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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로 올라가려면 과거를 묻고 가라(2063.2020.12.31. 송구영신예배)
창35:1-7
할렐루야!!
오늘 우리는 2020년 마지막 날 모여서 지난해를 보내면서 새해를 맞이 하기 위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오신 여러분 새해를 맞이하려면 과거를 묻고 올라가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야곱은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34장에서 지금 야곱의 가문이 멸문지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어려움 속에 지켜왔던 것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 옛날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해 정처없이 집을 떠났을 때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 바로 벧엘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집 벧엘에 거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 있기 때문에 당하는 위기이니 더 이상 거기 있지 말고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옛날 야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도와주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도와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다가 믿을 수 없는 어떤 좋은 일을 만나면 이것이 정녕 꿈인지 생시인지를 생각합니다. 저는 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인 어른은 대구에 목회 처음 나왔을 때 제 생일날 저녁을 먹을까 하는데 연락이 와서 기차를 타고 올라갔는데 소천하셨는데 점심을 드시고 커피잔을 들고 있다가 놓치셨다는데 친구들이 동네에서 10분만 가면 세브란스 병원이 있는데도 그리 안모시고 가고 동네 병원과 약국과 침 놓는 것 하다가 시간 다 보내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는데 집으로 모시고 가라고 하여 그날 밤에 서울역에 도착하여 택시를 안태워줘서 애기들이 있으니까 괜신히 타고서 집에가니 막 운명을 하셨습니다. 어찌 이런일 갑자가 생길 수가 있습니까?
저희 아버지는 몇 년전 월요일 오후5시경 아버지가 소천 하셨다는 전화를 받고는 꿈인지 생시인지 어찌 이런일이 생길 수 있는가 생각했습니다. 점심을 잘 드시고 거실에서 왔다갔다 하시다가 쇼파에 앉으셔서 가만히 눈을 감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급하게 가까운 병원으로 119로 해서 모셨지만 늦었다는 것입니다. 부랴부랴 연락받고 누님에게 아버지인지 병원가서 확인해보라고 말하고는 아무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가서 확인하고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시신을 연세대 의과대학에 기증을 했다는 증서도 있었습니다. 늘 말로만 듣던 그 시신증서입니다.
아침에 4남매가 모여서 아버지의 숭고한 뜻을 받들기로 하고 연세대 의과대학에 기증을 했습니다. 오후 3시 되니 그들이 와서 아비지 시신을 모시고 가게 되고 우리들은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감사했습니다. 와서 예배드려주는 분들도, 방문해 주시는 모든 분들도 시신기증에 대해서 감동을 했습니다. 시신없이 장례를 치룬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감사했습니다. 아버지의 영혼은 하나님이 부르셔서 가셨고, 육신은 의과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어 앞으로 더 의학이 발달되어 갈 것을 생각하니 감사 했습니다. 1년반 내지 2년동안 각 과별로 공부가 끝나면 돌아오면 그때 다시 가족들만이 모여서 장례를 치루어야 합니다. 그때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들도 그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와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날씨와 모든 여건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었습니다.
살다가 보면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만나면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지만 현실일 때가 있습니다. 그 현실을 어떻게 이겨내는냐 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생애에도 그런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형이 받게 되어 있던 축복을 자신이 받게 되었을 때, 천신만고의 수고 끝에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을 때, 마침내 거부가 되어 금의환향하게 되었을 때,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다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때, 자기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았던 형 에서와 화해를 하게 되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운 일을 만나면 이것이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야곱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바로 창 34장의 일입니다. 야곱이 가나안 땅 세겜땅에 머물고 있었던 어느 날 딸 디나가 세겜 여자들을 만나러 나갔다가 하몰의 아들 세겜이 디나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에 화가 난 오빠들(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남자들에게 제안하기를 너희들이 할례를 받으면 통혼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제안에 속아 넘어간 저들을 야곱의 아들들이 살해함으로써 보복을 감행하였습니다. 이제 정말 큰 일이 났습니다. 저들보다 수적으로 열세에 있었던 야곱의 일행은 큰 불안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아마도 야곱은 이 일이 차라리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 현실이 세겜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벧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세겜은 하나님의 성도가 머물 장소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밧단아람에서 나온 야곱은 세겜성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성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아니하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고를 당하고 사고를 치게 됩니다. 벧엘은 무척 중요한 지역입니다.
벧엘은 믿음의 시조가 되는 아브라함이 가장 먼저 하나님께 단을 쌓던 장소입니다(창12:8). 사무엘이 벧엘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곳이요(삼상7:16), 사사시대에는 법궤가 오래동안 머문 장소요(삿20:25, 삼상10:3), 엘리사가 이곳에 신학교를 세우고, 하나님의 종들을 길러냈던(왕하2:3) 장소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삭과 야곱도 단을 쌓은 곳입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심장같은 역할을 감당했던 영혼의 고향같은 곳입니다.
야곱 개인적으로만 보더라도 가장 의미있는 곳이 벧엘입니다. 야곱의 생애는 벧엘에서 시작하여 벧엘에서 끝난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야곱에게 벧엘은 중요한 지역입니다. 야곱이 자기 형 에서를 속이고 밧단아람으로 도망할 때에 최초로 하나님을 만난 장소가 벧엘입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오늘 다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벧엘은 모든 성도에게도 영적으로 그만큼 중요한 지역이고, 벧엘신앙 역시 무척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신앙의 벧엘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벧엘의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벧엘신앙은 올라가는 신앙입니다. 세상에는 올라가서 좋은 것이 있고, 올라가면 좋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직장인들에게는 봉급이 올라가야 좋습니다. 직급이 올라가야 좋습니다. 월급타다 아내에게 바치는 남편들은 용돈이 올라가야 좋습니다. 부동산으로 투기하는 사람들은 부동산값이 올라야 좋습니다. 주식하는 사람들도 주가가 올라야 좋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성적이 올라가야 좋습니다. 멋쟁이 처녀들은 치마가 올라가면 좋아합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보면 사업하는 사람들은 인건비가 오르지 않아야 좋습니다. 살림하는 아내들은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기름값이 오르지 않은 것이 좋습니다. 카드수수료가 오르지 않아야 좋습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쓴 사람들에게는 이자가 오르지 않아야 좋습니다. 집없는 사람들은 집세가 오르지 않아야 좋습니다. 고혈압있는 사람들은 혈압이 오르지 않아야 좋습니다. 내리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믿음의 세계에도 올라가는 믿음이 있고, 내려가는 믿음이 있습니다. 신앙의 연륜이 지날수록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올라가는 믿음이 있는가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내려가는 믿음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믿음의 세계는 올라가야 좋습니다. 날마다 상승곡선을 타고 고공행진을 해야 좋습니다. 사실 올라가는 일보다는 내려가는 일이 훨씬 더 수월합니다. 산을 타보면 알지만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이 더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든 길보다는 쉽고 편안한 길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믿음생활은 편안하고 쉬운 길이 아닙니다.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좁고도 협착한 길입니다. 때로는 고난도 감수해야 하고, 때로는 모함도 당해야 하고, 때로는 억울하고 애매한 일도 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 가기를 주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은 오직 주님을 바라보고 올라가는 신앙입니다. 기도도 올라가고, 말씀보는 것도 올라가고, 예배를 드리는 것도 올라가고, 헌금도 올라가고, 감사도 올라가고, 헌신도 올라가고, 봉사도 올라가야 합니다. 내려가는 신앙은 문제가 있는 신앙이고, 병든 신앙입니다. 올라가지 못하고 정체된 신앙은 지금 진찰을 받아야 할 신앙이요, 오히려 내려가는 신앙은 당장 그 부분을 수술 받아야 합니다. 그러지 아니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올라가는 신앙은 건강한 신앙이지만, 내려가는 신앙은 병든 신앙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지나온 과거를 (1년간) 돌이켜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결심을 가질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오늘 이 시간 함께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망각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잊어서는 안 될 것도 있지만 잊어버리므로 유익한 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잊어버리지 못하여서 당하는 괴로움이 더 큽니다. 그러면 무엇을 잊어야 합니까? 슬픈 일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실패하고 괴로웠던 일들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너무나 슬픈 일을 오래도록 생생하게 기억하면 평생토록 그 일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합니다. 한 두 번의 실수와 실패가 있다고 하여도 모두 잊어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은 참으로 현명한 일입니다.
기쁜 일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기쁜 일이야 오래 오래 기억하는 것이 좋겠지요. 그렇지만 지난날의 성공에 도취되어서 그때의 일들을 자랑만 한다면 차라리 잊어버리는 것만 못합니다. 2020년의 연말을 맞는 이 시간 우리들은 지난 한 해 동안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깨끗이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과거를 묻어두고 새해를 맞이하기시기를 바랍니다. 자꾸만 과거를 끄집어 내서 싸우지 말고 새해 새목표를 향하여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2020년이 저물어 가는 이 시간에 우리는 야곱과 같이 내 생애에 있어서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잘못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일이 이렇게 꼬였나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은 호리라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회개하여야 합니다. 계2:5절‘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와 같이 야곱이 망연자실하여 있을 때 하나님은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이 가야할 길을 지시하여 주셨고 또 야곱이 해야 할 일도 지시하여 주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세겜 땅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신 것과 야곱의 즉각적인 실천과 행함을 통하여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세겜에 머물고 있는 야곱에게 새로운 명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느 때에 임재 하셨는가? 하나님은 적절한 시기에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은 20년 전 야곱이 단신으로 형을 피하여 하란으로 가다가 광야에서 홀로 지친 몸을 돌베개 베고 잘 때에 나타나셔서 그가 하란으로 가는 길을 인도하셨고, 20년간 동행하여 주셨으며, 20년이 지나서 아비 집으로 돌아올 때 세겜 땅에서 곤경에 처해 있을 때에 또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야곱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지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섭리는 적당할 때 즉 그 시기에 합당할 때 역사 하십니다. 야곱이 곤경에 처해 있다고 해서 즉시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극도의 곤경에 이를 때까지 위로를 연기하심으로써 그에게 인내를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확실히 견디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 과정을 잘 통과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상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는 상태처럼 보일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역사 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성도들의 고난을 오래 두고 보지 않으시며 적당한 시기에 피할 길을 주시며 우리로 시험을 이기는 능력을 주십니다.
갈6: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이 환난 중에 부르짖을 때에 임재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그들이 성심과 전력을 다해서 그리고 잘못된 행동에서 돌이켜 회개할 때 응답하시고, 고난 중에서 간절히 부르짖을 때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50:15‘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81:7‘네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셀라)’
벧엘신앙은 회복하는 신앙입니다. 믿음은 첫사랑을 회복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는 첫사랑이 있습니다. 내가 주를 처음만난 그날입니다. 물론 인격적으로 만난 그날입니다. 다른말로 예수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던 그날입니다. 그날의 감동을 기억하십니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던 그때의 그 감동을 기억하십니까? 그 설렘과 그 흥분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고, 내가 얼마나 사랑스런 존재였으며, 내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였는지를 기억하십니까? 아니 내가 얼마나 주님 앞에서 더러운 죄인이었고, 초라한 존재였으며, 얼마나 연약한 존재였는지를 기억하십니까?
구원받은 성도라면 당연히 이런 감동과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고백하던 그날, 이제는 내가 주님 한분밖에는 알 수 없다고 고백하던 그날, 이것이 첫사랑입니다. 보통 세상 여자들은 첫 사랑했던 남자를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마지막 여자를 못 잊는답니다. 역시 지조가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강합니다. 그래서 여성들이 남성들 보다 믿음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자기들의 첫 사랑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그때의 그 감격이 없습니다. 물레방앗간 밑에서 만나 손을 잡던 그 감동이 지금은 없습니다. 세월이 그만큼 우리를 무디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영적인 것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의 첫사랑의 감동을 기억하며 더욱 아름다운 사랑으로 변화시켜야 하는데 첫 사랑이 변질되는 성도들이 정말 많습니다. 여러분의 첫 사랑을 회복하시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야곱에게도 하나님을 만난 첫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 장소가 바로 벧엘이었습니다. 욕심장이 야곱이 자기 형 에서를 속이고 이삭을 축복을 가로챈 후에 하란땅 자기 외가집으로 도망을 치던 날이었습니다. 날이 저물어 한 곳에서 유숙하던 중에 사닥다리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정말 그날 그 밤처럼 외롭고 쓸쓸한 밤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주십니다. 그것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의 첫 사랑이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축복된 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만나자마자 언약을 부어주십니다. 자기 조부 아브라함과 아비 이삭에게 주셨던 언약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십니다. 야곱은 이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곁에 계셨고,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이 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야곱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자마자 돌베개로 제단을 쌓고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격해서 하나님께 서원기도까지 드렸습니다. 한마디로 그 기도의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겠으며,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십일조생활 잘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즉, 성도답게 살겠다는 고백이요, 다짐입니다. 성도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성전중심으로 살며, 십일조 생활 잘하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과의 약속이 무려 20년이 지나도록 전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아니 엄격하게 말하면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산 것입니다.
야곱은 세상을 보는 순간은 벧엘에서 만난 하나님과의 약속을 까마득히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렇게도 순수하게 불타오르던 열정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의 눈에는 오직 여자, 돈, 명예만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취해 20년간 살았습니다. 오직 세상출세 위하여 네명의 여자를 두고 자식을 낳고, 돈 벌려고 몸부림 치고, 거짓말하며 속여서 재산도 모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하나님 믿는 신앙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그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위해 교회 세우는 것이나, 십일조 드리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불신자처럼 세상사는 재미에 빠져서 살아갑니다. 타락한 자로 살아갑니다. 성전을 지어야함에도 성전을 짓는 일을 놓친 것입니다. 십일조를 도적질하고 살아갑니다. 집에서는 아내들이나 자식들에게, 삼촌과 형제들에게도 하나님을 증거했던 기사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그에 삶에는 하나님 믿는 냄새가 전혀 없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다급하면 타협하듯이 서원과 다짐을 쉽게 합니다. 또한 자기 마음에 감정이 고조되면 지키지도 못할 약속도 너무 쉽게 해버립니다. 그리고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처럼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잊지 아니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눈밝으시고, 귀 밝으십니다. 절대 하나님은 우리의 서원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그동안 돈버는 일에 미쳐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은 고스란히 잊어버리고 돈벌고 연애하는 일에 미쳐있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암양, 수양, 암염소, 수염소, 약대, 암소, 황소, 암나귀까지 떼를 이루어 엄청난 거부가 되었습니다. 아내도 4명이나 얻었으니 욕심쟁이 야곱으로서는 일단 성공한 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한 곳이 채워진 것 같았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곳이 무너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곳이 채워지면 한곳은 줄줄 새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창고가 채워지고 있었지만, 영적인 창고가 도난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황충과 동록이 영혼의 창고를 갉아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야곱의 가정이 엉망진창이 되어 갑니다. 레아에게서 낳은 딸 디나가 세겜성에서 추장 아들에게 강간을 당합니다. 보다 못한 야곱의 아들들이 복수극을 벌입니다. 디나의 오라비 시므온과 레위가 칼을 차고 세겜성의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재물들을 노략질해 오고 맙니다. 한마디로 한 사람의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가정에 비극적인 불행이 꼬리를 물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잘 들어보십시오. 육신적으로 열심히 수고해서 무엇을 얻으면 무엇합니까? 영적인 창고가 도난당하고 있는데요. 돈벌어다가 괜히 병원에다가 통째로 갖다 주고, 약국에다가 바치지 말고 하늘의 창고에 쌓으시기 바랍니다. 하늘창고 단속이나 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어떤 명령을 내렸습니까?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거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전입니다. 원래 20년 전 야곱은 하나님과의 서원에서 다시 돌아오게 되면 벧엘에다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겠다고 서원 한바 있으나 20년이 지나 지금에 와서는 그 서원을 잊어버리고 숙곳과 세겜 땅에서 살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상길로 향하는 야곱을 원래의 은혜 받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께 은혜 받고 서원한 것을 잊어버리고 세상길로 향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와 같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벧엘로 올라가라’ 고 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갈 때 상수리 나무 아래 묻고 올라가라고 합니다. 여러분 과거를 다 묻어두고 새해로 올라가시길르 바랍니다.
지난 2020년 1년 동안 야곱과 같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겜 땅에서 살려고 발버둥치지나 않았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돌이켜 벧엘로 발걸음을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세상 재미 쫓아가다가는 야곱과 같이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오늘의 벧엘인 하나님의 성전 교회로 발걸음을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하나님께 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는 것은 하나님께 단을 쌓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들의 생활에서 이 예배를 최우선으로 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생명 걸고 목숨 바쳐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선조들이 이와 같이 믿음을 지켜왔습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삼상2:30‘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요4:23-24‘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예배 없는 신앙이 있을 수 없고, 예배 없는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고 예배 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도적질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어찌 바랄 수가 있습니까?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소중히 하고 예배 시간에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 예배 정신이 희박해져 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말세가 되면 예배를 폐하는 자들이 생겨난다고 하였습니다. 예배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기를 히10:25‘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노아는 방주에서 1년 17일 만에 나와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바울은 마게도냐 지방에 가서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릴 처소를 찾았습니다.
2.야곱은 즉시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에 옮깁니다.
벧엘신앙은 변화하는 신앙입니다. 벧엘신앙은 축복받는 신앙입니다. 벧엘의 믿음은 변화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우리의 첫 사랑을 찾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완전히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변화가 없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은 날마다 자기를 쳐서 굴복하므로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 그럽니다. 믿음의 사람은 반드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믿음안에서 우리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자기개혁이 필요합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고칠 것은 고치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자기의 생살이 찢어지는 고통없이는 개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과감한 개혁을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3가지 개혁조건이 나옵니다. 첫번째는 이방신상을 버리라는 것이요, 두 번째는 자신을 정결하게 하라는 것이며, 세 번째가 의복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요구하신 3대개혁입니다.
2-3절에서 우리는 야곱의 결단력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즉시 결단을 내려서 실행에 옮겼습니다. 자기 가족들과 모든 동행자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명령을 보면 ‘이방 신상을 제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멀어지는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은 우상 숭배입니다. 야곱은 과감하게 이 하나님의 명령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분명히 1절의 말씀 중에는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하신 말씀 중에 ‘이방 신상을 제하라’는 말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야곱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자기가 해야 할 우선순위가 무엇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야곱의 행함은 적극적이고도 능동적인 믿음의 행함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의복을 바꾸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에 보면 부정한 사람이 정함을 받는 방법 중에 하나가 의복을 바꾸어 입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 말씀은 자신들의 지금까지의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여 정결함을 얻는 자 만이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우리 믿는 성도들이 자신의 모든 죄를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정결함을 얻고 죄악에 더러워진 옷을 벗고 주님의 주시는 세마포 예복으로 바꿔 입어야 합니다.
야곱은 가족과 동행자들에게 ‘벧엘로 올라가자’고 하면서 ‘거기 가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자’고 하였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벧엘로 올라가자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올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는 항상 제단 쌓는 예배가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시122:1‘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본래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처음부터 벧엘로 가야할 야곱이 숙곳에서 세겜에서 살려고 했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것을 깨달았으면 빨리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적어도 죄지을 가능성이 있거나 죄짓는 곳에서는 빨리 떠나야 합니다. 그곳에 있게 되면 자연적으로 죄에 감염이 됩니다.
시1:1-2‘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했습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에 동방에서부터 별을 보고 찾아온 박사들이 새로운 왕은 왕궁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자신들의 생각만 믿고 예루살렘 헤롯 궁으로 잘못 찾아갔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야할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잘못 감으로 인하여 죄 없는 세 살까지의 수많은 영아들이 학살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벧엘로 가야 할 야곱이 세겜으로 잘못 갔을 때에 야곱에게는 수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제 늦게라도 야곱은 벧엘로 가서 거기서 20년 전에 나타나셔서 오늘까지 함께 해 주신 여호와 하나님께 단을 쌓겠노라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오늘의 우리 믿는 성도들도 야곱과 같이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세겜 땅 세상길로 잘못 갔다면, 지금까지 우리들의 인생을 잘못 살고, 지금까지의 믿음생활을 잘못하여 왔다면, 빨리 이방 신상을 버리고 회개하여 정결한 심령이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 벧엘로 모여 하나님 앞에 제단 쌓는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3. 야곱과 그의 일행은 모든 죄악의 요소를 묻어버렸습니다.
지금 야곱도 밧단아람에서 즐기던 모든 것들을 미련없이 내려놓아야 합니다. 마치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던 부적들을 버려야 합니다. 야곱과 권속들은 모든 이방신상과 자기 귀에 있던 모든 고리까지 상수리 나무아래 묻었습니다. 아깝지만 포기해야 합니다. 태우든지 묻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안에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우상들이 있다면 버려야 합니다. 이것과 함께 믿음생활하는 것은 말짱 도루묵입니다. 절대 변화가 안됩니다.
야곱의 말을 들은 야곱의 가족과 그의 동행자들은 모두가 야곱의 말에 순종하여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각종 장식품을 모두 떼어 내어 버렸습니다. 이는 야곱의 가족들이 가장(家長)에게 순종하는 모습들을 보여 준 것입니다. 어느 가정이고 가장의 말에 순종하지 않을 때에 그 가정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어느 사회나 단체도 리더의 말에 순종과 복종이 없으면 그 단체는 지속될 수가 없습니다. 더 더욱이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종교입니다. 이것이 없을 때 교회는 평화가 상실되고 혼란이 오게 됩니다. 어느 교회든지 혼란이 있는 교회는 순종이 없을 때 혼란이 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야곱은 모든 가족과 동행자로부터 제거된 우상과 각종 죄악의 요소들을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습니다. 성경에는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상수리나무 등의 나무가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상수리나무 아래 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창13:18). 이 상수리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상징입니다.
오늘의 우리 믿는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우리의 모든 죄악을 묻어버려야 합니다. 영원히 다시 꺼낼 수 없이 묻어버려야 합니다. 야곱은 즉시 떠났습니다.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결단을 내렸으면 즉시 실천을 하여야 합니다. 머뭇거리면 반드시 사탄이 틈을 타고 결심이 흔들립니다. 그것이 더 지속되면 아예 결심한 것을 실천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금 이 시간에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즉시 실천에 옮기시기 바랍니다. 2020년도에 아니 지금까지의 여러 가지 신앙생활에 잘못된 것들이 있으면 오늘 이 시간 십자가 밑에 묻어버리고 즉시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내년부터 잘해야지 하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내년까지는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 결심도 흐려지고 그렇게 되면 내년에도 또 못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쳐라 할 때에 즉시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지금 즉시 새로운 출발을 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자를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새롭게 과거를 청산하고 회개하고 새 출발 하는 야곱을 하나님은 축복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면 모든 민족들이 야곱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야곱이 가는 길을 아무도 방해하거나 추격하는 자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권위를 높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켜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가는 길을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생활에 두려움을 느끼십니까? 불안을 느끼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권위를 높여 사탄 마귀 제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자녀들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어떤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의 서원과 약속을 망각하고 다른 길로 갔습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잊어버리고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고 실수하여 범죄하고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내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말씀대로 회개하고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을 하여야 합니다.
2020년이 저물어 갔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정말 힘든 한해였습니다. 지난날들을 후회도 말고 미련도 버리고 모두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묻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세겜 땅 상수리나무 밑에 모든 지난날의 실수와 죄악과 범죄와 우상과 잘못된 것들을 다 묻어버리고 벧엘로 올라간 것처럼, 이제 우리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지난날의 죄악과 실수와 나태와 게으름과 범죄한 모든 것들을 묻어버리고, 하나님의 전 벧엘로 올라가 제단 쌓는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의 생활이 변화되고, 삶의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