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 사상저유소와 가야(개금)포로수용소는 유년시절부터 청년시절 까지('50년대후반~
'70년대초반) 학장에서 서면까지 가야로를 다니면서 자주 보던 곳 이었습니다.
특히 중고딩시절 6년은 학장에서 서면까지 통학을 했기 때문에 많이 지나 다녔지요.
사상저유소는 철거하기 시작하고 포로수용소 자리에는 화학학교와 화학기지창 부대가
들어서 있던 시절이었지요.
포로수용소 시절의 철조망 울타리는 초등 저학년 시절에 본 기억이라 어렴풋한데
"용심"님이 올려주신 사진 때문에 오랜 기억이 되살아 나더군요.
초등시절 밤에 홍깨마을 집에서 보면 주례의 사상저유소 주변에는 전기불을 켜 놓아
훤했었습니다. 초딩시절까지 우리동네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켰었지요.
중1때 우리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지요. 그 때의 밝음의 환호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우리 카페에 이삿갓님, ㅅㅁㅅㅁ72님, 연동개님, 용심님, 화기치상님, 최박사님이
그 시절 추억의 사진들을 올려 주셔서 매번 볼때마다 감동스럽고 행복 했습니다.
위 회원님들 께서 올려주신 사진들을 임의로 활용하여 사상저유소와 포로수용소
이야기를 카페 회원님의 요청도 있고 해서 제 나름대로 꾸며 올려 보았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지적 바랍니다. 임의로 사진 활용 죄송하고 양해 바랍니다.
주령터널(2)는 주령터널, 주령2터널과 구분하기 위해 제가 임의로 붙인 이름입니다.
주례 냉정 개금 가야 일대 1950.12.3
대한석유저장주식회사(KOSCO : Korea Oil Storage COmpany) 사상저유소,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군이 관리하였다.
미388 EPC(Engineer Pipeline Company)부대원들 주례 사상저유소 건설 모습 1951
6.25전쟁으로 유류 소모가 급증 되므로 미8군사령부 지시에 의거 미388 EPC(Engineer Pipeline Company)부대에서
1951년도에 사상저유소를 건설하였다.
주례 사상저유소 주변 모습 1955
일제가 가야조차장에서 주령터널(2)를 통하여 아래철길을 따라 사상역까지 가야선 상행선을 연결할 계획이었다.
주령터널(2)를 뚫고 아래철길은 동감전(감동)까지 만들었으나 철로레일 작업은 시작도 못하고 해방이 되고 말았다.
해방으로 방치되었던 주령터널(2)를 이용하여 1951년 가야조차장에서 주례 사상저유소까지 인입 철로를 만들었다.
사상역에서 주령터널을 통하여 가야조차장까지 이어지는 가야선 하행선은 1944년전에 개통 운행하고 있었다.
주례 사상저유소 주변 1955
가야조차장에서 주령터널(2)를 통하여 주례 사상저유소 인입 철길이 만들어 졌다.
인입 철로와 연결된 인입 대기 화물열차 철로도 별도로 만들어 놓았다.
주령터널2를 나와서 200미터 지점 인입 철로서 갈라져 나와 200미터 정도 뻗어 있었다.
경부선 철길을 따라 설치된 송유관 모습(신암 철도공작창옆) 1954년
1951년 초량3부두옆 초량저유소에서 경부선 철길을 따라 사상저유소 까지 송유관을 연결하여 사상저유소에 유류를
공급하였다. 주례 사상저유소의 유류는 저유소에서 가야조차장까지 연결된 철도를 이용 야전에 보급하였다.
주례 온골과 동감전(감동)사이 경부선 철길 위쪽에서 본 주례 사상저유소 모습 1950년대
저유탱크가 여러개 보이고 그 위쪽에 저유탱크터 동그란 흔적도 여러개 보인다.
개금 냉정 주례 항공사진 1969년. 주례의 사상저유소는 1960년대 중후반에 철거 되었다.
1964년 KOSCO는 대한석유공사에 흡수되었다. 1964년4월 대한석유공사 울산 공장이 준공되어 원유를 수입하여
정제 유류를 직접 생산 보급하게 되므로 부산항으로 정제된 유류를 수입하여 저장 보급하는 사상저유소와 초량저유소
시설의 효율성이 적어 철거하게 되었다.
주령터널(2) 주례 사상저유소 방향 2017
주령터널(2) 가야조차장 방향 2017
주례 사상주유소 철거로 쓸모가 없어 방치되어 있던 주령터널(2) 주례 사상저유소 방향에는 터널입구 철로까지
무허가 주택이 들어서 터널 입구를 막고 있고 가야조차장쪽 터널 입구도 콘크리트로 막혀 있다.
경부선과 가야선이 지나는 주례동 부근 모습 2015
가야선 하행선과 주령터널(1944년 개통)과 가야선 상행선과 주령2터널이 나란히 보이는 가야조차장쪽 모습 2015
2002년도에 가야선 상행선을 설치하였다. 가야조차장에서 주령2터널을 새로 뚫어서 주례동으로 나와
사상역까지 가는 노선이다. 가야조차장에 부산역이 들어선다는 계획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계획이 무산되다보니 운행도 별로 없다고 한다.
주례 사상저유소 자리에다 신진짚차 공장을 건설하여 준공식을 하고 있다. 1970.4.15
신진짚차에서 거화를 거쳐 동아자동차(쌍용)로 1984.11.20 (동아자동차는 후에 쌍용자동차로 바뀜)
1987년4월 주례럭키아파트가 완공되어 들어서 있으며 현재 재개발 추진중이다.
가야(개금)포로수용소 1951
가야(개금)포로수용소 철조망 울타리 1953
왼쪽 개금 화학학교,화학기지창 담장 1968 (맨위쪽이 개금역)
1961년 포로수용소 자리에 화학학교와 화학기지창 부대가 들어 섰다.
가야 전신전화국(한국통신 KT) ~ 개금역 1970년대
부산의 포로수용소에 대한 설명은 아래 주소 참조 바랍니다.
가야(개금)포로수용소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2818240&cid=55785&categoryId=56539
첫댓글 일목요연하게(한 번 보아서 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게) 잘 정리되었습니다.
궁금했던 것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개성중학교 아래 운동장에서 신암쪽으로 초기의 신진자동차(버스 전포동으로 이전)와 팔금자동차(버스 동아자동차로 변경)도 혹시 기억하시는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초기의 신진자동차 팔금지동차는 제 기억에는 없네요..
감사함다..
절 잘봐주시는 용심님 감사함다.
가야 개금 학장쪽주변 역사를 알게되어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사진방향으로 사진 올립니다 ㅣ
감사합니다.
2012년10월1일 가야홈플러스 인근 육교에서
개금역 방향으로 화기치상님이 촬영한 사진입니다.
저육교 지금은 없어졌지요..
왼편 첫건믈은 가야전화국(한국통신)건물입니다.
초저녁부터 자고 한밤중에 일어 났습니다. ㅎ
2022년3월 네이버지도 거리뷰 입니다.
홍깨님의 말씀과 글에 담긴 수고를 통해
서면~사상 간 역사를 그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점점 더 많은 자료가 발굴되면 좋겠습니다.
여기에는 따로 사진이 안 나왔지만
헬기에서 주례, 개금 찍은 장면의 경우는
다른 사진들이 없었으면 전 못 알아봤을 겁니다.
그쪽에서 본 백양산 산세도 모르던 때였지요.
K-1, 낙동강, 대신동 상공 사진들이 있었기에
경로상 구덕고개 상공 넘었다 생각되어
중간 지역을 탐색한 결과, 장소를 알았었습니다.
주례 일대 사진인 줄 알게 되자마자
홍깨님 생각이 나서 공개한 기억이 새롭네요.
이후 홍깨님 설명이 이어져서 좋았었습니다.
@ㅅㅁㅅㅁ72 주례에서 멀리 기장의 산들까지 보이던 LIFE항공사진과
주례저유소 사진을 소개 시켜줘서 눈이 번쩍 띄었섯지요.
저유소 이야기를 "김해활천"님 하고 "ㅅㅁㅅㅁ72"님하고 같이
토론하고 하면서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웠었습니다.
사상초등학교 주변 사진까지 생각보다 사상지역의 옛 사진들이
우리카페에 많이 소개되어서 좋았습니다.
"ㅅㅁㅅㅁ72"님과 "카페지기"님의 열정과 성의가 고맙고
그리고 해박한 지식에 매번 놀라고 있습니다..
대단들 하십니다.
@홍깨 개금 포로수용소 맞은편 산 중턱에 U.N.C P.W. CAMP no.9 의 위치가 항상 궁금했었는데 "홍깨"님 덕분에 오늘에야 위치를 가늠하게 되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사랑받은자 다시 자세히 보니까 헷갈리네요. 엄광산이 맞는 지 백양산이 맞는지. 포로수용소와 백병원은 같은 편에 있어야 할 것 같기고 하고요.
@사랑받은자
포로수용소는 가야대로 남쪽입니다.
대로 기준 백병원과 같은 쪽이 맞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뤄진 도로 확장으로
출입구 부분은 현재 가야대로에 포함되었습니다.
@사랑받은자 엄광산으로 최종 확인하였습니다.^^*
@ㅅㅁㅅㅁ72 "U.N.C P.W. CAMP no.9" 글자의 위치로 추정해 봅니다.^^*
@사랑받은자 엄광산 기슭, 개금 백병원옆 가야 벽산아파트 뒤편 조금 위쪽이라고
보면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