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정음 28자를 창제하시어 간략하게 例義를 제시하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하셨는데 형상은 옛 글자를 모방한 것이고 소리의 원인은 七調에 소리의 바탕을 했으므로 三極의 뜻과 二氣의 묘함이 다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어서 28자만 가지고도 그 전환이 무궁하며 간단하면서도 요긴하고 정밀하면서도 통달되어 있는고로 지혜있는 사람은 아침이 다하기 전에 깨치고 어리석은 자라도 열 흘이 못 되어 배울 수 있다.
이 글자로써 한문을 풀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이 글자로써 송사를 하더라도 그 實情을 알 수 있다.
字韻이 곧 청탁을 구별할 수 있고 樂歌가 律呂를 고르게 하며 쓰는데 갖추어지지 않은 바가 없고 이르러 통달하지 않는 곳이 없다.
비록 바람 소리, 학의 울음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이 글자를 가지고 적을 수가 있다.
마침내 우리들에게 자세히 이 글자에 대한 해석을 해서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라고 명하시니,
지금까지는 국내외의 학자들은 훈민정음 창제가 세종대왕의 단독 작품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고 몇몇 신하 즉 집현전 학사들과 같이 했다 하더라도 일생에 그런 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므로 이는 일본의 신대 문자나 인도의 부라미 문자를 모방했다고 보았다.
그런데 집현전 학사 중에 반 이상은 최만리 등과 같이 훈민정음 폐지론자들이고 나머지 반 정도는 정인지파였다.
여기의 내용을 보면 이들은 이미 만들어진 훈민정음의 해설이나 해석을 하여 반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것이니 훈민정음 창제는 확실히 세종대왕 단독으로 한 것인데 이는 정말로 문자 구성의 역사상 불가사의한 일이다.
象形而字倣古篆(상형이자방고전)
자방고전은 다른 부분에도 많이 나와 옛 한자를 모방했다는 것인지 우리의 옛 글자를 모방했다는 것인지 혼동하게 돼는데 여기서는 확실히 그 형상이 옛 글자를 닮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옛 글자를 한자로 본다면 과연 우리 한글이 단 한 군데라도 한자를 닮은데가 있는가?
우선 한자는 'ㅇ'과 같은 원이나 '삼각형'과 같은 세모지거나 사선으로 된 글자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러므로 이는 확실히 원시 한글이라는 가림토를 말하는 것인데 이 부분도 정인지 등은 그저 세종의 '상형이자방고전'이란 말만 듣고 그대로 쓴 것으로 보여진다.
바람 소리, 새 소리, 개 소리는 한자로는 도저히 그대로 적을 수 없는데 이 새 글자로는 얼마든지 적을 수 있으니 정말로 놀랬을 것이다.
이에 신은 집현전 응교 최항, 부교리 신 박팽년, 신 신숙주, 수찬 신 성삼문, 돈녕부 주부 신 강희안, 행집현전부수찬 신 이개, 신 이선로 등과 더불어 여러 解 및 예를 만들어서 이 글자에 대한 경개를 서술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승이 없어도 스스로 깨우치도록 하였으니 그 깊은 연원이나 정밀한 뜻의 오묘함은 곧 신들로서는 능히 펴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데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린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시정 업적이 온갖 임금을 초월하여 정음을 지으심도 선대의 이어받은 바 없이 자연으로 이룩하신 것이다.
어찌 그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지 아니한 바가 없으니 인적인 사사로움으로 된 것이 아니다.
대저 동방에 나라가 있음이 오래 되지 않음이 아니나 문물을 열고 사업을 성취시켜 주실 큰 지혜는 드디어 오늘을 기다림이 있었구나!
정통 11년 9월 상한에 자헌대부, 예조판서, 집현전 대제학, 지춘추판사, 세자 우빈객 및 정인지는 손 모아 절하고 머리 조아려 삼가 씀.
이상을 정리해 보면 훈민정음은 우리의 옛 조상들이 그야말로 자연의 소리를 따라 글자를 만들어 썼으나 당시는 잊혀져 마치 잡초처럼 흩어져 있던 가림토를 세종대왕이 다시 정리하고 짜 맞추어 새로 만들었으나 그 해례본만은 당시 모화 사상에 젖은 완고한 선비들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여진다.
훈민정음 해례본만 보고 그 제자 원리를 단정하거나 우리의 한글이 중국의 학문에 이론적 배경을 하고 있다는 학설은 참으로 훈민정음을 모독하는 논리이므로 다시 한 번 연구되어야 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우리 한글의 제자 원리가 담겨졌다는 훈민정음 해례의 제자해를 검토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