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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권력욕과 죄악: 약 1:15 Human Lust for Power and Sin: James 1:15
인간의 권력욕과 죄악: 약 1:15 Human Lust for Power and Sin: James 1:15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5 Then, after desire has conceived, it gives birth to sin; and sin, when it is full-grown, gives birth to death(개역개정, NIV)
샬롬! 거룩한 성일입니다. 저는 잠실교회에서 이렇게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최근 약 12일 동안 창세기를 제미나이와 대화를 해서 올리고 처남 간병으로 너무나 바빠서 이렇게 글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오늘 제가 드리는 야고보서 1장 15절의 말씀으로 최근 중국과 미국의 갈등, 그리고 한국에서 이 두 강대국의 틈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이해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은 모든 분이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악을 미워합니다. 너무나 미워하는 것은 세상의 밑바닥에서 너무나 많은 불의를 경험하며 별로 저항도 못하고 당하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실로 세상은 이렇게 불의가 만연한 곳입니다. 이 불의가 만연한 곳에 우리 크리스천이 빛이 되어 비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별력이 없으면 나도 모르게 악의 세력에 동조를 해서 악하게 살며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고 죽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 세상의 모든 성도가 올바른 길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런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목사로 이렇게 목회를 하는 사람입니다.
제 사역이 이렇게 인터넷에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도 정해지지 않았고 저를 사례하는 사람도 없어서 누구 눈치를 조금도 볼 필요가 없이 제 양심과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리고 성경의 진리를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입니다. 악에 대한 격분이 너무나 있는 사람이라 목사로서 본질도 벗어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정말로 악이 싫습니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집단도 국가도 다 싫고 정말로 서로 사랑하고 정의롭게 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길 너무나 간절히 원하는 사람으로 정의로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이신 하나님을 공경하며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저는 행정고시를 준비하면서 정치학에 대해서 잘 배웠습니다. 이극찬의 정치학은 30년 전에 모든 공부를 하는 사람이 보는 교과서였습니다. 너무나 잘 쓴 정치학 교재였습니다. 그리고 행정학도 대학원까지 전공으로 잘 배웠고 경제학, 법학도 보통의 대학생이 배우는 이상으로 잘 배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목사가 되라고 하셔서 성령도 주시고 성경도 읽고 정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전도하게 하셨고 이를 이렇게 온 세상에 전하는 사람이며 목사입니다. 제가 행정 고시 2차에서 1점차 낙방할 정도로 어느 정도 이런 과목에 대해서 주제만 주면 바로 논할 정도로 공부를 했지만 성경을 읽고 이런 이전에 공부한 부분은 진실로 배설물로 여겨서 제가 거의 언급도 하지도 아는 채 하지도 않습니다. 너무나 위대한 진리의 말씀 성경에 이들은 태양앞에 반딧불도 되지 못하기에 무슨 소용이 있다고 시간 낭비를 합니까? 저는 진실로 불교도 중이 될 정도로 잘 배웠고 유교도 잘 배운 사람으로 나중에 성경과 복음의 진리를 접하니 실로 너무나 어머어마 해서 늘 놀라면서 기뻐하면서 성경을 봅니다.
모든 사회 과학의 이론이 30년이 되지 않아서 새로 바꾸어야 합니다. 진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은 3500 년이나 되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없이 진리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세상의 모든 이론이 상황에 따라서 바뀝니다 법도 그렇습니다.그런데 수천 년 동안 강산도 변하고 나라도 변하고 사람도 변해도 성경 말씀은 일점 일획 변동이 없이 언제나 진리로 있으니 어찌 성경이 인간의 말이라 할 수가 있겠으며 오직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는 길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할렐루야! 거룩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말씀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진리의 말씀이신 성경의 말씀 중에서 신약의 말씀인 야고보서 1장 15절은 욕심이 잉태하여 죄가 되고 죄가 자라니 사망이라 하십니다. 즉 죄는 욕심에서 비롯이 되며 죄로 인해서 결국은 죽음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언제나 진리입니다. 수천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진실로 욕심이 지나치면 죄가 되고 죄를 짓고 죄가 자라게 되면 그 사람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죄로 인해서 죽어도 그 죽음이 되는 욕심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은 하겠다 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욕구입니다. 모든 죄는 여기에서 비롯이 됩니다.
그 욕구를 우리는 셋으로 나눕니다. 식욕 혹은 수면욕, 그리고 성적인 욕구, 그리고 마지막에 권력에 대한 욕구입니다. 먹지 않거나 혹은 자지 않으면 죽게 되니 이 욕구가 강하지 않을 수가 없고, 그냥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더 잘 먹고 잘 자기 위해서 남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고 더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당하게 일을 하고 몸을 움직이면 되는데 정상적인 방법보다 폭력이나 무력을 좋아하는 사람은 법을 어기면서 타인의 소유를 뺏거나 훔치면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니 이렇게 되면 큰 죄를 짓게 되고 이렇게 죄를 짓는 자는 반드시 죽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이 죽는다고 하셨으니 반드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 욕구를 절제하고 타인을 존중하며 적당하게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데 사용해야 되는데 이렇게 되면 죄도 짓지 않고 너도 나도 평화롭게 살 수가 있는데 일을 하지 않고 타인의 집과 식량을 훔치는 도둑이 되기도 하고 아예 국가가 힘이 약한 나라의 전체를 침략해서 모든 소유를 탈취하고 이 국민을 종으로 삼고 죽이고 모든 질서를 다 어지럽히는 일을 인간은 하기도 하는데 이런 자들은 국가와 함께 모두가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멸망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나라가 생존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이를 통해서 김일성 일가의 독재가 반드시 심판을 받고 처참하게 몰락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분명하게 보며 이들에 붙어서 정권을 잡고 연장하려를 모든 한국의 정치인이 같은 몰락과 수치의 삶을 반드시 살게 됨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너무나 분명한 역사적인 진리입니다.
특히 북한의 기독교즉 하나님에 대한 대적은 지구상에서 가장 처참한 말로가 기다리고 있으니 얼마 남지 않았고 이에 붙은 모든 한국의 정치인 경제인 국민이 실로 너무나 처참한 결말과 인생의 비극을 맛을 볼 것입니다. 저는 정확하고 반드시 이대로 되니 이런 사상에 이런 권력에 붙은 자는 이시간 바로 단절을 해야 사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속히 단절하고 정신을 차리기 바랍니다. 지극히 그 종말이 가까웠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트럼프가 마두로를 잡듯 이란의 핵을 하루에 파괴하듯 하면 김정은과 그 일당은 오늘 바로 최후가 되고 종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방법도 이들의 몰락을 예견하는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상상도 못하는 방법으로 속히 이들을 척결하실 것입니다. 믿는 자는 이런 무서운 하나님 편에서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붙어 있어야 합니다. 사는 길을 제가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성욕입니다. 성욕은 자손을 번성하고 자손으로 대를 잇게 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 남녀의 몸이 어느 정도 자라면 자동적으로 생기는 욕구입니다. 이 욕구를 가장 잘 해소하는 것이 결혼입니다. 결혼을 해서 부부로 살면 대부분의 성욕은 해소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가지 원인으로 결혼을 못하게 되면 그 욕구를 해소할 길이 없어 다양한 방법으로 해소를 하는데 옛날엔 공식적인 창녀촌이 있어 젊은이들이 돈을 주고 이 욕구를 풀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권과 여권의 신장으로 이렇게 몸을 파는 일이 불법이 되니 이제는 무슨 방법으로 이 욕구를 해소를 합니까? 그리고 여자들이 결혼도 잘 하지 않으니 이 욕구 불만으로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생길 수가 있고 이것이 죄로 연결이 됩니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서 때론 전력을 투구하기도 합니다. 한 여자나 남자를 두고 서로 다투기도 하고 실망해서 의기가 소침하기도 합니다. 과거에 20세가 되면 바로 상대를 찾아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던 시기엔 모두가 성적인 욕구를 잘 해소를 해서 이런 부분에 별로 사회적인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자나 남자나 30세가 되어도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만 하니 온 한국의 성적인 욕구를 누가 해결을 합니까? 여자도 20세가 지나면 결혼도 하고 자녀를 낳는 것이 이상적인데 고령에 결혼을 하니 자녀를 낳는 일이 위험하고 어렵게 되었습니다. 남자도 여자와 결혼해서 가정을 갖는 것이 어려우니 참으로 이 욕구를 해소하는 길이 어렵게 되었으니 온 세상의 남자도 사는 것이 쉽지 않는 형국입니다. 잘 산다고 하는 것은 이런 문제가 온 사회적으로 잘 해결이 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서로 가까운 곳에서 서로 눈이 맞으면 바로 20세 전후로 결혼을 해서 어떤 일이 생겨도 일생을 같이 부부로 살았으니 3000년 동안 한국에서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서구의 문화의 영향으로 영화도 들어오고 외국에 가서 살다가 오고 하면서 이들이 하는 헤까닥 하는 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헤까닥이란 말은 부부가 여태까지 서로 의지 하고 믿고 살다가 상대방이 어떤 다른 상대를 보고서 성적인 호기심과 유혹을 느꼈을 때 바로 여태까지 아들 딸 놓고 살던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다 잊고 하나님의 간음에 대한 경고도 잊고 바로 서로를 탐하며 죄를 범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헤까닥 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 우리가 그렇게 믿고 따르고 의지하는 미국입니다. 이렇게 헤까닥해서 내 욕구를 죄를 지으면서 채우면 바로 상대방이 결국은 알게 되고 배신감에 남자는 예전과 같이 간통죄가 성립하면 바로 가서 상대방을 죽이기도 했고 실제로 하나님께서도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돌로 쳐서 죽입니까? 자신의 헤까닥으로 자신의 가정은 두 동강이 나고 자녀들을 이렇게 어긋난 가정에서 아비도 어미도 없이 방황하다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문제아가 되고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고 당사자는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일생을 불행하게 사니 그리고 자살과 마약과 술로 방탕하게 되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가정을 파탄내는 간음을 돌로 쳐서 죽이면서 막고자 하신 것입니다. 진실로 돌에 맞아서 죽어야 되는 죄를 짓는 것이 간음이며 헤까닥 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로 인해서 아무리 발부둥을 쳐도 망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 분으로 상대방이 헤까닥해서 분이 안풀리고 인생이 박살이 난 피해자의 울분과 기도를 반드시 듣으시고 이에 대해서 응분의 처벌을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죄는 이렇게 반드시 처벌이 있고 최후에 심판이 있으니 죄의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헤까닥 하시고자 하는 분은 정신을 차리고 이렇게 죽음과 죽음과 심판이 줄줄이 기다리는 지옥에서 속히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한 순간의 쾌락과 이탈은 자신과 가족과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친구와 하나님께 너무나 큰 고통을 줌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라며 오늘도 건강하게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족하게 여기고 젊은 이는 속히 30이 넘기 전에 조금 상대방이 부족해도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기를 권합니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서로 부족해도 족한 줄로 알고 사셔야 합니다. 좋아 보이는 상대방도 실제로 빈껍대기 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키가 조금 크고 육체적으로 조금 나아 보이나 모든 인간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외모는 정말로 밤에 불을 끄면 중요하지 않고 키가 작고 조금 못나 보여도 밤에 즐겁지 않은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리고 진실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가 가장 멋지며 모든 면에서 최고인 것입니다. 이제는 남자가 늙어서 밥을 얻어 먹는 것도 어려운 시기이고 함께 같이 살아 주고 늘 따뜻한 세끼 밥을 챙기는 내 아내가 지구상에서 최고이고 이런 아내를 만난 남편은 건강하며 장수하는 것입니다. 믿고 나보다 상대방이 부족해 보여도 나를 사랑하면 최고로 알고 일생을 믿고 서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특별한 사람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주님께서는 여자를 약한 존재로 알고 주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듯이 여자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조상도 멋진 분들은 자신의 아내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양반 시대에 첩을 수도 없이 얻을 수 있던 시대에도 이렇게 멋있게 사신 분들이 많은 민족이 우리 나라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시대가 가도 세월이 흘러도 귀한 분들은 세상의 풍조를 따르지 않고 오직 서로 사랑하면서 평생을 섬기고 존중합니다. 이런 부부가 모두가 되셔야 하고 이렇게 살도록 모두가 세워야 합니다. 형제의 정을 남녀가 교회에서 마음껏 나누면서도 이렇게 서로를 지켜주면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얼마나 품위가 넘치고 사랑이 넘치는 분들이 서로를 배려하면서 주를 찬양하면서 영원토록 시간도 가는 줄도 모르게 행복하게 사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주변의 어려운 형제가 굶고, 집도 없이 추운 겨울에 들판에서 떨고 있는데, 홀로 수십억 수백억의 집에서 난방을 마음대로 켜고 외제차에 난방에 차로 회사에 갔다고 차로 집으로 와서 엘리베이트를 타고 수십억 아파트로 겨울도 여름도 모르고 사는 사람이 어찌 부끄러워서 이런 분들이 있는 천국을 기웃거리겠습니까? 위선은 바로 주님 눈에 판가름이 납니다. 속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권력욕입니다. 정치는 권력에 대한 투쟁입니다. 그리고 모든 정치인이 권력을 얻기 위해서 정치를 하면서 내세우는 것은 사회 정의니 국가의 안전이니 민족의 번영이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적인 법치국가에서는 이 권력의 쟁취를 법에 의해서 정해놓고 선거를 통해서 국민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뽑아서 권력을 주고 정부도 구성하게 했으니 이는 역사를 통해서 독재의 횡포와 권력의 부패를 너무나 잘 보았기에 개인의 인권과 국민의 복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한 사람에게 집중이 된 권력을 분산해서 서로 견제함으로 궁극적으로 불의를 막고 인권을 보장해서 모든 국민이 잘 살도록 삼권을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법을 만들어서 법대로 통치하고 법대로 심판하도록 했으니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입니다. 삼권분립과 법치주의가 민민주주의의 근간입니다. 인류는 이 정치제도를 만들기 위해서 오랫동안 독재와 투쟁하며 피를 흘렸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발견한 제도 중에서 가장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제도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에는 헌법이 있으니 모든 법의 기본법입니다. 이 헌법에 따라서 하위법들이 만들어지고 이 법을 어기면 위헌이 되어 효력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나 법원보다 더 보장을 했으니 이는 남과 북이 나누어져서 여전히 적대 관계에 있어서 대통령이 비상시에 자신의 권력을 평소와 다르게 행하게 했으니 비상 대권입니다. 즉 계엄의 선포와 같은 행위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군의 통수권자로 각군을 지휘 통제할 수가 있고 별들을 임명할 권한이 있고 자신의 정부의 국방부 장관으로 인사권을 행사합니다. 즉 비상시에 군대에 명을 내려서 상황에 맞게 군대를 움직일 권한이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도 한 정치 세력으로 선거에서 대통령이 나오면 국회를 구성해서 여당이 되어 대통령과 긴밀하게 정부도 구성하고 정책을 집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서는 우리는 우리 나라가 설립 된 후 늘 보던 보편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는 이제껏 보지 못한 특수한 상황을 봅니다. 즉 별이 계엄에 반대해서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을 내란의 수괴로 몰고 여당의 대표가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보던 질서가 완벽하게 무너진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를 배신이라고 하고 어떤 이를 이를 매국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대통령을 내란의 우두머리로 몰아갑니다. 누가 옳고 그런지는 차치하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생깁니까? 만약에 한국에 이런 일이 또 생기면 지금 대통령이 전쟁이 일어나서 군대에 명령을 했는데 군 장성이 도리어 대통령을 체포하고 국가가 위기에 처했는데 정부와 여당이 합력해서 이를 해결을 해야 되는 상황에 대통령을 탄핵한다며 이 무질서한 나라가 무슨 일을 합니까? 그리고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은 자신의 정책에 충성할 사람을 잘 분별해서 세우는데 이들이 자신의 뜻과 완전히 다르게 배신을 때리면 그 신뢰가 무너지게 되는데 이런 일이 한국에 생긴 것입니다. 즉 권력의 질서가 무너진 것입니다. 국가의 통치가 무너졌습니다. 질서 체계가 무너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의 도발을 막을 군대로 경찰도 국가 공무원도 국민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특정의 집단의 세력에 빌붙어서 이리 저리 움직이는 있으나 마나한 군대 경찰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군인이 중국의 도발을 막고 어떤 경찰이 미국의 독주를 막습니까? 도리어 중국과 미국에 빌붙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확보할 뿐입니다. 나라가 이미 무너져서 소망이 없는 상태가 되고 이런 어리석은 백성에게 방송은 계속 거짓을 쏟아낸다면 이 나라는 이미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국민을 이렇게 세계 5위의 돈과 모든 것을 가진 나라를 주변의 탐욕에 물이 든 미국 혹은 중국 혹은 북한 혹은 일본이 노리고 오면 누가 막습니까? 군대도 경찰도 이미 국민도 없고 민족도 국가도 없이 어떤 권력 집단에 도구로 사용이 되고 중국과 미국의 압잡이가 되고 북한의 노리개가 되면 누가 이 나라를 세웁니까? 이렇게 하는 집단에 또 국민이 붙어서 함께 다른 국민을 죽이고자 하는 것이 한국의 사정입니다.
미국은 중국과 패권 다툼에 한국이 정통 우방으로 중국을 서해로부터 막아주고 북한도 잘 막아주기 바라는데 그래서 미군도 주둔하고 혈맹으로 믿고 있는데 이 나라가 중국과 북한을 더 선호해서 자신들이 쌓아올린 신뢰를 무너뜨리고 도리어 중국과 북한의 눈치를 보면서 산다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합니까? 중국은 한국이 예로부터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살아왔고 무역도 미국 못지 않게 하고 있으며 미국과 패권의 다툼에서 이제는 자신의 이익에 맞게 행동하기를 바라는데 미국과 잘 지낸다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북한은 북한대로 자신에게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와서 자신들과 함께 미국을 대적하고 싶은데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고 도리어 미국과 잘 지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국제적인 상황에 정치인은 자신의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 어떨 때는 국민의 안위와 번영을 도외시 하고 강대국을 따라서 행동합니다.
인간의 권력에 대한 욕구는 3대 기본 욕구 중에서 가장 큽니다. 정치인들은 이런 권력욕에 완전히 붙들린 사람입니다. 이들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형제도 죽이고 가족도 버리고 부모도 버립니다. 권력을 얻을 수가 있다면 역성 혁명도 합니다. 삼족이 멸하고 구족이 죽어도 합니다. 그리고 다수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상적인 주장을 합니다. 정치를 모르는 국민은 대부분 속아서 이리 저리 휘둘립니다. 세뇌를 하면 세뇌를 당해서 자신의 부모도 사상을 따라서 죽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권력욕에 물든 모습입니다.
때론 우리는 법도 인간의 도리도 그리고 하나님의 가르침도 버리고 도저히 이해가 할 수가 없게 행동하는 사람의 모습에서 무엇이 사람을 저렇게 추하게 만들까 생각하며 아무리 연구를 해도 답을 얻지 못합니다. 지금 한국의 예를 보면서 수도 없는 법학자와 검사와 판사와 그리고 법대 교수가 있는데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서 침묵하고 대통령의 재판에 대해서 침묵을 하는 것은 절대로 이들이 무엇이 법적으로 옳바른지 알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이들은 충분하게 무엇이 적법하고 무엇이 불법인지 판단하고 분석하고 설명할 수가 있는데 침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고 깨우치려 하는 행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들은 이미 충분하게 무엇이 옳고 그런지 압니다. 형사 재판에서 변호사는 살인범이 얼마나 흉악하고 잔인한지 압니다. 그런데 그를 위해서 변호를 하고 어떻게든 형을 감형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논리를 다 동원합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술을 마셨다 마약을 하고 정신이 나갔다 등의 논리도 펴고 죽은 사람이 맞아서 죽을 죄를 지었다 주장합니다. 이러다 보면 진짜 살인범이 무죄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 우리는 누구나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난 사실을 압니다. 온 국민이 다 이렇게 살인범이 무죄가 되는 것을 보고도 아무 말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정한 권력에 붙었거나 권력에 덤비는 것이 무섭고 그냥 지금 지켜야 할 것이 너무나 많기에 이런 거짓이 진리를 이기는 세상에 침묵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이미 이렇게 돈에 권력에 진리를 파는 세상이 되었고 모두가 진리에서 멀어졌고 모두가 거짓에 침묵하고 동조하는 상태가 되었으니 망하는 것 외에는 별로 길이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실로 망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 국가의 공무원이 임무 수행중에 물에 빠지게 되었고 북한 영해로 떠내려 갔습니다. 그리고 사살이 되고 불에 태워졌습니다. 지귀연이가 재판을 맡았는데 검사의 2년 징역형 구형에도 박지원과 당시 국정원장을 무죄로 판결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귀연이 동생이 그렇게 근무를 하다가 바다에 빠져서 죽었어도 역시 이 사람은 무죄를 선고할 사람이라 저는 믿습니다. 이분께서 법대로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문재인 정부 때 이 소식을 듣고 분개했습니다. 아니 이 미친 나라가 어느 나라냐? 자국의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서 사살이 되고 불에 태워졌는데 온갖 국가 공무원들이 다 나와서 하는 말이 이 사람의 사생활을 들먹이며 이 땅에 살 수가 없어서 스스로 북한으로 들어가려다고 북한군에 의해서 거부당하고 죽었다고 발표를 했고 쉬지 않고 이 공무원의 비리라는 것을 캐고 밝히고 난리가 났는데 이 미친 놈들이 북한의 하수가 아니면 이 나라의 국민에게 과연 이런 하늘도 노하고 모든 국민이 치를 떨 짓을 할 수가 있냐며 글을 올렸습니다. 어떻게 자국의 공무원은 죽도록 방치를 하고 그것도 죽을 놈이 죽었다고 온 세상에 외치는 자들이 한국민인지 북한의 공산당인지 저는 절대로 분간이 되지 않는데 지귀연 눈에는 이들이 한국의 국민으로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또 2명의 북한 사람이 자유를 찾아서 귀순을 했는데 배에서 수십 명을 죽이고 온 사람이라고 또 북한에 인계를 했는데 이들이 휴전선을 넘어서 갈 때 자해를 하는 것을 온 국민이 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니 어찌 좁은 배에 수십 명이 타며 어떻게 두 명이 다른 사람을 그 좁은 배에서 다 죽일 수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그냥 이 사람을 죽음으로 내 모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찌 3000년 한국 역사에 이렇게 악하고 독한 놈이 또 있습니까? 지귀연이란 판사는 틀림없는 한국의 피를 이은 놈이 아니고 어디서 굴러온 공산주의 작자가 분명합니다. 자신의 형제와 자녀도 틀림없이 이런 경우 즉 이런 일로 재판에 회부가 되었을 때 죽을 놈이 죽었다고 판단하고 이렇게 죽음으로 내본 한국의 공무원을 무죄로 선고할 천인 공노할 심신 파탄의 미친 인간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무죄 판결를 준 박지원과 국정원장이 방치해서 죽은 공무원이 바로 자신의 형제요 자매인 혹은 자녀인 한국의 국민인데 이런 판결을 내렸으니 틀림없이 자신의 형제나 자녀도 그렇게 보호를 하지 않을 인간이 틀림이 없다고 저는 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족이 이렇게 억울한 판결로 그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싶습니다. 너무나 건강하고 건전한 한국 국민인 한 사람으로서 분노입니다. 제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그냥 평범한 한국을 사랑하는 국민입니다.
검사는 법대를 졸업하거나 사법시험을 보고서 그 중에서도 아주 성적이 좋은 사람들이 되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법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죄를 범한 사람을 법에 근거해서 벌을 받게 하는 사람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을 벌을 주어서도 아니 되고 죄가 있는 사람을 벌을 주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 법에 근거를 해서 형을 구형을 해야 되는 사람입니다. 이 일에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한 나라의 대통령을 사형에 구형하는 검사가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사형에 대한 논지를 읽어가는데 수필을 쓰고 있습니다. 어디서 근거도 없는 소설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행정학도에게 오는 것은 제가 편견이 있어서 그렇습니까? 겨우 이렇게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놓고 수필을 쓰고자 그렇게 법을 배웠고 검사가 되었는지 온 국민이 웃을 일을 온 천하에 수치를 드러내며 당당히 외쳤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권력에 미친 자들의 개소리인 것입니다. 권력에 미친 자들은 법을 무시합니다. 부모 형제도 외면합니다. 민족도 한국의 안녕도 번영도 개에게 던져두고 오직 권력을 얻으려고 광분합니다. 이들이 하는 모든 행위가 권력에 미쳐서 이렇게 날뛰게 되는데 이들에겐 국민도 인정도 사람의 도리도 법도 하나님도 아무것도 뵈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뭐라 하십니까? 이런 자들은 결국 죽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온 지구가 온 세상의 권력이 다 덤벼도 이 성경 말씀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죽는다면 이들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3000년의 역사가 이런 자들이 틀림없이 다 죽었음을 증명합니다. 반드시 진리는 드러나게 되고 권력에 미친 놈의 악행은 죽음으로 끝이 나게 됩니다. 그런데 권력에 대한 욕망이 너무나 강하기에 이렇게 자신의 죽음도 자신의 가족의 동반 죽음도 개의치 않고 오직 권력을 잡겠다 미쳐서 거침없이 나갑니다. 거침없이 죽음으로 자신과 가족을 함께 몰아넣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권력에 대적하신 것입니다. 이런 악 중에서 가장 강한 악에게 대적하시다가 죽음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목사는 이렇게 주인을 따라서 죽음으로 대적을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이 사명에서 벗어난 인간은 이 권력의 개로 절대로 예수님의 종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냥 비겁하게 부귀 영화를 누리다가 반드시 죽어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절대로 천국은 곁에도 가보지 못하고 지옥에 갑니다. 아무리 감언이설을 목이 터져라 쏬아내도 개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개가 개소리 외에는 하지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권력의 개가 되어 개소리나 지껄이다 죽어서 개같이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만 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무리가 또 이런 불의한 권력의 노예로 사는 것을 즐거워 해서 이런 악행에 동조하고 스스로 뭐가 된 것같이 우월감을 갖고 권력에 진 자들을 멸시합니다. 신자가 신자를 멸시하고 무시하고 등한시 합니다. 이들이 어찌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 할 수가 있습니까? 역시 권력의 개가 되어 불의한 권력에 아부하고 이 권력에서 떨어지는 불의한 빵조각을 더러운 손으로 받아서 먹는 자들입니다.
국가가 붕괴하는 모습입니다. 나라의 권위가 없고 권력의 권세가 없습니다. 권력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이렇게 악하게 사용하면 그 권력의 권위가 없어지고 국민이 외면하고 곧 이 권력은 붕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권력욕에 미친 자들이 설치게 되면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이들을 소탕하시고 새로운 세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즉 이들이 상대할 사람이 약한 착한 사람들이 아니고 대적할 대상이 없는 우주 최강의 권력과 권세룰 지니신 전능하신 하나님과 대적하게 되어 아무리 강한 권력자도 불나방과 같이 타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이렇게 타서 죽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입니다.
배신과 술수가 난무하고 거짓과 선동이 난무하고 무법천지의 한국의 현상은 권력에 미친 자들이 자신이 곧 죽을 것도 모르면서 추는 죽음의 무도입니다. 세상엔 한국의 권력보다 센 권력이 많습니다. 이들이 개입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이들을 전부 소탕을 할 것입니다. 이 나라는 3000년 동안 이렇게 법도 없이 주인도 없이 마음대로 설치던 역사가 별로 없었으니 이들에 대한 소탕도 아무도 생각지 못하게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를 물고 뜯어서 죽이거나 사고로 모두 죽거나 질병으로 모두 죽거나 확실한 것을 이들이 모두가 소탕이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교회에서 목사가 권력의 개로 전락해서 거룩한 단상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개소리를 뱉어내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고 참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이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 대적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모두가 다 언제 이들이 있었지 하게 사라져 갈 것입니다. 한줄기 강풍에 날라서 사라져갈 것입니다.
그런데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리를 전하는 목사는 하늘의 태양과 같이 빛이 날 것입니다. 그가 비록 감옥에 있거나 핍박을 받거나 죽거나 가리지를 않고 영원토록 빛이 날 것입니다. 목사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많은 권력에 미친 성도의 눈치를 보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을 사람보다, 미친 사람보다 더 경시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이렇게 살기 위해서 행하는 자는 다 죽을 사람입니다. 반드시 죽음 외에는 달리 길이 없습니다. 차라리 목사직을 버리고 그렇게 살면 죽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는 목사의 핍박과 박해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를 박해의 자리로 지금 부르십니다. 십자가에 못이 박힌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면서 자신과 같이 십자가에서 죽기를 바라십니다.
60이 넘은 한국의 국민은 살기를 포기를 해야 이 싸움에서 이깁니다. 권력에 미친 자들이 모든 것을 다 움켜진 지금 그냥 누가 싸워주기를 바라는 것은 내 자식과 손자를 다 잡아가라 하는 행동입니다. 이제 나가서 죽는 것도 두려워 말고 싸워야 합니다. 살만큼 살고 누릴 만큼 누렸으니 나이 든 사람이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왜 20-30이 싸웁니까? 수치를 아시고 속히 산에 가지 말고 외국에 가지 말고 여가를 즐기지 말고 나가서 싸울 곳을 찾아서 싸워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70년의 자유와 평안은 수백만의 피와 죽음으로 누린 것입니다. 이제 누군가 이렇게 싸워야 합니다. 네팔이 싸웠습니다. 이란이 피흘리며 싸웁니다. 베네수엘라가 싸웁니다. 싸움없이 자유는 없고 평안도 없습니다. 기독교는 순교의 역사였습니다. 약 지구상에 살았던 전체 인구의 13% 순교를 했다고 합니다. 피로 지킨 신앙이고 피로 지킨 자유이지 침묵과 굴종으로 우리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손자 손녀에게 절대로 자유를 주지 못하고 신앙도 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이 땅의 정치인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권력을 휘두르게 인간을 악마로 만든 배후 마귀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세력이고 북한의 세력입니다. 우리가 70년 전에 전쟁으로 피를 흘리며 싸웠지만 지금은 이 어둠의 세력에 대적해서 어떻게 싸웁니까? 어떤 이는 감옥으로 갔습니다. 가지 않아도 되는 감옥에 갔습니다. 목사가 감옥에 가면 성도는 울어야 하는데 이를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고 처절하게 싸워야 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잘 살기 위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결혼을 잘 하고 좋은 차와 집을 얻기 위해서 하는 싸움은 세상의 사람이 하는 싸움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새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었다면 뭔가 세상 사람이 싸우는 싸움과 다른 고상한 싸움을 해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예수님의 피로 거듭난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존재이며 누가 죽이려 해도 절대로 죽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미 우리는 사망을 극복했습니다. 살아서 믿는 자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했습니다. 세상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서 세상에선 그냥 세상의 사람과 같이 살아선 아니 됩니다. 70년의 평안과 축복이 우리의 안일이 되고 일상이 되어서 누가 뭐래도 나라가 무너져도 이대로 살다가 죽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내 자식과 내 손자가 대신 피를 흘려야 할 것입니다. 아니면 북한이 되고 중국이 되어 신앙의 자유도 사라질 것입니다. 미국은 최근에 한국의 국무총리를 밴스 부통령이 면담했습니다. 그리고 쿠팡 문제를 논의했습니다. 한국 총리가 북한의 김정은을 만나라고 조언도 합니다. 문재인과 똑같은 방법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구팡의 자국의 사장이 한국의 국회의원에서 모욕을 너무나 심히 당하는 장면을 다 보았고 김민석이 과거에 미국이 무슨 일을 했고 정동영이 북한을 어떻게 보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하루에 평양도 날리고 김정은도 날릴 힘을 갖고 있고 이를 이란에 쓰고 베네 수엘라 대통령도 2시간 만에 체포를 한 힘이 있는데 러시아 국민이 보면 자국의 일개 지역의 위원장도 못되는 김정은이 뭐라고 만나라고 합니까? 한국에서 김정은 하지 중국이나 러시아나 우즈벡 등 다른 공산국가에서는 김정은 우습게 압니다. 미국도 역시 별 것 아니라 봅니다. 마음 먹으면 하룻 밤에 제거 대상으로 봅니다. 한국 정부가 급히 미국에 총리를 보낸 것은 급한 사정이 있어서 입니다 무언가 다급하고 무언가 가만히 있으면 아니 되기에 보낸 것입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실로 김정은은 온 세상에서 존재 가치가 별로 없는 독재자로 모두가 악인으로 아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과 북한을 좋다고 하는 자들은 개가 웃을 소리를 하는 자들이며 역사에 미친놈들로 기록이 될 것입니다. 인생이 왔다가 잘 살고 천국에 가게 우리 주 예수님께서 그렇게 수난을 겪고 죽으셨는데 이 사랑을 외면하고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어 그 백성을 모두가 지옥으로 인도하는 악의 축이며 괴수인 시진핑이나 북한을 추종하는 자는 그가 목사라도 신부라도 혹은 장로 권사 성도라도 이런 사람이 가는 곳으로 같이 가는 열차를 이미 타고 이 땅에서 권력을 잡았다고 순하고 착한 사람을 핍박하고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그가 가는 길은 예수님의 길이 절대로 아니며 지옥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의 유혹과 때론 폭력과 싸워야 합니다. 자유가 있는 곳에 유혹도 역시 큽니다. 폭력이 있는 곳엔 자유가 없습니다. 평화가 있다고 자유가 있다고 다가 아니고 더 큰 유혹이 있으니 재물과 여자와 여가와 명성과 학벌의 유혹이 있습니다. 평화속에 있는 유혹에서 대부분의 크리스천이 패배하면 나라가 불의하게 되고 악한 사람들이 설치고 이를 막을 힘이 없게 되고 그 나라는 위기가 옵니다. 그런 위기가 우리나리에 오래전부터 있었고 이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를 대적하는 사람도 있어서 그래도 이 나라가 이렇게 버팁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을 사랑한 이스라엘이며 로마인이었던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방법이 바뀌었습니다. 예전과 같이 율법을 배워서 지도자로 살고 로마인으로 살던 모습을 다 버리고 오직 십자가를 전하는 사람으로 전쟁을 했습니다. 칼과 창으로 싸우는 싸움이 아닌 성경과 성령으로 싸우는 싸움의 길로 나서서 지금 온 세상에 30억 명의 크리스천이 되게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답답해도 영적인 전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수백 년 동안에 왕정이 민주정이 되고 독재 국가가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 세상이 되는데는 피를 흘리는 전쟁이 꼭 수반이 되었습니다. 평화로운 가운데서도 피가 흘러져야 세상은 고쳐졌습니다. 루터 킹 목사가 피를 흘리고 죽었고 최근에 촬리 커크도 그렇게 총에 맞아서 죽었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향해서 진리로 목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최초에 세례자 요한도 당시의 헤롯 왕의 가정사를 비판하다가 목이 잘려서 죽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싸우라고 하면 그렇게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같은 제자라도 베드로는 칼로 예수님을 잡으려는 자의 귀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그렇게 말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모든 제자가 다 같이 않고 어떤 이는 불과 같고 어떤 이는 차가운 이성이 있습니다. 우리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한 목표는 주님을 높이고 이 땅에 정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물질이 넘치는 시대에 가장 무너진 하나님의 나라의 부분은 나눔의 실천입니다. 내가 돈을 벌면 가난한 이웃과 나누어야 하는데 홀로 쥐고 있고 이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자랑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웃과 형제를 멸시합니다. 왜 이 좋은 세상에 저렇게 살지 하면서 조롱합니다. 그리고 답답하게 여기고 만나지 않으려고 하고 회피하고 끼리 끼라 놉니다. 골프를 치는 수준이면 같은 수준으로 놀고 옷이 허술하고 무언가 없어 보이면 회피하고 멀리합니다. 이들이 다 예수님의 모습을 한 형제인데 결국은 예수님을 답답해 하고 회피하고 멀리하고 돕지 않고 왜 저러지 하고 조롱하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현 한국의 모습입니다. 대형교회 목사가 다 번지르 하게 꾸미고 입고 살고 있습니다. 성도가 그렇게 챙겨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예수님은 일생을 한 번도 옷을 그렇게 번지르하게 입고 좋은 집에서 사신 적이 없고 들판에서 사셨습니다. 이렇게 모든 대형교회 목사가 살아야 이 나라에 희망이 있고 정의가 서고 불의가 물러가고 공산주의가 물러가고 중국이나 미국이나 북한이 함부로 하지 않는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권력에 찌들던, 성욕에 망가지든, 식욕에 먹방에 넘치든 세상은그렇게 되기 때문이니 뭐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믿는 이는 이렇게 전쟁을 해야 합니다. 이 육체의 욕망을 세상의 사람과 다르게 승리하며 살게 하는 비결이 바로 성경 전체이며 특별히 로마서입니다.
진정한 우리가 싸워야 하는 영적인 승리의 비결이 로마서에 있습니다. 당시 로마는 네로 황제의 기독교 핍박이 시작이 되었고 약 5000만의 로마 국민 중에서 기독교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정말로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이렇게 죽음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영적으로 싸워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편지가 바로 로마서입니다. 현 한국에 너무나 절실한 말씀입니다. 그냥 평화에 시대에 기록이 된 말씀이 아니라 믿는 사람이 별로 없는 로마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나라, 기독교인을 순교시키는 폭력적인 로마에 사는 교인에게 보내는 영적인 전투 메뉴얼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싸워서 승리한 비결대로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저의 위의 과격한 표현은 그냥 한국 국민으로서 정말로 평범한 그렇지만 한국을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소회를 밝힌 것이지 영적인 싸움을 성도가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니 오해를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승리할 지 그 비결을 로마서의 표현대로 정확하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즉 야고보서 1장 15절에서 소개한 욕망과 죄를 사망에 이르지 않고 싸워서 이기는 비결을 로마서를 통해서 우리는 살펴보고 그렇게 싸워서 모두가 승리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진정한 목적입니다.
먼저 밝혀야 하는 것은 로마서는 교리의 책이 아니라 직접 우리가 오늘 행해야 되는 행동 양식과 원칙을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서 2000년 전에 주시고 지금의 성도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데로 이해하고 하시면 좋은 전투를 하는 믿음의 군병이 되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은 정치인이 아닙니다. 주님의 군사입니다. 군사로서 영적인 전쟁을 반드시 해야 되는데 그 전쟁을 로마서를 통해서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 글로 로마서를 한 번 다 훑게 될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대장이시고 그리고 하늘과 땅의 권세를 지니신 왕중왕이 되십니다. 권세와 정사를 다 가지신 우주 최강의 권력의 분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격려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선악을 분별해서 악인을 다 지옥으로 보내는 최후의 심판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구세주가 되시며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이시며 장사한 지 삼일 만에 부활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 복음을 전하며 그분을 전하는 것을 기뻐하시고 우리를 돕고 우리와 함께 고난을 받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분을 우리는 철과 같이 강철과 같이 돌과 같이 잘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쉬지 않고 믿어야 하며 그 믿음이 이렇게 단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믿으면 우리는 자신이 아는 크고 단단한 바위를 떠울리며 그렇게 믿고, 굳게 단단한 철제 물건을 떠올리며 때론 강철을 떠올리려 그렇게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왔다 갔다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믿다가 내일 고난이 오면 흔들리지 말고 잘 믿어야 하며, 오늘 잘 믿다가 내일 큰 돈을 불법으로 벌 일이 생기면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오직 예수님과 성경 말씀을 굳게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처음부터 쉬지 않고 세월이 가도 변치 않고 고난이 와도 변치 않고 잘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치 않고 굳센 믿음을 가지고 즉 예수님에 대한 굳센 믿음을 갖고 오늘 뭐해야 합니까? 내가 숨이 붙어 있다면 오늘 하루를 이 믿음을 갖고 이 믿음을 방편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믿음에 근거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일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영적인 전투의 시작이고 기본인 것입니다. 이 믿음에 따른 삶은 교회에서도 세상에 나가서도 조금도 변함이 없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홀로 싸웁니까? 전능하신 우리 주 예수님이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주관하시고 감동하십니다. 즉 성령님께서도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를 또한 믿고 나아갑니다. 학생은 오늘 하루 열심으로 공부하면 됩니다. 주부는 가정을 정결케 하고 자녀를 잘 먹이고 남편의 일을 돕고 혹 일을 하시면 일터에서 부지런히 정직하게 일을 하면 되고, 군인은 나라를 잘 지키면 되고, 목사는 기도하고 목회하고, 장로는 교회를 잘 치리하면 됩니다. 각자가 주일이 아니면 자신의 일을 열심으로 하면 되는데 늘 정직하게 성실하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내 주변의 분들을 모두 품고 사랑하는데 가장 큰 사랑이 복음 전파이니 늘 이들에게 친절하게 하고 예수님을 전하면 됩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일이 없는 분은 정성껏 헌금을 준비해서 헌금하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도를 만나서 교제를 나누고 새 힘을 얻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굳게 잘 믿고 믿음의 본분대로 믿음에 근거를 해서 올바로 오늘도 살고 내일도 살고 쉬지 않고 믿고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가 나를 믿으니 의롭다 하심과 같이 나를 의롭다 하심이 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을 통해서 오늘 전투의 모습을 전했고 이렇게 전투하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이미 제가 설명을 드린데로 사시고 이해를 하시면 로마서 1장 17절을 다 이해하신 것입니다. 이제 제가 전한 로마서 1장 17절 본문을 쉽게 풀어서 설명을 드립니다. 영어 NIV를 쉽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롬 1:17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 의는 믿음에 의한 의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는 믿음입니다. 의인은 예수님에 대한 이런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성실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시면 온 세계에서 로마서 1장 17절을 가장 정확하게 그리고 최신으로 잘 이해를 한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예수님께 불을 받은 전도자 김정관 목사로 예수님의 도구입니다. 제 위의 설명과 위의 로마서 1장 17절이 완벽하게 같음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로마서는 교리가 아니라 오늘 내가 살아야 하는 행동 지침입니다. 이렇게 로마의 성도가 그 무시무시한 로마의 권력하에서 기죽지 말고 의연하게 사라고 바울을 통해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전하는 말씀이고 오늘 한국을 사는 모든 한국의 성도에게 주시는 위로와 승리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로마서 1장 17절을 보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왜 그렇고 무슨 의미입니까? 궁금하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가장 잘 표현이 된 성경이 모세 오경이며 이를 율법이라고 합니다. 율법은 이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과 온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주신 진정한 모든 나라 백성의 법입니다. 이 율법에 하나님의 의가 잘 나타나 있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하나님의 의가 따로 나타났는데 이 의는 선지자와 율법에 의해서 미리 알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다. 이 새로운 의는 바로 율법을 지키면서 오는 의가 아니라 믿음으로 오는 의인데 율법에 나타났다는 말은 율법서 즉 창세기 15장 6절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로 여긴 장면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박국서 2장 4절에 로마서 1장 17절과 같은 구절이 나오는데 역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이미 예언서를 통해서 율법서를 통해서 밝혀진 믿음으로 오는 하나님의 한 의가 이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구약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이었는데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가 죄인이기에 절대로 의롭다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 모두를 의인으로 만들어 주시고 싶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발로 입니다. 우리가 비록 죄인임에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발로입니다. 그런데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같은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믿음의 비밀이며 믿음의 법인 것입니다. 즉 죄인인 우리가 죄를 용서를 받고 죄가 없는 의인이 되는 길은 누군가가 우리 죄를 먼저 해결을 해 주어야 하는데 이 우리가 지은 죄의 댓가 즉 벌은 우리가 피를 흘리고 죽어야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율법이며 정의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죽일 수가 없는 하나님께서는 대신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고 죽게 하십니다. 이를 통해서 온 인류의 죄를 흠이 없으신 예수님께서 감당하시고 우리는 이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지은 죄를 예수님을 통해서 벌을 받게 하심으로 율법의 의가 이루어지고 이 예수를 믿는 우리도 의롭게 하심으로 결국은 하나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시며 예수를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 내용이 로마서 1-3장까지 잘 설명이 되어 있고 특히 로마서 3장 21-26절은 정확하게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데로 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도 역시 제가 영어를 한글로 풀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으로부터 한 의가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22.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의롭다 하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24.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의롭게 되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바로 벌하시지 않고 길이 참으시며 간과하신 것입니다.
26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의롭게 만드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모든 분이 로마서 1-3장까지 뻥뚫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1-3장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모두가 죄인이며 예수님을 통한 구원과 의롭게 됨을 말씀하십니다. 구원받은 우리가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서 1000년을 애를 써도 성공하지 못한 의를 믿음으로 얻는 우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며 아무리 어려움이 우리에게 닥쳐도 이길 힘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은 사람은 성경을 통해서 귀합니다. 욥이 그랬고 노아가 그랬습니다. 이런 의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니 얼마나 놀랍고 즐겁고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할렐루야!!
여기까지 로마서를 잘 이해하시고 우리가 오늘 어떻게 믿고 살아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힘을 내셔서 세상할 일을 조금 미루고 마음을 힘써 하나님께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서 그리고 힘을 다해서 사랑을 해야 합니다. 이제 4-5장으로 집중해서 가는 길이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진리의 세계로 당신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초대가 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한 순간에 있을 수가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로마서4-5장은 이런 믿음의 성격에 대해서 설명해 줍니다 2000년 중에 영적인 의미를 귀하신 바울 사도께서 이렇게 정확하게 상세하게 전하니 바울 사도는 지금에 와서도 법적으로 영적으로 최고봉이 아닐 수가 없는 분이십니다. 바울이 오면 모든 신학자, 목사, 신부, 교황이 그 발,아래 구부리고 배울 것입니다. 2000년이 지나도 바울의 생명력은 날로 강해지고 그 조회수가 하루에 약 30억에 이르니 이런 영광은 세계적인 가수가 평생을 애를 써도 얻지 못하는 조회수로 세월이 갈수록 바울의 영성은 더욱 알려지고 빛이 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바울 사도에게 로마서를 통해서 배우고 새 힘을 얻는 것입니다. 또 할렐루야 입니다. 바울 사도에게 감사를 늘 표해야 합니다. 천국에서 바울 사도께서 웃으십니다. 복이 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아브라함과 바울과 위대한 신앙인과 다 주님으로 인해서 한 가족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살피면 천국이 다 주목합니다. 수백억 수천억이 주목할지 모릅니다. 세상은 한 순간이고 꿈이며 정말로 별로 그렇게 마음을 둘 곳이 아닙니다. 빠져서 허우적 거리며 형제를 괴롭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사역에 대해서 이런 자부심이 있습니다.
로마서에 등장한 믿음의 본은 먼저 아브라함과 하박국입니다. 아브라함은 로마서 1장 17절과 로마서 4장 전체 그리고 5장에 등장하고 그 이름이 제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의 믿음은 로마서 1장 17절에 인용이 되었다고 소개가 되고 이를 구약의 하박국서 2장 4절을 보면서 이 구절이 그대로 로마서 1장 17절로 인용이 되었었음을 보면서 이해가 됩니다.먼저 아브라함의 믿음은 로마서, 창세기 12장 24장까지 그리고 야고보서를 보면서 동시에 이해를 해야 하니 공부가 조금 필요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면서 공부를 해야 그대로 따라서 믿게 되니 그렇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간 길을 살펴 보면서 우리도 그렇게 믿어야 하고 로마서 1장 17절은 반드시 제가 제시하는 여러 성경을 통해서 증거를 해야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창세기의 기록을 보면서 그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 명령으로 본토, 아비, 집을 떠나서 가난안 땅으로 갈 때 그의 나이는 75세입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낳을 때 그의 나이는 86세입니다. 그런데 이 사이에 하나님께서 두번째로 아브라함에게 오시는데 창세기 15장에 있는 장면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시는 세 약속을 믿으니 이를 보시고 의롭다 하십니다.믿음으로 의롭게 됨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로마서 1장 17절로 그리고 4장 1-16절로 기록이 되어 있고 로마서 5장 1절로 기록이 되어서 개신교의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주장의 근거가 됩니다. 제가 왜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냐 하면 우리의 하루하루의 믿음 생활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이렇게 길게 설명을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실로 500년의 신학적인 논쟁이 있는 분야로 반드시 누가 옳바른지 이제는 밝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약 75세부로터 175세에 이르는 약 100년의 아브라함의 신앙의 여정을 절대로 전체적으로 보면서 이 부분을 이해를 해야 우리의 하루하루의 믿음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이 반드시 의롭게 되는데 필요하기에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다시 100세가 되었을 무렵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라함을 찾아서 오시면서 그의 신앙을 보시는데 이는 로마서 4장 17-22절로 분명하게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이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그 믿음이 더욱 견고해졌음을 설명합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놀랍게도 개신교가 본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부분이 약 15년이 지났을 무렵 이렇게 발전이 됩니다. 믿음이 견고해진 아브라함을 다시 하나님께서 보시고 의롭다 하십니다. 두 번째입니다. 이부분은 반드시 창세기와 로마서를 동시에 보아야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여전히 살면서 믿음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또 이로부터 약 18-25년이 지난 그가 118-125세가 되었을 무렵 이삭의 번제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믿음으로 행동으로 순종합니다. 이 행하고 믿는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 하십니다. 이는 천주교 이신칭의의 기준이 됩니다. 근거가 됩니다. 둘 다 성경에 근거해서 설명을 하니 다 맞지만 다 부족합니다. 오직 믿음이냐 믿음 + 행위이나 논쟁이 이렇게 성경을 보면서 500년 동안 풀지 못하고 지속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의 논쟁과 달리 우리 신앙인은 예수님을 믿고 생명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오늘 지금 이순간 그리고 내일도 살아가야 합니다. 즉 믿음에 합당한 삶이 이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생을 별 흠이 없이 믿음으로 행동으로 잘 믿는 아브라함은 100년의 믿음 생활이 끝이 나고 천국에 가십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반드시 만날 분이십니다. 이분께서 천국에서 자신의 개인의 믿음과 성경의 기록을 두고 두 교회가 분리가 되고 교리로 500년을 다투면서 서로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얼마나 답답해 할지 모를 일입니다. 주님도 그분의 몸인 교회가 분열이 될 때 찢어지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그분의 도구로서 제가 천주교인 전처와 7년을 살다가 제 의도와 달리 혜어지게 될 때 저는 4년의 우울과 불면의 지옥을 보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 마음이 순바닥만 한데 오직 가장 자리 조금만 남아있고 다 찢어진 모습을 보게 하시고 제가 너무나 아프고 아팠는데 주님께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분리시 느끼시는 아픔으로 이해하게 하셨으니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차근 차근 성경을 가르쳐 주심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성경이 정확하게 기록이 된 것을 알게 되는 것은 기적이며 제 능력이 조금도 아님을 고백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고 알게 해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제 노력과 수고가 없었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서 교회의 나아갈 길입니다. 천주교나 개신교가 다 같이 이 진리되로 나아가야 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어느 한 부분을 보면서 의롭게 되는 교리를 논쟁하는 시대를 접고 이렇게 100년의 세월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한 신앙인을 의롭게 하시는 과정을 잘 살펴서 우리도 이렇게 신앙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즉 100년에 걸친 아브라함의 신앙의 전체를 보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세번 의롭게 하신 부분을 보아야 진정힌 의롭게 되는 길도 이해가 되고 그리고 논쟁의 대상이 되는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를 진실로 올바로 이해해서 올바른 신앙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서두에서 로마서 1장 17절을 본문을 두고서 이미 다 내용을 설명을 드린 부분입니다. 다시 반복을 하면 아브라함의 신앙은 세월이 가도 약해지지 않고 도리어 강해졌으며 종국에는 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행동하는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세 번의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냐 하면 우리도 이와 같이 로마서 1장 17절과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 믿는 믿음 생활을 행야 아브라함과 같이 의로움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 믿다가 나중에 하나님께서 다시 반드시 오시는데 오셨을 때 완전히 타락해서 악인과 같이 되었을 경우는 앞의 의가 사라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사라지는 것은 이미 그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의 기준에서도 악하고 하나님의 기준에서도 완벽하게 악하게 되었는데 이런 악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절대로 의롭다 하실 이유도 하나님의 성격도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스겔서 18장을 보시면 의인이 악을 행하면 이전에 행하던 의는 모두 사라지고 그 악으로 죽는다고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논쟁의 여지가 없이 밝혀 놓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죄를 지을 수가 있는 존재 이기에 죄를 멀리하고 죄를 지으면 반드시 회개를 해서 죄 문제를 해결을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굳게 믿고 변치 않고 신앙 생활을 해야 되고 그 믿음으로 오늘도 분명하게 삶을 살아야 됨을 이해하셨으라 믿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개신교의 주장을 이렇게 확장을 시켜놓았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의 믿음 + 행위도 어느 정도 맞으나 로마서 1장 17절 본문은 분명하게 의인이 되려면 반드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갖고 그 믿음이 일시적이거나 왔다 갔다 하거나 하지 말고 늘 한결같고 더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그리고 그 믿음을 갖고 믿음에 합당한 삶을 오늘도 내일도 굳굳하게 살아야 의롭게 된다고 설명하는 것입니다.이것이 로마서 1장 17절의 설명이고 이는 개신교의 주장에다가 100세 때의 믿음과 천주교가 주장하는 118-125세때의 아브라함의 신앙을 모두 보면서 내려지는 결론입니다. 이제 이신칭의을 온 지구상에서 개신교 신학자보다 천주교 신학자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셨습니다. 500년간 수백 수천의 학자가 풀지 못하는 문제를 하나님께서 이렇게 푸십니다. 다시 정리해서 설명을 드립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틀림없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롬 1:17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이 의는 믿음에 의한 의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는 믿음입니다. 의인은 예수님에 대한 이런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성실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은 아브라함의 75-85세 무렵, 100세 무렵, 118-125세 무렵의 세번의 하나님의 방문과 의롭다 하심을 보면서 그렇게 믿어야 하는 것을 설명한 표현입니다. 우리도 이제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이제 믿어서 의롭게 되신 이는 수십년 후에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눈에 그렇게 보여야 합니다. 70년 전에 어려울 때 모두가 가난할 때 잘 믿던 우리가 물질이 넘치니 물질을 얻지 못한 형제와 자매가 자살하고 집도 땅도 없이 소망이 없이 사는데 나 홀로 수십억 아파트에 수억 연봉에 억대 차량에 다양한 집을 여기 저기 갖고도 외면하며 살 때 내 안에 성령과 나를 지켜보시는 주님은 누구야 너는 어떻게 그렇게 믿음이 변치 않고 잘 믿냐 너는 참으로 의롭구나 라고 저는 절대로 절대로 하지 않고 이 악하고 추한 놈아 네가 너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건만 너는 내 명령도 잊고 내 은혜도 잊고 한국에 그렇게 어려운 집도 땅도 없이 소망없는 자가 그렇게 많은데 어떻게 그렇게 악하게 사냐? 너는 진실로 내가 2000년 전에 만난 부자 청년이다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 가 바늘로 들어가는 것이 네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진실로 쉬우리라 이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 말은 곧 한국의 약 1000개의 대형교회 목사 대부분에게 해당이 되고 한국의 부자 크리스천 모두에게 하시는 말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저는 예수님의 도구입니다. 이렇게 불꽃과 같이 우리를 늘 지켜보시는 예수님의 의롭다 인정이 세월이 가도 변치 않아야 하고 죽을 때 천국의 영접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곧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잘 살아야 함으로 연결이 됩니다. 믿음따라 삶 따로는 절대로 의롭다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이신칭의이고 로마서 1장 17절의 헬라어 원본과 NIV의 영어 성경의 진짜 내용입니다. 한글 번역은 이렇게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제 더 힘을 내어서 5-7장으로 가 봅시다. 끝까지 읽어 주시길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로마서 5-7장은 믿는 사람의 자유와 죽음에 대한 설명입니다. 율법과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가 설명이 되어 있고 우리는 예수님과의 세례시에 죽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합하여 죽었으므로 죄와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로 반응해서 이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루하루 이 시간을 살아야 하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각종 유혹이 있고 또 우리의 욕구가 지나칠 때가 있는데 이는 다 죄와 연결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면 성령께서 죄에 대한 분별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죄를 분별하자면 반드시 죄가 무엇인지 밝혀주는 율법을 잘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외쳤고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로 반응했고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철저하게 받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오늘도 내일도 도전이 있으니 그 도전이 죄인지 아닌지 분별을 가장 잘하게 해주는 우리 발에 빛이요 어둠운 세상을 비추는 등인 말씀과 율법에 대해서 잘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대에 모두가 걸려서 넘어지는 집과 땅의 문제를 성경의 율법을 보면서 분석을 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부를 늘리는 수단으로 집과 땅을 사고 팔고 합니다. 자본주의 법 안에서 행하면 누구도 이에 대해서 뭐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대부분의 한국에 사는 크리스천이나 불신자가 집을 사고 팔고 땅을 사고 팔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집과 땅을 사고 팔면서 부를 축척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집이나 땅의 부동산은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으로 등기를 해서 내가 등기부 등본을 가졌다고 수만평의 땅이 내 소유가 되는 것과 같으나 절대로 땅은 창조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분명하게 율법으로 정했고 우리가 지구의 창조를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인정한다면 땅은 틀림없이 국가의 소유 이전에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드신 땅을 하나님의 소유로 정해놓은 율법이 절대적으로 올바른 것입니다. 이를 믿지 않는 개신교인은 벌써 하나님의 소유를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그 다음에 쉬지 않고 죄에 죄를 더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주인이 그 주인의 땅을 사고 파는 것을 금하셨고 만약에 땅을 팔았으면 그 소유주에게 언제든지 요구에 따라서 돌려 주어야 하고 50년이 되면 본 주인에게 돌려 주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왜 이렇게 땅과 집에 대해서 엄하게 하나님께서 규정을 해서 개인의 마음대로 사고 팔지도 소유도 하지 못하게 금하셨습니까? 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계도 하나님께서 정하심으로 절대로 타국의 영토를 함부로 범치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의 경계를 표시하는 경계석도 옮기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함부로 옮기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남의 소유를 탐내서서 이런 저런 수작이 다 죄에 해당합니다. 이는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이 집과 땅을 갖고 살아야 되는 것을 아시며 한 개인이나 국가가 땅을 과도하게 가져서 땅도 집도 없는 인간을 한 명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집과 땅이 없이 이 세상에 와서 평생을 월세로 전세로 임대로 살다가 이리 저리 옮기고 살면 절대로 인간은 이 땅에서 자유도 없고 행복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사랑하심에는 이런 구체적인 사랑의 표현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홀로 집과 땅을 과도하게 많이 가지고 집도 땅도 없는 사람을 만드는 모든 사람의 토지와 집은 다 멸망해서 황량하게 되리가 하셨고 실제로 그렇게 됩니다.
사람이 저지르는 악한 일
사 5:8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한국민이 한국이란 땅에 살면서 가장 먼저 해야 되는 사랑의 법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이웃 사랑의 법이 바로 토지와 집에 대한 이웃에 대한 배려입니다. 집과 땅은 하나님께서 보낸 모든 사람이 이 땅에서 사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집과 땅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낸 인간에 대한 공격이며 생명에 대한 침해이며 행복을 박탈하는 가장 악랄한 범죄 중의 하나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오천만이 가용국토를 개인당 평수로 나누면 약 한 사람이 800평 정도 소유합니다. 3명 가족이면 누구나 약 2400평의 땅을 소유하며 집도 짓고 밭도 일구고 모든 한국이 5천만 명이 행복하게 아무런 어려움도 없이 한 명도 빠짐없이 잘 살수가 있습니다. 집문제가 100% 해결이 되며 땅 문제도 100% 해결이 되고 모든 남과 녀가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가족이 함께 살며 노인도 집에 모시고 일생을 그 자녀가 넉넉하게 효를 행할 수가 있으니 모든 한국민이 이렇게 사라고 한국의 산과 들과 호수와 강과 바다를 모든 한국인에게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도전해서 약 국민의 1%인 50만 명이 가용국토 약 50%를 독점해서 3인 가구당 약 51,000평을 소유하고 있고 나머지 가용국토 약 50%는 국민 1600만 명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땅이 한 평도 없는 국민이 총 국민의 약 70%에 달하고 이는 극심한 경쟁을 유발하고 국민 약 3,500만 명이 자신의 땅이 없으니 타인의 땅에 살며 임대료를 내면서 불안하게 하루하루 삽니다. 집이 없는 국민은 약 48-50%가 되니 아무리 복지를 외쳐도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절대로 고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법대로 모든 성도가 살 때 이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세상의 사람이 주변을 무시하고 무정하게 살며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고 주변을 일생을 살아도 땅도 한 평도 갖지 못하고 집도 갖지 못하고 불행하게 살다가 죽게 합니까? 목사나 신부나 성도는 이런 하나님의 뜻을 내 뜻으로 받들면서 과도한 집과 땅의 소유를 절대로 금하고 이웃을 배려해서 내가 집과 땅이 넉넉하면 바로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율법을 모르면 이런 자본주의 논리를 하나님의 뜻으로 보고서 악을 행하다가 소망도 없이 지옥에 가게 되는데 얼마나 어리석고 어리석은 것입니까? 미국도 유럽도 이런 자본주의 위주의 예수를 믿다가 다 몰락하고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대열에 우리는 동참하지 말고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자유하고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해서는 이런 토지와 집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는 죽은 자로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집과 토지에 대한 모든 과욕을 접어야 하는 것입니다. 간음에 대해서도 그렇고 도적질에 대해서도 그렇고 거짓 증거에 대해서도 그렇게 반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와 율법으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로마서 5-7장은 이런 우리가 죽었음을 믿고 죽어야 누리는 자유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이렇게 죄와 율법에 대해서 죽은 상태에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에 대한 답이 있으니 우리가 오늘도 살아가야 할 믿음의 원칙입니다. 무엇을 합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나에 대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예수님을 믿고 굳게 믿고 변함없이 믿고 오늘도 하루하루 사는 비결입니다. 로마서 7장 6절은 이에 대해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올바른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삶으로 로마서 7장까지 뚫었습니다. 이제 교리는 8장 한 장이 남았고 9-11장은 이스라엘 문제이고 12-16장은 이렇게 성령을 받는 삶에 대한 구체적인 예시로 세상에 대해서 나라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그리고 믿는 형제와 주변의 이웃에 대한 삶의 모습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굳게 믿고 변치 않고 믿으면서 하루하루 그 믿음에 근거한 삶을 살다 보면 즉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율법에 대해서 죽고 죄에 대해서 죽은 자로 살다보면 놀라운 이런 삶의 결과가 또 로마서에 잘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 구절을 뽑아서 보여 드립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이스라엘은 무려 약 3500년 동안 모세 오경의 율법을 잘 지켜서 의롭게 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멸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과 약속을 이 민족이 잘 지키지 않아서 멸망한 것입니다. 그 약속이 바로 구약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주시면서 잘 지키면 복을 어기면 저주를 주겠다고 하셨고 모두가 지키지 않자 약속대로 저주를 받아서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새롭게 계약을 맺었으니 새 언약 신약이며 예수님을 믿으므로 죄도 용서받고 성령도 받고 그래서 이런 우리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바로 앞의 세 구절이니 율법의 완성과 굳게 세움과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로마서의 모습이며 성도의 의무이며 삼위 일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입니다. 이를 이미 에스겔을 통해서 너무나 정확하게 예언하셨습니다.
겔 36: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우리가 예수님을 굳게 믿고 그 믿음에 근거한 삶을 순간 순간 즉 매일 매일 사는 것 즉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섬기는 일이 이렇게 놀랍고 놀라운 결과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은 지상 최고의 공정과 공평과 정의로운 법으로 이 법대로 되는 세상이 예수님께서 진실로 원한 세상이며 우리를 통해서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대해서 너무나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심지어 죽어도 천국에 성도가 들어가지 못하는 예도 무섭게 들어 주셨습니다. 너무나 무서운 말씀입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우리가 신실하게 예수님을 굳게 믿고 그에 합당한 삶을 오늘도 내일도 살고자 할 때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절대로 받아야 하고 이렇게 성령께서 우리가 순종할 때 우리가 절대로 할 수가 없고 이스라엘이 스스로 3,500년을 고집으로 지키고자 하는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룰 수가 있으니 얼마나 기적적이며 놀라운 일이며 영광스러운 승리입니까? 이 놀라운 승리의 소식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믿고서 변화를 받아서 로마서를 통해서 전하고자 했던 복음의 핵심입니다. 자신의 20년의 전도 경험에서 이런 율법의 완성과 굳게 세움과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다 이룸을 체험하고 기록한 것입니다. 과거에 그렇게 예수님도 모르고 성령도 모르면서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다 지켜서 의롭게 되고자 했지만 실패하고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죄와 율법에 대해서 죽은 듯이 하면서도 복음을 전하고 선하게 살다 보니 꿈에도 과거에 꾸지 못한 율법을 완성하는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이 놀라운 승리의 고백이 바로 로마서로 환란과 로마의 폭정과 박해에도 굳굳하게 견딜 목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8장에서 이를 죄와 사망의 법을 생명의 성령의 법이 이겼다고 외쳤고 어떤 환란이 와도 성도를 지키는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을 그리고 우리가 부르심을 받아서 때론 실패하고 낙담하고 우리가 원하는 일이 되지 않음에도 이런 실패와 낙담과 모든 과정을 다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심을 자신의 믿음을 통해서 말씀하시니 바로 협력해서 선을 이룸입니다. 저는 이를 합력성선이라고 줄여서 설명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루하루 세상에서 살 때 우리는 비로소 이 땅에 율법대로 통치하는 하나님의 나라을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반드시 이런 성도들이 모여서 율법이 지켜지고 이런 율법이 지켜짐으로 질서가 있으니 정의로운 세상이 되고 이런 세상에 평화가 있고 이렇게 질서와 평화가 있는 곳에 사람 사는 기쁨이 넘치니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 주께서 마태복음 5장 17-20절로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을 하신 후에 이를 우리가 그대로 지키기 어려움을 아시니 또 자신을 제물로 바쳐서 우리 죄를 없애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심면서 성령의 인도로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바울 사도는 로마서 14장 17절에서 정확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제 로마서 1장부터 14장까지 확 뚫리게 되었고 우리의 신실한 삶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이렇게 귀한 결실로 이어지게 됩니다. 여기까지도 깁니다.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9-11장의 유대인의 미래에 대해서 복음 전파에 대해서 그리고 12-16장의 구체적인 사랑의 표시의 방법과 성령의 인도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서 보시기 바랍니다. 다 사랑하라는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며 국가나 사회나 교회에서 성도의 사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 날 전에 시작한 글을 약 1주일에 걸쳐서 씁니다. 조금씩 조금씩 썼습니다. 이 시대는 영적인 전투를 성령의 인도로 굳게 해야 되는 시기입니다. 자유와 물질이 넘치는 세상에서 이에 함몰되지 마시고 성경 말씀을 붙잡고 순간 순간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아야 하는 오늘이며 내일입니다. 부디 모두가 승리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