4: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4: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 주 해
1.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에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려고 성령이 임하셨다고 한 후에 말씀을 전했으나 배척당하셨다.
2. 배척 당하신 예수님은 상처와 원망 대신에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로 와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다.
1) 예수님이 가르치는 “말씀의 권위”에 사람들은 놀란다.
2) 하나님의 말씀이 권위 있게 선포되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3) 말씀이 권위 있게 선포되고,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면 귀신은 그 정체를 드러낸다.
눅 4:33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눅 4: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4) 41절에도 귀신들이 나가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고백한다.
눅 4:41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3. 놀라운 점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지 못하는데 귀신들이 먼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말한다.
1) 물론 이는 신앙고백이 아니며, 자신들이 제압당하는 이유, 하나님의 아들에게 영적으로 패배하여 떠나는 이유를 말하는 것이다.
2)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만, 예수님께 경배하지는 않는다.
- 그리고 말씀에 자원하는 복종이 아니라, 말씀과 부딪히고 저항하다가 패배하여 떠난다.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3) 지식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언약관계로서 예수님을 아는 것, 그분께 복종하고 경배하는 것이 중요하다.
- 귀신같이 지식으로만 믿는 것이 우리에게도 가능하다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4. 예수님은 시몬의 장모의 열병을 꾸짖음으로 병을 치유하신다.
1)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해 질 무렵에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자 예수님은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고 고쳐 주신다.
2) 예수님은 이미 35절과 39절에서 말씀으로, 꾸짖음으로 병을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심을 보여 주셨다.
3) 그러나 예수님은 온갖 병자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고 사랑을 표현하면서 치유해 주신다.
5. 오늘 본문에서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과 시몬의 장모와 온갖 병자들은 복 받은 자다.
1) 귀신 들린 것, 병에 걸리는 것 자체는 고통일 수 있고, 저주일 수도 있다.
2) 그러나 그들은 귀신이 들렸기 때문에, 병이 들렸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아왔다.
- 귀신들림, 병 걸림이 오히려 복이 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3) 33절에 회당에 있는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은 귀신이 들렸음에도 예배하러 나아온 자다.
- 귀신 들린 사람이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의 자리에 있기는 쉽지 않다.
- 그러나 본인이 하나님을 만나서 치유되기를 원했던지, 귀신 들린 것을 알고 누군가가 그를 하나님께로 데려갔는지는 모른다.
- 가버나움 회당의 많은 사람 중에 그가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은 확실하다.
4) 건강하고 보란듯해서 예수님을 배척한 나사렛 사람들이나 회당에서 예수님께 무관심한 사람보다는 귀신 들리고, 온갖 질병에 걸려서 예수님께 나오고, 예수님의 치유를 경험하는 사람이 복된 자이다.
- 우리의 고통, 질병, 귀신의 괴롭힘을 통하여 예수님께 나아가고, 그분이 찾아와 주신다면 이 화는 곧 복이 될 것이며, 이 고통은 오히려 하나님을 경험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6. 예수님은 저녁 무렵에 온갖 병자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고 기도하시며 그들을 치유하셨으니 분명히, 밤늦게 치유 사역을 마쳤을 것이다.
1)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고, 치유와 축사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보여주신 예수님은 한적한 곳을 찾아가신다.
2) 스스로 자만해 지거나, 사람들의 인정 속에 높아지는 대신에 한적한 곳을 찾으신다.
눅 4: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3) 피곤한 날, 큰 사역을 행한 후에 주님은 한적한 곳에서 아버지와 교제하신다.
- 어제의 일에 대하여 아버지와 대화하였을 것이고, 아버지의 영광을 바라보며 그 안에 거하며 사랑을 고백하며, 아버지의 뜻과 마음을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7. 우리에게도 “이 한적한 곳”이 꼭 필요하다.
1) 인류는 언제나 바빴고, 조급했다. 현대 사회는 더욱 분주하고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쉬지 못하게 한다. 일과 공부, 여가와 취미, 동영상과 뉴스, 오락거리를 통해서 한시도 “한적한 곳”에 있지 못하게 한다.
2) 그러나 예수님이 찾으신 “한적한 곳” 요한이 있었던 “빈 들”을 우리는 찾아 나서야 한다.
3) 사단은 자신의 하수인 귀신이 쫓겨나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이 가져다 준 질병이 치유되는 것도 싫어 한다. 그리고 권위 있는 말씀이 선포되는 것은 더욱 싫어한다.
4) 그런데 사단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한적한 곳”이다.
8. 예수님은 말씀 선포와 치유 사역을 하기 전에 성령님께 이끌려 광야에서 40일간 아버지께 나아가며, 아버지 안에서 교제하셨다.
1) 그리고 사단의 시험을 이기고 말씀 사역과 치유 사역을 행한 후에 다시 “한적한 곳”에 나아가 아버지와 교제한다.
2) 예수님은 “선 하나님과의 교제, 후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행하신다.
3) 우리의 영혼과 삶도 “선 하나님과의 교제, 후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을 행한다면 사단의 미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
4) 하나님 나라 사역은 말씀 나눔, 전도, 교회 봉사와 함께 하나님이 부르신 직장과 학교와 집안 일을 소명을 따라 행하는 것도 포함된다.
- 가사 일도, 일터도, 공부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교제한 후에 행할 때, 성령님은 우리의 지혜와 도움이 되어 주신다.
9. 예수님의 사명 선언문이 43절에 선포된다.
눅 4: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1)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람의 삶을 사셨고, 시험도 받았고, 치유도 행하시고, 목수의 일도 하시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셨다. 그러나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분명했다.
2)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다.
3) 우리가 무엇을 하던, 어디에 있던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4) 하나님과의 교제, 교회를 섬기는 것, 일터와 가정에서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행하는 목적, 광야를 지나며 인내하고 견디는 목적이 “하나님 나라”이길 원한다.
◈ 나의 묵상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시험을 받으시고, 한적한 곳에서 교제한 것을 알기에 나 또한 하나님과의 교제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원하였다. 큐티가 중요하다고 말했고 예배가 먼저라고 하였다. 그러나 돌이켜 보니, 이상하게도 내가 우선순위로 여겼던 것보다, 일과 평가와 결과가 더 중요하게 되어져 있다. 한 영화에서 기업 회장이 기막힌 말을 한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직원에게 “최선은 필요 없고 결과만 가져와”라고 말한다. 세상의 가치를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교회 안에 이런 가치가 들어와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결과”는 존중되어야만 한다.
다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최선도 중요하고 결과도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결과보다 마음이 중요하다. 나의 착각은 하나님을 사람처럼 여긴 것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면 하나님도 좋아할 것처럼 여겼다. 그러다 보니 나의 마음과 생각은 온통 사역에 있었다.
복음을 전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제자훈련을 시키며, 성도의 교제에 마음을 빼앗겼다. 한적한 곳에서의 교제도 능력 있는 사역을 위한 수단이 되고 말았다. 목회자 세미나에선 거의 이렇게 말하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아니다.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은 사역과 삶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굳이 수단과 목적을 정해야 한다면 사역이 수단이고 하나님과의 사귐이 목적이다.
오래된 습관, 한국교회의 문화로 인하여 아직도 나에게는 사역이 우선이다. 사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을 지고 해 낸다. 밤 늦게까지도 하고, 새벽에도 일어난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제하는 한적한 곳은 얼마나 푸대접을 받는지 모른다. 그래도 매일 한적한 곳을 찾아가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사역이 끝날지라도, 한적한 곳에 나는 있을 것이다. 새 언약 백성에게 유일한 조건 규정으로 하나님이 명령한 것은 복음을 잘 전하는 것,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치유하는 것, 예배당을 짓거나 하는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말씀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기쁨과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새 언약 백성에게 하나님과 교제하고 예배하라고 명령하셨다.
분주한 나의 마음이 “한적한 곳”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기를 원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그 곳, 보란듯한 일이 없는 그 한적한 곳이 나의 집, 나의 고향, 나의 사랑이 되기를 원한다.
오늘도 한적한 곳에서 주님을 바라본다. 아직도 최우선 순위가 되지 못하는 한적한 곳이어서 주님께 죄송하다. 그래도 긍휼이 풍성하신 주님은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의 심판은 빈들, 한적한 곳의 가치를 더욱더 알게 한다. 주님과만 만나는 한적한 곳, 은밀한 주의 날개 그늘 아래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간구하며 말씀을 묵상한다. 주님 외에 아무도 없는 곳, 주님 앞에 벌거벗은 자로 서는 곳, 그 벌거벗은 나와 함께 벌거벗은 주님이 계신 그 곳, 나의 수치를 안아 주시는 그 곳, 그 십자가, 그 무덤에서 주님께 경배를 드린다. 그 십자가 사랑은 압박이 아니라 쉼과 사랑과 안식을 주신다. 의무나 요구가 아니라 용납과 긍휼과 은혜를 주신다. 죄가 더한 곳일지라도 더욱 은혜를 넘치게 하시는 그 사랑이 나에게 생명이 된다.
◈ 묵상 기도
주님, 교만하고 부패하여 참으로 회개가 절실한 자이나, 회개할 힘이 하나도 없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고난의 주님, 겸손의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이 이 완악한 자에게 오셔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시고, 내 영혼의 질병을 꾸짖어 고쳐 주시기를 원합니다. 나의 악함, 귀신 들림, 질병, 상처를 통하여 주님을 찾고, 구하게 하신 것이 은혜입니다. 그래서 내가 초라한 것이, 부족한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한적한 곳의 소중함, 귀함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한적한 곳에서 주님을 바라보지만 만물 위, 영원에 잇대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요 예정이요 행동하심입니다. 성령님, 저를 헛되고 망령된 곳에서 건져 내사 영원으로 이끄소서. 처음 회개하게 하신 것도 주님의 은혜요, 부르심도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지금도 주의 은혜로 나를 이끄소서.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아버지 품 안, 한적한 곳에서 주의 인자와 성실하심을 보게 하옵소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 주님의 양들에게 주님의 꼴과 생수를 먹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