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1: 21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 골 1: 22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골 1: 21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
앞에서는 예수의 희생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것의 우주적 의미에 대해서 말했다면 본문에서부터는 그것이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 개개인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본문은 먼저 골로새 교인들이 하나님과 화해하기 이전의 모습에 대해서 언급하는 부분이다.
화목의 일차적 대상은 사람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사역은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예수를 믿기 전, 구원받기 전에 우리의 악한 행실들로 인하여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었고 마음과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어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좋아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순종하려 하지도 않았다.
죄는 사람과 하나님의 사이를 분리시켰고 사람과 하나님을 원수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하나님 사이는 화목케 되었다.
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예전 골로새 교인들의 실존은 '멀리 떠나'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하나님과 거리가 먼 것으로 규정된다.
그 멀어진 거리의 공간에는 악한 행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이것이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인간의 실존적 모습이다.
여기서 '악한 행실'과 '마음으로 원수 됨'의 순서에 유의해야 한다. 즉 악한 행실의 결과로 하나님과 원수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 됨으로 해서 겉으로 드러난 결과가 '악한 행실'이었다는 것이다(Vaughan).
'멀리 떠나'란 말은 엡 2: 12의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는 문구의 '밖의 사람'이란 말과 같은 말이다.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천국의 문외한(門外漢) 곧, 천국에 들어갈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된 이유는 오직 인간 편에서 죄를 범한 것을 유일의 원인으로 하는 바, 이 '원수'된 형편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사람은 첫 조상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타락하였다.
* 롬 5: 12 -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2) 때문에 아주 부패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되었다.
* 롬 3: 10-18 - 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시 14: 1 이하, 53: 1 이하)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시 5: 9)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시 140: 3)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시 10: 7)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사 59: 7 이하).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 엡 2: 2-3 -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헬, 세대)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3)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이 세상주의를 가지니, 이것 역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이다.
* 약 4: 4 -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이 점에 있어서 주의할 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震努)와 인간의 분노(粉怒)가 서로 다른 점이다.
인간의 분노는 주로 사악(師惡)한 성품의 발작일 수 있는 반면에, 하나님의 진노는 그의 공의(公義)의 나타남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만 미워하고 그 영혼은 구원하시기 원하신다.
사 59: 1-2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죄인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구원 받기를 고대하시는 그의 사랑도 보여준다.
2]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우리 성경은 원문대로의 의미를 드러내지 못한다. 헬라 원문을 직역하면, '마음으로는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원수 되었던 너희'라고 번역함이 적합하다.
이 번역이 보여준 대로 인간은 먼저 '마음'으로 하나님을 반역하고, 또 그 반역은 '악한 행실'로 나타난다.
* 엡 4: 18 -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마음'은 이 반역의 근거지요, '악한 행실'은 그것의 외부적 표현에 불과하다(Van Leeuwen, Colosse 1:21).
언제나 악한 행실들은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먼저 깨끗이 하고 지키기 전에는 선행을 기대할 수 없다.
* 마 7: 16-19 -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 마 15: 19 -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그러나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다(렘 17: 9). '성을 쳐서 빼앗는 것'보다 통제(統制)하기 어려운 것이 마음이다(잠 16: 32).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악한 마음의 포로(浦盧)가 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제 마음을 깨끗케 하거나 지킬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중생(重生)시켜 새 마음을 소유케 하시는 것이다.
* 렘 24: 7 - 내가 여호와인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 겔 36: 26 -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돌)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고기) 줄 것이며
* 요 1: 13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 요 3: 3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혹 위에서)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롬 7: 6 -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 고후 5: 16-17 -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골 1: 22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
'이제는'이라는 전환 문구로 인도되고 있는 본 절은 '하나님과의 원수 됨'에서 '하나님과의 화해'로의 변화를 말한다.
바울은 이 전환의 중심에 예수의 피 흘림이 있었음을 이미 말한 바 있다(20절).
1]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본문에서는 '피 흘림'을 '육체의 죽음'이라는 개념으로 바꾸어 설명하고 있다.
바울이 여기에서 '육체의 죽음'을 언급하는 것은 당시 골로새 교회에 유입되거나 주변에 유포(流布)되었던 이단적 사상들 가운데 영지주의자들이 하나님과의 화목은 육체를 입은 존재가 아니라 천사에 비견되는 영적 존재들에 의해서만 매개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을 겨냥해서 그리스도의 육체성을 분명하게 언급함으로써 그들의 사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Bruce).
바울은 본문을 통해 골로새 교인들에게 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음을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그런 이단사상에 말려들지 않도록 권면하고 있다(Martin).
2]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예수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는 화해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을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하려는 것이다.
물론 그 모습은 실제적인 변화라기보다는 그렇게 인정해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화해의 실질적 효력 발생으로 하나님의 '칭의' 선언이 주어지는 것이다.
또한 이것이 현재적인 것이냐? 미래적인 것이냐? 하는 것은 양자택일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재적이나 미래의 완성을 지향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Bruce).
화목의 목적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 곧 예정과 선택의 목적이요, 구원의 목적이다.
에베소서 1: 4-5에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말씀했다.
이 목적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성취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요 19: 30). 우리가 예수를 믿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완전한 십자가 사역의 효과가 우리에게 적용된다.
그래서 믿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간주된다. 이것을 법적인 의(義)라고 말한다.
믿는 자는 법적으로 의인이 되었고 완전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구원 목표는 달성되었다.
의롭다하심을 얻은 자들은 장차 다 영화롭게 변화될 것이다.
그 영화는 나의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고 나의 행위의 노력으로 보태어져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되는 것이며 오직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것이다.
물론 법적 구원을 받은 자들은 이제는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말고 헛된 세상의 것들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천국의 영광스런 백성답게 경건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이제는 죄의 도구가 아니고 의의 도구로 세상의 종이 아니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