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다 보면 별별 일들이 날벼락처럼 생긴다. 잊어버려도 좋을 작은 일부터 생명을 잃는 큰 사고까지 예고도 징조도 없이 불쑥 왔다가 간다. 작년(2023) 여름에는 앞집 개한테 물려 법석을 떨었었는데….
정확히 9월 5일 오후 2시 40분이다. 분명 양봉벌은 아닌데 토종벌? 말벌? 땅벌? 국산벌? 외제벌? 어느 것인지는 모르지만 벌한테 일격을 당했다. 그것도 내 집 문앞에서….
4일째인 지금도 부기(浮氣)가 덜 빠진 체 얼음주머니를 들고 다닌다. 내 손자의 할매 말씀처럼 별나긴 별난 모양이다.
석암연당(石庵硏堂) 현관 위쪽 구석에 야생벌집이 제법 쪽박만큼이나 큰 게 달려있고 구멍에서 벌들이 분주히 드나들고 있었다. 한창 더울 때 벽에 물을 뿌리면서도 보지 못했는데 언제 붙었는지 모르겠다. 이웃 반장집 마님이 무릎이 불편하여 바깥출입을 줄이고 거실에서 변해가는 세월을 눈으로 읽으며 소일하는데 나보다 먼저 본 모양이다. “며칠 전에 벌이 날아다니기에 봤더니 벌집은 안 보이던데 그 단새 저리 커졌네” 하면서 알려 주었다. 맨날 지나치면서도 알아채지 못한 내 눈이 뭘 했는지….
119를 부를까 했더니 반장이 마을 노인회 박 회장이 유경험자라며 연락, 곧 통장(統長)과 함께 왔다. 박 회장은 경험자답게 아예 홈키파 한 통과 텃치람프까지 들고 왔다.
쳐다보더니 “작으네” 하면서, 벌망 모자도 쓰지 않고 사무실 창틀 위에 올라서서 한 손으로 간단히 처지하고 벌집은 부숴 떼어냈다. 생각보다 벌이 많지는 않아 쉽게 처리한 셈이다. 이제 막 새살림을 난 모양이다. 벌렁벌렁하던 가슴이 내려앉는다.
여름철 에어컨이 싫어 산속 자연부락을 찾아 들었는데, 방한(防寒) · 방서(防暑)를 겸해서 모양새라도 좀 날란가 싶어 외벽에 잎이 큰 담쟁이를 심어 올렸더니 그 사이를 비집고 벌이 둥지를 튼 것이다.
벌이라면 집에서 양봉하는 벌 외에 꽁지 부분이 시커멓고 털복숭인 말벌이나 땅벌들은 어릴 때부터 많이 보아왔고, 더러는 쏘여 그때 말로 ‘눈팅이가 반티’가 된 적도 있었다. 한데 이번 벌은 꼬리부분이 길쑴하고 거의 붉은 색깔이라 처음 본다는 느낌도 들었다.
주위가 산이라 온갖 짐승이나 벌레들이 난무(亂舞)하나 어쩔 수 없다. 그들에게도 생존권이 있으니까. 그런데 최근에는 국적도 이름도 불분명한 벌들이 많이 생긴 모양이다. 요즘에는 특히 장수말벌이 위험하다던데. 가끔 TV에서 보면 도심에서도 벌집소동이 일어나 소방대가 출동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기에… .
TV에서 전문가들이 말벌처리 중인 것을 찍었다
이튿날 무성한 담쟁이덩굴 줄기와 잎을 좀 잘라낼까 해서, 자루가 길쭉한 정원 가위를 들고 벌집 자리가 있던 곳에서 1.5m 정도 떨어진 곳부터 시작하여 가지 하나를 치는데, 갑자기 벌 한 마리가 어디서 날아왔는지 얼굴 오른쪽 관자놀이를 정조준하고 폭침(爆針)했다. 그 기세가 마치 잠복해있다가 목표물이 가까이 오자 기습하는 자객의 모양새였다. 얼핏 보기에도 꽁지의 침부터 먼저 내리꽂는 것이었다. 주인 영감을 기다린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 잽싸게 마치 최신 팬텀기가 정확하게 사막의 적지를 맞히듯이 달려들었을까…. ‘기절초풍’이란 말이 이럴 때 쓰는 것인 듯 했다. 얼른 털어내고 물파스를 냅다 발랐다.
옛날에는 벌에 쏘이면 암모니아가 최고의 약이었다. 대부분 무는 곤충들의 독성(毒性)은 산성(酸性)이므로 알카리성인 암모니아가 중화를 시켜 통증을 없애준다고 해서, 당시는 똥물이 최고였는데, 정 급하면, 이빨을 닦지 않아 이 사이에 끼인 누른 찌꺼기를 후벼다 바르던 예도 본 기억이 있다.
만사 재치고 쏘인자리가 욱신거리는 걸 참고 차로 내려와 가까운 가정의학과에 들렸더니 “쏘인지 얼마나 됐소?” 했다. 30여 분이라 했더니 ‘부은 정도를 보니 그리 큰 놈은 아닌 듯 하다’며 주사, 연고, 하루분의 약을 처방해 주었다.
벌도 외박을 하는 모양이었다. 어제 벌집을 없애는 날에는 안 왔던 벌들이 날아와 없어진 집터를 뒤지는 걸 보니 분명 다른 곳에서 자고 온 것이 분명했다. 괘심한 놈들 같으니….
그날따라 동네 목욕탕 팀들의 저녁 모임이 있어 불편해도 참고 갔더니, 입심이 걸쭉한 아우벌 되는 친구가,
“행님, 여러 말 말고 올 쇠주값은 행님이 내소.” 했다.
“와? 뭣때메?”
“아 남들은 돈 내고 봉침(蜂針) 맞는데 행님은 올 공짜로 오리지날 자연산 봉침 맞았다 아이요. 며칠 있어 보소 아랫두리가 묵직해 올끼요.”
“어어?? 그것도 말 되네. 그라머 쇠주는 며칠 있다 결과 보고 사께”
이 벌들도 전쟁이 있나 보다. 하기야 공동체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벌(蜂)들의 전쟁’이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실이었기에 소개한다.
「별들의 전쟁(Star Wars)은 미래의 전쟁이지만 벌들의 전쟁(Bee wars)은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전쟁이다.
최초의 벌들의 전쟁은 1930년대 후반 미국에서 일어났다. 당시 미국 중남부의 양봉업자들은 신사적인 유럽 종자를 주로 기르고 있었다. 한데 야만적이고 공격적인 남미의 토종 봉군(蜂群)이 대거 북상, 도전을 해왔고 싸움이 붙는 족족 유럽 봉군은 대량학살을 당하곤 했다.
이 벌들의 전쟁은 ‘쓰디쓴 꿀(bitter honey) 공황(恐慌)’이라 하여 정치문제로까지 비화됐다. 연방정부에서는 곤충학자들을 동원, 복수작전을 모색했다. 야만적인 남미봉(南美峰)보다 전투적인 호주봉(濠洲峰)을 발견하여 이 벌들의 대공수작전을 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호주봉의 생활환경대를 남부전선을 따라 조성 배치, 집단으로 습격해온 남미 봉군(蜂群)을 여지없이 격퇴시키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번에는 남미 양봉업자들이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브라질에서는 학자들을 동원, 호주의 용병군을 이겨낼 만한 포악한 살인봉을 실험실에서 길러냈다. 자칫 잘못으로 여왕봉 휘하 26마리의 살인봉이 실험실을 탈출, 무섭게 번식하더니 사람이건 가축이건 아랑곳없이 쏘아 죽이며 맹위를 떨쳤다. 1957년의 일이었다. 이 살인봉은 여늬 벌꿀보다 10배나 독한 침을 30배나 빨리 속사(速射)함으로써 브라질에서만도 수백 명의 인명을 앗아갔던 것이다. 이 살인봉 군단이 한 해에 460km 속도로 북상하고 있어 미국 벌들의 전선은 초비상이 걸려 있다 한다.
이 벌들의 전쟁은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평화적인 토종벌이 공격적인 양봉군(養蜂群)에 살해되고 추격당해, 깊은 산속에 쫓기어 들어 멸종위기에 처해 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드디어는 이 벌들의 전쟁이 1만 토종업자들과 4만 양봉업자들간의 대리전쟁, 곧 법정싸움으로 번져 1심에서는 토종벌이 승소하고 2심에서는 양봉이 승소하는 엎치락뒤치락의 혼전을 지금 벌이고 있다.
이기고 지고 이전에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우세한 서구문명 때문에 우리 토종문명이 질식하고 있는 판국에 왜 벌까지도 토종이 양봉에게 쫓기고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냐는 것이다. 우리는 이 벌들의 전쟁에서 상징적 의미를 찾아야만 할 것 같다. 부아만 내고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양봉에 대처할 억센 천적(天敵)을 찾아내거나 유전자를 변이시켜 토종벌을 정예화하여 실지회복을 모색했으면 한다. 벌들의 전쟁뿐 아니라 문명전쟁에서도 말이다.」(이규태 저 ‘욕심의 한국학’)
그러나 저러나 부기(浮氣)나 얼른 가라앉았으면 남보기 덜 남사스럽겠는데… . 추석 앞두고 벌초나 성묘행에 조심들 하세요.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