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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원갑자에 김부식 사망 신미양요가 발생하니 서둘러 개방해야했다.
음상원갑자에 고려에 지진이 나고 수양제가 고구려로 100만을 이끌고 출발
양중원갑자에 만주사변발생,전국 韓나라 멸망,남명조식,장수왕 사망 등 우리에겐 좋은해가 아니다.
음중원갑자엔 케사르가 로마로 돌아온다,미천왕이 서안평공격,미국은 이제 무르익어 독립을 준비한다
양하원갑자엔 소년이 붕괴하고 러시아로 바뀐다.바이킹이 프앙스에 국가를 세운다.타지마할 건설시작
음하원갑자엔 소수림왕,문종 등 문치주의임금 등극,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으니 정권이 바꿨어야 했다.
그리고 목기운을 수렴하고 다음간지 申을 관대하다.
물론 성격이 아니면 잘난척하고자 한다. 정재입고의 해로움은 있다.
새누리당 전여옥,야당 김한길,진보당의 이석희,이정희씨,배구 김세진가 신미일주이다.
김수환추기경,강증산선생도 신미생이시다
상원갑자
2051년
60년전 소련이 해체됨에 따라 소련에 속했던 여러 지역이 독립 국가로 탄생했으며 이 때부터 '중앙아시아'라는 지명이 첫선을 보였다. 발트 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도 함께 독립했다.
지난 해 8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가 계속 철군하지 않자, 결국 새해 초반,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선전포고를 하고 이라크를 침공한 걸프 전쟁이 일어났다.
동양방송 이후 10년 3개월 만에 또 다른 민영방송사인 SBS가 개국한 해이다. 신방겸영 금지 시절 유일한 민간 지상파 방송사였다.
1691년 미셸 롤에 의해서 롤의 정리가 증명되었다
60년전 인도에서 타지마할 건설이 시작되었다. 후추가 고가덕이다
40년전 독일의 해변에 대홍수가 몰아닥쳐 수천명이 익사하였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이 항해법을 공포하였다
30년전정성공이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고 타이완 남부를 점령하였다.
순치제죽고 강희제 61년통치 시작
20년전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천문학자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가 토성의 위성인 이아페투스를 발견하였다.
20년후 건륭제 : 청나라의 6대 황제탄생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요제프 1세사망
카를 6세 즉위
30년후 핀란드에서 뉘스타드 조약이 체결되었다.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 제국을 세웠다.(~1917년.)
40년후 청나라 중기의 건축서인 흠정공정주법칙례이 편찬되었다.
60년후 - 조선에서 균역법이 공포되었다
택리지가 저술되다
1331년 충렬왕 즉위
고다이고 덴노의 반 막부 운동 소식이 측근에 의해 누설되면서 그는 호조씨에 의해 폐위되고 왕자가 고곤 덴노로 즉위하였다. (북조의 1대 덴노)
비잔티움 제국의 도시 니케아가 오스만 군대에게 함락되었다.
60년전 바이바르스가 직접 아크레를 포위하였으나 9차 십자군에게 격퇴되었다.
- 쿠빌라이 칸이 국호를 원으로 고쳐 원나라 시대가 개막하였다.
툴루즈 백국이 프랑스 카페 왕가의 직할령이 되었다
40년전 십자군 국가의 소멸과 스위스의 성립.220년여 십자군전쟁 끝나다
- 제노바의 반디노와 우글리노 형제가 인도 제국를 향한 항해를 시작하였다. (대항해시대의 시초) 그들은 다시 기록되지 못하였다.
치악성 전투에서 원충갑이 이끈 고려 군민이 카다안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30년전 - 일 칸국 군대가 시리아로 진입, 알레포 일대를 약탈하였으나 곧 회군하였고 아르메니아 - 키프로스군대도 곧 철군하였다.
- 에드워드 1세의 아들 에드워드가 카나번에서 초대 웨일즈 공으로 즉위하였다
20년전 원인종이 4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 할미로스 전투에서 카탈로니아 용병단이 아테네 공작인 브리엔느 드 월터를 전사시키고 아테네 공국을 정복하였다
20년후 오스만 제국이 다르다넬스 해협을 넘어 발칸 반도로 진출하였다.
인도 제국 신드 지방에 삼마 왕조가 세워졌다.
원나라에서 홍건적의 난이 더욱 기세를 얻었다.
고려 제 30대 국왕 충정왕이 원나라에 의해 폐위되고 공민왕이 31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30년후
홍건적이 고려의 수도 개경을 공격하였다
40년후 신돈사망
60년후 고려의 12개 사학인 사학 12도가 폐지되었다.
빈민과 병자를 구제하기 위해 광종 14년에 만들어진 기구인 제위보가 해체되었다.
토지 제도인 과전법이 만들어져 조선 전기 양반사회의 경제 기반을 이루게 된다
971년 12월 고려에 지진이 발생하였다. 각지의 호족과 백성들은 광종의 탓으로 돌렸고, 이를 겨우 수습하였으나 972년 2월 다시 대지진이 발생하였다.요나라 성종이 태어남
60년전 프랑스의 왕 샤를 3세이 바이킹의 우두머리인 롤로와 생클레르쉬레프트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서 샤를 3세는 바이킹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바이킹들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 정착하는 것을 허가하는 대신 바이킹의 약탈행위를 금지하였다. 이후 롤로는 노르망디 백작에 임명되어졌다.
- 콘라트 1세가 동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라미로 2세가 레온 왕국의 왕이 되었다.
후우마이야 왕조, 탕헤르와 세우타 일대 점령, 지브롤터 해협 통제권을 얻게 되었다.
에릭 블러드액스가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
30년전 콘스탄티노플에서 비잔티움 제국과 키예프 대공국 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20년전 곽위가 카이펑에서 후주를 건국하였다.
오대십국시대의 북한이 건국되었다.
오대십국시대의 초나라가 남당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11년전 후주에서 송나라로
10년후 - 비잔티움 제국군이 파티마 왕조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실리스트라에서 비잔티움 제국군이 키예프 대공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후 제1차 불가리아 제국군이 비잔티움 제국을 공격하였다.
성종(고려)이 고려 6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후우마이야 왕조의 실권자 알 만수르가 갈립을 아티엔자에서 전사시키고 권력자들에 대한 숙청을 단행하였다
30년후 올라프 1세가 이끄는 바이킹군이 앵글로 색슨족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40년후 폴란드의 군주 볼레스와프 1세가 슬로바키아의 일부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데인 (노르만/바이킹) 군대가 잉글랜드 군대를 패배시켰다. (1차 알톤 전투, 데본 전투)
아이슬란드 바이킹의 빈랜드 식민지가 형성되었다.
백두산이 분화하였다.
60년후 발렌시아 토후국마저 후우마이야 왕조로부터 독립하며, 1차 타이파 분열이 확실해지고, 칼리파 국의 운명이 결정된다.
마흐무드가 가즈니 제국의 수도를 라호르로 정하였다
611년 수 양제는 군사를 탁군(啄郡)에 집결시킨 뒤, 612년에는 자신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611년부터는 신라진평왕 백제와의 전쟁이 격화되었다. 10월에 백제가 가잠성(椵岑城)함락
60년전 후경이 소동을 황제 자리에서 몰아내고 양나라의 황제를 자칭하였다. 이에 국호도 한(漢)으로 고쳤으며 죽은 소강의 딸 율양공주 소씨를 황후로 삼았다.
돌궐 제국이 성립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의 함대가 동고트 왕국의 함대를 격파하였다.
50년전 프랑크 왕국을 통일하였던 클로타르 1세가 사망하자 그의 네 아들들에 의해 프랑크 왕국이 다시 분할되었다.
고담(북제)이 북제 4대 황제가 되었다.
40년전 베네벤토가 랑고바르드 공작령의 수도가 되었다
30년전 사발략가한이 동돌궐 제5대 가한이 되었다.
양견이 그에게 대항하는 반대 세력을 제거한 뒤 9세인 정제에게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의 자리에 즉위하면서 북주가 멸망하였다.
10년전아우구스티누스가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10년후 당나라의 이세민군이 하나라의 두건덕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헤라클리우스가 아바르족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20년후 슬라브족이 프랑크 왕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칠숙·석품의 난이 발발하였으나 진압되었다.
30년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헤라클리우스가 병에 걸려 죽고, 그를 이어서 콘스탄티노스 3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40년후 야즈데게르드 3세가 살해당하면서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였다.
60년후 신라가 나당전쟁중에 당나라로 부터 사비성을 탈환하여 소부리주를 설치하다.
251년에 중천왕 측실 관나부인(貫那夫人)이 왕후 연씨(椽氏)를 시기하여 모함을 하자 왕이 분노하여 관나부인을 가죽 주머니에 넣어 바다에 수장하는 처벌을 하였다.위의 사마의 사망
60년전 양인 전투에서 손견군이 동탁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고구려에서 연나부의 귀족 좌가려와 어비류가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을파소가 고구려의 국상이 되었다.
40년전 카라칼라, 게타가 로마 제국의 공동 황제가 되었다.
카라칼라가 게타를 살해하고 단독 황제가 되었다.
한수가 마초 등 서량의 군벌들과 함께 거병하여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조를 공격했다
30년전 유비가 촉한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되었다.
촉한과 후한의 군벌 손권 세력 사이에 이릉대전이 발발한다.
20년전 촉한의 제갈량이 위나라를 치는 4차 북벌에 나섰다.
북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산 제국과 로마 제국군이 대치하였다
10년후 로마 황제 갈리에누스가 밀라노에서 게르만족을 격퇴하였다.
미추 이사금이 신라 13대 왕이 되었다.
20년후 피아첸차 근처에서 게르만족이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게르만족은 이곳에 있는 도시를 약탈하였다.
30년후 로마 제국의 황제 프로부스의 승전을 축하하는 개선식이 로마에서 거행되었다.
서진의 농부가 위 양왕의 무덤을 도굴하여 죽서기년이 발견되다.
40년후 거질미왕이 가락국 4대 왕이 되었다.
사마염이 죽은 이후 팔왕의 난이 발발하였다.
50년후 사마륜이 서진의 황제인 사마충의 자리를 찬탈하여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사마경을 포함한 많은 황족들이 사마륜에 맞서 거병하였는데 이 와중에 사마륜의 조카 사마옹이 그를 배신하여 사마륜과 그의 가족은 목숨을 잃는다.
- 산마리노 공화국이 건국되었다
60년후
고구려가 요동 서안평을 정복하였다.
유총이 군대를 이끌고 서진의 도읍 낙양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뒤 서진의 황제 사마치를 사로잡았다. 황태자인 사마전을 포함한 3만명이 살해되었고, 낙양은 약탈과 방화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로마 황제 갈레리우스가 니코메디아에서 제국 내에서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는 칙령을 공포하였다.
한무제 기원전 111년에는 번우(番:廣東)에 도읍한 남월국을 멸망시켜 9군을 두고 110년엔 . 태산(泰山)에서 봉선(封禪) 의식을 거행한 것을 계기로 개원하였다.
bc470년 손무가 죽고 고대 서양의 사상가인 소크라테스 탄생
상원갑자
1871년 신미양요. 미국과의 전쟁.
60년전 파라과이가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
아메데오 아보가드로가 아보가드로의 법칙을 발표하다.
- 홍경래의 난 발생.
40년전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 의해 한국 가톨릭최초의 교구인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설정되다.
브라질 제국에서 노예 무역이 금지되다.
- 찰스 다윈이 비글호와 함께 여정을 시작하다.
-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유도의 법칙을 발견하다. 학회에 정식으로 발표하는 것은 8월 29일
30년전 아편전쟁: 영국군이 홍콩을 점령한다. 이후 1997년 반환까지 156년 동안 홍콩은 영국의 영토가 된다.
엘살바도르가 독립을 선언하다
20년전 안동 김씨가 다시 세도정치를 시작하다.
- 홍수전이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키다. 이 때부터 14년간 지속된 이 난은 무려 2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된다.
프랑스 제2공화국의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다.
20년후 시베리아 횡단철도 기공식 참석후 일본 제국을 방문중이던 러시아 제국 니콜라이 황태자가 자객에게 칼에 맞는 오쓰 사건 발생
에디슨이 최초의 등사기를 대중에게 공개
30년후에는 영일동맹
40년후 신해혁명이 일어났다. 이 혁명은 청나라의 마지막을 알리는 혁명이었다.
그리고 100년 넘게 우려먹고있는 M1911이 미군에 채용됐다.
미국엔 기록적인 한파가 왔다
60년후스페인 왕국에서 왕정이 폐지되고 제2공화정이 시작되었다.
미국 뉴욕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완공되었다. 당시로선 세계 최고 높이의 마천루였다.
1511년 에스파냐. 멕시코 정복
- 우즈베크인의 나라인 히바 칸국이 건국되었다.
포르투갈이 믈라카와 호르무즈를 점령하였다
60년전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가 완성되었다.
사창(社倉)이 실시되었다.
이사벨탄생
40년전 세조실록이 완성되었다
헨리6세 1471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 에드워드 4세와 맞서 싸웠으나, 튜크스베리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30년전 시스티나 성당 건축이 완료되었다.
오스만 제국과 나폴리 왕국 사이에서 일어난 오트란토 전투가 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끝났다.
20년전 이언적탄생
10년전 .퇴계. 조식선생 태어난다
20년후 쯔빙글리사망.독일에서 개신교 제후들이 슈말칼덴 동맹을 결성하였다.
30년후 독일의 레겐스부르크 종교 회의가 결렬되었다.
40년후오스만 제국이 합스부르크 측으로부터 트리폴리를 탈환하였다.
60년후 신성 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 레판토 해전이 발발하여 오스만 해군이 패배한다.
이황사망
필리핀에 마닐라가 건설된다
1151년 앙주 백작 제프리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헨리 (앙리)가 뒤를 이었다.
가즈니 전투에서 알라 알 딘이 이끈 구르 왕조 군대가 가즈니 왕조 군을 격파, 바흐람 샤를 포로로 잡고 도시에 방화하였다.
80년전 동로마 제국의 황제 로마노스 4세가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의 술탄 알프 아르슬란에게 대패
60년전 런던에 큰 토네이도가 지나가 런던교가 파괴되었다.
로베르 기스카르가 몰타를 점령하였다.
잉글랜드의 윌리엄 2세가 노르망디를 공격하였다
40년전 - 하인리히 5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30년전 방랍의 난.
금나라가 요서 지방을 점령하고 요나라의 중경 대정부를 함락시켰다. 천조제가 몽골로 피신하자 한인 신하 이처온과 황족 야율대석은 남경 석진부에서 천조제의 숙부 아율순을 옹립, 북요 정권을 수립한다.
노구교 전투에서 요나라 (북요) 군대가 송의 환관 동관이 이끄는 20만 송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20년전 진회가 남송의 재상이 되었다.
야율대석이 에밀에 도착하였으나 동 카라한 왕조의 공격으로 서쪽으로 더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20년후 살라흐 앗 딘에 의하여 파티마 왕조가 멸망하였다. 이집트는 다시 수니파 국가로 돌아서게 된다.
비잔틴 제국이 달마티아의 지배권을 회복하였다.
30년후아흐마드 알 시킬리가 이끄는 무와히드 왕조의 해군이 포르투갈 함대를 격파하고 제해권을 회복하였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가 유대인에게 기독교도가 진 빚을 모두 무효화하였다.
40년후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가 3차 십자군에서 이탈하여 귀국하였다.
리처드 1세가 무슬림 포로 2700명을 처형하였다
제3차 십자군 원정에서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 1세가 아르수프 전투에서 살라딘을 패퇴시켰다
60년후 칭기즈칸이 금나라 원정에 대한 쿠릴타이를 개최하였다.
몽골 제국의 금나라 침공이 시작되었다. (~ 1234년)
791년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칸타브리아 일대의 우마이야 왕조 거점들을 점령하고 영토를 도우로 강 이남으로 확장하였다.
부르비아 강 전투에서 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아스투리아스 군대를 격파하고 갈리시아를 휩쓸었다
60년전 세르다냐 (피레네 동부) 의 베르베르 인들이 아키텐의 오도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프랑크 왕국, 남 프랑스 해안 일시 수복 (vs 우마이야)
40년전 로마 교황 자카리아의 지원으로 카롤루스 마르텔의 아들 피핀 3세가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왕 힐데리히 3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면서 카롤링거 왕조가 시작되었다.
불국사 3층 석탑과 다보탑이 제작되었다
탈라스 전투 : 아바스 왕조군이 탈라스에서 당나라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쟁 이후 제지술이 이슬람 문명으로 전파되고 실크로드 교역로를 포함한 중앙아시아가 이슬람 세력권에 넘어가게 된다.
30년전 사사명의 아들 사조의가 사사명을 살해하고 칭제하였다.
아바스 왕조군이 카이르완을 재정복하였다
10년전 카롤루스 대제가 자신의 두 아들 피피노와 루트비히에게 각각 롬바르드와 아키텐의 왕위를 수여하였다.
10년후 카롤루스 대제의 아들인 루트비히 1세가 바르셀로나를 점령하였다
20년후 미카엘 1세 랑가베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카롤루스 대제가 지휘하는 프랑크 군대가 타라고나를 공격하나 후우마이야 왕조의 반격으로 실패하였다
30년후 타히르 토후국이 건국되었다.
40년후 모라비아 왕국(현 체코)의 군주 모이미르 1세가 바이에른의 파사우로부터 그리스도교를 수용하였다
60년후팜플로나 공국, 나바라 왕국으로 독립.
431년- 비잔티움 제국의 에페소에서 에페소 공의회가 개최되었다. 이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의 2개의 본성인 인성과 신성이 서로 혼돈과 분리됨이 없이 일치를 이룬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네스토리우스파를 단죄하였다.
60년전 백제군이 고구려의 군대를 패하(浿河)에서 군사를 매복시켜 물리쳤다. 그리고 그 해 겨울, 3만 명의 백제군이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였고 이 때 고구려 왕 고국원왕이 전투 도중 전사하였다. 이후 소수림왕이 고구려 제 17대 국왕이 되었다.
40년전 광개토대왕이 고구려 19대 왕이 되었다.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인정하였다
30년전 오호십육국시대 북량의 초대 군주인 단업이 저거몽손의 군대에 사로잡혀 살해당하였다. 이후 저거몽손이 스스로 양주목 장액공을 칭해 북량 2대 군주가 되었다.
후연 4대 황제 모용성이 용성 내에서 단기가 일으킨 반란으로 습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이후 모용희가 후연 제 5대 황제가 되었다.
알라리크 1세가 고트족 군대를 이끌고 서로마 제국이 지배하고 있는 북부 이탈리아를 공격하였고, 이에 호노리우스 황제는 라벤나로 수도를 옮겼다.
10년전 콘스탄티우스 3세가 호노리우스와 함께 서로마 제국의 공동 황제가 되었으나 바로 사망
- 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20년후카탈라우눔 전투: 훈족 군대와 서로마 제국군, 서고트족, 프랑크족 연합군이 카탈라우눔 평원에서 맞붙었다. 아틸라는 이 전쟁 이후 카탈라우눔 평원에서 군대를 철수시켰다.
30년후 리키메르 장군의 추대로 리비우스 세베루스가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서고트족 군대가 셉티마니아를 재정복하고 히스파니아 지방을 공격하였다
40년후 효문제가 북위 7대 황제가 되었다
60년후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문자명왕이 고구려 21대 왕이 되었다
북위에 조공
71년 백제군이 신라의 변방을 약탈하다가 격퇴당하다.
60년전 아르타바누스 3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세야누스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 의해 국가반역죄로 처형당하였다
30년전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암살당했다. 이후 클라우디우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10년전 이케니족의 지도자 프라스타고스 사망 이후 로마 제국이 브리튼 섬을 점령하였다
10년후 도미티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티투스 개선문이 착공되었다.
20년후 마니우스 아칠리우스 글라브리오와 트라야누스가 로마 제국의 집정관이 되었다
30년후경주 월성이 건설되었다.
로마 제국의 트라야누스 황제가 다키아 원정을 떠나 트란실바니아에서 이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40년후 서기 110년 파르티아 왕국은 트라야누스의 의도를 눈치채고 로마에 우호적인 아르메니아의 왕을 폐위시킨다
50년후 하드리아누스는 트라야누스의 확장정책을 중단하고 방위 우선 정책으로 제국을 순행한다 고구려의 태조대왕이 선비족 8천여명과 함께 후한의 요대현을 공격하였다. 요동태수 채풍이 이끄는 군대는 이들을 상대로 패하였다.
일본이 신라를 공격하였다
60년후 하드리아누스는 예루살렘 지역의 유대인들은 132년 또 다시 반란을 일으키자 강제이주시킴
bc290년 로마50년전쟁을 끝내다
bc650년 유럽 소빙기로 접어들어 내륙으로 이동하며 북유럽 청동기 시대를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