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_ 추억의 게임은 어떻게 세상물정의 공부가 되었나?
프롤로그_ 슈퍼마리오│팔열팔한지옥의 마리오 -임태훈
1장 오락실 지능 계발 키드의 추억
너구리│그 많던 너구리와 뱀들은 어디로 갔을까? - 오영진
더 킹 오브 파이터즈│1990년대 아케이드 게임의 어벤져스 - 강신규
갈스패닉│이것은 야한 게임이 아니다 - 홍현영
스페이스 인베이더│비디오 게임은 우주 전쟁을 어떻게 구현하는가 - 나보라
오락실│오락실의 추억과 게이머 시민권 - 신현우
[Cartoon] 그때 그 게임 - 박지혜
2장 가정용 게임기의 충격
팩맨, 동키콩│게임이 스토리텔링이 된 순간 - 전홍식
파이널 판타지 6│스팀펑크, 아포칼립스, 그리고 로맨스 - 이정엽
비디오 게임기│1990년대, 게임기라는 권력 - 김민섭
플레이스테이션|플레이스테이션과 플스방 - 이경혁
[Cartoon] 그때 그 게임 - 박지혜
3장 게임이야말로 인생 학교
삼국지│게임 캐릭터의 스펙과 현실의 스펙 - 이경혁
프린세스 메이커 2│12살 아버지였던 청년들에게 - 김민섭
심시티│여러분의 도시는 재미있나요? - 전홍식
화이트데이│그 불안의 이름을 말하게 하라 - 홍현영
비디오 게임|비디오 게임은 어떤 놀이를 꿈꾸는가 - 나보라
[Cartoon] 그때 그 게임 ? 박지혜
4장 게임은 다른 세계를 꿈꾼다
라그나로크 온라인│친구들도 추억도 가득했던 그때 - 오영욱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플레이어와 함께 써내려가는 대서사시 - 강신규
애니팡│게임을 위한 자원이 된 친구들 - 오영욱
댓 드래곤, 캔서│타인의 고통에 연루된 게이머들 - 오영진
스타크래프트│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문화 - 신현우
[Cartoon] 그때 그 게임 - 박지혜
연표_ 81년생 마리오의 생애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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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추억의 게임은 어떻게 세상 물정의 공부가 되었나?
그 시절 오락실 입구에는 ‘지능계발’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오락실을 머리 좋아지려고 다니는 아이는 없었다. 게임이나 하다간 바보 된다는 소리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어른이 될수록 하잘것없는 시간 낭비로 비난받는 일의 목록은 점점 늘어났다.
학교와 집에선 시간 아껴서 공부하라고 했다. 누군가는 독하게 그 말을 따랐다. 하지만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 돼라.”하셨던 어르신 말씀은 3분의 1만 맞았다. 공부 열심히 한다고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사람 될 수 있는 공부가 절망적으로 결핍된 사회가 이 나라다. ‘훌륭한 사람’의 진짜 뜻도 알고 보니 ‘부자’였다. 부자 될 수 있는 공부를 열심히 하라던 어르신 말씀을 성공적으로 실천한 이들의 이름은 언제 들어도 찬란하다.
개중에는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총애를 받고 청와대에 입성한 전설적 검사님이 계시는데, 쉰 살이 넘도록 ‘소년 급제’ 타이틀을 달고 다니신다. 이분도 소싯적에 오락실 좀 드나들어 보셨을까? 바보들이 득실거리는 그곳엔 눈길도 안 주셨을까?
결국은 돈 버는 일이 인생의 기술이자 세상 물정의 공부였다. 그것 말고는 뭐든 쓸데없는 일 취급하는 사회에 태어나서 꾸역꾸역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별거 없었다. 사회생활은 열심히 살아가는 일에 침을 뱉는 모욕의 연속이었다. 근래 못마땅한 대통령 하나 바뀌긴 했으나, 예전과 다르게 살 방법에 우리 대부분은 서툴고 용기마저 부족하다. 이런 사회에서 언젠가 어른이 될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시시한 어른의 깜냥이지만 하나는 약속할 수 있다. 어떤 일도 함부로 시간 낭비 취급을 받아선 안 된다. 모든 형태의 삶이 돈벌이의 기준으로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하고 복잡한 공부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게임이라고 예외일 리 없다.
부자 되는 공부를 강요받느라 못했던 일의 목록을 떠올려봤다. 오락실 입구에 붙어 있던 ‘지능계발’ 문구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그 말은 난센스가 아니었다.
알록달록한 픽셀이 점멸하는 비디오 게임의 세계는 플레이어의 눈과 손뿐만 아니라 일상의 리듬과 속도에 밀착되어, 한 시대의 풍경을 비추는 거울로 변한다. 왜 그때 우리는 그 게임을 하고 싶었을까? 무엇이 <슈퍼마리오>와 <너구리>, <동키콩>, <프린세스 메이커>와 <애니팡>, <스타크래프트>에 열광하게 했을까? 그저 재미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게임과 플레이어를 둘러싼 사회, 정치, 경제, 문화의 역사적 맥락을 읽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리가 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진단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것은 20세기 문화사를 통틀어 문학과 영화를 진지하게 사유했던 이들의 과제와 작업을 닮았다. 하지만 문학과 영화가 전성기를 누렸던 미디어 환경은 지난 시대의 일이다. 비디오 게임이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지금과 비교하면, 인간의 의미부터가 달라졌다.
오늘날의 인간은 온갖 종류의 전자 기기에 붙들린 채 아톰 비트(bit)의 질주를 받아내는 네트워크의 일부로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플레이어는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일까? 이들은 어떻게 새로운 힘의 지도에 포획되거나 도망칠 수 있을까? 우리가 게임 속의 누군가가 된다는 것은 게임을 둘러싼 세계의 고유한 제약에 몰입하는 일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할 수 있는 세대의 출발점을 이 책의 저자들은 1981년생으로 설정했다. 그해에 전두환은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한민국은 자국민을 학살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파쇼 국가였다. 이런 나라에서도 아이들은 많이 태어났다. 1981년에만 출생아 수는 86만 명에 달한다. 2014년과 비교하면 2배나 높은 출생률이다. 이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은 당연히 컬러 방송이 가능한 장치였다. 1981년은 한국에서 컬러TV 방송이 시작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시기이기도 했다. 미국에선 MTV가 개국하고 최초의 IBM PC가 출시됐다. 그리고 닌텐도의 비디오 게임 <동키콩>에 슈퍼마리오가 처음 출연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굴렁쇠를 굴렸던 소년이 태어난 해도 1981년이었다. 굴렁쇠 소년의 동년배들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초고속 통신망과 인터넷 붐을 겪었다. IMF 이후로 신자유주의가 사회의 지배 논리로 고착되는 과정을 지금 이 순간에도 감내하고 있는 세대이기도 하다. 경제 성장률이 최고 13.2%(1983년)에 달했던 고도 성장기에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30대 이후의 삶에 닥칠 미래는 저성장, 경제불황, 인구절벽의 삼중고에 갇혀 암울하다. 한국에서 비디오 게임은 이 세대의 생애주기와 함께하며 대중문화의 한 축으로 안착했다. 추억의 게임을 호명할 때마다 우습고 아픈 일들이 덩달아 떠오를 수밖에 없다.
『81년생 마리오』는 인문학협동조합이 2017년 7월부터 9월에 걸쳐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한 글을 뼈대로 새로운 원고를 보강하고 전체 구성을 가다듬은 책이다. 게임연구와 현장 비평, 문학과 문화, 미디어 비평, 뉴미디어 아트 등에서 활약해온 12인의 저자(오영진, 강신규, 홍현영, 나보라, 신현우, 전홍식, 이정엽, 김민섭, 이경혁, 오영욱, 박지혜, 임태훈)가 글을 모았다.
이 책은 1990년 5월에 있었던 ‘90 현대컴보이 슈퍼마리오 대축제’에서 시작해서 2017년 7월 30일 광안리에서 열린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 론칭 행사로 마무리된다. 그 사이로 여러 시간대와 장소를 오가며 한국 사회의 일상과 문화에 게임이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는가를 추적했다. 오락실과 PC방의 흥망성쇠, 비디오 게임의 메커니즘과 현대 자본주의의 상동성, 게임과 계급, 젠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게임을 소재로 그린 박지혜 작가의 카툰은 이 책에 담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이 책을 엮은 인문학협동조합은 2015년 7월과 11월에 대중강연 <헬조선에서 게임을 읽다>와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 게이미피케이션과 신자유주의의 통치전략>을 열어 우리 시대의 문제적 텍스트로 비디오 게임을 주목할 것을 제안했다. 2016년 2학기부터는 성균관대에서 <게임과 인문학>, <게임과 현실>을 정식교양 과목으로 개설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인문학협동조합은 『81년생 마리오』를 기점으로 지난 2년간의 게임 인문학 연구 성과를 책으로 묶는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후속 작업에 대한 기대도 독자 여러분께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