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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와일드'와 음악 '철새는 날아가고' - 함수곤의 블로그 "사람냄새"에서 - | |
올해 개봉하는 영화 중 가장 기대를 모았던 영화< 와일드 wild> 를 관람했다.
사실 이 영화가 다른 것보다 더 기대가 되었던 것은 미국 서부를 남북으로 가르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약칭 PCT)이 주배경이라는 데 있었다.
장거리 트레일종주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 흥미로운 소재는 충분한 기대감을 갖게 했다. 때문에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미리 서점에서 동명의 책<와일드 wild>를 사서 읽어보기도 했다.
책<와일드>는 상당한 몰입감이 있었다.
1995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을 직접 걸었던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가 2012년 발표한 자전적 에세이인 이 책은 마치 소설을 읽는 것같은 재미와 탄탄한 구성이 돋보였다.
형식은 기행문이지만 중간중간 삽입된 저자의 26년 굴곡진 인생사가 담백한 여행기에 매콤한 양념처럼 담겨있다.
그래서 이 책을 원작으로한 영화가 곧 개봉된다는 소식에 잔뜩 기대를 품고 있었다.
영화는 먼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잔잔한 음악 서주로 시작한다.
어디서 들어본 걸까. 이 궁금증은 영화 중반부에서 드디어 그 본체를 드러낸다.
El Condor Pasa. 우리에겐 ‘철새는 날아가고’라는 사이먼 앤 가펀클 노래로 알려져 있는 노래다.
이 음악은 영화<와일드> 전체를 관통하며 하나의 메시지와 정서적 울림을 남기는 중요한 소재로 쓰였다. 음악과 영화가 좋은 궁합으로 만난 케이스였다.
사이먼 앤 가펑클 (Simon & Garfunkel)
“난 차라리 달팽이가 되기 보다는 참새가 되렵니다
그래요,할 수만 있다면
꼭 그렇게 할겁니다.
난 차라리 못이 되기 보다는 망치가 되렵니다
그래요,내가 할 수만 있다면요
정말로 꼭 그렇게 할겁니다
멀리,난 차라리 멀리 날아가 버리고 싶어요
여기있다가 가버린 백조처럼
사람은 땅에 얽매여있지요
그는 세상에서 주지요
가장 슬픈 소리를
가장 슬픈 소리를
난 차라리 길보다는 숲이 되렵니다
그래요, 내가 할 수만 있으면
정말 꼭 그렇게 할겁니다
차라리 나의 발아래에 있는 흙을 느끼고 싶어요
그래요, 할 수만 있으면
난 꼭 그렇게 할겁니다.“
책의 저자이자 영화 주인공인 셰릴 스트레이드는 자신의 전부와도 같았던 어머니가 폐암으로 45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어미 잃은 새끼마냥 방황을 한다.
19세 나이에 결혼해 남편이 있던 몸이지만 수많은 다른 남자들과 자유롭게 잠자리를 같이하고 심지어는 마약에까지 손을 댄다.
게다가 원치않은 임신까지 하게 된다.
삶의 나락까지 떨어진 셰릴은 같은 시기에 마치 운명처럼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안내책자를 만나게 된다.
어찌보면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은 세상 나락까지 떨어진 셰릴에게 마지막 남은 탈출구이자 구원의 빛줄기였는지 모른다.
임신중절수술 후 생활주변을 정리한 셰릴은 단짝친구인 에이미의 도움을 받아 길고긴 4,285km 트레일 여행을 홀로 떠나게 된다.
당연하지만 이 길고긴 트레일 여행은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다.
셰릴은 삭막하지만 때론 아름다운 대자연 속을 걷고 또 걸으며 상처만 남은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되돌아본다.
결국 지난한 고통과 진통제처럼 다가오는 안식을 반복해 거치면서 마침내 정신적인 치유를 얻는다.
같은 이름으로 소개된 책과 영화의 싱크로율은 거의 100%에 가깝다.
다만 판형 A5크기 552페이지 분량의 텍스트가 115분짜리 영상으로 호환되면서 책 내용 중 상당부분이 생략되었다.
그러나 영상에 소개된 에피소드들만으로도 영화 <와일드>는 충분하다.
더 세세한 에피소드와 '날 것'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더 확인하고 싶다면 동명의 책을 참고하면 좋을 것같다.
영화<와일드>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책<와일드>를 피드백해 볼수 있었다.
책에서 텍스트로만 보았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직접 영상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케네디 메도우즈 등 책에 등장했던 트레일 구간마다 종주자들에게 휴식공간과 배달된 보급품을 전달해 주는 중간 기착지 모습도 흥미로웠다.
영화가 끝나고 등장하는 엔딩크레딧은 또 다른 흥미였다. 책의 저자이자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셰릴이 등장하는 데 95년도 트레일종주 당시 사진들이 소개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1995년에 PCT를 걸었던 셰릴은, 자신의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날 당시 나이 때인 45세 무렵인 2012년에 책<와일드>를 세상에 내놓았다.
마치 어머니 죽음이 자신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이라는 여정으로 이끌어내 결국엔 삶의 방황을 끝내고 정신적 치유을 안겼던 것처럼,
셰릴은 40대 중반에 책<와일드>를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방황했던 20대 삶에 대한 자기치유와 어머니에 대한 회한을 '매조지'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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