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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활이요 생명 (요한복음 11장 17절~32절) - 마리아와 마르다 (누가복음 10장)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게 하시고
생명으로 부활케 하기 위해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말을 듣고도 이틀 후에
나사로를 살리기 위하여 유대로 가시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이 약속의 말씀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무덤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생명으로 부활케 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를
만나게 되는데 본문 17~20절을 보면 ....
요11:1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요11: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요11: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요11: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예수님이 위문하러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르다는 달려나가 예수님을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아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두 사람의 신앙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 나사로처럼 생명으로
부활하게 되는지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예수님이 오셨으니
예수님이 원하시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것을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마리아임을
본문 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마리아는 예수님께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자신이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을
예수님께 드려야 하나님께 복을 받고
사랑을 받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마리아 자신의 죽음을 대신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리아 자신도 생명으로
부활할 것을(복음의 말씀을) 알게 된 마리아가
자신의 죽음을 위하여 준비한 향유를 죽음의 길을
대신 걸어가시는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린 것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마리아는 복음의 말씀을 알고 믿고 있는
믿음의 용사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사람이 죽으면 생명을 부활한다는 것도 다 알고는
있지만 아직 믿음에 이르지 못한 사람임을 말합니다.
본문 39절을 보면 마르다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줄 모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으로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임을 알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요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지 못할 것으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아직 믿음에 이르지 못한 마르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같이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려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11:42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처럼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죄로 인하여
지옥불로 향하는 자들의 생명을 살리시기 위하여
오신 메시아임을 믿게 하시려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마리아와 마르다는 자매로 동일하게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데
이들의 믿음은 어떤 것에서 차이가 나게 되었는지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누가복음 10장을 봅니다.
먼저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를 기록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 위하여 문맥을 먼저 살펴봅니다.
누가복음 10장 21절을 보면 ....
눅10:21 <예수의 감사 기도>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하나님이 복음의 말씀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알고 깨닫게 하시니
감사하다는 것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깨달아 믿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말씀인데
여기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것이라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어지는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말씀하고 있는
율법 교사와 같은 사람을 말하고
어린 아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은 사람을 말하는데
이어지는 38절부터 나오는 마리아와 같은 사람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어지는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잠시 살펴보면 ....
율법 교사는 성경의(율법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고
성경의(율법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예수님은 30~32절에
한 제사장과 레위인으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눅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눅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눅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제사장과 레위인은 죽은 사람이나 피 흘린 사람을
만지지 않아야 정결한 사람이 되어
성전에서 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지나간 것입니다.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강도 만난 사람은 복음을 알지 못해
지옥불로 향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을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살리는 임무는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있다고
여호와 하나님은 율법의 말씀을 통하여
모형과 그림자로 말씀하고 있는데
문자 그대로만 보고 강도 만난 사람의 생명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책망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은 그와 반대로
강도 만난 사람을 구원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사마리아 사람은 유대인이 이방인(사마리아인)
취급을 하고 있는 예수님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강도 만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사마리아인을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인 복음의 말씀을 아는 것이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율법의 말씀을 모두 지켜 의로운 자들이
되려 하는 자들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라
예수님은 누가복음 10장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맥으로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임을 기억하고
어린 아이와 같은 자와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누구인지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를 통하여 하고 있는
이어지는 38~42절을 보면 ....
눅10:38 <마르다와 마리아>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눅10:39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리아는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는 자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복음의 말씀을 먼저 알려는
마리아와 같은 신앙인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려는 마음보다 이웃을 대접하려는 마음이
앞서있는 모습을 이어지는 40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눅10:40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참고로 저는 봉사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생활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전해드리고 있는 것으로
복음의 말씀을 알고 믿는 것이 먼저이며 그 후에
봉사와 헌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마르다는 우리의 생각처럼 복음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려는 것이 아니라
봉사와 헌신을 먼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인
복음을 아는 것이 먼저라 말씀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41~42절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눅10: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눅10: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동생 마리아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려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있어
복음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용사가 되어
구원을 받은 자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어린 아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으로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의 말씀을 깨달은 자로
자신이 가야 하는 죽음의 길을(지옥불이 고통)
대신 걸어가시는 예수님께 자신의
죽음을 위하여 준비한 향유를 부어 드린 것으로
마리아는 믿음의 용사임을 알 수 있고
마르다와 같이 믿음이 부족한 자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표적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 믿음이란 무엇이라 생각하고 계십니까?
사무엘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기 위하여
살찌고 좋은 양과 소를 끌고 온 사울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0~23절을 보면 ....
삼상15: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삼상15: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왕과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씀인데 ....
아말렉은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할 때에
가장 뒤에 처진 연약한 자를 공격한 자들로
육신이 연약하여 죄를(율법을) 범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모습을 모형합니다.
육신이 연약하여 죄를 범할 수 밖에 없어
지옥불로 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것이 아말렉인데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율법을
완전하게 해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여리고 성에 있는 모든 것을
여호와께 바쳐야 한다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아말렉 왕과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제물을 끌고 왔다는 것은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 잘 보이려는 봉사와 헌신이 먼저라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아간이 여리고 성에 있는 좋은 것을
훔친 것과 같은 것으로 복음을 배척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고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복음의 말씀) 아는 것을 먼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이 구원이요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로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미가서 6장 6~8절을 봅니다.
미6:6 <여호와께서 구하시는 것>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미6: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여호와께 드려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우리가 아무리 착하고 선하게 살며 봉사와 헌신을 하고
주일 예배를 빠지지 않고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이것이라고
이어지는 8절은 말합니다.
미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표준새번역으로 다시보면 ....
미6:8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선한 것이 무엇인지 성경의(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이미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타락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창세기 1장)
계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여러 가지 모형과 그림자로
그 약속의 말씀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고
때가 차매 약속의 말씀대로 메시아를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다 이루어 주셨다는 것으로 선한 것이
무엇인지 이미 다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것으로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약속의 말씀을 이루어 주신 것을
아는 것이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잘 보이려는 행위보다 먼저 할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십자가를 통하여
어떻게 나를 사랑해 주셨는지
먼저 아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마르다와 다르게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알려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복음의 말씀을 들은 것이며
마르다는 유대인들처럼,
율법교사와 같이 행위로(봉사와 헌신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 한 것입니다.
이러한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본문 25~26절에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요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것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잠자는 나사로를 살리는 것처럼
생명으로 부활할 것을 말하는데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이 복음을 믿다가
육신이 죽은 자들이 살아난다는 말씀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뜻이며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은
신약 교회의 모습을 약속의 말씀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주신 것을 믿는 사람도 생명으로 부활할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육신이 죽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 아닌 것으로
육신은 반드시 죽되 생명으로 부활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처럼 본문의 말씀은 마리아와 마르다의
신앙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창세 전에 타락한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구원하실 것인지를 계획하시고 약속하셨으며
약속하신 말씀을 십자가를 통하여 다 이루어 주신
복음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믿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은 이런 것을
좋아하시겠지? 하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되 창세 전에 계획하시고
약속하셨으며 약속하신 말씀을 십자가를 통하여
다 이루어 주신 복음의 말씀을 믿는 것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어떤 신앙생활이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오직 복음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믿는 것임을 잊지 마시고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이 걸어야 할 지옥불의 고통을
대신 걸으시고 생명으로 부활케 하려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에 힘쓰고 애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