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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은 재물하면 금과 돈으로 이해를 합니다.
정치인들이 한번씩 재산을 공개하는 일들을 하죠? 그럴 때도 부동산이나 동산을 막론하고 다 돈으로 환산하여서 얼마의 가치가 있는 재산이다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을 우리는 듣습니다.
돈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누가 만들어 내었는지는 몰라도 참 편리하다 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제가 우리 나라의 돈의 역사를 살펴보니 주전 957년에 고조선에서 자모전이라고 하는 철전이 사용 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실물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보니까 우리 나라 최초의 주화라는 이름으로 이런 동전에 나와 있었는데 자모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다가 삼국시대는 베가 화폐의 역할을 하였답니다.
베 알죠? 삼베와 같은 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기록에 보면 베 한필에 벼 30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고려시대에 접어 들면서 여러 종류의 금속 화폐가 등장하시 시작 하였다고 합니다.
996년 고려 성종 15년에 처음으로 발행하여서 997년부터 유통되었다고 합니다.
모양은 둥근 모양에 안에 사각의 구멍이 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최초의 저화라고 하는 지폐가 만들어 졌지만 널리 사용되지 못하였답니다.
그러다가 숙종4년 1678년에 발행된 상평통보가 조선의 대표적인 화폐로서 약 200간 사용되었답니다.
그러다가 대한제국 시절에 새로운 화폐가 만들어 졌지만 일본에 의하여서 무용지물이 되었고요,
실제적으로 제대로 유통된 것이 1953년 원에서 환으로 화폐개혁을 하면서부터 라고 합니다.
6.25 직후 이승만 정부에서 화폐개혁을 실시하여 환으로 대체 되었지만 얼마 못되어 1962년 다시 원으로 화폐개혁이 이루어 져서 오늘까지 이어 오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돈의 역사가 나옵디까?
사라가 죽고 난 다음 아브라함이 사라의 장례를 위하여 에브론의 소유인 막벨라 굴을 사는 기록이 창세기 23장에 나옵니다.
창 23:16-18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따라 에브론이 헷 족속이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인이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 마므레 앞 막벨라에 있는 에브론의 밭 곧 그 밭과 거기에 속한 굴과 그 밭과 그 주위에 둘린 모든 나무가성 문에 들어온 모든 헷 족속이 보는 데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확정된지라”
에브론의 소유지를 그 당시 통용되던 은 사백 세겔을 주고 샀습니다.
그 후 42장에 보면 야곱이 애굽에 양식을 사러 아들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양식을 살 때에 요셉은 돈을 그 자루에 다 넣어서 보내라고 하죠.
그때 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창 42:25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은인지 금인지는 몰라도 돈이라고 쓰였습니다.
아마도 은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날은 너무 좋죠. 신용카드 하나만 들고 다니면 어디서나 원하는 것을 구입가능하고요 너무 편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까?
오늘은 그러한 것을 말씀 드리려는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하게 사용하는 것일까 라는 것을 우리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려 합니다.
오늘 우리가 교독한 본문에 말씀은 예수께서 성과 마을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시는 내용을 언급하고 있고요 제자들이 함께하는 기록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먹고 살았을까요? 먹지 않고 살았을까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일들을 일으키시는데 제자들과 예수님 자신은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주시지는 않으셨을까요?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플까요?
성경에 보면 제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다닌 기록도 나오죠? 보셨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하여 바쁜 걸음으로 예수님께서는 그 뜨거운 햇빛을 받으면서 가셨습니다.
그리고 목적지 사마리아 우물에 오시어서 좀 쉬자 하셨을 것입니다.
그때 정오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라 모두를 시장하여서 요한 복음 4:8절에 보니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제자들이 음식을 사러 간 기록을 보입니다.
아무도 돈 버는 사람들이 없는데 음식 살 돈은 어디서 났을까요?
그 답을 오늘 우리가 함께 교독한 본문에서 보여 줍니다.
교독한 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눅 8:1-3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마지막 3절을 다시 읽어 드립니다.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누가 무엇으로 섬기드라 합니까? “자기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드라” 그들이 누굽니까?
예수님과 제자들이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시고 식생활과 관련된 모든 일들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의탁하셨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까?
에이 돈을 거두려면 있는 사람들에게 하실 것이지 라는 생각 들지 않으십니까?
예수님을 섬겼던 사람들이 여인들이었다고 하죠?
성경에 그들의 이름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옵니까?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자들 이렇게 말합니다.
이중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가 돈이 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산나에 대하여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고요.
막달라 마리아는 잘 아시죠? 가진 제물을 다 예수님의 발에 부어드린 여인입니다.
그가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아마도 식당다니면서 설거지를 해서 돈을 벌어서 섬겼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따라 다닌 여인들을 보니까 우리 교회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는 헤롯의 청지기와 같은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도 없고요.
그러고 보니까 예수님의 지상 봉사 활동 때의 환경보다 우리 교회가 더 열악하다고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성도님들 여러분들 가정에 다 쌀들이 있지 않습니까?
냉장고에 반찬들이나 반찬 거리들 있지 않습니까?
얼마일지는 모르지만 과일들도 들어 있을 것이고요.
얼마 전에 집사람이 아침을 준비하면서인지 모르겠습니다.
먹을 것이 너무 풍성하다고 하였습니다.
만들어 놓은 거 다 먹지를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누어 주는 것을 좋아하는지를 모릅니다.
제 마음 같으면 고생 좀 적게 하고 일을 좀 적게 하고 좀 덜 나누어 주면 좋겠는데 일은 죽을지 모르고 하고 그렇게 수고하여 만든 것은 한 순간에 나누어 줘 버립니다.
시 장사 좀 맛 있다고 생각이 들어 싸오면 두 개 싸 오면
하나는 그냥 다른 사람 줘 버립니다.
속으로 그러한 것도 억지로 안되는데 참 잘한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때로는 내거도 좀 남겨 두라고 우시개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 중 대부분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형편보다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재물을 가지고 예수님을 섬깁니다.
그들의 보상은 하늘에서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도 우리가 가진 재물로 예수님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까?
이미 그러한 섬김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으시지만 오늘 다시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봉사를 원하시는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드리는 말씀은 하늘에 쌓이는 재물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마 6:19-2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어디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합니까?
그리고 그 이유를 무엇이라 합니까? 거기는 무엇이 있다고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든다, 무슨 말입니까?
나를 위하여 쌓아 둔 재물은 어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까? 없어진다.
여러분들이 다 저희들처럼 살라고는 말씀 드리지는 않습니다.
저는 신앙을 받아 들일 때 종말론 적인 신앙이 너무 저의 뇌리에 박혀서요.
적금 넣는 거도 믿음 없는 행위로 생각하고요. 아이들을 위한 교육보험 같은 것도 믿음 없는 행위로 생각했었습니다.
하는 일이 나름대로 잘 되고 해서 이렇게 산다면 아이들 교육도 걱정 없이 해 나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가 생활의 서리를 맞으니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 질 때 아이들이 대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등록금 마련할 길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는 저희들에게 친구 부인이 아니 그것도 준비하지 않고 살았느냐고 했습니다.
물론 너무나 잘알고 있다 보니 못하는 말 없는 그런 사이다 보니 그런 말을 한 것 같습니다.
그때 생각하니 내가 너무 계획없이 살았구나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자니고 보니 그런 것도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시고 인도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지금 저희들은 어떻게 살까요?
이제는 계획을 세울 수가 없어 닥치는대로 살까요?
그렇지는 않아도 지금도 저희들 미래에 대하여 계획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여 주신 그 하나님께서 제정적인 서리를 맞고 참 어려움 가운데서도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저희들 노후도
하나님께서 책임 지실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하늘에 저축하는 것이라고 저희들은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저희들처럼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렇게들 사시라고는 말씀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자기들의 재물로 섬겼던 여인들의 본을 따라서 여러분들 가지고 있는 재물로 예수님을 섬기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소망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재물로 예수님을 섬기는 것일까요?
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무엇을 잊지 말라고 합니까? 선을 행함과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이러한 것이 어떤 것이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이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요. 에배 잘 드리는 것도 좋은 것이고 중요한 것이지만 그 못지 않은 제사가 무엇이라 합니까?
선을 행하는 것과 나누어 주는 것이다.
우리 성도님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많이 드리게 되길 바랍니다.
증언의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행적 345p “주님께 드릴 때 그들은 그의 재물이 그들보다 앞서 하늘 궁정으로 간다는 보증을 가진다. 사람들이 그들의 소유를 안전하게 하고자 하는가? 그들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흔적이 있는 손에 그것을 두게 하라. 그들이 그들의 물질로 기쁨을 누리고자 하는가? 그들로 곤궁하고 고통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이것을 사용하게 하라”
우리의 재물을 가지고 주를 위해 사용되어 질 때 그 재물은 어디로 간다고 합니까?
우리보다 먼저 하늘에 간다는 보증을 가진다라고 합니다.
우리 사랑하는 귀하신 성도님들 여러분들의 많고 적음을 떠나 여러분들의 재물을 가장 안전하게 관리를 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십자가의 흔적이 있는 주님의 손에 그것을 두게 되길 바랍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는 곤궁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같은 것이 하나님께서 즐겨 받으시는 제사라고 합니다,
하늘에 쌓아 두는 또 다른 방법 하나는 교회의 필요에 따라 드려지는 헌금입니다.
교회의 헌금 종류가 많죠? 나라의 세금도 그 종류가 참 많습니다.
교회의 헌금 종류가 많다고 해서 헌금 종류를 많이 줄였습니다.
헌금 봉투를 올려드립니다.
크게는 본교회 헌금과 합회 헌금으로 나누어 져 있고요.
본 교회 헌금은 감사헌금과 첫 번 세 번 네 번째 드려지는 안식일 헌금이 본 교회를 위해 쓰여 집니다.
그리고 월정헌금이 있고요, 도르가 헌금이 있고 특별헌금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에서 사용할 수 있는 헌금입니다.
그리고 합회 헌금이 있습니다.
십일조와 두 번째 다섯 번째 헌금이고요 안교와 투자 확장 헌금이 있는데 많이 드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중에 십일조는 교단을 움직이는 힘이 되고요.
월정헌금은 우리 교회를 움직이는 힘이 됩니다.
우리 교단이 잘되고 예수님의 재림을 정말 기다리신다면 십일금에 대하여 충실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장유교회가 잘되고 부흥하기를 원하신다면 월정헌금과 감사헌금에 더 충실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런 것도 하늘에 우리의 재물을 쌓아 두는 것이 될 수가 있을까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땅에서는 좀 없이 살아도 하늘에서 부자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그 말은 하늘에 갈 수 있도록 살자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이제 두 번째 우리의 재물을 주님께 드리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에 이기심을 제거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말씀 드립니다.
우리 성도님들 여러분들에게 이기심이 있습니까?
아마도 대부분 그러한 질문을 하면 나는 이기심이 없어 라고 할 것입니다.
이기심이 있는지 없는지 무엇으로 알 수가 있습니까?
교회에 드려지는 헌금과 이웃을 섬기는 모습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을 가지고 형제를 판단하시지는 마시길 바랍니다.
이기심과 관련된 무서운 말씀이 있어 올려드립니다.
부조 580 “그분의 은혜와 화평의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일어선 자들이 그들의 거룩한 부르심을 이기심과 육욕의 만족을 가리우는 두루마기로 삼을 때에, 그들은 자신들을 가장 효과적인 사단의 대리자로 만든다”
말씀을 자세히 관찰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은혜와 화평의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일어선 자들이” 이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시대에 누구를 가리키는 말씀일까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가리키는 말씀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까? 예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거룩한 부르심을 이기심과 육욕의 만족을 가리우는 두루마기로 삼을 때에”
이 말씀은 어떤 말씀 같습니까?
속에는 이기심과 육욕의 만족을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한체로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그 신앙을 우리의 모습을 가리우는 가리개로만 삼을 때라는 말씀으로 저는 읽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그들은 자신들을 가장 효과적인 사단의 대리자로 만든다” 그들은 자신들을 가장 효과적인 사탄의 대리자로 만든다.
우리 모두가 무엇이 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가장 효과적인 사탄의 대리자들이 될 수가 있다. 어떻게 할 때에요. 우리가 믿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를 가릴 때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가 믿은 신앙은 우리의 옷을 가리려 하는 치장물이 아님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의 사람들이라는 것이 장식품이 되지 않길 소망합니다.
저는 한 때 신앙을 장식품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하도 나쁘게 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보니 교회 다니시는 분들은 다 착하게 보였습니다.
나도 교회 다니면 저렇게 보일 수가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교회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보이려고 했습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죄의 유혹은 그대로 두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신앙은 장식품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았습니다.
하늘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보게 되자 장식품을 걷어 버렸습니다.
제가 걷어 버린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걷어 주셨습니다.
요즘도 저는 아직 벗어 버리지 못한 신앙생활이라는 장식품이 하나 하나 벗겨지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온전히 다 벗겨 주시고 진짜로 입혀 주시기를 원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려면 속에 있는 무엇이 사라져야 된다고요? 이기심이
우리의 대부분의 죄들의 시작이 이기심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아십니까?
복음전도 633 “이기심은 모든 악의 뿌리이다”
이기심이 무엇이라 합니까? 모든 악의 뿌리이다.
모든 죄들의 시작이 이기심에서 온다고 볼 수 있는 말씀입니까?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증보1 554 “이기심은 영혼을 파괴하는 죄이다. 이 제목 아래 우상 숭배에 해당되는 탐욕이 속한다. 만물이 하나님의 소유이다”
이기심이 어떤 죄라고 합니까? 영혼을 파괴하는 죄다 그 제목아래 우상 숭배에 해당하는 참욕이 있다고 하죠.
이기심과 관련된 한 말씀만 더 올립니다.
시소 302 “이기심은 우리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이기주의적 정신은 하나님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신 분으로 판단한다. 이 생각을 버리기 전에는 우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이기심 없는 마음, 겸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심령만이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출 34:6)을 볼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영혼을 파괴시키고 멸망으로 가도록 만드는 이기심이 사라지도록 하기 위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이라고 느껴집니까?
헌금과 이웃을 위한 봉사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거절하는 것은 이기심을 제거하려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거부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 사랑하는 귀하신 성도님들 많은 거 아니래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준비하시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웃을 예수님 섬기듯이 섬기는 일을 즐겨하길 바랍니다.
지난 일요일 우리 장성규 형제와 텃밭에 가서 고구마를 케고 줄기를 따고 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셋이서 엉덩이가 아프고 온 몸이 뒤 틀리는 경험을 하면서 줄기 껍질을 벗겼습니다.
거기에다가 제가 즐겨 먹는 꿀을 들어 붓고 반찬을 만들어 앞집도 주고 윗집도 줍니다, 제가 허리가 틀리도록 고생한 것 다 날라 갔다 하니까 돈 들지 않고 조금 수고하여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거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멘 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수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것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께서는 부유한 환경가운데 오실 수도 있으셨지만 저와 여러분들을 위하여 가난 집에 태어 나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이 사시다가 당신께 그냥 주어 진 것이 네 개가 있다고 합니다.
무엇인지 아시는 분
이게 지상에서 받은 유일한 주님의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우리 예수님 이 땅에 오셨을 때 그의 머리 눞혀둘 침대는 빌려온 것
예루살렘 성내로 내려 오실 때 타고 오신 나귀는 산 마을 길가에서 빌려 온 나귀
유월절 어린양 잡하시기 전날밤 무덤으로 가시는 길에 방 한칸 빌리셨네.
그의 무덤위하여 동굴하나 빌린 그들 그의 시신 감싸드릴 세마포도 빌렸네
그러나 그가 쓰신 가시관과 그가 지신 십자가는 그의 것 십자가는 오직 그의 것
그또한 그가 쓰신 가시관과 그가 지신 십자가도 나의 것 십자가도 오직 나의 것.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 우리가 쓰여할 가시관 우리가 밖혀야 할 못 그 모든 것을 주님께서 다 받으셨습니다.
그러한 주님 생각하면 우리의 마음 속에 이기심이 들어 있을 곳이 어디 있습니까?
이기심 없는 봉사의 제사를 통해 주님을 섬기다가 주님 오시는 그날 주님을 기쁘게 영접하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와 함께하길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늘에 계시는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이기심을 제거해 주시려고 주님께서 친히 우리처럼 오시어서
이기심 없는 봉사가 어떤 것인지 보여 주시어 감사합니다.
가진 거 하나 없이 사시다가 가시관과 십자가 그리고 손과 발에 박은 못을 받으신 주님 저희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옵소서
우리 모두 주님처럼 살아가길 소원하오니 우리의 마음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이기심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영광중에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날에 기쁨으로 주님을 뵙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눅 8:1-3
그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새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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