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모임에서 이야기가 나왔던 <필경사 바틀비>를 궁금해 하시는 분들을 위해
제가 가지고 있던 자료 올려 드립니다. 좀 길지만 한번 읽어보세요.
"I would prefer not to.를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로 번역하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
필경사 바틀비
- 월 가(街) 이야기 -
허먼 멜빌(1819~1891)
나는 나이가 꽤 지긋한 사람이다. 지난 삼십년 동안 내 직업의 성격상 나는 흥미롭고 다소 특이한 집단의 사람들을 제법 깊이 접하게 되었다. 내가 알기로는 그들에 대해서 아직 어떤 글도 씌어진 것이 없는데, 법무 필경사 혹은 대서인들 말이다. 나는 직업상으로나 개인적으로 그들 상당수를 알고 지냈고, 만일 내가 원한다면 마음씨 착한 신사들은 미소를 짓고 감상적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다양하고 기구한 내력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보거나 들은 중에 가장 이상한 필경사인 바틀비의 생애에 관한 몇몇 구절만 남기고 다른 모든 필경사들의 전기를 포기하고자 한다. 다른 필경사에 대해서라면 일생을 다루는 전기를 쓸 수도 있지만 바틀비에 대해서는 그런 종류의 글을 전혀 쓸 수 없다. 나는 이 사람에 대한 충실하고 만족스러운 전기를 쓸 만한 자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것은 전기를 쓰는 데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바틀비는 일차자료 말고는 어떤 것도 확인할 수 없는 그런 존재 중의 하나인데, 그의 경우에는 일차자료란 것이 얼마 안 되는 것이다. 바틀비의 경우 내 놀란 두 눈으로 본 것, 그것이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한 가지 모호한 소문을 제외하면, 사실 내가 그에 관해 알고 있는 전부이다.
내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바틀비를 소개하기 전에 나 자신과 종업원들, 나의 일과 사무실, 그리고 전반적인 환경에 대해 약간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왜냐하면 그런 묘사를 어느 정도 해놓아야 곧 등장할 주인공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나는 젊을 때부터 줄곧 편하게 사는 것이 제일이라는 확신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따라서, 하도 격렬하고 신경을 곤두서게 해서 때때로 소동이 일어나기까지 하는 것으로 소문난 직업에 종사하지만 그런 종류의 고충 때문에 내 평화가 침해되는 일은 결코 없었다. 나는 배심원단 앞에서 열변을 토하거나 대중의 갈채를 불러일으키는 일은 일절 하지 않고 혼자 조용히 아늑한 사무실에 처박혀 부자들의 채권, 저당증서, 부동산 권리증서 등을 쌓아놓고 수지맞는 일을 하는, 그런 야심 없는 변호사 중 하나이다. 나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더없이 안전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시적 정열 따위에는 관심 없는 인물인 고 존 제이콥 애스터(John Tacob Astor, 1763~1848, 중국무역, 부동산, 모피회사 등으로 성공한 당대 미국의 최고 부호─옮긴이)는 나의 첫째 장점이 신중함이고 둘째 장점은 체계성이라고 서슴없이 단언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다만 나 자신이 고 존 제이콥 애스터의 변호사 일을 맡아보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인정하건대, 나는 그의 이름을 자주 입에 올리기를 좋아한다. 왜냐면 그 이름에는 구슬 같은 원순음이 있어서, 마치 순금에 부딪힌 양 낭랑하게 울리기 때문이다. 나는 고 존 제이콥 애스터의 호의적인 견해에 무감하지 않다는 것을 기꺼이 덧붙이고자 한다.
이 작은 이야기가 시작되기 얼마 전에 내 업무량은 크게 증가했다. 뉴욕 주의 지금은 없어진, 예전의 그 좋은 형평법 법원의 주사 자리가 내게 주어진 것이었다. 그것은 그다지 힘이 들지 않는 일이지만 매우 흡족할 정도로 수지가 맞았다. 나는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거니와 부당한 일이나 황당한 일에 분개하는 위험천만한 행동은 더더욱 삼갔다. 그렇지만 여기서 내가 새 헌법에 의하여 형평법 법원의 주사직이 갑자기 폐지된 폭거를 ○○한 시기상조의 조처로 여기고 있다고 성급히 단언하는 것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평생 동안의 이득을 기대했는데 실제로는 불과 몇 년밖에 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여담이다.
내 사무실은 월 가 ○○번지 위층에 있었다. 사무실의 한쪽 끝은 건물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관통하는 널찍한 채광용 수직공동 안쪽의 흰 벽을 마주 보고 있었다. 이 전망은 확실히 풍경화가가 말하는 ‘생기’가 결여되어 있어 무엇보다 활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었다. 그렇다면 사무실 반대쪽 끝에서 보이는 전망은 앞의 전망보다 더 나을 건 없더라도 적어도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쪽 방향의 창문을 내다보면 오래되고 늘 그늘이 져서 거무칙칙한 높다란 벽돌벽이 막힘없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벽은 그 숨겨진 아름다움을 알아보기 위해 망원경을 쓸 필요가 없으며 어떤 근시안이라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내 사무실 유리창서 3미터도 안 되는 곳까지 바싹 다가와 있었다. 주변 건물들이 대단히 높고 사무실이 이층에 있는 탓에 이 벽과 사무실 건물 벽 사이의 간격은 거대한 정방평의 물탱크와 적잖게 닮아 있었다.
바틀비가 출현하기 직전 나는 두 사람을 필경사로 고용하고 있었고 장래가 촉망되는 한 소년을 사무실 사환으로 두고 있었다. 첫째 터키, 둘째 니퍼즈, 셋째, 진저 넛이었다. 이 이름들은 인명부에서 비슷한 예를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이름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사실은 이 이름들은 내 직원 세 사람이 서로에게 붙인 별명으로서, 그들 각각의 신체나 성격을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터키는 땅딸하고 숨이 가쁜, 내 또래의─말하자면 환갑이 머잖은 나이의─영국인이었다. 오전에는 그의 얼굴이 불그레하니 혈색이 좋다고 할 수 있지만 점심시간인 정오 후에는 크리스마스날 석탄으로 가득한 벽난로처럼 활활 타고, 저녁 여섯 시경까지 계속 타다가, 말하자면 서서히 사위어갔다. 그 시간 이후 나는 그 얼굴주인을 더 이상 보지 못하지만, 태양과 함께 정점에 도달한 그의 얼굴은 태양과 함께 떠올랐다가 그 다음날도 전날처럼 규칙적이고 그 못지않게 찬란하게 태양과 함께 떠올라 정점에 도달했다가 저무는 것 같았다. 인생을 살면서 나는 많은 특이한 우연의 일치를 알게 되었는데, 그중 다른 것 못지않은 것이 이런 사실이었다. 즉 정확히 터키가 자신의 붉고 빛나는 혈색에서 최대한의 광채를 뿜어내는 바로 그때, 그 중대한 순간에 내가 보기에는 스물네 시간 중 나머지 시간 동안 그의 업무 역량이 심각하게 저하되는 일과시간 역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터키가 그때 게으르기 짝이 없다거나 업무를 지긋지긋해한다는 뜻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가 너무너무 원기 왕성해진다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이상한 정도로 흥분하며 당황하고 들떠서 경솔한 행동을 하는 면이 있었다. 그는 잉크병에 펜을 담그면서 조심하지 않았다. 내 서류에 그가 남긴 잉크 얼굴들은 모두 정오 열두시 이후에 떨어뜨린 것이다. 실로 터키는 오후만 되면 경솔해져서 슬프게도 얼룩을 묻히는 습성이 있을 뿐더러 어떤 날에는 한술 더 떠서 꽤나 시끄러웠다. 그런 때는 그의 얼굴 역시 무연탄 위에 촉탄을 쌓아올린 것처럼 한층 더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의자로 불쾌한 소리를 내는가 하면 모래통을 쏟기도 했다. 펜을 고치려고 안달하다가 산산조각나자 돌연 붙같이 화를 내며 그것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그러고는 일어서서 책상 위로 몸을 굽혀 그처럼 나이 지긋한 사람으로서는 보기 민망한 정도로 점잖지 못하게 서류를 마구 헝클어뜨리고 했다. 그럼에도 터키는 여러모로 내게 무척 소중한 사람이고 또한 정오 이전에는 줄곧 가장 빠르고 꾸준한 사람으로서 쉽게 넘볼 수 없는 방식으로 대단한 양의 일을 완수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의 기행을 기꺼이 눈감아주곤 했으나, 사실은 가끔 그에게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잔소리를 하더라도 아주 부드럽게 했는데 그것은 그가 오전에는 더없이 정중하고, 아니 더없이 온후하고 더없이 공손한 사람이지만 오후에는 자극을 받으면 말투가 약간 경솔해지는, 사실상 거만해지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의 오전근무를 높이 평가하고 있어 그를 계속 데리고 있을 작정이지만 그럼에도 열두시 이후 그의 불같은 방식 때문에 불편했다. 나는 사태를 조용하게 처리하는 사람이라서, 자칫 충고하다가 그에게서 험악한 말대꾸를 당할까봐 어느 토요일 정오에 (그의 증상은 토요일이면 항상 더 심각해진다) 아주 부드럽게 넌지시 말해보기로 했다. 즉 이제 그도 늙어가고 있으니 근무를 단축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간단히 말해서 열두시 이후 사무실에 나올 필요 없이 점심 후에 숙소로 귀가해서 차 마시는 시간까지 쉬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헌신적인 오후 근무를 고집했다. 그가 웅변조로 자신의 오전 근무가 유용하다면, 그렇다면 오후 근무는 얼마나 필수불가결하겠는가 하고 내게 장담할 때─긴 자로 사무실 맞은편 끝을 겨냥하는 동작을 취하면서─그는 얼굴색은 참기 힘들 정도로 타오르는 듯했다.
“선생님,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이런 경우에 터키는 말했다. “나는 나 자신을 선생님의 오른팔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전에는 단지 군대를 소집해서 배치시키기만 하지만 오후에는 내가 직접 군대의 선두에 서서 적에게 돌격하는 겁니다. 이렇게요.” 그러면서 터키는 자로 격렬하게 찌르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터키. 얼룩이 생기잖아.” 내가 넌지시 말했다.
“그렇지요. 하지만 외람된 말씀이지만, 선생님. 이 머리카락을 보세요! 나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따뜻한 오후에 얼룩 한두 점이 나온다고 이런 희끗희끗한 노인을 심하게 문책할 것은 아니지요. 노년이란 설령 문서 한쪽 전체를 얼룩지게 하더라도 존중받아야 하지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선생님. 우린 둘 다 늙어가고 있어요.”
이렇게 동류의식에 호소하면 저항하기가 힘들어진다. 어쨌거나 나는 그가 일찍 퇴근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가 남아 있도록 내버려두기로 작정했지만 그래도 오후 동안에는 덜 중요한 서류를 다루게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내 종업원 명부에 두 번째로 올라 있는 니퍼즈는 구렛나루를 기르고 혈색이 나빠 전체적으로 해적처럼 보이는 스물다섯 살 가량의 청년이었다. 나는 언제나 그를 두 가지 사악한 힘─야망과 소화불량─의 희생자로 여겼다. 야망은 단순한 필경사의 일을 참지 못하는 어떤 성향, 이를테면 법률문서의 원안 작성처럼 엄격히 전문가만 해야 할 일에 당치 않게 손대는 버릇으로 나타났다. 소화불량은 이따금 신경질적으로 퉁명스러워지면서 이를 드러내며 짜증을 낸다든지 필사 중에 실수를 저지르면 소리 나게 이를 간다든지 한창 일하다가 쓸데없이 악담을─말하기보다는 내뱉는 방식으로─한다든지 그리고 특히 그가 일하는 책상 높이에 끊임없이 불만을 갖는 것으로 나타나는 듯했다. 기계를 만지는 데는 매우 뛰어난 재능이 있지만 니퍼즈는 이 책상을 결코 자기 마음에 맞게 조절할 수가 없었다. 그는 갖가지 블록, 판지조각 등의 토막들로 책상을 괴고 마침내 막판에는 압지를 접어서 정교한 조정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떤 재간을 부려도 소용이 없었다. 만약 등을 편안하게 하려고 책상 뚜껑을 턱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각도로 높이고서 마치 네덜란드식 가파른 집 지붕을 책상으로 삼는 사람처럼 글을 쓸 때면 팔의 혈액순환이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책상 높이를 허리춤까지 낮추고 책상 위로 몸을 구부려 글을 쓰면, 이번에는 등이 쑤시듯 아팠다. 요컨대 문제의 진상은 니퍼즈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니면 정녕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필경사의 책상을 아예 치워버리는 것이었다. 그의 병든 야망의 표출 가운데는 그가 고객이라고 부르는, 초라한 외투를 입은 정체불명 친구들의 방문을 즐기는 것도 끼어있었다. 사실 그는 때로는 꽤 중요한 지역정치가였을 뿐 아니라 이따금 법원에서 사소한 업무도 보았고 톰즈(1836년 맨해튼 남쪽에 건립된 뉴욕시 법무청사 및 구치소(The New York Halls of Justice and House of Detention)의 별칭-옮긴이) 인근에서도 알려진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 사무실로 그를 차아와 거드름을 피우며 자기가 니퍼즈의 고객이라고 주장한 한 인물이 다름 아닌 빚쟁이였고 부동산 권리증서라고 하는 것이 청구서였다고 믿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모든 결점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성가심에도 불구하고 니퍼즈는 그의 동료인 터키와 마찬가지로 내게 매우 유용한 사람이었다. 그는 깔끔하고 재빠르게 필사를 했으며 마음이 내키면 충분히 신사적인 품행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항상 신사답게 옷을 입었고, 그래서 말하자면 사무실에 신망을 더해주었다. 반면에 터키로 말하자면 나는 그가 사무실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느라고 법석을 떨어야만 했다. 그의 옷은 기름때에 찌든 모습인데다 싸구려 식당 냄새를 풍기기 십상이었다. 그는 여름에 바지를 매우 헐렁하고 불룩하게 입었다. 그의 외투는 혐오스럽기 짝이 없고 모자는 손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영국인 직원으로서 타고난 예의범절로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항상 모자를 벗기 때문에 그의 모자는 어떻든 상관없었지만 외투는 별개의 문제였다. 외투에 대해 나는 그를 설득해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사실은 수입이 너무 적은 사람이 그토록 번들거리는 얼굴과 윤기 있는 외투를 동시에 뽐낼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니퍼즈가 언젠가 말한 대로 터키의 돈은 주로 싸구려 술에 들어갔다. 어느 겨울날 나는 터키에게 매우 점잖아 보이는 내 외투 한 벌을 선물했다. 솜을 덧댄 회색외투인데 무릎에서 목까지 단추가 달려 있어 매우 편안하고 따스했다. 나는 터키가 내 호의를 고맙게 여기고, 오후만 되면 도지는 경솔하고 소란스러운 언행을 자제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었다. 귀리를 너무 많이 주면 도리어 말에게 해롭다는 원칙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담요같이 포근한 외투를 감싸고 단추를 꽉 채우는 것이 그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었다고 나는 진정 믿는다. 사실 경솔하고 고집 센 말이 귀리를 먹으면 날뛴다는 속담과 똑같이, 외투를 입은 터키도 그랬다. 외투가 그를 건방지게 만든 것이다. 그는 물질적 풍요가 해가 되는 사람이었다.
터키의 방종한 습성에 대해 내 나름대로 짐작하는 바가 있지만, 니퍼즈에 대해서는 다른 면에서 어떤 결함이 있건 적어도 술은 삼가는 젊은이라는 것을 사뭇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천성이 그에게 술을 대어주는 격이었으니, 그는 태어날 때부터 성마르고 브랜디 같은 체질로 꽉 차 있어서 차후의 음주가 조금도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때때로 니퍼즈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 몸을 구부리고 팔을 넓게 벌려 책상 전체를 붙잡고는 마치 그것이 고의로 자기를 방해하고 화를 돋우려고 작정한 심술쟁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리 움직이고 저리 잡아당기면서 바닥에 책상을 갈아 대는 섬뜩한 모습을 곰곰이 생각할 때 나는 니퍼즈에게 물 탄 브랜디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게 된다.
니퍼즈의 짜증과 그에 따른 신경과민이 그 특이한 원인-소화불량- 때문에 주로 오전에 현저하게 나타나는 반면 오후에는 비교적 순해진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터키의 발작은 열두시경이 되어서야 시작되므로 한 번도 두 사람의 기행을 한꺼번에 상대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발작은 마치 경비병의 근무 교대처럼 서로 교대했다. 니퍼즈의 발작이 시작되면 터키의 발작은 가라앉았고, 그 역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주어진 정황에서는 자연의 훌륭한 배려였다.
내 종업원 명부의 세 번째인 진저 넛(생강이 든 빵이나 비스킷-옮긴이)은 열두 살 쯤 되는 소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짐마차 마부였는데 죽기 전에 아들이 마부석 대신 판사석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를 열망했다. 그래서 그는 주급 1달러에 아들을 법률 문하생이자 심부름꾼이자 청소부 자격으로 내 사무실에 보냈다. 진저 넛은 자기만의 자그마한 책상을 갖고 있으나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검사를 해보면 서랍에는 갖가지 견과류 껍데기들이 수북했다. 실로 약삭빠른 이 젊은이에게는 고상한 법학 전체가 견과 껍데기 속에 담겨 있는 셈이다. 진저 넛이 하는 일 가운데서 다른 것 못지않게 중요할 뿐더러 더없이 민첩하게 수행하기도 하는 일은 터키와 니퍼즈에게 빵과 사과를 조달하는 임무였다. 법률 문서를 필사하는 일은 소문대로 무척 무미건조하고 갈증 나는 일이라서, 나의 필경사 둘은 세관과 우체국 근처의 수많은 노점에서 구할 수 있는 스피천버그 사과(여름에 익는 적색·황색의 미국산 사과-옮긴이)로 아주 자주 입을 축이고 싶어했다. 또한 그들은 그 특이한 빵-작고 납작하고 둥글고 아주 향긋한 빵-을 사러 진저 넛을 뻔질나게 보냈는데, 이 빵 이름을 따서 그의 별명을 지었다. 어느 추운 아침에 업무가 지루하기만 할 때에 터키는 생강빵을 그저 살짝 구운 과자인 것처럼 수십 개씩이나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곤 했는데-사실 그것들은 1페니에 여섯 개나 여덟 개씩 팔았다-그럴 때는 펜이 종이 위를 긁는 소리가 입에서 파삭파삭한 조각들이 와삭 부서지는 소리와 뒤섞였다. 터키가 오후에 흥분해서 저지르는 경거망동 중에서 그가 한번은 생강빵을 입에 물고 침을 묻혀서 그것을 봉인 대신 저당증서에 찰싹 갖다 붙인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를 해고할 뻔했다. 그러나 그는 동양식으로 절을 하면서 “외람된 말씀이지만 선생님, 내 돈으로 선생님의 문방구를 조달한 셈이니 내가 후한 사람이지요.” 하고 말하는 바람에 내 마음이 진정되었다.
나의 원래 업무-부동산 양도증서 작성 변호사이자 부동산 권리증서 추적자이자 온갖 종류의 난해한 서류 작성자의 업무-는 법원의 주사 직을 맡고 나서 상당히 증가했다. 이제 필경사들의 일감이 크게 불어났다. 나는 이미 고용한 직원들을 다그쳐야 할 뿐더러 아무래도 새로운 일손을 구해야 했다.
구인광고를 보고 어느 날 아침 젊은이 하나가 여름이라 문을 열어놓은 사무실 문간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지금도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창백할 정도의 단정함, 애처로운 기품,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 고독. 그가 바틀비였다.
그의 자격과 관련하여 몇 마디 물어본 다음 나는 그를 고용했다. 나의 필경사 군단에 그토록 눈에 띄게 침착한 면모의 사람을 갖게 된 것이 기뻤으며, 그런 면모가 터키의 변덕스러운 기질과 니퍼즈의 불같은 성질에 유익하게 작용하리라고 생각했다. 미리 말해두었어야 하는 일이지만, 반투명유리 접이문이 내 사무실 공간을 두 부분으로 나누고 있었는데, 하나는 필경사들이 차지하고 다른 하나는 내가 차지하고 있었다. 기분에 따라 나는 이 문을 열거나 닫았다. 나는 바틀비를 접이문 옆의 한구석에 배치하되 내 공간 쪽에 두기로 했다. 자질구레한 문제를 처리해야 할 경우를 대비하여 이 조용한 사람을 내가 부르기 쉬운 곳에 두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의 책상을 사무실 그 부분의 조그만 옆 창문에 바싹 붙여놓았다. 그 창은 원래 어떤 지저분한 뒤뜰과 벽돌의 옆모습을 보여주었으나 나중에 건물이 세워지는 바람에 현재는 약간의 빛은 받아들이되 경치는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유리창에서 1미터 내에 벽 하나가 있었고, 빛은 마치 둥근 천장의 매우 작은 구멍에서 나오는 것처럼 훨씬 위에서 높다란 두 건물 사이를 타고 내려왔다. 더욱 더 만족스러운 배치를 위하여 나는 바틀비 쪽에서 내 목소리는 들을 수 있되 그를 내 시야에서 완전히 격리할 수 있는 높다란 접이식 녹색 칸막이를 구입했다. 그래서 그런대로 사적인 자유와 그와의 소통을 동시에 누릴 수 있었다.
처음에 바틀비는 엄청난 양의 필사를 했다. 마치 뭔가 필사할 것에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처럼 그는 내 문서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듯 했다. 소화를 위해 쉬지도 않았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면서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촛불을 켜고 필사를 했다. 만약 그가 즐겁게 일하기만 했다면 나는 그의 근면을 상당히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를 계속했다.
자기가 필사한 것이 정확한지 한 자 한 자 검증하는 것도 당연히 필경사 일의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다. 한 사무실에 두 명 이상의 필경사가 있으면, 한 사람이 필사본을 읽고 다른 사람이 원본을 붙들고 있는 식으로 필경사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이런 검토 작업을 한다. 이 일은 자주 지루하고 피곤하고 졸리는 작업이다 어떤 다혈질의 사람들에게 이 일은 도저히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상상을 쉽게 할 수 있다. 예컨대 원기왕성한 시인 바이런이 바틀비와 함께 느긋하게 앉아서 가령 꼬불꼬불한 필치로 빽빽하게 씌어진 오백 면짜리 법률 문서를 검토했으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가끔씩 일이 한창 바쁠 때는 몇몇 간단한 서류를 비교하는 일을 내가 직접 돕기도 하는데, 이런 목적으로 터키나 니퍼즈를 부르는 것이 내 습관이었다. 바틀비를 칸막이로 가리되 편리하게 내 곁에 둔 한 가지 목적은 이런 사소한 경우에 그의 서비스를 받고자 함이었다. 내 생각에 그날은 그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삼 일째 되는 날이었고, 그때까지는 바틀비가 자신의 필사를 검토할 필요가 아직 없었다. 얼마 안 되지만 당면한 용무를 끝내려고 다급했던 나는 부리나케 바틀비를 불렀다. 급하기도 했지만 바틀비의 즉각적인 반응을 당연히 기대하면서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책상에 놓인 원본을 들여다보면서 사본을 쥔 오른손을 옆으로 다소 거칠게 뻗었다. 바틀비가 자신의 은신처에서 나오자마자 사본을 잡고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작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이런 자세로 나는 앉은 채로 그를 부르면서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즉 분량이 얼마 안 되는 서류를 나와 함께 검토하는 일을-신속하게 말했다. 바틀비가 자신의 구석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 특유의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했을 때 나의 놀라움, 아니 대경실색을 상상해보라.
나는 놀라서 어리벙벙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즉각 떠오른 생각은 내가 잘못 들었거나 아니면 바틀비가 내 뜻을 완전히 오해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선명한 어조로 그 부탁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똑같이 선명한 어조로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라는 종전과 같은 대답이 들렸다.
“그렇게 안 하고 싶다니,” 나는 크게 흥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걸어가며 그 말을 되풀이했다. “무슨 소리야? 자네 미쳤어? 내가 여기 이 서류를 비교하게 도와달란 말이야-이거 받아.” 하고는 그 서류를 그를 향해 디밀었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꼼짝 않고 그를 노려보았다. 그의 여윈 얼굴은 태연했고 어둑한 잿빛 눈은 평온했다. 동요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의 거동에 조금이라도 불안, 분노, 초조, 혹은 불손의 빛이 있었더라면, 다시 말해서 약간이라도 평범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그를 사무실에서 사정없이 내쫓았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키케로 석고 흉상을 문밖으로 내쫓을 생각을 하는 편이 차라리 나을 지경이었다. 나는 그가 필사를 계속하는 동안 잠시 그를 노려보고 서 있다가 내 책상에 다시 돌아와 앉았다. 이건 정말 이상해, 하고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상책일까? 그러나 나는 일 때문에 바빴다. 그 문제는 당분간 덮어두었다가 나중에 한가할 때 생각하기로 결론지었다. 그래서 다른 방에서 니퍼즈를 불러 신속하게 서류를 검토했다.
이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바틀비는 네 통의 긴 문서를 완성했다. 그것은 형평법 고등법원에서 일주일 동안 내가 받아낸 증언 네 통의 사본이었다. 그 서류들은 반드시 검토해야 했다. 중요한 소송인만큼 아주 정확한 기록이 절대 필요했다. 사전준비를 다 한 다음 네 통의 사본을 네 명의 직원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내가 원본을 읽을 요량으로 옆방에서 터키, 니퍼즈, 진저 넛을 불렀다. 이에 따라 터키, 니퍼즈, 진저 넛이 각자 손에 서류를 들고 열을 지어 앉았을 때, 나는 이 흥미로운 그룹에 동참하라고 바틀비를 불렀다.
“바틀비! 빨리, 기다리고 있잖아.”
카펫을 깔지 않은 바닥에 천천히 책상다리가 긁히는 소리가 나더니 곧 그가 자기 은신처 입구에서 나타나 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필사본, 필사본 말일세.” 내가 서둘러 말했다. “우린 필사본을 검토할 거야. 자, 여기.” 그러고는 그를 향해 네 번째 사본을 내밀었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하고 말하고는 그는 칸막이 뒤쪽으로 점잖게 사라졌다.
잠시 동안 나는 소금 기둥으로 변해, 줄지어 앉은 직원들 맨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자 나는 칸막이 쪽으로 가서 그런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왜 거절하는 거지?”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나는 당장 무섭게 화를 내고 더 이상 말로 하지 않고 그를 내 면전에서 굴욕적으로 쫓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바틀비에게는 묘하게 나의 적의를 가라앉힐 뿐 아니라 놀라운 방법으로 나를 감동시키고 당황케 하는 면이 있었다. 나는 이치를 따지며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검토하려는 건 바로 자네의 필사본들이야. 한 번의 검토로 네 개의 사본이 모두 처리될 테니까 자네 일을 덜어주는 것이야. 이건 일반적인 관례야. 필경사라면 누구나 자기 필사본을 검토하는 일에 일조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겠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대답해!”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그가 플루트 소리 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내가 바틀비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 그는 내가 하는 발언을 구절구절 음미하고,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불가항력적인 결론을 부정할 수 없는 듯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최우선적인 고려사항 때문에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자넨 내 요청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한 거야? 일반적인 관례와 상식에 따라 한 요청을 말이야?”
그는 그 점에 대해서는 내 추측이 맞다고 간단히 확인시켜주었다. 그랬다. 그의 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이란 유례없이 극히 불합리한 방식으로 윽박지름을 당하면 가장 명백한 믿음마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말하자면 그 모든 정의와 이성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모두 상대방 편을 들고 있다는 추측을 어렴풋하게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현장에 있으면 동요하는 마음을 얼마간 다잡기 위해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게 된다.
“터키.” 나는 말했다. “이걸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옳지 않은가?”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선생님.” 터키가 유순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말했다. “선생님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니퍼즈.” 나는 말했다. “자넨 이걸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녀석을 사무실 밖으로 내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목에서 눈치 빠른 독자는 오전이기 때문에 터키의 대답은 공손하고 차분한 어조로 표현된 반면 니퍼즈는 성마른 어조로 대답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혹은 앞서 나온 문장을 빌려 말하면, 니퍼즈의 험악한 심사가 발동중이고 터키의 그것은 꺼진 상태였다.)
“진저 넛.” 아무리 작은 지지표라도 내 편에 올리고 싶어 말했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
“선생님, 제 생각에 저 아저씨는 살짝 머리가 돈 것 같아요.” 진저 넛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 동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고.” 칸막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내가 말했다. “나와서 자네 의무를 다하란 말이야.”
그러나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주 난감하여 한동안 깊은 상념에 빠졌다. 하지만 또다시 바쁜 업무가 나를 재촉했다. 나는 다시 이 딜레마에 대한 숙고를 나중에 여가 날 때까지 미루기로 결정했다. 약간 수고스럽기는 했지만 우리는 바틀비 없이 서류 검토 작업을 해냈다. 그렇지만 터키가 한두 장 넘길 때마다 이런 식의 진행은 완전히 관례에 어긋난다는 의견을 정중하게 비치는 반면 니퍼즈는 소화불량으로 인한 신경과민으로 의자에서 몸을 비틀어대고 이따금씩 이를 갈면서 칸막이 뒤쪽의 고집불통 멍청이에게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니퍼즈)로서는 돈을 받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을 해주기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한편 바틀비는 자기만의 별난 업무 외에 아무것도 안중에 없는 듯 자기 은신처에 들어앉아 있었다.
그 필경사가 또 하나의 긴 서류작업에 몰두한 지 며칠이 지나갔다. 최근 그의 놀랄 만한 행동 때문에 나는 그의 습성을 세밀히 주시하게 되었다. 내가 관찰해보니 그는 나가서 식사하는 일이 한 번도 없으며, 사실상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나만 모르는지 몰라도 아직까지 그가 사무실 밖에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항시 사무실 한구석을 지키는 보초였다. 그러나 오전 열한시경이면 진저 넛이 내가 앉은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몸짓으로 조용히 거기로 불려가듯 바틀비의 칸막이 입구 쪽으로 다가가곤 하는 것을 나는 눈치챘다. 그런 다음 진저 넛은 몇 펜스를 쨍그랑거리며 사무실에서 나가서 한 움큼의 생강빵을 들고 다시 나타났는데, 그것을 바틀비의 은신처에 전달하고 수고비조로 빵 두 개를 받곤 했다.
그렇다면 녀석은 생강빵을 먹고 사는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제대로 말하자면 점심심사를 결코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녀석은 채식주의자임에 틀림없어. 그렇지만 그것도 아냐. 녀석은 채소조차 일절 먹지 않고 생강빵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러자 내 마음은 오로지 생강빵만 먹고 사는 것이 인간 체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공상에 빠져들었다. 생강빵이 생강빵으로 불리는 까닭은 빵에 그 특이한 구성요소 중의 하나이자 최종적으로 맛을 내는 성분으로 생강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근데, 생강은 어떤 것이더라? 맵고 향긋한 것이지. 바틀비가 맵고 향긋한가? 전혀 그렇지 않아. 그렇다면 생강은 바틀비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았어. 아마 녀석도 생강이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기를 바랐을 거야.
수동적 저항만큼 성실한 사람을 화나게 하는 것은 없다. 만약 그런 저항을 당한 사람이 몰인정하지 않은 기질이고 또 저항하는 사람이 수동성의 면에서 전혀 악의가 없다면, 그렇다면 전자는 기분이 좋을 때에는 자신의 판단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명되는 것을 자신의 상상력으로는 관대하게 해석하려고 애쓸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정확히 그런 식으로 나는 바틀비와 그의 습성을 주시했다. 불쌍한 녀석! 하고 나는 생각했다. 녀석은 해를 끼칠 뜻은 없어. 오만하게 굴려는 의도는 없는 게 분명해. 녀석의 얼굴을 보면 녀석의 기행이 본의가 아니라는 것이 충분히 드러나지, 녀석은 내게 유용해. 난 녀석과 잘 지낼 수 있어. 만일 녀석을 내쫓는다면 십중팔구 녀석은 나보다 까다로운 고용주한테 걸려들어 거친 대접을 받고 아마 비참하게 쫓겨나 굶어죽게 될 거야. 그래. 여기서 나는 감미로운 자기긍정을 값싸게 손에 넣을 수 있어. 바틀비와 정답게 지내며 녀석의 기묘한 고집을 너그럽게 봐주더라도 내게는 별다른 비용이 들지 않는 반면 언젠가는 양심의 감미로운 양식이 될 만한 것을 내 영혼에 비축하게 되는 거야. 그러나 내가 변함없이 이런 기분이었던 것은 아니다. 바틀비의 수동성이 가끔 나를 짜증나게 했다. 나는 그와 새로운 적대관계로 맞섬으로써 그에게서 내 화에 상응하는 어떤 불같은 화를 촉발시키고 싶은 묘한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사실은 차라리 윈저 비누(향료가 든 갈색 또는 백색의 화장비누-옮긴이) 조각을 손가락 마디로 쳐서 불을 지피려고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오후 내가 삿된 충동에 사로잡히는 바람에 다음과 같은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바틀비.” 내가 말했다. “그 서류를 모두 필사한 다음에 나와 함께 대조해보자고.”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뭐라고? 설마 그런 고집불통의 기행을 끝까지 밀고 나갈 생각은 아니겠지?”
대답이 없었다.
나는 가까운 접문을 밀어서 열고 터키와 니퍼즈를 돌아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바틀비가 두 번째로 자기 서류를 검토하지 않겠다고 하는군. 터키, 자네는 이걸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때는 오후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터키는 놋쇠 보일러처럼 벌겋게 달아오른 채 앉아 있었다. 그의 벗겨진 머리에서는 김이 솟아나고 있었고 덤벙대는 손으로 얼룩진 서류를 만지고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터키가 으르렁댔다. “당장 녀석의 칸막이로 들어가 눈이 시퍼렇게 되도록 패줄 생각이에요!”
그렇게 말하고 터키는 일어서서 양팔을 휘두르며 권투 자세를 취했다. 그는 자신의 약속을 실행하려고 서둘러 가려 했고, 나는 점심 이후 터키의 호전성을 경솔하게 자극한 결과에 놀라 그를 붙들었다.
“터키, 자리에 앉게.” 내가 말했다. “그리고 니퍼즈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게. 니퍼즈,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바틀비를 즉시 해고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을까?”
“미안하지만 선생님, 그건 선생님이 결정하실 일입니다. 저는 그의 행위가 상당히 유별나며, 사실 터키와 저 자신을 고려하면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그냥 일시적인 변덕일 수도 있지요.”
“아,” 하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렇다면 이상하게도 자넨 생각이 바뀌었군. 이제 그에 대해 아주 점잖게 말하는군.”
“모두 맥주 탓이죠.” 터키가 소리쳤다. “점잖은 것은 맥주의 영향이지요. 니퍼즈와 내가 오늘 함께 식사를 했거든요. 선생님, 내가 얼마나 점잖은지 보세요. 내가 가서 녀석의 눈을 갈겨줄까요?”
“지금 바틀비를 두고 하는 말 같은데. 안 돼, 터키. 오늘은 안 돼.” 내가 대답했다. “제발 주먹을 거두게.”
나는 문을 닫고 다시 바틀비에게로 갔다. 나는 내 자신의 운명을 재촉하고 싶은 유혹을 한층 더 느꼈다. 다시 반항의 대상이 되기를 애타게 바랐던 것이다. 바틀비가 사무실에서 결코 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바틀비,” 내가 말했다. “진저 넛이 나가고 없어. 자네가 잠깐 우체국에 들러주겠나? (우체국은 걸어서 삼분 거리밖에 안되었다.) 그래서 나한테 우편물이 와 있는지 알아봐주겠나?”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안 가겠다는 말인가?”
“안 가고 싶습니다.”
나는 비틀거리며 내 책상으로 돌아왔고 거기 앉아서 깊은 생각에 빠졌다. 맹목적인 고집이 고개를 쳐들었다. 이 말라빠지고 땡전 한 푼 없는 놈에게, 내가 고용한 종업원에게 나 자신이 굴욕스럽게 거부당하는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 무엇을 더 시키면 완벽하게 합리적인 일인데도 녀석이 틀림없이 거부할까?
“바틀비!”
대답이 없었다.
“바틀비.” 좀 더 큰 소리였다.
대답이 없었다.
“바틀비.” 나는 포효했다.
세 번 주문을 외어 유령을 불러내는 마법에 응하듯 흡사 유령처럼 바틀비가 자기 은신처의 입구에 나타났다.
“옆방에 가서 니퍼즈한테 내가 부른다고 말해줘.”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그는 공손히 천천히 말하고는 가만히 사라졌다.
“좋았어, 바틀비.” 나는 엄정하고 침착한 어조로 조용히 말함으로써 당장이라도 어떤 끔찍한 보복을 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내비쳤다. 그 순간에는 그런 유의 보복을 할 생각이 얼마쯤 있었다. 그러나 저녁 먹을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대체로 오늘은 심적인 당혹과 고민으로 상당히 고통을 당했으니 이만 모자를 쓰고 퇴근길에 오르는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는가? 이 모든 일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어느새 내 사무실의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즉 바틀비라는 이름의 창백한 젊은 필경사가 내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갖게 되었다는 것, 그 필경사는 통상 2절지(100단어) 당 4센트의 임금을 받고 나를 위해 필사를 한다는 것, 그러나 그는 자기가 필사한 사본을 검토하는 작업에서는 항상 면제받고 그 의무는 훨씬 더 빈틈없다는 칭찬과 더불어 터키와 니퍼즈에게 전가된다는 것, 게다가 앞서 말한 바틀비는 어떤 종류건 아무리 사소한 것이건 심부름은 결코 보낼 수 없다는 것, 설령 그런 일을 맡아달라는 간청을 받더라도 그는 두말할 나위 없이 “그렇게 안 하고 싶을” 것임을, 달리 말하면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할 것임을 모두들 양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날이 감에 따라 나는 바틀비와 상당히 화해하게 되었다. 그의 착실함, 전혀 방탕하지 않은 점, 부단한 근면성(그가 칸막이 뒤에서 선 채로 공상에 빠지고 싶어할 때를 제외하고), 깊은 고요함, 어떤 정황에서도 한결같은 태도 등으로 인해 그를 고용한 것은 사무실에 소중한 이득이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이것, 즉 그가 항상 거기에 있다는 것, 아침에 가장 먼저 와 있고 하루 종일 자리를 지키며 밤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정직성을 각별히 신뢰하고 있었다. 가장 소중한 서류도 그에게 맡기면 지극히 안전하다고 느꼈다. 물론 때로는 아무리 해도 내가 그에게 별안간 발작적으로 화를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 사무실에 머물면서 바틀비가 누리는 무언의 조건이랄 수 있는 그 기이한 습성, 특권, 그리고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예외들을 항상 명심하기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었다. 나는 때때로 급한 용무를 신속히 처리하려는 열망에서 무심코 짧고 급한 어조로 바틀비를 소환하곤 했는데, 가령 빨간 끈으로 어떤 서류를 눌러서 묶다가 첫 번째 끈 매듭을 손가락으로 눌러달라고 부르는 경우가 그랬다. 물론 칸막이 뒤에서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라는 평상시의 대답이 어김없이 나왔다. 그러면 인간 본성이 공유하는 나약함을 지닌 인간인 이상 그렇게 괴팍하고 그렇게 비합리적인 반응에 어찌 호통 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당하는 이런 종류의 거절이 매번 누적됨에 따라 무심결에 그런 행동을 반복할 확률은 대체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미리 말해둘 것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법무 건물들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대다수 법조계 사람들의 관례에 따라 내 사무실에도 열쇠가 여러 개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내 방의 먼지를 매일 떨고 쓸며 매주 걸레로 닦는 다락방 아줌마가 갖고 있었다. 또 하나는 편의상 터키가 갖고 있었다. 세 번째 열쇠는 때때로 내가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네 번째 것은 누가 갖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유명한 전도사의 설교를 들으러 트리니티 교회(뉴욕 맨해튼 남쪽의 월 가와 브로드웨이 교차로에 위치한 유서 깊은 교회-옮긴이)에 가게 되었고 그곳에 도착해보니 꽤 일러서 사무실에 잠시 들를까 하는 생각이 났다. 다행히 열쇠를 갖고 있었으나, 막상 자물쇠에 꽂아 넣으니 열쇠가 안쪽에서 끼워놓은 뭔가에 걸려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깜짝 놀라서 내가 소리치자 황당하게도 안쪽에서 열쇠가 돌아가더니 그 야윈 면상을 내게 들이밀고 조금 열린 문을 붙잡은 채 바틀비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그는 셔츠 바람에 이상한 누더기 같은 속옷 차림이었는데 미안하지만 지금은 자기가 어떤 일을 한창 하는 중이라서 당장은 들어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조용히 말했다. 게다가 내가 어쩌면 그 구역을 두세 차례 돌아보는 것이 낫겠으며 그때쯤에는 자기가 용무를 끝냈을 것이라고 한두 마디 간단히 덧붙였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내 변호사 사무실에 살고 있는 바틀비의 예기치 못한 출현과 송장처럼 창백하면서도 신사처럼 태연하며 동시에 확고하고 침착하기까지 한 모습에 너무나 기이한 영향을 받은 나머지 나는 엉겁결에 사무실 문에서 슬금슬금 걸어 나와 그의 뜻대로 했다. 그러나 이 불가사의한 필경사의 유순한 뻔뻔스러움에 반발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데에 따른 잡다란 고통이 없지는 않았다. 사실, 그의 놀라운 유순함이야말로 나를 무장해제시켰을 뿐 아니라 말하자면 내 사내다움마저 앗아간 주된 요인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고용한 직원에게 지시를 받고 자신의 사무실에서 나가라는 명령을 받는 경우를 당하는 사람은 그러는 동안 사내다움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바틀비가 셔츠 바람으로, 셔츠 말고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로 일요일 아침에 내 사무실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꺼림칙하기 그지없었다. 뭔가 잘못된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아냐, 그것은 불가능해. 바틀비가 부도덕한 인물이라고는 한순간도 생각할 수 없어. 하지만 녀석이 거기서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필사를 하고 있었을까? 그것도 아냐, 바틀비의 기행이 어떠하든 녀석은 두드러지게 단정한 사람이거든. 알몸에 가까운 상태로 책상에 앉아있을 사람이 결코 아니지. 게다가 오늘은 일요일인데, 바틀비가 세속적인 일로 안식일 예법을 어길 거리는 생각은 도저히 할 수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고, 들뜬 호기심으로 가득 찬 채 드디어 사무실로 돌아갔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나는 열쇠를 꽂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틀비는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졸이며 사무실 안을 둘러보고 칸막이 뒤쪽까지 들여다보았으나 그는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사무실 안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바틀비가 내 사무실에서 먹고 입고 잠을 잤으며, 그것도 접시며 거울이며 침대도 없이 그렇게 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 구석에 있는 낡아빠진 소파의 쿠션에는 야윈 몸을 뉘였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책상 아래에는 똘똘 말아놓은 담요 한 장이, 텅 빈 난로의 받침대 아래에는 검은 구두약 통과 구둣솔이, 의자 위에는 비누와 누더기 타원과 함께 양철 대야가, 신문지 속에는 생강빵 부스러기와 치즈 한 조각이 있었다. 그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바틀비가 이곳을 집으로 삼아 혼자서 독신 생활을 해온 것이 분명하구나. 그러자 즉각 바틀비의 의지가지없는 비참한 외로움이 여기서 드러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의 가난도 가난이지만, 그의 고독은 얼마나 끔찍한가! 생각해보라. 일요일이면 월 가는 페트라(요르단에 있던 고대 도시로 한때 부유했으나 곧 쇠퇴하여 멸망했음-옮긴이)처럼 인적이 끊기고, 매일 밤이면 텅 비어버린다. 이 건물 역시 평일에는 일과 활기로 법석대다가 해질 녘에는 완전히 공허한 울림을 주고 일요일 내내 버려진다. 그런데 바틀비는 여기에 거처를 마련하고 한때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 쓸쓸해지는 광경을 홀로 지켜보는 것이다. 카르타고의 폐허 속에서 시름에 잠긴 무고한 마리우스(BC 157~BC 86,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로서 일곱 차례나 집정관을 역임했으나 만년에는 정쟁에서 패해 아프리카로 피신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음-옮긴이)의 쇠락한 모습 같다고나 할까!
난생 처음으로 가슴을 찌르듯 밀려오는 우수의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제껏 나는 감미로운 슬픔밖에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하나 지금은 다 같은 인간이라는 유대감이 항거할 수 없는 힘으로 나를 어두운 우수로 끌어들였다. 형제애의 우수! 나나 바틀비나 다 같은 아담의 후예가 아닌가. 나는 그날 내가 보았던 화사한 비단옷의 생기 찬 얼굴들을 기억했다. 나들이옷을 화려하게 차려입고 미시시피강 같은 브로드웨이를 백조처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그들을 나는 그 창백한 필경사와 대조했다. 우리는 세상이 명랑하다고 여기지만 불행은 멀찌감치 숨어 있어서 우리가 불행이 없다고 여길 뿐이다. 이런 슬픈 공상들-분명 병들고 어리석은 두뇌가 낳은 망상들-은 바틀비의 기행과 관련된 좀 더 특별한 다른 생각들로 이어졌다. 이상한 발견의 예감이 내 주위에 감돌았다. 내게 그 필경사의 창백한 형체는 낯선 자들이 무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떨리는 수의에 감긴 채 입관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문득 내 주목을 끈 것은 자물쇠에 보란 듯이 열쇠가 꽂혀 있는 바틀비의 닫힌 책상이었다.
내가 무슨 나쁜 생각을 품은 것도 비정하게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것도 아니야, 게다가 그 책상은 내 것이고 내용물 또한 내 것이니 난 과감하게 안을 들여다볼 거야, 라고 나는 생각했다.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서류들도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정리용 분류함들은 속이 깊어서 나는 서류철을 꺼내고 깊숙한 곳까지 더듬어보았다. 곧 거기에 뭔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서 끄집어냈다. 그것은 홀치기염색을 한 낡고 큰 손수건으로, 묵직한데다 매듭으로 묶여 있었다. 그 매듭을 풀고 보니 저금통이었다.
그간 내가 바틀비에게서 눈여겨본 그 모든 눈에 띄지 않는 수수께끼를 이제 떠올려보았다. 그는 대답할 때 말고는 절대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이 상당히 있는데도 독서하는-아니 심지어 신문을 앍는-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것, 오랜 시간 동안 칸막이 뒤쪽의 어슴푸레한 창가에 서서 막다른 벽돌벽을 내다보곤 했다는 것을 기억했다. 나는 그가 크든 작든 식당을 찾아간 적이 없음을 확인했으며 창백한 얼굴로 보건대 터키처럼 맥주를 마시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처럼 차나 심지어 커피를 마신 적도 결코 없음이 분명했다. 내가 알기로는 특별히 어떤 곳에 간 적도, 정말이지 지금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산책 한 번 간 적도 없으며,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세상에 친척이 있는지 없는지 말하기를 거부했으며, 그토록 야위고 창백하지만 건강이 나쁘다고 불평한 적이 없다는 것도 분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에게는 무의식적이지만 어떤 창백한-어떻게 말해야 할까?-창백한 도도함이랄까 아니 준엄한 과묵함의 분위기가 있음을 기억했다. 확실히 그런 분위기에 눌려서 나는 그의 기행을 얌전히 받아들이는 한편 그가 오랫동안 계속 꼼짝 않는 것으로 봐서 칸막이 뒤에 선 채 틀림없이 면벽 공상에 빠져 있는데도 아무리 자잘구레한 일이라도 그에게 부탁하기를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런 모든 사안을 곰곰 되새기고 그것을 그가 내 사무실을 자신의 변함없는 거처이자 집으로 삼고 있었다는 조금 전에 발견한 사실과 결합하면서 그의 병적인 우울증까지 염두에 두자, 요컨대 이 모든 사안에 두루 생각이 미치자 내게 슬그머니 신중해야겠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나의 첫 번째 감정은 순수한 우울과 진지하기 그지없는 연민의 감정이었다. 그러나 내 상상 속에서 바틀비의 절망적인 고독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바로 그 우울감이 공포로, 연민이 반발로 바뀌었다. 비참한 모습을 생각하거나 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최상의 애정이 우러나오지만, 특별한 경우 그 정도를 넘어서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 과연 사실이며, 너무 섬뜩한 사실이기도 하다. 이런 일이란 어김없이 인간 마음의 타고난 이기심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는 사람은 잘못된 것이다. 이는 차라리 과도한 기질적 질환은 치유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존재에게 연민은 고통이 아닌 경우가 드물다. 그런데 그런 연민으로는 효과적인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지각이 마침내 생기면 상식에 따라 영혼은 연민을 버릴 수밖에 없다. 그날 아침 목격한 것으로 말미암아 나는 그 필경사가 선천적인 불치병의 희생자라는 것을 납득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육신에 자선을 베풀 수는 있다. 그러나 그를 아프게 하는 것은 그의 육신이 아니다. 아픔을 겪는 것은 그의 영혼인데, 그 영혼에는 내 손이 미치지 않는다.
나는 그날 아침 트리니티 교회에 가려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왠지 몰라도 내가 본 것으로 말미암아 나는 당분간 교회에 갈 자격을 상실한 것 같았다. 나는 집을 향해 걸어가면서 바틀비를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마침내 나는 이런 결심을 했다. 다음날 아침 그에게 이력과 기타사항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차분하게 할 것이며, 그가 그 질문에 대답하기를 공개적이고 거리낌 없이 거절한다면(그는 ‘그렇게 안 하고 싶다’고 할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얼마가 되건 내가 그에게 주어야 할 급료에다 20달러짜리 지폐 한 장을 더 얹어주면서 그의 근무는 이제 필요치 않노라고, 하지만 다른 어떤 방식으로든 그를 도울 수 있다면 즐거이 그렇게 하겠노라고, 특히 그의 고향이 어디든 그곳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면 기꺼이 여비를 부담하겠노라고 말할 것이다. 게다가 집에 도착한 후에도 언제라도 도움이 필요할 경우에 편지를 하면 틀림없이 답장을 하겠노라고 할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 왔다.
“바틀비.” 칸막이 뒤쪽의 그를 부드럽게 부르며 내가 말했다.
대답이 없었다.
“바틀비.” 내가 좀 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리 와. 자네가 안 하고 싶은 일을 해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을 테니-그냥 자네한테 이야기하고 싶어.”
이 말에 그는 아무 소리 없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바틀비. 자네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말해 주겠어?”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무엇이든 자네 자신에 대해 말해주겠어?”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내게 말하는 것을 거부할 무슨 합당한 이유라도 있어? 나는 자네한테 친근감을 느끼는데.”
그는 내가 말하는 동안 나를 바라보지 않고 내가 앉아있던 곳 바로 뒤 내 머리 위 15센티미터쯤에 있는 키케로 흉상에 계속 눈길을 맞추고 있었다.
“바틀비, 자네 대답은 무엇인가?” 상당한 시간 동안 대답을 기다린 후에 내가 말했다. 그러는 동안 그 가늘고 하얀 입이 아주 어렴풋이 떨렸을 뿐 바틀비의 표정은 동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대답 안 하고 싶습니다.” 하고 말하고는 그가 자기 은신처로 물러갔다.
고백하건대 내 마음이 상당히 약한 탓이어서겠지만 나는 이번 경우 그의 태도에 화가 났다. 그 태도 속에 일종의 차분한 경멸이 도사리고 있는 듯했을 뿐 아니라 그가 내게서 받은 부인할 수 없이 좋은 대우와 관대함을 고려하면 그의 괴팍한 외고집은 배은망덕한 것 같았다.
다시금 나는 어찌해야 할지 되새기면서 앉아 있었다. 바틀비의 행동에 모멸감을 느꼈고 그를 해고하기로 이미 결심하고서 사무실에 들어섰지만, 그럼에도 묘하게 뭔가 미신적인 것이 심장을 두드려 나로 하여금 그 결심을 실행하지 못하게 막고, 만약 내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이 사람에게 감히 쓰라린 말을 한 마디만 벙긋하면 나를 나쁜 놈이라고 비난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내 그의 칸막이 뒤쪽으로 내 의자를 친근하게 끌어다 앉으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바틀비, 그렇다면 자네 이력을 밝히는 건 신경쓰지 말게. 하지만 친구로서 간청하건대 가능한 한 이 사무실의 관례에 따라주길 바라. 내일이나 모레나 서류 검토를 돕겠다고 지금 말해줘. 간단히 말해서 하루 이틀 후에는 자네가 좀 합리적으로 될 거라고 지금 말해줘. 그렇게 하겠다고 해줘, 바틀비.”
“현재로선 좀 합리적으로 안 되고 싶습니다.” 라는 것이 송장처럼 창백한 그의 답변이었다.
바로 그 때 접문이 열리더니 니퍼즈가 다가왔다. 그는 보통 때보다 심한 소화불량으로 유별나게 밤잠을 설친 탓에 고통스러운 듯했다. 그는 바틀비의 마지막 말을 엿들은 것이다.
“뭐, 안 하고 싶다고?” 니퍼즈가 이를 갈아대듯 말했다. “제가 선생님이라면 녀석이 하고 싶도록 만들겠어요.” 그가 나에게 말했다. “저는 녀석이 하고 싶게 만들 테고, 하고 싶은 것을 주겠어요. 고집불통의 나귀 같은 녀석! 선생님, 이번에 녀석이 안 하고 싶은 건 대체 뭔가요?”
바틀비는 손 하나 꿈적하지 않았다.
“니퍼즈 씨,” 내가 말했다. “당신은 당분간 물러나 있었으면 싶어.”
어찌된 일인지 최근에 나는 이 ‘싶다’라는 단어를 딱히 적절하지 않은 온갖 경우에도 무심결에 사용하는 습성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바틀비와 접촉함으로써 내가 정신적인 면에서 이미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몸이 떨렸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어떤 이상증세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우려는 나로 하여금 즉결조치를 취하도록 결정하는 효과가 없지 않았다.
니퍼즈가 아주 심술궂고 부루퉁한 표정으로 나가자 터키가 온화하고 공손하게 다가왔다.
“외람된 말씀입이다만 선생님,” 그가 말했다. “어제 내가 여기 바틀비 생각을 해봤는데요, 만약 그가 매일 좋은 맥주 1리터 정도만 마시고 싶어하기만 하면 버릇을 고쳐서 자기 서류 검토 작업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겁니다.”
“자네 역시 그 단어에 전염되었군.” 내가 약간 흥분하여 말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선생님, 무슨 단어 말씀입니까?” 하고 터키가 물으면서 칸막이 뒤의 좁아터진 공간으로 공손히 밀고 들어왔고 그 바람에 나는 바틀비를 떠미는 꼴이 되었다. “무슨 단어 말씀입니까, 선생님?”
“여기에 혼자 있고 싶습니다.” 자신의 사적인 공간에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데 기분이 상한 듯 바틀비가 말했다.
“터키, 저게 그 단어야.” 내가 말했다. “바로 저거라고.”
“아, ‘싶다’라는 단어? 아 맞아요-이상한 단어지요. 나 자신은 그 단어를 결코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말씀드렸듯이 만약 그가 마시고 싶어하기만 한다면-”
“터키.” 내가 말을 끊었다. “자넨 제발 물러나게.”
“내가 물러났으면 싶으시다면, 아 물론이죠, 선생님.”
터키가 물러나기 위해 접문을 열었을 때 니퍼즈가 자기 책상에서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내가 어떤 서류를 푸른 종이와 하얀 종이 중 어느 쪽에 필사했으면 싶은지 물었다. 그는 ‘싶다’라는 단어를 조금도 짓궂은 억양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다. 이 단어가 그의 입에서 무심결에 나온 것이 분명했다. 나는 속으로 나 자신과 직원들의 머리는 아닐지라도 입을 이미 상당 정도 변질시킨 이 미친 사람을 확실히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즉시 해고를 공표하지 않는 것이 신중하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나는 바틀비가 면벽 공상에 잠긴 채 그냥 창가에 서 있을 뿐임을 알아차렸다. 왜 필사를 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더 이상 필사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아니, 이번에는 왜? 다음에는 어떡할 건데?” 나는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필사를 안 한다고?”
“더 이상 안 합니다.”
“그런데 이유가 뭐야?”
“알려주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모르시겠어요?” 그가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나는 단호하게 그를 쳐다보았고 그의 눈이 흐리멍덩해 보이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나에게 고용된 뒤 처음 몇 주 동안 어두운 창가에서 전례 없이 부지런하게 필사를 하느라고 눈이 일시적으로 상했으리라는 생각이 즉각 떠올랐다.
속이 짠했다. 나는 그에게 뭔가 위로의 말을 했다. 한동안 필사를 그만두는 것은 물론 현명한 행동임을 암시하면서 나는 그에게 이 기회에 야외로 나가 건강에 좋은 운동을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며칠 후 다른 직원들도 없는데 편지 몇 통을 급히 부치려고 서둘러대던 나는 바틀비가 다른 할 일이 하나도 없으므로 평소보다는 고분고분해져서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에 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딱 잘라서 거절했다. 그래서 매우 불편하게도 내가 직접 갔다.
또 며칠이 지나갔다. 바틀비의 눈이 나아졌는지 어떤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외관상 어느 모로 보나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아졌는지 묻자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더 이상 필사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의 끈질긴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마침내 그는 필사를 영원히 그만두었음을 알려주었다.
“뭐라고!” 내가 소리쳤다. “자네 눈이 완치되면-전에 없이 좋아지면-그때도 필사를 하지 않을 건가?”
“필사를 포기했어요.” 하고 대답하고는 그는 슬그머니 옆으로 빠졌다. 그는 여느 때처럼 내 사무실의 붙박이 같은 존재로 남아 있었다. 아니-그게 가능하다면-그는 전보다 더욱더 붙박이가 되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무실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가 왜 거기 남아 있어야 하는가? 그는 이제 목걸이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짊어지자니 괴로운 연자맷돌(「마태복음」18장 6절을 인유한 구절-옮긴이)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딱했다. 그 때문에 이따금 내가 거북해졌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진실은 아니다. 그가 친척이나 친구 이름을 하나라도 댔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당장 편지를 써서 이 불쌍한 친구를 어디든 편한 은신처로 데려가 달라고 신신당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혼자인 듯, 온 우주에서 완전히 혼자인 듯했다. 대서양 한가운데 떠 있는 난파선의 잔해 조각이랄까. 하지만 결국에는 내 업무와 관련된 필요사항이 다른 모든 고려사항보다 더 시급했다.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점잖게 바틀비에게 6일 내에 무조건 사무실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 사이에 다른 거처를 구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쪽에서 이사 갈 채비를 시작하면 내가 다른 거처를 구하는 일을 돕겠다고도 제안했다. “그리고 바틀비, 자네가 마침내 나를 떠날 때 완전히 빈털터리로 가게 하지는 않겠네. 이 시간부터 6일 이내라는 것을 명심하게.” 라고 덧붙였다.
그 기간이 만료되어 내가 칸막이 뒤를 들여다보니, 이런! 바틀비가 거기 있었다.
나는 외투 단추를 꼭 잠그고 몸의 균형을 잡고 천천히 다가가서 그의 어깨를 건드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됐어. 자네는 이곳을 떠나야 해. 딱하긴 하네만, 여기 돈이 있어. 하지만 자넨 가야 해.”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그가 여전히 내게 등을 돌린 채 대답했다.
“자넨 가야 한다니까.”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이 사람이 늘 보여주는 정직성에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그는 부주의하게 바닥에 떨어뜨린 6페니나 1실링짜리를 내게 자주 돌려주었다. 나는 그런 푼돈의 문제에서는 매우 칠칠치 못한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다음에 나온 조처는 터무니없게 여길 일이 아니다.
“바틀비,” 내가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지불할 급료가 12달러인데, 여기 32달러가 있네. 여분의 20달러는 자네 것이야. 이거 받을 텐가?” 하고 나는 그를 향해 지폐를 건넸다.
그러나 그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돈은 여기에다 놓아둘게.” 하고 돈을 책상 위에 놓고 문진으로 눌러두었다. 그런 다음 모자와 지팡이를 가지고 문으로 간 나는 차분하게 돌아서서 이렇게 덧붙였다. “바틀비, 이 사무실에서 자네 물건을 옮긴 다음에 자네는 물론 문을 잠가야 하겠지-자네 외에 모든 사람이 그때는 퇴근했을 테니까-그런데 미안하지만 자네 열쇠를 문 앞의 깔개 아래에 살짝 넣어놓으면 내가 아침에 찾을 수 있겠어. 난 다시는 자네를 보지 못할 거야. 그러니 잘 가게 이제부터 자네의 새 거처에서 내가 자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편지로 꼭 알려주게. 바틀비, 안녕, 잘 가게.”
그러나 그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폐허가 된 사원의 마지막 기둥처럼 그는 그가 아니라면 텅 비었을 방의 한복판에 말없이 고독하게 서 있었다.
생각에 잠겨 집으로 걸어가다보니 내 속의 허영심이 동정심을 눌렀다. 바틀비를 제거하는 나 자신의 고수다운 처리솜씨를 무척 대견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걸 고수답다고 일컫는데, 냉정한 사유를 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내 일처리 방식의 미덕은 그 완벽한 조용함에 있는 듯했다. 천박하게 윽박지른다든지 어떤 식이든 허세를 부린다든지 성질내고 소리지르며 사무실 안을 왔다갔다하면서 바틀비에게 거지같은 짐을 싸가지고 당장 나가라며 격한 명령을 마구 내뱉는 일은 없었다. 그런 종류의 일은 전혀 없었다. 바틀비에게 큰 소리로 떠나라고 명령하지 않고-하수라면 그랬을 테지만-나는 그가 떠나야 하는 근거를 가정했고 그 가정 위에 내가 할 말들을 모두 구축했다. 내 일처리 방식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스스로 더욱 매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침 깨어나자마자 나는 의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잠자는 사이에 허영의 기운이 빠져버린 것이다. 사람이 가장 냉정하고 현명해지는 시간 중 하나는 아침에 깨어난 직후이다. 내 일처리 방식은 변함없이 현명해 보였으나 오로지 이론상으로만 그랬다. 그것이 실제로는 어떤 것으로 판명될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바틀비가 떠날 거라는 가정은 참으로 절묘한 생각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 가정은 나의 가정일 뿐 바틀비의 가정은 전혀 아니었다. 중요한 점은 그가 나를 떠날 것이라고 내가 가정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가 그렇게 하고 싶으냐 아니냐의 문제였다. 그는 가정대로 하기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인 것이다.
아침식사를 한 후 내 가정이 맞거나 틀릴 확률을 따지면서 나는 시내로 걸어갔다. 한순간에는 내 가정이 참담한 실패로 판명되고 바틀비가 보통 때처럼 사무실에 건재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다음 순간 그의 의자가 틀림없이 비어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내 생각은 수시로 바뀌었다. 브로드웨이와 커낼 가가 만나는 모퉁이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떼 지어 서서 상당히 흥분한 상태로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안 그런다는 쪽에 내기를 걸겠어.” 내가 지나가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 가는 쪽이라고?-좋아!” 내가 말했다. “돈을 거시오.”
나는 돈을 꺼내려고 본능적으로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다가 오늘이 선거일이라는 것이 기억났다. 내가 엿들은 말은 바틀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시장에 출마한 어떤 후보가 당선되느냐 낙선되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긴장된 상태에서 나는 말하자면 브로드웨이 사람 전부가 나처럼 흥분해서 나와 똑같은 문제로 갑론을박하고 있는 줄로 상상한 것이다. 거리의 소동 덕분에 순간적으로 얼빠진 내 상태가 은폐된 것에 매우 감사하며 나는 가던 길을 갔다.
의도한 대로 나는 평소보다 일찍 사무실 문 앞에 도착했다. 한동안 귀를 기울이고 서 있었다. 가방이 고요했다. 그가 가버린 것이 분명했다. 나는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문은 잠겨 있었다. 그래, 내 일처리 방식이 마법처럼 효력을 발휘한 거야. 녀석이 정말로 사라진 것이 틀림없어. 그러나 뭔가 우울한 기분이 섞여 들어왔다. 나의 빛나는 성공이 유감스러운 지경이었다. 바틀비가 나를 위해 남겨두기로 했던 열쇠를 찾으려고 문 앞 깔개 아래 손을 넣어 더듬다가 우연히 내 무릎이 문짝에 부딪히는 바람에 마치 사람을 부르는 듯 노트 소리가 났고, 그 응답으로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만요. 지금 일하고 있는 중이에요.”
바틀비였다.
나는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한순간 나는 오래 전 버지니아에서 구름 한 점 없는 어느 여름 오후에 번개에 맞아 파이프를 입에 물고 죽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활짝 열린 따뜻한 창가에서 그는 죽었고, 그 꿈결 같은 오후에 창밖으로 몸을 구부린 상태 그대로 남아 있다가 누군가가 건드리자 푹 쓰러졌다는 것이다.
“안 갔어!” 한참 만에 내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불가해한 필경사가 내게 행사하고 내가 아무리 안달해도 완전히 피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권위에 다시 복종하면서,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그 구역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이 금시초문의 황당한 일을 당하여 내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실제로 완력을 행사해서 그 사람을 쫓아낼 수는 없었다. 심한 욕을 해서 그를 몰아내는 방법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을 불러들이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발상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나에 대해 송장 같은 승리를 누리게 두는 것, 이 또한 나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니,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면 내가 이 문제에서 가정할 수 있는 것이 더 없을까? 그래, 전에 내가 미래를 내다보며 바틀비가 떠날 거라고 가정했듯이 이제 과거를 돌아보며 그가 이미 떠났다고 가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가정을 정당하게 실행하는 일환으로 황급히 사무실에 뛰어들어가, 바틀비가 마치 공기인 것처럼 전혀 보이지 않는 척하면서 그를 향해 똑바로 걸어가는 거야.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이야말로 단연 정곡을 찌르는 듯했다. 바틀비도 이런 식으로 가정의 원칙을 적용당하면 견디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이 계획이 성공할지 상당히 의심스러웠다. 나는 다시 한 번 그를 상대로 철저히 문제를 따지기로 결심했다.
“바틀비,” 사무실로 들어서며 나는 조용하고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심히 불쾌해. 바틀비, 내 마음이 아프다고. 자네를 훨씬 좋게 보았는데. 자네가 신사다운 됨됨이를 지니고 있어서 어떤 미묘한 곤경에 처해 있어도 어떤 미묘한 곤경에 처해 있어도 약간의 암시면, 간단히 말해서 하나의 가정이면 족할 거라고 생각했었어. 그러나 내가 잘못 본 것 같아. 아니.” 나는 진정으로 놀라면서 내가 전날 저녁에 놓아둔 바로 그 자리에 있는 돈을 가리키며 “아직 돈에 손도 대지 않았군.” 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떠날 건가 안 떠날 건가?” 나는 불끈 화를 내면서 그에게 바싹 다가가서 다그쳤다.
“당신을 안 떠나고 싶습니다.” 그가 ‘안’이라는 단어에 부드러운 강세를 넣으며 대답했다.
“도대체 자네가 무슨 권리로 여기 머물겠다는 건가? 진세라도 내는가? 세금이라도 내는가? 아니면 이 사무실이 자네 건가?”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제 필사할 각오가 된 건가? 눈은 나았어? 오늘 아침에 간단한 서류 하나를 필사해주겠나? 아니면 몇 구절 대조 검토하는 걸 돕겠어? 아니면 우체국에 잠깐 다녀오겠어? 한 마디로 이 사무실을 떠나지 않겠다는 자네의 거절에 그럴듯한 구실이 될 만한 어떤 일이라도 하겠어?”
그는 말없이 자기 은신처로 물러났다.
나는 그때 너무 분해서 신경이 곤두선 상태라서 당장에는 더 이상의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바틀비와 나 둘밖에 없었다. 나는 불운한 애덤즈와 그보다 더 불운한 콜트가 단둘이 콜트의 한적한 사무실에서 있을 때 일어난 비극이 기억났다.(1842년 뉴욕에서 쌔뮤얼 애덤즈가 존 C. 콜트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언급하는 대목임-옮긴이) 불쌍한 콜트가 애덤즈 때문에 몹시 화가 나서 경솔하게도 걷잡을 수 없이 흥분하는 바람에 뜻밖에 치명적인 행위-분명히 누구보다도 행위자 자신이 가장 개탄했을 행위-로 치닫고 만 사건의 전말이 떠올랐다. 그 사건을 음미하면 그 언쟁이 공적인 길거리나 사적인 저택에서 일어났더라면 현실의 비극처럼 종결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인간적인 분위기의 가정적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어떤 건물 위층의 외딴 사무실-분명 카펫이 깔리지 않아 먼지투성이이고 삭막한 외양의 사무실-에 둘만 있는 정황, 이것이야말로 불운한 콜트의 무모한 화를 돋우는 데 크게 일조한 요소가 틀림없었다.
그러나 아담처럼 원초적인 이 노여움이라는 놈이 내 속에서 솟아올라 바틀비와 관련하여 나를 유혹할 때 나는 그놈을 꽉 붙잡아 내동댕이쳤다. 어떻게 그랬느냐고? 글쎄, 그냥 신성한 금지명령, 즉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는 서로를 사랑하라”(「요한복음」13장 34절 예수가 제자들에게 한 말씀-옮긴이)라는 구절을 상기했을 뿐이다. 그래, 바로 이것이 나를 구한 것이다. 고매한 사상이라는 점을 접어두더라도 자선은 종종 대단히 현명하고 신중한 원리로 작동하며, 자선을 베푸는 사람에게 근사한 안전장치가 된다. 사람들은 질투 때문에 살인죄를 범해왔다. 또 노여움 때문에, 증오 때문에, 이기심 때문에, 교만한 마음 때문에도 범해왔다. 하지만 다정한 자선 때문에 악마의 소행인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은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른 고상한 동기를 거론할 것도 없이, 단순히 자기이익을 위해서라도 모든 사람은, 특히 성을 잘 내는 사람은 자선과 박애를 행할 만하다. 어쨌거나 지금 이 문제의 경우에 나는 바틀비의 행위를 호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 필경사에 대한 나의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불쌍한 녀석, 불쌍한 녀석! 하고 나는 생각했다. 녀석에게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며, 게다가 녀석은 어려운 시절을 겪었으니 잘 대해줘야지.
나는 또한 즉각 일에 몰두하는 동시에 낙담한 내 마음을 위로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아침나절 동안 바틀비가 자기 마음이 내키는 때에 자발적으로 자기 은신처에서 나와 문 쪽으로 단호한 행진을 시작하리라는 상상을 애써 해보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열두시 반이 되자, 터키가 얼굴을 벌겋게 붉히고 잉크병을 뒤엎으며 온통 법석을 떨기 시작했고 니퍼즈는 한결 누그러지면서 조용하고 정중해졌고 진저 넛은 점심용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먹었으며, 바틀비는 깊디깊은 면벽 공상에 빠진 채 여전히 자기 창가에 서 있었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할까?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까? 그날 오후 내가 바틀비에게 더 이상 말 한 마디 않고 사무실에서 나갔다는 사실 말이다.
이렇게 또 며칠이 지나갔고 그사이에 나는 여가가 날 때 의지에 관한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53, 미국 식민지시대 캘빈주의 신학자이며 대각성운동의 지도자로 자유의지에 관한 저서를 출간했음-옮긴이)의 저서와 필연성에 관한 프리스틀리(Joseph Prietly, 1733~1804, 영국의 자연철학자이자 비국교도 성직자로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함-옮긴이)의 저서를 조금 들여다보았다. 그때의 정황에서 그 책들은 유익한 감정을 유발했다. 나는 차츰 바틀비와 관련된 이런 고생이 영겁 전에 모두 예정되어 있었으며 바틀비는 나 같은 범부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전지(全知)한 섭리의 어떤 신비한 목적을 위해 내게 할당되었다는 믿음에 빠져들었다. 그래, 바틀비야, 칸막이 뒤에 있어라 하고 나는 생각했다. 다시는 너를 박해하지 않으마. 너는 이 의자들처럼 해가 없고 시끄럽게 굴지도 않아. 요컨대 네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만큼 사적인 느낌이 든 적이 없어. 드디어 나는 내 삶의 예정된 목적을 보고 느끼고 꿰뚫어보고 있어. 나는 만족해. 다른 사람들은 좀 더 고상한 역할을 맡을 수도 있겠지만, 바틀비야, 이 세상에서 나의 임무는 네가 머물렀으면 하는 기간만큼 네게 사무실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야.
만약 내 사무실을 방문한 법조계 친구들이 청하지도 않은 무자비한 논평을 내게 마구 해대지만 않았더라면 이런 현명하고 축복받은 마음가짐은 계속되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도량이 좁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마찰하다보면 마침내 좀 더 관대한 사람들의 최상의 결심마저 갉아먹히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다만 그 일을 되새겨보면, 내 사무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영문을 알 수 없는 바틀비의 기이한 면모에 놀라서 그에 관해 어떤 불길한 발언을 불쑥 내뱉고 싶어한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가끔 내게 용무가 있는 법정대리인이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그 필경사밖에 없음을 발견하고 그에게서 내 행방에 관해 모종의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했겠지만, 바틀비는 그의 한가로운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사무실 한가운데 꼼짝 않고 서 있곤 했다. 그래서 그런 자세의 바틀비를 한동안 지켜보고 난 뒤 그 대리인은 찾아왔을 때와 똑같이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떠나버리곤 했다.
또한 중재가 진행 중이라서 사무실이 변호사와 증인으로 붐비고 업무가 급하게 처리될 때, 거기 참석하여 일에 깊이 몰두한 어떤 법조계 인사가 바틀비에게 전혀 일이 없는 것을 보고는 근처의 자기 (그 법조계 인사의) 사무실에 달려가서 무슨 서류를 가져와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바틀비는 그런 부탁을 차분하게 거절하면서 전과 똑같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있었을 것이다. 그럴 때 그 법조인이 놀란 눈으로 노려보면서 나를 돌아다보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법조계 지인들 사이에서 내가 사무실에 두고 있는 이 이상한 인물과 관련하여 놀라는 수군거림이 소문처럼 돌고 있음을 나는 마침내 알게 되었다. 이 때문에 나는 아주 많은 걱정을 했다. 그리고 바틀비가 혹시라도 장수하는 인물로 판명될 경우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럴 경우 그가 내 사무실을 계속 차지하고 내 권위를 부정하며 내 방문객을 당혹하게 만들고 변호사로서의 내 평판을 깎아내리고 사무실 전체에 암울한 분위기를 드리우고 자기 저축으로 끝까지 연명하고 (왜냐하면 그는 분명 하루에 5센트밖에 쓰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결국 어쩌면 나보다 오래 살아서 영속적 점유권에 의거하여 내 사무실의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불길한 예상들이 점점 더 나를 엄습하고 친구들이 내 사무실의 유령 같은 인물에 대해 무자비한 발언을 계속 해댐에 따라 내 속에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내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이 악몽 같은 참을 수 없는 존재를 영원히 떨쳐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이 목적에 맞는 복잡한 계획을 궁리하기 전에 나는 먼저 바틀비에게 완전히 떠나는 것이 합당하다고 그냥 넌지시 알려주었다. 차분하고 진지한 어조로 떠나는 것을 세심하게 숙고해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삼일 간 숙고한 뒤 그는 자기의 원래 결심이 변함없음을 내게 알려주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는 아직도 나와 함께 있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이제 외투의 마지막 단추까지 채우며 혼자 중얼거렸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양심상 이 사람, 아니 이 유령을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녀석을 떨쳐내야 하고, 녀석은 가야 한다. 그렇지만 어떻게? 녀석을, 이 불쌍하고 창백하고 수동적인 인간을 차마 밀쳐내지는 못할 노릇이야. 그렇게 무력한 존재를 문 밖으로 쫓아낼 순 없잖은가? 그런 잔인함으로 자신의 불명예를 초래할 순 없잖은가? 그래,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며 그럴 수도 없다. 차라리 녀석이 여기서 살다가 죽게 내버려두고, 그런 후에 녀석의 유해를 벽 속에 묻어주는 편이 낫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리 꼬드겨도 녀석은 꼼짝도 않으려고 하는데. 뇌물을 줘 봐도 책상의 문진 아래 그대로 남겨두고. 요컨대 녀석은 나한테 들러붙고 싶은 게 틀림없어.
그렇다면 뭔가 가혹하고 비상한 조치를 취해야 해. 뭐라고! 그렇다고 경관을 시켜 멱살을 잡게 하고, 그 죄 없는 창백한 인간을 상스러운 교도소로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녀석이 부랑자라고? 뭐라고! 꼼짝도 않으려는 녀석이 떠돌이 부랑자라고? 그렇다면 녀석을 부랑자로 취급하려는 까닭은 녀석이 부랑자가 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인 셈이네. 그건 정말 말이 안 돼. 명백한 부양수단이 없다는 것, 녀석의 약점은 바로 그것이야. 이것도 틀렸어. 왜냐하면 녀석이 자기 힘으로 벌어먹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그것이야말로 부양수단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반박 불가능한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네. 녀석이 나를 떠나려고 하지 않으니 내가 녀석을 떠날 수밖에 없어. 사무실을 바꾸는 거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만약 새 사무실에서 녀석을 발견하면 그때는 통상적인 불법침입자로 고소하겠다는 뜻을 녀석에게 정식으로 통고하는 거야.
이에 따라 다음날 나는 그에게 이렇게 통고했다. “사무실이 시청에서 너무 떨어져 있는 것 같아. 공기도 안 좋고. 간단히 말해서 다음 주에 사무실을 옮기려고 하는데 이제는 자네의 서비스가 필요 없겠어. 지금 자네한테 이 말을 하는 것은 자네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고 하는 걸세.”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나도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정해진 이삿날에 나는 수레와 인부를 구해서 사무실로 갔다. 가구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몇 시간 내에 모든 짐을 옮겼다. 그러는 동안 줄곧 바틀비는 칸막이 뒤에 서 있었고, 나는 칸막이를 맨 마지막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칸막이가 걷혔다. 칸막이가 마치 거대한 2절판 책처럼 접히고 난 후 그는 헐벗은 빈 방에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입구에 서서 잠시 그를 지켜보는 동안 내 속의 뭔가가 나를 질책했다.
나는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그러고는-그러고는 마음이 울컥해서 사무실에 다시 들어갔다.
“잘 있게, 바틀비. 나는 가네. 잘 있게. 어쨌든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이거 받게” 하면서 뭔가를 그의 손에 슬쩍 쥐어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이런 말하기 이상하지만-그토록 떨쳐버리기를 갈망했던 그에게서 나는 억지로 내 자신을 떼어냈다.
새 사무실에 자리를 잡으면서 나는 하루이틀간은 문을 잠그고 다녔고 복도의 발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웠다가 사무실로 돌아올 때면 문지방에 잠깐 멈춰 서서 열쇠를 꽂기 전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이곤 했다. 그러나 나의 두려움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바틀비는 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만사가 순조롭게 되어간다고 생각할 즈음, 당황한 듯이 보이는 한 낯선 신사가 나를 찾아와 최근까지 월 가 ○○번지에 사무실을 갖고 있던 사람이 아니냐고 물었다.
불길한 예감으로 가득한 채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선생님,” 하고 변호사로 밝혀진 그 낯선 신사가 말했다. “당신이 거기 남겨둔 사람은 당신 책임입니다. 그 사람은 어떤 필사도 거절하고 어떤 일도 거절하며 그렇게 안 하고 싶다고 할 뿐이고 사무실을 떠나기를 거절하고 있어요.”
“선생님, 아주 딱하게 되었군요.” 나는 차분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떨면서 말했다. “그렇지만 당신이 언급하는 사람은 정말로 나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오. 나한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내 친척도 아니고 도제도 아니란 말이오.”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굽니까?”
“내가 당신한테 그걸 알려줄 형편이 전혀 못되오.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니까요. 이전에 그를 필경사로 고용한 적은 있지만, 그가 내 일을 안 한 지 꽤 되었소.”
“그렇다면 제가 그를 처리하지요-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며칠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 들러서 불쌍한 바틀비를 만나려는 자비로운 충동을 이따금 느꼈으나 뭔지 모르게 거리끼는 바가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또 한주가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들리지 않자 나는 지금쯤은 그와 관련된 모든 일이 끝났겠지 하는 생각이 마침내 들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출근하는데 몇몇 사람이 신경이 곤두설 만큼 흥분한 상태로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저 사람이야-이제 오는군.” 맨 앞에 있는 사람이 소리쳤는데, 자세히 보니 전에 혼자서 나를 방문한 바로 그 변호사였다.
“선생님, 그 사람을 즉시 데려가셔야겠어요.” 그들 중에 뚱뚱한 사람이 내게 다가오며 외쳤는데, 나는 그가 월 가 ○○번지의 건물 주인임을 알고 있었다. “내 세입자들인 이 신사분들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답니다. B씨가,” 하고 그 변호사를 가리키며 건물 주인이 말했다. “그 사람을 사무실에서 쫓아냈더니 그 사람은 이제 건물 곳곳에 출몰하여 낮에는 계단 난간에 앉아 있다가 밤에는 건물 현관에서 잠을 잔답니다. 모든 사람이 걱정하고 있어요. 사무실을 찾는 고객들이 발길을 돌리고 있고요. 폭도(1849년 뉴욕 ‘애프터 플레이스’ 시위에 참가한 시위 군중을 가리킴-옮긴이)에 대한 두려움도 상당히 퍼져 있어요. 선생님이 뭔가 조치를, 그것도 지체 없이 취해주셔야겠어요.”
이런 빗발치는 말들에 대경실색하여 나는 뒤로 물러났고 새 사무실에 들어가 문을 잠가버리고 싶었다. 바틀비가 어느 누구와도 상관없듯이 나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줄기차게 항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내가 바틀비와 관련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마지막 사람이라며 나는 심하게 문책했다. 게다가 (그곳에 와 있는 한 사람이 어렴풋이 위협했듯이) 신문에 나올까 두려웠던 나는 그 문제를 숙고했고, 만약 그 변호사가 내게 자기 (그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바틀비와 은밀한 면담을 하도록 주선해준다면 그날 오후 그들이 불평한 그 골칫거리 존재를 그들로부터 떼어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말했다.
예전의 사무실 계단을 올라가니 바틀비가 층계참의 난간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바틀비, 여기서 뭘 하는 거야?” 내가 말했다.
“난간에 앉아 있어요.” 그가 유순하게 대답했다.
나는 몸짓으로 그를 그 변호사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고, 그러자 변호사는 우리를 남겨두고 나갔다.
“바틀비,” 내가 말했다. “사무실에서 해고된 뒤 건물 현관을 계속 점유함으로써 자네가 나한테 크나큰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대답이 없었다.
“이제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어. 자네가 무슨 조치를 취하든지 아니면 자네한테 무슨 조치가 취해지든지. 그런데 어떤 종류의 일에 종사하고 싶나? 어딘가에 취직해서 다시 필사 일을 하고 싶나?”
“아니요, 나는 어떤 변화도 안 겪고 싶습니다.”
“포목상 점원 일은 어떤가?”
“그 일은 너무 틀어박혀 있어서요. 싫어요, 점원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까다롭게 가리는 것은 아니에요.”
“너무 틀어박혀 있다니,” 하고 내가 소리쳤다. “아니 자네는 계속 틀어박혀 있잖아!”
“점원 자리는 안 택하고 싶습니다.” 그는 마치 그 작은 사안을 즉각 매듭지으려는 듯이 대꾸했다.
“바텐더 일은 자네 마음에 맞을 것 같나? 그 일은 눈을 피곤하게 하지는 않아.”
“그 일은 전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내가 까다로운 것은 아니에요.”
그가 이례적으로 말을 많이 해서 나는 고무되었다. 나는 다시 공략했다.
“좋아, 그렇다면 상인들 대신 지방에 돌아다니면서 수금하는 일을 하고 싶어? 그러면 건강이 나아질 거야.”
“아니요,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대화로써 젊은 신사를 즐겁게 해주는 말동무 자격으로 유럽에 가는 것은 어떻겠어, 그건 자네 마음에 들겠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 일에는 조금도 확실한 면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붙박이 일이 좋아요. 하지만 내가 까다로운 것은 아니에요.”
“그럼 붙박여 있어.” 나는 여기서 참을성을 잃고 소리쳤고, 나와 그 사이의 그 모든 분통 터지는 접촉 중에서 처음으로 상당히 화를 냈다. “밤이 되기 전에 자네가 이 건물에서 나가지 않으면, 내가 이 건물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아니, 바로 내가 떠-떠-떠나야만 한다고!” 나는 요지부동의 그를 순응시키려면 어떤 위협으로 겁줘야 할지 알지 못해서 상당히 어정쩡하게 말을 맺었다. 더 이상의 노력을 모두 단념하고 다급하게 그를 떠나려 했는데 그때 최종적인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이전에 한 번도 품어보지 않은 생각은 아니었다.
“바틀비,” 그런 흥분되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대한 상냥한 어조로 내가 말했다. “지금 나랑 함께 집으로-내 사무실이 아니라 내 숙소로-가지 않겠나? 그리고 거기 머물면서 우리가 한가한 때에 함께 자네 문제를 편리하게 조정하여 처리할 수 없을까? 자, 지금, 당장 함께 가자고.”
“아니요, 지금은 어떤 변화도 안 겪고 싶습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순식간에 날랜 동작으로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요리조리 피하면서 그 건물에서 뛰쳐나와 브로드웨이 쪽으로 월 가를 달려 올라가서 맨 처음으로 눈에 띄는 승합마차에 올라타고는 곧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차분함을 되찾자마자 건물 주인과 세입자들의 요구에 대해서나 바틀비에게 호의를 베풀고 그를 야만적인 박해로부터 보호하려는 나 자신의 욕망과 의무감과 관련해서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다했음을 또렷이 인식했다. 나는 이제 아무런 걱정 없이 평온한 상태가 되려고 애썼으며 그런 시도는 양심적으로는 정당화되었지만 사실 내가 바란 것만큼 그리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몹시 화난 건물 주인과 격앙된 세입자들에게 다시 쫓길까봐 두려운 나머지 나는 며칠간 내 업무를 니퍼즈에게 맡기고 사륜마차를 타고 뉴욕 시내의 북부 여기저기와 교외 곳곳을 돌아다녔다. 저지씨티와 호보컨(두 지역 모두 뉴욕 서쪽 허드슨 강 건너편에 있음 – 옮긴이)까지 건너갔으며 맨해튼 빌과 에스토리아 (전자는 맨해튼의 북부에, 존 제이콥 에스트의 이름을 딴 에스토리아는 맨해튼 동쪽 현재 퀸즈 지역에 있음- 옮긴이)를 몰래 방문했던 것이다. 사실 한동안 나는 사륜마차 속에서 살다시피 했다.
사무실에서 다시 나왔을 때 건물 주인한테서 온 쪽지가 내 책상에 보란 듯이 놓여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 쪽지를 펼쳤다. 읽어보니 쪽지를 쓴 이가 경찰에 사람을 보내어 바틀비를 부랑자로 톰즈 구치소에 잡아가게 했다는 것을 내게 통지하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내가 누구보다 바틀비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니 톰즈에 출두해서 사실을 적절하게 진술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이 기별은 내게 상반되는 효과를 끼쳤다. 처음에 나는 분개했으나 마침내는 찬동하다시피 했다. 건물 주인은 열성적이고 성질이 급해서 나라면 결코 택하지 않았을 그런 일처리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방편으로서는 그런 특이한 상황에서 그거 말고 다른 대안이 없는 듯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불쌍한 필경사는 자신이 톰즈로 호송된다는 말을 듣자 조금도 저항하지 않고 특유의 창백하고 무감한 방식으로 묵묵히 따랐다.
인정 많고 호기심어린 구경꾼 몇몇이 일행에 가담했고 바틀비와 팔짱을 낀 경관 중의 하나가 앞장서는 가운데 그 말없는 행렬은 정오의 떠들썩한 통행로의 그 모든 소음과 열기와 환희를 헤치며 줄지어 나아갔다.
쪽지를 받은 바로 그날 나는 톰즈에,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만 병무청사에 갔다. 담당 교도관을 찾아서 방문한 목적을 진술하니 내가 묘사한 인물이 정말 안에 있다고 통고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관리에게 바틀비가 아무리 이해하기 힘든 괴짜일지라도 진짜로 정직한 사람이며 대단히 불쌍한 사람이라고 확실하게 말했다. 나는 내가 아는 바를 모두 털어놓았으며 그를 가두어놓되 가능한 한 관대하게 대우하다가 뭔가 덜 가혹한 조치를 취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말을 맺었다. 사실은 덜 가혹한 조치가 어떤 것인지를 몰랐지만 말이다. 어쨌든 다른 대책을 취할 수 없다면 구빈원에서 그를 맡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면회를 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수치스러운 죄목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데다 모든 면에서 상당히 평온하고 무해하기 때문에 당국은 그가 옥사 주위를, 특히 잔디밭이 있는 밀폐된 안뜰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거기서 발견했다. 나는 그가 높은 벽을 향해 얼굴을 돌린 채 더없이 조용한 안뜰에 홀로 서 있는 동안 감옥 창문의 가느다란 틈새를 통해 사방에서 살인자와 도둑들의 눈길이 바틀비를 뚫어지게 지켜보는 광경을 보는 것 같았다.
“바틀비!”
“당신이 누군지 압니다.” 그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당신한테 하고 싶은 말이 없습니다.”
“바틀비, 자네를 이곳에 집어넣은 것은 내가 아니야.” 의심하는 듯한 그의 말에 나는 마음이 몹시 아파서 말했다. “그리고 자네한테는 이곳이 그렇게 지독한 장소는 아닐 거야. 여기 있다고 해서 어떤 수치스러운 전력이 붙는 건 아니야. 그리고 보라고, 이곳이 흔히 생각하듯 그렇게 슬픈 장소도 아냐. 보라고, 저기에 하늘도 있지. 여기에 풀도 있지.”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요.” 그가 대답했으나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그를 떠났다. 다시 복도로 들어서자 덩치가 크고 고깃덩어리처럼 생긴 남자가 앞치마 차림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엄지손가락을 어깨 너머로 치켜들며 “저치가 당신 친구요?” 하고 말을 붙였다.
“그렇소.”
“그 친구는 굶어죽을 작정이오? 만약 그렇다면 감방 음식을 먹게 내버려두시구려. 그뿐이오.”
“당신은 누구요?” 이런 장소에서 이렇게 비공식적인 투로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라 내가 물었다.
“나는 사식업자요. 여기에 친구들이 들어와 있는 신사양반들은 나를 고용하여 뭔가 먹을 만 한 것을 친구들한테 제공하지요.”
“그런가요?” 교도관을 돌아보며 내가 말했다.
교도관은 그렇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좋소.” 사식업자(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부르니까)의 손에 은화 몇 개를 슬쩍 넣어주면서 내가 말했다. “저기 있는 내 친구에게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주길 바라오. 당신이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식사를 넣어주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가능한 한 그를 공손하게 대해야 하오.”
“나를 소개시켜주실 거죠, 그렇죠?” 사식업자는 자신의 교양을 시범적으로 보여줄 기회를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필경사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묵묵히 따랐다. 그리고 사식업자의 이름을 묻고 그와 함께 바틀비에게 다가갔다.
“바틀비, 이 사람은 친구야. 자네한테 매우 유용한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당신의 하인입니다. 나리, 당신 하인이예요.” 앞치마 차림의 사식업자가 깊이 머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여기가 마음에 들기 바랍니다 나리. 좋은 뜰에 – 서늘한 방들이 있으니 – 여기서 한동안 우리와 함께 머무셨으면 합니다. - 기분 좋게 지내십시오. 오늘 식사는 뭘로 드실까요?”
“오늘은 식사를 안 하고 싶습니다. ” 고개를 돌리며 바틀비가 말했다.
“내 속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정찬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안뜰의 맞은편으로 서서히 이동해서 막힌 벽을 마주 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거 어떻게 된 거요?” 놀라서 나를 노려보며 사식업자가 말했다.
“저 사람 좀 이상하네요?”
“정신이 약간 나간 것 같아요.” 나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이 나갔다고요? 정신이 나갔다는 겁니까? 글쎄요. 이제 보니, 이거 참, 나는 저기 당신 친구가 문서위조자 양반이라고 생각했어요. 위조자 양반들은 늘 창백하고 품위 있어 보이지요. -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어요. 불쌍한 마음을 금할 수 없어요, 선생님. 먼로 에드워즈(1808~1847. 텍사스 초기의 노예 밀수업자이며 문서위조자 – 옮긴이)를 아십니까?”
그가 비장하게 덧붙이면서 말을 멈췄다. 그러더니 측은하다는 듯이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 사람은 씽씽(뉴욕시 북쪽 오씨닝에 위치한 교도소- 옮긴이)에서 폐병으로 죽었어요. 그런데 먼로를 모르십니까?”
“몰라요, 문서위조자와 어울려 지낸 적이 없어요. 더 이상 머무를 수는 없군요. 저기 내 친구를 돌봐주세요. 그럼 손해 볼 일은 없을 겁니다. 또 봅시다.”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다시 톰즈 구치소의 출입을 허락받아 바틀비를 찾으러 복도를 죽 돌아다녔으나 그를 찾지 못했다.
“그가 조금 전에 감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소.” 한 교도관이 말했다. “어쩌면, 안뜰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거요.”
그래서 나는 그쪽으로 갔다.
“그 말없는 사람을 찾고 있소?” 또 다른 교도관이 내 곁을 지나가면서 말했다. “저쪽에 누워 있소. 저쪽 안뜰에 잠들어 있소. 눕는 것을 본 지 이십분도 안 되었소.”
안뜰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곳은 일반 죄수들은 들어가지 못했다. 주위를 에워싼 엄청나게 두꺼운 벽들은 모든 소음을 막아주었다. 이집트 양식의 석조물이 그 침울함으로 나를 짓눌렀다. 그러나 발아래에 부드러운 잔디가 틈새를 비집고 자라났다. 그 모습은 마치 영원한 피라미드의 심장처럼 보였다. 이를테면 피라미드 속에서 새들이 쪼개진 틈새에 떨어뜨린 잔디씨앗이 어떤 이상한 마법에 의해 싹이 튼 것 같았다.
나는 벽의 아랫부분에 묘하게 움츠린 자세로 있는 소진된 모습의 바틀비를 바라보았다.
무릎을 웅크리고 차가운 돌에 머리를 갖다댄 채 모로 누워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가 그에게 바싹 다가가서 몸을 구부렸고 그의 침침한 눈이 감겨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깊은 잠을 자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뭔가가 그를 만져보라고 재촉했다. 그의 손을 만지는 순간 저릿저릿한 전율이 피를 타고 올라왔다가 척추를 타고 발까지 내려갔다.
그때 사식업자의 둥근 얼굴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식사가 준비되었어요. 그는 오늘도 식사를 안 할 건가요?” 아니면 식사도 않고 사는 사람들입니까?“
“식사를 하지 않고 살지요.” 이렇게 말하고 나는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어라! 잠들었네요?”
“제왕과 만조백관과 함께(「욥기」3장 14절을 인유한 구절 – 옮긴이) 잠들었소.” 내가 중얼거렸다.
이 이야기를 더 진행할 필요가 거의 없어 보인다. 불행한 바틀비의 매장과 관련된 얼마 안 되는 이야기는 상상력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와 헤어지기 전에,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이 짧은 이야기로 말미암아 바틀비가 누구인지 그리고 본 화자가 그를 알기 전에 그가 어떤 종류의 삶을 영위했는지 호기심이 생길 만큼 독자가 흥미를 갖게 되었다면 나 역시 그런 호기심을 충분히 갖고 있되 전혀 충족시킬 수 없다고 대답할 수 있을 뿐이라고. 다만 여기서 필경사의 죽음 후 몇 개월 만에 내 귀에 들어온 한 가지 사소한 소문을 밝혀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 소문의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었고 따라서 그것이 얼마나 진실한지도 지금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모호한 소문이 애처롭기 그지없긴 해도 내게 얼마간 흥미로운 암시도 없지 않은 만큼 다른 몇몇 사람의 경우에도 알고 보면 마찬가지일 수 있겠으니, 간단히 언급하기로 한다. 그 소문은 이렇다. 즉 바틀비가 워싱턴의 ‘배달불능 우편물 취급소(Dead Letter Office, 미국 우정국 산하로 1825년에 설치되었음- 옮긴이)’의 말단 직원이었는데, 행정부의 물갈이로 갑자기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것이다. 이 소문을 곰곰이 생각할 때면 나를 사로잡는 감정을 표현할 길이 없다. 배달 불능 편지라니! 죽은 사람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천성적으로 혹은 불운에 의해 창백한 절망에 빠지기 쉬운 사람을 생각해보라. 그런 사람이 계속해서 이 배달 불능 편지를 다루면서 그것들을 분류해서 태우는 것보다 그 창백한 절망을 깊게 하는 데 더 안성맞춤인 일이 있을까? 그 편지들은 매년 대량으로 소각되었다. 때때로 창백한 직원은 접힌 편지지 속에서 반지를 꺼내는데, 반지의 임자가 되어야 했을 그 손가락은 어쩌면 무덤 속에서 썩고 있을 것이다. 또한 자선헌금으로 최대한 신속하게 보내 지폐 한 장을 꺼내지만 그 돈이 구제할 사람은 이제 먹을 수도 배고픔을 느낄 수도 없다. 그리고 뒤늦게 용서를 꺼내지만 그것을 받을 사람은 절망하면서 죽었고, 희망을 꺼내지만 그것을 받을 사람은 희망을 품지 못하고 죽었으며, 희소식을 꺼내지만 그것을 받을 사람은 구제되지 못한 재난에 질식당해 죽어버린 것이다. 삶의 심부름에 나선 이 편지들이 죽음으로 질주한 것이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1853년 작)
창비세계문학, <필경사 바틀비>, 창작과 비평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