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 의자와 탁자를 엄청나게 깊은 협곡 양편에 깍아지른듯이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절벽이라고 생각해 보자. 이 두 절벽 사이의 넓이는 100m라고 해두자. 이제 협곡 이편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아온 모든 사람들과 또 앞으로 태어날 모든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고 하자. 임박한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다 협곡 저편으로 건너가야만 한다고 생각해 보자. 만일 이편에서 저편으로 건너가지 못할 경우에는 다 죽고 말 것이다. 그들은 넓이 뛰기를 해서 이쪽 절벽에서 저쪽 절벽으로 건너가야만 하게 되어 있다. 현재까지 수립된 넓이 뛰기 세계 기록은 과연 얼마인지 아는가? 고작해야 8.4m에서 9m 사이일 뿐이다! 전체 인류 가운데서 100m 넓이의 협곡을 건너뛸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무도 이처럼 넓은 협곡을 건너뛸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6m 이상 뛸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불과 몇 미터밖에는 못뛸 것이다. 불구자들은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절벽 끝에서 굴러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저편까지 건너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저편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중간에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 것이다.
인간의 영적인 상황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인간과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는 깊은 협곡 혹은 구렁이 끼어 있다. 사람들은 그 협곡을 건너뛰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사람들은 교회에 나가기도 하고 십계명도 지키고 고의로 남을 해치지 않고 가능한 한 협곡 이편에서 저편으로 멀리 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저자 자신의 과거 생활이었다. 그것은 저자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멀리 뛰려고 애를 쓴 생활이었다! 저자는 다른 여러 사람들보다도 더 멀리 뛸 수 있다는 데에서 위로를 얻고 있었다. 저자는 하나님이 가장 멀리 뛰는 사람을 받아주실 것으로 생각했었다. 저자는 아무도 완전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최선을 다한 사람을 받아주실 것으로 생각했었다. 저자는 하나님이 그의 표준을 낮추어 주실 것으로 생각했었다. 이것은 하나님이 비례식 채점을 하실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전체 인간의 능력에 비례해서 채점을 하지는 않으신다! 저자는 과거의 생각이 잘못임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오직 한 가지 표준, 곧 완전의 표준을 갖고 계실 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기를 하늘에 계신 너의 아버지의 온전(완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완전)하라고 하셨다. 나는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순간적으로 저자는 저자만큼 선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여 내가 무시했던 사람들도 결코 저자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동일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얼마나 선하든지 간에 우리 앞에 가로놓인 협곡을 건너뛸 수 있을 만큼 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다 동일한 영원의 죽음을 맞아야 할 운명에 놓여있다. 우리가 천국에 갈 만큼 선하게 되지 않는다면 모두 다 지옥에 갈 것이다. 우리가 다른 길을 통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그 협곡을 건너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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