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애지 봄호를 펴내면서
말의 즙
정해영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입안에 들어온 딱딱하고 거칠은
이물질 같아 내 뱉고 싶었다
넘길 수 없는 말
입속에 넣고 혀끝으로
오래 굴렸다
녹인다는 것은
둥근 모양으로 어루만지는 일
울퉁불퉁 거친 것을 받아
부드럽게 넘기는 법은
어릴 적
사탕을 먹으면서 알았다
굴릴수록 단맛이 난다
그 말에서 나오는
즙인가
어느새
말이 넘어 간다
돌을 삭이듯
녹여 먹는 말
며칠 혹은 몇 백 년이
걸린다 해도
즙이 된 말은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애지 겨울호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말은 우리 인간들의 정치, 경제, 사회는 물론이고, 모든 도덕과 법률의 근본질서라고 할 수가 있다. 말은 대동맥이고 실핏줄이며, 말은 두뇌이고 심장이며, 말은 인간의 영혼과 육체까지도 지배를 한다. 말은 사회적 약속이고, 이 사회적 약속에 따라 우리 인간들의 삶과 행동양식이 결정된다.
고귀하고 위대한 것은 고귀하고 위대한 인물에 의해 결정되고, 더럽고 추한 것은 더럽고 추한 인물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은 이기적 동물인데, 왜냐하면 자기 보존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나 사회적 동물은 이타적일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공동체 사회는 유지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 이익은 이기심과 이타심, 즉, 개인주의와 사회주의로 대립을 하게 되고, 이 대립 갈등을 통하여 공동체의 운명이 결정된다.
성스러울 정도로 어리석인 인간이 있다는 말도 있다. 고귀하고 위대한 인물은 언제, 어느 때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거절하고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헌신을 하며, 그고귀하고 위대한 희생정신에 의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한마음-한뜻’이 되어 행복하게 살아간다. 이에 반하여, 더럽고 추한 인물은 성자의 탈을 쓰고 인간의 마음과 육체를 유린하고 공동체 사회 전체를 불행에 빠뜨리게 된다. 이 더럽고 추한 인물들을 대청소하는 방법은 사랑이 담긴 말, 믿음이 담긴 말, 자유로운 말들을 사용하며 ‘만악의 근원’인 이기심을 제거하는 데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어떤 국가가 최고의 국가인가, 아닌가는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고귀하고 위대한 인물들을 얼마만큼 배출해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의 타고난 성격과 취향, 육체의 건강과 좋아하는 말과 좋아하지 않는 말들은 천차만별이며, 이 다양성과 모순성이 어느 국가와 그 구성원들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할 수가 있다. 이 다양성과 모순성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하고 상호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 일등국가가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삼류국가로 전락하여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말에도 독이 있고, 우리는 이 독을 적절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크나큰 병을 앓거나 사회적인 혼란을 겪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남녀간의 사랑의 말도 계급 차이로 인하여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고, 친절과 자비의 말도 때로는 더없는 치욕과 수치심을 안겨줄 수도 있다. 병역의무와 납세의무도 소름 끼치게 싫은 말일 수도 있고, 시도 때도 없이 울려 퍼지는 이웃사랑과 만인평등의 말도 더없는 강제와 강요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말은 천변만화는 약효와 독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역사적인 시기와 장소와 때에 따라서 똑같은 말이 ‘약’과 ‘독약’으로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다.
정해영 시인의 [말의 즙]은 ‘말의 찬가’이며, 말의 독을 제거하고 그 말의 참맛을 즐기는 대가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드러내어 보여준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입안에 들어온 딱딱하고 거칠은/ 이물질 같아 내 뱉고 싶었다”는 것은 나의 귀에 거슬리고 내가 소화시킬 수가 없을 것 같았다라는 것을 뜻하고, 따라서 그 “넘길 수 없는 말”을 “입속에 넣고 혀끝으로/ 오래” 굴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녹인다는 것은/ 둥근 모양으로 어루만지는 일”이고, “울퉁불퉁 거친 것을 받아/ 부드럽게 넘기는 법은/ 어릴 적/ 사탕을 먹으면서 알았”던 것이다. 그 말은 거칠고 딱딱하고 내가 곧바로 삼킬 수가 없는 말이었지만, 그러나 그 말의 참뜻과 그가 던진 말의 의미를 이해하자, 곧바로 그 말은 단맛이 나고 내가 소화시킬 수 있는 사랑의 말이 되었던 것이다.
시인과 철학자의 사명은 말을 창조하고 말의 독을 제거하여 그 말을 수많은 사람들이 재배하고 말의 주식으로 삼게 하는 데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이 세상에 말의 재배만큼 쉽고 간단한 것도 없고, 이 세상에 말의 재배만큼 어렵고 힘든 것도 없다. 우리는 쌀과 빵보다도 말을 주식으로 삼으며, 이 말의 향기와 말의 즙과 말의 영양가로 살아간다. “굴릴수록 단맛이” 나는 말, “돌을 삭이듯/ 녹여 먹는 말”, “며칠 혹은 몇 백 년이/ 걸린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말의 즙----, 요컨대 인류의 역사는 말의 역사이며, 모든 시는 말의 찬가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해영 시인의 [말의 즙]은 말의 영양가이고, 말의 맛이고, 말의 향기이며, 우리가 말을 먹고 말의 농장에서 말의 놀이와 그 향기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이 세상의 삶의 찬가라고 할 수가 있다.
정해영 시인의 근본신조는 말을 창조하고 말의 독을 제거하여, 우리 한국어의 아름다움으로 우리 한국인들의 건강과 행복을 창출해내는 데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시인은 앎을 창출해내고 그 앎을 실천하며, 그 앎과 행동의 일치를 통하여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아름다운 시를 창출해낸다.
‘기획특집: 논쟁문화의 장’은 아흔 아홉 번째로 나태주의 [풀꽃] 외 2편과 이경수의 작품론, [공감과 치유의 노래], 그리고 [반경환 명시감상 —하록의 시들]을 내보낸다.
이번 호의 ‘애지의 초대석’에는 안정옥 시인과 이미산 시인을 초대했다. 안정옥 시인의 시 [나무 가시밭]과 신상조의 작품론 [죽음에 관한 시론詩論--안정옥의 시세계], 이미산 시인의 신작시 [의류 수거함 ] 외 4편과 백인덕의 작품론 [고통과 용서의 상보적相補的 율동]을 다 함께 읽고 감상해주기를 바란다. ‘애지의 초점: 이 시인을 조명한다’에서는 이순화의 [우리는 저마다의 기타줄]과 장옥관의 작품론 [우주의 율려律呂로 춤추는 살의 노래]와 김보나의 신작시 [황차의 별] 외 4편과 김도의 작품론 {연결을 위한 모험 -김보나의 시 다섯 편을 읽고], 그리고 송승안의 신작시 [오래된 선풍기] 외 4편과 권온의 작품론 [경계와 소통, 삶과 세상을 향한 균형감―송승안의 시 세계]를 내보낸다.
본지는 이번 호에도 [명왕성 외 4편] 외 4편을 응모해온 강수정 씨와 [그 길] 외 4편을 응모해온 한성환 씨, 그리고 [귀벌레 증후군] 외 4편을 응모해온 황금비 씨를 애지신인문학상 당선자로 내보낸다.
2024년 12월 6일 제22회 애지문학상과 애지문학작품상, 그리고 애지신인문학상 시상식이 충남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있었고, 엄재국 시인과 배옥주 교수, 이정옥 시인과 애지신인문학상 수상자들, 그리고 나태주 시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축하객들이 참석해 주셨다.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가 한국에서 80만부, 그리고 일본과 중국과 대만을 비롯한 해외에서 10만부, 총 90만 부가 판매되었다. 이 모든 것이 {애지}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 필자 선생님들과 독자 여러분들, 그리고 애지문학회 회원님들의 성원 덕분이라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진심으로 감사드를 드린다. 아무튼 계간시전문지 {애지}와 편집진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고한 걸음으로 ‘애지의 창간 이념과 목표’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비판만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비판은 당신의 존재증명이다.
당신은 누구를, 무엇을 비판할 수 있는가?
애지 봄호 표지
첫댓글 부지런한 주간님 또 한권의 봄호를 마주하며 그 열정에 깊은 박수와 응원을 보냅니다 늘 건강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