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을 아끼라 엡5:15-21
연말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회식이 바로 송년회 또는 망년회이란 회식이지요. 이 망년회란 세월을 잊고, 나이를 잊는다’는 의미로 아예 금년에 있었던 좋지 않은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자는 겁니다. 이말은 2300년전 춘주전국시대 장자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던 말인데 1400여 년전 일본에 건너 가 망년(忘年)의 풍습이 생겼으며 이 망년 풍습은 일제시대를 거쳐 이 땅에 상륙하여 이제는 대한민국 대표적인 연말행사로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한해를 보내는 것이 아쉽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힘들었던 것들을 모두 털어버린다는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해를 보내는 문화는 우리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해마다 12월 28일이면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연례송년이벤트 ‘제대로 털어버리는 날(Good Riddance Day)이라하여 ’" 굿 리던스 데이"가 열립니다. 마침 대기하고 있는 종이분쇄기트럭에다 버리고 싶은 것을 종이에 적어 집어넣으면 기계가 그 종이들을 썰어서 박살내어주는 행사입니다. 무슨종이를 집어넣는가 하면 한해의 나쁜 기억들이나 잊고 싶은 기억들인데 예를들면 군인 남편의 분쟁지역의 출정명령서, 바람난 남편의 사진, 헤어진 남자친구와 함께 본 연극 팸플릿, 휴지조각이 된 주식. 적자명세서 등을 분쇄트럭에 버리면 그 분쇄기가 썰어버리는 이벤트라는 것이지요. 만약 이런 행사를 광화문 광장에 가져오면? 더 심해진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 정치권의 책임공방, 성폭행 살인마 000… 인터넷겜임에 빠져 자식을 학대한 어느 아버지와 새엄마가 저지른 어린아이 학대 미투운동등 올해 우리나라의 나쁜 기억들이 참 많기도 할 것 같으므로 아무래도 타임스퀘어 못지않게 성황을 이룰 듯 합니다.
올겨울은 얼마전까지 춥지 않고 봄같이 따뜻하다가 연말을 맞이하여 이제 추워지기 시작하더니 세밑한파가 지속되면서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강변에 얼음이 얼고 있다고 하지만 기후변화로 온 세계 도처에서 깜짝놀랄만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럽에선 한겨울인데도 독일에선 벚꽃이 활짝피었고 프랑스에서 봄에 피는 수선화가 피었고 스웨덴에서도 스키를 탈 눈이 안와 스기장들이 개점 휴업이고 모스크바에서도 반팔입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유럽만 그런것이 아니라 미국도 뉴욕의 요즘기온이 반팔입은 사람들이 눈에띄게 보이는데 한쪽에서는 춥다고 하고 한쪽은 겨울이 아직 안왔다고 하지만 어느날 또 다른 어떤곳에선 재앙이 덮치는데 인도네시아에선 해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사망자 수가 무려 430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숱한 쓰나미로 막대한 인명피해를 입고 있는데 2004년 12월 26일 발생한 쓰나미로 13만명이 숨지는 일이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2018년 9월 28일에도 중부 술라웨시섬 팔루지역을 덮친 쓰나미로 225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세상마지막 나타날 징조인 지진 기근 기후온난화 등으로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일어나는 종말에 대한 재난현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 한해의 마지막 시간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시간을 보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한 살 더 먹는다고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니고 서글프기도 합니다. 왜 나이먹는 것이 서글픈가를 어느 음악회를 보고 온 사람의 후기를 보면 알 것 같습니다.
나는 뛰어난 가창력과 아름답던 몸매를 지녔던 흑인가수 휘트니휴스턴이 불러서 히트한 ' I will always love you' 를 듣고 쓴 후기인데 무대가 짜~안 열리면서 그 사람이 걸어 나왔는데 모습은 그때 그 사람인데 이젠 더 이상 그가 아니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니 한동안 마약 중독에 이어 이혼의 긴 슬럼프를 겪고 돌아온 그녀를 팬들은 따뜻이 맞이하였는데 이미 사십대 후반의 나이여서 몸매도 옛모습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옷으로 어떻게 가릴수는 있다지만 노래는 더 이상 전성기 때의 노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때 거침없이 올라가던 그 목소리 대신 이젠 탁한 바이브레이션으로 되돌아오고 공연도중 몇차례 숨이 가빠오면 잠시 노래 중단하고 고갤 푹 숙이고 그때 그시절을 그리워 하는 듯 안타까움에 잠시 눈물도 흘렸다는 느낌입니다. 한때 온 세계를 쥐락펴락 했던 그녀의 자존심이 이젠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때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영광과 인기가 영원할 줄 알았는데 이제는 되돌아 올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이런 일들이 그 휘트니휴스턴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거울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마와 귓가에 주름살이 늘었고 흰머리카락이 하나 둘씩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세월의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지 않았는가요? 한마디로 세월속에는 장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금년 마지막 주일의 메시지는 에베소서 5장 16절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의 후반부를 시작하는 4:1에서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전반부인 1-3장에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의 교회의 역할과 그 교회의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책무를 말했다면, 후반부인 4-6장에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이 후반부에서 주어지는 여러 권면들을 함축요약한 말씀이 오늘 본문제목인 세월을 아끼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성도들에게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행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합니다. KJV에선 시간을 되찾으라 날들이 악하니라
“세월”은 헬라어로 카이로스(kailos) 즉 정해진 때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정해 놓은 시간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시간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리는 특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끼라”는 말은 “엑사고라조메노이(exagolasomenoi)라는 말로 “몸값을 치르고 사다”라는 ‘속량’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내게 주어진 기회를 위해 내 몸 값을 치르고 시간을 되찾았으니 최대한 귀하게 사용하라"는 의미입니다. 주어진 시간을 가치 있게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은 최대한 귀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간 속에 우리의 생명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을 할 때 마다 아일런드 작가 버나드쇼가 자기 묘비에 남긴 글이 기억납니다.
‘우물 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어’ .
그도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기 싫어 꾸물거리다 뒤늦게 후회한 것 같습니다.
삶이 유한한 인간에게는 시간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물쭈물하다 혹시 세월을 허비하는 일은 없으십니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곧 인생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은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하여 잘 사용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왜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하여 잘 사용해야 할까? 베드로전서 5장 8절은 깨어 있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즉 마귀는 항상 우리에게 있는 시간을 빼앗으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마귀는 인생들에게서 시간을 빼앗기 위해 술에 취하게 하고 쾌락에 빠지게 하고 재물과 정욕에 빠지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한번 그런곳에 빠지면 다시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을 다 잃어버리기까지는 마귀가 그렇게 빼앗아 버렸다는 것을 모르고서 생을 마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탄마귀는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을 집어 넣어줍니다. 세월이 좀먹느냐 새털같이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속삭입니다. 여기에 넘어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시간은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물지 않습니다. 순식간에 휙 하고 지나가 버리는 것이 세월입니다.
1. 왜 세월을 아껴야 합니까?
첫째 세월이 빨리 가기 때문입니다.
실러에 의하면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지 않고 서 있다”말처럼 시편 90편 10절에 보면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인생이 70 혹은 80 까지 산다고 하면 그 중간지점인 서른 다섯 살 혹은 마흔 살 이후 부터는 서서히 내려오다 60이상이 되면 완전히 내리막길입니다.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시간에 가속도가 붙어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엔 방학중 아침 늦게 일어나 여름방학책 몇 장하고 나서 딱치치기 하고 또랑에서 물고기 잡다가 시냇물에서 목욕 하고 다시 돌아와 논두렁에 있는 메뚜기도 잡고 텃밭에서 복숭아를 따먹고 날씨가 너무 더워 다시 냇가에 미역을 감아도 시간은 그대로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는데 요즘 경험하고 있는 시간은 언제 지나갔는지 한 주가 지나가는 것이 마치 기차를 타면 나무들이 후딱 후딱 지나가듯이 지나갑니다. 별로 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인생의 후반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참 찬송가528장 찬송이 어찌 그리 은혜스러운가요.
“세월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 쾌락이 끝이 나고 사망의 그늘이 너와 내 앞에 둘리며 가리우네 오라 오라 방황치 말고 오라 죄있는 자들아 이리로 오라 주예수 앞에 오라” 세월은 참으로 너무 빨리 흘러가기 때문에 이런 찬송만 불러도 은혜가 됩니다.
둘째 세월은 다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흘러간 물은 발전기를 통하여 다시 되돌릴 수 있습니다. 비디오테이프는 다시 감아서 되돌려 볼 수 있습니다. 추억의 앨범도 다시 들쳐 볼 수 있습니다. 잊어버린 재산은 열심히 노력하면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가 버린 세월은 그 누구도 다시 되 돌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노래하지 않습니까?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오늘 이 시간, 2018 년 12 월 30 일은 다시는 돌아오지 아니합니다. 물론 전능하신 하나님은 중천의 태양도 멈추게 하실 수 있지만 우리 인간에게 허락된 시간을 다시 거꾸러 돌려놓을 수 없습니다. 만일 인생이 이생, 삼생이라고 한다면 한번은 warming up을 하면서 연습으로 살아보면서 시행착오도 해보고 두 번째 삶은 정말 잘 살아보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아쉽게도 인생은 딱 한번뿐인 일생입니다. 불교에서는 윤회전생이라 하여 돌고 도는 물레방아와 같은 생명이라지만 인생의 삶은 리필할 수 없는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은 사람이 태어나서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 하였듯이 땅에서의 삶은 딱 한번뿐인 것을 명심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셋째 세월은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살수만 있다면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 이건희씨가 아직도 병상에서 누워있는지 거의 5년 정도인데 세월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다면 시간의 값이 얼마든지 가지고 있는 돈을 다 털어서라도 그 시간을 샀을 것입니다. 시간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일순간이 천금보다 더 귀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최고 재벌 이라도 또는 세계에서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도 갖고 있는 돈을 몽땅 투자해도 하나님께서 그 인생에 정한 세월이외에는 단 1 초도 살 수 없고 더 늘릴 수도 없고 빌릴 수도 없으며 더 꿀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네 번째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도울이 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때가 악하다고 했을까? 에베소는 로마 제국에 속한 터키 서부에 있던 항구도시로서 동양과 서양을 잇는 중요 거점이었습니다. 항구도시는 배를 타고 온갖 퇴폐문화가 실려 오는 곳입니다. 온갖 이방신들의 문화가 잡다하게 퍼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복음이 이곳으로 퍼지자 은으로 만든 아데미(아르테미스) 신상의 매출이 줄었으므로 소요가 일어났던 곳입니다. 이곳은 목욕탕 문화가 발달하여 온갖 성적인 타락과 우상 숭배가 극심하였던 곳입니다. 바울 사도가 제 2차 전도여행때 이곳을 방문했는데 바로 이때에 에베소의 극심한 도덕적 타락상을 보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중 한 부류들은 어떻게 하면 쾌락을 좀 더 누리고 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삶의 시간들을 온통 쾌락지향적인 삶으로 채우고 있었고 다른 한 부류는 이방신전에서 은으로 만든 우상들에게 절을 하며 한쪽에서는 그것을 통해 돈을 버는 부패한 물질만능주의가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사회 전체의 문화가 마치 오염된 강물과 같이 쾌락적으로 세속주의로 흐르고 있어 이런 우상문화 속에서 쾌락을 맘껏 누리면서 사는 것이 당시 삶의 철학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5 절에서 미련하게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살라고 합니다. 지혜 있는 자는 시간을 잘 사용하는 자요, 미련한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그냥 되는데로 쾌락과 방종에 맡기는 사람입니다. 바울에게는 바로 이런 문화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따르는 이들이 너무도 소중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상숭배적이고 성적으로 퇴폐한 헬라 문화의 물결에서 이제 어린아이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고 하나님 안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이 서신을 보낸 것입니다. 죄악의 악한 문화가 에베소 교인들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선용하면서 깨끗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도록 바울은 에베소교회에 이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2. 시간의 중요성
(1) 세월의 속도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위에서 말했듯이 세월이 빨리가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이 세월의 빠르기를 세대별로 이렇게 말을 하는데 정말 공감이 갑니다. 20대에는 세월이 20km/h속도로 달리고 있고 70-80대는 70-80km/h속도로 세월이 달린다고 하는데 정말 일리가 있습니다.
세월은 나이만큼 빨리 달린다더니 엊그제까지만 해도 50km로 달렸는데, 이제는 70km로 달리고 앞으로 몇년후면 지나면 80km/h로 더 빠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빠른 세월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속도를 알려주겠습니다.
제가 지구과학을 전공했으므로 세월의 빠르기를 계산해보니 금방 수식으로 .
(지구둘레=37,680km 나누기 24시간 나누기 60분 나누기 60초 = 430m/s
1570km/h)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느냐 하면? 지구가 자전 한 바퀴돌면,
우리 인생의 하루가 가는 것이기에 그러니까 1초에 430m 지구자전속도가
바로 우리 인생의 세월의 속도입니다. 이 속도를 더욱 실감있게 말해본다면
자동차는 1초에 30m 달리고 / ktx는 1초에 80m 달리며 / 지구는 1초에
430m 달려간다고 보면 이해가 되나요?
우리의 세월의 속도는 쌩쌩달리는 자동차의 14배, Ktx보다 5배가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의 시간은 이처럼 엄청나게 빠르게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처럼 빠른 세월을 어떻게 쓰느냐가 참으로 귀중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빨리가는 세월은 재활용이 안되고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간은 금과 같이 정말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입니다.
(2) 세월을 돈으로 환산하자
이번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시간의 중요성 이해가 될 것입니다.
매일 아침 당신에게 86,400원을 입금해주는 은행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갑자기 86400원이 어디서 나왔나고요? 하루는 24시간이고 초로 환산하면 86400초인데 초를 원으로 바꾸면 86400원이 나오는 것 알겠지요.
그러나 매일아침 입금된 그 계좌는 매일 저녁 당신이 그 계좌에서 쓰지 못하고 남은 잔액은 그냥 저절로 소멸된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저축이 안되는 계좌입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연히 그날 모두 사용하고 싶겠지요. 시간은 우리에게 마치 이런 은행과도 같습니다. 매일 아침 86,400원을 우리는 공짜로 받고, 매일밤 우리가 좋은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진 시간은 그냥 없어져 버릴 뿐이죠. 시간의 저축은 없습니다. 더 많이 사용할 수도 없어요. 그래도 다음날 어김없이 매일 아침 은행은 당신에게 새로운 돈을 입금시켜주죠. 그날의 남은 돈은 다음날이 오기 전 남김없이 소멸됩니다. 그날의 돈을 사용하지 못했다면, 손해는 오로지 당신이 보게 되는 거죠. 쓰고 남은 잔고를 내일로 연장 시킬 수도 없습니다. 단지 오늘 현재의 잔고를 갖고 살아갈 뿐입니다.
건강과 행복과 성공을 위해 최대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뽑아 쓰십시오! 지나가는 세월 속에서 하루라는 시간을 최선을 다해 보내야 합니다. 정말 시간의 소중함을 오늘 한해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이시간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똑같은 시간도 사람에 따라 그 소중함이 정말 다르게 느낄 때가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일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입학시험에 떨어진 재수생에게 물어보세요.
한달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미숙아를 낳은 산모에게 물어보세요.
한주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주간지 편집장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루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일품을 팔아 다섯자녀를 먹여야 하는 일용 노동자에게 물어보라오.
한 시간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가 궁금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연인에게 물어보던지 또는 아쉬운 이별을 해야 할 연인들에게 물어보세요.
일분이 얼마나 소중한가는 알려면 ktx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보고
일초가 얼마나 소중한가의 가치는 아찔한 교통사고를 모면한 사람에게 물어보면 될 것이고
1초보다 훨씬 작은 천분의 일초의 소중함은 누구에게 물어보냐고요?
올림픽에서 100m 결승에서 아깝게 은메을 탄 선수에게 물어보던지 100m 스피드스케이트에서 역시 은메달 딴 선수에게 물어보세요.
여하튼 어느 시간하나 버릴 만한 시간이란 없다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지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라는 이야기인줄 압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바울사도는 엡베소서 5장 1절에 성도들이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함을 교훈하고, 이어서 성도 각자의 사생활과 관련한 교훈으로, 죄많은 세상에서 세월을 아끼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이며.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이며,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이야말로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이므로 그래서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이라고 부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시간을 허비하면 정말 안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시간에 정말 우리들이 제일 우선적으로 하여야 하는 것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믿고 영생을 얻는 것보다 정말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섬기는 자만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시말하지만 시간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는 최고의 선물인데 이 선물로 무엇을 사야합니까? 영생을 미리 구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십자기에 죽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받는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고후6:2)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라고는 것을 깨닫는 것이야 말로 정말 가장 소중한 시간에 반드시 취해야 할 진리입니다.
3.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여야 할까요?
인생의 성공여부는 시간을 관리하에 달려 있습니다. 지혜있는 자는 어떻게 행할 것을 준비한다는 말입니다. 시간은 바로 세월입니다. 시간을 아껴서 잃어버린 시간이나 죄짓는 일에 소모하던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인생은 꽃과 같이 피고 지듯 인생도 피고 지는 것입니다. 인생은 달이차면 기울듯이 인생도 차면 기우는 것입니다. 우리도 나이든 부모처럼 되지 않을 듯 하지만 우리도 부모님 처럼 늙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누구도 이 세월을 피하여 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은 돈도 아니고 건강도 아니고 바로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인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름에 시원한 물이 나오는 샤워기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것입니다. 얼마나 시원하고 좋습니까? 그러나 안 쓸데는 물을 아끼느라고 수도꼭지를 잠그어 놓습니다. 캄캄한 밤에 전등불도 너무나 귀한 것이지요. 그러나 안 쓸데는 전기를 아끼느라고 스윗치를 끕니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달리지 않을 때는 기름을 아끼느라고 시동을 끕니다. 그러나 초속-430m로 달리는 세월은 열심히 살 때는 문제 없지만 일하지 않을 때는 세월을 아끼기 위해, 수도꼭지처럼, 전기 스윗치 처럼 잠그고, 자동차처럼 시동을 끄고 세워놓을 수 있나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세월을 붙잡아 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월을 소중하게! 가치있게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시간을 살 수도 없으며 시간을 만들어 쓸 수 없습니다. 또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늘릴 수도 없습니다. 오직 시간을 아끼고 잘 관리하는 것 이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치있는 일에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합니다. 악한 세상에 살다보니 악한 자들과 함께 어울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지혜롭게 처신하라는 것입니다. 가치있는 것은 마치 여름에는 상록수가 다른 나무들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없으나 겨울이 오면 상록수는 늘푸르게 남아 있지마는 다른 나무들은 잎이 떨어져 그 가지가 벌거숭이가 되듯이 예수님믿고 영원한 생명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정말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라나 지금은 세상사람들과 진정한 그리스도인과 구별이 안되지만 그날에는 분명히 세월을 아낀 자들에게 기쁜 시간이 올 것입니다.
위의 모두는 시간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여야 되는가?
시간을 잘 관리하는 방법의 예화
옛날에 두 나무꾼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하루 종일 쉬지도 않고 열심히 일을 하며 나무를 베었습니다. /반면에 다른 한 사람은 1시간을 일하고 10분간 쉬고, 또 1시간 일하고 10분간 쉬고, 이렇게 계속해서 일하면서 쉬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다 마치고 보니, 하루 종일 일한 사람보다도 1시간 일하고 10분 쉬었던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베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하루 종일 일을 한 나무꾼이 물었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나보다 휠씬 더 많이 쉬면서, 어떻게 나보다 더 많은 나무를 베었는가?" 그러자 1시간 일하고 10분 쉬면 일한 그 나무꾼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자네가 계속해서 일만할 때, 10분씩 쉬면서 무뎌진 도끼날을 갈았다네" 그렇습니다.
무조건 일만 열심히 한다고 시간을 지혜롭게 쓰는 것이 아닙니다. 일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일주일 내내 일한다고 하면서 주일도 잊어가면서 일한다고 부자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일은 주님앞에 나아와 예배드리고 성도들과 교제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때가 악함으로 세월을 아끼라고 말씀하는데 주어진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한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시간을 잘 조정하여 쓴다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1) 주일을 지키는 주일성수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계명이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 한 주간을 사용하기에 주일성수는 시간을 허비하는것이 아니라 가장 귀한곳에 투자하는 지혜요 복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기본적인 삶은 바로 주일 성수를 하는 것이다. 나무꾼은 1시간 일하고 10분 쉬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6일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이다. 이런 삶을 산 인생들이 마지막 결승점에서 골인하는 것이다.
(2) 하루의 첫시간부터 잘 조정하자
하루를 시작할 때부터 시간을 잘 조정하려면 새벽에 일어나면서부터 일부터 하지 말고 말씀 한 절이라도 읽고 그 말씀 붙잡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또 일하다 쉴 때에 허튼 염려 걱정하지 말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의 첫 단추부터 잘 꿰면 마무리가 잘되듯이 하루의 첫시간부터 잘 시작하면 그가 하는 일들이 때가 되면 30배 60배 100배의 능률이 날 것입니다! 아멘!
(3) 오늘이 나에겐 최고의 날이다.
지혜로운 나뭇꾼처럼 여러분들도 10분의 시간을 건강을 위해 투자하여야 합니다. 우리 각자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참으로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만약에 병들어, 병원에 입원해 보세요. 나에게 주어진 인생의 그 값진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닙니까? 일만 죽을둥, 살둥 하는 것보다 시간을 잘 조정해서 자신의 시간을 건강을 위해 귀하게 쓰시기를 바랍니다.
주인으로부터 달란트를 받은 자가 그 받은 것을 잘 장사하여 많은 이를 남기는 이도 있고 묻어 놓은 이들도 있듯이 시간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허락한 시간, 한번 뿐인 인생, 돈으로 살 수 없는 인생을 잘 관리하여 나의 인생의 행복을 위하여 소중하게 잘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현재 시간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왜 내일과 모레의 일에 대하여 태산과 같은 근심걱정을 하고 있습니까? 왜 서로 말다툼하며 화를 내고 있습니까? 왜 무의미한 분주함 속에서 파묻혀 지내고 있습니까? 행복하기 위한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결코 요람에서 무덤으로 가는 길은 free way가 아닙니다. 계속 그대가 가야만 할 때 그 빠른 속도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모든 재산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행복하기 위한 날이란 오늘입니다. 그대가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오늘 이외의 다른 날이란 없습니다. 내일의 걱정과 근심으로 그대의 영혼을 어둡게 색칠하지 마십시오. 어제의 온갖 고난으로 그대 마음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어제 있었던 좋은 일에 대하여 그대가 기분좋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내일 다가올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일에 대해서도 꿈꾸어 보십시오. 그러나 어제나 내일 속에서 그대 자신을 잃지 마십시오. 어제는 사라지고 내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이야말로 그대가 가진 유일한 날입니다. 오늘을 그대의 제일 좋은 날로 만드십시오.
(4) 세월을 아끼는 사람은 주의 뜻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그의 사랑하는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 간곡한 어조로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권합니다.
악한 때를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더더욱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적당히 살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이 벌써 12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세월이 참으로 빨리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가는 속도가 30대 때에는 30km의 속도로 가고, 40대 때에는 40km로, 50대 때에는 50km의 속도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정말로 세월을 아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세월을 아낄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말하는 세월은 곧 시간을 말하므로 우리는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아끼다’라는 동사의 원래의 뜻은 ‘구속하다/ 속량하여 다시 사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주고 노예를 사서 해방시키듯이 돈을 주고 시간을 사서 해방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끼라는 것은 단도직입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시간을 구속해내라는 뜻입니다. 악한 세상 속에서 악한 방법으로 사는 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드러난 뜻대로 살지 않는 한, 세상에서 아무리 성공했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결국 시간을 구속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시간을 무엇으로부터 구속해내야 합니까? 악한 세상으로부터 구속해내야 합니다. 그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성도는 악한 일에 사용하던 시간을 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돈을 들여서라서도 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선한 일에 시간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악한 세상으로부터 시간을 구속해내어서 선한 일에 사용할 수 있습니까?
첫째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하고, 둘째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자는 악한 세상으로부터 시간을 구속해내는 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좀 더 범위를 좁혀서 묻는다면, 여러분의 세월에 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주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하는 자가 세월을 아끼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지 않는 시간은 허송세월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나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감으로 시간을 값지게 쓴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장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고 지혜롭게 살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을 잘 알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고장 났다면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 A/S신청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잘못되고, 고집스럽고, 죄악된 것을 고쳐 주시어서 우리들이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 주의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누구도 자신에게 주어진 세월을 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 인생의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언제라도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 각자가 세월을 사용한 것에 대한 계산하시는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기억하실만한 무엇인가를 남기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것에 투자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5) 주님의 뜻은 성령충만 받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주의 뜻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본문 18절에서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술 취하지 말라”고 합니다. 술의 맛은 마시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취하는데 있습니다. 술 취하면 어떻게 됩니까? 술 취하게 되면 자신의 의지와 감정이 모두 술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술의 힘이고 위력입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자신은 술에 의해 움직여지고 조종 받게 됩니다. 그래서 술취하면 실수 하게 됩니다. 술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술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이웃들에게도 불행을 줍니다. 술이 주는 유익이 조금 있다면 술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피해는 엄청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은 좁은 의미에서는 알콜을 말하지만 좀더 넓은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계모임 때문에 또 어떤 사람은 친구가 많아서 이런저런 것들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가리켜 술 취하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술 취하지 않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술 취하는 것과 성령 충만은 형태가 비슷합니다. 술 취하게 되면 술이 우리의 인격을 지배하듯이 성령 충만도 우리의 인격이 성령에 의해서 지배를 받습니다. 나의 생각과 의지의 모든 것이 성령에 의해 움직입니다. 나는 완전히 성령의 지배를 받는 성령의 사람으로 변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때 내 마음속에 참된 기쁨이 넘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며 기도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술 취하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이고 술은 정신을 어지럽게 하고 육체를 망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술 먹는다고 지옥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술이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술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잠23:31에는 술은 쳐다보지 말라고 했습니다. 술취함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습니다. 18성령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의지로 술을 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사람을 강하고 지혜롭게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리라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분을 모시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 영혼이 가장 안정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야만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세상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무엇을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것이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술 취하지 말라."에 이어서 "이는 방탕한 것이니" 했는데 바로 그런 뜻에서 한 말일 것입니다. 여기서 "방탕함"이란 "세월을 아끼지 않는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을 이해하려면 세상을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땅을 바라보지 말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거나 분별하고도 그 뜻대로 살지 못하면 나중에 주님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혜로운 종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눅12:42) 주께서 이르시되 그런즉 자기 주인으로부터 그의 집안 사람들을 넘겨받아 다스리며 제 때에 그들에게 그들 몫의 양식을 나누어 줄 진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누구냐?
(12:45) 지혜있는 자는 주인이 오셨을 때 자기의 할 일을 하면서 깨어 있는 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부름을 받았고 주님의 은혜로 직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향한 기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의 뜻을 분별하려고 하면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19-21절을 봅니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먼저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라." 합니다.
시편에는 역경 속에서 극심한 환난을 당하면서도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체험한 신앙인들의 고백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악한 때에 이런 시편과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은 성도들이 서로 나누며 위로하고 격려하기에 좋은 것입니다. "서로 화답"하는 것은 마음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주님을 찬송하는 것도 신앙의 용기를 북돋기에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라." 합니다. 20절에서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그의 인도하시는 방법을 이해한다면 범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눈에 보기에 불의하고 악한 일들이라도 하나님께서는 더 크고 선한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다 당신의 뜻대로 사용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존귀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놓으시기까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이 악한 때에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사는 사람의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 성도가 이 악한 세상에서 살면서 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외적인 성공이나 소유 때문이 아니라 오직 성령이 충만해서 감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외적인 성공이나 소유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선한 방법으로 성공하고 어떤 것을 소유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감사해야 할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성령충만 때문이어야 합니다. 무엇을 누리기 때문에 감사할 수는 있지만 그런 것들은 정말로 영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내게 주어진 시간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한한 시간 속에서 누리는 것들도 다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영원한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영원하신 성령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존재하시는 한 우리의 존재도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거주하시는 성령님 때문에 내가 영생을 소유한 존재가 되었음을 인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감사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정말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있어도 감사하고, 없어도 감사합니다. 건강해도 감사하고, 건강하지 못해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세월을 아끼는 삶입니다. 끝으로 21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때가 악할수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존중하고 다투지 말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사람들이라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되기를 간절히 원하신 그분의 뜻을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한 말의 뜻입니다. 악한 세상과 마귀는 주의 몸 된 교회를 찢어놓고 하나님의 백성을 갈라놓으려고 온갖 궤계를 동원할 것입니다. 이에 놀아나지 않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바른 믿음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진정 한 몸 이루기를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에 귀하고 귀한 것이 바로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 “세월을 아끼라는 이 짧은 구절에서 우리는 우리 인생을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질 수 있는 한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고백입니다. 시편 90:12절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 지 깨닫게 해 주소서.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지혜로워질 것입니다.”(시편 90:12)
하루 살면 남은 시간이 그만큼 짧아지는 것입니다. 한해를 더 살면 한해가 더 짧아지게 됩니다. 나의 남은 삶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남은 인생이 매우 짧게 남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때는 결코 선하지 않습니다. 원래 우리나라는 고요한 아침의 나라였는데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고 1960년대 급격한 산업화되어가면서 서방세계로부터 폭력과 쾌락 황금만능 자본주의 등의 물결이 넘치도록 밀려와서 사람들의 심성을 병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은 그 내면을 뜯어보자면 당시 에베소보다도 훨씬 더 악한 문화로 덧칠해져 있습니다. 영화와 TV연속극은 성적인 타락과 불륜과 폭력으로 색칠해져 있으며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은 영화와 TV드라마를 능가하여 폭력과 섹스와 부도덕한 사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돈과 권력의 우상에 사로잡혀 가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려하지 않고 냉대합니다. 우리는 오늘 21세기를 살면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들을 다시금 점검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분명 오늘 바울 사도가 이곳에 온다 하더라도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같은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하려고 세월을 아껴야 하는가?
주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주어진 시간을 잘 관리하여야 합니다.
주님께 바쳐지는 시간은 우리는 잊어버릴지 몰라도 하나님은 1분 1초도 다 아시고 하늘의 계수기에 담아 놓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에는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재물을 바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고가 비우지지 않도록 재물의 복을 주시고 우리의 몸을 바치면 우리의 생명을 축복하여 주시고 시간을 바치면 우리의 삶을 영원으로 연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지막 날 주님앞에 가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떠난 후 하나님앞에 선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의미심장한 일입니까?
어느 날 당신이 출근하였는데, 상사가 당신을 맞이하면서 "내 사무실로 9시 30분까지 오게. 자네가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네."라고 말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당신은 상사가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며 불안할 것입니다. 당신은 "상사가 그동안 내가 해온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승진 되어 월급을 더 받게 될까, 아니면 해고당하는 걸까? '잘했어'라는 말을 들을까, 아니면 '자네 그만두게'라는 말을 들을까?" 궁금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직장 상사와의 면담도 중요하지만, 성경은 그것과는 차원이 훨씬 더 의미심장한 평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삶이 끝난 후에 우리는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나 우리 개인의 이익이나,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를 가지고 미래의 평가에 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진실한 종아 네가 적은 것에 신실하였은즉 내가 너를 많을 것을 다스릴 치리자로 삼으리니 너는 네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라"(마 25:21)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를 열망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은 지금 주님을 잘 섬김으로써 나중에 주님으로부터 "잘했다"라는 칭찬을 듣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방식을 근거로 한다면 구주를 뵈올 때에 우리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선물 중에 시간보다 더 중요한 선물이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면 천사는 우리가 사용한 시간에 대한 명세서를 가져올 것이고 우리는 시간 명세서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에게 은총으로 베풀어준 시간을 너는 어떻게 사용하였느냐 물으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이 땅에서 사용한 시간들에 대해서 낱낱이 해명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을 다시 비추이는 대형 멀티비젼이 있고 천사가 리모콘으로 누르는 대형 챠트가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걸 보게 하시면서 물어보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천년만년일 것같이 살지만 실은 우리의 생은 금방 후딱 지나갑니다. 여러분은 살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되도록 의미 있고 보다 가치있고 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시간들로 채워 넣으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주의 몸된 교회를 땀흘려 봉사하면서 또한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사는 생활들은 일분 일초도 다른 곳으로 흘리지 않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시간의 계수기에 다 보관해 놓으실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인간이 태어나서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는 사실은 공리 중에 공리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시간중 가장 먼저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주신 기회입니다. 사람마다 허락된 시간은 다 다를지라도 그 주어진 시간안에서 반드시 해햐 될 것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을 기회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잘 죽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선하게 이용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음을 맞아 하나님을 심판자로 만나지 않고 우리의 구속자로 만나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생이 다가기 전에 예수님을 믿고 생명을 얻는 자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으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곧 세월을 아낀다는 말은 원어로 ‘엑사고라조’는 ‘돈을 주고 시간을 산다’는 뜻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단어입니다. 어떤 분들은 시간이 돈만큼 소중하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 분들은 대개 시간은 아주 많은데 돈이 없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을 돈으로 좀 바꾸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돈을 사용할 시간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물, 과일, 옷, 우리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시간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게 시간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간을 공짜로 받는다고 착각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생기고, 또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생깁니다. 그래서 시간은 공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시간은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 세월은 세상의 어떤 귀한 것으로도 바꿀 수 없습니다. 분명히 알아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허락하신 은혜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되신 성자 예수님의 피값으로 죄의 종되었던 우리를 사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인생의 좋은 기회들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옵니다. 또한 대가를 치르는 사람에게만 주어집니다. 당신은 이 세상을 마친후 천국에 갈 준비가 되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이야 말로 최고로 행복한 삶을 살아온 사람중의 한사람입니다. 우리들에게 삶의 행복한 시간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면서 찬양하며 이해의 마지막 말씀을 마무리하고하 합니다. 새해에도 다시 뵙기를 바라면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께 감사하시기를 기원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