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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만의 로마서 - 2023 새해 인사(Fifty Million Romans - 2023 New Year Greetings)
샬롬! 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든 분이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사는 순간순간이 하나님의 자비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순간순간을 감사로 범사에 감사하는 올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우리 눈에 들어오는 현실이 힘들고 극복하기 쉽지 않게 느껴져도 우리의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마음에 염려 말라고 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보이는 현실의 모습을 극복하고 모든 일의 염려는 멈추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에 열중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세상은 공격을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몸이 아프고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그리고 문제가 태산 같아도 전능의 우리의 주님께서는 순식간에 이런 문제가 언제 있었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해결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더 좋은 것으로 우리의 삶을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어떤 문제가 있든지 어떤 시련이 있든지 어떤 마음에 허탈함이 있든지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지키며 이런 현실 속으로 몰입되지 말고 하나님을 굳게 믿고 우리 주 예수님을 굳게 믿고 아무 염려를 말아야 합니다. 이는 마치 아브라함이 현실적으로 자녀를 갖기 불가능한 가운데서 현실의 불가능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변치 않고 25년을 기다리며 살다가 마침내 이삭을 본 것과 같이 우리도 모든 분이 이렇게 믿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고 현실적으로 겪어야 하는 일들이 우리 마음을 고뇌케 하고 흔들고 실망하게 하고 힘이 빠지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우리 눈에 보이고 우리에게 경험되는 현실적인 어려운 일들을 직접 느끼면서 살아야 하는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보다 크시고 이 모든 문제를 아무리 우리가 어렵게 느끼고 문제가 많아 보여도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으시기에 언제나 해결하시고 더 나은 상태로 더 기쁜 상태로 더 귀하고 좋은 것으로 바로 우리에게 채워주실 수 있는 분이시니, 이 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의 주로 계시는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믿고 모든 문제를 믿음으로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앞에 닥친 문제를 보고도 흔들리지 않고 변치 않고 오랫동안 하나님을 잘 믿을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브라함도 이렇게 믿고 의롭다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새해에 모든 분을 위로하면서 천주교 개신교 모두가 500년을 다투며 서로 옳다고 주장하는 이신칭의의 의미를 모든 분이 이해할 수가 있게 설명을 드렸으니 하나님께서 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부분을 로마서에 인용하게 하시고 이신칭의의 의미를 바울 사도를 통해서 풀어주신 로마서 4장 17-22절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어떤 명문대를 수석으로 졸업하신 성경을 백독하시고 영어도 능통하신 의사분께 이 말씀을 소개를 했더니 우리가 아는 오직 믿음이면 의롭게 된다로 너무나 빼도 박도 못하고 고정적으로 믿고 계셔서 이 구절을 한글로 영어로 보시고 성경에 있기는 있는데 하시면서 말끝을 흐리셨습니다. 온 세상의 신학자가 로마서 1장 17절을 보고서 난리가 났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그 의미를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가 있게 풀어놓으셨습니다. 제 성경에만 오직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의 성경에 있으니 확인해 보시고 새해에는 아브라함의 변치 않은 한결같은 25년의 믿음이 의롭다 인정을 받은 믿음임을 믿으시고 우리도 이렇게 굳게 쉬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아브라함과 같이 의롭다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의롭다 인정도 나 스스로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고 의롭다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고 우리는 잠잠히 그때까지 기다리며 변치 않고 믿어야 합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17. 성서에 "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의 나이가 백 세에 가까워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끝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어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17. As it is written: "I have made you a father of many nations." He is our father in the sight of God, in whom he believed -- the God who gives life to the dead and calls things that are not as though they were.
18. Against all hope, Abraham in hope believed and so became the father of many nations, just as it had been said to him, "So shall your offspring be."
19. Without weakening in his faith, he faced the fact that his body was as good as dead -- since he was about a hundred years old -- and that Sarah's womb was also dead.
20. Yet he did not waver through unbelief regarding the promise of God, but was strengthened in his faith and gave glory to God,
21. being fully persuaded that God had power to do what he had promised.
22. This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순)
아브라함이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된 믿음을 보면 우선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실 수가 있는 전능하신 분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현실적인 자녀는 갖기에 늙은 상태를 보면서도 자신의 아내가 역시 자녀를 가질 수가 없이 늙은 상태를 보면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자신의 아내가 아들을 낳게 되리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 믿음이 처음 하나님을 만날 때 아브라함이 약 75세 때부터 약 25년간 약해지지 않고 100세가 되어 아들을 얻을 때까지 변치 않고 한결같고 그리고 그 믿음이 점점 현실의 불가능이 크지는 것도 극복하면서 도리어 강해졌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신학적으로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씀을 로마서 4장 17-22절을 통해서 이렇게 싸우지 말고 이렇게 믿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때를 기다리면서 신앙생활을 변치 말고 잘하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바울 사도께서 그냥 자신이 하나님께 처음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이미 하박국서에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인용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아는 바입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4.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이 내용을 바울 사도가 로마서 1장 17절에서 인용합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17.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BUT THE RIGHTEOUS [man] SHALL LIVE BY FAITH.)
아브라함의 의롭다 인정은 시간이 가도 변치 않는 25년의 한결같은 믿음이었다고 한다면 이 하박국서에서 하나님께 말씀하시는 믿음은 삶을 사는 수단으로서의 믿음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즉 의인이 어떤 믿음이 있기에 의롭다 인정을 받는다는 내용보다는 의인은 믿음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설명을 하고 있는데 이는 영문 번역 중요한 세 가지 버전에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 히브리어 본문을 보아야 하지만 영문으로 수백 년 동안 이렇게 세 가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버전이 이렇게 번역을 했으니 당연히 히브리어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이 되었을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박국서의 2장 4절은 하박국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지 3장으로 된 하박국서를 2장 4절의 전후를 읽어 보면 되는데 제가 간추려서 설명하면 하박국 선지자는 남 유대의 선지자로 남 유다가 멸망하기 전 약 20여 년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로 당시 남 유다는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기원전 722년에 멸망하고 홀로 바벨론이 기세를 떨치던 시대에 살면서 율법이 완전히 해이해져서 정의는 땅에 떨어지고 왕으로부터 고관과 백성이 타락하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멸망이 임박한 남 유다에서 정의롭게 살던 하박국은 이런 자신의 조국에서 도저히 살 수가 없기에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이런 불의한 나라를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찌 보고만 계십니까 하니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절대로 그냥 두지 않고 바벨론을 들어서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하박국 선지자는 남 유다가 악하기는 하지만 더욱 더 악한 바벨론을 어찌 선하신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가 있습니까 다시 묻는 질문에 대해서 하시는 대답이 우리가 보는 하박국서 2장 4절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대해서 절대로 좋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이 바벨론이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다고 하시면서 궁극에는 멸망을 시킬 것이라고 2장 4절 이후에 말씀하시면서 그렇지만 이런 바벨론과 같이 교만하고 악한 민족과 달리 대조적으로 자신의 의인은 바벨론과 같이 교만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하나님을 믿지도 않고 살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고 정직하게 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전후의 문맥을 보면 틀림없이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온갖 불의가 남 유다에 판을 치니 이를 보다 못한 하박국이 동족 남 유다를 심판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자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서 그렇게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또 하박국 선지자가 묻자 하나님께서 바벨론 역시 하나님께서 좋게 보지 않으시고 분명하게 멸망을 시킬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렇지만 이런 교만한 바벨론과 달리 하나님께서 보시는 의인은 이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불의에 흔들리지 않고 당시의 바벨론이나 남 유다의 왕과 고관과 같이 살지 않고 꿋꿋하게 하박국 선지자와 같이 정의롭게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인용해서 로마서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의롭게 하시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는 변치 않는 한결같은 굳센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 하시고 하박국서를 통해서는 온갖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 속에서도 이를 척결하시고 마침내 의로운 세상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들은 불의한 세상을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정의롭게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는 오직 믿음만 있으면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의 본래의 의미는 이렇게 성경에는 설명이 되어 있으니 신학으로 풀 필요가 없이 성경을 읽고 정리함을 통해서 이렇게 온 세상에 한글과 영어를 아는 사람은 모두가 올바로 이해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간추리면 로마서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표현은 우리가 배운 이신칭의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같은 변치 않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때가 되어서 인정하는 믿음이 되어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을 하신다는 사실과 하박국서에 하시는 말씀과 같이 불의한 세상에서 하나님을 믿고서 정의롭게 행동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결국은 정의롭게 행동하는 믿음이 그리고 시간이 가도 역시 변치 않는 믿음이 하나님께 결국은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는 믿음이고 이를 판단하는 이는 우리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우리는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로 가야 합니다. 루터는 과연 어떻게 이해를 했는지 이런 분석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당시의 면죄부가 죄를 사할 수가 있다고 하니 아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이 성경에 있지 않느냐 로마서 1장 17절을 보라고 했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죄가 용서가 되고 의인이 되는데 어찌 면죄부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되려고 거짓말을 하느냐 하는 내용이 루터의 주된 주장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죄에 대해서 죄의식이 아무리 기도를 해도 계단을 무릎에서 피가 나도록 오르며 회개를 해도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런 의식이 아니라 로마서 1장 17절을 보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니 자신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이런 회개의 의식을 통해서 죄가 용서가 되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믿고 있으니 이미 죄가 용서가 되었고 자신은 의인이기에 이제는 죄의식을 갖지 않아도 되니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루터에 대해서 이렇게 이해를 하고 있는데 루터의 주장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이 루터의 이해와 개신교의 태동은 깊은 관계가 있고 이를 천주교는 500년 동안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신교의 500년은 로마서 하면 오직 이신칭의가 가장 큰 주제로서 모든 로마서를 이신칭의로 보고서 이해를 하고자 했고 이도 오직 믿음이면 의롭게 되니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니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개신교의 기둥이라고 개신교인 이면 아무도 건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로마서를 이신칭의 중심으로 이해하고 이도 루터의 이해를 중심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을 하시는 의인에 대해서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 모든 글을 아는 지구상의 사람들이 다 이해가 되도록 아브라함의 25년 변치 않는 한결같은 믿음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직 믿음이 틀림없이 맞기는 하지만 오늘 믿는 믿음이 아니라 변하는 믿음이 아니라 짧은 믿음이 아니라 굳세고 오랜 세월의 믿음이며 가능한 일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불가능에 대한 믿음이며 내가 인정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박국서의 믿음 역시 오직 믿음이 맞지만 이도 정의롭게 삶을 사는 믿음이며 이렇게 사시는 분에 대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에 대한 믿음입니다. 행동하는 믿음입니다. 이 둘이 되어야 비로소 로마서의 의인이 되는 믿음의 사람이 되고 이도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서 인정을 하셔야 하니 그때는 누구도 모르니 함부로 내가 스스로 믿음으로 내가 의롭게 되었소 할 일도 절대로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모두가 먼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죄가 어떤 인간의 행위로도 씻을 수가 없고 오직 우리가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그 해결이 되는데 이런 우리를 불쌍하게 생각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대신 그 일을 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약 1천 년 동안 짐승의 피를 흘리게 하고 잡아서 제사를 드린 그 예표대로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모진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재림하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의롭게 되는 것과 같이 하박국서에서 의인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정의롭게 사는 것과 같이 우리도 이제는 이런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가 있다는 이야기가 로마서의 이신칭의라 저는 믿습니다. 그 믿음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로서 하신 일과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믿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고백과 같이 주는 그리스도이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약속들을 믿는 것입니다. 재림에 대한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대로 세상에서 살 때 정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하박국과 같은 행동하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말씀 중에 너무나 중요한 로마서의 이해의 중심이 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마태복음 5장에 있습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많은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기초가 되는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고 로마서와 작은 로마서인 갈라디아서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기준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없었다면 인간은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절대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가 어려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의 이신칭의를 비롯해서 모든 해석은 이 예수님의 말씀의 틀을 절대로 벗어나면 아니 될 것입니다.
모든 나라가 서는 기본이 그 나라에 법입니다. 법이 존재하지 않느냐 존재하느냐에 따라서 나라가 서고 망하고 하는데 그리고 부흥하고 쇠하고 합니다. 그 법이 얼마나 공평하고 정의로우냐에 따라서 백성이 평안하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가 있느냐의 척도가 됩니다. 이 법에 대해서 온 세상의 누구도 함부로 해석도 못하게 하나님 되신 예수님께서 못을 박아 놓은 말씀입니다. 로마서의 이신칭의를 잘못 이해하면 율법이 없는 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쉽게 그분의 나라를 세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법이 없는 나라는 모두가 자신의 마음대로 해도 누가 올바름과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독재국가가 그렇게 법이 있어도 독재자의 마음대로 하니 살기가 어렵게 되고 법이 없는 나라는 힘이 센 사람이 모든 약한 사람을 죽이고 빼앗고 그리고 멸망을 시키고 종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래서 법은 반드시 어떤 나라를 세우는데 절대로 없어서는 아니 되는 기준입니다.
이 기준이 되는 법이 하나님의 나라에선 모세 오경의 율법입니다. 엄연히 존재하고 그 율법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과 정의의 속성을 그대로 표현해서 그 율법을 모세에게 주시면서 온 세상에서 가장 정의롭고 공평한 법이라 스스로 공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법을 절대로 흔들지 말라고 예수님께서 위와 같이 말씀을 하십니다. 이신칭의를 올바로 이해 못 하면 위의 예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명령도 어기게 되고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찌 법도 없이 건설할 수가 있습니까?
신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새해에도 작년에 이어서 이 문제에 대해서 같이 연구하고 풀어야 할 것입니다. 신학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주장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내용대로 함께 공부를 하면서 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해한 올바른 로마서와 성경에 대해서 세상의 모든 교회와 성도가 함께 나눌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우고자 하셨던 그리고 세우고 계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할 것입니다. 이런 위대한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를 믿고 함께 하실 분은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하남에 장로님께서 빌려주신 600평의 땅에서 모이고 그리고 역시 장로님께서 허락하신 서초동의 청계산 비닐하우스에서 모이고 당진의 600평의 땅에서 모이고 문경에서 모이고 군산에서 모이기를 원합니다. 다 준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 2000년의 역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맞았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그분의 나라를 그분과 함께 건설할 때가 되었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성경의 이해는 나의 일생의 신앙생활을 헛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수고가 그대로 하나님께 상달이 되도록 함께 살피고 격려하면서 주님의 나라를 세워야 하고 이를 위해서 교회를 세워야 하고 성도를 깨우쳐야 합니다. 저는 이를 위해서 선택되고 훈련받고 교육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불을 받았습니다. 함께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모이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모든 분이 온 세상의 기독교 역사에 새로운 선각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교회와 성도를 세우고 온 세상에 본을 보이는 위대한 신앙인의 길로 함께 갑시다!!
좋으신 하나님! 새해가 밝았습니다. 크신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불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진리를 배우는 기쁨이 언제나 충만하게 하셔서 성경을 배우는 행복이 넘쳐나게 하소서! 이런 과정을 주님과 함께 하게 하시고 우리가 이렇게 행할 때 주께서 우리 모두의 문제를 다 해결하여 주옵소서! 장가를 가지 못하신 분은 장가를 가게해 주시고, 집이 없는 분은 집을 갖게 해 주시고, 아프신 분은 속히 치료하여 주옵소서! 물질의 어려움을 겪는 모든 분께 물질의 복을 허락하시고, 직장이 없는 분께 좋은 직장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북쪽의 고난받는 믿음의 형제를 속히 건져 주시고 소망이 없는 백성에게 복음이 전파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작은 나라를 통해서 주변 중국과 미국과 일본과 러시아가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시고 위정자들에게 지혜와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소서! 모든 교회의 지도자들이 가난하고 포로가 되고 병든 이의 곁으로 가게 하시고 그들과 함께 고난을 나누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