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포해전 이순신 답사길 ( 옥포~김영삼생가, 8.5km 5시간) 우리나라 올레길 (마을길, 숲길, 역사길, 생태길, 해안길, 둘레길)은 2007년 제주도에서 제일 먼저 시행하여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자 지자제마다 무슨 무슨 길이니 하면서 개발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전국 방방곡곡에 산이란 산은 모두 산책길을 만들었다. 인간에게 길이란 무엇인가? 인생 여정의 장거리 코스이다. 태어나서 죽음으로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길고도 짧다. 세 살 어린이가 구십살까지 생각하면 머나먼 인생 여정이지만 60이 다된 황혼 길은 짧기만하다. 어릴 적 부모의 품안에서 아른거리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직장을 마련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위해 뼈빠지게 노력하다 아이들 키우다 보면 어언 50대 줄에 접어든다. 앞뒤 가리지 않고 살아온 지난날을 생각하면 허무하기 짝이 없다. 돈이 무엇이고 자식이 무엇이고 마누라가 무엇인가?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그러나 이런 무의미 한 것 같은 인생사는 다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봄에 싹이 터서 여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 열매를 맺어 겨울이면 후대를 위해 씨앗을 남기고 일생을 마친다. 이것이 식물의 일생이라고 하면 사람도 마찬가지다. 식물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기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자손을 펴뜨리는 일이 최고의 가치일 것이다. 인간은 조물주가 생각하는 힘을 주었기에 복잡하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생각하는 ㄱ라대가 아니라면 동물적 감각으로 남녀간에 사랑을 하여 낳은 자식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온힘을 기울이다 저 세상으로 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기에 추구하는 욕망이나 욕구가 많다. 돈을 모으려는 욕망, 남보다 잘사는 욕망, 예술적인 욕망, 자연에 동경하는 욕망, 욕망 욕망 욕망 끝없는 욕망의 터널이다. 인간 최대의 욕망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옛날에는 돈이란 욕망이 최고의 가치였으나 지금은 삶의 가치가 높은 곳까지 향상되어 문화적. 예술적인 욕망으로 승화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간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낫기에 자연과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할 수도 있다. 물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만 마련된다면~~~. 시설좋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맛있는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이름 있는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면 모든 것이 최대의 행복인가? 그런 행복보다는 자연과 함께하는 행복이 진정 마음속의 행복일 것이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며 솔 내음도 마쉬고 풀내음도 맡으며 바람소리 새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도 들이며 시골 농촌의 밭가는 소리, 자운영 풀밭에서 뛰노는 염소들의 재롱놀이... 이러한 것들이 마음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일 께다. 인간이 산을 찾고 바다를 찾고 농촌을 찾고 숲속의 오솔길을 찾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거제도 이런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섬&섬길“이란 명품길을 설계하여 2012년부터 2016년까지 16개코스로 선정하여 개발 중에 있다. 2012~2013년까지 4개 코스를 완공하였는데, 오늘은 ’충무공 이순신 만나려 가는 길‘을 소개 하고자 한다. 2013년 섬&섬길 조성사업 추진현황 거제도에서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자연경관을 일반 주민에게 개방하기 위해 2011년부터 『거제 섬&섬길』을 기획하여 4개 권역(북부, 서부, 중부, 남부)으로 나누어 종•횡단 코스를 포함한 총 18개 코스 250km의 구간을 150여억원의 사업비를 들여2016년에 완공한다. 사업년도 : 2012~2016 , 18개코스, 150억원 2012~2014년 추진현황 노선명 | 년도 | 거리/시간 | 사업비 | 구간 | 경로코스 | 무지개길 | 완료 | 8.7km (4.30분) | 1억6천4백만원 | 남부면쌍근~저구 | 탑포재-왕조산-쌍근마을-저구-홍포-여차마을-다포마을 | 바람의 언덕길 | 완료 | 3.0km(1,30분) | 7억5천만원 | 해금강 주변 | 완료:해금강호텔-우제봉-해금강주차장 미완료: 도장포-바람의 언덕-해안숲길 | 이순신 길 | 완료 | 8.3km(5시간) | 8억원 | 옥포-외포 | 옥포-팔랑포-덕포-김영삼 생가 | 계룡산둘레길 | 완료 | 18.1km(10시간) | 2억원 | 계룡산일원 | 운동장-임도쉼터-골프장-거제-고자산치-용산임도-우물-거제공고 | 천주교 순례길1 | 완료 | 11.5km(7시간) | 15억 | 와현-지세포 | 예구마을-공곶이-서이말등대-안내소-셋풍이재-지세포성-지세포마을 | 맹종죽 체험길 | 공사중 | 7.7km(4.30분) | 3억원 | 성동-실전 | 성동마을-임도-맹종죽테마파크-실전마을 | 귀양길 | 공사중 | 21.0km(12시간) | 3억원 | 오량-옥동 | 오량성-둔덕기성-청마생가-산방산-옥동 | 천주교 순례길2 | 공사중 | 8.5km (5.30분) | 11억 | 와현-지세포 | 예구마을-공곶이-와현봉수대-서이말등대-샛풍이재-거평수산-선창마을-조선해양문화관 |
1. 옥포해전 이순신 답사길 ( 옥포~김영삼생가, 8.5km 5시간) 지명 | 옥포관련 지명 | • 출발지 : 옥포항 조라선창 ( 옛 지명대로 하면 옥포항이 아니고 조라선창이다) • 옥포와 조라의 지명 : 옥포는 현재 옥포1동을 말함이며 거제7진의 하나였다. 조라는 본래 나호(羅湖)라 하였으며 조라진(1604년)이 있었으며 옥포의 동쪽을 보고 말함이다. 임진왜란 시는 옥포진이 있었고 조라진이 있었는데 그 조라진은 구조라를 보고 말함이다. 그래서 옛날 조라를 구조라, 옥포에 있는 조라를 신조라라 한다. 그 비슷한 예로 장목면 구영은 옛날 영등포였다고 하여 구영이고, 임란 후 둔덕으로 옮겨간 곳을 학산(영등)이라하였다. 옛 율포진(보)은 장목면 율천이고, 임란 후 옮겨간 곳은 남부면 율포이다. • 옥포: 옛날 옥포성이 있었고 옥포진도 있었다. 현재 옥포1동이다. • 조라: 옛날 조라진이 있었고 현재 옥포항 동쪽 바닷가 횟집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 국산: 국산은 국산초교 주변이며, 예날 이곳은 개암나무가 많아 진목(榛木)이라 부르다가 1888년 윤봉문 요셉이 순교하자 迫害가 심해 동네이름을 菊山이라 바꾸었다고 한다 • 관계골 : 조라진의 관아가 있던 곳. 현재 복지회관에서 보광사 부근이다. • 야망: 임진왜란 전후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망대가 있던 곳. 뱀쥐섬 부근 • 뱀쥐섬(비행기섬): 비행기(헬기)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도한 옛날 뱀과 쥐가 싸운 전설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느태 반대편 • 승판재: 옥포해전 시 승판재쪽으로 도망치는 왜군을 물리쳐 임금으로부터 ‘승판재’라는 승전기면재명을 하사 받았다 ( 현재 옥포 중앙공원) • 옥포성: 성종 원년(1470)에 거제7진의 하나로 옥포진을 두고 진성을 쌓았다(1488) • 옥포진: 세조 11년(1465)경상우수영을 가배에 설치하고 옥포에 진을 설치하였다. 임란 시 옥포만호는 이 운룡장군이었다. • 조라진 : 선조37년 (1604) 구조라진을 옥포 조라로 옮겼다가 효종12년(1651)되돌아갔다. • 옥포대첩기공원 : 선조 25년(1592)임란으로 국운이 위태로울 대 이충무공의 옥포해전으로 구국의 성지가 된 이곳에 1996년 6월22일 완공하였다. | 제 1 구 간 | 옥포항~옥포중앙공원 (1km, 300분) | • 옥포항을 따라 뱀쥐섬이 있는 곳까지는 해안 테크로 되어있다. 가는 도중 내내 대우조선 건조하는 선박들이 즐비하며 몇십만톤 배들이 예인선에 끌려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한동안 가다보면 넓은 곳이 보이는데 그곳이 야먕이며 좀 더 가면 뱀쥐섬이 보인다. 곳곳에 쉼터가 있고 전망이 좋아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해변길 끝에는 전망대가 있고 바로 앞에는 전설의 뱀쥐섬이 있다.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놀고 있고 조선소의 배들이 쉬임없이 왔다 갔다 하기에 마음의 안식을 얻기에 좋다. | 제 2 구 간 | 옥포중앙공공원~팔랑포마을(1,2km, 50분) | • 야망끝에서 해안태크는 끝나고 산으로 올라가는 철다리가 있다. 조금 올라가면 중앙공원으로 가는 길과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있다. 중앙공원으로 올라가 국도로 길어 파랑포로 가도 되지만, 그냥 해안도로를 가보기로 하자. 얼마가지 않으면 파랑포마을이 나온다. 해변을 따라가다 보면 산등성이로 가는 길이 있다. 5분 정도 가면 옥포대첩가는 길이다. 2~3분이면 옥포대첩기념공원으로 갈수가 있다. 시간이 하락하면 이곳에 둘러 옥포대첩의 모든 것을 구경할 수 있다. 시간이 없으면 장산마루에서 산길을 따라 가면 된다. • 팔랑포마을(파랑포마을); 팔랑포(八浪浦)라는 지명은 본래 파랑포 (波浪浦)라 하였는데 이는 거제면 小浪浦와 풍수설의 상대성 지명으로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예로 들면 와현의 서이말 등대와 상대성 지명으로 장목면 광지말이 있다. 파랑포라는 이름은 잔잔한 바다에 흰 포말을 안고 물결이 팔랑거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 다른 이름인 八浪浦는 계절 따라 풍향이 다르고 파도가 변함으로 八浪이라 하였는지는 명확하지가 않다. 구전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 8명이 숨어 살았다하여 八浪浦라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부를 때는 팔랑포라 하지 않고 파랑포라 한다. | 제 3 구 간 | 팔랑포마을~덕포해수욕장 (2.7km, 1시간30분) | • 파랑포마을에서 위로 올라가면 옥포대첩가는 길과 마주친다. 오른쪽으로 가면 2~3분 거리에 옥포대첩긴며공원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옥포로 가는 차로이다. 장산마루식당에서 산으로 바로 직진하면된다. 시간이 있으면 공원안으로 들어가 관람을 하고 다시 돌아 나와 그곳에서 덕포쪽으로 산행을 한다.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는 산길은 천연 숲길이다. 소나무 숲길을 한동안 가다보면 편백나무숲길이 나온다. 거제도에서 편백나무 숲길은 여기가 유일하다. 15 년 전 산림청에서 실시한 숲 연수를 받을 때 처음 들었다. 피톤치드 란 무었인가? 1943년 러시아 태생의 미국 세균학자 왁스먼이 처음으로 발표한 말인데, 식물이 병원균·해충·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내뿜거나 분비하는 물질로, 삼림욕을 통해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루어진다. 이에 여러 상품들에 피톤치드의 효능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덕포해수욕장은 자그마한 갯가로 모래로 구성된 해수욕장으로 매년 겨울에 펭귄축제가 열리며 ‘아라나비’가 있어 바다 위를 로프를 타고 가는 재미가 솔솔하다. 글구 썰물 때면 모래와 파도가 그려낸 모래그림이 장관을 이루어 전국의 사진가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글구 덕포부두에는 간이 어판장이 있어 이른 아침에 가면 싼값의 고기를 살수가 있다. | 제 4 구 간 | 덕포해수욕장~김영삼생가(3,6km, 2시간) | • 이 코스를 원래 바닷가로 해안길을 조성하려고 했으나 경비가 너무 많이 들어 개설하지 못하고 기존 국도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차가 그렇게 많이 다니지 않기에 그런대로 갈만하다. 가는 중간 중간에 옥포해전에 참여한 장수들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주로 전러좌.우수사에서 참여한 장군들이 안내되어 있고 거제도에서 진을 지키던 옥포만호이운룡, 율포만호 이영남, 영등포만호 우치적, 지세포만호 한백록이 빠진 것이 아쉽다. 가는 중간에 오빌리지펜션 단지가 있고 오토캠프장도 있다. 2시간 정도 걸어오면 목적지인 김영삼생가와 기록전시관이 있는 대계 즉 닭섬이다. 김영삼 아버님은 김홍주옹으로 어려서부터 배사업을 하여 돈을 많이 벌어 아들 뒷바라지에 온힘을 쏫았다. 어머님은 박부연씨는 고정간첩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김영삼대통령은 어렸을 때 공부는 중간 정도였으나 패기가 있고 당차보였다고 하였다. 김영삼 생가가 있는 이곳은 바닷가에서 낚시도 가능하고, 건어물 판매점도 많이 있으며 식당도 여러 곳이 있고 이웃 외포항에 가면 여러 식당과 겨울철 대구와 물메기 천지이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앞산에 있는 김영삼대통령의 부친묘소도 한번 가보심이 어떠하실는지요? -대계(닭섬): 대계 (大鷄)마을, 본래 바닷가에 닭이 날개를 펴는 모양의 섬이 있어 닭섬이라 하였고, 북쪽은 작은닭섬이라 하였으며, 장닭이 우는 정기를 받아 김영삼대통령을 배출하였다고들 한다. |
2. 임진왜란 첫해전지...옥포해전 1. 원균의 원병요청 | • 1952년4월13일 임진왜란이 발생하여 그 다음날 부산진과 동래부과 함략되자 위협을 느낀 경상우수사 원균은 율포만호 이영남을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원병을 요청한다. 4월18일 원병요청을 유보하였으나 4월26일 선조왕의 유서(諭書)를 받고, 이순신은 4월29일 전라우수사 이억기와 협의하여 출전한다. | 2. 원균의 합류 | • 5월6일 경상우수사 원균은 전선 1척을 몰고와 당포에서 이순신과 합류. 그 당시 거제진장의 참여는 남해현령 기효근, 옥포만호 이운룡, 율포만호 이영남, 영등포만호 우치적, 지세포만호 한백록들이 판옥선 3척과 협선 2척을 타고와 합류하였다. | 3. 전라좌수영의 선단과 경상우수영의 선단 | •1952 그 당시 왜적의 침략코스인 부산지역의 수군배치현황은 경상좌수사 박홍 판옥선45척(또는75척), 경상우수사 원균 판옥선45척(또는75척), 전라좌수사 이순신 판옥선25척, 전라우수사 이억기 판옥선25척정도로서 경상도에 판옥선을 집중배치 했다. 그러나 직접 공격받은 경상좌수사 박홍은 판옥선45척을 없애고 도망쳤으며 원균도 판옥선과 군사 다 없애고 (불확실) 1척으로 이순신에게 왔고 그 후에 숨어있던3척이 합류하여 4척이 된 것이고 병사들도 도망하여 전투인원도 아주 적은상태였다. 그리고 경상우수영의 전선이 6척만 참여한 것은 경상우수영 관하 18개 진영의 자체방어를 위해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4. 침투항로 | •5월4일 전라좌수영의 진지 여수에서85척의 선단을 편성하여 출전 •5월5일 통영 사랑도를 지나 고성 당포에 정박 •5월6일 원균의 경상우수영 한산도에서 합류(전선6척). 거제 송미포에서 1박. 여기서 송미포라는 지명은 현재 多大임. *다대의 지명: 부산 다대포진의 옛 진터인 거제도 남단 古多大浦임. (현재의 지명은 多大임) •5월7일 정오경 이순신이 이끄는 91척의 함대가 안개 낀 옥포만으로 진격하여 왜선 26척을 불사르고 왜군을 많이 사살함. •5워7일 오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오다 합포에서 5척, 적진포에서 11척을 격침시켰다. •5월9일 이순신과 이억기는 여수로 돌아감. | 5.승리 요인 | •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군사작전 (확익진) • 해전 경험이 있는 장병을 돌격대로 선정( 1555년 을묘왜란 때 참전용사 130명 승선) • 지리에 밝은 수군이 선봉장: 합동함대 선봉장 옥포만호 이운룡, 좌측 경상우수사 원균은 중앙에서, 영등포만호 우치적은 우측에서 돌격함, • 첫째 우리 전함은 육중한 소나무로 만들어져 속도는 느리나 매우 견고했다. 반면 일본 전함은 삼나무로 만들어져 속도는 빠르나 선체가 약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해군은 주로 상대편 배를 들이 받았다(撞破戰術) •둘째 우리의 무기는 불화살과 대포(천지형황)를 이용했으나 일본은 조총으로 대항했으나 사정거리과 불과 50m 정도로 육지와 달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조총 50m, 대포 600~1200m) •셋째 정신적으로 해이한 일본 해군, 우리 해군이 힘을 못쓰자 일본해군은 자만심에 빠져 마을 점거하고 분탕질을 하고 있었다. 그 앞 엔 날 5월6일엔 율천성을 점령하였다. • | 6. 옥포대첩의 성과 | •옥포대첩으로 병선은 모두 침몰시켰으나 일부 패잔병들이 국사봉 쪽으로 도망치므로 용감한 射夫를 선발하여 추적했으나 산림이 울창하고 험난하여 추격을 중지하고 장목면 영등포 앞으로 항진하니 그 때가 오후 3시경 이였다. 어느 듯 석양이 지는 오후5시경 척후선으로 부터 급보가 날아들었다. <멀지 않는 바다에 왜적 5척이 지나갑니다.> 보고를 받고 함성을 지르며 추격하니 마산 합포 앞바다에서 배를 버리고 육지로 도망갔다. 다시 병선을 이끌고 은밀히 남포(의창군 구산면 남포리) 이동하여 밤을 지냈다. 8일 아침 수색을 하고 있던 중 저도를 지나 적진포(통영군 광도면 적진) 도착하여 빈배 11척을 불태워 버렸다. 다음날(9월1일) 이순신은 우수사 이억기와 함께 전라좌수영 여수로 돌아갔다. 이렇게 4월4일부터 8일까지 3일간 옥초, 합포, 적진포의 3해전을 합쳐 옥해전이라고 한다. (옥포해전의 성과) -적선 42선 격파(옥포 26척, 합포 5척, 적진포 11척) -노획물:정미 300여석, 노힉물자 5간 창고에 가득 | 7.옥포대첩의교훈 | •나라의 흥망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위태로울 때 임진왜란의 첫 옥포대첩은 거제의 지명에 따라 크게 구제한 구국의 섬으로 만들었고 전승의 교훈을 다음과 같이 남겼다. 1)왜수군의 선봉대 도오또오(藤堂)의 적선 26척을 박살내어 서쪽 전라도를 못 가게 만들었다. 2)왜 수군이 패전 하였으니 상륙하여 북진하는 왜 육군과의 통신 및 보급이 차단되었다. 3)우리 수군이 바다의 제해권을 잡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4)우리 수군과육상군 그리고 의병장령에 이르기까지 사기를 크게 높여 항전의 힘을 주었다. 5) 특히 옥포대첩 이후의 계속된 해전에서 연전연승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6) 일본의 대륙침략 야욕을 무산시킨 전투로 패전의 한 원인이 되었다 |
3. 임진왜란과 거제도옥포해전 일지 1271 | 왜구 침범이 자자지자 거제군민 거창군으로 이동 | 1422 | 1419년 이종무가 대마도 정벌하자 거제도민 환수 (152년) | 1465 | 경상우수영 오아포(가배)설치, 전라좌수영 해남에 동시 설치 | 1583 | 병조판서 율곡 이이는 10만 양변론 주장, 탄핵 파직 | 1590 | 일본에 파견한 특사의 상반된 의견으로 황윤길의 일본침략 조짐을 조정에서 동서파로 나누어 의견분분함. | 1592 | 임란시 조선은 경상우수사 원균, 좌수사 박홍이었고, 전라우수사는 이억기, 전라좌수는 이순신이었고 충청수사는 최호였다. 5개 수영의 군선은 166척으로 상근하는 수군은 수천명에 불과하였고, 대부분 어민들로 능로군(能櫓軍)이었다. | 1590 | 일본을 통일한 풍신수길은 동남아 침공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포르투갈 조총을 개량하여 대량 확충함. | 1592.4.13 | 제1진 소서행장을 필두로 제9진까지 700여척의 배로 167,700명의 군인이 몰려왔다. | 1592.4.14.~ | 4.15동래성 함략, 4.20대구,4.28충주성점령, 5.2 한성 점령5.20평양, 6월 함경도 침령하고 두왕자 인질로 잡았다. 왜군은 16만명이 조총으로 무장하고 덤비니, 조선군은 원시무기인 활로 대적하니 조선군 2만9천명은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었다. | 1592.4.14.~ | 경상좌수사 박홍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후퇴했으며 경상우수사 원균은 통영 당포 앞바다에서 패하자 놀라 싸우지 않고 사천으로 후퇴하여이순신에게 원병을 요청하게된다. | 1592.4.18 | 경상우수사 원균은 율포만호 이영남을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원병을 요청한다.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4월26일 27일 양일간에 선조의 유서(諭書)를 받고 출전을 결심한다. | 1952.5.4 | 전라좌수영의 전선24척,우수영61척 도합 85척( 판옥선24척, 협선15척, 포작선46척)이었다. 판옥선은 명종 10년(1555년) 을묘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병선으로 130명의 전투병을 승선시켰다. | 1952.5.4.~5.6 | 5.4여수출발하여 5.5당포정박하였다. 5월6일 원균이 전선1척을 타고 합류했으며 이어서 남해현령 기효근, 옥포만호 이운룡, 율포만호 이영남, 영등포만호 우치적, 지세포만호 한백록 등이 판옥선 3척과 협선2척을 타고와 합세하였다. 선단은 모두 91척이었다. 경상우수영의 전선이 6척만 참여한 것은 18개 진영에 자체 방어를 위함이었다. 그리고 전투에 참여할만한 전투함이 거의 없었다. | 1952.5.7.~ | 5월6일 당포에서 출발하여 오후에 거제 송미포(현 다대)에 정박하고 전략을 숙의하였다. 5월7일 가덕도를 향하여 진행하던중 옥포방향에서 신기전(神機箭)이 날아드니 옥포만에 적군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학익진(鶴翼陣)으로 전진한다. | 옥포해전 전야 | 1) 거제도 옥포에 진을 친 왜군은 5월6일 율포성( 현, 율천)을 점령하고 5월7일 10경 옥포로 돌아와서 민가에서 분탕질하고 점심으로 포식하고 있었다. 2) 이순신 함대가 옥포로 진격할 때 양지암 왜군초소에서 알고 왜군에게 알렸다면 전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연유(안개)인지 몰라도 왜군에게 연락이 되지 않았다. | 옥포해전 | 1) 우리 전함은 소나무로 만들어져 속도는 느리나 당파(撞破,육박전)전술에 유리했다. 2) 우리 전선은 화전(火箭, 불화살)과 대포( 天地玄黃)로 제압했다. 왜군은 신묵인 조총으로 대적햇으나 거리가 50m로 육전에서는 유리했으나 해전에서는 불리했다. 거기에 비해 조선군은 사정거리1,000m인 대포로 대항 했기에 해전에서는 유리했다. 3)옥포해전: 5월7일12경 옥포항에 도착하니 왜선 30여척이 정박중이라 불화살을 싸고 대포로 포탄을 쏘아대니 아수라장이 되었다. 적군이 올것이라 예측을 못한 왜군은 우왕좌왕하다 30여척의 배 중 26척은 격파하고 수많은 왜군들은 수장되었으며 일부 왜군은 연초 방향으로 모망쳤다. 3)옥포해전이란: 5월7일옥포에서 왜선 26척 격파 6척 도주, 5월7일 합포에서 왜선 5척 격파, 5월8일 적진포에서 왜선 11척격파 이 세곳에서 일어난 전투를 옥포해전이라 한다. | 거제도 육전 (거제도 의병) | 1) 5월7일 옥포에서 패전한 왜군들은 국사봉으로 숨어들어 5월8일 거제읍성(고현)의 비축양곡과 군비를 탐내어 침공하여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결사대를 만든다. 2) 제인국은 연초 하청 지역의 장정 200여명을 소집하여 연초 야부에서 칼과 창을 만들고 죽토에서 대창을 수집하여 송정에서 왜군과 대적하려 했으나 중과 부족으로 후퇴하였다. 3) 밀바대 전투: 거제현령 김준민의 관군 300여명과 제인국의 의병200여명이 합세하여 연초 열려천에 숨어있다 자정이 되자 일제히 공격하였다. 거제관,민 합동군에 놀란 왜군은 다공으로 후퇴하니 아수장이 되었다. 디공 들판은 온통 왜적의 피로 물들었음으로 이 승전을 밀어부쳤다고 하여 ‘밀바다’ 전투라 한다. ( 5월7일 옥포에서 해전이 일어나 왜군이 5월8일 연초로 진격하였다. 그런데 하루 만에 의병 200여명을 모아 대적하였다고 하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 거제읍성 함략 | 1) 경상우도 초유사 김성일이 거제는 이미 왜군이 상륙하였으므로 진주성 방어에 출동하라는 장계(狀啓, 글로서 아뢰는 문서)를 받고 5월10일 관군 300명을 이끌고 진주성으로 출전한다. 2)거제현령 김준민은 거제유림대표 제인국과 윤승보, 김후석, 신응수,김희진,윤영상 등과 상의하여 성주를 윤영상으로 지명하고 철통방어할 것을 제안한다. 3) 거제현령이 떠난 거제는 거제읍성을 지키기 위해 거제3장수를 동.서.남문에 배치하고 백성들과 함께 전투에 임했다. 그러나 왜군은 가조도 근방으로 상육한 왜군은 조총으로 무장하고 화살과 함께 무자비하게 공격하였다. 전투는 이틀밤낮으로 진행되었으나 전투 장비의 바닥으로 몽둥이나 돌맹이로 대적하였으나 중과부족으로 5월12일 성주 윤승보가 적탄에 쓰러지니 거제읍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 하청장터 설욕전 | 거제읍성 사수에 실패한 3장수는 국사봉과 남녀산에 숨어있었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3장수를 의병과 함께 하청장터에서 분탕질을 하고 솔르 잡아 먹고 술에 취해 잠이 든 틈을 타서 일제 반격하여 왜군을 몰살 시키니 이를 하청장터의 설욕전이라 한다. | 거제의사의 활동 | 거제도는 왜군의 점령지로 변했으며 특히 장목주변으로 성을 쌓고(3곳)장기전에 돌입했다. 성마다 약3,000여명의 병력이 포진하고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가 방대하였다. 그러나 육지는 왜군의 손아귀에 들어갔으나 해군은 이순신의 활약으로 조선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하청장터의 설욕전에 승리한 의병은 옥계성 신덕룡은 곽재우 휘하에, 제인국, 제억, 제진 그리고 그의 아들 홀록 그리고 신응수, 윤영상, 김희진, 김후석, 반중인, 조윤전 등은 이순신 휘하로 들어가 큰 공을 세웠으므로 후에 선무원종공신으로 포상하였다. |
4. 옥포대첩 참전 선무공신 등위 | 직위 | 직책 | 성명 | 비고 | 1 | 전라좌수사 | 연합함대 총사령관 | 이순신 | 1대3대통제사1598.11.19전사 | 1 | 경상우수사 | 연합함대 사령관 | 원균 | 2대통제사, 1957.7.16전사 | 2 | 전라우수사 | 연합함대 사령관 | 이억기 | | 3 | 방답첨사 | 중위장 | 이순신 | 거제방답이 아님 | 3 | 남해현령 | | 기효근 | | 3 | 옥포만호 | 선봉장 | 이운룡 | 7대통제사 |
등위 | 직위 | 직책 | 성명 | 비고 | 1 | 홍양현감 | 전부장 | 배흥립 | | 1 | 율포만호 | | 이영남 | 이순신에 원병요청 | 1 | 군관 | 돌격장 | 이언량 | | 1 | 영등포만호 | | 우치적 | 10대 통제사 | 2 | 여도권관 | 좌측후장 | 김인영 | | 2 | 지세포만호 | | 한백록 | 1592.5.7.전사 (옥포해전) | 2 | 광양현감 | 중부장 | 어영담 | | 2 | 전봉사 | | 김효성 | | 2 | 훈련봉사 | | 변존서 | | 2 | 군관급제 | 참퇴장 | 배응록 | | 2 | 보성군수 | 우부장 | 김득광 | | 5. 옥포대첩 참전 선무원종공신 6.임진왜란과 거제의사의 포상 (선무원종공신) 선무원종공신이란 | 임진왜란 시 전공을 세운 관원이나 장병 그리고 의병에게 포상함. 거제에는 22공신 (전체 2,475명) | 1등공신 | 신응수, 윤영상, 반중경, 김희진, 신덕룡 | 2등공신 | 윤승보, 여막동, 김옥춘, 반관해, 옥계성, 윤흥량, 조윤전, 제인국, 제억, 이언량, 반중인, 김후석, 제진, 유록상 | 3등공신 | 제홍록, 윤개, 원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