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운 放談(사세보 햄버거와 부대찌개) 대한문학세계 기자, 소운/박목철
꿀꿀이 죽을 아시나요?
한국전쟁이 나고 몸만 겨우 빠져나와 살길을 찾던 피난민들은 당장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다.
피난민들이 최종적으로 모여든 곳은 부산이었지만 부산은 피난민이 살기에 좋은 곳은 아니었다.
해안가를 따라 좁게 시가지가 형성돼 있고 뒤로는 산비탈이 자리해 평지가 거의 없는 지형이라
피난민들은 산비탈에 레이션 상자로 움막을 치고 비바람은 겨우 피했으나 먹거리는 물론 식수마저
구하기 어려워 힘든 삶을 살아야 했다.
전쟁통이라 제대로 된 직업이 있을 리 없으니 당장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가기도 버거웠고,
제대로 된 식사를 끼마다 챙긴다는 것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라 음식의 질은커녕 굶지만
않아도 행운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다. 시장에 가면 꿀꿀이 죽이라는 음식을 팔았는데,
적은 돈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이것을 사 먹겠다고 줄을 서기도 했고 이마저 사 먹을 수
없는 사람도 많았다. 지금 세대는 꿀꿀이 죽의 정체를 알면 기절을 할 일이고,
차라리 굶어 죽고 말지 하는 배부른 소리를 할 것 같지만, 실제로 굶어보면 얘기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꿀꿀이 죽은 미군 부대 식당에서 나온 잔반을 끓인 음식으로 말 그대로 돼지나 먹어야 할 음식이기도
하다. 식당에서 미군들이 식판에 담은 음식을 먹다 남으면 커다란 식깡에 털어 넣고 식판을 식판
반납 구에 넣게 되어있다. 커다란 식깡에는 온갖 음식 찌꺼기가 쌓이게 마련이고 이걸 버린다고 빼 와
업자에게 넘기면 끓여서 파는 게 소위 꿀꿀이 죽의 정체이다.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던 시절에 꿀꿀이 죽에는 스테이크 조각도 있고 햄이나 소시지 등
고기가 들어 있을 때가 많다.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보이거나 어쩌다 담배꽁초도 섞여 있기도 하지만,
더럽다는 생각보다는 귀한 고기를 헐값에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다.
국자로 막 퍼서 주다 보니 운이 좋으면 커다란 고기 조각이 들어있고, 재수 없으면 담배꽁초도 나오게
마련이다. 뭐가 나오든 아무도 하루의 일진이 좋고 나쁨 이상의 의미는 두지 않았다.
꿀꿀이 죽보다는 한 단계 위의 음식이 소위 부대찌개다.
처음에는 의정부 부대찌개라는 지역 명칭이 붙기도 했지만, 지금은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접하는
우리의 음식으로 자라 잡은 것이 부대찌개다.
부대찌개는 먹다 버린 잔반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역시 폐기해야 할 남은 음식을 빼 온 것이라
고 생각된다. 햄이나 베이컨, 햄버거에 들어가는 고기 패드 콩 통조림까지, 부대에서 나올 법한
것은 다 집어넣고 김치를 더해 얼큰하게 끓인 것이 소위 부대찌개다.
부대찌개도 한국전쟁이 탄생시킨 아픈 음식이라는 것을 알고 드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이다..
* 사세보 햄버거, 계란 후라이, 베이컨, 고기 패드 등이 보인다. 맛은 좋았다.
* 가게를 다녀간 사람의 사인이 보이고, 철사를 이용한 장식이 멋있어서 촬영을 했다,
사세보 햄버거,
일본도 꽤 어려운 삶을 산 흔적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사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일본은 겨우 식량이나 자급자족하는 농업 국가로
키우려던 것이 미국의 생각이었고, 실제로 먹고살기 어려워 미국에 기대서 어렵게 생존해야 했다.
사세보에는 사세보 햄버거가 있다.
사세보는 아시다시피 미군 해군 기지가 있는 곳이라 사세보 햄버거라는 간판을 보고 문득 우리의
부대찌개나 꿀꿀이 죽을 떠올리게 되었으니 전쟁을 겪은 세대의 짐작이겠지만,
아마 젊은 세대는 전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사세보에서 햄버거 간판을 여럿 보았으나 막상 먹어 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이번 여행길에는 일부러 햄버거를 시식하기로 미리 얘기가 돼 있어서 저녁 한 끼를 햄버거로 하기로
했다. 유명한 햄버거 가게의 분점에서 사세보 햄버거를 맛보았다. (본점은 주차도 어렵고 사람이
많아 불편하다는 소리가 있어 분점을 택함)
내용물을 보니, 베이컨 조각도 들어있고 계란후라이도 들어있고 고기 패드도 들어 있다.
우리가 햄버거를 흉내 낼 때 쉽게 택하는 것이 계란 후라이 였기에, 일본인들도 우리의 부대 찌개 처럼
이것저것 부대에서 나온 부산물을 이용해 햄버거를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맞는 것 같다.
* 일전 방문 때 찍은 사진이다. 정박한 군함이 보인다. 상부 구조물이 이지스 함인 것 같다.
전쟁을 잊은 세대,
사세보 햄버거의 가격은 우리와 비슷하다. 콜라 까지 우리 돈으로 8천 원 정도 ?
깔끔하고 세련되게 가꾼 가게에서 젊은이들이 행복하게 햄버거를 먹으며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 같지는 않다. 부대찌개를 먹는 우리의 젊은 세대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태평양 전쟁이 가져다준 사세보 햄버거, 한국전쟁이 가져 준 부대찌개, 혀를 행복하게 하는 맛
뒤에 있는 아픔을 모두가 잊고 있다. 정신 차리고 국력을 길러야 한다. 힘이 없으면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꿀꿀이 죽을 맛 있다고 먹는 비참한 지경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맛있는 사세보 햄버거를 먹으며, 꿀꿀이 죽을 생각하다니 역시 틀딱 세대의 궁상은 어쩔 수 없나 보다.
* 내용은 기자의 자의적 판단이므로 사실과 다를 수도 있고, 잡지사의 견해와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