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방 전 (孔方傳) -임 춘- 민근홍 언어마을 [줄거리]
공방이란 구멍이 모가 나게 뚫린 돈을 말한다. 그런 그가 황제 시절에 조정에서 일하게 됐다. 성질이 워낙 굳세어서 세상일에 그다지 세련되지 못했으나, 그의 이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때에 따라 변통을 잘 부렸다. 또한 욕심이 많고 염치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재물을 맡는 공무를 처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백성을 상대로 한 푼의 이익이라도 다투는 한편, 모든 물건의 값을 낮추어 그 중에서도 곡물을 몹시 천한 존재로 만들었다. 그러니 쓸데없는 재물을 중하게 해서 백성들이 농사를 버리게 했다.
또한 그는 권세있고 귀한 사람을 재치있게 잘 섬겼다. 그들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자신도 권세를 부리며 비행을 저질렀다. 벼슬을 팔고 승진시키며 갈아치우는 것마저도 모두 그의 손에 매이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공방의 한마디 말이 황금 백 근만 못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가 어려운 직책을 오랫동안 맡아보는 사이, 조정을 망치고 백성을 해쳐서 국가가 곤궁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공우란 신하가 글을 올리어 공방은 조정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 공방이 죽자, 남은 무리가 남송에서 살았다. 집정한 권신들에게 붙어서 또다시 정직한 사람을 모함했다. 일찍이 공우가 한 말을 받아들여 그들을 모두 일조에 없애 버렸던들 그 같은 후환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을 단지 억제하기만 해서 마침내 후세에 폐단을 남기고 말았던 것이다.
[이해 및 감상]
고려 무신 집정 때의 문인 임춘이 돈을 의인화하여 지은 가전체 작품으로, 돈이 생겨나게 된 유래와 돈이 인간 생활에 미치는 각종 이득과 폐해를 사람의 행동으로 바꾸어 보여 줌으로써, 사람들이 재물을 탐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지은이 임춘은, 공방의 존재가 삶의 문제를 그릇되게 하므로 후환을 없애려면 그를 없애야 한다고 결론지음으로써, 돈의 폐해에 대해 비관적 인식을 보여 주고 있다.
임춘은 무신란을 만나 겨우 목숨은 보전하였으나, 극도로 빈한한 처지에서 불우한 일생을 마친 구귀족의 후예였다. 몰락을 겪고 구차하게 살아가면서, 화려한 공상이나 관념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구체적인 사물과의 일상적인 관계를 통해서 자기의 처지를 나타내는 방법을 택했다. 그의 ‘국순전’이 술을, ‘공방전’이 돈을 의인화한 것이라는 것은 그의 삶을 염두에 두면 그리 우연만은 아니다. 현실에 대한 그의 불만(관료들의 부정, 부패)은 자기 주위의 접하기 쉬운 생활에서부터 비롯될 수 있는 것이었다.
직접적인 서술이 아닌 의인화로서 풍자적인 교훈성을 지닌 ‘공방전’은, 형식적인 면에서 소설 정착의 전단계(前段階)이며, 내용적인 면에서 계세징인(戒世懲人)의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서사 양식으로서의 ‘전(傳)’의 특성과 우회적인 요건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돈을 의인화시켜서 인간적인 품격을 부여하는 방식은 일종의 우의적인 표현법에 해당된다. 돈의 속성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과 각성을 의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의 사실성과 우화의 윤리성을 결합시킨 것이 바로 이 작품의 특징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공방’ - 둥근 모양에서 ‘공(孔)’이라 하고, 구멍의 모난 모양에서 ‘방(方)’이라 함 - 은 욕심이 많고 염치가 없는 부정적 성격의 소유자로 백성들로 하여금 오직 이익을 좇는 일에만 종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는 일반 선비들과 달리 천하게 여겼던 시정의 사람들과도 사귀기도 하는데, 이는 ‘공방’이 단순하게 ‘돈’을 드러낸다든가 탐욕스러운 한 전형적 인간을 내세운다기보다는 잘못된 사회상을 비판하기 위한 작자의 의도가 반영된 사물로 여겨질 수 있음을 뜻한다. 즉, 작자는 이 작품을 통하여 돈의 내력과 성쇠를 보여 줌으로써 사회상을 풍자하는 경세(警世)의 효과를 나타내려 하고 있는 것이다
[요점 정리]
■ 갈래 : 가전(假傳) ■ 성격 : 풍자적, 교훈적, 전기적, 우의적(寓意的) ■ 구성 : 공방의 가계에 대한 약전(略傳) ■ 표현 : 의인법 ■ 제재 : 엽전(돈) ■ 주제 : 경세(經世)에 대한 비판 ■ 의의 : ‘국순전’과 함께 우리 나라 문헌상의 최초의 가전 작품
[참고 사항]
■ <공방전>의 주제적 의미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삶에서 돈이 요구되어 만들어져 쓰이지만 그 때문에 생긴 인간의 타락상을 역사적으로 살피고 있다. 작자가 사신의 말을 빌어 작품의 말미에서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고 이익을 좇는 자를 어찌 충이라 이를 것인가. 공방이 법을 만나고 주인을 만나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았으나 응당 이익을 일으키고 해가 됨을 덜어 그 은덕에 보답해야 할 것이거늘, 권세를 도맡아 부리고 사사로운 당을 만들었으나 충신은 경외(境外)의 사귐이 없다는 것에 어그러진 자이다.’라고 한 내용은 그러한 사실을 압축하여 제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공방의 존재가 삶의 문제를 그릇되게 하므로 후환을 막으려면 그를 없애야 한다고 하였다. 난세를 만나 참담한 가난 속에 지내다 일찍 죽고 만 임춘의, 돈의 폐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 돈의 폐해 부각
임춘은 돈의 생김새부터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엽전은 바깥이 둥글고 속이 모가 나 있다. 이것은 사람으로 치면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원만해 보이지만 속은 편협하게 모가 나 있는 것이 돈의 본질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또, 방(돈)이 임기응변을 잘 한다고 한 것도 같은 속성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처음엔 조정에 중용되지만, 방은 마침내 욕심이 많고 더럽고 염치 없는 본색을 드러낸다. 그는 본전과 이자 따지는 것을 좋아하고, 나라를 편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생산의 기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여 곡식을 천하게 하고 돈을 중하게 함으로써 농사에 방해를 끼치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자기의 권세를 이용하여 벼슬을 매매하고 인품보다는 재물로써 사람을 사귀기 좋아하여 나라를 곤궁하게 만들고 있다.
■ 관념적 작가 의식
공방(돈, 타락한 관리)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아주 단호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돈이 요구되지만 돈 때문에 인간은 탐욕스러워져 갖가지 비리를 저지르게 되므로 돈은 두통거리이다. 그러므로 후환을 막으려면 그것을 없애야 한다는 의도가 작품의 끝 부분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와 같이 '공방전'은 돈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데, 그 근거나 비평을 모두 과거의 역사 특히, 중국의 화폐 역사에 두고 있다. 그런데, 고려 시대는 아직 엽전이 크게 보급되었던 때가 아니다. 그러니까 임춘은 우리 나라에서 공방이 성장하기도 전에 중국의 사례를 놓고 경계의 화살을 보낸 것이다. 결국 '공방전'은 현실적 경험의 독창적 표현이라기보다 관념적인 수준에 머문 작품인 것이다.
[작품 읽어보기]
공방(孔方)의 자는 관지(貫之)이다. 그 조상이 일찍이 수양산에 숨어 굴 속에서 살아, 아직 세상에 쓰여진 적이 없었다. 처음 황제 때에 조금 채용되었으나, 성질이 굳세어 세상일에 그리 단련되지 못하였다. 황제가 상공(대장장이를 벼슬아치에 비유한 표현)을 불러 보이니, 공이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말했다.
"산야의 성질이 비록 쓸 만하지 못하오나, 만일 폐하가 만물을 조화하는 풀무와 망치 사이에 놓아 때를 벗기고 빛을 갈면 그 자질이 마땅히 점점 드러날 것입니다. 왕자(王者)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릇이 되게 하오니, 폐하는 구리와 함께 내버리지 마옵소서."
이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이 세상에 태어났다.
뒤에 난리를 피하여 강가의 숯화로 거리로 이사하여 거기서 눌러 살게 되었다. 그의 아버지 천(泉)은 주나라의 재상으로 나라의 부세(세금을 매겨서 부과하는 일)를 맡았었다.
방은 위인이 밖은 둥글고 안은 모나며, 때에 따라 응변(임시변통으로 일을 처리함)을 잘 하여, 한나라에 벼슬하여 홍려경(한의 관직으로 외국 손님을 접대하는 벼슬)이 되었다. 그 때에 오왕 비가 교만하고 참월(분수에 넘쳐 외람함)하여권세를 부렸는데, 방이 그에게 붙어 많은 이(利)를 보았다.
무제 때에 천하의 경제가 궁핍하고 나라의 창고가 텅 비었다. 임금께서 걱정하여 방을 벼슬시켜 부민후를 삼아 그의 무리 염철승(소금과 쇠를 가리키는 관직명) 근과 함께 조정에 있게 하였다.
방은 천성이 욕심 많고 더러워 염치가 없었다. 그런 방이 재물의 씀씀이를 도맡게 되면서 본전 · 이자가 가볍고 무거운지 따지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리고 나라를 편하게 하는 것은 반드시 질그릇, 쇠그릇을 만드는 기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였다. 방은 백성들과 조금의 이익이라도 다투고, 물건값을 낮추어 곡식을 천하게 하고, 돈을 귀하게 만들어 백성들이 농사일을 버리고 상업만을 좇게 하였다. 그렇게 농사에 방해를 끼치므로 임금께 간언(임금에게 잘못을 고치도록 올리는 말)하는 관리들이 상소를 빗발치듯 하였으나 임금은 듣지 않았다.
방은 또 재치있게 권세 잡은 자와 귀한 자에게 아부를 잘 하여 그 집에 드나들며 권세를 부렸다. 또한 벼슬을 팔아 올리고 내치는 것이 그 손 안에 있으니 신하들이 절개를 굽혀 섬기게 되었다. 그러니 곡식을 쌓고 뇌물을 거두어 문권(부동산의 소유권이나 그 밖의 어떤 권리를 증명하는 문서)과 증서가 산 같아 이루 셀 수가 없었다.
그는 사람을 접하고 인물을 대함에도 어질고 불초(못나고 어리석음)함을 묻지 않았다. 단지 시정(평범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 사람이라도 재물만 많이 가졌으면 다 함께 사귀고 통하니, 이른 바 시정의 사귐이란 것이다. 때로 거리의 악소년들과 어울려 바둑 두기와 투전하기로 일을 삼아서 자못 연낙(쾌히 허락함)을 좋아하였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공방의 말 한 마디면 무게가 황금 백 근만하다."
라고 하였다.
원제가 위에 오르자 공우가 글을 올려 아뢰었다.
"방이 오랫동안 극무(극심하게 분주한 사무)를 맡아 보면서, 농사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한갓 장사치의 이익만을 좇았습니다. 그가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치니 공사가 다 곤궁하옵니다. 더구나 회뢰(뇌물)가 낭자하고 청알(청탁)을 버젓이 자행하옵니다. 대저 '지(負)고 또 타(乘)면 도둑이 된다.'고 한 것은 대역(주역)의 분명한 경계이니, 청컨대 그를 면직시켜 욕심 많고 더러운 자를 징계하옵소서."
그 때에 정권을 잡은 자는 곡량(자하의 제자인 곡량적을 이르는 말로 그는 유교 경전인 <춘추>의 주석서 <곡량전>을 썼음)의 학문을 배워 진출한 이였다. 그가 군자(軍資)를 모으는 책임자로 변방의 계책을 세우려 할 때 방의 일을 미워하여 공우의 말을 도왔다. 드디어 임금께서 그 말을 들어 방은 쫓겨나게 되었다. 방이 집안 사람에게 하는 말이,
"내가 얼마 전에 임금님을 뵙고 혼자 천하의 정치를 도맡아 보아, 장차 나라의 경제가 족하고 백성의 재물이 넉넉하게 되고자 하였더니, 이제 하찮은 죄로 내버림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아가 쓰이거나 쫓겨나 버림을 받거나 나로서는 더하고 손해날 것이 없다. 다행히 나의 남은 목숨이 실오라기처럼 끊어지지 않고, 진실로 주머니 속에 감추어 말없이 내 몸을 용납하였다. 가서 뜬 마름과 같은 자취로 곧장 강회의 별장으로 돌아가 약야계(중국 남부의 지명으로 큰 부자인 도주공이 여기에서 돈을 모았다고 함) 위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고기를 낚아 술을 사며, 해고(바다 장사, 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와 더불어 술배에 둥실 떠 마시면서 한평생을 마치면 그만이다. 비록 천종(千種)의 녹(벼슬아치에게 봉급으로 주던 곡식, 옷감 등의 총칭)과 오정(다섯 솥)의 밥인들 내 어찌 그것을 부러워하여 이와 바꾸랴. 그러나 나의 재주가 아무래도 오래면 다시 일어나리로다."
라고 하였다. =<중략>=
방의 아들 윤(輪)은 경박하여 세상의 욕을 먹었고, 뒤에 수형령이 되었으나 장물죄(부당하게 남의 물건을 취득한 죄)가 드러나 사형되었다 한다.
사신이 말하기를,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고 큰 이익을 좇는 자를 어찌 충이라 이를 것인가. 방이 법을 만나고 주인을 만나 정신을 모으고 마음을 도사려 정녕 한 약속을 손에 잡아 그다지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았으니, 마땅히 이익을 일으키고 해(害)를 덜어 그 은우(고마운 대우)를 갚을 것이어늘, 비를 도와 권세를 도맡아 부리고 이에 사사로운 당을 세웠으니, '충신은 경외(어떤 경계의 밖. 범위를 벗어남)의 사귐이 없다.'는 것에 어그러진 자이다."
라고 하였다.
방이 죽자 그 무리가 다시 남송에 쓰여져 권력을 잡은 자에게 아부하고 도리어 올바른 사람들을 모함하였으니, 비록 길고 짧은 이치는 저 명명(사정이 분명하지 않음)한 데 있으나, 만일 원제가 진작 공우의 말을 들어 하루 아침에 다 죽여 버렸던들 후환을 없앴을 터인데, 오직 재억(제재하여 억누르는 것)만을 더하여 후세에 폐단을 끼치게 하였으니, 무릇 일보다 말이 앞서는 자는 늘 미덥지 못함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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