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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강론 서문
이 강론이 나를 통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설명을 시도한다 하더라도, 그 일에 비해 매우 미흡한 나의 의견만을 더듬거릴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 나에게 들었던 느낌에 대해서는 독자들에게 말할 수 있다.
이 말씀이 있기 몇 달 전에 나는 밤에 잠을 자고 있는 동안, 내 안에서 말하는 분명한 음성을 듣곤 했다. 나는 꿈꾸고 있다고 생각 했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그 음성이 내 자신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 말할 수 없지만, 그것은 실제로 들린 음성이었다. 참 놀라웠던 점은 나는 이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동시에 그것이 말하는 바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은 후, 때가 차면 나를 통해 특별한 강론이 주어질 것이라고 음성이 말했다. 그 음성은 그 강론에 참석할 사람들을 모든 선정하고 나서 정해진 날에 그 강론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 음성은 그 강론이 연달아 지속되는 기간 동안 아무도 들어와서는 안 되며, 그 강론들은 잊혀지지 않도록 속기로 기록 되어야만 하고 유선 녹음기로 녹음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첫 강론이 시작되는 밤이 되었을 때, 나는 강당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1000 Volt나 되는 전기가 나를 관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는 상당히 염려했다. 엄청난 힘과 나를 훌쩍 넘어서는 높은 의식을 느꼈지만, 의식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 의식과 나는 설명 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방식으로 함께 연결된 듯했다.
그때 나는 내 목소리를 들었지만, 그 목소리는 큰 위엄을 갖고 말했으며, 절대적인 앎을 지닌 존재의 음성으로서 나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나는 나를 통해 말해지는 것들을 매우 주의 깊게 들었으며, 전에 가져본 적 없던 명확성을 갖고 그 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강론이 진행되는 동안 (사용되었던) 언어는 전체 시간 동안 단 한번의 흠도 없었고, 단 한번의 망설임도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나는 놀랐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의 두뇌도 그런 일을 따라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련의 강론들은 일주일에 1번씩 14주 동안 반복되었다.
녹음기에 녹음된 강론을 듣고 나서야 나는 뭔가 기묘하고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경이로웠으며, 나는 아직도 그 놀라운 일에 대해 경이로워 한다. 그때 말해졌던 내용들을 당신도 이제 책으로써 직접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특권을 받았던 사람들이 느꼈던 위로와 만족을 당신도 느낄 수 있다면, 그 말들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증언했던 소감들 중 일부가 다음 페이지에 실려 있다.
맥도날드 베인
맥도날드 베인 박사를 통해 이루어진 강론
Miss Bagot-Smith가 쓰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변모의 경험
1948년 봄에 남아프리카 요한네스버그에 있는 ‘에스콤 하우스’라는 곳에서 강론이 연달아 이루어졌다. 그 강론을 들을 수 있도록 선정된 사람들에게 그 강론은 매우 독특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그 강론을 듣게 된 사람들은 전과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눈에서 베일이 찢겨지는 듯 했으며, 우리는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주의 참된 현존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강렬한 현실이어서 그 현존은 결코 희미해지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렬하고 더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때 이후로는 언제나 우리 마음을 영적인 것들로 드높일 때, 어느 순간에 갑자기 주께서 우리 옆에 와 있다는 것과, 아버지의 힘은 내면에 있으며,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강론들을 그토록 놀랍게 만든 것은 실제로 (그가 하는) 말이 아니라, 말씀이 전해지는 방식이었다. 그 말씀들은 우리 기억 속에서 영원히 울리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진리가 말없이 우리 앞에 드러났다. 어떠한 묘사도 주(主)의 현존과, 그분을 통한 아버지의 -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세계의 그 어떤 것 보다 분명한 증거 - 사랑에서 오는 엄청난 힘을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강의에 참석 했을 때, 맥도날드 베인 박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로 친절하고 잘 웃는 사람이었다. 잠시 침묵 속에 있다가, 갑자기 그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듯 했다. 그리고 갑자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짧고 날카로운 숨을 들이쉼과 동시에, 바로 그 몸에, 그러나 완전히 다르게, 주의 현존이 있었다. 그 강사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고 몇 년 동안 존경했던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다른 누군가가 되어 서 있었다. 그 변화는 너무나 놀라워서 우리의 마비된 감각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는 그것이 현실임을 알았다. 우리 앞에 있는 그 사람은 본래의 그보다 현저하게, 훨씬 더 크게 보였다. 말로는 그 엄청나게 놀라운 진리를 결코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다. 우리는 일상의 감각을 넘어서는 그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우리 앞에 있던 그 자리에는 위엄 있는 모습을 하고, 근엄하고 권위 있으며, 빛나는 눈과 능력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한 사람이 있었다. 그분은 우리 앞에 똑바로 서 있었으며, 깊은 장엄함으로써 그분께서 주로 쓰시는 말들로 이렇게 인사를 하셨다.
“나의 평화를 너희에게 전한다.”
그분께서가 말씀을 계속 하심에 따라 우리는 더욱 이해하게 되었고, 인사말은 “나의 평화와 사랑을 너희에게 전한다.”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나의 평화와 나의 축복을 너희에게 전한다.” 라고 바뀌었다. 그는 오른손의 두 손가락을 들어 올리시면서 축복을 하셨는데, 미천한 우리의 가슴은 그 장엄한 모습에 고개를 숙였다.
고요함이 강당 안에 가득 퍼졌다. 그 고요함은 따뜻한 치유의 기운이 우리 몸을 통과해서 흐르는 듯 했고, 파르르 떨리는 그 기운이 흐르면서 치유가 함께 일어났다.
강론을 한 차례 두 차례 계속해서 듣는 가운데, 우리의 진동이 높아지고 이해가 명확해지는 것과, 우리가 일상의 삶을 넘어선 차원으로 들어올려지고 있음을 느꼈다. 우리의 이해에 새벽이 찾아오면서, 우리는 지금껏 들어본 그 어떤 것 보다 위대한 진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놀랍게도, (그 말씀들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제야 우리는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갑자기 번개 같은 진리가 우리의 마음에서 번쩍였다. 마침내 주께서 그토록 오래 전에 처음 말씀하셨던 것의 힘을 알았다. 그리고 그분의 진리는 우리에게 실재가 되었으며, 우리 존재로 녹아들었으며,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황금 같은 고요 속에서 그 진리를 간직할 것이다.
모든 단어가 유유하게,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마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깊은 침묵의 연못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보석 혹은 물방울 같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각각의 문장은 모두 완벽했으며, 그는 생각하기 위해 멈추는 일 없이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점차 우리는 참석한 사람들이 우리 말고 더 있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그러나 놀라지 않고 알게 되었다. 우리 가운데에는 먼저 세상을 떠나간 우리가 사랑했던 이들이 있었으며, 그들 너머에 원이 층층이 계속 넓어지면서 거기에는 의식이 보다 높은 수천의 존재가 늘어서 있었다.
주께서는 모두를 대상으로 말하시곤 했으나, 생명의 깊은 의미에 관해서는 각자가 이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씀하시곤 했다. 육체를 갖고 있는 우리를 “너희 필멸의 의식”이라고 부르셨으나, 최근에 몸을 떠나 지각의 폭이 넓어져 보다 영적이고, 우아하고, 무한히 자유로운 기쁨의 차원을 아는 이들에게는 그분의 눈을 들어 직접 말하셨다. 그리고 주께서는 가장 높은 완벽함에 가까이 이른 존재들에게 말씀하시는 동안 우리는 경외심에 가득 차 그 말씀을 들었다. 우리보다 훨씬 의식이 높은 이들부터 우리보다 훨씬 의식이 낮은 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의 존재들이 늘어서 있음을 우리는 느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주에게 묶여 있었고, 아무도 움직이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우리의 육체가 우리 감각에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된 듯 했다. 우리의 몸은 그저 멈춰 있었으며 마치 접착제로 꼼짝 못하게 붙여진 듯 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주께서는 우리를 차례대로 축복 하시곤 했다. 먼저 필멸의 의식인 우리를, 그리고 우리보다 훨씬 위에 있는 진보된 영들에게. 그분의 음성은 그들의 확대된 지각력을 느끼면서 친밀감이 묻어났다. 주께서는 우리에게 뿌리 깊은 분리 의식을 느끼셨고, 그들에게는 위안과 기쁨인 통일성을 감지하셨다. 그때 우리 자신이 얼마나 작게 느껴졌는지! 얼마나 하찮게 느껴졌는지! 정말 작고, 낮으며, 거의 갓난아이처럼 느껴졌으며, 우리는 여전히 신비로 남아있는 것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거기에 손을 뻗치고 있다. 그러나 점차 우리 자신의 마음과 자존심은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전에는 기가 죽어 뒷걸음 쳤던 상황들을 어느새 직접 이끌어 나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전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확신과 권위가 있는 음성이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 또한 더욱 크게 자라고 있으며, 영적 자아가 육적 자아보다 강해진 듯이 더욱 가볍게 밟고 지나가는 듯하다.
우리들 중 어떤 이들은 강연자 뒤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색채를 보았다. 보랏빛과 황금빛의 물결이 너무 선명해 눈이 상할 정도였다. 어떤 이들에게는 비스듬히 세워진 십자가가 보였고, 어떤 이에게는 그의 머리 꼭대기로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하얀 광선의 굵은 기둥이 보였다. 반면에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서 긴 적갈색 머리와 수염을 한 모습을 보았으며, 그분의 강연이 진행될 때 천상의 음악과 벨 소리를 들었다.
주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전하셨던 오래된 메시지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를 보이고자 왔다의 의미가 우리에게 점점 더 명확해졌다.
전에 우리는 그 말을 얼마나 자주 들었던가. 우리의 감각은 가려져 있었고, 우리는 이제야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주 예수에 대해, 우리 같은 인간이라고 배웠다. 또한 우리와는 다르게 그는 고도로 섬세하고, 발달했으며, 깊이 통찰하고, 내면의 그리스도성의 경이를 자각한, 신의 살아있는 아들이라고 배웠다. 주 예수와 그리스도와 그의 아버지는 한 존재였다. 그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자신을 인식하고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 그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고 모든 것에 대한 지배권을 가졌다.
말씀이 시작될 때 멀리서 보면 그분의 음성은 항상 엄숙하고 근엄했으며,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확신과 확고함을 갖고 말하는 위대한 지도자와 같았다. 그러나 계속 그분이 계속 말씀해나가시면서, 그분의 음성은 점차 우리에게 따뜻하게 와 닿았고,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반응하고 그분의 영에 대해 점차 이해해 나가자 그분은 기뻐하셨으며 그분의 눈은 사랑으로 빛났다.
강론을 듣고 있는 이들의 숫자는 점점 더 많아졌다. 때때로 그분께서 아버지에 대해 말씀 하실 때, 사랑의 감정으로 압도되곤 하셨다. 그분의 음성은 희미해지곤 했으며, 우리를 완전히 잊은 듯 했고, 갑자기 그분은 아버지의 사랑에 자신을 잃어서 마치 우리 사이에 실제의 존재가 있는 듯 했다. 그분은 우리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 있는 존재에게 말했다. ‘숨결보다 가까운’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그분은 신격의 영광에 감싸인 채 거기 서 있었다. 아버지께 입술을 작게 움직이며 말씀하시곤 했는데, 때때로 우리는 그 말을 들었다.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께서 제게 주신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합니다. 이에 대해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잠시 말을 멈출 때 그분의 얼굴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부드러운 사랑으로 빛났다. 순수하면서도 황홀한 빛이 그의 용모를 변모시켰고, 그 강렬함에 우리의 눈은 멀 정도였다. 우리의 눈은 그분의 얼굴에서 나오는 광휘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분은 마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거룩한 사랑의 성전에 들어간 것 같았다. 경외 속에서 우리는 아버지를 강렬하게,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듯이, 생생하게,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실재처럼 느끼면서 바라보았다. 그 느낌들은 희미해져갔지만, 그분은 그곳에 굳건히 힘차게 영광을 넘어서는 영광 속에 서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도 아버지를 알게 되었다. 활발하게 사랑으로 가득 찬 존재로서의 아버지,
수동적인 신격을 초월해 있는 아버지, 힘차게 이끄시며, 아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시는 아버지, 그분의 아들을 팔로 감싸고 있는 아버지, 황홀한 평화 속에서 아들을 보호하고 있는 아버지를 말이다.
그분의 현존을 통해 사랑이 빛났다. 그분의 현존은 우리 모두를 감싸고 있었으며, 치우치지 않고 모두를 같은 사랑으로 품으며, 우리에게 만지거나 볼 수 있는 것들을 넘어서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깨달을 것을 요구하셨다. 신이 살아 계시다는 진리, 아버지께서는 사랑이 넘치시고, 활동적이시며, 적극적이시며, 역동적으로 움직이신다는 진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와 어깨를 맞대고 함께 걸어가고 있는 고요한 동반자라는 진리, 신께서는 우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함께 문에 서서, 어떤 두려움도 우리 집과 삶에 들어올 수 없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는 진리를 말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오해할 여지가 없는 실재(實在)가 되었다. 주께서는 말로써 그 깨달음을 전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이런 앎이 깨닫게 된 것은 그분 자신의 극도로 불타는 듯한, 아버지의 기쁨의 사랑 때문이었다. 우리가 아버지께 속하게 되자, 그분은 영원하고 무한한 평화와 행복의 영광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그분께서 아버지께 다시 올라가실 때,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제자라 불렀으며 우리에게 이 말씀을 힘주어 남기셨다.
“나의 평화, 나의 사랑, 나의 축복이, 너희와 함께 하기를 바라며 두고 간다.”
그때에 우리는 그것이 마지막인줄 알았다. 우리는 다시 또 그 놀라운 강론이 이루어지기를 갈망했다. 그런데 몇 개월의 사이를 두고 그분께서 두 차례 더 오셨다.
그때에는 그분께서 좀 다르게 말하셨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의 길을 따라 우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우리의 가슴을 살펴보라고 명하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셨다. “너희의 믿음도 이제 물위를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한가?” 그리고 다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너희의 모든 생각과 행위를 결정하고 있는가?”, “너희는 다른 그 무엇보다 오직 사랑 안에서만 살고 있는가?”
(강론을 들었을 때보다) 거의 성장하지 못했던 우리를 발견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부끄러웠는가. 그리고 그분께서 찾아오시는 영광을 누리기에 우리 자신이 얼마나 합당하지 못한지 알게 되었다.
맥도날드 베인 박사는 매 주마다 강론을 계속했다. 그리고 주께서는 자주, 우리가 눈으로 분명히 볼 수 있게, 강론 마지막에 우리에게 장엄한 축복을 줄 때처럼, 그 놀라운 순간에 그의 몸을 넘겨받으셨다. (그분의) 변모는 완전했다. 가운을 걸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으며, 그의 주위에 빛나고 있는 밝은 빛을 통해 수염과 머리카락과 얼굴이 보였다.
“나의 사랑과 나의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기를.”
그렇게, 우리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주께서 우리 옆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땅 위에서 경건하게 살아나간다. 그분께서 직접 당신의 제자라고 불러주신 우리는, 가슴속에 불멸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앎을 품고 지금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 존재한다.
패터슨 부인이 말하다 :
“주께서 박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내가 보고 느낀 것을 말로 표현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몇 초 동안 나는 지금껏 경험해 본 그 어떤 것과도 다른 고요함을 자각했다. 나는 마치 다른 세상으로 옮겨진 듯했다. 그때 나는 박사의 몸 전체 외관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얼굴은 분명히 다른 형태를 띠었고 그로부터 뻗어 나오는 빛줄기가 나타났다. 주의 얼굴이 분명히 나타났다.
강당은 힘과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후에 (내 자신의) 내면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다. 나에게 모든 것이신 살아 있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깊은 안도감을 느끼며 남아 있다.
길버트 부인, 세계를 여행하는 영매가 말하다 :
“나는 30년 넘게 영매를 했다. 그러나 주의 변모와 같은 모습은 결코 본 적이 없었다. 그로부터 나오는 빛이 너무 강해서 나는 눈을 감아야만 했다. (또한) 나는 그토록 분명하게 (천상의)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다.
강당은 우리보다 앞서 간 사람들로 가득했다. 분명하고 뚜렷하며 흠도 없고 실수도 없는 그분의 음성을 한 시간이 넘는 동안 듣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이었던가. 어떤 인간도 그런 강연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미스 S.A 와 E.A 아노트가 말하다 :
“우리 생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 주께서 스스로 자신을 나타내신 것이다. 그분의 얼굴은 분명히 빛났다. 빛나는 푸른 눈, 어깨에 흘러내린 적갈색 머리카락과 수염,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빛은 우리 눈이 감당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빛에 (점차) 익숙해졌으며 (그분의) 모든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그 경험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며, 그것은 전율이 끼치는 경험이었다. 그분의 말씀은 완벽하게 이루어졌으며, 한 시간 넘는 동안 멈춤이나 실수가 전혀 없었다.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이것이었다. 주께서 박사에게 강림(降臨)하실 때 박사의 키가 몇 인치 커졌다. 변모에 대해 들은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변모는 처음 목격하였다.
미스터 A. 토마스 진술 :
“나는 엔지니어로서, 매우 실제적이며 비판적인 사람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갖는다. 영매(靈媒)라는 주제에 대해 많은 책을 읽었지만 나는 이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 두 눈으로 그토록 밝은 빛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눈을 감아야만 했다. 얼마 지나고 나서야 내 눈은 그 빛에 적응하였고, 그토록 많은 그림에서 보았던 주의 친근한 얼굴을 보게 되었다. 내가 본 것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어떤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런 연설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박사가 훌륭한 강연자이기는 하지만 그와 같이 놀랍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아내와 장모도 이 강연에 참석했으며 나와 같은 것을 보고 들었다.
참석했던 사람들 모두는, 박사를 통해 주께서 이 강론들을 여러 차례 진행하시는 동안 그들이 겪었던 놀라운 경험들에 대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증언했다.
(그리스도의 강론)
(The Jesus Lectures)
<그리스도의 강론> 맥도널드 베인 (강론1)
저자 서문
나로서는 이 말씀이 어떻게 주어졌는지 설명 하기가 불가능 하다. 왜냐하면 아마도 부정확한 나의 의견을 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가졌던 느낌에 대해서는 독자들에게 말할 수 있다.
이 말씀이 있기 몇 달 앞서서 나는 내가 밤에 잠자는 동안 내 안에서 말하는 분명한 음성을 듣곤 했다. 나는 내가 꿈꾸고 있다고 생각 했지만 그것은 꿈이 아니었다. 그것이 내 자신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것인지 말 할 수 없지만, 그것은 실재의 음성이었다. 기묘한 것은 나는 이 음성을 들을 수 있었고 동시에 그것이 말하는 바를 생각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여러 번 있은 후, 적절한때가 되면 특별한 강론이 주어질 것이라고 음성이 말했다. 때가 되었고, 음성은 참석자가 모든 선정 되었을 때 정해진 날에 강론은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이 일련의 강론동안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으며, 이들 강론이 잊혀지지 않도록 속기로 기록 되어야만 했으며 유선 녹음기로 녹음 되어야만 했다.
강론을 위한 밤이 되었을 때, 나는 강당에 나의 자리를 잡았다. 나는 무엇이 일어날 것인지 꽤 염려하며 있었는데, 마치 1000 Volt의 전기가 나를 통하는 것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엄청난 파워와 나 자신의 것 훨씬 위의 의식을 느꼈지만,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모르는 설명 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방식으로 우리가 함께 연결된 듯했다.
그때 나는 나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큰 위엄으로서 말하는, 절대적으로 아는 존재의 음성으로 나의 것과는 틀렸다. 나는 말해지는 것을 매우 주의 해서 들었으며, 내가 전에 그래 본 적이 없는 명확성을 갖고 이해 할 수 있었다. 그 언어는 이것이 진행되는 전체 시간 동안 어떤 흠도 없이, 어떤 망설임도 없이 완벽 했다. 나는 놀랐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의 두뇌도 그런 재주를 재현 할수 없기 때문이며. 이것이 일 주일에 1번씩 14주 동안 반복 되었다.
유선 녹음기상의 강론을 들었을 때에만, 나는 뭔가 기묘하고 아름다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경이로웠으며, 나는 아직도 그 놀라운 일에 대해 경이로워 한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 말해진 것들을 읽을 수 있으며, 나와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사람들이 가졌던 위로와 만족을 당신도 가질 수 있다면, 그들 말은 헛되이 말해지지 않은 것이다. 단 한마디 말도 더해 지거나, 단 한마디 말도 빼지 않았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신의 사랑
나는 스스로 부활이며 생명이다. 이러한 나를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 것 이며, 내게서 살지 않고 나를 믿지 않는 그 누구도 죽으리라