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과부 옷을 다시 입다. -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1]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본 절에서 의문 하나가 풀린다. 다말이 시아버지를 유혹하여 들인 곳은 자기의 집이 아니다. 그럼 왜 남의 집을 빌려서까지 씨를 얻으려 했을까?
그를 흠모하고 사모했다면 어찌 먼저 일어나 바람처럼 사라진다는 말인가? '떠나가서'라는 의미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할 때 사용되어지는 의지, 결단의 표현이다.
다말이 음녀라서,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권세를 얻기 위해 ......
2] 그 너울을 벗고
집으로 돌아온 다말은 그 면박을 벗어버렸다. 단 한 번의 씨를 얻기 위해 자신을 감싼 면박을 미련 없이 버린 여자다.
그녀는 왜 면박을 사용했으며, 누구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변장했단 말인가? 다말은 두 얼굴의 여자인가?
3]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여기에서 다말을 평가해야 한다. 집으로 돌아온 다말은 제일 먼저 너울을 벗어 버리고 14절에서 벗었던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었다. 그러므로 다말은 항상 '과부의 의복'을 입고 살아온 여자이다.
과부는 어떤 사람인가? 첫 남편만을 생각하고, 의지하고, 사모하며, 사랑하며 일생을 사는 여자, 육적 욕망을 이겨내기 위해 과부의 옷을 입고 육신의 아픔을 견디어 내는 여자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과부는 성도를 상징한다.
* 레 22: 13 - 만일 그가 과부가 되든지 이혼을 당하든지 자식이 없이 그의 친정에 돌아와서 젊었을 때와 같으면 그는 그의 아버지 몫의 음식을 먹을 것이나 일반인은 먹지 못할 것이니라.
* 신 10: 18 -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 신 16: 11, 14 –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 신 26: 12 -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 왕상 17: 9 -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 시 68: 5 -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20. 찾지 못한 여인 -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1]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유다는 축제 분위기에 휩쓸려 저지른 자신의 행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질까 부끄러워하여, 이런 일에 별로 무감각한 가나안 친구를 통해 화대를 갚고 약조물을 찾게 했을 것이다.
친구를 보낼 때에는 상대방을 알아볼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인적 사항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런대 창녀에 대한 일언반구의 설명이 없다. 유다는 창녀에 대하여 지금까지 아는 것이 없다. 무관심일까? 그것보다도 이 일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기 때문에 모를 수밖에 없다.
2] 염소 새끼를 보내고
유다는 창녀와 약조한 염소 새끼를 보냄으로 자기의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3]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유다는 어제 밤에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신비의 여자에 대하여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단지 그동안 사용하였던 개인의 사물이라 세 가지 약조물을 찾으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약조물을 찾으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23절의 내용으로 볼 때 별로 재산적 가치가 없어 보인다.
4]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아둘람 사람은 유다가 알려준 대로 여인을 찾으려 했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말은 동틀 무렵 그 집에서 나와 버렸기 때문에 빈집이였으므로 어떤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21. 창녀가 없다. -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창녀(히, 케데솨) - '거룩한' 혹은 '봉헌하다'란 뜻을 가진 '카다쉬'에서 파생된 말로 15절에 나타난 창녀(조나)라는 말과는 그 개념이 다르다.
즉 당시 가나안 땅에는 '조나'와 '케데솨'라고 불리는 두 종류의 창녀들이 있었다. '조나'는 통상적인 일반 창녀들을 가리키는 반면, '케데솨'는 우상 숭배를 위하여 '거룩히 구별된 여자'란 뜻이다.
생식력(生殖力)을 주관한다고 생각한 당시 가나안 땅의 여신 아스다롯(Astaroth)을 섬기기 위해 헌신된 자를 가리켰다. 이들은 음란 행위를 통하여 여신을 섬기는 성창녀(聖娼女)로서 당시 가나안 땅의 음란한 풍조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Pulpit).
* 신 23: 18 - 창기가 번 돈과 개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1] 그가 그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아둘람 사람은 유다로부터 들은 대로 창녀를 찾으려고 하였으나 찾지 못했다.
2]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더욱 답답한 일은 여기는 창녀가 없다는 사실이다.
22. 친구의 보고 –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1]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아둘람 친구는 유다를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하였지만 창녀를 찾지 못하고, 약조물도 되돌려 받지 못하고 유다에게로 돌아왔다.
2]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당사자를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신변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3] 그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참으로 답답한 말은 그곳 사람들이 여기는 창녀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들은 유다는 충격을 받았어야 옳다.
본인은 분명히 동침하였는데 하룻밤 사이에 창녀는 없어져 버렸다. 그녀가 누구이기에 오리무중이 되었단 말인가?
23. 가지게 두라. -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1]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유다는 약조물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염소를 돌보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몸값에 대한 보수로 생각하고 그로 가지도록 찾지 말도록 하였다.
2]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유다의 이 말은 죄를 범한 사실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소문으로 인해 훼손될지도 모를 자신의 위신과 명예를 더 두려워한 위선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진실한 성도는 사람의 눈보다 하나님의 눈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
* 마 10: 28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3]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약속한 바를 내가 이행한 것에 대해 그대가 증인이다'는 의미이다. 즉 이는 자기의 할 바를 다했다는 뜻으로 창녀와의 상거래만을 생각하는 유다의 도덕적 차원을 보여 준다.
24. 그를 불사르라. -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1] 석 달쯤 후에
다말이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음이 확실하여진 때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때가 되면 임신 여부가 확실히 드러난다.
2]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을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이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유다로부터 상급(댓가)을 바라고 다말에 대한 소식을 알려 주었다. '일러 말하되'란 표현은 사실 유무를 확인하여 확실한 증거를 보이며 고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다말이 면박하고 유다를 유혹하여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간 사실을 먼저 확인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루 동안의 행적을 소상하게 알고 있는 자의 소행이다.
(2) 그 행음함을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그 날 이후로는 다시 과부의 옷을 입고 평상시와 동일하게 살았으므로 특별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유다와 관계를 맺은 날의 사건으로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3]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유다는 사실을 지적당했다. 그렇다면 다말을 통하여 사실유무를 확인하여야 한다. 그런대 이런 확인 절차 없이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지시한다. 속된 말로 제 발이 저린 것이다.
사실유무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한다면 자신의 범법 행위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힘없는 다말을 정죄해 버린다.
* 레 20: 10 -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유다는 다말만 불사를 것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불살라야 한다. 그런대 다말만 불살라버리면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입막음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 약 4: 4 -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유다는 왜 다말을 괴롭히는 자가 되었을까? 왜 모든 책임을 다말에게 전가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