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마누엘로 오신 그 이름 예수(2226.2023.12.24) 마1:21-23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상주감리교회가 결산을 하는 당회를 하는 날입니다. 당회가 되어지면 목사님들은 긴장을 합니다. 당회 때에 일년 결산을 하면서 교회의 일군을 뽑기 때문입니다. 한 일은 하나도 없으면서 직분은 올라가고 싶은 사람들 때문에 긴장을 하는 것입니다. 2023년도 이제 마지막이 되어 집니다. 여러분 당회는 축제의 날이어야 합니다. 당회는 즐거운 날이어야 합니다. 당회는 싸우는 날이 아닙니다. 당회 할 때 마다 의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알아달라는 것이죠. 그런데 담임목사님이 기도하고 준비해서 내놓으면 아멘 하고 가는 것이 은혜로운 것입니다. 기도나 헌금이나 봉사나 이런 것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렇게 헌신할 수 있는 것을 복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기 때문에 말없이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도 제대로 안하고 헌금생활도 제대로 안하고 기도도 제대로 안하고 봉사도 제대로 안하면서 의장하고 손드는데 그러시면 안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은혜롭게 하는 것이 당회여야 합니다.
당회는 일년동안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감사보고 하는 것이지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 부족해도 박수치고 잘했다 칭찬하는 것이 당회입니다. 그래서 당회는 즐거운 축제라는 것입니다. 축제 때에는 함께 즐거워 하고 함께 축하하는 것입니다. 축제의 당회를 하면서 인상을 써 가면서 의장하면 발언권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축제의 장이니 웃으면서 의장해야 그래요. 할말 해 보세요. 하는 것입니다.
구역회라는 것은 구역회원들이 자신들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내년도 예산을 세우는데 우리의 믿음만큼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세우는 예산에 너무 힘들 것 같아도 하나님이 금년에도 채워주셨으니 내년에도 채워 줄 줄 믿습니다 하고 우리들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 구역회입니다. 당회는 축제가 되어야 하고, 구역회는 우리들의 내년도 믿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회가 되어지면 은혜롭지 못하게 1박2일로 하려고 합니다. 당회는 기획위원회에서 결정한 것을 보고하고 박수로 받고 축하는 것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구역회는 결정된 것을 어떻게 믿음을 보여주며 사용할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작은교회에서 봉사하려고 하니까 돈도 많이 들어가고 힘드신 것 압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주머니를 열어서 턱턱 내놓고 이렇게 합시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은혜로 여기고 돈 쓰면서도 즐거운 것을 보면 그것이 ‘축복’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도 남모르게 주머니를 열어서 목사님을 도우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교회도 건축하면서 어려가지 어려울 때에도 현재에도 주방 봉사를 하고, 대접을 하면서도 불평하지 않고 서로 좋은 것을 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하나님 앞에 이들에게 갚을 길이 없으니 하나님이 보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갚아달라고 기도를 하고 왔는데 가만히 보면 그렇게 대접하고 망한 사람이 없었고, 가난해지는 사람도 없고, 불평하는 사람도 없고, 얼마나 감사한지 그져 말은 안하지만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내 주머니를 열어서 남을 정성으로 대접하는 마음으로 준비해온 성도들 감사를 드립니다. 그래 큰 교회보다도 반찬도 많고 음식도 맛있고 이런 음식을 어디가서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우리 상주감리교회의 자랑거리입니다. 음식 많이 하지, 좋은 일 있다고 떡 잘해오지. 이게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자기 주머니 털어서 그렇게 합니까? 은혜받고 감사하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기쁨으로 하니까 더 감사한 것입니다. 큰 교회 가보시면 반찬도 그렇고 그렇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교회도 커지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큰 교회도 다 이렇게 작은 교회에서부터 시작해서 커진 것입니다. 작은 숫자의 모임이 점점 커지다 보니까 그렇게 큰 교회가 된 것이지요. 저는 교회를 크게 키우는 것보다는 성도를 한 사람이라도 키우고 싶은 것입니다. 성도 한 사람이 키워지면 교회도 키워지는 것입니다. 그 일에 오늘 여러분이 한몫을 담당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점점 커지고 있으니 조금만 참고 저와 함께 신앙생활 멋지게 하셔서 교회에 이름을 남기는 복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생활 하면서 점점 커져가는 상주감리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 잘하셔서 담장을 넘어가는 무성한 가지의 축복을 받으셔서 교회일도 마음 껏 하시고 남도 열심히 돕고 사는 물질의 축복도 받아서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렇게 허영에 들뜬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교육이 잘못되어서 그런지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좌우간 우리 사회에 평화가 없는 최대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저마다 타고난 자기 소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큰 일만을 하겠다고 날뛰는데 있다고 보여집니다. 작은 연못에 붕어도 있어야 하고, 망둥이도 있어 하고, 개구리도 있어야 하는데 저마다 용이 되려하니 연못이 잔잔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상주교회가 작다고 욕하지 마세요. 여기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큰 교회만 하나님 계신 것이 아니라 상주교회에도 저 시골교회에도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이 작은 교회의 목사의 아픔은 바로 성도들은 신앙생활 하시다가 큰 교회로 간다고 했을 때입니다. 자기가 큰 교회 다니면 믿음이 좋은줄 아는데 아닙니다. 주님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실 때 ‘아멘’하며 주님께 달려갈 수 있는 은혜가 성도여러분에게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아무리 성탄절 잔치를 화려하고 성대하게 준비했다 할지라도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잔치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내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힘과 능력이 그분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내 인생의 전부를 바칠 수 있는 가치가 그분 안에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역사를 AD.와 BC로 나누었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AD와 BC로 나누었습니다. 그분을 통해서 우리 인생을 달라졌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비밀이 그분 안에 있습니다. 내 인생의 기쁨이요, 생명이요, 소망이 그분 안에 있습니다. 그 이름 예수, 그 이름 예수 예수 안에 내 인생의 모든 부요함과 풍성함의 은총이 있습니다. 요셉이 어느 날 정혼한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크게 번민하다가 가만히 끊고자 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꿈에 나타났습니다.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때 요셉에게 나타난 천사가 마리아에게 잉태된 아이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가르쳐줍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이를 다른 누군가의 아이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것을 천사가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설교를 듣게 됩니다. 여러번 들었을 수도 있고, 평소에 아는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 들으면서 예수님을 더 생각하게 되고, 사모하게 되고, 예수님으로 충만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내일이 성탄절입니다. 여러분이 성탄절을 어떻게 맞이하시기를 바랍니까?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마1:21절‘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지금 불신자들은 운명 가운데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운명 가운데서 해방받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팔자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그런 말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우리는 거기서 해방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건지시려 오시게 되었는데 우리는 그 이름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이 왜 오셨습니까? 오늘말씀‘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요3:16절‘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냈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왜 예수님만이 우리 인간의 원죄를 해결하고 하나님하고 화해시킬수 있나요?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이 오직 예수님뿐이기 때문입니다(행4:12,요3:13), 원죄를 없애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피흘려 주신 분이 오직 예수님뿐이기 때문입니다(히9:22), 나는 길이요,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요14:6-7)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많이 사용하셔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처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마1:23절‘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했습니다. 이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나같은 죄인 살리시려고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주시고 지금도 함께 계신다니까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이것이 느껴져야 합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름은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니 얼마나 좋은 이름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은 다만 이름 자체가 좋은 차원이 아닙니다. 그 이름에 하나님의 계획을 담으셨고, 그 이름에 하나님의 권세를 담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에는 놀라운 은총이 있고, 그 이름에는 놀라운 권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놀라운 은혜가 있고, 구원이 있고, 치유가 있고, 회복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예수!’ 그 이름에도 놀라운 은혜가 있고, 구원이 있고, 치유가 있고, 회복이 있고, 권세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어야 그 이름의 권세가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또한 십자가를 지신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믿을 때 그 십자가의 은총과 능력이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에게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함께 하는 줄믿습니다. 성도님들에게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권능도 함께 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임마누엘로 오신 예수의 오심은 700년전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예언된 것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700년전 이사야 선지자로 부터 예언된 사건이 사7:14절에 나타나 있습니다.이사야에 의해서 예언된 분입니다. 그분은 임마누엘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1000년 전에 김영윤목사가 1000년 후에 태어날 것이다! 그 김영윤목사는 온세상 교회에서 목회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을 것이다! 고 예언되었는데, 때가되어 태어났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인물은 보통 인물이 아니겠지요? 엄청난 인물이지요. 그런데, 실제로 예수님은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미리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태어나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사7:14절‘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가 생각할 때에, 이해가 안되는 말씀입니다. 이름은 좋은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말입니다. 기록하라!고 하여서 기록하였을 뿐입니다. 세월이 700년이 넘어서 비로소 그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고맙게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고고학자들이 성경을 가지고 분석하였습니다.
마태복음이 예수님 이후의 책이 맞는가? 이사야 성경이 예수님 이전의 책이 맞은가? 하는 것을 연구 조사하였는데, 과학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사야가 기록한 두루마리 성경이 당시의 것이라는 증거가 나왔고, 700년이 넘어서 1000년 가까지 지나서 기록된 것이 마태복음이라는 증거가 과학적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니, 과학도 발달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가 더욱 확실히 증거될 것입니다.
또한 모세와 이사야가 만난적이 있느냐? 시대가 다르므로 도무지 만날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을 미리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도대체 한번도 싸움을 하신 적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신데, 어찌하여 그 분은 세상을 장악하고 있습니까? 한번도 글을 쓴적이 없는데, 유명한 큰 도서관에는 예수님의 책들로 거의 절반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분이 도대체 누구십니까? 아무리 여러분이 고집이 세다고 하여도 알아야 될것 아닙니까? 아무리 공부를 많이해서 박사학위가 있다고 하여도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제일 인류에게 영향을 많이 입히신 그 분이 도대체 누구십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입니다. 요1:1절‘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했습니다. 말씀 = 예수님 = 하나님 요1:1절에 보면, 말씀이 이 땅에 오셨는데,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고, 이 하나님은 아버지 품에 독생하신 그리스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오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천사가 가르쳐준 것 첫째는 이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정하여준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가 구원하신다’입니다. 같은 뜻을 가진 이름은 구약의 ‘여호수아’입니다. 히브리어 ‘여호수아’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이 ‘예수’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예수’란 이름을 지어준 이유가 있습니다. 이 예수가 세상을 구원할 구원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라면서 이것을 인식했고 많은 유혹과 갈등이 있었겠지만 결국 자신을 십자가에 죽게 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희생양이 됩니다. 예수님이 어찌하다보니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었고 세상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아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명을 다 이루셨습니다. 채찍에 맞았습니다. 조롱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여 하늘나라로 승천하였습니다. 이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다 구원받게 하는 복음을 만드셨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구원이 우리 모두에게 다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어 천국에 가면 좋고, 아니면 어쩔수 없지!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했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셨고 지금도 예수를 믿는자는 누구든지 구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하여 죄에서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창세전에 계시던 분인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 요1:14절‘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도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영접이라고 합니다.
요1:12절‘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했습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성령의 내주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건지실려면, 하나님과 인간을 가장 잘 아는 분이 중매 역활을 하여야 되겠는데,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속에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내 속에 내주 하시기에 우리는 거룩하고 경건생활 하고,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믿음대로 되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더욱 믿음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창1:27-28절의 회복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 행복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이 아무리 머리 써도 안됩니다.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못만난 자는 하나님 만나야 되고, 하나님 만난 자는 하나님을 누려야 됩니다. 그 이상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진짜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을 만나야 될 것이고, 진짜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신다면, 응답받아야 될 것입니다.
요14:6절‘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한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만나시고 영접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으시면서 좋은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좋은 열매는 좋은 나무에서만 열립니다. 좋은열매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지는 축복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2.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그 이름에 구원이 있습니다.
마1:23절‘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하였습니다. 여기서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뜻의 히브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말은 성탄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입니다. 성탄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임마누엘(Immanuel)이란‘임=계시다/마누=우리와/엘=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 죄인된 세상의 인간들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난한 자가 부자 찾아가기는 힘들어도 부자가 가난한 자 찾아가는 것은 쉽습니다. 높은데 계신분이 어려운 사람, 별볼일 없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누가 알아볼까 힘들면 변장하고 가면 됩니다. 요1:1절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14절‘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예수님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 탄생하실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본문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시면서 그 이름에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이제는 예수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과연 예수님의 이름 두 글자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 이름 두 글자 ‘예
수’를 안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이름을 알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많이 나올까요? 과연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주님’이라는 대답이 많이 나올까요? 요즘은 예수님을 ‘내 영혼을 구원하신 주님’이란 대답보다 오히려 자신의 필요를 채우시는 주님으로 더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복을 주시는 예수님’, ‘위로를 주시는 예수님’, ‘친구가 되신 예수님’, ‘평안을 주시는 예수님’ 등. 이 모든 대답이 틀린 대답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면서 주신 그 이름의 의미와 가치는 점점 희석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예수님을 믿다가 너무 쉽게 예수님을 버립니다. 왜 예수님을 쉽게 떠날까요?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는 도대체 어떤 분이기에 그렇게 쉽게 잊을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구주이시며, 이제는 내 인생의 주인이심이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단지 내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중요한 분이라는 생각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버리고 예수님을 떠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삼년 이상 함께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제자훈련을 시켰는데 어쩌면 그 토록 쉽게 예수님을 배반할 수 있을까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도대체 누구였단 말입니까? 병 고치는 예수, 로마에서 해방할 정치적인 예수, 좀 색다른 말씀을 선포하는 웅변가 예수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제자들이 이제는 예수님을 절대 떠나지 못하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제자들은 이제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지킵니다. 이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신 구주 예수님으로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멸망 가운데서 구원하신 구주이심을 믿는다면 절대 예수님을 버릴 수도, 떠날 수도, 잊을 수도 없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의 믿음은 예수님을 오직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으로 믿는 믿음이 분명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늘 ‘그 이름 예수’를 믿음 속에 선명하게 새기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늘 예수님의 이름을 묵상하여 구원의 감격이 메마르지 않는 신앙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늘 ‘그 이름 예수’를 묵상하고 찬송할 때면 우리 성도님들 안에 기쁨이 넘치는 그런 신앙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3.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그 이름에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합니다. 왜 우리가 기도할 때 각자 자기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나요? 요14:13-14절‘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이 세상에 보내시며 그 이름을 ‘예수’라 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에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의 권세를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질병도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악한 사탄의 권세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과연 누가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이름을 믿음으로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을 자기 자신의 의지나 자기 자신의 명예를 걸고 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신앙생활에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하고, 신앙생활에 자신의 명예를 걸려고 하면 그런 신앙생활은 무너집니다. 신앙생활은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나 해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가장 멋진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장애인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무엇을 좀 얻을까 하여 구걸을 합니다. 그때 베드로와 요한이 그 장애인에게 다가갑니다. 지금 구걸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나 아니면 먹을 것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에게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나에게 은과 금은 없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에게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이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담대하게 외칩니다. 행3:6절‘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깐 베드로를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로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십시오. 무엇보다 예수님의 이름이 우리 안에 믿음으로 충만하게 채워져야 합니다.입으로만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고 베드로와 요한처럼 그 이름의 권세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충만하게 거하시고, 그 믿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 그 이름의 권세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의 믿음 안에 예수님께서 주인으로 분명하게 살아계시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곳마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나타날 것을 믿습니다.
4.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그 이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명함을 가지고 다닙니다. 저도 명함을 만들어 두었는데 막상 잘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저의 명함을 줄만한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에게 준 명함은 많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받아서 모아 둔 명함만 해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명함을 한 번도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 명함을 사용하지도 않습니다. 어쩌다가 식당 명함만 사용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명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 명함입니다. 저에게 예수님 명함은 수시로 사용하는 명함입니다. 기도할 때는 당연하구요, 무슨 일만 있으면 저는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이미 앞에서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에 구원이 있고, 예수님의 이름에 모든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단순히 이름 하나 지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이름을 ‘예수’로 지어주시고, 그 이름에 모든 것을 다 담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 그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믿음의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름도 지어서 보내주셨습니다. 이제 그 이름을 누구든지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은 유명해졌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예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 이름을 믿음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다녀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믿음으로 사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골3:17절‘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라고 말씀합니다. 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하나님께서 알아주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십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있음을 믿습니다. 삶에 어떤 문제들이 찾아올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로 하여금 두렵게 하고 기죽게 만드는 그 어떤 것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꾸짖으시기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은 예수이름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여러분에게 가장 큰 축복이 임마누엘입니다. 여기에 참석한 상주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성탄절을 맞이하는 이 주간에 임마누엘의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하나님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증거 하기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롬8:2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모두 저주에서 해방되어 버립니다. 요14:16절에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성령이 내 안에 계십니다. 요14:26절에 그때부터 성령이 나를 인도하기 시작하고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치실 것입니다. 행1:8절에 이때부터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을 받습니다.
창26:3절‘우리를 축복하시고’, 창48:21절‘갈 길을 인도하시고’, 창39:2절‘모든 일이 잘 되게 하시고’, 민14:9절‘두려움과 공포는 떠나가고’, 신2:7절‘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되며’, 삼하18:14절‘강하게 만들어 주시며’, 사57:15절‘우리의 영혼에 힘을 주어 다시 일어나게 하시며’, 요14:27절‘마음에 평강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이시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을 모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마치 지갑 속에 돈이 가득히 들어있고, 보석함 속에 보석이 가득히 들어있는 것보다 귀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매일매일이 성탄절입니다. ‘매일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불러 마땅합니다. 구원 진짜 받은 사람은 매일이 주의 날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매일 성탄절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주님을 만나야 됩니다. 이번 성탄절에도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잘 아셨으리라 믿고 그 예수님 덕분에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이날 혼자 오시지 말고 가족들을 동반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시고 기도로 준비하고 예물도 준비해서 정성을 다해서 맞이하는 성탄절 예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2023년도 성탄절을 맞이하기 전에도 임마누엘로 오시는 예수님 때문에 승리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